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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IT_K0549_T_005 URL복사 통합뷰어 014_0539_a_01L대지도론 제5권 014_0539_a_01L大智度初品中摩訶薩埵釋論第九卷第五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539_a_0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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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度初品中菩薩功德釋論第十

10. 초품 중 보살의 공덕을 풀이함

 

【經】皆得陀羅尼及諸三昧行空無相無作已得等忍。 

 

【論】問曰。何以故。以此三事次第讚菩薩摩訶薩。

  [論] [문] 무슨 까닭에 이 세 가지 일로써 차례차례 보살마하살을 찬탄하는가?

答曰。欲出諸菩薩實功德故。應讚則讚應信則信。以一切衆生所不能信甚深淸淨法。讚菩薩。復次先說菩薩摩訶薩名字。未說所以爲菩薩摩訶薩。以得諸陀羅尼三昧及忍等諸功德故。名爲菩薩摩訶薩。

  [답] 보살들의 실다운 공덕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찬탄해야 할 일은 찬탄하고 믿어야 할 일은 믿어야 하나, 온갖 중생들이 믿기 어려운 매우 깊고 청정한 법으로써 보살을 찬탄하셨다. 

  또한 앞에서 보살마하살의 명호를 설명했지만 아직도 보살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말하지 못했는데, 모든 다라니와 삼매 및 인(忍) 등의 모든 공덕을 얻는 까닭에 일컬어 보살마하살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已知次第義。何以故名陀羅尼。云何陀羅尼。

  [문] 그 순서는 이미 알았지만 어째서 다라니라 하는가? 무엇을 다라니라 하는가?

答曰。陀羅尼秦言能持。或言能遮。能持者。集種種善法。能持令不散不失。譬如完器盛水水不漏散。

 [답] 다라니는 진나라에서는 능지(能持)라 하며, 혹은 능차(能遮)라 하기도 한다. 능지라 함은 갖가지 착한 법을 모으고 능히 지니어 흩어지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니, 마치 빈틈없는[完] 그릇에 물을 담으면 새지 않는 것과 같다. 

能遮者。惡不善根心生。能遮令不生。若欲作惡罪。持令不作。是名陀羅尼。

 능차라 함은 착하지 못한[不善根]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싫어하고 능히 막아 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나쁜 죄를 지으려 하면 막아서[持]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다라니라고 한다.

是陀羅尼或心相應。或心不相應。或有漏或無漏。無色不可見無對一持一入一陰攝。法持法入行陰九智知(丹注云除盡智)一識識(丹注云一意識)。阿毘曇法 陀羅尼義如是。 

  이 다라니는 마음과 상응하기도 하고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도 하며,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며, 무색(無色)이어서 볼 수 없으며, 대상이 없으며[無對], 한 계[持]75)이고 한 입(入)76)이고 한 음섭[一陰攝]이며, 9지지(智知)77)이며, 한 의식으로 알며[一識識], 아비담법(阿毘曇法)이다.  다라니의 뜻은 이와 같다.

 

復次得陀羅尼菩薩。一切所聞法以念力故。能持不失。

  또한 다라니를 얻은 보살은 온갖 들은 법을 기억력에 의하여 잘 간직하여 잃지 않는다. 

復次是陀羅尼法常逐菩薩。譬如間日瘧病。

  또한 이 다라니의 법은 항상 보살을 뒤쫓나니, 마치 한낮의 학질병과 같다. 

是陀羅尼不離菩薩。譬如鬼著。是陀羅尼常隨菩薩。如善不善律儀。

  이 다라니가 보살을 여의지 않음은 마치 귀신이 붙은 것 같으며, 이 다라니가 항상 보살을 따름은 마치 선(善)ㆍ불선(不善)의 율의와 같다.

復次是陀羅尼。持菩薩不令墮二地坑。譬如慈父愛子。子欲墮坑。持令不墮。

  또한 이 다라니는 보살을 잘 보호하여 두 경지[地]78)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나니,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이 구덩이에 빠지려 하거든 보호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復次菩薩得陀羅尼力故。一切魔王魔民魔人。無能動無能破無能勝。譬如須彌山凡人口吹不能令動。

  또한 보살은 다라니의 힘을 얻었으므로 온갖 마왕(魔王)79)이나 마민(魔民)이나 마인(魔人)이 능히 흔들지 못하고 깨뜨리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나니, 마치 수미산을 예사 사람이 입으로 불어서는 끄덕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問曰。是陀羅尼有幾種。

  [문] 이 다라니에는 몇 종류가 있는가?

答曰。是陀羅尼多種。一名聞持陀羅尼。得是陀羅尼者。一切語言諸法耳所聞者皆不忘失。是名聞持陀羅尼。

  [답] 이 다라니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문지(聞持)다라니라 한다. 이 다라니를 얻은 이는 온갖 이야기와 모든 법을 귀에 스치기만 하면 모두  잃지 않는다. 이것이 문지다라니이다.

復有分別知陀羅尼。得是陀羅尼者。諸衆生諸法大小好醜分別悉知。如偈說。

  또한 분별지(分別知)다라니가 있으니, 이 다라니를 얻은 이는 모든 중생과 모든 법의 크고 작음과 좋고 나쁨을 분별해서 남김없이 안다.

이런 게송이 있다.

. 諸象馬金 木石諸衣 

 

 男女及水 種種不同 

  모든 코끼리?말?금 따위와

  나무?돌?옷가지들과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물은

  갖가지로 모두가 똑같지 않다.

 

 諸物名一 貴賤理殊

 

 得此總持 悉能分別

  모든 물건들 이름은 하나이나

  귀하고 천한 이치는 다르니

  이 총지를 얻는다면

  모두를 분별해 알 수 있다. 

 

復有入音聲陀羅尼。菩薩得此陀羅尼者。聞一切語言音。不喜不瞋。一切衆生如恒河沙等劫。惡言罵詈心不憎恨。

  또한 입음성(入音聲)다라니가 있으니, 이 다라니를 얻으면 온갖 소리를 들어도 좋아하거나 성내지 않는다. 만약에 모든 중생들이 항하의 모래수 만큼 오랜 겁 동안 욕을 하고 매도한다고 해도 마음으로 증오하거나 원한을 품는 일이 없는 것이다.

 

問曰。菩薩諸漏未盡。云何能如恒河沙等劫。忍此諸惡。

  [문] 보살은 모든 누(漏)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겁 동안에 이러한 거친 일[惡]을 참는가?

答曰。我先言得此陀羅尼力故能爾。復次是菩薩雖未盡漏。大智利根能思惟。除遣瞋心作是念。若耳根不到聲邊。惡聲著誰。又如罵聲聞便直過。若不分別誰當瞋者。

  [답] 내가 먼저 말하기를 “이 다라니의 힘을 얻는 까닭에 능히 그렇게 된다”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 보살은 비록 모든 누가 다하지는 못했으나 큰 지혜와 예리한 감관으로 능히 사유해, 성내는 마음을 제해 버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에 귀[耳根]가 소리 곁으로 가지 않거늘 욕하는 소리가 어디에 붙으랴. 또한 매도하는 소리를 들어도 못들은 채 곧장 지나가나니, 만약에 분별치 않는다면 누가 성을 낼 것인가.”

凡人心著吾我。分別是非而生恚恨。

  범부들의 마음은 나[吾我]에 집착되어서 시비를 분별하고는 성내고 억울해 한다.

復次若人能知諸言隨生隨滅前後不俱則無瞋恚。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말이란 좇아 일어나고 좇아 사라져서 앞과 뒤가 함께하지 않는 줄 알면 곧 성낼 일이 없어진다.

亦知諸法內無有主。誰罵誰瞋。若有人聞殊方異語。此言爲好彼以爲惡。好惡無定雖罵不瞋。

  또한 모든 법이 안으로 주체가 없음을 안다면 누가 꾸짖고 누가 성을 내겠는가. 가령 어떤 사람이 다른 지방말[異語]을 들었을 때에 자기네 말은 좋게 여기고 다른 말은 나쁘게 여기거나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비록 꾸짖는다 해도 성내지 않게 된다. 

若有人知語聲無定則無瞋喜。如親愛罵之。雖罵不恨。非親惡言聞則生恚。

  또한 어떤 사람이 말이나 소리에 정해진 것이 없는 줄 알면 성내거나 기뻐할 일이 없게 된다. 마치 친하고 사랑하는 이가 꾸짖으면 비록 꾸짖어도 원통하지 않지만, 친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이가 꾸짖으면 듣자마자 성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

如遭風雨則入舍持蓋。如地有刺則著鞾鞋。大寒燃火熱時求水。如是諸患但求遮法而不瞋之。

  비바람을 만나면 집으로 들어가거나 우산을 들고, 땅에 가시가 있으면 가죽신을 신고, 날씨가 크게 추우면 불을 피우고, 더울 때에는 물을 구하나니, 이러한 모든 환란에 다만 막는 법만을 구할지언정 성내지 않는다.

