꽃이 없다시피 한, 이름뿐인 장미광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시비(詩碑)들이었다.

 

 

 

 

 

 

 

 

 

 

 

 

 

 

 

오월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다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 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하고

 

꽃과 언어

-문덕수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유안진

 

너의 어디든 나는 빛나고 있다

 

녹슨 자물쇠 무겁게 걸어둔

너의 깊은 데서 등불을 켜는 사람

너의 슬픔 속속들이 파묻힌

숨긴 눈물까지를 환히 보고 있는 이 슬픔

 

가슴 가슴의 샛길을 날며 노래하는 종지리

퍼득이는 날개의 깃털을 쓰다듬는 이 기쁨

하늘 채광 어리운 풀섶의 이슬 같이

 

너의 어디든 내 눈물은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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