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22- 야생에서 사는 선비 (一書生)

 

한 선비가 혼자 산을 넘다가 길을 잃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선비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 사는 집은 보이지 않고,

근처에는 절도 없는지 종소리도 안 나는구나.

어디 바위틈에서라도 밤을 지낼 준비를 해야겠다.'

이러면서 커다란 바위 밑에 풀을 뜯어 자리삼아 깔고는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주변의 사물들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때 동쪽 산위로 달이 솟아올라 주위가 조금 밝아졌는데,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가 곁으로 다가와 앉는 것이었다.

 

선비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자사람인 듯하면서도

검은 털로 온몸을 덮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짐승인 듯했다.

 

이에 힘이 세고 몸집이 큰 선비는

그것의 다리를 잡고 힘껏 잡아당기자 아프다고 외치는데,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가 비로소 사람인 줄 알고 놀라며 물었다.

"너는 사람의 말을 하면서 왜 이런 산속에 있느냐?“

 

"이 다리를 놓으십시오그러면 내력을 말하겠습니다."

그러자 선비는 확실히 사람이라 생각하고 잡은 손을 놓았다.

 

이에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내력을 얘기하는데,

그 사정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나는 본래 서울에 살던 양반 가문의 선비였습니다.

40여 년 전 집안에 갇혀 사는 것이 갑갑하여 가출한 뒤

영남 지방을 떠돌면서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집에는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5년이 더 지나서 집으로 돌아가 대문 앞에 이르니,

집안에서 곡성이 들렸습니다.

 

잠시 걸음을 돌려 물러나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 보자,

그 집 바깥 주인이 오래 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필시 죽었다 생각하고 의복으로 장사를 치렀으며,

오늘 소상 제사를 지내는 중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들어가면 대혼란이 올 듯하여,

그 길로 산에 들어와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연명하여 살다보니,

몸에 털이 이렇게 많이 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다시 놀라면서

그가 살던 곳이며 서울에 살 때의 일들을 물으니,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모두 실제와 잘 맞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자기가 살던 집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내가 오랫동안 산속 생활을 하다 보니이제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밤 선비가 길을 잃고 여기서 밤을 새우려는 것을 보고,

짐승들의 피해를 걱정하여 보호해 주려고 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밤새 함께 있다가 날이 새니,

그 사람은 산을 내려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소리 내어 울면서 떠나갔다.

 

그가 가는 것을 바라보자니,

흡사 원숭이처럼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나는 듯이 나무들을 건너뛰며 사라졌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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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인전(灌夫人傳)[下]

 

眞人이 曰,

백수진인이 말했다.

 

 

「將軍이 性急如火하매

進銳退速하니 莫如圍而灌之라.」한즉,

 “장군의 성질이 불같이 급해서

 

날쌔게 들어갔다가 재빨리 물러나곤 하니

 

에워싸고서 물을 대느니만 같지 못하오.”

 

夫人이 如其計策이 激水浸之어늘

부인이 그 계책과 같이 세찬 물로 (주장군을) 잠기게 했다.

 

 

 

將軍이 濡水露體하고 掀髥自得하야

竭盡死力而 蹂躪內地에

장군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었으나

 

수염을 치켜세운 채 자득(自得)한 모습으로

 

죽을힘을 다하여 내지(內地)를 유린하였다.

 

勞甚漚血하고 倒戈而還하니,

그러나 피로가 심하여 피거품이 일 정도가 되어

 

창을 거꾸로 들고 돌아가게 되었다.

 

 

夫人이 口角에 流沫하야 大罵曰,

부인이 입 언저리에 거품을 흘리면서 크게 꾸짖었다.

 

 

 

「向與諸公으로 同承君命하고

期得將軍頭하야 以報於天君이러니

使將軍으로 脫走는 咎在諸公이라.」

 “지난번에 여러 공들과 함께 천군의 명을 받들어

 

주장군의 머리를 취하여 천군께 보답하기를 기약했는데

 

장군으로 하여금 도망가게 했으니

 

잘못이 제공(諸公)들에게 있도다.”

 

 

卽具啓於天君한대

天君이 卽召臍中書等하니

곧장 천군에게 갖추어 장계를 올리니

 

천군이 즉시 제중서(臍中書) 등을 불러들였다.

 

 

四人이 共謁對狀할세,

臍中書가 先對曰

네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알현했는데

 

제중서가 먼저 천군을 대하여 아뢰었다.