罵詈諸惡亦復如是。但以慈悲息此諸惡不生瞋心。

  꾸짖거나 욕하는 이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하니, 오직 자비로써 모든 악(惡)을 그치게 할지언정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復次菩薩知諸法不生不滅其性皆空。若人瞋恚罵詈。若打若殺如夢如化。誰瞋誰罵。

  또한 보살은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그 성품이 모두 공한 줄 안다. 가령 어떤 이가 성내고 꾸짖거나 혹은 때리거나 혹은 해치려 하더라도 꿈같고 환[化]같이 여기나니, 성내는 이가 누구이며, 꾸짖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復次若有人如恒河沙等劫。衆生讚歎。供養衣食臥具醫藥華香瓔珞。得忍菩薩其心不動不喜不著。

  또한 어떤 사람을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중생들이 찬탄하고, 의복?음식?와구?의약과 영락 등으로 공양하더라도, 법인을 얻은 보살80)이라면 그 마음이 흔들리거나 기뻐하거나 집착되지 않는다. 

 

問曰。已知菩薩種種不瞋因緣。未知實讚功德而亦不喜。

[문] 이미 보살이 성내지 않는 갖가지 인연은 알았다. 그렇다면 진실로 공덕을 찬탄함을 알지 못한 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答曰。知種種供養恭敬是皆無常。今有因緣故來讚歎供養。後更有異因緣則瞋恚。若打若殺。是故不喜。

  [답] 갖가지 공양과 공경이 모두가 무상한 줄 아는 것이다. 지금은 까닭이  있어서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지만 나중에 다른 인연이 있으면 다시 성내거나 때리거나 혹은 해하려 할 것이기에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復次菩薩作是念以我有功德智慧故來讚歎供養。是爲讚歎功德非讚我也。我何以喜。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공덕과 지혜가 있는 까닭에 찾아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는 공덕을 찬탄하기 위함이지 나를 찬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겠는가.’ 

復次是人自求果報故。於我所作因緣。供養我作功德。譬如人種穀。漑灌修理地亦不喜。

  또한 이 사람이 스스로의 과보를 구하는 까닭에 내가 만든 인연에 대해서 공양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곡식을 심고 물을 대고 다듬는다고 해서 땅이 기뻐하지 않는 것과 같다.

復次若人供養我。我若喜受者。我福德則薄他人得福亦少。以是故不喜。

  또한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공양할 때, 내가 기꺼이 받는다면 나의 복덕은 엷어지고 다른 이의 복덕 역시 적어진다.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는다. 

復次菩薩觀一切法如夢如響。誰讚誰喜。我於三界中未得脫。諸漏未盡未得佛道。云何得讚而喜。若應喜者唯佛一人。何以故。一切功德都已滿故。

  또한 보살은 온갖 법이 꿈같고 메아리 같은 줄로 관찰한다. 그러니 찬탄하는 이가 누구이며, 기뻐하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나는 삼계 안에서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가 다하지 못했고, 불도도 얻지 못했거늘 어떻게 찬탄을 얻었다 해서 기뻐하겠는가. 만일 기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오직 부처님 한 사람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의 공덕이 이미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是故菩薩得種種讚歎供養供給心不生喜。如是等相名爲入音聲陀羅尼。

  그러므로 보살은 갖가지로 찬탄 받고 공양 받는다 해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러한 모습을 입음성(入音聲)다라니라 한다. 

復有名寂滅陀羅尼無邊旋陀羅尼隨地觀陀羅尼威德陀羅尼華嚴陀羅尼音淨陀羅尼虛空藏陀羅尼海藏陀羅尼分別諸法地陀羅尼明諸法義陀羅尼。如是等略說五百陀羅尼門。若廣說則無量。以是故言諸菩薩皆得陀羅尼。

  또한 적멸(寂滅)다라니ㆍ무변선(無邊旋)다라니ㆍ수지관(隨地觀)다라니ㆍ위덕(威德)다라니ㆍ화엄(華嚴)다라니ㆍ음정(音淨)다라니ㆍ허공장(虛空藏)다라니ㆍ해장(海藏)다라니ㆍ분별제법지(分別諸法地)다라니ㆍ명제법의(明諸法義)다라니가 있다. 이러한 다라니문이 간략히 말해서 5백 개가 있으며,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량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모두 다라니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諸三昧者。三三昧空無作無相。有人言。

  모든 삼매라 함은 세 가지 삼매이니, 공(空)?무작(無作)?무상(無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觀五陰無我無我所。是名爲空。住是空三昧。不爲後世故起三毒。是名無作。緣離十相故。五塵男女生住滅故。是名無相。

  “5음(陰)81)이 나 없고 내 것 없음을 관찰하면 이를 공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공삼매(空三昧)82)에 머물러서 뒷세상을 위하여 3독(毒)83)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를 무작이라 일컬으며, 열 가지 모습의 법인 5진(塵)과 남ㆍ녀ㆍ생?주?멸을 여읨에 연하는 까닭에 무상이라 일컫는다.” 

有人言。住是三昧中知一切諸法實相。所謂畢竟空。是名空三昧。知是空已無作。云何無作。不觀諸法若空若不空若有若無等。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삼매 가운데 머물러서 모든 법의 실상(實相), 즉 필경공(畢竟空)을 아나니, 이를 공삼매라 한다. 이러한 공을 알고 나면 곧 무작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무작이겠는가? 모든 법이 공하거나 혹은 불공이거나 혹은 있거나 혹은 없음 등을 보지 않는 것이다.”

如佛說法句中偈。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구(法句)에 이런 게송이 있다. 

 

 見有則恐怖  見無亦恐怖

 

 是故不著有  亦復不著無

  있음[有]을 보면 곧 두려워하고

  없음[無]을 보아도 두려워하니

  그러므로 유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是名無作三昧。

云何無相三昧。一切法無有相。一切法不受不著。是名無相三昧。如偈說。

  이것이 무작삼매이다. 

  어떤 것이 무상삼매(無相三昧)84)인가? 온갖 법은 형상이 없으니,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를 무상삼매라 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言語已息  心行亦滅 

 

 不生不滅  如涅槃相

  언어의 길이 이미 끊겼고

  심행(心行)도 사라졌도다.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그대로가 열반의 모습이다.

 

復次十八空是名空三昧。種種(丹注云五道生有本有死有中有業)有中心不求。是名無作三昧。一切諸相破壞不憶念。是名無相三昧。

  또한 18공(空)을 공삼매85)라 하고, 갖가지[단주(丹注)에는 5도(道)에서의 생유(生有)ㆍ사유(死有)ㆍ중유(中有)의 업이라 하였다.] 유(有)에서 구하는 마음 없는 것을 무작삼매라 하고, 온갖 형상이 파괴되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무상삼매라 한다. 

 

 

問曰。有種種禪定法。何以故。獨稱此三三昧。

  [문] 갖가지 선정(禪定)의 법이 있거늘 어찌하여 이 세 가지 삼매만을 일컫는가?

答曰。是三三昧中思惟近涅槃故。令人心不高不下平等不動。餘處不爾。以是故獨稱是三三昧。

  [답] 이 세 가지 삼매 가운데 행하는 사유는 열반에 가깝기 때문이니, 사람의 마음을 들뜨거나 위축시키지도 않으며 평등하게 해주어 요동치 않게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삼매만을 일컫는다. 

餘定中或愛多或慢多或見多。是三三昧中。第一實義實利能得涅槃門。

  다른 선정에서는 애착[愛]이 많아지기거나 혹은 교만이 많아지거나 혹은 사견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이 세 가지 삼매의 으뜸가는 진실한 뜻은 실로 예리해서 능히 열반의 문을 얻게 한다.

以是故。諸禪定法中。以是三空法爲三解脫門。亦名爲三三昧。是三三昧實三昧故。餘定亦得名定。

  그러므로 여러 선정법 가운데서 이 세 가지 선정법을 해탈문으로 삼으며, 또한 3삼매(三昧)86)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삼매가 진실한 삼매인 까닭에 다른 선정 역시 선정[定]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復次除四根本禪。從未到地乃至有頂地。名爲定。亦名三昧非禪。

  또한 네 가지 근본선(根本禪)87)을 제외한 미도지(未到地)88)에서 유정지(有頂地)89)에 이르기까지를 정(定)이라 하고, 또한 삼매라고도 한다. 

四禪亦名定亦名禪亦名三昧。諸餘定亦名定亦名三昧。

비선(非禪)의 네 선정[四禪]90)도 정(定)이라고도 하고 선(禪)이라고도 하고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如四無量四空定四辯六通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等諸定法。

그 밖의 다른 선정들도 정이라 하고 삼매라 하니, 이른바 4무량(無量)ㆍ4변(辯)?6통(通)91)ㆍ8배사(背捨)92)ㆍ8승처(勝處)93)ㆍ9차제정(次第定)94)ㆍ10일체처(一切處)95) 등의 선정법들이 그것이다.

