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9oj7SxLuozc 

 

*유행가로 잘 알려진 아래 노래의 가사는 한시가 아닙니다. 국문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1행과 3행의 兮 : 어구를 맞추기 위해 덧넣은 字.

  나머지 兮 는 7언한시가 아님을 나타낸, 우리말답게 표현한 덧글자.

위 청산시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나옹화상의 불심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옹록>    

차례

 선림고경 (禪林古鏡) 에 씀……退翁性徹 2
 선림고경총서간행사 (禪林古鏡叢書刊行辭) 4
 해제 (解題) 7

·보제존자어록 서· 李穡 15
·서· 白文¿ 17
·탑명· 李穡 21
·행장· 覺宏 31

 [1]. 어 록· 覺璉
1. 상당법어…59
2. 짧은 글…127

 [2]. 게 송· 覺雷
1. 노래 〔歌〕 ·3수…171
2. 송 (頌) …185
·발문· 李達衷 303
·보제존자 삼종가· 法藏 305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 345

 〔附錄〕 懶翁集五臺山 月精寺藏版
^宗衆
休休庵主坐禪文朝鮮佛敎通史 下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405

 

나옹삼가(懶翁三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나옹(翁)三歌/ 불교가사(번역본), 원문은 한문본

완주가() 

완주가 -염주의 공덕 예찬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11920&cid=41773&categoryId=44404

. 손 안에 굴리면서 다라니(불경)를 외울 때 사용하는 염주의 공덕을 예찬하고 있다. 「완주가」는 ‘염주()를 가지고 노는 노래’라는 뜻으로, 고려 말의 고승 나옹화상() 혜근()이 지은 6~7언 60구의 한문 불교 가요이며, 저서인 『나옹집()』 가송편()에 전한다.

 

고루가()

고루가 - 마른 해골[수척한 몸]을 노래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11919&categoryId=60539&cid=60539

「고루가」는 ‘마른 해골을 노래함’의 뜻으로, 고려 말의 고승 나옹화상() 혜근()이 지은 6~7언 52구의 한문 불교 가요이며, 저서인 『나옹집()』 가송편()에 전한다.
주 내용은 불도를 깨닫지 못하고 육도윤회()를 반복하는 육체를 노래하면서 한 순간 마음을 돌려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것을 강조한다.

 

백납가()

백납가   남루한 납의(衲衣: 승려가 입는 옷)를 노래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11918&cid=41773&categoryId=44404

「백납가」는 ‘백번이나 기운 스님들이 입는 남루한 납의(: 승려가 입는 검은 옷)를 노래함’의 뜻으로, 고려 말의 고승 나옹화상() 혜근()이 지은 7언 40구의 한문 불교 가요이며, 저서인 『나옹집()』 가송편()에 전한다.

 

붓다월드

http://www.buddhaworld.org/cyber/beopmun_view.asp?pk_idx=558&b_budle=weolha&b_type=&page=5&search_select=&search_text=

192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고루가. 설강() 
 
191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고루가枯髏歌 설강() 
 
 
190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고루가枯髏歌 설강() 
 
189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고루가枯髏歌 설강() 
 
188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백납가百衲歌 설강() 
 
187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백납가百衲歌 설강() 
 
186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백납가百衲歌 설강() 
 
185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완주가翫珠歌 설강() 
 
184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완주가翫珠歌 설강() 
 
183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의 완주가翫珠歌 설강() 
 
182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완주가翫珠歌() 
 
181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완주가翫珠歌() 
180 월하대종사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완주가翫珠歌() 

 

완주가(翫珠歌)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這靈珠  極玲瓏  
저영주 극영롱, 신령스런 이 구슬은 지극히 영롱할새