 

 

「臣이 潛伏峰頂하야 晝夜로 侯望將軍之動兵也러니

欲燃烽火則 輒爲衾風之所滅하야

此臣이 所以未及擧火也니이다.」

 “신은 산꼭대기에 잠복하여 밤낮으로 살펴보다가

 

장군의 군사가 움직이기에 봉화를 올리고자 했으나

 

문득 이불자락이 뒤치는 바람에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신이 봉화를 일으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黃門郞이 繼進曰

 황문랑(黃門郞)이 이어서 진언했다.

 

 

 

「臣이 常慮患하야 時ㄷ放砲에

嚴備以待將軍之入關也러니

 “신은 항상 환난을 걱정해서 때때로 포를 쏘면서

 

엄중한 수비를 하면서 장군이 관문에 들어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將軍이 先以生皮囊으로 盛石兩塊하야

亂擊臣耳頰에 使不得措/(p.170.)手足하니

此臣이 所以未及吹鑼也니이다.」

그런데 장군은 먼저 생가죽 주머니에 두 개의 돌덩어리[불알을 가리킴]를 담아다가

 

신의 귀와 뺨에다가 어지러이 들어다놓아 손발을 놀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신이 징을 울리지 못하게 된 까닭입니다.”

 

 

毛參軍이 前對曰

 모참군(毛參軍)이 앞으로 나와 답해 말하였다.

 

 

「臣이 整齊羽林하야 持索以侯로되

將軍이 勇銳가 絶倫하야

或進或退에 勢甚神速故로

以臣之綿力으론 實難擊致어늘

非臣이 不能盡心也니이다.」

 “신은 우림(羽林)을 가지런히 정비하고서 끈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용맹하고 날래기가 아주 뛰어나서

 

혹은 나아가고 혹은 물러나고 하는 형세가 심히 귀신처럼 재빨랐던 까닭에

 

신의 비단결 같이 약한 힘으로는

 

실로 묶어 잡아오기가 어려웠던 것이지

 

신이 진심으로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弦防禦가 又進對曰

현방어(弦防禦)가 또 앞으로 나와 대답하여 아뢰었다.

 

 

 

「臣等이 任北門之鎖鑰하야 脣齒相依에 左右控弦이러니

 “신등은 북문을 잠그는 일을 맡으면서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좌우에서 시위를 당기고 있었습니다.

 

 

將軍이 馳入壁門에 直犯內閘하야

左衝右突에 神出鬼沒하고

渾身이 流汗故로 滑不能捉하니

그런데 주장군이 벽문으로 치달려 들어오더니

 

곧장 갑(閘)문의 안쪽을 침범하는데

 

신출귀몰하듯이 좌충우돌하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는 까닭에

 

미끄러워서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以臣菲質로 難可生擒이라.

非臣이 不能用命也니이다.」

신의 보잘것없는 자질로서는

 

살아있는 채로 잡기가 어려웠을 뿐이지

 

명령을 받들지 않았음이 아니옵니다.”

 

閘御史가 頂朱冠하고 兀然獨立하야

頗有自矜之色曰

이번에는 갑어사(閘御史)가 머리에 붉은 빛깔의 관[陰核]을 쓰고

 

우뚝 홀로 서 있다가 자못 긍지를 느끼는 얼굴빛을 하고서 말했다.

 

 

「將軍이 突入力戰也에

臣이 用朱亥故事하야 狙擊後腦則

將軍이 流骨髓出關而斃어늘

 “장군이 깊이까지 들어와 전력을 다하여 싸우고 있을 때

 

신은 주해(朱亥)의 고사를 써서 그 뒤통수를 저격(狙擊)하였더니

 

곧 장군은 골수(骨髓)를 흘리면서 관문 밖으로 뛰쳐나가 죽어버렸습니다.

 

 

今日之功은 臣이 不足多讓於人也이라.」라 한대,

오늘의 공로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 크게 양보하기가 어렵겠습니다.”

 

 

 

天君曰「汝之功 大矣라.」하고

 천군(天君)이 말했다.

 

 “그대의 공이 크도다.”

 

 

卽命拜謁者僕射하야 常置夫人幕下하니

즉시 알자복야(謁者僕射)의 벼슬을 내리고

 

항상 관부인의 장막 가운데에서 지내게 하였다.

 

 

夫人이 亦愛其峭直하야 全委內事러니

부인 역시 그의 우뚝 솟아 꼿꼿함을 사랑하여

 

내무 행정 일체를 맡기었다.