復有人言。一切三昧法有二十三種。有言六十五種。有言五百種。

또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삼매의 법에는 23종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65종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5백 종이 있다” 한다. 

摩訶衍最大故無量三昧。所謂遍法性莊嚴三昧。能照一切三世法三昧。不分別知觀法性底三昧。入無底佛法三昧。如虛空無底無邊照三昧。如來力行觀三昧。佛無畏莊嚴力嚬呻三昧。法性門旋藏三昧。一切世界無礙莊嚴遍月三昧。遍莊嚴法雲光三昧。菩薩得如是等無量諸三昧。

  하지만 마하연은 가장 위대한 까닭에 한량없는 삼매가 있다. 이른바 두루 법성을 장엄하는 삼매[遍法性莊嚴三昧]와 능히 일체삼세법을 비추는 삼매[能照一切三世法三昧]와 법성의 끝[底]을 분별치 않고 관찰하는 삼매[不分別知觀法性底三昧]와 끝없는 불법에 드는 삼매[入無底佛法三昧]와 허공과 같이 끝없고 가없이 비추는 삼매[如虛空無底無邊照三昧]와 여래의 힘으로 관찰을 행하는 삼매[如來力行觀三昧]와 부처님의 무외장엄으로 빙그레 웃는 삼매[佛無畏莊嚴力嚬呻三昧]와 법성의 문이 선장(旋藏)하는 삼매[法性門旋藏三昧]와 일체세계가 장애 없이 장엄되어 달에까지 두루 차는 삼매[一切世界無?莊嚴遍月三昧]와 법의 운광(雲光)을 두루 장엄하는 삼매[遍莊嚴法雲光三昧]이니, 보살은 이처럼 한량없는 삼매들을 얻는다.

復次般若波羅蜜摩訶衍義品中。略說則有一百八三昧。初名首楞嚴三昧乃至虛空。不著不染三昧。廣說則無量三昧。以是故說。諸菩薩得諸三昧。行空無相無作者。

  또한 『반야바라밀경』의 「마하연의품(摩訶衍義品)」에서는 약설하여 108 가지 삼매를 말하는데, 처음 수릉엄삼매로부터 허공과 같이 집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삼매[虛空不著不染三昧]에 이르기까지이다. 자세히 말하면 무량 삼매가 있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보살들은 모든 삼매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問曰前言菩薩得諸三昧。何以故。復言行空無相無作。

答曰。前說三昧名未說相。今欲說相。是故言行空無作無相。若有人行空無相無作。是名得實相三昧。如偈說。

  [經]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삼매를 행한다.

  [문] 전에는 말하기를 “보살들이 모든 삼매를 얻었다” 하더니,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공?무상?무작삼매를 행한다” 하는가?

  [답] 전에는 삼매의 이름만을 말했을 뿐 그 모습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 모습을 말하기 위하여 공?무상?무작의 삼매를 행한다 했다. 어떤 사람이 공?무상?무작의 삼매를 행하면 이는 실상(實相)삼매를 얻은 사람이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若持戒淸淨  是名實比丘

 

 若有能觀空  是名得三昧

  계를 지니어 청정하다면

  이를 진실한 비구라 부르고

  능히 공을 잘 관찰한다면

  이를 삼매를 얻었다 한다. 

 

 若有能精進  是名行道人

 

 若有得涅槃  是名爲實樂

  부지런히 정진을 쌓으면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부르고

  만약에 열반을 얻었으면

  이를 진실한 즐거움이라 한다. 

 

已得等忍者。

 

問曰。云何等云何忍。

答曰。有二種等。衆生等法等。忍亦二種衆生忍法忍。云何衆生等。一切衆生中等心等念等愛等利。是名衆生等。

  [論] 이미 등(等)과 인(忍)을 얻었다.

  [문] 무엇을 등이라 하며, 무엇을 인이라 하는가?

  [답] 두 가지 등(等)이 있으니, 중생등(衆生等)과 법등(法等)이다. 인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이다. 

  무엇을 중생등이라 하는가? 곧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ㆍ평등한 생각ㆍ평등한 사랑ㆍ평등한 이익을 주는 것을 중생등이라 한다.

 

問曰。慈悲力故於一切衆生中。應等念。不應等觀。何以故。菩薩行實道不顚倒如法相。云何於善人不善人大人小人人及畜生。一等觀。不善人中實有不善相。善人中實有善相。大人小人人及畜生亦爾。如牛相牛中住。馬相馬中住。牛相非馬中。馬相非牛中。馬不作牛故。衆生各各相。云何一等觀而不墮顚倒。

  [문] 자비의 힘 때문에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생각할지언정 평등하게 관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보살은 진실한 도를 행하여 뒤바뀌지 않고 법의 모습 그대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 대인과 소인, 축생을 동일하게 보는가?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하지 못한 모습이 있고 착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한 모습이 있으며, 대인과 소인, 그리고 축생도 그러할 것이다. 

  마치 소의 모습은 소에게 있고, 말의 모습은 말에게 있어서 소의 모습이 말 가운데 있지 않고 말의 모습이 소 가운데 있지 않는 것과 같으니, 말이 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도 각기 제 모습을 지녔거늘 어찌 동일하게 평등이 관찰하고도 전도(顚倒)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答曰。若善相不善相是實。菩薩應墮顚倒。何以故破諸法相故。以諸法非實善相非實不善相非多相非少相。非人非畜生非一非異。以是故汝難非也。如說諸法相偈。

  [답] 만일 착한 모습과 착하지 않은 모습이 진실이라면 보살은 응당 전도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진실로 착한 모습도 아니요 진실로 착하지 않은 모습도 아니며, 많은 모습도 아니요 적은 모습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요 축생도 아니며, 같음[一]도 아니요 다름[異]도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의 비난은 옳지 못하다. 

  모든 법의 모습을 말씀한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不生不滅  不斷不常 

 不一不異  不去不來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단절도 아니요 영원함도 아니며

  같음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며

  감[去]도 아니요 옴[來]도 아니다. 

 

 因緣生法  滅諸戲論

 佛能說是  我今當禮

  인연으로 생긴 법은

  모든 희론을 멸하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나 이제 마땅히 말해야 하리.

 

復次一切衆生中。不著種種相。衆生相空相一等無異。如是觀。是名衆生等。若人是中心等無礙。直入不退。是名得等忍。得等忍菩薩。於一切衆生不瞋不惱如慈母愛子。如偈說。

  또한 온갖 중생 가운데 갖가지 모습에 집착하지 않아 중생의 모습[衆生相]이나 비어 있는 모습[空相]이 동등한 것으로 다르지 않다고 이처럼 관찰함을 일컬어 중생등이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기에 대하여 마음이 평등해져서 걸림이 없다면 그는 곧장 물러서지 않는 경지[不退]에 들게 된다. 이것을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데, 등과 인을 얻은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성내지 않으며 그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으니,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觀聲如呼響  身行如鏡像

 如此得觀人  云何而不忍

  말소리는 메아리 같고

  몸의 행위는 거울의 모습 같다 보니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인들 참지 못하랴.

 

是名衆生等忍。

  이것을 중생의 등인이라 하는 것이다.

云何名法等忍。善法不善法有漏無漏有爲無爲等法。如是諸法入不二入法門。入實法相門。如是入竟。是中深入諸法實相時。心忍直入無諍無礙。是名法等忍。如偈說。

  무엇을 법의 등과 인이라 하는가? 곧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 등 이와 같은 모든 법에 대해서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고, 실다운 법상(法相)의 문에 든다. 이와 같이 든 뒤에 여기에서 모든 법의 실상에 깊이 들 때에 마음으로 확인[忍]하여 무쟁(無諍)ㆍ무애(無?)에 든다면 이를 법의 등인이라 한다. 

  이러한 게송이 있다. 

 

 諸法不生不滅 非不生非不滅

 

 亦不生滅非不生滅 亦非不生滅

 非非不生滅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멸하지도 않으면서 생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已得解脫(丹注云於邪見得離故言解脫也)空非空(丹注云於空不取故言非也)是等悉捨滅諸戲論言語道斷。深入佛法心通無礙不動不退。名無生忍。是助佛道初門。以是故說已得等忍。

  이미 해탈을 얻어[단주(丹註)에 말하기를 ‘삿된 소견을 여의게 되는 까닭에 해탈이라 한다’ 하였다.] 공(空)과 비공(非空)[단주에 말하기를 ‘공에도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비(非)라 한다’ 하였다.]이라는 이러한 모든 희론을 버리고 없애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불법에 깊이 들어가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흔들리거나 물러남이 없는 것을 무생인(無生忍)이라 한다. 이는 불도를 돕는 첫 문인 까닭에 ‘이미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 것이다.

 

 

【經】得無礙陀羅尼。 

  [經]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다.

