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詩經

시경시 해설

은인자중 2009. 12. 20. 05:01

 

 

       
국풍(國風)  
    총 160편
  한자 한글 번호
01 周南 주남 001-011
02 召南 소남 012-025
03 邶風 패풍 026-044
04 鄘風 용풍 045-054
05 衛風 위풍 055-064
06 王風 왕풍 065-074
07 鄭風 정풍 075-095
08 齊風 제풍 096-106
09 魏風 위풍 107-113
10 唐風 당풍 114-125
11 秦風 진풍 126-135
12 陳風 진풍 136-145
13 檜風 회풍 146-149
14 曹風 조풍 150-153
15 豳風 빈풍 154-160
       
소아(小雅)     총 74편
01 鹿鳴之什 녹명지습 161-170
02 白華之什 백화지습 170-175
03 彤弓之什 동궁지습 175-185
04 祈父之什 기부지습 185-195
05 小旻之什 소민지습 195-205
06 北山之什 북산지습 205-215
07 桑扈之什 상호지습 215-225
08 都人士之什 도인사지습 225-234
       
대아(大雅)     총 31편
01 文王之什 문왕지습 235-244
02 生民之什 생민지습 245-254
03 蕩之什 탕지습 255-265
       
송(頌)         총 40편
01 周頌 주송 266-296
01a -清廟之什 청묘지습 266-275
01b -臣工之什 신공지습 276-285
01c -閔予小子之什 민여소자지습 286-296
02 魯頌 노송 297-300
03 商頌 상송 301-305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니라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2장]

라 했으나 현전하는 작품은 305편이고

笙詩를 합하면 311펀이 된다.

공자는“시경시집  305 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순수한 생각과 사실성에 바탕한 純正한 생각과 정서의 표현임을 위와 같이 말했다. 이는 곧 공자의 詩觀이라 할 수 있다.

 

笙詩[가락만 남고 한시 작품 망실] 6편명

170 小雅 녹명지십(鹿鳴之什) 제10편 남해(南陔)[笙詩]

 171 小雅 백화지십(白華之什) 제1편 백화(白華) [笙歌,笙詩]

 172 小雅 백화지십(白華之什) 제2편 화서(華黍)[笙歌,笙詩]

 174 小雅 백화지십(白華之什) 제4편 유경(由庚)[笙歌,笙詩]

 176 小雅 백화지십(白華之什) 제6편 숭구(崇丘)[笙歌,笙詩]

 178 小雅- 南有嘉魚之什-유의(由儀) [笙歌,笙詩]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911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www.chinabang.co.kr/gudaiwenxue/shi/shijing.htm

 

시 경( 詩 經 )

 

≪시경(詩經)≫은 중국 최초의 시가총집인 동시에 중국 순문학의 시조이다. ≪시경≫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 3000여년 전인 서주(西周) 초기로부터 춘추(春秋) 중기에 이르는 약 500여년간의 시가 305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경≫은 당시에 민의(民意)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하여 채시(采詩), 진시(陳詩), 헌시(獻詩) 등의 방법에 의하여 수집되었다. 민간가요와 사대부들의 작품 및 신에게 제사 드리는 송사(頌辭)가 포함되어 있는 ≪시경≫에는 풍부한 언어, 사회학적 자료가 내재되어 있다.

 

1. <시경>의 명칭

 

"시경"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옛날에는 단지 그것을 "시(詩)" 또는 "시삼백(詩三百)"이라고 칭하였으며, ≪역(易)≫, ≪서(書)≫, ≪예(禮)≫, ≪춘추(春秋)≫ 등과 마찬가지로 "경(經)"이란 존칭이 없었다. 물론 전국시대 말기부터 이미 "육경(六經: 詩, 書, 樂, 易, 禮, 春秋)"이니 하는 말은 있었지만, 후세의 ≪십삼경(十三經)≫ 중에서 ≪효경(孝經)≫을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모두 서명(書名) 뒤에 "경(經)"자를 붙여 "시경(詩經)"이나 "역경(易經)" 등으로 칭하지 않았다.

