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詩經

256. 공류(公劉,공류 임금 ) 六章/大雅-生民之什

은인자중 2010. 1. 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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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詩經-大雅-生民之什-공류(公劉)-

공류 임금-

[대아(大雅) / 생민지십(生民之什) 제6편 공류6장(公劉六章)]



(1장)

篤公劉ㅣ 匪居匪康하사
(독공류ㅣ 비거비강하사
迺埸迺疆하야 迺積迺倉이어늘
내역내강하야 내적내창이어늘
迺裹餱糧을 于槖于囊하야
내과후량을 우탁우낭하야
思輯用光하사 弓矢斯張하며
사집용광하사 궁시사장하며
干戈戚揚으로 爰方啓行하시니라

간과척양으로 원방계행(항)하시니라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편안히 거처하지 아니하사
둑을 만들고 경계를 만들어서 노적을 쌓고 곳집에 쌓거늘
마른밥과 양식을 싸기를 전대에 하고 자루에도 하여
이어서 빛남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베풀며 간과와
척양으로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나시니라.



迺 : 이에 내 裹 : 쌀 과, 보자기 과


○賦也ㅣ라 篤은 厚也ㅣ라 公劉는 后稷之曾孫也ㅣ니 事見豳風하니라 居는 安이오 康은 寧也ㅣ라 埸疆은 田畔也ㅣ라 積은 露積也ㅣ라 餱는 食이오 糧은 糗也ㅣ라 無底曰橐이오 有底曰囊이라 輯은 和요 戚은 斧요 揚은 鉞이오 方은 始也ㅣ라
○舊說에 召康公이 以成王將涖政할새 當戒以民事라 故로 詠公劉之事以告之라 曰厚哉라 公劉之於民也ㅣ여 其在西戎에 不敢寧居하야 治其田疇하고 實其倉廩하니 旣富且强이라 於是에 裹其餱糧하고 思以輯和其民人하야 而光顯其國家라 然後에 以其弓矢斧鉞之備로 爰始啓行하야 而遷都於豳焉하니 蓋亦不出其封內也ㅣ라
○부라. 독은 후함이라. 공류는 후직의 증손이니 일이 빈풍에 나타나니라. 거는 편안함이고, 강은 편안함이라. 역과 강은 밭두둑이라. 적은 노적이라. 후는 밥이고, 양은 마른밥이라. 밑이 없는 것을 탁(전대)이라 하고 밑이 있는 것을 낭(자루)이라 하니라. 집은 화함이고, 척은 도끼이고, 양은 도끼이고, 방은 비로소라.
○옛 말에 소강공이 성왕이 장차 정치에 임하려 할 때에 마땅히 백성의 일(농사)로써 경계함이라. 그러므로 공류의 일로 읊어서 고함이라. 가로대 후덕하도다. 공류가 백성들을 대함이여. 그 서융에 계실 적에 감히 편안히 거하지 아니하여 그 밭두둑을 다스리고 그 곳집을 채우니 이미 부하고 또 강하니라. 이에 그 마른밥과 식량을 싸고 그 백성과 벼슬하는 사람을 화하게 할 것을 계속 생각하여 그 국가를 빛나게 나타나도록 함이라. 그러한 뒤에 그 궁시와 부월을 갖춤으로써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나서 도읍을 빈땅으로 옮기니 대개 또한 그 경계 내에서는 벗어나지 아니했음이라.



(2장)

篤公劉ㅣ 于胥斯原하시니
(독공류ㅣ 우서사원하시니
旣庶旣繁하며 旣順迺宣하야
기서기번하며 기순내선하야
而無永嘆이로다 陟則在巘하시며
이무영탄이로다 척즉재헌하시며
復降在原하시니 何以舟之오
부강재원하시니 하이주지오
維玉及瑤와 鞞琫容刀ㅣ로다

유옥급요와 병봉용도ㅣ로다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이 언덕을 보시니, 이미 많은 무리가 살고 있으며, 이미 편안하고 두루 흩어져서 길이 탄식함이 없도다. 올라가서는 산마루에 계시며, 다시 내려가서는 언덕에 계시니 무엇을 허리에 찼는고. 오직 옥과 구슬과 칼집과 장식한 칼이로다.