 

【論】問曰。前已說諸菩薩得陀羅尼。今何以復說得無礙陀羅尼。

  [論] [문] 앞에서 이미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다 하였는데 이제 어찌하여 다시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다 하는가.

答曰。無礙陀羅尼最大故。如一切三昧中三昧王三昧最大。如人中之王。如諸解脫中無礙解脫大。(丹注云得佛得道時所得也) 如是一切諸陀羅尼中。無礙陀羅尼大。以是故重說。

  [답]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기 때문이니, 마치 모든 삼매 가운데서 삼매의 왕이 가장 크고, 모든 인간 가운데서 왕이 가장 크고, 모든 해탈 가운데서 걸림 없는 해탈이 가장 큰 것과 같다.[단주에 말하기를 ‘부처를 이루고 도를 얻을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했다.] 이와 같이 모든 다라니 가운데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는 것이다.

復次先說諸菩薩得陀羅尼。不知是何等陀羅尼。有小陀羅尼如轉輪聖王仙人等所得聞持陀羅尼分別衆生陀羅尼歸命救護不捨陀羅尼。如是等小陀羅尼餘人亦有。是無礙陀羅尼。外道聲聞辟支佛新學菩薩皆悉不得。唯無量福德智慧大力諸菩薩。獨有是陀羅尼。以是故別說。

  또한 먼저는 보살들이 다라니를 얻었다고는 하였으나 이것이 어떤 다라니인지는 모른다. 작은 다라니가 있으니, 전륜성왕이나 선인 등이 얻는 문지다라니ㆍ분별중생다라니ㆍ귀명구호불사(歸命救護不捨陀羅尼)가 그것이다. 이러한 작은 다라니는 다른 사람들도 얻지만 이 걸림 없는 다라니만은 외도?성문?벽지불?새로 배움에 든[新學] 보살들은 아무도 얻지 못하고, 오직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를 갖춘 대력(大力) 보살들만이 이 다라니를 얻는다. 

  그러므로 달리 말하는 것이다.

復次是菩薩輩。自利已具足。但欲益彼說法敎化無盡。以無礙陀羅尼爲根本。以是故諸菩薩。常行無礙陀羅尼。

  또한 이 보살들은 스스로를 이롭게 함은 이미 갖추어졌으므로 단지 남에게 이득을 주고자 해서 끝없이 법을 설하고 교화하며 걸림 없는 다라니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항상 걸림 없는 다라니를 행한다.

 

【經】悉是五通。 

  [經] 모두가 5통(通)을 얻었다.

【論】如意天眼天耳他心智自識宿命。云何如意。如意有三種。能到轉變聖如意。

  [論] 여의(如意)?천안(天眼)?천이(天耳)?타심지(他心智)?자식숙명(自識宿命)을 말한다.

  무엇을 여의(如意)라고 하는가? 여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능도(能道)와 전변(轉變)과 성여의(聖如意)이다.

 

能到有四種。一者身能飛行如鳥無礙。二者移遠令近不往而到。三者此沒彼出。四者一念能至。

  능도에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몸이 능히 날아다니되 새와 같아서 걸림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먼 곳을 가깝게 만들어 가지 않고도 도달하는 것이요, 

셋째는 여기에서 숨어서는 저기에서 나오는 것이요, 

넷째는 깜빡할 사이에 능히 이르는 것이다. 

 

轉變者。大能作小小能作大一能作多多能作一。種種諸物皆能轉變。外道輩轉變極久不過七日。諸佛及弟子轉變自在無有久近。

전변이라 함은 큰 것을 작게 만들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며, 하나를 많게 만들고 많은 것을 하나로 만드는 등 갖가지 물건을 능히 바꾸어 놓는 것이다. 외도의 전변은 멀어도 7일을 지나지 못하는데 부처님이나 제자들의 전변은 자재로워서 멀고 가까움이 없다. 

聖如意者。外六塵中不可愛不淨物。能觀令淨。可愛淨物。能觀令不淨。是聖如意法唯佛獨有。是如意通從修四如意足生。是如意足通等。色緣故。次第生。不可一時得。

  성여의라 함은 밖의 6진(塵)96)에 대해 사랑스럽지 못하고 부정한 물건을 관하여 정화시키고, 사랑스럽고 깨끗한 물건을 관하여 부정하게 만드니, 이 성여의는 부처님만이 가지신다. 

  이러한 여의통은 4여의족(如意足)을 닦음으로부터 생기며, 이 여의족통 등은 색의 반연인 까닭에 차례차례 생길지언정 일시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天眼通者。於眼。得色界四大造淸淨色。是名天眼。天眼所見。自地及下地六道中衆生諸物。若近若遠若覆若細諸色無不能照。見天眼有二種。一者從報得。二者從修得。是五通中天眼從修得非報得。何以故。常憶念種種光明得故。

  천안통이라 함은 눈에 있어서 색계의 4대로 지어진 청정한 색(色)을 얻는 것이니, 이를 천안이라 한다. 

  천안으로 보이는 곳은 스스로의 경지[地] 및 아래 경지에 있는 6도(道) 중생들로서, 모든 사물의 멀고 가까움, 거칠고 미세함 등 모든 모양[色]을 비추어 보지 못함이 없다. 

  천안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과보에 따라 얻는 것이요, 둘째는 수행에 따라 얻는 것이다.

  이 5신통 가운데 천안은 수행으로 얻을 뿐 과보로 얻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갖가지 광명을 억념해서 얻기 때문이다. 

復次有人言。是諸菩薩輩得無生法忍力故。六道中不攝。但爲敎化衆生故。以法身現於十方三界中。未得法身菩薩。或修得或報得。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보살들은 무생법인의 힘을 얻는 까닭에 6도(道)에 속하지 않지만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에 법신으로써 시방에 현현한다. 삼계 가운데에서 아직 법신을 얻지 못한 보살은 혹은 닦아서 얻기도 하고 혹은 과보로 얻기도 한다.”

問曰。是諸菩薩功德。勝阿羅漢辟支佛。何以故。讚凡夫所共小功德天眼。不讚諸菩薩慧眼法眼佛眼。

  [문] 이 보살들의 공덕이 아라한이나 벽지불보다 수승하거늘 어찌하여 범부들과 함께하는 작은 공덕인 천안만을 찬탄하시고, 보살들의 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은 찬탄하시지 않는가?

答曰有三種天。一假號天二生天三淸淨天。

轉輪聖王諸餘大王等。是名假號天。從四天王天乃至有頂生處。是名生天。諸佛法身菩薩辟支佛阿羅漢。是名淸淨天。

  [답] 하늘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거짓 이름의 하늘[假號天]이요, 둘째는 태어나는 하늘[生天]이요, 셋째는 청정한 하늘[淸淨天]이다.

전륜성왕과 그 밖의 대왕들은 거짓 하늘이라 하고, 사천왕(四天王)97)으로부터 유정천(有頂天)이 태어나는 곳을 태어나는 하늘이라 하고, 부처님ㆍ법신 보살ㆍ벽지불ㆍ아라한들을 청정한 하늘이라 한다. 

是淸淨天修得天眼。是謂天眼通。佛法身菩薩淸淨天眼。一切離欲五通凡夫所不能得。聲聞辟支佛亦所不得。所以者何。小阿羅漢小用心。見一千世界。大用心見二千世界。大阿羅漢小用心。見二千世界。大用心見三千大千世界。辟支佛亦爾。是名天眼通。

  이러한 청정한 하늘에서 닦아 얻는 하늘의 눈을 천안통이라 하다. 부처님의 법신과 보살의 청정한 하늘 눈은 일체의 욕망을 여읜 것으로, 5신통을 얻은 온갖 범부들은 얻지 못하는 바이며, 성문이나 벽지불들도 얻지 못하는 바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작은 아라한이 작게 부리는 마음은 일천세계를 보고 크게 부리는 마음은 이천세계를 보며, 큰 아라한이 작게 부리는 마음은 이천세계를 보고 크게 부리는 마음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벽지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천안통이라 한다. 

云何名天耳通。於耳。得色界四大造淸淨色。能聞一切聲天聲人聲三惡道聲。

  무엇을 천이통이라 하는가? 곧 귀에 있어서 색계의 4대로 지어진 청정한 색을 얻어 능히 일체의 소리, 즉 하늘의 소리, 인간의 소리, 3악도(惡道)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云何得天耳通。修得常憶念種種聲。是名天耳通。

  어떻게 천이통을 얻는가? 수행하여 얻는다. 항상 갖가지 소리를 억념해 내니, 이것을 천이통이라 한다. 

 

云何識宿命通。本事常憶念日月年歲至胎中。乃至過去世中。一世十世百世千萬億世。

乃至大阿羅漢辟支佛。知八萬大劫。諸大菩薩及佛知無量劫。是名識宿命通。

  무엇을 숙명을 아는 신통[識宿命通]이라 하는가? 곧 전생일[本事]을 항상 억념하여 날?달?해로부터 태속의 일, 나아가 과거세 가운데 1세(世),십 세, 백 세, 천만억 세의 일을 아는 것이다. 