體.河沙內外空  
체편하사내외공, 모든 세계에 두루하고 안팎이 비었으며

人人.裏堂堂有  
인인대이당당유, 사람들의 푸대 속에 당당하게 들어 있어

弄去弄來弄莫窮  
롱거농래농막궁, 오고 가며 가지고 놀아도 다함이 없도다


或摩尼  或靈珠  
혹마니 혹영주, 마니구슬이라 하고 靈珠라고도 부르나니

名相雖多體不殊  
명상수다체불수, 이름은 비록 많아도 본체는 다 다르지 않네

刹刹塵塵明了了  
찰찰진진명료료, 모든 세계 어디서나 밝고 또한 분명하니

還如朗月滿江秋  
환여낭월만강추, 가을의 밝은 달이 강에 가득한 듯하도다

飢也他  渴也他  
기야타  갈야타, 배고픔도 그것이요 목마름도 그것이나

知渴知饑不較多  
지갈지기불교다, 목마름과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하지 않네

晨朝喫粥齋時飯  
신조끽죽재시반, 아침에는 죽을 먹고 낮에는 밥 먹으며

困則打眠也不差  
곤칙타면야불차, 피곤하면 잠을 자되 어긋남이 없느니라

差也他  正也它 
차야타  정야타, 어긋남도 그것이요 올바름도 그것이라

不勞開口念彌陀 
불로개구염미타, 수고로이 입을 열어 아미타불 부를 건가

若能着着無能着 
약능착착무능착, 능히 집착할 것에 능히 집착함이 없으면

在世縱橫卽蕯埵 
재세종횡즉륭타, 세간 속에 노닐어도 대심중생 보살일세

此心珠  難把捉 
차심주  난파착, 이 마음 구슬은 붙잡기가 어려우니

宛轉玲瓏難可得 
완전영롱난가득, 분명하고 영롱하나 가히 얻을 수 없도다

無相無形現相形 
무상무형현상형,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능히 나타내고

往返無蹤非可測 
왕반무종비가측, 가고 옴에 자취 없어 예측하지 못한다네

追不及  忽自來 
추불급  홀자래, 쫒아가도 못 미치나 갑자기 스스로 오나니

暫到西天瞬目廻 
잠도서천순목회, 서천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네

放則虛空爲袍內 
방칙허공위포내, 놓아 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들어오지만

收則微塵難析開 
수칙미진난석개,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도 쪼개기 어렵도다

差也他  正也它  
차야타  정야타, 어긋남도 그것이요 올바름도 그것이라

不勞開口念彌陀  
불로개구염미타, 수고로이 입을 열어 아미타불 부를 건가

若能着着無能着  
약능착착무능착, 능히 집착할 것에 능히 집착함이 없으면

在世縱橫卽薩埵  
재세종횡즉륭타, 세간 속에 노닐어도 대심중생 보살일세

此心珠  難把捉  
차심주  난파착, 이 마음 구슬은 붙잡기가 어려우니

宛轉玲瓏難可得  
완전영롱난가득, 분명하고 영롱하나 가히 얻을 수 없도다

無相無形現相形  
무상무형현상형,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능히 나타내고

往返無.非可測  
왕반무종비가측, 가고 옴에 자취 없어 예측하지 못한다네


追不及  忽自來  
추불급  홀자래, 쫒아가도 못 미치나 갑자기 스스로 오나니

暫到西天瞬目廻  
잠도서천순목회, 서천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네

放則虛空爲袍內  
방칙허공위포내, 놓아 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들어오지만

收則微塵難析開  
수칙미진난석개,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도 쪼개기 어렵도다

不思議 體堅剛  
불사의 체견강, 가히 헤아릴 수 없어라, 견고한 그 몸이여

牟尼喚作自心王  
모니환작자심왕, 석가모니는 그것을 心王이라 불렀나니

運用無窮又無盡  
운용무궁우무진, 그 작용이 무궁하고 또한 다함 없는데도

時人忘作本自忘  
시인망작본자망, 사람들은 망령되이 스스로 잊고 있도다



正令行 孰當頭 

정령행 숙당두, 바른 법령 시행되니 누가 그 앞에 설 건가

斬盡佛魔不小留 
참진불마불소유, 부처도 魔도 모두 베어 남기지 않는다네

從玆徧界無餘物 
종자편계무여물, 그로부터 온 세계에 남아난 물건 없으니

血滿江河急急流 
혈만강하급급류, 피가 가득한 강물만이 급격히 흐르누나


眼不見 耳不聞   
안불견 이불문,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나

不見不聞眞見聞  
불견불문진견문, 보도 듣도 못함이 참으로 보고 들음일세

箇中一箇明珠在  
개중일개명주재,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이 있으니

吐去呑來新又新  
토거탄래신우신,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또 새롭도다

或名心或名性    
혹명심혹명성, 마음이라고 하고 성품이라고도 하지만

心性元來是緣影  
심성원래시연영,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若人於此卽無疑  
약인어차즉무의, 만일 이에 대해 의심 없는 이가 있다면