巘 : 산봉우리 헌 舟 : 배 주, 여기서는 ‘띠 주’ 鞞 : 마상(馬上)의 북 비, 여기서는 ‘칼집 병’ 琫 : 칼집장식 봉


○賦也ㅣ라 胥는 相也ㅣ라 庶繁는 謂居之者衆也ㅣ라 順은 安이오 宣은 徧也ㅣ니 言居之徧也ㅣ라 無永嘆은 得其所하야 不思舊也ㅣ라 巘은 山頂也ㅣ라 舟는 帶也ㅣ라 鞞은 刀鞘也ㅣ오 琫은 刀上飾也ㅣ라 容刀는 容飾之刀也ㅣ니 或曰容刀는 如言容臭니 謂鞞琫之中에 容此刀耳라
○言公劉至豳하야 欲相土以居할새 而帶此劒佩하야 以上下於山原也ㅣ라 東萊呂氏曰以如是之佩服으로 而親如是之勞苦하니 斯其所以爲厚於民也歟인저
○부라. 서는 상을 봄이라. 서와 번은 거처하는 자가 많음이라. 순은 편안함이고, 선은 두루이니 거함을 두루함이라. 무영탄은 그 거처할 곳을 얻어 옛날을 생각지 아니함이라(편안한 곳을 얻지 못하면 왜 이곳에 왔는고하면서 옛날을 생각하며 탄식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 헌은 산마루라. 주는 띠라. 병은 칼집이고, 봉은 칼 위를 꾸밈이라. 용도는 장식한 칼이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용도는 용취(향기 나는 것을 담음)를 말한 것과 같으니 칼과 장식한 가운데에 이 칼을 담는 것이라.
○공유가 빈땅에 이르러 토지의 상을 보고서 거처하고자 할 때에 허리띠에 이 칼을 차고서 산언덕을 오르내림을 말함이라. 동래여씨 가로대 이와 같은 패물과 복식으로써 이와 같은 노고를 친히 하였으니 이 그 백성을 후덕하게 한 바인저.


鞘 : 칼집 초

(3장)

篤公劉ㅣ 逝彼百泉하사
(독공류ㅣ 서피백천하사
瞻彼溥原하시고 迺陟南岡하사
첨피부원하시고 내척남강하사
乃覯于京하시니 京師之野ㅣㄹ새
내구우경하시니 경사지야새
于時處處하며 于時廬旅하며
우시처처하며 우시려려하며

于時言言하며 于時語語하시니라

우시언언하며 우시어어하시니라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저 백천에 가셔서

저 넓은 언덕을 보시고, 남쪽 산 능선에 오르사

산 높은 것을 보시니, 산 높고 많은 무리들이 살 만한 들판이기에,

이에 그곳에 거처하게 하며, 이에 무리들을 머물게 하며,

이에 말한 것을 말하며, 이에 논란함을 논란하시니라.

 


○賦也ㅣ라 溥는 大요 覯는 見也ㅣ라 京은 高丘也ㅣ라 師는 衆也ㅣ라 京師는 高山而衆居也ㅣ라 董氏曰所謂京師者는 蓋起於此하니 其後世에 因以所都爲京師也ㅣ라 時는 是也ㅣ라 處處는 居室也ㅣ라 廬는 寄也ㅣ오 旅는 賓旅也ㅣ라 直言曰言이오 論難曰語라

○此章은 言營度邑居也ㅣ라 自下觀之면 則往百泉而望廣原이오 自上觀之면 則陟南岡而覯于京이라 於是에 爲之居室하고 於是에 廬其賓旅하고 於是에 言其所言하고 於是에 語其所語하니 無不於斯焉이라

○부라. 부는 큼이고, 구는 봄이라. 경은 높은 언덕이라. 사는 무리라. 경사는 높은 산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니라. 동씨 가로대 이른바 경사라는 것은 대개 여기에서 일어나니 그 후세에 인하여 도읍한 바가 경사가 되었음이라. 시는 이라. 처처는 집에 거처함이라. 려는 부침이고, 려는 손으로 따라온 나그네라. 곧은 말을 언이라 하고 논란함을 어라 하니라.

