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명보살(馬鳴菩薩) 불소행찬(佛所行讚) or 불본행경(佛本行經)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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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IT_K0980_T_005 URL복사 통합뷰어 029_0674_a_01L불소행찬 제5권-일명 불본행경- 029_0674_a_01L佛所行讚卷第五 亦云佛本行經 통합뷰어 마명 보살 지음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029_0674_a_02L馬鳴菩薩造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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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소행찬 제5권
-일명 불본행경-
佛所行讚卷第五
亦云佛本行經
마명 보살 지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馬鳴菩薩造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23. 신력주수품(神力住壽品)
神力住壽品第二十三
그때 비사리(鞞舍離)의
모든 리차(離車) 장자들은
세존께서 그 나라에 들어오시어
암마라원(菴摩羅圓)에 계신다는 말 들었네.
爾時鞞舍離,
諸離車長者,
聞世尊入國,
住菴摩羅園。
어떤 이는 흰 수레를 타고
흰 일산에 흰 옷을 입고
어떤 이는 파랑ㆍ빨강ㆍ노랑 빛깔로서
그들의 차림새는 제각기 달랐네.
有乘素車輿,
素蓋素衣服,
靑赤黃綠色,
其衆各異儀。
따르는 무리들은 앞뒤로 에워싸고
서로 길을 다투어 나아갔네.
하늘관[天冠] 쓰고 곤화복(袞花服) 입고
보배 장신구로 장엄하였네.
導從翼前後,
爭塗競路前,
天冠衮花服,
寶飾以莊嚴。
위엄스런 모양은 밝고 또 빛나
그 동산 수풀을 더욱더 빛냈네.
그들은 다섯 가지 위의(威儀)를 버리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나아갈 때
威容盛明耀,
增暉彼園林,
除捨五威儀,
下車而步進。
거만한 마음 버리고 공손한 모습으로
부처님 발에 머리 대어 예배하고
대중들은 부처님을 에워쌌는데
마치 해를 겹으로 싸고 있는 광명 같았네.
息慢而形恭,
頂禮於佛足,
大衆圍遶佛,
如日重輪光。
리차 중에 사자(師子)라는 이 있었으니
그는 모든 리차들 중 우두머리로
덕 있는 얼굴 사자와 같았는데
그 위치는 사자의 신하였지만
離車名師子,
爲諸離車長,
德貌如師子,
位居師子臣。
사자는 교만을 멸해 없애고
석가족[釋族] 사자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대들은 큰 위엄과 덕망이 있고
이름난 종족에 아름다운 풍채 있으나
滅除師子慢,
受誨釋師子,
汝等大威德,
名族美色容。
능히 이 세상의 교만 버리고
법을 받음으로써 밝음을 더하였네.
재물과 색(色)과 향과 꽃의 장식도
계율[戒]의 장엄만은 못하며
能除世憍慢,
受法以增明,
財色香花飾,
不如戒莊嚴。
나라의 풍족하고 안락함만이
오직 그대들의 영화이니라.
몸을 영화롭게 하고 백성 편안하게 하는 것
그 마음 잘 다루는 데 있나니
國土豐安樂,
唯以汝等榮,
榮身而安民,
在於調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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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좋아하는 마음 거기 더하여
그 덕을 갈수록 더욱 높게 하여라.
땅이 척박하고 사람 마음 더러우면
능히 모든 어진 이를 모을 수 없네.
加以樂法情,
令德轉崇高,
非薄土群鄙,
而能集衆賢。
마땅히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하여
만 백성을 어루만져 길러야 하리.
밝고 바름으로써 대중을 인도하기
마치 소왕[牛王]이 나루를 건너듯 해야 한다네.
當日新其德,
撫養於萬民,
導衆以明正,
如牛王涉津。
만일 사람이 능히 스스로
이 세상과 뒷세상을 생각하거든
오직 바른 계(戒)를 닦아야
행복과 이익 있어 두 세상 편안하고
若人能自念,
今世及後世,
唯當脩正戒,
福利二世安。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훌륭하다는 명성 널리 퍼지고
어진 사람 벗이 되기 좋아하여
덕의 흐름 영원히 다함 없으리.
爲衆所敬重,
名稱普流聞,
仁者樂爲友,
德流永無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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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수풀과 보배 구슬과 돌은
모두 다 땅을 의지해 생기나니
계(戒)의 덕도 또한 땅과 같아서
온갖 착함이 그것을 말미암네.
山林寶玉石,
皆依地而生,
戒德亦如地,
衆善之所由。
날개 없이 허공을 날려 하고
강 건널 때 좋은 배 없는 것처럼
사람으로서 계율의 덕 없으면
괴로움을 벗어나기 실로 어려우리.
無翅欲騰虛,
渡河無良舟,
人而無戒德,
濟苦爲實難。
나무에 아름다운 꽃과 열매 있어도
가시 있으면 휘어잡기 어렵듯이
많이 알고 아름다운 얼굴의 힘 있으면서
계율 깨뜨리는 사람 또한 그러하니라.
如樹美花果,
鍼刺難可攀,
多聞美色力,
破戒者亦然。
훌륭한 집에 단정히 앉아
왕의 마음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깨끗한 계율의 공덕 갖추어
큰 선인(仙人)을 따라 나아가라.
端坐勝堂閣,
王心自莊嚴,
淨戒功德具,
隨大仙而征。
털[毛羽]이나 가죽으로 된 옷 물들여 입고
소라 상투에 수염과 머리 깎더라도
계율의 덕성을 닦지 않으면
결국엔 온갖 고통 겪게 되리라.
染服衣毛羽,
螺髻剃鬚髮,
不脩於戒德,
方涉衆苦難。
밤낮으로 세 번씩 목욕하고
불을 받들어 고행 닦으며
더러운 들짐승에게 몸뚱이 주고
물이나 불에 빠지거나 절벽에 몸 던지기도 하며
日夜三沐浴,
奉火修苦行,
遺身穢野獸,
赴水火投巖。
떨어진 과일 먹고 풀뿌리를 먹거나
공기를 들이키고 항하 물을 마시기도 하며
기운을 마시고 곡기를 끊더라도
바른 계율(戒律)을 멀리 여의면
食菓餌草根,
吸風飮恒水,
服氣以絕糧,
遠離於正戒。
그것은 짐승의 도(道) 배우는 것일 뿐
바른 법의 그릇이 될 수 없나니
계율 깨뜨려 비방을 부르는 것
어진 사람으로서 친할 바 아니니라.
習斯禽獸道,
非爲正法器,
毀戒招誹謗,
仁者所不親。
마음에는 언제나 두려움 있고
나쁜 이름은 그림자처럼 따라
현세에서 아무런 이익 없나니
뒷세상 어떻게 편함을 얻으리.
心常懷恐怖,
惡名如影隨,
現世無利益,
後世豈獲安。
그러므로 마땅히 지혜로운 사람은
청정한 계율을 닦아야 하나니
나고 죽음의 넓은 들에서
계율은 좋은 길잡이가 되느니라.
是故智慧士,
當修於淨戒,
於生死曠野,
戒爲善導師。
계율 지님은 스스로의 힘에 있나니
그것은 곧 어려운 것 아니요
깨끗한 계율 사다리 되어
사람을 하늘에 오르게 한다네.
持戒由自力,
此則不爲難,
淨戒爲梯隥,
令人上昇天。
깨끗한 계율 이룩해 세운 이
그것은 번뇌가 적어지게 되지만
모든 허물은 그 마음 깨뜨리고
좋은 공덕을 상실하게 되느니라.
建立淨戒者,
斯由煩惱微,
諸過壞其心,
喪失善功德。
무엇보다 먼저 내 것이라 함을 여의어라.
내 것이라 하는 것 모든 착함 덮나니
마치 재가 불을 덮고 있으면
발로 밟아야 뜨거움 깨닫는 것 같다네.
先當離我所,
我所覆諸善,
猶灰覆火上,
足蹈而覺燒。
교만이 그 마음 덮어버림은
마치 해가 두터운 구름에 가린 것 같다.
게으름은 부끄러워하는 마음 없애고
근심과 슬픔은 강한 의지 약하게 한다네.
憍慢覆其心,
如日隱重雲,
慢怠滅慚愧,
憂悲弱强志。
늙음과 질병은 건강한 몸 부수고
나라는 거만은 모든 착함 멸하며
모든 하늘의 아수라(阿修羅)들은
탐하고 미워하여 싸움을 일으킨다네.
老病壞壯容,
我慢滅諸善,
諸天阿修羅,
貪嫉興諍訟。
모든 공덕을 다 잃어버림은
나[我]라는 거만을 품기 때문이네.
‘나는 뛰어난 가운데서 뛰어나고
내 덕은 뛰어난 사람과 동등하며
喪失諸功德,
悉由我慢懷,
我於勝中勝,
我德勝者同。
나는 뛰어난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하면
이는 곧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색(色)과 종족 모두 덧없는 것이어서
동요하여 잠깐도 쉬지 않으며
我於勝小劣,
斯則爲愚夫,
色族悉無常,
動搖不暫停。
마침내 없어지는 법이 되고 말지니
어찌하여 교만 부리랴.