  큰 아라한이나 벽지불에 이르러서는 8만 대겁(大劫)의 일을 알고, 보살과 부처님들은 한량없는 겁의 일을 안다. 이를 숙명을 아는 신통이라 한다. 

云何名知他心通。知他心若有垢若無垢。自觀心生住滅時。常憶念故得。復次觀他人喜相瞋相怖相畏相。見此相已然後知心。是爲他心智初門。是五通略說竟。

  무엇을 타심을 아는 신통[知他心通]이라 하는가? 곧 다른 이의 마음에 때[垢]가 있는 것과 때가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나고 머무르고 멸할 때 항상 억념하는 까닭에 얻는다.

  또한 다른 이의 기뻐하는 모습ㆍ성내는 모습ㆍ두려운 모습을 관찰하고는 그 마음을 아나니, 이를 타심지의 첫 문호라 한다. 

  5신통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經】言必信受。 

[經] 말을 하면 반드시 믿어 지녔다.

【論】天人龍阿修羅等。及一切大人。皆信受其語。是不綺語報故。諸綺語報者。雖有實語一切人皆不信受如偈說。

[論] 하늘?인간?용?아수라 등과 모든 큰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믿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꾸밈말을 하지 않은 과보이기 때문이니, 꾸밈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진실한 말을 하여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有墮餓鬼中  火炎從口出

 

 四向發大聲  是爲口過報

  아귀의 길에 빠지면

  불꽃이 입으로부터 솟아서

  사방을 향해 큰 소리를 외치니

  이는 입으로 지은 허물의 과보라.

 

 雖復多聞見  在大衆說法

 

 以不誠信業  人皆不信受

  비록 아는 것이 많아서

  대중 앞에 법을 설하여도

  성실치 못한 업 때문에

  사람들 아무도 믿으려 않는다. 

 

 若欲廣多聞  爲人所信受

 是故當至誠  不應作綺語

  만일에 지식을 넓히고

  남의 믿음을 얻으려 하면

  지극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꾸밈말을 하지 말아라.

  

 

【經】無復懈怠。 

  [經] 다시는 게을러지는 일이 없었다.

【論】懈怠法破在家人財利福利。破出家人生天樂涅槃樂。在家出家名聲俱滅。大失大賊無過懈怠。如偈說。

  [論] 게으름은 집에 있는 사람을 파괴하고, 재물과 복을 파괴하고, 출가인의 생천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부순다. 재가나 출가 모두의 명성을 무너뜨리니, 아무리 큰 실수나 큰 도적이라 해도 게으름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懈怠沒善心  癡闇破智明

 妙願皆爲滅  大業亦已失

  게으름은 착한 마음을 죽이고

  어리석음은 지혜의 빛을 깨뜨리니

  묘한 서원이 모두가 소멸하고

  큰 과업 또한 이미 잃게 되리라.

 

以是故說無復懈怠。

  그러므로 ‘다시는 게을러지는 일이 없었다’ 한 것이다. 

【經】已捨利養名聞。 

  [經] 이미 이양(利養)과 명예[名聞]를 버렸다.

【論】是利養法如賊壞功德本。譬如天雹傷害五穀。利養名聞亦復如是。壞功德苗令不增長。如佛說譬喩。如毛繩縛人斷膚截骨。貪利養人斷功德本亦復如是。如偈說。

  [論] 이 이양이라는 것은 마치 도적과 같아서 공덕의 근본을 무너뜨린다. 마치 우박이 오곡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으니, 이양과 명문도 그와 같아서 공덕의 싹을 파괴하여 자라지 못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터럭 같은 노끈으로 사람의 팔을 묶으면 살이 패이고 뼈가 끊기듯이, 이양을 탐내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공덕의 근본을 끊어버린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得入栴檀林  而但取其葉

 旣入七寶山  而更取水精

  전단 숲에 들어갔건만

  그 잎새만을 따거나

  7보98)의 동산에 들어갔건만

  수정(水精)만을 갖듯이

 

 有人入佛法  不求涅槃樂

 反求利供養  是輩爲自欺

  불법에 들어온 사람이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양을 구한다면

  이런 무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리라.

 

 是故佛弟子  欲得甘露味

 當棄捨雜毒  勤求涅槃樂

  그러므로 불제자들이여,

  감로의 맛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잡스런 독을 버리고

  부지런히 열반의 즐거움 구하라.

 

 譬如惡雹雨  傷害於五穀

 若著利供養  破慚愧頭陀

  마치 거친 우박과 비가

  오곡을 상처 주듯이

  이양과 공양에 집착한다면

  부끄러움 아는 두타를 깨뜨리네.

 

 今世燒善根  後世墮地獄

 如提婆達多  爲利養自沒

  금생에 선근을 불태우면

  후세에는 지옥에 떨어지리니

  마치 제바달다와 같은 이가

  이양 때문에 스스로 멸망하듯이.

 

以是故言已捨利養名聞。

  그러기에 말하기를 “이미 이양과 명예를 버렸다” 한 것이다.

【經】說法無所悕望。 

  [經] 법을 설하되 바라는 바가 없었다.

【論】大慈憐愍爲衆說法。不爲衣食名聲勢力故說大慈悲故。心淸淨故。得無生法忍故。如偈說。

  [論] 큰 자비와 연민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할지언정 의식이나 명성이나 세력을 위해 설하지 않는 것이다. 크게 자비한 까닭이며,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무생법인을 얻은 까닭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多聞辯慧巧言語  美說諸法轉人心

 

 自不如法行不正  譬如雲雷而不雨

  많은 지식과 능한 말투와 지혜로써

  모든 법을 잘 말하여 사람의 마음 움직여도

  스스로가 법답게 행하고 바르지 않으면

  헛 구름 마른 천둥에 비는 오지 않는 것 같다. 

 

 博學多聞有智慧  訥口拙言無巧便

 不能顯發法寶藏  譬如無雷而小雨

  널리 배워 아는 것 많고 지혜 있어도

  어눌한 말솜씨에 묘한 방편 없어서

  가르침의 보장(寶藏)을 드러내지 못하면

  우레도 없이 가랑비만 내리는 것과 같도다. 

 

 不廣學問無智慧  不能說法無好行

 是弊法師無慚愧  譬如小雲無雷雨

  널리 배우지 못하고 지혜 없어서

  설법도 못하고 좋은 행도 없으면

  이 같은 낡은 법사에겐 부끄러움도 없나니

  작은 구름에 우레도 비도 없는 것과 같다. 

 

 多聞廣智美言語  巧說諸法轉人心

 行法心正無所畏  如大雲雷澍洪雨

  많은 지식과 넓은 지혜로 말이 능하며

  묘하게 법을 설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고

  법을 실천함에 마음은 바르고 두려움 없으면

  큰 구름과 우레에 큰 비[洪雨]가 쏟아지는 것과 같다. 

 

 法之大將持法鏡  照明佛法智慧藏

 持誦廣宣振法鈴  如海中船渡一切

  법의 대장이 법의 거울[法鏡] 들고서

  불법의 지혜의 창고를 비추어 내고

  지녀 외우고 널리 펴서 법의 방울 흔들면

  바닷배가 모든 이를 건네주는 것과 같네.

 

 亦如蜂王集諸味  說如佛言隨佛意

 助佛明法度衆生  如是法師甚難値

  꿀벌이 여러 맛을 모으듯이

  부처님의 말과 뜻대로 설명하고서

  부처님을 도와 법을 밝히고 중생을 제도하니

  이러한 법사는 심히 만나기 어렵다. 

 

【經】度甚深法忍。 

  [經] 깊은 법인을 건넜다.

【論】云何甚深法。十二因緣是名甚深法。如佛告阿難。是十二因緣法甚深難解難知。復次依過去未來世生六十二邪見網永離。是名甚深法。如佛語比丘。凡夫無聞若欲讚佛所讚甚小。所謂若讚戒淸淨。若讚離諸欲。若能讚是甚深難解難知法。是爲實讚佛。是中梵網經應廣說。

  [論] 무엇을 깊은 법이라 하는가? 곧 12인연(因緣)을 깊은 법이라 하나니, 부처님에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12인연의 법은 심히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하셨다. 

  또한 과거와 미래 세상에서 62종의 삿된 소견의 그물을 내는 일을 영원히 여의었으니, 이를 깊은 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범부는 들은 바가 없어서 부처님을 찬탄하고자 하여도 찬탄할 바가 심히 적으니, 이른바 계행이 청정함을 찬탄하거나 혹은 모든 애욕을 여의었음을 찬탄하거나 혹은 이 심히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법을 찬탄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 하셨으니, 이에 대해서는 『범망경(梵網經)』99)에서 자세히 설해지고 있다.