 

 

及其年老에 嘗一請謁則 夫人이 以手撫頂 歎曰

그러나 그도 나이가 들어 늙고 말았다.

 

일찍이 알자(謁者)를 한번 청하여 불러들였을 적에

 

부인이 손으로 그이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탄식했다.

 

 

「惜乎라.謁者가 已衰矣로다.

 “애석하도다! 알자(謁者)도 그만 쇠약해졌구려.

 

 

昔之渥丹이 變成蒼黃하고

曩日光銳가 反爲冗長하니

欲與君으로 食肉富貴하야 共保其樂이 烏可久耶아?」

예전의 그 윤기 있고 불그레했던 모습은

 

혹 창졸간에 누렇게 변해버리기도 하고,

 

지난날 날카롭던 서슬은 오히려 늘어져 처지게 되었으니,

 

그대와 더불어 육고기를 먹으며

 

부귀의 그 즐거움을 함께 간직하고 싶었는데

 

어찌 오래갈 수 있으리오?”

 

 

對曰,「臣이 居中에 事多歷年하야

成功之下에 不可久留라.

 대답했다.

 

“신이 여기서 지내고 있던 중에는 일도 많았고 세월도 오래되었는데

 

공을 이룬 다음에는 오래 머무르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지요.”

 

 

遂退居于赤岸兩谷間이러니 終焉에

드디어 퇴거하여 두 골짜기 사이의 붉은 언덕[赤岸]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치었다.

 

 

其雲이 仍散하야 處於中國則

夷狄이 其麗不億에 惟居女國者는

寡處不嫁하야 每令女孫으로 承其祀云이러라.」

 (부인의) 먼 후손들은 중국에 흩어져 살았으니

 

이적(夷狄)과 같은 야만인들은 그 빛남을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여인국(女人國)에 살았던 사람들로서

 

과부는 시집가지 아니한 채 늘 딸이나 손녀로 하여금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고 한다.

 

 

史臣曰  

사신(史臣)은 논평한다.

 

 

 

夫人之德이 其至矣乎인저.

 “부인의 덕은 지극하도다.

 

 

溫潤之性이 能使人心歸向하고

生殺之權이 能與春秋匹美하니

따사하고 촉촉한 성품은 능히 사람의 마음을 돌아서게 할 수 있었고,

 

죽이고 살리는 엄정한 권도(權道)가 춘추(春秋)와 훌륭한 짝이 될 수 있었다.

 

 

開闔則 順陰陽之理하고

含忍則 有容物之度라.

열었다 닫았다 함에 있어서는 음양의 도리를 따랐고

 

받아들여서 견딤에 있어서는 대상을 용납하는 도량을 지녔으며

 

 

 

其他 承乾主成之德이 有不可殫記어늘

그 나머지 뽀송뽀송함을 이어가다가도

 

성덕(成德)을 지켜나가는 일 따위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後에 有人이 作夫人小池詩一絶曰,

뒷날 어떤 사람이

 

‘부인의 작은 연못’이란 시 한 구절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兩脚山中에 有小池하니

池南池北에 艸離ㄷ라.

無風白浪이 翻天起하니

一目朱龍이 出入時라 한대

 ‘양각산(兩脚山) 가운데 작은 연못 있으니

 

 연못의 위아래론 풀숲이 무성한데

 

 바람 한 점 없어도 하늘마저 뒤집을 듯 흰 물결 일어남은

 

 외눈박이 붉은 용이 들락날락하는 때라.’

 

 

亦可謂記實也라.

이 또한 여실한 기록이라 이를 만한 것이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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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학 - 관부인전(灌夫人傳)

해설:

성여학(成汝學; 1557년-?)의「관부인전(灌夫人傳)」은 여성의 성기를 의인화한 가전체 작품이다.

「관부인전」은 성여학의 한문소화집인『속어면순(續禦眠楯)』에 실려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고금소총(古今笑叢)』과 같은 골계야담집 따위를 엮을 때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된 글이다.

원문과 번역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였다.

 

宋世琳,灌夫人傳,〈禦眠楯〉《古今笑叢 全》(프린트 영인본),오성사,1959,pp.167-171.

김창룡(金昌龍),한국가전문학선,정음사,1985.

(고전수필 순례 29)

blog.daum.net/leewj1004/13415653

 

(고전수필 순례 30)

http://blog.daum.net/leewj1004/13415654

 

 

송세림의 주장군전 [朱將軍傳]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 보완작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상의 원문 제공은 처음임을 자부한다.