탐욕이란 큰 근심거리이니
거짓으로 친한 체하나 슬그머니 원수되네.
終爲磨滅法,
何用憍慢爲,
貪欲爲巨患,
詐親而密怨。
사나운 불은 그 안에서 일어나나니
탐욕의 불도 또한 그러하여
탐욕의 불길이 왕성하게 타오르면
이 세간의 불보다 더욱 심하리.
猛火從內發,
貪火亦復然,
貪欲之熾燃,
甚於世界火。
왕성한 불길은 물로 끌 수 있지만
탐욕과 애욕만은 녹일 수 없네.
사나운 불길이 넓은 들판 태울 때
풀은 다 타도 다시 살아나지만
火盛水能滅,
貪愛難可消,
猛火焚曠野,
草盡還復生。
탐욕의 불길이 마음 태우면
바른 법은 다시 나기 어려우리.
탐욕은 세상 쾌락 구(求)하지만
그 쾌락은 깨끗하지 못한 업만 더하네.
貪欲火焚心,
正法生則難,
貪欲求世樂,
樂增不淨業。
나쁜 업은 나쁜 길에 떨어지게 하는데
원수 치고 탐욕보다 더한 것 없네.
탐욕은 곧 애욕을 내고
애욕은 곧 모든 탐욕 익히며
惡業墮惡道,
怨無過貪欲,
貪則生於愛,
愛則習諸欲。
탐욕만 익히면 온갖 고통 부르나니
근본 악은 탐욕보다 더한 것 없네.
탐욕은 곧 큰 병이 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의 약 쓰지 않고
習欲招衆苦,
元惡無過貪,
貪則爲大病,
智藥愚夫止。
삿된 깨달음 올바른 생각 못해
탐욕만 자꾸자꾸 더하게 하느니라.
덧없고 괴로우며 깨끗하지 못함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란 것도 없네.
邪覺不正思,
能令貪欲增,
無常苦不淨,
無我無我所。
이렇게 지혜롭고 진실한 관찰이라야
능히 저 삿된 탐욕 없애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경계에 대해
진실한 관찰을 닦아야 하나니
智慧眞實觀,
能滅彼邪貪,
是故於境界,
當修眞實觀。
진실한 관찰이 생긴 뒤에는
탐욕에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덕을 보거든 탐욕을 내고
허물을 보거든 성냄을 일으켜라.
眞實觀已生,
貪欲得解脫,
見德生貪欲,
見過起瞋恚。
그리하여 덕과 허물 한꺼번에 잊으면
탐욕과 성냄을 없앨 수 있으리라.
성냄은 본래 얼굴 변하게 하여
능히 단정한 빛을 무너뜨리네.
德過二俱忘,
貪恚得除滅,
瞋恚改素容,
能壞端正色。
성냄은 밝은 눈을 가려서
법의 이치 듣고픈 맘 해친다네.
친하고 사랑하는 의리를 끊고
세상의 천대와 업신여김 받나니
瞋恚翳明目,
害法義欲聞,
斷絕親愛義,
爲世所輕賤。
그러므로 마땅히 성냄을 버려
분해하는 마음을 따르지 말라.
미치고 분한 마음 잘 제어하는 것
그것을 훌륭한 제어자라 하나니
是故當捨恚,
勿隨於瞋心,
能制狂恚心,
是名善御者。
세상에서 일컫는 훌륭한 말 조련사
그것은 바로 그 말고삐잡이라네.
마음대로 성내 스스로 억제 못하면
근심과 후회의 불 이내 따라 오르리.
世稱善調駟,
是爲攝繩容,
縱恚不自禁,
憂悔火隨燒。
만일 사람이 성냄을 일으키면
먼저 스스로 자기 마음부터 태우고
그 다음에는 남에게 가해
혹은 타거나 혹은 타지 않거나
若人起瞋恚,
先自燒其心,
然後加於彼,
或燒或不燒。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의 고통
중생을 못 견디게 핍박하거늘
거기에 다시 성냄의 해를 더해
많은 원한에 다시 원한 더하네.
生老病死苦,
逼迫於衆生,
復加於恚害,
多怨復增怨。
세상의 온갖 고통스런 핍박 보거든
마땅히 자비스런 마음을 일으키라.
중생이 번뇌를 일으키는 것
많고 적음의 한량없는 차이 있다네.”
見世衆苦迫,
應起慈悲心,
衆生起煩惱,
增微無量差。
여래께서 좋은 방편으로써
병에 따라 간략히 말씀하시니
비유하면 세상의 훌륭한 의사가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 같네.
如來善方便,
隨病而略說,
譬如世良醫,
隨病而投藥。
그때 모든 리차(離車)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곧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기뻐하면서 공손히 받들되
爾時諸離車,
聞佛所說法,
卽起禮佛足,
歡喜而頂受。
부처님과 그 대중들에게
내일 소박한 음식일망정 공양 받으시라 청했네.
부처님께서 모든 리차들에게
이미 암마라의 초청 받았노라 말씀하시자
請佛及大衆,
明日設薄供,
佛告諸離車,
菴摩羅已請。
어찌 우리 이익 빼앗느냐며
모든 리차들은 애석하게 생각했네.
그러다가 부처님의 평등한 마음 알고
곧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켰네.
離車懷感愧,
彼何奪我利,
知佛心平等,
而起隨喜心。
이에 여래께서는 마땅함을 잘 따라
위로하여 그 마음 기쁘게 하고
타이르고 설득하여 돌려보내니
마치 뱀이 엄한 주문(呪文) 입은 것 같았네.
如來善隨宜,
安慰令心悅,
伏化純熟歸,
如蛇被嚴呪。
밤이 지나고 먼동이 틀 무렵
부처님께서는 많은 대중 거느리시고
암마라(菴摩羅)의 집으로 나아가
그의 공양을 받아 마치신 다음
夜過明相生,
佛與大衆俱,
詣菴摩羅舍,
受彼供養畢。
다시 비뉴(毘紐) 마을로 가시어
거기에서 여름 안거(安居) 지내셨다.
석 달 안거를 마치신 뒤에
다시 비사리(鞞舍離)로 돌아오셨네.
往詣毘紐村,
於彼夏安居,
三月安居竟,
復還鞞舍離。
미후못[獼猴池] 가에 계시면서
고요히 숲 속에 앉아
큰 광명을 두루 놓으시어
악마 파순(波旬)을 감동시켰네.
住獼猴池側,
坐於林樹閒,
普放大光明,
以感魔波旬。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합장하고 권청(勸請)하여 말하였네.
“옛날 니련선(尼連禪) 강가에서
이미 진실한 서원을 세우셨을 때
來詣於佛所,
合掌勸請言,
昔尼連禪側,
已發眞實要。
‘나는 해야 할 일을 마친 뒤에는
마땅히 열반(涅槃)에 들리라’고 하셨다.
이제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치셨니
본래 먹었던 마음대로 실천해야 하리.”
我所作事畢,
當入於涅槃,
今所作已作,
當遂於本心。
그때 부처님께서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멸도(滅度)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지금부터 앞으로 석 달이 차면
분명히 열반에 들어가리라.”
時佛告波旬,
滅度時不遠,
卻後三月滿,
當入於涅槃。
그때 그 악마는 여래께서 이미
멸도할 시기가 되었음을 아시고
그 마음 이미 만족스러워
기뻐하며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네.
時魔知如來,
滅度已有期,
情願旣已滿,
歡喜還天宮。
여래께서는 나무 밑에 앉으시어
삼마제(三摩提)를 바르게 받아
업의 과보로 받은 수명[壽]을 놓아 버리고
신력(神力)으로 목숨[命]을 늘이셨네.
如來坐樹下,
正受三摩提,
放捨業報壽,
神力住命存。
여래께서 수명을 버리시자
대지(大地)는 크게 진동하였고
시방(十方)의 모든 허공 경계에서는
온통 큰불이 타고 있었네.
以如來捨壽,
大地普震動,
十方虛空境,
周遍大火然。
수미산 꼭대기는 무너져 내리고
하늘에서는 조약돌이 날리며
모진 바람 사방에서 세차게 불어
나무들은 모두 꺾이고 부러졌다네.
須彌頂崩頹,
天雨飛礫石,
狂風四激起,
樹木悉摧折。
하늘 음악은 구슬픈 소리로 연주되고
하늘 사람들은 기쁨을 잊고 있었네.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모든 대중들에게 두루 말씀하셨네.
天樂發哀聲,
天人心忘歡,
佛從三昧起,
普告諸衆生。
“나는 이미 수명[壽]을 버렸으므로
삼매의 힘으로 몸을 보존하지만
몸은 이미 썩은 수레와 같아
다시는 가고 올 인(因)이 없노라.
이미 세 가지 유(有)을 벗어났으니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것 같구나.”