自己靈光常囧囧  
자기영광상경경, 신령스런 자기 광명이 언제나 빛나리라


或爲道  或爲禪    
혹위도  혹위선, 혹은 道라고 하고 禪이라고도 하지만

禪道由來是强宣  
선도유래시강선, 선이나 도라 한 것도 억지로 한 말이니

實知師姑女人做  
실지사고여인주, 할머니가 여자인 줄을 진실로 알면

不勞擡步到那邊  
불로대보도나변,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피안에 도착하리


也無佛  也無魔  
야무불 야무마, 부처님도 없음일세 마구니도 없음일세

魔佛無根眼裏花  
마불무근안리화, 魔도 佛도 뿌리 없는 눈 속의 꽃인 것을

常常日用了無事  
상상일용료무사, 나날이 쓰면서도 아무런 일도 없음이니

喚作靈珠也被訶  
환작영주야피가, 靈珠라고 할지라도 나무람을 못 면하리

也無死  也無生 
야무사  야무생, 죽음도 또한 없고 태어남도 또한 없이

常蹋毗盧頂上行 
상답비로정상행, 항상 비로자나불의 머리를 밟고 다니며

收來放去隨時節 
수래방거수시절, 시절 따라 거두고 놓아 주고 오고 가면서

倒用橫拈骨格淸 
도용횡념골격청, 자재하게 작용하나 골격은 마냥 맑다네


也無頭  也無尾 
야무두  야무미, 머리도 또한 없고 꼬리도 또한 없는데

起坐明明常不離 
기좌명명상불리, 서고 앉음에 분명하고 항상 여읨이 없다네

盡力趕他他不去 
진력간타타불거, 힘을 다해 쫓아 버려도 그는 떠나지 않고

要尋知處不能知 
요심지처불능지,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느니라


阿呵呵  是何物 
아가가  시하물, 하하하 우습도다, 이 어떤 물건인가

一二三四五六七 
일이삼사오육칠, 일이삼사오륙칠이여

數去飜來無有窮 
수거번래무유궁, 세어 보고 또 세어 보아도 끝이 없음이니

摩訶般若波羅密 
마가반야파라밀, 마하반야바라밀이로다

<완주가 설강 끝>

 

백납가百衲歌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這百衲  最當然  
저백납  최당연, 백 번 기운 누더기 내게 가장 알맞도다

冬夏長被任自便  
동하장피임자편, 겨울 여름 언제 입어도 항상 편안하네

袒袒縫來千萬結  
단단봉래천만결, 누덕누덕 꿰매어 천만 조각이 되었고

重重補處不後先  
중중보처불후선, 겹겹이 기웠으매 앞과 뒤도 없느니라


或爲席  或爲衣  
혹위석  혹위의, 혹은 자리도 되고 혹은 옷도 됨이여,

隨節隨時用不違  
수절수시용불위, 철에 따라 때에 따라 적절하게 잘 쓰이고

從此上行知己足  
종차상행지기족, 이로부터 두타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飮光遺跡在今時  
음광유적재금시, 가섭 존자 끼친 자취 지금에도 남아 있네


一椀茶  七斤衫  
일완다  칠근삼, 한 잔의 차와 일곱 근의 장삼이여

趙老徒勞擧再三  
조로도로거재삼, 조주 스님 두세 번 들어 보여 헛수고를 했나니

縱有千般玄妙說  
종유천반현묘설,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고 한들

爭似吾家百衲衫  
쟁사오가백납삼, 어찌 우리 집의 누더기 옷만 하겠는가

此衲衣  甚多宜  
차납의  심다의  이 누더기 옷은 매우 편리하도다   

披去披來事事宜  
피거피래사사의, 늘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 편리하도다

醉眼看花誰敢着
취안간화수감착, 취한 눈으로 꽃을 보니 그 모양 분명하랴  

深居道者自能持  
심거도자자능지, 도에 깊이 들어간 이는 자기를 능히 지키네


知此衲  幾春秋  
지차납  기춘추, 이 누더기 얻고서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一半風飛一半留  
일반풍비일반류, 반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獨坐茅菴霜月夜  
독좌모암상월야, 서리치는 달밤에 초암도 홀로 앉았으니