 

 

 

성여학, 관부인전(灌夫人傳) [上]

                                                    

p.167.灌夫人이 籍玉門할새

其考는 爲潁陰侯요 其妣는 陰麗華라.

生夫人於岐山之陽에

관부인의 본적은 옥문(玉門)이다.

그 아버지는 영음후(潁陰侯)요,

 

그 어머니는 음려화(陰麗華)로,

 

기산(岐山)의 남쪽에서 부인을 낳았다.

 

 

少有艶姿하야 紅顔赤脣에 性且溫柔러니

어려서부터 고운 자색과

 

발그레한 얼굴에 붉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품 또한 따사하고 부드러웠다.

 

 

大曆元年에 得幸封爲灌夫人하니

內助之力이 實多라.

 대력(大曆) 원년에 관부인으로 봉함을 받는 행운을 얻었는데

 

내조의 힘이 실로 컸던 때문이었다.

 

 

夫人이 罕言語하야 居常閉口하고

부인은 말이 드물어서

 

평상시에는 늘 입을 다물고 살았다.

 

 

又慕比丘尼어늘 月朔則 必着衲衣하고

血誠念誦하야 以求佛方之陰騰이러니

또 비구니를 동경해서

 

초하루만 되면 반드시 납의(衲衣)를 걸친 채

 

정성을 다하여 불경을 외면서

 

불력의 음덕[陰騭)을 기도했다.

 

 

時에 有將軍名猛者한대 亦佛者流也라.

그때 맹(猛)이란 이름의 장군이 하나 있었는데

 

그 또한 불자(佛者)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隱於綠林山中하야/(p.168.)禿頭强項에

氣宇가 軒昻하고

獨眼에 頗似季克用하니 盖天下之力士也라.

녹림산 속에 숨어 지냈는데 민대머리에 목줄기가 튼튼했고

 

기우(氣宇; 기개와 도량)가 헌걸차서

 

외눈박이로 자못 이극용(李克用)을 닮았으니

 

대개 천하의 역사(力士)였다.

 

 

將軍이 聞鷄冠山赤城中에 有一小池하니

池水가 溫沸에 百疾이 皆瘳라 하야

貽書於池主之灌夫人曰,

장군은 계관산(雞冠山)의 불그죽죽한 성 가운데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연못의 물은 따뜻하게 솟아올라 온갖 병이 다 낫는다는 말을 듣고

 

연못의 주인인 관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朱猛은 叩頭再拜言하노니

眇予가 不淑하야 聞香名이 久矣러니

 “주맹(朱猛)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애꾸눈인 저는 맑은 덕도 없습니다만

 

부인의 향기로운 이름을 듣자온 지 오래입니다.

 

 

身有癢疹이라 願一沐浴이로되

倘許溫湯하야 萬一得效면

感戴夫人之請 祝多男子하노라.」

마침 제 몸에 가려움증이 있어 한번 목욕하기를 원하는 바이오니

 

혹시라도 온탕을 허락해 주셔서 만에 하나라도 효험을 보게 된다면

 

부인의 바람에 감복하여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축하해 드리겠습니다.”

 

 

夫人이 報之曰,

부인이 거기에 답장을 보냈다.

 

 

「陋居가 雖凹濕하나

頃者에 君이 傳妾으로 主管하고

且有勅諭호대 毋溷池水라하니

雖有將軍之令이나 恐難副也니이다.」

 “제가 기거하고 있는 곳이 누추하고 비록 오목하고 축축하긴 하오나

 

지난번에 임금께서 소첩에게 주관하라 하셨는데다가

 

거듭 칙령으로 일깨워주신 바

 

연못의 물을 흐리게 하지 말라 하셨기에

 

비록 장군님의 영이긴 하오나 부응하기는 어렵겠습니다.”

 

 

將軍이 覽畢에 怒目이 童ㄷ하고 怫然而起하야

卽召閬州兩太守而 至前聽令曰,

장군이 읽기를 마치자

 

노한 눈을 동동거리며 발끈하고 일어서서

 

즉시 낭주(閬州; 여기선 陰囊을 가리키는 말)의 두 태수를 불러

 

앞에 이르자 명령을 듣게 했다.

 

 

「爾們이 爲我管下어늘

庶幾乃一心力하야 破此城池리라.」하며

 “너희들은 나의 관할 아래에 있는 바이니,

 

거의 일심전력으로 이 성의 연못을 쳐부수시오.”