我今已捨壽,
三昧力存身,
身如朽敗車,
無復往來因,
已脫於三有,
如鳥破卵生。
24. 리차사별품(離車辭別品)
佛所行讚離車辭別品第二十四
존자 아난다(阿難陀)는
천지가 크게 진동하는 것 보고
마음으로 놀라 몸의 털이 곤두서
“무슨 인연이냐”고 부처님께 여쭈었네.
尊者阿難陁,
見地普大動,
心驚身毛豎,
問佛何因緣。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네.
“내 수명[壽]이 석 달 동안 머물 것이며
다른 목숨[命]과 행(行)은 다 버렸다.
그러므로 땅이 크게 흔들렸느니라.”
佛告阿難陁,
我住三月壽,
餘命行悉捨,
是故地大動。
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슬픈 마음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마치 매우 힘센 저 코끼리가
전단(栴檀)나무를 잡아 흔들 때
阿難聞佛教,
悲感淚交流,
猶如大力象,
搖彼栴檀樹。
나무는 흔들리고 나무결은 졸려
향기로운 즙(汁)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네.
큰 스승님을 가까이하고 존경하며
은혜 깊고 탐욕 여의지 못함은
擾動理迫迮,
香汁淚流下,
親重大師尊,
恩深未離欲。
오직 이 네 가지 일로 말미암아
슬픔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네.
“나는 이제 세존께서
열반에 듣기로 결정했단 말 듣고
惟此四事故,
悲苦不自勝,
今我聞世尊,
涅槃決定教。
온몸의 맥이 모두 풀려
방향을 잃고 평소의 목소리는 변하며
들었던 법은 모조리 잊고
어지럽고 놀라워 천지를 잃은 듯하네.
擧體悉萎消,
迷方失常音,
所聞法悉忘,
荒悸亡天地。
괴상하여라, 구세주(救世主)시여,
멸도(滅度)하심이 어찌 그리 빠르신가.
찬물을 만나 죽을 것 같았을 때
불을 만났으나 불길이 이내 꺼져 버린 듯
怪哉救世主,
滅度一何駃,
遭寒水垂死,
遇火忽復滅。
모든 번뇌의 넓은 들에서
방위를 잃고 헤맬 때
문득 훌륭한 길잡이 만났으나
채 건너지 못하고 이내 다시 잃은 듯
於煩惱曠野,
迷亂失其方,
忽遇善導師,
未度忽復失。
마치 사람이 넓은 사막 걸어갈 때
덥고 목마르나 물을 구하지 못하다가
홀연히 맑고 시원한 우물 만났지만
달려가자 그 물 말라버린 것 같네.
如人涉長漠,
熱渴久乏水,
忽遇淸涼池,
奔趣悉枯竭。
검푸른 눈썹 조용한 눈동자는
삼세(三世)의 일을 분명하게 보았고
지혜의 광명으로 그윽한 어둠 비출 때
어둠은 얼마나 빨리 없어졌던가.
紺睫瞪睛目,
明鑑於三世,
智慧照幽冥,
昏冥一何速。
이것은 마치 메마른 땅의 싹이
구름 끼자 비오기를 바랐지만
사나운 바람에 구름 걷혀서
하염없이 빈 밭만 지키는 것 같아라.
猶如旱地苗,
雲興仰希雨,
暴風雲速滅,
望絕守空田。
지혜 없는 큰 어둠 속에서
중생들 모두 방향을 잃었을 때
여래는 지혜의 등불을 밝혔는데
갑자기 꺼지면 헤어날 길 없으리.”
無智大闇冥,
群生悉迷方,
如來燃慧燈,
忽滅莫由出。
부처님께서 아난의 그 마음 아프고
슬프고 간절한 하소연 듣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시면서
그를 위해 진실한 법을 말씀하셨네.
佛聞阿難說,
酸訴情悲切,
軟語安慰言,
爲說眞實法。
“만일 사람이 그 자성(自性)을 알면
근심과 슬픔 속에 있지 않을 것이네.
일체의 함[爲]이 있는 모든 것
다 닳아서 없어지는 법이니라.
若人知自性,
不應處憂悲,
一切諸有爲,
悉皆磨滅法。
나는 이미 너에게 말하였나니
만남의 속성은 이별하는 것이요
은혜와 애정의 이치는 항상하지 않나니
슬퍼하고 그리는 마음 버려야 한다네.
我已爲汝說,
合會性別離,
恩愛理不常,
當捨悲戀心。
함[爲]이 있어서 유동하는 법
나고 멸하여 자재(自在)하지 않나니
비록 영원히 존재하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이치가 없느니라.
有爲流動法,
生滅不自在,
欲令長存者,
終無有是處。
만일 함이 있는 법 영원히 존재하여
옮겨져 변하는 일 다시 없다면
그것은 곧 해탈이니
무엇을 다시 구한단 말인가.
有爲若常存,
無有遷變者,
此則爲解脫,
於何而更求。
너희들과 또 다른 중생들
나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너희들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나는 이미 말하여 마쳤노라.
汝及餘衆生,
今於我何求,
汝等所應得,
我以爲說竟。
나의 이 몸을 무엇에 쓰려는가.
묘한 법신(法身)은 영원히 존재하며
나는 나의 고요함[寂靜]에 머무나니
오직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느니라.
何用我此身,
妙法身長存,
我住我寂靜,
所要唯在此。
그러나 나는 중생들에 대해서
일찍이 게을리 한 적 없었나니
마땅히 싫어하고 떠날 생각을 닦아
제 자신의 섬[洲]에 잘 머물러야 하나니
然我於衆生,
未曾有所惓,
當修厭離想,
善住於自洲。
마땅히 알라. 제 자신의 섬이란
오롯하고 부지런한 방편으로써
혼자 고요하게 한가히 살기를 닦고
다른 것 믿어 따르지 않는 것이네.
當知自洲者,
專精勤方便,
獨靜脩閑居,
不從於他信。
마땅히 알라. 제 자신의 섬이란
결정코 밝은 지혜의 등불로써
능히 어리석음의 어둠 없애고
네 가지 경계를 두루 관찰해
當知法洲者,
決定明慧燈,
能滅除癡闇,
觀察四境界。
훌륭한 법을 체득하여
나와 내 것 여의는 것이니라.
뼈 줄기에 가죽과 살 바르고
피로 물대고 힘줄로 얽었나니
逮得於勝法,
離我離我所,
骨竿皮肉塗,
血澆以筋纏。
자세히 관찰하면 그 모두 더러운 것
어떻게 이 몸을 좋아할 수 있으리.
모든 받음[受]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
마치 물 위의 거품 같다네.
諦觀悉不淨,
云何樂此身,
諸受從緣生,
猶如水上泡。
나고 멸하며 덧없고 괴롭나니
즐겁다는 생각 멀리 여의어라.
심식(心識)은 나고 머물고 멸하여
새록새록 변하여 잠시도 쉬지 않네.
生滅無常苦,
遠離於樂想,
心識生住滅,
新新不蹔停。
적멸(寂滅)을 깊이 생각해 보면
항상하다는 생각은 영원히 어긋나리.
갖가지 행(行)은 인연으로 일어나
모였다 흩어졌다 항상 함께하지 않건만
思惟於寂滅,
常想永已乖,
衆行因緣起,
聚散不常俱。
어리석은 사람은 나라는 생각 내고
지혜로운 사람은 내 것이 없다 말하네.
이 네 가지 경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관찰하라.
愚癡生我想,
慧者無我所,
於此四境界,
思惟正觀察。
이것은 곧 일승(一乘)의 도(道)이니
온갖 괴로움을 모두 멸하느니라.
만일 능히 여기에 머물러
진실하고 바르게 관찰한다면
此則一乘道,
衆苦悉皆滅,
若能住於此,
眞實正觀者。
부처의 몸은 있고 없고 하지만
이 법은 영원하여 다함이 없네.”
부처님께서 이 묘한 법 말씀하시어
아난을 위로하실 때
佛身之存亡,
此法常無盡,
佛說此妙法,
安慰阿難時。
모든 리차들은 이 말을 듣고
황송하고 두려워해 모두 모였네.
그들은 세속의 모습 모두 버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려왔네.
諸離車聞之,
惶怖咸來集,
悉捨俗威儀,
驅馳至佛所。
예배 마치고 한쪽에 앉아
묻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 이미 아시고
미리 방편으로 말씀하셨네.
禮畢一面坐,
欲問不能宣,
佛已知其心,
逆爲方便說。
통합뷰어
“내 이제 너희들을 관찰해보니
마음에 이상한 생각 드는구나.
세속에 인연한 일 모두 버리고
오직 법을 생각함을 마음에 새겨라.
我今觀察汝,
心有異常想,
放捨俗緣務,
唯念法爲情。
너희들은 지금 나에 대하여
묻고 싶고 알고 싶은 것 있어도
내가 목숨을 마칠 즈음에
부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汝今欲從我,
所聞所知者,
於我存亡際,
愼莫生憂悲。
항상함이 없는 함이 있는[有爲] 성질은
움직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견고하지도 않고 이익도 없어
오래 머무르는 모양이 없느니라.
