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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갑이 동(桐)땅으로 보내져 반성케 하다.
伊尹曰(이윤왈)
태갑이 여전히 고치지 않자 이윤이 또 말하였다.
玆乃不義(자내불의)
"그분의 의롭지 못함은,
習與性成(습여성성)
불의에 젖어들어 이미 그의 성격으로 굳어진 때문인데,
予弗狎于弗順(여불압우불순)
나는 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낼 수가 없소.
營于桐宮(영우동궁) 密邇先王其訓(밀이선왕기훈)
동(桐) 땅에 궁을 짓고, 선대의 탕왕 곁에서 교훈을 받게 하여,
無俾世迷(무비세미)
그를 한평생 미혹되지 않게 합시다"
王徂桐宮居憂(왕조동궁거우)
태갑은 이에 동군으로 가서 머물며 반성하게 되었는데,
克終允德(극종윤덕)
마침내 진실한 덕을 갖추게 되었다.
*이윤은 태갑의 태도가 변하지않는 것을 보고서 탕왕의 무덤이 잇는 동(桐)땅에 새롭게 궁궐을 짓고 그
곳에 거처하게 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오로지 탕왕의 무덤을 매일같이 봄으로써 탕왕의 교훈을 되새겨
반성시키고자 한 것이었다.그래서 태갑은 동땅의 궁에서 기거하는 3년동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덕
을 닦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윤은 전제군주 제도 아래에서도 단연코 왕을 내쫓아 자기의 잘못을 반
성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왕권이 보다 강화된 후대에 와서는 일개 신하가 왕을 내쫓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상나라 때만 하여도, 정치의 근본 목적이 백성들을 복되게 하는데 이었고, 덕을 갖추지
못하면 임금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던 세상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더
구나 이윤은 백성들의 삶을 소중하게 여겼던 현인이었으므로, 이와 같은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맹자도 말하기를,
"이윤처럼 고결한 뜻을 지닌 사람이기에 태갑을 능히 뉘우치게 하는 공을 세울 수 있었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왕위를 찬탈하는 역신(逆臣)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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