莫分內外混蒙頭  
막분내외혼몽두, 안팎을 가릴 줄 모르는 더벅머리 중이로다


卽身貧  道不窮  
즉신빈  도불궁, 이 몸은 비록 가난해도 道는 다함이 없도다

妙用千般也不窮  
묘용천반야불궁, 천만 가지 묘한 작용은 다함이 없나니

莫笑繿縿癡呆漢  
막소람삼치태한,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나를 비웃지 말라

曾參知識續眞風  
증참지식속진풍, 일찍이 선지식 찾아 참된 가풍을 이었도다

一鶉衣  一瘦笻  
일순의  일수공, 해진 옷 한 벌에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天下橫行無不通  
천하횡행무불통, 천하를 횡행했어도 막힘 하나 없었다네

歷徧江湖何所得  
역편강호하소득, 강호를 두루 다니며 그 무엇을 얻었던고

元來只是學貧窮  
원래지시학빈궁, 원래 배운 것은 빈궁 하나 뿐일세


不求利  不求名  
불구리  불구명, 이익도 구하지 않고 이름도 구하지 않네

百衲懷空豈有情  
백납회공기유정, 누더기 옷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一鉢生涯隨處足  
일발생애수처족, 발우 하나의 생활로 어디 가나 만족하고

只將一味過殘生  
지장일미과잔생,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라


生涯足  更何求  
생애족  갱하구, 이 생애에 만족하거늘 다시 무엇을 구하랴

可笑癡人分外求  
가소치인분외구, 미련한 이가 분수 밖에서 구함이 우습도다

不會福從前世作  
불회복종전세작, 복은 전생에 지어야 금생에 받는 건데

怨天怨地妄區區  
원천원지망구구, 하늘 땅을 원망하며 부질없이 허덕이누나



不記月  不記年  
불기월  불기년, 달도 기억하지 않고 해도 기억하지 않고

不誦經文不坐禪  
불송경문불좌선,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土面灰頭癡呆呆  
토면회두치태태,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는

唯將一衲度殘年  
유장일납도잔년, 오직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낸다네


<백납가 完>

 

고루가枯髏歌

나옹혜근 선사懶翁惠勤 禪師

這枯髏  幾千生 
저고루기천생, 이 마른 해골이여, 몇 천 생애 동안이나

橫形竪像妄勞形 
횡형수상망로형, 갖가지 몸을 받으며 헛되이 허덕였는고

如今落在泥坑裏 
여금락재니갱리, 지금 흙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음을 보아

必是前生錯用情 
필시전생착용정, 틀림없이 전생에 마음을 잘못 썼으리라


無量劫  昧性王 
무량겁  매성왕, 한량없는 세월 동안 마음자리에 어두워

六根馳散走靑黃 
륙근치산주청황, 六根은 대상 찾아 각기 흩어져 치달리고

只知食愛爲親侶 
지지식애위친려,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 할 줄 알았으니

那得廻頭護正光 
나득회두호정광, 어떻게 머리를 돌려 바른 빛을 지킬 건가


這枯髏  甚癡頑 
저고루  심치완, 이 마른 해골은 매우 미련하고 답답하구나

因他造惡萬般般 
인타조악만반반, 그 때문에 수만 가지 악을 짓고 말았으나

一朝徹見空無有 
일조철견공무유, 하루 아침에 無도 有도 空임을 꿰뚫어 보면

寸步不離脫體寒 
촌보불리탈체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시원하게 이 몸 벗으리

背當年  最好時 
배당년  최호시, 이 생을 놓칠 건가 가장 좋은 이 시절을

波波役役逐風飛 , 이리저리 뒹굴뒹굴 바람 따라 굴러 가네

勸君早早今回首 
권군조조금회수, 귀하노니 그대 빨리 머리를 돌이켜서

蹯着眞空正路歸 
번착진공정로귀, 진공의 바른 길 어서 빨리 돌아오라


或聚散 或升沈   
혹취산 혹승침, 모였다가 흩어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他方此界不安心 
타방차계불안심,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이 편치 않다네