無常有爲性,
躁動變易法,
不堅非利益,
無有久住相。
옛날의 모든 선왕(仙王)
바사타(婆私吒) 같은 선인과
만타(曼陀) 전륜성왕 같은 사람들
그들 무리[比]도 또한 적지 않았다네.
古昔諸仙王,
婆私咤仙等,
曼陁轉輪王,
其比亦衆多。
그러한 모든 훌륭한 조상들
그 힘은 자재천(自在天)과 같았지만
그들도 모두 이미 없어져
누구 하나 지금은 산 사람 없다네.
如是諸先勝,
力如自在天,
悉已久磨滅,
無一存於今。
해와 달과 제석천[釋帝繹]
그 수도 또한 매우 많았지만
그 또한 모두 지금은 없어져
영원히 남아 있는 것 하나도 없느니라.
日月天帝釋,
其數亦甚衆,
悉皆歸磨滅,
無有長存者。
과거 세상의 모든 부처들
그 수는 항하(恒河)의 모래 같아서
지혜로 온 세간 비추었으나
모두 다 등불처럼 멸했느니라.
過去世諸佛,
數如恒邊沙,
智慧照世閒,
悉皆如燈滅。
미래 세상의 모든 부처들
장차 멸할 것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제 어찌 나 홀로 다르겠는가.
마땅히 열반에 들어야 하리.
未來世諸佛,
將滅亦復然,
我今豈獨異,
當入於涅槃。
저기 제도해야 할 이 있으니
이제 마땅히 앞으로 나아가리.
비사리(毘舍離)는 쾌락한 곳이라
너희들은 우선 스스로 안온하라.
彼有應度者,
今宜進前行,
毘舍離快樂,
汝等且自安。
세간은 의지하고 믿을 것 없고
삼계(三界)도 족히 즐겨할 것 없나니
근심하고 슬퍼하는 괴로움 그치고
탐욕을 여읠 마음 내어야 하느니라.”
世閒無依怙,
三界不足歡,
當止憂悲苦,
而生離欲心。
결단코 끊어 영원히 이별한 뒤에
북방으로 나아가 노니실 때
느릿느릿 먼 길을 걸어가심이
마치 해가 서산에 기우는 것 같았네.
決斷長別已,
而遊於北方,
靡靡涉長路,
如日傍西山。
그때 모든 리차(離車)들은
슬피 탄식하고 길을 따라 돌아오며
하늘을 우러러 슬퍼하고 탄식했네.
“아아, 얼마나 괴상한 일인가.
爾時諸離車,
悲吟逐路隨,
仰天而哀歎,
嗚呼何怪哉。
몸은 마치 진금산(眞金山) 같고
온갖 형상 장엄을 갖추었거늘
장차 머지않아 무너지려 하는구나.
덧없음은 어이 그리 자비도 없는가.
形如眞金山,
衆相具莊嚴,
不久將崩壞,
無常何無慈。
나고 죽음에 오래 목말랐는데
여래께서는 지혜의 어머니셨건만
지금 우리들을 갑자기 버리시니
구원 없는 괴로움을 어떻게 하리.
生死久虛渴,
如來智慧母,
而今頓放捨,
無救苦奈何。
중생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살면서
밝은 지혜 빌려서 길을 갔거늘
어찌하여 그 지혜의 해는
갑자기 그 빛을 감추려 하는가.
衆生久闇冥,
假明慧以行,
如何智慧日,
忽然而潛光。
무지(無智)는 빠른 흐름이 되어
모든 중생을 띄워서 흘려 보냈네.
어찌하여 이 법의 다리[橋梁]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끊어지는가.
無智爲迅流,
漂浪諸衆生,
如何法橋梁,
一旦忽然摧。
자비하신 큰 의왕(醫王)은
위없는 지혜의 좋은 약으로
중생의 고통을 치료해 주시더니
어찌하여 갑자기 멀리 가는가.
慈悲大醫王,
無上智良藥,
療治衆生苦,
如何忽遠逝。
자비의 묘한 하늘 깃대는
지혜로 장엄하고
금강심(金剛心)으로 얽어매어
세간 사람들 보고 싫증내지 않았건만
慈悲妙天幢,
智慧以莊嚴,
金剛心絞絡,
世閒觀無厭。
사당[祠祀]의 장엄하고 훌륭한 깃대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꺾여지며
중생은 얼마나 복이 엷기에
나고 죽음의 흐름에 윤회하는가.
祠祀嚴勝幢,
云何一旦崩,
衆生何薄福,
輪迴生死流。
해탈의 문은 갑자기 닫혀버려
길이 괴로워하며 벗어날 기약 없네.
여래께서는 위로하고 편안하게 하시더니
정(情)을 끊고 영원히 하직하시네.”
解脫門忽閉,
長苦無出期,
如來善安慰,
割情而長辭。
마음을 억제하여 슬픔과 그리움을 참음이
시든 가니꽃[迦尼花] 같았네.
배회하고 또 느릿느릿 걸으면서
슬퍼하고 원망하며 길을 따라 돌아가니
마치 그 어버이 잃은 사람이
장사 치루고 이별하고 돌아옴 같았네.
制心忍悲戀,
如萎迦尼花,
俳佪而遲遲,
悵怏隨路行,
如人喪其親,
葬畢長訣還。
25. 열반품(涅槃品)
佛所行讚 涅槃品 第二十五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곳으로 떠나시자
비사리(鞞舍離)는 텅 비고 쓸쓸하여
마치 밤에 어두운 구름이 끼어
별과 달이 그 광명 잃은 듯했네.
佛至涅槃處,
鞞舍離空虛,
猶如夜雲冥,
星月失光明。
온 나라 먼저는 안락했으나
이제는 갑자기 시들고 여윔이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 잃은
외로운 딸이 홀로 슬퍼하는 듯했네.
國土先安樂,
而今頓凋悴,
猶如喪慈父,
孤女常獨悲。
단정하지만 들어 아는 게 없고
총명하지만 덕이 없으며
마음으론 분별하나 말이 어눌하고
지혜는 밝으나 재주가 모자라며
如端正無聞,
聰明而薄德,
心辯而口吃,
明慧而乏才。
신통은 있으나 위의가 없고
자비심 있으나 거짓 많으며
고상하고 훌륭하나 힘이 없으며
위의는 있으나 법이 없는 것처럼
神通無威儀,
慈悲心虛僞,
高勝而無力,
威儀而無法。
비사리도 또한 그러해
본래는 영화로웠으나 지금은 피폐해
마치 저 가을 밭에 곡식의 싹이
물을 잃고 다 말라 시든 것 같았네.
鞞舍離亦然,
素榮而今悴,
猶如秋田苗,
失水悉枯萎。
혹은 불을 꺼 연기 없애고
혹은 음식을 대해도 먹는 것 잊으며
공(公)적이건 사적이건 하던 일 멈추고
모든 세속 인연을 닦지 않은 채
或斷火滅煙,
或對食忘飡,
悉廢公私業,
不修諸俗緣。
다만 부처만 염하며 깊은 은혜 감동해
모두 입 다물고 말못하고 있었네.
그때 그 사자(師子) 리차(離車)는
근심과 슬픔을 억지로 참으며
울먹 울먹 흐느끼는 소리 내어
못내 그리는 마음 나타내었네.
念佛感恩深,
默默各不言,
時師子離車,
强忍其憂悲,
垂泣發哀聲,
以表眷戀心。
“모든 삿된 길 부수어 깨뜨리고
올바른 법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온갖 외도들 이미 항복받으셨는데
끝내 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는가.
破壞諸邪徑,
顯示於正法,
已降諸外道,
遂往不復還。
세상은 세상을 떠나는 길 끊겼으매
덧없음은 곧 큰 병이 되었구나.
세존께서 이제 열반에 드신다면
의지할 곳도 없고 구제할 이도 없네.
世絕離世道,
無常爲大病,
世尊入大寂,
無依無有救。
가장 훌륭한 방편 가지신 높은 이
최후의 경지에서 광명 감추시니
우리들 이제 굳센 뜻 잃음이
마치 불 지필 섶나무 없어진 듯 하네.
方便最勝尊,
潛光究竟處,
我等失强志,
如火絕其薪。
세존께서는 세상의 그늘을 버리셨으니
중생들 못내 가여워라.
마치 사람이 신력(神力)을 잃은 듯
온 세상 함께 서러워하네.
世尊捨世蔭,
群生甚可悲,
如人失神力,
擧世共哀之。
더위를 피해 시원한 못에 들고
추위를 만나 불을 의지했다가
하루아침에 모두 텅 비고 나면
중생들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逃暑投涼池,
遭寒以憑火,
一旦悉廓然,
群生何所歸。
특별하고 훌륭한 법 밝게 통달한
그는 이 세상의 도주사(陶鑄師)였네.