 

 

夜半에 自兩脚峰으로

循陰凌泉이 馳入壁門하야 以挑水戰할세.

한밤중에 양쪽 다리가 있는 봉우리로부터

 

음능천(陰凌泉; 外陰部)을 따라 벽문(壁門)으로 치달려 들어가서

 

수전을 도발하였더니

 

 

夫人이 不勝憂惱하야 上疏於君曰,

부인이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여 임금에게 상소했다.

 

 

「臣이 久居要衝之地에 專幹陶鎔之責하야

天子諸候良相名將이 皆由臣之功하니

豈曰 小補之哉리요.

 “신이 오래도록 요충의 땅에 살면서

 

오로지 도용(陶鎔; 陶冶鎔鑄의 준말.)의 직책만을 본분으로 하여

 

 

천자 제후 및 어진 재상과 이름난 장수 등이

 

모두 신의 공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찌 도운 것이 적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今 朱將軍이 强戾多慾하고

膂力이 過人하야

無時突入에 勢成蛙鷸하니

그런데 지금 주장군은 그 성정이 강려(强戾)한데다가 욕심도 많고

 

여력(膂力)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돌진해 들어와서

 

그 형세가 방휼지세(蚌鷸之勢)가 되었습니다.

 

 

此는 實門庭之寇也라.

請加檢括하사 俾戢其暴하소서.」

이는 실로 벽문 안 내정(內庭)에까지 쳐들어온 도적이온 바,

 

청컨대 살펴 단속하셔서 그 난폭함을 그치게 하여주시옵소서.”

 

 

天君이 若曰,

이에 천군(天君)이 이렇게 말하였다.

 

 

 

臍中書는 汝居山頂에

可爲侯望하야 將覘敵動靜하라.

 “제중서(臍中書; 여기선 배꼽), 그대는 산봉우리에 거하면서

 

망을 살펴보는 장수로서 가(可)할 것이니

 

적의 동정을 엿보도록 하시오.”

 

 

曰黃門郞은 汝雖有口臭나

素善吹鑼하니 敵이 若臨境이면 鳴라以報하라.

 또, “황문랑(黃門郞; 항문), 그대는 비록 입 냄새가 있기는 하지만

 

본시 징을 잘 울리니 적이 만약 국경에 이르게 되면

 

징을 울려서 알리도록 하시오.”

 

 

曰毛參軍은 汝領羽林衛하야

敵若犯關이면 亂用黑索/(p.169.)하야 繫頸以致하라.

 또, “모참군(毛參軍), 그대는 우림위(羽林衛; 陰毛)를 거느리고 있으니

 

적이 만약 옥문을 범하게 되면 흑색 노끈[陰毛]을 어지럽게 휘둘러서

 

적의 목을 묶어서 끌고 오시오.”

 

 

曰弦은 汝爲防禦하니

敵若衝壁이면 協力捕捉하야 無使脫走케 하라.

또, “현(弦; 外陰部의 테두리), 그대는 방어를 맡다가

적이 만약 (膣의) 벽에 부딪치거든 힘을 모아 사로잡아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시오.”

 

 

曰閘은 汝爲御史니 可用椎斧하야

敵若交鋒이면 打破頭腦하라. 하고

 또, “갑(閘; 水門의 문짝 ), 그대는 어사가 되어

 

철퇴와 도끼를 쓰도록 함이 좋으리니

 

적과 만약 교전하게 되면 적의 골머리를 때려 부수도록 하시오.”

 

 

分排가 己畢이어늘,

이렇게 직분 나누기를 마치고 나자

 

 

灌夫人이 開口吐舌에 稱謝不已하야

揷血同盟하고 約以力守러니

관부인이 입을 열어 혀[소음순]를 내밀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고,

 

피를 발라 동맹을 맺어 전력 수비를 다짐하였다.

 

 

俄而요 將軍이 怒氣가 奮發하야

免冑騰身하고 破開關門에 三進三奔하야

이윽고 장군이 노기를 뻗치고

 

투구[包莖]를 벗고 몸을 솟구쳐 관문을 두들겨 부수고서

 

세 번 들어갔다가 세 번 물러났다 하는데

 

 

一依玉帳之術이 坐作擊刺하니

必合龍鞱之法하야

한결같이 옥장술(玉帳術)에 의거하였고

 

앉았다가 쳐들어가고 찌르고 하는 방법이

 

틀림없이 용도법(龍韜法; 六韜 중의 하나인 병법)에 들어맞았다.

