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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商書. 盤庚中-1) 반경이 은(殷) 땅으로 천도하려 하다

은인자중 2021. 1. 3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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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82)상서(商書)(30)반경중(盤庚中)(1) 반경이 은(殷) 땅으로 천도하려 하다

             <서경(書經)>(82) 상서(商書)(30)         상(商)나라 시대의 사적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하여 상서(商書)라 일컫게 되었는데, 상(商)은 성탕(成湯)   의 조상이 봉함을 받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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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82) 상서(商書)(30)       

   상(商)나라 시대의 사적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하여 상서(商書)라 일컫게 되었는데, 상(商)은 성탕(成湯)

   의 조상이 봉함을 받은 땅의 이름이었다. 성탕이 무도한 하(夏)의 걸왕(桀王)을 쳐서 멸망시키고 국호를

   상(商)이라고 한 것이다. 상왕조(商王朝)는 기원전 1751~1111년까지 영화를 누리며 충국 대륙을 통치해

   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상왕조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지는데, 성탕으로부터 그후 360여년간을

   전기로 보고, 제17대 임금 반경(盤庚)에 이르러 은(殷)땅으로 천도한 기원전 1384년 부터 상(商)의 멸망

   까지를 후기로 본다. 반경은 즉위한 지 15년 째 되던 해에 천도를 하였으며, 이후 상(商)을 은(殷)이라고

   도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지금 알려져 있는 상대(商代)의 기록과 역사적인 자료및 기타 문물이 모두 이

   시대에 남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상서 가운데 남은 기록은 <금문상서>의 탕서(湯誓),반경(盤庚),고종

   융일(高宗肜日), 서백감려(西伯勘黎), 미자(微子)의 5편과, <위고문상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중훼지고

   (仲虺之誥), 탕고(湯誥), 이훈(伊訓), 태갑(太甲), 함유일덕(咸有一德), 열명(說命)의 6편인데,이 작품들

   가운데 상중하로 나뉘어진 것이 있어서 총 17편에 이른다.

 

       제10편 반경중(盤庚中)(1)

   반경(盤庚)은 상(商)나라를 중흥시킨 영주(英主)이다. 상나라 540여 년간 전후(前後) 여섯 번의 천도(遷

   都)가 있었는데, 여섯번째로 도읍을 옮긴이가 바로 이 반경이다. 그는 처음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

   현(曲阜縣)에 있는 엄(奄)을 도읍지로 삼고 있다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소둔(小屯)

   에 있는 은(殷)으로 다시 옮겼는데,이곳에서 저 유명한 갑골문(甲骨文)이 발굴되었다. 이때가 바로 기원

   전 1384년 경이며, 이 시기를 경계로 하여 이전을 상(商)의 전기(前期)라 하고, 이후를 상(商)의 후기(後

   期) 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은(殷)으로 천도한 이후로는 다시 도읍을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상나라

   를 은(殷)나라로 부르게 되었다. 은(殷)이라고 하는 곳은 농업에 적합한 땅이었다. 이런관계로 상(商)의

   후기의 경제생활이 풍족해짐에 따라 정치의 기반도 공고해 졌으며, 문화의 발전도 전기(前期)보다 빨랐

   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상(商)의 기록과 사료(史料)등은 모두 이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상나라 보

   다 은나라가 우리들에게 더 잘 알려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이 편에서도 천도를 해야 하

   는 취지를 밝혀 이주를 꺼리고 있는 백성들을 달래고 있다.  

 

 [1] 반경이 은(殷) 땅으로 천도하려 하다

  

   盤庚作(반경작) 惟涉河(유섭하)

   반경은 일어나, 백성들을 데리고 황하를 건너,

   以民遷(이민천) 

   백성들과 함께 천도하려고 하였다.

   乃話民之弗率(내화민지불솔) 誕告用亶(탄고용단)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설복하여, 정성으로 타일렀다.