이제 이 세간은 주인을 잃었으니
사람이 도(道)를 잃으면 곧 멸망하리라.
通達殊勝法,
爲世陶鑄師,
世閒失宰正,
人喪道則亡。
늙음ㆍ병듦ㆍ죽음이 자재(自在)로워서
도가 없어지고 도 아님이 통할 때
큰 괴로움의 버팀목이 무너졌으니
이 세간에 어느 누가 그와 짝하리.
老病死自在,
道喪非道通,
能壞大苦機,
世閒何有雙。
지극히 뜨거운 큰 불길 성하여도
큰 구름비로 그것을 끌 수 있지만
탐욕의 불길 맹렬히 타오름은
그 누가 그것을 꺼지게 하리.
猛熱極焰盛,
大雲雨令消,
貪欲火熾燃,
其誰能令滅。
튼튼하고 굳세어 능히 짐 져주던 분
이미 이 세상 무거운 짐 버렸으니
다시 어떤 지혜의 힘이 있어서
청하지 않은 벗이 될 수 있으랴.
堅固能擔者,
已捨世重任,
復何智慧力,
能爲不請友。
마치 저 사형(死刑)당할 죄인이
죽음에 다다라야 술에 취하듯
저 중생들의 미혹한 의식[識]은
오직 죽게 되셔야 생(生)을 받았네.
如彼臨刑囚,
爲死而醉酒,
衆生迷惑識,
唯爲死受生。
날카로운 톱으로 목재를 켜듯
덧없음은 이 세간을 끊어 해치건만
어리석음의 어둠은 깊은 물 되고
애정의 탐욕은 큰 물결 되며
利鋸以解材,
無常解世閒,
癡闇爲深水,
愛欲爲巨浪。
번뇌는 거기 뜨는 물거품 되고
삿된 견해는 마갈어(摩竭魚)가 되는데
오직 지혜의 배만 있어
능히 이 큰 바다 건너갔었네.
煩惱爲浮沫,
邪見摩竭魚,
唯有智慧舩,
能度斯大海。
온갖 병은 나무의 꽃이 되고
늙고 쇠함은 그 나무의 잔가지 되며
죽음은 그 나무의 깊은 뿌리가 되고
존재[有]의 업은 그 나무의 싹이 되는데
굳세고 날카로운 지혜의 칼만이
세 가지 존재의 나무 능히 끊어 버렸네.
衆病爲樹花,
衰老爲纖條,
死爲樹深根,
有業爲其芽,
智慧剛利刀,
能斷三有樹。
무명(無明)은 부시[鑽]와 부싯돌[燧]이 되고
탐욕은 타오르는 불꽃이 되며
5욕(欲)의 경계는 그 섶나무인데
지혜의 물로써 그것을 끄셨네.
無明爲鑽燧,
貪欲爲熾焰,
五欲境界薪,
滅之以智水。
특별하고 훌륭한 법 두루 갖추어
이미 어리석은 어둠을 깨뜨리고서
편안하고 고요한 바른 길 보아
갖가지 번뇌를 끝까지 다하셨네.
具足殊勝法,
已壞於癡冥,
見安隱正路,
究竟諸煩惱。
자비로 모든 중생 교화할 때
미운 이건 친한 이건 달리 하지 않으셨고
일체의 지혜를 통하여 아셨건만
이제는 그 모두 버리셨네.
慈悲化衆生,
怨親無異相,
一切智通達,
而今悉棄捨。
유연하고 아름답고 청정한 음성
방정한 몸에 가늘고 긴 팔
그러한 큰 신선도 끝이 있으니
그 어떤 사람인들 다함 없으리.
軟美淸淨音,
方身纖長臂,
大仙而有邊,
何人得無窮。
세월의 흐름 빠름을 깨달아
마땅히 힘써 바른 법을 구하되
마치 험한 길에서 물을 만났을 때
물 마시고 빨리 길을 나아가듯 하라.
當覺時遷速,
應勤求正法,
如嶮道遇水,
時飮速進路。
덧없음이란 매우 사납고 거슬려
두루 무너뜨림에 귀하고 천함 없나니
올바른 관찰을 마음에 두어
비록 자더라도 항상 깨어 있어라.”
非常甚暴逆,
普壞無貴賤,
正觀存於心,
雖眠亦常覺。
그때 저 리차 사자는
언제나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하며
나고 죽음을 싫어해 여의려고
사람 중의 사자(師子)를 찬탄하고 사모했네.
時離車師子,
常念佛智慧,
厭離於生死,
歎慕人師子。
세상 은혜와 사랑 마음에 두지 않고
탐욕을 떠난 덕을 깊이 받들어
가볍게 날뛰는 뜻 꺾어 항복받으며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마음 두었네.
不存世恩愛,
深崇離欲德,
折伏輕躁意,
拪心寂靜處。
부지런히 보시(布施)를 닦아 행하고
교만한 마음을 멀리 여의며
혼자서 한가롭게 살기를 좋아해
오직 참된 법만을 깊이 생각하였네.
勤脩行惠施,
遠離於憍慢,
樂獨修閑居,
思惟眞實法。
그때 일체 지혜 가지신 분
원만한 몸을 사자처럼 돌려
그 비사리를 바라보면서
하직하는 긴 노래 읊으셨네.
爾時一切智,
圓身師子顧,
瞻彼鞞舍離,
而說長辭偈。
“비사리에 노니는 것
이것은 나의 맨 마지막이네.
저 역사(力士)들이 사는 곳으로 가
마땅히 열반에 들어야 하리.”
是吾之最後,
遊此鞞舍離,
往力士生地,
當入於涅槃。
차례차례 계속해 노니시다가
저 포가성(蒲伽城)에 도착하시자
편안히 견고림(堅固林)에 머무시며
모든 비구들을 훈계하셨네.
漸次第遊行,
至彼蒲加城,
安住堅固林,
教誡諸比丘。
“나는 이제 한밤중이면
장차 열반에 들 것이다.
너희들은 법을 의지해야 하나니
그것은 곧 높고도 훌륭한 곳이니라.
吾今以中夜,
當入於涅槃,
汝等當依法,
是則尊勝處。
수다라(修多羅)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율의(律儀)를 따르지도 않으며
진실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
그것은 마땅히 받지 않아야 하리.
不入脩多羅,
亦不愼律儀,
眞實義相違,
則不應攝受。
그것은 법도 아니요 율(律)도 아니며
또한 내가 설법한 것도 아니며
그것은 곧 어두운 말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빨리 버리고
非法亦非律,
又非我所說,
是則爲闇說,
汝等應速捨。
분명한 설법을 받아 가져야 하니
그것은 곧 뒤바뀐 것도 아니요
그것은 곧 내가 말한 것이며
법답고 율다운 가르침이니라.
執受於明說,
是則非顚倒,
是則我所說,
如法如律教。
내 법과 율처럼 받아 지니면
그것은 곧 믿을 수 있지만
내 법과 율을 그르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믿을 수 없느니라.
如我法律受,
是則爲可信,
言我法律非,
是則不可信。
은밀한 이치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릇된 문자만 따르는 것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법이 아니며 망령된 말이니라.
不解微細義,
謬隨於文字,
是則爲愚夫,
非法而妄說。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주관 없이 어리석게 받는 것
마치 놋쇠와 금을 함께 벌여 놓고
세상 사람을 속이고 미혹함과 같느니라.
不別其眞僞,
無見而闇受,
猶鍮金共肆,
誑惑於世閒。
어리석은 사람은 얕은 지혜 익혀
진실한 이치는 알지 못한 채
비슷한 법을 받고서도
참된 법을 받았다 하네.
愚夫習淺智,
不解眞實義,
受於相似法,
而作眞法受。
그러므로 마땅히 이치 살펴서
참다운 법과 율을 관찰해야 하나니
마치 저 금(金)을 단련하는 사람이
달구고 두드려 순금을 취하듯 해야 하리라.
是故當審諦,
觀察眞法律,
猶如鍊金師,
燒打而取眞。
모든 경론(經論)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곧 지혜가 아니니
마땅히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하고
마땅히 봐야 할 것은 보지도 않는구나.
不知諸經論,
是則非黠慧,
不應說所應,
應作不應見。
마땅히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글귀의 이치대로 설하고 행해야 하나니
방법을 모르고 칼을 잡으면
도리어 그 손을 다치느니라.
當作平等受,
句義如說行,
執劍無方便,
則反傷其手。
말이나 문자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그 뜻을 밝게 깨치기 어렵나니
마치 밤중에 방을 찾으러 다닐 때
집이 넓어 그곳을 알 수 없는 것 같네.
辭句不巧便,
其義難了知,
如夜行求室,
宅曠莫知處。
이치를 잃으면 곧 법을 잊고
법을 잊으면 마음이 어지럽다.
그러므로 저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한 이치를 어기지 않느니라.”
失義則忘法,
忘法心馳亂,
是故智慧士,
不違眞實義。
이렇게 훈계하여 마치신 뒤에
파바성(波婆城)에 이르시자
저 모든 역사(力士)들
갖가지 공양을 베풀어 받들었네.