 

 

縱橫闔裨에 所向無前하니,

계속하여 제멋대로 닫았다 열었다 하니

 

그가 향하는 곳마다 앞에 거칠 것이 없었다.

 

 

灌夫人이 邦本旣搖에

勢難抵當하야 請求於白水眞人할세,

관부인은 나라의 본거지가 이미 요동을 치고

 

사세가 더 버티기 어려워지자

 

백수진인(白水眞人; 愛液)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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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림 - 주장군전 下

 

王이 黙然良久에 曰

「卿言이 是也라.

但猛이 縮首深林하고 鞱光孕精커늘

猶恐見知於人에 其肯爲朕起耶아?」

  왕이 말없이 한참 지난 후에 말했다.

『경의 말이 옳도다.

"다만 맹이 고개를 깊은 숲속으로 처박고 품은 정기도 감추고 지내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제 모습이 보일까 걱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가 짐을 위하여 기꺼이 벌떡 일어나 줄지 의문이오.』

 

 

 

 

泚曰「猛性이 兼剛柔하야 出申威於河外하고

雖猛氣之咆哱이 入屈節於河內하니

若四/(p.97.)體之無骨이라.

倘陛下는 赤心力請하사 其無何說之辭니잇고?」

주자가 말했다.

 

『맹의 성품이 단단하고 부드러움을 겸하고 있으니,

 

신기(神氣)를 드러내면 그 위력이

 

연못[寶池]의 밖에서는 마치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이 요란스러우나,

 

절개를 굽혀 연못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지에 뼈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지만,

 

아마 폐하께서 성심껏 힘써 청하신다면

 

무슨 말로 사양할 수가 있겠나이까?』

 

 

 

 

王이 令泚로 卜日奉幣而往한대

猛이 欣然就徵則

 왕이 주자로 하여금 날을 받아

 

폐물을 가지고 찾아가도록 하였더니,

 

맹이 흔쾌히 부름에 응하였다.

 

 

 

王이 大喜하사 拜折衝將軍 充寶池疏鑒使할새

왕이 크게 기뻐하여 당장 절충(折衝)장군에 임명하시고

 

보지소착사(寶池䟽鑿使;보배로운 연못을 툭 트이도록 뚫는 사신)로 명하시니,

 

 

 

 

猛이 聞命하고 不指而行에

맹은 명을 받들자마자 당장에 시행하였다.

 

 

 

 

由湧泉闢陽陵泉하고 歷陽關直抵池岸하니 池距陽陵泉이 才三里라.

(湧泉 陽陵泉 陽關 三里는 皆針灸之穴名이니 俱在脚足也라.)

용천 벽양릉천을 따라가다

양관을 지나 곧장 보지언덕에 도착하니

보지와 양릉천과의 거리는 겨우 삼 리였다.

(용천 양릉천 양관 삼리는 모두 치구의 혈자리 이름이니

모두 다리와 발에 있다.)

先是尼城人 麥孝同이(諺傳云 淫尼用에 以麥屑로 造肉具狀하니 名曰 麥孝同이라.)

이에 앞서 이성(尼城) 사람 맥효동(麥孝同)[남근 모양의 기구]

(민간에 전해 오기를, 음란한 비구니들이 보릿가루를 써서 남자 성기 형상을 만들고

 

그 이름을 ‘맥효동’라 했다.)

 

 

私劃方略하야 欲效疏浚之力타가 聞將軍至에 慙赧而退라.

사사로이 방책을 세워서 깊이까지 뚫는 효험을 보이고자 힘써 분투하다가

 

장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물러갔다.

 

 

 

將軍이 周視四方하고 因掀髥朶頤而言曰

장군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수염을 치켜들고 턱을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此地는 非[北의 잘못]峙玉門山이요 南連黃金窟하야

東西赤岸이 互回에 中有一巖하야 形肖柿仁하니

眞術家所謂要衝之地요 赤龍含珠之勢也라.

固非力孱者면 所難成功也.」니,

『이 땅은 북으로 옥문(玉門;음문)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 황금굴(음문의 통로)이 이어져 있으며,

 

동서쪽으로는 붉은 낭떠러지가 서로 둘러서 있고,

 

그 가운데에 바위 하나가 있는데,

 

그 모양은 흡사 감씨(陰核을 말함)를 닮아서,

 

진정 술객(術客)들이 이르는 바,

 

「요충(要衝)의 땅이요,

 

붉은 용이 구슬을 머금은 형세라」

 

진실로 힘이 쇠잔한 자만 아니라면

 

쉽게 뚫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로다.』하고

 

 

 

遂條陳形勢하고 上表 其略曰,

드디어 그 형세를 조목조목 진술하여 표(表)를 올리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臣猛은 承先祖之餘烈하고 荷聖朝之鴻恩하야

折衝千里에 效死一節하니

豈憚久勞于外리요?