○이 장은 읍거(도읍하여 거처함)를 경영하고 헤아림을 말함이라. 아래로부터 보면 백천에 가서 너른 언덕을 바라보는 것이고, 위로부터 보면 남강에 올라가서 경구를 봄이라. 이곳에 살 집을 짓고, 이곳에 나그네들을 임시로 거처하게 하며, 이에 그 말한 바를 말하고 이에 논란한 바를 논란하여(『중용』6장에 “舜이 好問而好察邇言하샤대 隱惡而揚善하시며 執其兩端하샤 用其中於民하시니”라고 하였듯이 언로를 막지 않고 백성들이 생각하고 말한 바를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논란거리는 함께 논란하여 좋은 방안을 찾아 시행하였기에) 이에 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4장)

篤公劉ㅣ 于京斯依하시니

(독공류ㅣ 우경사의하시니

蹌蹌濟濟어늘 俾筵俾几하니

창창제제어늘 비연비궤하니

旣登乃依로다 乃造其曹하야

기등내의로다 내조기조하야

執豕于牢하며 酌之用匏하니

집시우뢰하며 작지용포하니

食之飮之하며 君之宗之로다

 

사지음지하며 군지종지로다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높은 언덕에 편안하시니 창창제제한 위의가 있거늘 자리를 펴게 하고 궤를 설치하게 하니 이미 자리에 오르고 궤에 의지하도다. 이에 그 목장에 나아가 우리에서 돼지를 잡으며 술을 따르는데 바가지를 써서 하니 밥을 먹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며 인군으로 모시고 종주로 삼도다.



* 주자는 뒤 두 구절의 음은 ‘之’로 운을 단다(就用之字爲韻)고 하였다.


○賦也ㅣ라 依는 安也ㅣ라 蹌蹌濟濟는 群臣有威儀貌라 俾는 使也ㅣ니 使人爲之設筵几也ㅣ라 登은 登筵也ㅣ오 依는 依几也ㅣ라 曹는 群牧之處也ㅣ라 以豕爲殽하고 用匏爲爵을 儉以質也ㅣ라 宗은 尊也ㅣ며 主也ㅣ니 嫡子孫이 主祭祀而族人尊之하야 以爲主也ㅣ라

○此章은 言宮室旣成而落之할새 旣以飮食로 勞其群臣하고 而又爲之君하며 爲之宗焉이라 東萊呂氏曰旣饗燕而定經制하야 以整屬其民하야 上則皆統於君하고 下則各統於宗이라 蓋古者에 建國立宗에 其事相須하니 楚執戎蠻子而致邑立宗하야 以誘其遺民이 卽其事也ㅣ라

○부라. 의는 편안함이라. 창창제제는 여러 신하가 위의가 있는 모양이라. 비는 부림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자리와 궤를 펼치게 함이라. 등은 자리에 오름이고, 의는 궤에 의지함이라. 조는 여러 가축을 기르는 곳이라. 돼지로써 안주를 만들고, 바가지를 사용하여 술잔을 만드는 것은 검소함으로써 질박함이라. 종은 높이고 주인이니 적자손이 제사를 주관하니 족인이 높여서 주인으로 삼음이라.○이 장은 궁실을 이미 다 짓고 낙성식을 할 때에 이미 음식으로써 그 여러 신하들을 위로하고 또 인군으로 삼고 종주로 삼음을 말함이라. 동래여씨 가로대 이미 향연을 베풀고 법과 제도를 정하여 그 백성을 정돈하고 귀속시켜서 위로는 모두가 인군에게 통솔시키고, 아래로는 각각 종에 통솔되게 하였느니라. 대개 옛적에 나라를 세우고 종을 세움에 그 일이 서로를 기다렸으니 초나라가 융만자를 잡고는 읍을 이루고 종을 세워 그 유민을 유도한 것(『춘추좌전』哀公 4년)이 곧 그 일이라.