說斯教誡已,
至於波婆城,
彼諸力士衆,
設種種供養。
그때 순다(純陀)라 이름하는
어떤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부처님을 청해 그 집에 모시고
최후의 공양을 마련해 올렸네.
時有長者子,
其名曰純陁,
請佛至其舍,
供設最後飯。
공양을 끝내고 설법을 마치신 뒤
구이성(鳩夷城)으로 가셔서
궐궐강[蕨蕨河]과 희련강[凞連河]
두 강을 건너가셨네.
飯食說法畢,
行詣鳩夷城,
度於蕨蕨河,
及熙連二河。
그곳엔 안온하고 한적한
견고림(堅固林)이 있었다.
금강[金河]에 들어가 목욕하시자
그 몸은 마치 진금산(眞金山) 같았네.
彼有堅固林,
安隱閑靜處,
入金河洗浴,
身若眞金山。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분부하시어
저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를
물 뿌려 청소하고 깨끗하게 한 뒤에
승상(繩牀)을 준비하라 하셨네.
告勅阿難陁,
於彼雙樹閒,
掃灑令淸淨,
安置於繩牀。
“나는 오늘 밤 자정에
마땅히 열반에 들리라.”
아난은 부처님 분부를 받고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했다네.
吾今中夜時,
當入於涅槃,
阿難聞佛教,
氣塞而心悲。
울다 걷다 하면서도 분부 받들어
준비를 마치고 돌아와 아뢰었네.
여래께서는 승상에 나가시어
북쪽으로 머리 두고 오른쪽으로 누웠네.
行泣而奉教,
布置訖還白,
如來就繩牀,
北首右脅臥。
팔을 베개삼고 두 발을 포개셨는데
그 모양 마치 사자왕(師子王) 같았네.
괴로움이 다한 마지막 몸은
한 번 눕자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네.
枕手累雙足,
猶如師子王,
畢苦後邊身,
一臥永不起。
제자들이 모두 주위를 둘러싸고
“세상 눈이 없어졌다”며 슬프게 탄식했네.
바람은 멎고 숲과 물은 고요하며
새와 짐승들은 죽은 듯 소리 없네.
弟子衆圍遶,
哀歎世眼滅,
風止林流靜,
鳥獸寂無聲。
나무들은 모두 눈물을 줄줄 흘리고
꽃과 잎사귀는 제때도 아닌데 떨어졌네.
탐욕 여의지 못한 사람과 하늘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네.
樹木汁淚流,
華葉非時零,
未離欲人天,
悉皆大惶怖。
마치 사람이 넓은 못에서 놀다가
길이 험해 마을까지 이르지 못했을 때
다만 거기까지 가지 못할까
마음만 두렵고 몸은 바쁜 것 같았네.
如人遊曠澤,
道險未至村,
但恐行不至,
心懼形悤悤。
여래는 마지막으로 누우시어
아난다에게 분부하셨네.
“너는 가서 저 역사(力士)들에게 알려라.
내 열반할 때가 이미 이르렀으니
如來畢竟臥,
而告阿難陁,
往告諸力士,
我涅槃時至。
그들이 만일 나를 보지 못하면
오래도록 한(恨)이 되어 큰 고통 생기리라.”
아난은 부처님 분부 받고
슬피 울면서 길을 따라가
彼若不見我,
永恨生大苦,
阿難受佛教,
悲泣而隨路。
그 모든 역사들에게 알렸네.
“세존께선 이제 목숨 마치려 한다.”
모든 역사들 그 소리 듣고
매우 큰 두려움 생겼네.
사내도 아낙네도 모두 달려와
울부짖으며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네.
告彼諸力士,
世尊已畢竟,
諸力士聞之,
極生大恐怖,
士女奔馳出,
號泣至佛所。
찢어진 옷에 흩어진 머리털
먼지 쓴 몸에는 땀을 흘리고
통곡하며 저 숲으로 나아갔는데
마치 하늘 복이 다한 것 같았네.
弊衣而散髮,
蒙塵身流汗,
號慟詣彼林,
猶如天福盡。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 발에 예배할 때
근심과 슬픔으로 몸은 시들었네.
여래께서 위로하며 말씀하셨네.
“너희들은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말라.
지금은 마땅히 기뻐할 때이거늘
근심하고 슬퍼함은 올바르지 않느니라.
垂淚禮佛足,
憂悲身萎熟,
如來安慰說,
汝等勿憂悴,
今應隨喜時,
不宜生憂慼。
오랜 겁(劫)을 두고 꾀하던 바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얻었노라.
모든 감관[根]의 경계를 이미 건너니
다함 없는 시원하고 맑은 곳이네.
長劫之所規,
我今始獲得,
已度根境界,
無盡淸涼處。
흙ㆍ물ㆍ불ㆍ바람을 여의고
지극히 고요하고 나고 멸하지 않아
영원히 걱정 근심 버렸거늘
어찌하여 나를 위해 근심하는가.
離地水火風,
寂靜不生滅,
永除於憂患,
云何爲我憂。
나는 옛날 가사산(伽闍山)에서
이 몸을 버리고자 하였으나
그 전생에 지은 인연 때문에
세상에 살아 지금에 이르렀네.
我昔伽闍山,
欲捨於此身,
以本因緣故,
存世至於今。
위태롭고 연약한 이 몸 보호함이
독사와 함께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큰 고요함에 들어
온갖 괴로운 인연 이미 끝났느니라.
守斯危脆身,
如毒蛇同居,
今入於大寂,
衆苦緣已畢。
다시는 뒷몸을 받지 않기에
미래의 괴로움 영원히 쉬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다시금 나를 위하여
두려움 내지 않아야 한다.”
不復更受身,
未來苦長息,
汝等不復應,
爲我生恐怖。
그 역사들은 부처님께서
대열반[大寂靜]에 드신단 말 듣고
마음은 어지럽고 눈은 어두워
큰 암흑세계를 보는 것 같았네.
力士聞佛說,
入於大寂靜,
心亂而目冥,
如睹大黑闇。
그들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나고 죽는 괴로움 떠나
영원히 적멸(寂滅)의 즐거움에 드신다 하니
저희들은 실로 기뻐하고 경하드립니다.
合掌白佛言,
佛離生死苦,
永之寂滅樂,
我等實欣慶。
마치 저 불타는 집에서
불 속에서 어버이를 구한 것 같으니
모든 하늘들도 기뻐하겠거늘
하물며 이 세상 사람이겠습니까.
猶如被燒舍,
親從盛火出,
諸天猶歡喜,
何況於世人。
그러나 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시고 나면
중생들은 다시는 뵐 길이 없어
영원히 구호를 받을 수 없으리니
그러므로 걱정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如來旣滅後,
群生無所睹,
永違於救護,
是故生憂悲。
마치 저 상인(商人)의 무리들이
멀리 빈 벌판을 건너갈 때
오직 한 사람의 길잡이 있었으나
도중에 갑자기 길잡이를 잃은 것 같아
譬如商人衆,
遠涉於曠野,
唯有一導師,
忽然中道亡。
대중들은 더 이상 믿을 데가 없으니
어찌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
일체를 알고 본 이 만났으면서
大衆無所怙,
云何不憂悲,
現世自證知,
睹一切知見。
그러고도 뛰어난 이로움 거두지 못하면
온 세상의 비웃음을 받을 터이니
보배산을 지나면서 어리석고 미련하여
가난의 괴로움을 고수하는 것 같으리라.”
而不獲勝利,
擧世所應笑,
譬如經寶山,
愚癡守貧苦。
이와 같이 그 모든 역사들
부처님을 향하여 슬피 하소연하니
마치 어떤 사람의 외동아들이
자비스런 아버지께 구슬피 하소연하듯 하였네.
如是諸力士,
向佛而悲訴,
猶如人一子,
悲訴於慈父。
부처님께서는 잘 다독거리는 말씀으로
제일가는 진리 나타내 보이시며
저 모든 역사들에게 말씀하셨네.
“참으로 너희들의 말과 같아서
佛以善誘辭,
顯示第一義,
告諸力士衆,
誠如汝所言。
도(道)를 구해 부지런히 힘쓰되
비록 나를 보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설한 법대로 실천하면
온갖 괴로움의 그물 벗어날 수 있으리라.
求道須精勤,
非但見我得,
如我所說行,
得離衆苦網。
도(道)를 행하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
굳이 나를 보는 데 있지 않느니라.
마치 저 병을 앓는 사람이
처방에 따라 좋은 약 먹는 것 같다네.
行道存於心,
不必由見我,
猶如疾病人,
依方服良藥。
온갖 병은 저절로 없어져
의사 만나길 기다릴 필요 없듯이
내가 말한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한낱 나를 보아도 이익 없을 것이네.
衆病自然除,
不待見醫師,
不如我說行,
空見我無益。
비록 나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법대로 행하면 나와 가까울 것이네.