 

復次三解脫門。是名甚深法。如佛說般若波羅蜜中諸天讚言。世尊是法甚深。佛言甚深法者空則是義。無作無相則是義。復次解一切諸法相。實不可破不可動。是名甚深法。

  또한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심히 깊은 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는 동안에 여러 하늘이 찬탄하기를 “세존이시여, 이 법은 심히 깊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는 “심히 깊은 법이라 함은, 공(空)이 곧 그러한 뜻이고 무작(無作)ㆍ무상(無相)이 곧 그러한 뜻이니라” 하셨다. 

  또한 모든 법의 모습은 진실하여 파괴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으니, 이것을 심히 깊은 법이란 한다.

 

復次除內心想智力。但定心諸法淸淨實相中住。譬如熱氣盛非黃見黃。心想智力故。於諸法轉觀。是名淺法。譬如人眼淸淨無熱氣。如實見黃是黃。如是除內心想智力。慧眼淸淨見諸法實相。譬如眞水精黃物著中則隨作黃色。靑赤白色皆隨色變。心亦如是凡夫人內心想智力故。見諸法異相。觀諸法實相非空非不空不有非不有。是法中深入不轉無所罣礙。是名度深法忍。度名得甚深法。具足滿無所礙。得度彼岸。是名爲度。

  또한 속마음[內心]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을 제거하고, 오직 집중된 마음[定心]으로 모든 법의 청정한 실상 가운데 머무는 것이다. 마치 눈에 열기가 충만하면 노랗지 않은 것을 노랗다고 보는 것과 같으니, 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에 의하여 모든 법을 움직여서[轉] 본다면, 이를 얕은 법이라 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눈이 청정하여 열기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 노란 것을 노랗다고 보듯이, 이처럼 속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을 제거하고 지혜의 눈이 청정하면 모든 법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건데 진짜 수정을 노란 물건 가운데 두면 곧 따라서 노란빛이 되고, 푸른빛?붉은빛?흰빛의 상대의 색을 좇아 변하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속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 때문에 모든 법의 차별된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있음 아님도 아닌 줄로 알며, 이 법 가운데 깊이 들어가 움직이지 않고 걸림이 없다면 이를 ‘깊은 법인을 건넜다’ 한다. 

  ‘건넜다[度]’고 함은 심히 깊은 법을 얻었음을 말한다. 또한 구족히 원만하여 걸림이 없게 되고 피안에 이르게 된 것을 일컬어 ‘건넜다’고 하는 것이다.

 

【經】得無畏力。 

  [經]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論】諸菩薩四無所畏力成就。

  [論] 모든 보살들은 네 가지 두려움 없는 힘을 성취한다.

問曰。如菩薩所作未辦。未得一切智。何以故。說得四無所畏。

  [문] 보살은 아직 할 일을 끝내지 못했고, 아직 일체지를 얻지 못했거늘 어찌하여 네 가지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하는가?

答曰。無所畏有二種。菩薩無所畏佛無所畏。是諸菩薩雖未得佛無所畏。得菩薩無所畏。是故名爲得無畏力。

  [답] 두려움 없음[無畏]에 두 가지가 있으니, 보살의 두려움 없음과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이다. 이 보살들은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은 아직 얻지 못했으나 보살의 두려움 없음을 얻었으므로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한다.

問曰。何等爲菩薩四無所畏。

  [문] 어떤 것이 보살의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인가?

答曰。一者一切聞能持故。得諸陀羅尼故。常憶念不忘故。衆中說法無所畏故。二者知一切衆生欲解脫因緣諸根利鈍。隨其所應而爲說法故。菩薩在大衆中說法無所畏。三者不見若東方南西北方四維上下有來難問令我不能如法答者。不見如是少許相故。於衆中說法無所畏。四者一切衆生聽受問難。隨意如法答。能巧斷一切衆生疑故。菩薩在大衆中說法無所畏。

  [답] 첫째는 일체를 들으면 능히 지니는 까닭이며, 모든 다라니를 얻는 까닭이며, 항상 기억하여 잊지 않는 까닭에 대중 가운데에서 법을 설하되 두려워함이 없다.

  둘째는 모든 중생의 욕망과 해탈의 인연과 감관의 예리하고 둔함을 알고서 그 마땅함에 따라 설법하기 때문에 보살은 대중 가운데서 법을 설하되 두려움이 없다. 

  셋째는 어떤 이가 동?남?서ㆍ북이나 네 간방[四維]ㆍ상하에서 찾아와 따져 물어서 나로 하여금 법답게 대답하지 못하게 하는 자를 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조금도 보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서 설법하되 두려움이 없다. 

  넷째는 중생들의 질문을 듣고는 마땅함에 따라 법답게 대답하여 온갖 중생의 의혹을 교묘하게 끊어 주기 때문에 보살이 대중에서 설법하되 두려움이 없다. 

【經】過諸魔事。 

  [經]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

【論】魔有四種。一者煩惱魔。二者陰魔。三者死魔。四者他化自在天子魔。是諸菩薩得菩薩道故。破煩惱魔。得法身故。破陰魔。得道得法性身故。破死魔常一心故。一切處心不著故。入不動三昧故。破他化自在天子魔。以是故說過諸魔事。復次是般若波羅蜜覺魔品中。佛自說魔業魔事。是魔業魔事盡已過故。是名已過魔事。復次除諸法實相。餘殘一切法盡名爲魔。如諸煩惱結使欲縛取纏陰界入魔王魔民魔人。如是等盡名爲魔。

  [論] 마(魔)100)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마(煩惱魔)요, 둘째는 음마(陰魔)요, 셋째는 사마(死魔)요, 넷째는 타화자재천자마(他化自在天子魔)이다. 이 보살들은 보살도를 얻는 까닭에 번뇌마를 깨뜨리고, 법신을 얻는 까닭에 음마를 깨뜨리고, 도(道)와 법성신(法性身)을 얻는 까닭에 사마를 깨뜨린다. 항상 한마음인 까닭에, 온갖 곳에 마음이 집착되지 않는 까닭에, 부동삼매에 드는 까닭에 타화자재천자마를 깨뜨린다. 그러므로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반야바라밀경』 「각마품(覺魔品)」에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마업(魔業)과 마사를 말씀하셨는데, 이 마업과 마사를 이미 다 넘었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이미 마사를 초월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을 제외한 나머지 온갖 법을 모두 마(魔)라 한다. 곧 모든 번뇌?결사(結使)?욕(欲)?박(縛)?취(取)?전(纏)?음(陰)?계(界)?입(入)?마왕(魔王)?마민(魔民)?마인(魔人)과 같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마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何處說欲縛等諸結使名爲魔。

  [문] 어디에서 욕?박 등의 모든 결사를 마라고 하였는가?

答曰。雜法藏經中。佛說偈語魔王。

  [답] 『잡법장경(雜法藏經)』101)에서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欲是汝初軍  憂愁軍第二

 飢渴軍第三  愛軍爲第四

  욕망은 그대의 첫째 군사요

  근심은 그대의 둘째 군사요

  기갈은 그대의 셋째 군사요

  애정은 그대의 넷째 군사다. 

 

 第五眠睡軍  怖畏軍第六

 疑爲第七軍  含毒軍第八

  수면은 그대의 다섯째 군사요

  두려움은 그대의 여섯째 군사요

  의혹은 그대의 일곱째 군사요

  독을 품은 마음102)은 그대의 여덟째 군사다. 

  

 第九軍利養  著虛妄名聞

 第十軍自高  輕慢於他人

  이양과 허망한 명예에 집착함은

  그대의 아홉째 군사요

  스스로 교만해져 남을 업신여김은

  그대의 열째 군사이다.

 

 汝軍等如是  一切世間人

 

 及諸一切天  無能破之者

 我以智慧箭  修定智慧力

 摧破汝魔軍  如坏甁沒水

  그대의 군사가 이러하니

  세상 사람들 모두와

  그리고 온갖 하늘까지도

  아무도 이를 부수지 못한다.

 

 一心修智慧  以度於一切  

 我弟子精進  常念修智慧  

  나는 지혜의 화살을 들고

  선정과 지혜의 힘을 닦아

  마치 흙병을 물에 던져버리듯

  그대의 군사를 무찔러 깨뜨리리라.

 

 隨順如法行  必得至涅槃

 汝雖不欲放  到汝不到處

  한마음으로 지혜를 닦아

  그로써 모두를 건너게 하리.

  나의 제자들 정진하여서

  지혜 닦기를 항상 생각하니

 

 是時魔王聞  愁憂卽滅去

 是魔惡部黨  亦復沒不現

  법다운 행을 수순한다면

  반드시 열반에 이르리니

  그대는 내쫓기고 싶지 않겠지만

  그대가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리.

 

是名諸結使魔。

  이때 마왕은 게송을 듣자 통곡하고 근심하며 사라졌다. 이 마왕의 사악한 무리들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러한 것을 결사의 마(魔)라 하는 것이다.