 

책의 이름으로서 "시" 뒤에 "경"자가 붙여진 것은 남송(南宋) 초엽 요강(廖剛)의 ≪시경강의(詩經講義)≫가 가장 빠른 듯하다. 그 후에 이러한 기풍은 매우 유행하여 명대(明代) 이후에는 ≪시≫, ≪서≫, ≪역≫ 등의 경서에 "경"자가 붙여진 말이 더 흔히 쓰이게 된다. "경"자는 이들 책을 높이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2. <시경>의 편집

 

≪시경≫의 시가 300여편으로 정착되기에는 그 과정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산시설(刪詩說), 채시설(采詩說), 헌시설(獻詩說), 진시설(陳詩說) 등이 있다.

 

옛날에는 시를 채집하는 관리가 각 지방의 시가를 모아 오면 임금은 그것을 보고 민심의 동향을 알아내어 행정(行政)에 참고하였다. ≪시경≫은 이러한 채시관(采詩官)들이 모은 시로 이루어진 것인데, 공자(孔子)가 그것의 편차(編次)를 지금의 형태로 정리하였다.

 

3. 삼가시(三家詩)

 

한초(漢初)에 ≪시경≫을 전한 사람으로 신배공(申培公)과 원고생(轅固生) 및 한영(韓嬰)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금문(今文)으로 된 ≪시경≫을 전하였으며, 후세에 이들을 "삼가시(三家詩)"라 부르게 되었다.

 

1) 노시(魯詩) : 노나라 사람인 신배공이 전한 시. 서진(西晋)시대에 없어졌다.

 

2) 제시(齊詩) : 제나라 사람인 원고생이 전한 시. 위대(魏代)에 없어졌다.

 

3) 한시(韓詩) : 연(燕)나라 사람인 한영이 전한 시. 삼가시 중에서 생명이 가장 길어 당대(唐代, 또는 北宋)까지 존재하였으며, 지금도 ≪외전10권(外傳十卷>≫이 전해지고 있다.

 

서한 때에 성행한 삼가시가 모두 후세에 전하지 않게 된 것은 삼가시를 공부한 학자들이 학관으로 출세하는 대신 경(經)을 빌어 그 시대의 정치원리를 설명할 목적으로 시의 대의를 억지 해석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즉 그 시대의 정치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시의 대의 파악은 곧 그 시대가 지나고 나면 거의 가치가 없는 게 되고 말기 때문에 삼가시는 일찍이 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4. 모시(毛詩)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가시는 일찍이 실전되어 송대 이후로는 고문(古文)인 ≪모시(毛詩)≫만이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통 읽고 있는 ≪시경≫이란 모두가 ≪모시≫인 것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모시(毛詩)≫ 29권과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 30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뒤의 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가장 오래된 시경의 판본이며 그 해설서이다.

 

≪모시≫는 조(趙)나라 사람인 모공(毛公)이 전한 시를 말한다. 모공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대모공(大毛公)은 모형(毛亨), 소모공(小毛公)은 모장(毛萇)이라는 설이 있으나 믿기 어렵다.

 

≪모시≫에는 맨 앞머리에 자하(子夏)의 작(作)이라는 <대서(大序)>가 있고, 각 시의 앞머리에는 자하와 모공의 합작이라는 <소서(小序)>가 있어 시의(詩意)를 설명하고 있다.

 

삼가시에 비하여 ≪모시≫는 서한 때 학관에 오르지 못하여 비교적 착실한 훈고에 노력하고 있고, 동한 때에 ≪모시≫를 보충 해설한 ≪전(箋)≫을 쓴 정현(鄭玄) 같은 대학자가 나오기도 하였기 때문에 ≪모전(毛傳)≫이 유일하게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5. <시경>의 내용

 

≪시경≫에는 모두 305수의 시가 실려 있으며, 이들은 다시 풍(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외에도 ≪모시(毛詩)≫ 가운데는 내용은 없고 제목만 남아 있는 것이 6수가 있다.

 

1) 풍(風) :

 

옛날 학자들은 "풍(風)"자를 "풍자(諷刺)" 또는 "풍유(諷諭)"의 뜻을 지닌 "풍(諷)"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풍(風)"을 현대 중국어의 민간가요라는 뜻인 "풍요(風謠)로 풀이하고 있다.

 

"풍"자에 "국(國)"자를 덧붙여 "국풍(國風)"이라 한 것은 전국시대 말엽부터 시작된 듯 한데, 이것은 여러 나라의 민요라는 뜻이다. 국풍 속에는 주남(周南), 소남(召南), 패(邶), 용(鄘), 위(衛), 왕(王), 정(鄭), 제(齊), 위(魏), 당(唐), 진(秦), 진(陳), 회(檜), 조(曹), 빈(豳) 등 15국의 민요가 실려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작자를 알 수 없는 것으로 후인의 윤색을 거친 민간가요들이다.