함께 있어도 그 법을 따르지 않으면
내게서 멀리 떠나는 것인 줄 안다네.
雖與我相遠,
行法爲近我,
同止不隨法,
當知去我遠。
마음을 거둬 잡아 함부로 놀지 말고
꾸준히 힘써 바른 업을 닦아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긴긴 세월 온갖 고통 핍박받나니
어지럽게 흔들려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것
마치 바람 앞에 등불과 같구나.”
攝心莫放逸,
精勤修正業,
人生於世閒,
長夜衆苦迫,
擾動不自安,
猶若風中燈。
그때 그 모든 역사들
부처님의 자비스런 가르침 듣고
마음으로 감동해 눈물 거두며
스스로 감정 억제하고 돌아갔네.
時諸力士衆,
聞佛慈悲教,
內感而收淚,
强自抑止歸。
26. 대반열반품(大般涅槃品)
佛所行讚 大般涅槃品 第二十六
그때 수발타(須跋陀)라는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어짊과 덕을 두루 갖추고
깨끗한 계율[戒]로 중생을 보호하였네.
爾時有梵志,
名須跋陁羅,
賢德悉備足,
淨戒護衆生。
젊을 때부터 삿된 견해 가져
외도(外道)를 닦으러 출가하였다.
그는 와서 세존을 뵙고자
아난다에게 말하였네.
少稟於邪見,
修外道出家,
欲來見世尊,
告語阿難陁。
“내 들으니 여래의 도(道)는
그 뜻이 깊어 헤아리기 어려우며
이 세간에서 위없는 깨달음 얻은 분으로
제일가는 조어사(調御師)라 하였네.
我聞如來道,
厥義深難測,
世閒無上覺,
第一調御師。
그 분 이제 반열반에 드신다 하니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우리.
보기 어려운 분 보는 일 어려움이
마치 거울 속의 달과 같구나.
今欲般涅槃,
難復可再遇,
難見見者難,
猶如鏡中月。
나는 이제 그 위없는
좋은 도사(導師)를 뵙고자 하네.
숱한 괴로움 면하기 바라고
나고 죽음 건너서 열반 언덕 가고파라.
我今欲奉見,
無上善導師,
爲求免衆苦,
度生死彼岸。
부처의 태양 그 빛을 잃으려 하니
원컨대 나로 하여금 잠시만 보게 해주오.”
아난은 마음에 슬픔을 느꼈으나
다시 말하기를 “비방하려 하거나
佛日欲潛光,
願令我蹔見,
阿難情悲感,
兼謂爲譏論。
세존이 멸도하심을 기뻐하는 것이니
부처님을 뵙게 할 수 없다” 하였네.
부처님께서는 그가 바라는 것이
바른 법 그릇이 될 만함을 아셨네.
或欣世尊滅,
不宜令佛見,
佛知彼希望,
堪爲正法器。
아난에게 분부하셨네.
“저 외도를 내 앞에 오게 하라.
나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나왔나니
너는 주저하거나 난처해하지 말라.”
而告阿難言,
聽彼外道前,
我爲度人生,
汝勿作留難。
수발타라(須跋陀羅)는 그 말씀 듣고
마음에 큰 기쁨을 내고
법을 즐겨하는 뜻 갈수록 깊어
더욱 공경하며 부처님 앞에 나왔네.
須跋陁羅聞,
心生大歡喜,
樂法情轉深,
加敬至佛前。
시기에 맞추어 공손히 말씀드리고
부드러운 말씨로 인사드리며
온화한 얼굴로 합장하고 청하였다.
“내 지금 여쭙고 싶은 것 있습니다.”
應時隨順言,
軟語而問訊,
和顏合掌請,
今欲有所問。
세상에 법을 아는 이로서
나 따위와 같은 사람 매우 많지만
오직 부처님께서 얻으신 그 해탈은
다른 중요한 도(道)라고 들었습니다.
世有知法者,
如我比甚衆,
唯聞佛所得,
解脫異要道。
원컨대 저를 위해 대충 말씀하시어
허하고 갈증난 마음 적셔 주소서.
이것은 서로 논의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승부를 겨루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願爲我略說,
沾潤虛渴懷,
不爲論議故,
亦無勝負心。
부처님께서는 저 범지 위하여
여덟 가지 바른 길 간략히 말씀하시자
그 말씀 듣고 마음 비우고 받아들여
마치 헤매던 사람 바른 길을 만난 듯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것들
궁극적인 도(道) 아님을 깨달아 알았네.
佛爲彼梵志,
略說八正道,
聞卽虛心受,
猶迷得正路,
覺知先所學,
非爲究竟道。
일찍이 듣지 못한 것 비로소 듣고
삿된 길을 버려 여의며
아울러 어리석어 어두운 장애를 버리고서
지금껏 배웠던 것 되새겨 보았네.
卽得未曾聞,
捨離於邪徑,
兼背癡闇障,
思惟先所習。
‘성냄과 어리석음의 어둠 갖추고
착하지 않은 업만을 자라게 하며
애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행했었네.
능히 모든 착한 업인
많이 들음과 지혜와 정진을 일으키리라.
瞋恚癡冥俱,
長養不善業,
愛恚癡等行,
能起諸善業,
多聞慧精進。
또한 유애(有愛)로 말미암아 생기는
성냄과 어리석음 끊으면
곧 모든 업을 여의게 되고
모든 업이 이미 없어지면
이것을 업해탈(業解脫)이라 이름한다네.
亦由有愛生,
恚癡若斷者,
則離於諸業,
諸業旣已除,
是名業解脫。
그러나 모든 업에서의 해탈이란
이치상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세간 사람들은 일체의 것은
그 모두 자성(自性)이 있다고 말하지만
諸業解脫者,
不與義相應,
世閒說一切,
悉皆有自性。
애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있어
만일 그것이 자성이 있다면
그것도 영원히 존재해야 할 것이거늘
어떻게 거기서 해탈할 수 있으리.
설사 성냄과 어리석음 없애더라도
그 유애(有愛)는 다시 도로 생기리라.
有愛瞋恚癡,
而有自性者,
此則應常存,
云何而解脫,
正使恚癡滅,
有愛還復生。
마치 저 물의 성질은 차가운데
불로 인해 뜨거워졌다가도
뜨거운 불길 멈추면 도로 식어버리는 것 같나니
자성은 항상한 것이기 때문이라네.
如水自性冷,
緣火故成熱,
熱息歸於冷,
以自性常故。
마땅히 알아야 하니 유애(有愛)의 성품은
많이 들음ㆍ지혜ㆍ정진으로 늘어나지 않나니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해탈이라 하리.
當知有愛性,
聞慧進不增,
不增亦不減,
云何是解脫。
전에는 ‘나고 죽음은
본래 자성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이제 그 이치 관찰하면
해탈을 얻을 사람 아무도 없다네.
先謂彼生死,
本從性中生,
今觀於彼義,
無得解脫者。
자성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니
어찌 거기에 마지막이 있으랴.
비유하면 마치 켜져 있는 등불과 같나니
어찌 그 빛을 없앨 수 있으랴.
性者則常住,
云何有究竟,
譬如燃明燈,
何能令無光。
부처님 도(道)의 진실한 이치
애욕을 연(緣)하여 세간에 난다 하네.
애욕이 멸하면 곧 고요해지려니
인(因)이 없기에 과(果)도 또한 없으리.
佛道眞實義,
緣愛生世閒,
愛滅則寂靜,
因滅故果亡。
본래 나[我]는 몸과 다르고
만든 이 없다고 보지 않았는데
이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들으면
이 세간에는 나라는 것 있지 않다네.
本謂我異身,
不見無作者,
今聞佛正教,
世閒無有我。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니
그것엔 자재(自在)가 없기 때문이다.
인연으로 생겼기에 괴로움 있고
인연으로 멸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네.
諸法因緣生,
無有自在故,
因緣生故苦,
因緣滅亦然。
세상 인연으로 생기는 것 관찰하면
곧 단견(斷見)을 멸할 수 있고
연(緣)을 여의어 세간 멸하는 것 관찰하면
곧 상견(常見)을 여읠 수 있다.’
觀世因緣生,
則滅於斷見,
緣離世閒滅,
則離於常見。
그는 본래 가졌던 견해 모두 버리고
부처님의 바른 법 깊이 보고 나서
과거에 좋은 인(因) 심은 까닭에
법 듣자 곧 깨닫게 되었네.
悉捨本所見,
深見佛正法,
宿命種善因,
聞法能卽悟。
맑고 시원하기 다함 없는 곳
좋은 적멸(寂滅)을 이미 얻고서
마음 열리고 믿음은 더욱 넓어져
누워 계신 여래를 우러러 보았네.
已得善寂滅,
淸涼無盡處,
心開信增廣,
仰瞻如來臥。
그러나 세상을 버리고 반열반에 드시는
여래를 차마 뵐 수가 없어
“부처님 아직 돌아가시기 전에
마땅히 내 먼저 멸도하리라” 했네.