 

問曰。五衆十八界十二入何處說是魔。

  [문] 어디에서 5중(衆)ㆍ18계(界)ㆍ12입(入)이 마(魔)라고 말씀하셨는가?

答曰。莫拘羅山中。佛敎弟子羅陀。色衆是魔。受想行識亦如是。復次若欲作未來世色身。是爲動處。若欲作無色身。是亦爲動處。若欲作有想無想非有想非無想身。是爲一切動處。動是魔縛不動則不縛從惡得脫。此中說衆界入是魔。自在天子魔。魔民魔人卽是魔。不須說。

  [답] 막구라산(莫拘羅山)에서 부처님께서 제자인 라타(羅陀)에게 말씀하시어 “색중(色衆)은 곧 마(魔)이며, 수?상?행?식 역시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셨다.

  만약에 미래세에 색신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것을 동처(動處)로 삼으며, 만약 무색신을 이루고자 해도 이것을 동처로 삼는다. 유상(有想)ㆍ무상(無想)ㆍ비유상(非有想)ㆍ비무상(非無想)의 몸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것을 일체동처(一切動處)로 삼는다. 움직임은 모두 마의 속박이며, 움직이지 않으면 속박되지 않아 악(惡)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중(衆)ㆍ계(界)ㆍ입(入)은 곧 마가 된다고 말하니, 자재천자마(自在天子魔)나 마민(魔民)ㆍ마인이 곧 마가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問曰。何以名魔。

  [문] 무엇 때문에 마라 부르는가?

答曰。奪慧命壞道法功德善本。是故名爲魔。諸外道人輩言是名欲主。亦名華箭亦名五箭。(丹本注云五欲箭也)破種種善事故。佛法中名爲魔羅。是業是事名爲魔事。是何等魔事。如覺魔品中說。

  혜명(慧命)을 빼앗고 도법과 공덕과 선의 근본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마라고 부른다. 외도의 무리들은 이를 욕주(欲主)라고 부르며, 또한 화전(華箭) 혹은 5전(箭)[단본의 주에서는 5욕의 화살이라 한다.]이라 부르기도 하니, 갖가지 착한 일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는 마라(魔羅)라고 부르며, 그의 업과 그의 일을 마사(魔事)라고 한다. 어떠한 마사가 있는가? 이는 「각마품(覺魔品)」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復次人展轉世間受苦樂結使因緣。亦魔王力因緣。是魔名諸佛怨讎一切聖人賊。

  또한 사람들이 세간에 떠돌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은 결과 사의 인연이고 마왕의 힘의 인연이니, 이러한 마를 모든 부처님의 원수이자 모든 성인들의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破一切逆流人事不喜涅槃。是名魔。是魔有三事。戲笑語言歌舞邪視。如是等從愛生。縛打鞭拷刺割斫截。如是等從瞋生。炙身自凍拔髮自餓入火赴淵投巖。如是等從愚癡生。

  또한 사람들이 세간에 떠돌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은 결과 사의 인연이고 마왕의 힘의 인연이니, 이러한 마를 모든 부처님의 원수이자 모든 성인들의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세간에 떠돌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은 결과 사의 인연이고 마왕의 힘의 인연이니, 이러한 마를 모든 부처님의 원수이자 모든 성인들의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又大過失不淨染著世間皆是魔事。憎惡利益不用涅槃及涅槃道亦是魔事。沒大苦海不自覺知。如是等無量皆是魔事。已棄已捨是爲過諸魔事。

  또한 커다란 과실과 부정함과 세간에 물드는 것은 모두 마사이고, 이로움을 증오하고 열반 및 열반의 도를 행[用]하지 않는 것 역시 마사이며, 큰 고통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이러한 한량없는 것들이 모두 마사인데, 이러한 것들을 이미 던져 버리는 이것을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 하는 것이다.

【經】一切業障悉得解脫。 

  [經] 일체의 업장(業障)에서 남김없이 해탈했다.

【論】一切惡業得解脫。是名業障得解脫。

  [論] 일체의 악업에서 벗어나는 이것을 ‘업장에서 해탈했다’ 한다. 

問曰。若三種障。煩惱障業障報障。何以捨二障但說業障。

  [문] 세 가지 장(障), 즉 번뇌장(煩惱障)?업장(業障)?보장(報障)에서 어찌하여 두 가지는 버리고 업장만을 말하는가?

答曰。三障中業力最大故。積集諸業乃至百千萬劫中。不失不燒不壞。與果報時不亡。是諸業能久住和合時。與果報。如穀草子在地中得時節而生不失不壞。是諸佛一切智第一尊重。如須彌山王尙不能轉是諸業。何況凡人。如偈說。

  [답] 세 가지 장 가운데서 업의 힘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모든 업을 쌓아서 백?천?만 겁이 지나도록 잃거나 타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과보를 받을 때에도 없어지지 않나니, 이 모든 업은 능히 오래도록 머물다가 화합해서 과보를 낸다. 마치 곡식과 풀의 종자가 땅속에 있다가 시절을 만나면 자라나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일체지이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가장 존중하시는 이치로서, 수미산왕조차 이 모든 업을 바꾸지 못하거늘 하물며 범부들이겠는가.

  이런 게송이 있다.

 

 生死輪載人  諸煩惱結使

 

 大力自在轉  無人能禁止

  생사의 윤회는 인간을 싣고

  모든 번뇌와 결사는

  큰 힘으로 자재하게 구르니,

  누구도 멈출 수가 없다.

 

 先世業自作  轉爲種種形

 業力最爲大  世間中無比

  전생의 업으로 자기가 지은 것

  바뀌어 갖가지 형태를 이루나니

  업의 힘 가장 커서

  세상에 견줄 이 없다. 

 

 先世業自在  將人受果報

 業力故輪轉  生死海中迴

  전생의 업은 자재하여서

  사람들이 과보를 받게 하나니

  업의 힘 때문에 바퀴 돌아서

  생사의 바다에 헤매게 된다. 

  

 大海水乾竭  須彌山地盡

 先世因緣業  不燒亦不盡

  큰 바닷물이 다 마르고

  수미산의 땅이 다하더라도

  전생의 인연인 업은

  타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는다.

 

 諸業久和集  造者自逐去

 譬如責物主  追逐人不置

  모든 업이 오랫동안 합쳐 모이면

  지은 이가 스스로 따라가나니

  마치 빚을 진 사람은

  빚쟁이가 쫓기기 끊임이 없듯.

 

 是諸業果報  無有能轉者

 亦無逃避處  非求哀可免

  이 모든 업의 과보는

  능히 바꿀 이도 없고

  또한 피할 곳도 없으며

  애걸하여 면할 수도 없다.

 

 三界中衆生  追之不暫離

 如珂梨羅刹  是業佛所說

  삼계 가운데 중생들은

  이를 좇아 잠시도 여의지 못하니

  마치 가리나찰(珂梨羅刹)과 같다고

  그 업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如風不入實  水流不仰行

 虛空不受害  無業亦如是

  바람은 채워진 곳에 들지 않고

  흐르는 물은 위로 가지 않으며

  허공이 해를 입는 일 없듯이

  업이 없음[無業]도 이와 같도다. 

 

 諸業無量力  不逐非造者

 果報時節來  不亡亦不失

  업은 한량없는 힘이 있으나

  짓지 않는 이는 쫓기지 않으니

  과보는 시절이 도래하기까지

  없어지지도 잃지도 않는 것이라.

 

 從地飛上天  從天入雪山

 從雪山入海  一切處不離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늘에서 설산으로 들고

  설산에서 바다로 들어가도

  어디에서도 업은 떠나지 않는다. 

 

 常恒隨逐我  無一時相捨

 直至無失時  如星流趣月

  항상 나를 뒤쫓아

  잠시도 버리는 일 없어

  곧장 도달해 망실하는 일 없으니

  마치 유성이 달로 향함과 같다. 

 

以是故說一切諸業障悉得解脫。

  이런 까닭에 ‘일체의 업장에서 남김없이 해탈했다’고 한 것이다.

【經】巧說因緣法。 

  [經] 인연의 법을 교묘하게 연설했다.