『신 맹은 선조가 남기신 업적을 이어받아

 

성스러운 임금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니,

 

천리의 적을 꺾어 죽음으로써 한 번 충절을 본받으려 하는 바이라,

 

어찌 외방에서의 오래된 수고로움이라 하여 꺼리겠습니까?

 

 

 

期至成功後에 已니 身到甘泉郡에 詎敢企乎아?

生入玉門關中을 惟日望之하노라.」

공로를 이룬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을 다짐하옵는 바,

 

지금 몸이 감천군에 이르렀지만

 

감히 일을 갑작스럽게 도모할 수야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옥문관(玉門關) 속에 들어와서

 

오직 날마다 형세를 관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王이 覽表에 玩味不已하사 璽書褒美曰,

 왕이 표를 보시고 즐겨 마지않으시면서,

 

옥새(玉璽)가 찍힌 문서를 보내어 그의 공적을 칭찬하는 글을 내렸다.

 

 

 

 

「西方之事를 屬之卿이니 卿其勖哉인저」

(西方은 俗所謂西[書]房也라)

『서방의 일은 경에게 맡겼으니,

 

경은 힘쓸지어다.』

 

[서방(西方)은 세속에서 말하는 ‘서방(書房)’이다.]

 

 

 

猛이 奉詔和頭하고 與士卒로 同甘苦하야

맹이 조서를 받들어 머리를 조아리고,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或諭或浚하며 或出半面하고

혹은 살살 타이르기도 하고

 

혹은 깊숙이 파헤치기도 하며,

 

또 나갔다가 얼굴을 반만 내보였다가

 

 

 

或露全體하야 屈伸俯昻에

更出迭入하야

鞠躬盡力에 期至必死라.

때로는 얼굴 전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구부렸다가 폈다가 내려다보았다가 올려다보았다가,

 

번갈아 들락날락하며

 

몸을 굽혀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일을 성사시키기를 기약하였다.

 

 

 

役未半(p.98)에

始有淸泉數派而 濡洒不絶이러니

일이 미처 반도 되지 않아서

 

비로소 맑은 샘물 몇 갈래가

 

흘러나와 적시기를 끊이지 않더니,

 

 

 

 

俄頃에 濁潮가 暴湧하고

全島가 塾溺하야 林莽이 覆沒에

갑자기 탁한 물길이 세차게 용솟음쳐 나와

 

모든 섬이 물에 빠지게 되었고

 

수풀과 잡초들도 물에 떠다니거나 잠기게 되었다.

 

 

 

將軍이 濡首霑體하고

植立自如하야 不動一髮이러니

장군도 머리와 온몸이 흠뻑 젖었으나

 

스스로 태연자약하게 꼿꼿이 서서 터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適有蝨生蚤生이

共遊爪氏(爪氏는 方言에 兒女之稱이라)之患하야

隱于林하라가

마침 슬생(이)과 조생(벼룩)이 있어

 

일찍이 ‘좃’씨[‘爪氏는 방언에서 손톱을 지칭한다’며 눙침.]의 환(患)을 당하여

 

숲속에 숨어 있다가

 

 

 

亦爲暴潮所濡이 流寓黃金窟에

訴于窟神後 哀號求救한대

역시 세찬 물결에 표류하여,

 

흘러서 황금굴까지 흘러와 우거(寓居)하다가

 

굴신에게 호소한 뒤에

 

슬피 울며 살려달라고 하니,

 

 

 

神이 蹙口而病之曰,

굴신이 입을 찡그리며 근심스럽게 말했다.

 

 

 

 

「比來에 走輩가 亦遭比[此?]患이 屬矣라.

感彼饘粥之惠하고 忍走本性이라.

囊括不言者 久矣니 今當爲二子而 固止之하라.」

『요사이는 나 역시 이런 환난을 여러 번 당했는데

 

그가 미음이라도 먹여주는 것을 고맙게 여겨

 

본성을 떠남을 참았다.

 

자루 끈을 동여매듯 말하지 않음이 오래였으나

 

이제 그대들 두 사람을 위해서 그치도록 도모해 보겠소.』

 

 

 

蚤生等이 踊躍,「此生死而關骨者也라.」

조생 등이 좋아라고 날뛰면서 말하였다.