(5장)

篤公劉ㅣ 旣溥旣長이어늘

(독공류ㅣ 기부기장이어늘

旣景迺岡하야 相其陰陽하며

기영내강하야 상기음양하며

觀其流泉하니 其軍三單이로다

관기류천하니 기군삼단이로다

度其隰原하야 徹田爲糧하며

탁기습원하야 철전위량하며

度其夕陽하니 豳居允荒이로다

 

탁기석양하니 빈거윤황이로다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토지가 이미 넓어지고 길어졌거늘 해 그림자를 관찰하고 산등성에 올라가 그 음양을 상보며 그 흐르는 샘을 관찰하니 그 군대가 삼단이도다. 그 습진 언덕을 헤아려서 정전법으로 식량을 장만하며 그 석양을 헤아리니 빈땅에 거주하는 이들이 진실로 많도다.



景 : 볕 경, 여기서는 ‘그림자 영’


○賦也ㅣ라 溥는 廣也ㅣ라 言其芟夷墾辟하야 土地旣廣而且長也ㅣ라 景은 考日景以正四方也ㅣ라 岡은 登高以望也ㅣ라 相은 視也ㅣ니 陰陽向背寒暖之宜也ㅣ라 流泉은 水泉灌漑之利也ㅣ라 三單은 未詳이라 徹은 通也ㅣ라 一井之田이 九百畝니 八家는 皆私百畝하고 同養公田하야 耕則通力而作하고 收則計畝而分也ㅣ라 周之徹法은 自此始하니 其後周公이 蓋因而修之耳라 山西曰夕陽이라 允은 信이오 荒은 大也ㅣ라
○此는 言辨土宜하야 以授所徙之民하며 定其軍賦와 與其稅法하고 又度山西之田하야 以廣之而豳人之居於此益大矣라○부라. 부는 넓음이라. 그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개간하여 토지가 이미 넓어지고 또 길게 뻗어졌느니라(廬陵羅氏曰東西爲廣이오 南北爲長이라 : 여릉나씨 가로대 동서는 광이 되고, 남북은 장이 되니라 / 곧 땅이 동서와 남북으로 매우 넓어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함). 영은 해 그림자를 살펴서 사방을 바로함이라(孔氏曰民居田畝할새 或南或北하니 皆須正其方面이라 故로 以日景으로 定之라 : 백성이 농사짓는 밭가에 집을 지어 살 때에 혹 남쪽으로 하고 혹 북쪽으로 하니 다 모름지기 그 향하는 쪽을 바루는데 해 그림자로써 정했느니라). 강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봄이라. 상은 봄이니 음양의 향배는 춥고 따뜻함의 마땅함이라(孔氏曰山南爲陽이오 山北爲陰이며 廣谷大川에 有寒有暖이 不同하니 所宜則異라 故로 相之也ㅣ라 : 공씨 가로대 산의 남쪽은 양이 되고 산의 북쪽은 음이 되며 넓은 골짝과 큰 내에는 추운 데가 있고 따뜻한 데가 있는 것이 같지 아니하니 마땅한 곳은 곧 다르니라. 그러므로 상을 보는 것이라). 유천은 술이 샘에서 흘러나와 물대는 이로움이라. 삼단은 자세하지 못하니라. 철은 통함이라. 일정의 전이 구백묘니, 여덟 집은 다 사전 백묘로 하고 함께 공전을 지어 밭가는 데에는 힘을 다하여 짓고 거두어서는 이랑을 계산하여 나눔이라. 주나라의 철법은 이로부터 시작했으니 그 후에 주공이 대개 말미암아 수정했을 뿐이라. 산 서쪽을 가로대 석양이라(廬陵羅氏曰山西는 夕始得陽이라 故로 曰夕陽이라 : 여릉나씨 가로대 산의 서쪽은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양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가로대 석양이라). 윤은 미더움이고 황은 큼이라. ○이것은 땅의 마땅함을 분별하여 이사온 백성들을 주며 그 군부와 세법을 정하고 또 산 서쪽의 밭을 헤아려 넓혀서 빈사람들이 이에 거함이 더욱 커졌도다.