【論】十二因緣生法。種種法門能巧說。煩惱業事法次第展轉相續生。是名十二因緣。是中無明愛取三事名煩惱。行有二事名爲業。餘七分名爲體事。是十二因緣。初二過去世攝。後二未來世攝。中八現前世攝。是略說三事。煩惱業苦。是三事展轉更互爲因緣。是煩惱業因緣。業苦因緣。苦苦因緣。苦煩惱因緣。煩惱業因緣。業苦因緣。苦苦因緣。是名展轉更互爲因緣。過去世一切煩惱是名無明。從無明生業。能作世界果故。名爲行。從行生垢心。初身因如犢子識母。自相識故名爲識。是識共生無色四陰及是所住色。是名名色。是名色中生眼等六情。是名六入。情塵識合是名爲觸。從觸生受。受中心著。是名渴愛。渴愛因緣求是名取。從取後世因緣業。是名有。從有還受後世五衆。是名生。從生五衆熟壞。是名老死。老死生憂悲哭泣種種愁惱。衆苦和合集。若一心觀諸法實相淸淨則無明盡。無明盡故行盡。乃至衆苦和合集皆盡。是十二因緣相。如是能方便不著邪見爲人演說。是名爲巧。復次是十二因緣觀中。斷法愛心不著。知實相是名爲巧。如彼般若波羅蜜不可盡品中。佛告須菩提。癡如虛空不可盡。行如虛空不可盡。乃至衆苦和合集。如虛空不可盡。菩薩當作是知。作是知者。爲捨癡際應無所入。作是觀十二因緣起者。則爲坐道場得薩婆若。

【經】從阿僧祇劫已來發大誓願。 

  [經] 아승기겁 이래 대서원을 일으켰다.

【論】阿僧祇義。菩薩義品中已說。劫義佛譬喩說。四千里石山有長壽人百歲過。持細軟衣一來拂拭。令是大石山盡。劫故未盡。四千里大城。滿中芥子。不槪令平。有長壽人百歲過一來取一芥子去。芥子盡。劫故不盡。菩薩如是無數劫。發大正願度脫衆生願名大心要誓。必度一切衆生斷諸結使。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爲願。

【經】顔色和悅常先問訊所語不麤。 

  [經] 얼굴빛이 화열(和悅)하여 항상 먼저 인사하고 말하는 바가 거칠지 않았다.

【論】瞋恚本拔故。嫉妬除故。常修大慈大悲大喜大捨故。四種邪語斷故。得顔色和悅。如偈說。

  [論] 성냄의 근본이 뽑혔기 때문이고, 질투를 제거했기 때문이며, 항상 큰 자ㆍ비ㆍ희ㆍ사를 닦기 때문이며, 네 종류의 삿된 말을 끊었기 때문에 얼굴빛이 평화롭고 즐거운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若見乞道人  能以四種待

 初見好眼視  迎逆敬問訊

  만약에 구걸하는 도인을 보거든 

  능히 네 가지로써 대접하고

  처음 보아도 좋은 눈으로 대하며

  반가이 맞아 공경하고 인사한다.

 

 

 床座好供養  充滿施所欲

 布施心如是  佛道如在掌

  평상과 자리로 공양하여

  바라는 바를 가득 채워 베풀라

  보시하는 마음이 이러하다면

  불도는 이미 손안에 있는 것 같으리.

 

 若能除四種  口過妄語毒

 兩舌惡綺語  得大美果報

  만약에 입으로 짓는 네 가지 허물인

  거짓말의 독과 이간질, 욕설, 꾸밈말

  이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크고 아름다운 과보 얻으리.

 

 善軟人求道  欲度諸衆生

 除四邪口業  譬如馬有轡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도를 구해 중생을 건지려 하여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 버리니

  마치 말에게 고삐가 있는 것과 같다. 

 

【經】於大衆中得無所畏。 

  [經]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었다.

【論】大德故。堅實功德智慧故。得最上辯陀羅尼故。於大衆中得無所畏。如偈說。

  [論] 큰 위덕을 지닌 까닭이며, 견실한 공덕ㆍ지혜인 까닭이며, 최상의 변재다라니를 얻은 까닭에 대중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음을 얻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內心智德薄  外善以美言

 譬如竹無內  但示有其外

  안 마음에 지혜와 덕이 얇고도

  밖으로 좋은 말만으로 꾸미면

  마치 댓속이 비어있듯이

  겉모양만 보임과 같네.

 

 內心智德厚  外善以法言

 譬如妙金剛  中外力具足

  안 마음에 지혜와 덕 두텁고

  밖으로 법다운 말로써 다듬으면

  마치 묘한 금강과 같아서

  안과 밖의 힘이 구족한 듯하네.

 

復次無畏法成就故。端正貴族大力。持戒禪定智慧語議等皆成就。是故無所畏。以是故於大衆中無所畏。如偈說。

  또한 두려움 없는 법을 성취하였으므로 단정하고 귀족으로서 큰 힘이 있으며, 지계ㆍ선정?지혜?말재주 등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그런 까닭에 대중 가운데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少德無智慧  不應處高座

 

 如豺見師子  竄伏不敢出

  덕이 적고 지혜 없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이리가 사자를 본 것같이

  숨어서 감히 나오지 못하리.

 

 大智無所畏  應處師子座

 譬如師子吼  衆獸皆怖畏

  지혜가 크고 두려움이 없거든

  마땅히 사자좌에 앉으라.

  마치 사자의 울음소리에

  뭇 짐승이 모두 겁내는 듯하리.

 

無量無邊智慧福德力集故。無所畏如偈說。

  한량없고 가없는 지혜와 복덕의 힘이 모여든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니, 이런 게송이 있다.

 

 若人滅衆惡  乃至無小罪

 如是大德人  無願而不滿

  어떤 사람이 모든 악을 멸하고

  조그마한 죄조차 없다면

  이러한 큰 덕을 지닌 사람은

  소원하여 채우지 못할 것 없네. 

 

 是人大智慧  世界中無惱

 是故如此人  生死涅槃一

  이러한 사람은 크게 지혜로워서

  세계 가운데에서 괴로움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에게

  생사와 열반은 하나가 되리.

 

復次獨得菩薩無所畏故。如毘那婆那王經中說。菩薩獨得四無所畏。如先說。

  또한 보살만이 얻는 두려움 없는 까닭이니, 『비나파나왕경(毘那婆那王經)』에서는 “보살만이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는다”고 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經】無數億劫說法巧出。 

  [經]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

【論】不放逸等諸善根自身好修。是諸菩薩非一世二三四世乃至無量阿僧祇劫集功德智慧。如偈說。

  [論] 불방일(不放逸) 등의 모든 선근을 스스로 닦기를 좋아하는 이러한 보살들은 한 세상 혹은 둘?셋?네 세상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모든 공덕과 지혜를 모았던 것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爲衆生故發大心  若有不敬生慢者

 其罪甚大不可說  何況而復加惡心  

  중생을 위하여 큰 마음을 낸 이에게

  공손치 않거나 교만을 낸다면

  그 죄는 매우 커서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악심을 가하는 일이랴.

 

復次是菩薩。無數無量劫中。修身修戒修心修慧。生滅縛解逆順中自了了。知諸法實相有三種解。聞解義解得解。種種說法門中無所罣礙。皆得說法方便智慧波羅蜜。是諸菩薩所說如聖人說皆應信受。如偈說。

  또한 이 보살은 셀 수 없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 생멸의 속박을 풀고 거슬리고 순종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실상을 명료히 안다.

  모든 법의 실상을 아는데 세 가지 이해가 있으니, 문해(聞解)?의해(義解)?득해(得解)이다. 갖가지로 법문을 연설하되 걸림이 없으며, 모두가 설법의 방편과 지혜바라밀을 얻으니, 이러한 보살들이 설하는 바는 성인의 말씀과 같아 모두 믿어 지녀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有慧無多聞  是不知實相

 譬如大闇中  有目無所見

  지혜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면

  이는 실상을 알지 못하나니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함과 같도다. 

 

 多聞無智慧  亦不知實義

 譬如大明中  有燈而無目

  들은 것 많건만 지혜 없다면

  역시 실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마치 매우 밝은 가운데

  등불까지 있으되 눈이 없음과 같다. 

 

 多聞利智慧  是所說應受

 無慧亦無明      是名人身牛

  들은 것 많고 지혜도 예리하다면

  그의 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들은 것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사람 중의 소라 부른다. 

 

問曰。應言無數億劫巧說法。復何以言出。

  [문] “무수한 억 겁 동안 교묘히 설법했다”고 말해도 좋거늘 어째서 또한 뛰어났다[出]고 하는가?

答曰。於無智人中及弟子中說法易。若多聞利智善論議人中說法難。若小智法師是中退縮。若大學多聞。問難中大膽欣豫。一切衆中有大威德。如天會經中偈說。

  [답] 지혜 없는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설법하기는 쉽거니와 지식이 많고 지혜가 날카로워 토론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설법하기는 어렵다. 지혜가 적은 법사는 이런 경우에 물러나 움츠리거니와 많이 배우고 많이들은 이는 어려운 질문에도 담대하고 흔쾌해서 일체의 대중 가운데 큰 위덕이 있다.

  『천회경(天會經)』에 이런 게송이 있다.

 

 面目齒光明  普照於大會

 

 映奪諸天光  種種皆不現

  얼굴과 눈과 치아의 광명이

  대회(大會)에 두루 비치어

  모두 하늘 광명을 무색케 하여

  하나도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 

 

以是故名爲無數億劫巧說法中能得出。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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