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임진년에 왜구(倭寇)가 서울을 함락하고 바로 철령(鐵嶺)을 넘었다. 장계(長溪) 황정욱(黃廷彧)이 북청(北靑) 진남루(鎭南樓)에 올라 한탄하기를,

“정입부(鄭立夫)가 살았더라면 왜놈이 어찌 능히 철령을 넘었으랴.”

하더니, 7월에 회령(會寧)에서 사로잡혔다.

장계의 문장은 우뚝하고 웅건하며 속기가 없다. 조선초로부터 문병(文柄)을 잡은 자가 모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자 가운데서 나왔지만 장계만은 그렇지가 않아 세상에선 그를 영화롭게 여기지만 지난해 난리에 화를 유달리 더 입었다.

황정욱(黃廷彧)의 자는 경문(景文), 호는 지천(芝川), 장수인(長水人)이며 벼슬은 병조 판서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정입부(鄭立夫)의 이름은 언신(彦信), 호는 나암(懶庵), 동래인(東萊人)이며 벼슬은 우의정인데, 기축년(1589, 선조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獄事)에 원통하게 죽었다. 뒤에 신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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