不忍觀如來,
捨世般涅槃,
及佛未究竟,
我當先滅度。
그리고 합장하여 거룩한 존안에 예배하고
꼿꼿한 자세로 한쪽에 앉아
목숨[壽]을 버리고 열반에 드니
마치 비가 작은 불 꺼버리듯 하였네.
合掌禮聖顏,
一面正基坐,
捨壽入涅槃,
如雨滅小火。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네.
“나의 이 맨 마지막 제자
이제 여기서 이미 열반에 들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공양올려라.”
佛告諸比丘,
我最後弟子,
而今已涅槃,
汝等當供養。
초저녁이 이미 지나서
달은 밝고 별들은 총총 빛나며
숲은 고요하여 소리 없을 때
부처님께서 큰 자비심으로
모든 제자들에게 최후를 분부하셨네.
佛以初夜過,
月明衆星朗,
閑林靜無聲,
而興大悲心,
遺誡諸弟子。
“내 반열반(般涅槃)에 든 뒤에
너희들은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공경해야 하나니
이것은 곧 너희들의 스승으로서
어두운 밤을 밝힐 등불이요
吾般涅槃後,
汝等當恭敬,
波羅提木叉,
卽是汝大師,
巨夜之明燈。
가난한 사람의 큰 보물 되리니
마땅히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것 따르기를
나 섬기는 것과 다름없게 하라.
貧人之大寶,
當所教誡者,
汝等當隨順,
如事我無異。
몸과 입의 행(行)을 깨끗이 하여
모든 생업(生業)을 떠나야 하리니
밭과 집과 또 중생들 기르기와
재물이나 곡식을 축적하는
이 모든 일 멀리 여읨을
큰 불구덩이 피하듯 하라.
當淨身口行,
離諸治生業,
田宅畜衆生,
積財及五穀,
一切當遠離,
如避大火坑。
땅을 개간하기와 풀 나무 베기와
의술(醫術)로 모든 병 다스리기와
천체[曆數]의 운행을 우러러 관찰하기와
길(吉)하고 흉한 상을 헤아려 알고
이롭고 해로움을 점치는 것들
이것은 다 하지 말아야 한다.
墾土截草木,
醫療治諸病,
仰觀於曆數,
步推吉凶象,
占相於利害,
此悉不應爲。
몸을 절제하여 때 맞춰 먹고
남의 사주를 받아 사술(邪術)을 행하지 말며
탕약(湯藥)을 섞어 만들지 말고
아첨과 거짓을 멀리 여의어라.
節身隨時食,
不受使行術,
不合和湯藥,
遠離諸諂曲。
법에 따라 생활 필수품은
마땅히 양(量)을 알아 받을 것이요
받은 것은 곧 쌓아 두지 말지니라.
이것은 곧 간략히 계(戒)를 말한 것이니
모든 계의 근본이 되고
또한 해탈의 근본이 되리라.
順法資生具,
應當知量受,
受則不積聚,
是則略說戒,
爲衆戒之根,
亦爲解脫本。
그러므로 이 법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체의 정수(正受)가 생기나니
그 일체의 진실한 지혜는
이것을 인연하여 구경(究竟)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잡아 지녀
그것을 끊거나 무너뜨리지 말라.
依此法能生,
一切諸正受,
一切眞實智,
緣斯得究竟,
是故當執持,
勿令其斷壞。
깨끗한 계가 끊어지지 않으면
곧 모든 착한 법 생기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모든 착함도 없나니
계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니라.
淨戒不斷故,
則有諸善法,
無則無諸善,
以戒建立故。
이미 맑고 깨끗한 계에 머물렀거든
모든 정(情)의 감관[根]을 잘 거두어 잡아
마치 잘 길들인 소[牛]처럼
함부로 사납게 덤비지 않게 하라.
已住淸淨戒,
善攝諸情根,
猶如善牧牛,
不令其縱暴。
모든 감관[根]의 말[馬]을 거둬잡지 못해서
여섯 경계[六境]에 함부로 놀게 하면
현세에서는 재앙을 가져오고
장차는 나쁜 길에 떨어지리니
不攝諸根馬,
縱逸於六境,
現世致殃禍,
將墜於惡道。
비유하면 말[馬]을 잘 부리지 못하면
사람을 구렁텅이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밝고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감관을 멋대로 놓아주지 않느니라.
譬如不調馬,
令人墮坑陷,
是故明智者,
不應縱諸根。
모든 감관은 매우 사납고 악해
사람의 큰 원수가 되건만
중생은 모든 감관을 사랑함으로써
도리어 그에게 해침을 당하느니라.
諸根甚凶惡,
爲人之重怨,
衆生愛諸根,
還爲彼傷害。
그 깊은 원한은 독사나
난폭한 범, 혹은 사나운 불보다 성해
세상 사람들 매우 싫어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深怨盛毒蛇,
暴虎及猛火,
世閒之甚惡,
慧者所不畏。
그는 오직 가볍게 덤비는 마음이
사람을 나쁜 길에 들게 할까 두려울 뿐이었다.
그 조그마한 쾌락에 편안해 하면서
깊고 험한 곳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唯畏輕躁心,
將人入惡道,
以彼樂小恬,
不觀深險故。
미친 코끼리 날카로운 갈고리 없어지고
원숭이 나뭇가지 얻은 것처럼
가볍게 덤비는 마음 그와 같으니
슬기로운 사람은 거둬 잡아야 하네.
狂象失利鉤,
猿猴得樹林,
輕躁心如是,
慧者當攝持。
마음을 놓아 제멋대로 하게 하면
끝내 적멸(寂滅)을 얻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을 제어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빨리 가야 하느니라.
放心令自在,
終不得寂滅,
是故當制心,
速之安靜處。
음식을 먹을 때는 분량을 알아
마땅히 약을 먹는 방법처럼 하고
그 음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탐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내지 말라.
음식은 굶주리고 목마름 풀기 위한 것
마치 헌 수레의 기름과 같으니라.
飯食知節量,
當如服藥法,
勿因於飯食,
而生貪恚心,
飮食止飢渴,
如膏朽敗車。
비유하면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에
그 빛깔과 향기는 다치지 않는 것처럼
비구는 걸식하러 다닐 때
저들의 믿는 마음 상하게 하지 말라.
譬如蜂採花,
不壞其色香,
比丘行乞食,
勿傷彼信心。
혹 어떤 사람이 기쁘게 보시하더라도
마땅히 그 능력[堪]을 헤아려 보라.
소[牛]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으면
버거운 짐은 그를 해치게 하리.
若人開心施,
當推彼所堪,
不籌量牛力,
重載令其傷。
아침ㆍ낮ㆍ저녁 세 때를 따라
차례로 바른 업 닦아야 하니.
초저녁과 새벽 그 두 때에는
잠에 집착하지 말며
한밤중에는 단정한 마음으로 누워
생각을 밝음에 매어 두어라.
朝中晡三時,
次第修正業,
初後二夜分,
亦莫著睡眠,
中夜端心臥,
係念在明相。
밤이 다하도록 깊은 잠에 빠져
몸과 목숨 헛되게 보내지 말라.
시간이란 불은 언제나 이 몸을 태우나
어떻게 오래도록 잠만 자고 있으랴.
勿終夜睡眠,
令身命空過,
時火常燒身,
云何長睡眠。
번뇌는 온갖 원수의 집으로서
빈틈을 타서 이내 나를 해치건만
마음은 잠에 빠져 어두우니
죽음이 이른들 누가 능히 깨우랴.
煩惱衆怨家,
乘虛而隨害,
心惛於睡寐,
死至孰能覺。
독사가 집에 숨어 있으면
좋은 주문(呪文)으로 벗어나게 하고
검은 살무사 그 마음에 있으면
밝은 깨달음의 좋은 주문으로 없애야 하겠거늘
아무 방법도 없이 오래도록 잠들면
이는 곧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니라.
毒蛇藏於宅,
善呪能令出,
黑虺居其心,
明覺善呪除,
無術而長眠,
是則無慚人。
부끄러움은 장엄한 의복이 되고
부끄러움은 코끼리 제어하는 갈고리 되나니
부끄러움은 그 마음 안정되게 하지만
부끄러움 없으면 선근(善根)을 잃느니라.
慚愧爲嚴服,
慚爲制象鉤,
慚愧令心定,
無慚喪善根。
부끄러워할 줄 알면 세간에서 어진 이라 일컫고
부끄러움 없으면 짐승과 같나니
혹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칼로써
마디마디 그 몸을 해치더라도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고
입으로는 나쁜 말을 더하지 말라.
慚愧世稱賢,
無慚禽獸倫,
若人以利刀,
節節解其身,
不應懷恚恨,
口不加惡言,
惡念而惡言。
나쁘게 생각하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만 해치고 남 해치지 못하나니
몸을 절제하여 고행을 닦을 때
인욕(忍辱)보다 더 나은 것 없느니라.
自傷不害彼,
節身修苦行,
無過忍辱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