 

≪시경≫ 305편 중에서 160편을 차지하는 국풍은 가장 우수하면서도 현실주의 특색을 구비한 작품이다. 그것은 생동적이면서도 소박한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가장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 내용은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이나 농촌의 생활,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 등을 묘사한 것으로 제재의 폭이 아주 넓으며, 특히 정풍(鄭風), 제풍(齊風), 위풍(衛風)에는 연정시가 많다.

 

①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그들의 가슴에 가득한 분노와 한,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동경을 묘사한 것으로 <칠월(七月, 豳風)>, <벌단(伐檀, 魏風)>, <석서(碩鼠, 魏風)> 등이 있다.

 

② 가혹한 부역과 병역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한을 묘사한 것으로 <보우(鴇羽, 唐風)>, <파부(破斧, 빈풍)>, <동산(東山, 빈풍)>, <무의(無衣, 秦風)> 등이 있다.

 

③ 통치계층의 황음무도함을 폭로하고 풍자한 것으로 <신대(新臺, 邶風)>, <남산(南山, 齊風)>, <주림(株林, 陳風) 등이 있다.

 

④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노래한 것이 있는데, <건상(褰裳)>, <출기동문(出其東門)>, <진유(溱洧)>(이상 鄭風),

<목과(木瓜), <상중(桑中)>(이상 衛風),

<대거(大車)>, <채갈(采葛)>(이상 王風),

<정녀(靜女, 패풍)> 등은 청춘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한 아름다운 시편이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사랑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여인의 불행을 노래한 <장중자(將仲子, 鄭風)>, <맹(氓, 衛風)>, <곡풍(谷風, 패풍)> 등도 있다.

 

2) 아(雅) :

 

옛날에는 "하(夏)"자와 음이 비슷하여 가끔 통용되기도 하였다. 하(夏)는 우(禹)임금이 세웠던 나라로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황하유역 일대에 걸친 땅이다. 각국의 국풍들이 여러 나라에 유행하던 토속적인 악조임에 비추어 "아"는 중원일대에 유행하여 조정에서 숭상되던 정악(正樂)이었다.

 

"아(雅)"에는 바르다는 뜻이 있다. 당시에 사람들은 주왕조가 직접 통치하던 지역의 음악을 바른 소리로 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풍이 그 시대의 속악(俗樂)이라면, "아"는 당시 궁전의 "아악(雅樂)"과 같았던 것이다. "아"는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구분되는데, 이를 음악에 따른 구분으로 보기도 하고, 창작 시기에 따른 구분으로 보기도 한다.

 

① 소아 : 총 74편이며(제목만 있는 6편을 포함하면 80편) 잔치하고 즐길 때의 음악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부분 주왕실의 쇠퇴와 평왕(平王)의 동천(東遷)이라는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현실을 비판하고 상란(喪亂)을 반영한 시도 많다. 그 중에서 <초지화(苕之華)>와 <하초불황(何草不黃)>은 통치계층의 착취와 이에 대한 백성들의 분개를 표출한 것으로 대중적 색채가 강하다.

 

② 대아 : 총 31편이며 조회에 사용되던 음악으로 축복과 훈계를 노래한 가사이다. 가창의 대상은 주로 천자, 군자, 가빈(嘉賓)과 같은 통치계층들이었으며, 그 내용은 대체로 귀빈을 접대하는 것, 제후에게 상을 하사하는 것, 병사들을 위로하는 것 등이다. 대아 중에서도 <생민(生民)>, <공유(公劉)>, <면(綿)> 등의 5편은 후직(后稷), 고공단보(古公亶父)로부터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묘사한 것으로 내용이 생동감 있고 조리가 분명하여 민족사시(民族史詩)라 일컬어진다. 어떤 것들은 신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들의 조상을 신격화하였지만 그속에 노동인민의 지혜와 역량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대아와 소아의 시들은 대부분 사대부들의 작품으로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허탈하여 진지한 맛이 없으므로 국풍에 비할 바가 못된다.

 

 

3) 송(頌) :

 

주송(周頌)과 노송(魯頌), 상송(商頌)으로 나누어지는데, 주송 31편, 노송 4편, 상송 5편이다.

