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경인년(1590, 선조23)에, 병부 주사(兵部主事) 왕사기(王士驥)는 봉주(鳳洲 왕세정(王世貞)의 호)의 아들로 우리나라 사신의 복물(卜物 사신이 가지고 가는 공물(貢物))을 검열하러 왔다가 마침 한집에 있게 되었다. 통역을 통하여 우리나라 문장을 보기 원하자 어떤 이가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호]가 지은 정암(靜庵) 비문(碑文)을 보였다.

주사가 소매에 넣고 가며,

“우리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또

“명(銘)은 추역산송(鄒嶧山頌) 같으면서도 광염(光焰)은 더하고, 서(序)는 법언(法言) 같으면서도 넓고 크기는 그보다 나으니, 당신네 나라에도 이런 인물과 이런 문장이 있단 말입니까?”

하였다고 한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자는 효직(孝直), 한양인(漢陽人)이며 벼슬은 대사헌(大司憲), 시호는 문정(文貞)이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40. 소재(蘇齋:노수신)의,

海月蟲音盡 해월충음진

山風露氣收 산풍로기수

바다 달에 벌레 소리는 끊기고

산 바람에 이슬 기운 걷혔네

라는 구절은 소릉(少陵 두보(杜甫)의 호)의 시집 중에서 찾는다 해도 흔히 얻을 수 없는 것이며,

初辭右議政 초사우의정

便就判中樞 편취판중추

애초에 우의정 사임하고

문득 판중추 되었다네

라는 구절은 대우(對偶)가 자연스러워 솜씨를 부리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돌아간 자기 아버지 신도비(神道碑)를 지을 때는 밋밋하여 굴기(崛奇)한 곳이 없으니, 아마도 기발하게 하려고 마음 쓰다가 도리어 옹졸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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