   其有衆咸造(기유중함조) 

   이에 백성들이 모두 모여 들었는데,

   勿褻在王庭(물설재왕정) 

   임금의 궁정에서는 버릇없이 구는 사람은 없었다.

   盤庚乃登進厥民(반경내등진궐민) (왈)

   반경은 이윽고 이 백성들을 앞으로 다가오게 하고, 말씀하셨다. 

   明聽朕言(명청짐언) 無荒失朕命(무황실짐명)

   "나의 말을 분명히 듣고, 나의 명을 저버리지 말라.

   嗚呼(오호) 古我前后(고아전후)

   아아, 옛날 우리의 선왕들은,

   罔不惟民之承(망불유민지승) 

   백성들을 보살피고 보호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保后胥慼(보후서척) 

   백성들도 임금의 정치에 안심하고 명령을 따랐으니,

   鮮以不浮于天時(선이불부우천시) 

   하늘의 때에 맞추어 일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殷降大虐(은강대학) 先王不懷(선왕불회)

   하늘이 은나라에 내린 큰 재난에 대해, 선왕들을 불쌍히 여겼으며, 

   厥攸作(궐유작) 視民利(시민리)

   그리하여 그분들은 일어나, 백성들의 이익이 있는 곳을 살펴서,

   用遷(용천) 

   도읍을 옮기었소.

   汝曷不念我古后之聞(여갈불념아고후지문) 

   그대들은 어찌 이러한 우리 옛 왕들이

   백성들을 위문한 일을 생각해 보지 않는가?

   承汝俾汝(승여비여) 

   나도 그대들을 보호하고 그대들의 이익을 도모하여,

   惟喜康共(유희강공) 

   그대들과 더불어 즐거움과 편안함을 누리려 하는 것이며, 

   非汝有咎(비여유구) 比于罰(비우벌)

   그대들에게 잘못이 있어서, 벌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予若籲懷茲新邑(여야유회자신읍) 

   내가 이렇듯이 새로운 도읍지로 가자고 호소하는 것은,

   亦惟汝故(역유여고) 

   역시 그대들을 위해서이니,

   以丕從厥志(이비종궐지) 

   이리하여 나 역시 선왕들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반경이 천도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을 불러서 간곡히 당부하고있는 대목이다. 반경은 새로운 단안을 내

    리지 않을수 없는 처지였다. 당시에 매년 일어나는 수재(水災)로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하여, 이에 황하

    건너 북쪽으로 백성들과 더불어 옮겨갈 계획을 세운 것이다. 옛임금들이 수차에 걸쳐서 천도를 한것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백성들의 이익을 위한 조치였던 것이며, 자신 또한 선왕들의 그러한 뜻을 받들어 천

    도를 하고자하는 것임을 간곡하게 밝히고있다. 상(商)나라의 백성들은 농업이 주된 생산활동이었는데,

    주요 농산물은 찰기장인 서(黍)와 보리인 맥(麥),그 다음이 메기장인 직(稷)과 벼인 도(稻)였다. 경작은

    전부 사람의 힘에 의지하였으며, 농기구는 쟁기와 보습이 있었다. 그것들은 대개 나무로 만들었으며 혹

    은 돌로 만든 것도 있었는데, 아마도 구리로 만든 것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농업 제도는 정전제조(井

    田制度)인데, 밭을 아홉구역으로 나누고 한 가족에 70묘(畝)를 맡기되 그 정전의 중앙인 70묘(畝)는 공

    전(公田)이라고 하여 8집에서 함께 공동으로 가꾸어 그수확을 나라에 바치는 제도였다. 그리고 백성들

    은 대다수가 혈거생활(穴居生活)인 ‘굴살이’를 하였고 왕실에는 땅위에 세운 궁실과 종묘가 있었다. 그

    러나 아직기와나 벽돌이없던 시대였으므로 벽은 판자로,지붕은 판자에 띠를씌워서 이루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