 

"송(頌)"은 "형용" 또는 "모습"이라는 "용(容)"과 상통하는 것으로 "노래에 춤을 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송"의 내용은 제사지낼 때 신을 찬양하거나 조상들의 은덕을 찬송하는 것이다.

 

① 주송 : 서주 초기에 생겨난 것으로 주왕조의 종묘 제사에 사용된 가무곡(歌舞曲)이다. 하늘에 대한 경외(敬外)와 조상에 대한 찬송이 주종을 이루며 종교적 색채가 짙다. 예술적인 면에서는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해 그 가치가 높지 않다.

 

② 노송 : 춘추 전기 노(魯)나라에서 조상과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음악이다.

 

③ 상송 : 춘추 전기 송(宋)나라에서 조상과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음악이다.

 

 

4) 부, 비, 흥(賦比興)

 

113 위풍 제7편 석서3장(碩鼠三章)-比也

http://blog.paran.com/kydong/35636596

 

"풍, 아, 송"이라는 분류 외에도 ≪시경≫은 "부(賦), 비(比), 흥(興)"으로도 나누어진다. 주자(朱子)의 견해에 따르면, "부"는 대상을 직접 길게 펼쳐 쓰는 것이고, "비"는 빗대는 것, "흥"은 먼저 다른 대상을 읊은 다음 읊고 싶은 대상을 읊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견해는 ≪시경≫을 문자화 이후의 읽는 시로만 잘못 생각하여 그 표현방식을 나누어 본 것이다.

 

그러나 ≪시경≫은 원래 문학 이전의 음악이었으므로 ≪시경≫을 문자화 이전의 노래로 볼 때 "부, 비, 흥"은 시의 표현방식이 아니라 노래 또는 연주의 표현방식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주자의 견해는 간명하게 정리될 수 있다. 즉, "부"는 독창, "비"는 주고받는 노래(對唱), "흥"은 멕이고 받는 노래(독창+중창)이다.

 

≪주례(周禮)≫에서 "육시(六詩)"라 하여 "풍·아·송"과 "부·비·흥"을 나누지 않고 함께 언급하면서도 그 순서도 "풍·부·비·흥·아·송"으로 뒤섞어 놓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육시 전체를 음악적으로 다룬 것이었다. 그 후 한대(漢代)에 이르러 ≪시경≫은 이미 가사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음악적 기준에 따른 "부·비·흥"의 분류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시경≫을 최초로 해석한 한대의 ≪모전(毛傳)≫도 "부·비·흥"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한 채 사승관계에 따라 물려받은 대로 작품들을 각기 "부·비·흥"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6. <≪시경≫>의 문학적 성격

 

≪시경≫은 시가집이면서도 육경(六經)의 하나로 사람들에게 읽혀진 것이다. 그리고 시경 속에는 부인할 수 없는 갖가지 아름다운 서정이 상당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시경≫의 시들은 4언이 기본형식을 이루고 있지만, 3언 5언 등 잡언도 상당히 섞여 있다.

 

또 ≪시경≫의 시들은 서정시, 사회시, 전례시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서정시는 중국 정통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성격의 것으로 발전하고, 사회시는 공용적인 문학론의 근거가 되며, 전례시는 고대의 시의 실용적인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시경≫ 305편은 실로 주대(周代)에 있어서 북방문학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전체 중국문학의 원천이다. 이처럼 가치 있는 시경문학은 후대의 4언, 5언, 7언, 부(賦)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또 산문이나 기타 문학 분야에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인근 여러 나라에 까지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니 실로 동양문학의 연원이라 말할 수 있다.

 

≪시경≫은 유럽 최초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인 호머(Homeros, 荷馬)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 伊利亞特)>와 <오딧세이(Odyssey, 奧德賽)>보다도 약간 빠르다.

 

 

7. ≪시경≫의 예술적 특징

 

1) 묘사의 기법이 지극히 소박하며 싯구를 중복하여 여운이 길다.

 

2) 일정한 시형이나 구격이 없다. 대부분 4언을 위주로 하면서도 장단구를 자연스럽게 운용하여 격조가 활발하고 리듬감이 있다.

 

3) 상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묘사 방법을 사용하고 추상적인 말은 피했다.

 

4) 쌍성(雙聲), 첩운(疊韻), 첩자(疊字) 등을 사용하여 시가의 서정성과 언어의 표현력을 강화시키고 음운상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