(6장)

篤公劉ㅣ 于豳斯館하사

(독공류ㅣ 우빈사관하사

涉渭爲亂하야 取厲取鍛하야

섭위위난하야 취려취단하야

止基迺理하니 爰衆爰有하야

지기내리하니 원중원유(이)하야

夾其皇澗하며 遡其過澗하며

협기황간하며 소기과간하며

止旅迺密하야 芮鞫之卽이로다

지려내밀하야 예국지즉이로다 賦也ㅣ라)

후덕하신 공류가 빈땅에 관사를 정하사 위수를 건너 가로질러 가서 숫돌과 쇠를 취해와 이에 경계를 다스리니, 무리가 많아지고 재물이 풍족해져 그 황간을 끼고 돌며 그 과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머무르는 무리가 빽빽해져 예수의 물가에까지 나아가 살도다.


澗 : 계곡의 시내 간, *원문은 氵+閒으로 되어있으나 홈피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는 관계로 澗으로 바꿔 씀. 음양의 이치상 시내는 음이므로 '달 월'이 들어간 글자로 쓰는 것이 본래 의미에 적합함.


○賦也ㅣ라 館은 客舍也ㅣ라 亂은 舟之截流橫渡者也ㅣ라 厲는 砥요 鍛은 鐵이오 止는 居요 基는 定也ㅣ라 理는 疆理也ㅣ라 衆은 人多也ㅣ라 有는 財足也ㅣ라 遡는 鄕也ㅣ라 皇過는 二㵎名이라 芮는 水名이니 出吳山西北하야 東入涇하니 周禮職方에 作汭라 鞫은 水外也ㅣ라
○此章은 又總敍其始終이라 言其始來未定居之時에 涉渭取材하야 而爲舟以來往하고 取厲取鍛하야 而成宮室하며 旣止基於此矣하고 乃疆理其田野하니 則日益繁庶富足이라 其居有夾㵎者하며 有遡㵎者하야 其止居之衆이 日以益密하야 乃復卽芮鞫而居之하니 而豳地日以廣矣라 (公劉六章이라)

○부라. 관은 객사라. 난은 배가 흐름을 끊어서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라. 려는 숫돌이고, 단은 철이고, 지는 거처함이고, 기는 정함이라. 이는 경계를 다스림이라. 중은 사람이 많음이라. 유는 재물이 족함이라. 소는 향함이라. 황과 과는 두 시냇물 이름이라. 예는 물 이름이니 오산 서북쪽에서 나와 동쪽에서 경수로 들어가니 『주례』직방에 ‘汭(물굽이 예)’로 지었음이라. 국은 물 바깥이라. ○이 장은 또한 그 시작과 마침을 모두 서술함이라. 그 처음 와서 아직 거처를 정하지 아니했을 때에 위수를 건너서 재목을 취해와 배를 만들어 오고 갔고, 숫돌도 취해오고 쇠도 취해 와서 궁실을 지었으며 이미 이에 터를 정해놓고 이에 그 전야의 경계를 다스리니 날로 더욱 번서해지고 재물이 풍족해졌음이라. 그 거처하는 곳이 시내를 끼고 돌며 시내를 거슬러 올라간 곳도 있어서 그 거처하는 무리가 날로 더욱 빽빽해져 이에 다시 예수의 물가에까지 나아가 거처하니 빈땅이 날로 넓어졌음이라. (공류6장이라)



公劉六章 章十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