 

『이 일은 저희들의 생사에 관한 일이요,

 

뼈에 살을 붙임과 같은 일입니다!』

 

 

 

 

窟神이 往詰池神曰,

 굴신이 지신(池神)에게로 가서 힐문했다.

 

 

 

 

「爾家甚客이 常懸二丸囊于我門에 出入無恒한대

『너희 집에 심한 손님이

 

언제나 이환낭(二丸囊; 불알)을 우리 집 문 앞에다가 척 걸어두고

 

때도 없이 들락날락하는데

 

 

 

 

始疎終數에 淋漓我庭戶하고

亂擊我門扉하니 乃敢狂率이 如是乎아?」

처음은 드문드문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잦아져

 

우리 집 뜰과 문을 흠뻑 적실 뿐만 아니라

 

내 문짝까지 어지럽게 쳐대니

 

감히 미치광이처럼 경솔함이 이와 같은가?』

 

 

 

神이 謝曰

「客粗賓貪에 累及尊神하니

雖有粥水之償이나 豈直汚門之辱이리요.」

지신이 사죄하여 말했다.

 

『손님이 거칠고 탐욕하여

 

존신(尊神)께 누를 끼쳤으니,

 

비록 미음의 보상은 있었으나

 

어찌 가문을 더럽히는 욕됨을 당하리오?』

 

 

 

今爲尊神當殪之夜하야

方午에 池神이 伺將軍力役이

潛嚙頭하고 又勅兩岸神挾攻하니

이제 존신을 위하여 그를 죽이는 밤에 당도하여

 

바야흐로 뒤섞여서 얼크러지자

 

지신이 주장군이 힘써 노역하는 것을 가만히 엿보다가,

 

몰래 장군의 머리를 깨물고

 

또 두 언덕의 신에게 칙령을 내려 협공케 하니

 

 

 

將軍이 飢渴하야

流骨骸駭數匙에 首頭而卒이라.

장군은 기력이 다하여

 

몇 숟갈의 골수를 흘리며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고 말았다.

 

 

 

 

訃聞에 王이 震悼罷朝하시고

特賜長剛溫直效死弘力功臣號하야 以禮로 奠于襌州하니

부음을 듣고,

 

왕은 몹시 애통한 나머지 조회마저 파하고 

 

맹에게 특별히 ‘장강온직효사홍력공신(長剛直效死弘力功臣)’이란 호를 내리시고,

 

예를 갖추어 곤주(褌州; 잠방이)에 장사지냈다.

 

 

 

後에 有人이 見將軍이 脫帽露頂하고 恒游泳於寶池中이라.

抑不生不滅 學牟尼之佛者歟아?

이후에 어떤 사람이

 

장군이 모자를 벗고 이마를 드러낸 채

 

 

늘 보지(寶池) 가운데서 노니는 것을 보았다.

 

또한 불생불멸하니 석가모니의 도를 배운 불자(佛者)가 아니겠는가? 

 

 

 

 

史臣曰

사신(史臣)은 논평한다.

 

 

 

將軍이 早稟服人之力하고 奮起艸萊之中하야

出萬死計而 深入不毛之地하니 殫/(p.99.)精施澤에

『장군은 일찍이 사람을 감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초야에서 떨쳐 일어나,

 

만 번이나 죽을 계획을 세우고,

 

털 하나 없는 곳에까지 깊숙이 들어가

 

정력을 쏟아 붓는 혜택을 베풀었다.

 

 

 

 

澤之入人也深하니 十載溝洫之功이 一朝迺成則

可謂植根固而 發源深者也라.

연못은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깊어서

 

십 년이나 걸려야 할 봇도랑의 혈(血)을 통하게 하는 공을

 

하루아침에 시원스레 이루어서

 

가히 깊이 박은 뿌리는 튼튼하고

 

그 근원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雖竟爲池神所誤하야 殞命一噓氣之間이나

攻其行事之迹은 可謂能勇而能劫이요 殺身而成仁者也니

嗚呼烈哉라.

비록 마지막에는 지신의 오해를 받아서

 

숨 한 번 쉴 사이에 운명하고 말았으나,

 

그 행한 바 일들의 업적을 공평하게 생각해 보면,

 

가히 용감하기도 하였으나 겁도 잘 내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인(仁)을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아, 충성을 다한 열자(烈者)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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