但能一念回光處 
단능일념회광처, 다만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게 되면

頓脫死生入骨深 
돈탈사생입골심, 단박에 생사를 벗어나 참 부처를 만나리라


有頭角  無頭角 
유두각  무두각,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三途匍匐豈能覺 
삼도포복기능각, 삼악도를 기어다닌다면 언제 깨닫겠는가

忽因先覺敎訓來 
홀인선각교훈래, 홀연히 먼저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만나면

此處堂堂始知錯 
차처당당시지착, 그 자리에서 잘못된 줄을 분명히 알지어다

或癡愛  或貪瞋 
혹치애  혹탐진, 어리석음과 애욕과 탐욕과 분노 때문에

處處昏迷被妄塵 
처처혼미피망진,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덮어쓰고

頭骨風飄南北走 
두골풍표남북주, 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거늘

不知何處見眞人 
부지하처견진인, 어디에서 본연의 참사람을 볼 수 있을까


生前錯  死後錯 
생전착사후착, 나기 전에 잘못 되고 죽은 뒤에 잘못 되어

世世生生又重錯 
세세생생우중착,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 되고 그르쳤네

若能一念了無生 
약능일념료무생, 만일 능히 한 생각에 무생도리(無生道理) 깨달으면

錯錯元來終不錯 
착착원래종불착, 잘못 되고 잘못 됨도 원래 잘못이 아닐세


麤也着  細也着 
추야착 세야착, 거친 것에도 집착하고 부드러운 것에도 집착하니

着着來來元不覺 
착착래래원불각, 집착만을 하면서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驀得一聲急轉身 
맥득일성급전신, 갑작스런 한 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滿目虗空當撲落 
만목허공당박락,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져 떨어지리

或在非  或在是 
혹재비  혹재시, 혹은 그르다 하고 혹은 옳다고 하면서

是非坑裏常憂喜 
시비갱리상우희,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울고 웃고 하다가

不覺亡身白骨堆 
불각망신백골퇴, 어느 새 무너져 백골만이 쌓였나니

到了堂堂不自在 
도료당당부자재,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할 수 없다네


這枯髏  忽悟來 
저고루홀오래, 이 마른 해골도 한 번 홀연히 깨치게 되면

廣劫無明當下灰 
광겁무명당하회, 무량 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 버리고

從此恒沙諸佛祖 
종차항사제불조, 그로부터는 수많은 부처님과 조사들의

百千三昧也不猜 
백천삼매야불시, 백천 가지 삼매도 부러워하지 않게 되네


也不猜  有何過 
야불시  유하과,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무슨 허물 있을 건가

思量擬議便爲過 
사량의의편위과,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이 있을 건가

若能運用似盤珠 
약능운용사반주,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劫石徒爲彈指過 
겁석도위탄지과, 일겁(一劫)도 그저 손가락 튕길 사이에 지나가리


也無法  也無佛 
야무법  야무불, 법도 또한 없고 부처도 또한 없음이며

也無心兮也無物 
야무심혜야무물, 마음도 또한 없고 물질도 또한 없다네

到此酌然似什麽 
도차작연사십마,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寒時向火燒柮榾 
한시향화소돌골,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우노라

 

 

Nightnoise - The Rose Of Tralee
https://www.youtube.com/watch?v=QzWpPkI2LAk

 

자명스님 - 어디로 가야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pxV-aANiDIA&t=108s

 

서산대사 禪詩 "朴上舍 草堂"/ 홍순지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3WPnqeB_c

 

 

서산대사 - 해탈시(인생)

https://www.youtube.com/watch?v=v_0zsU0RS78

 

나옹선사 - 토굴가 /법진스님

https://www.youtube.com/watch?v=A42f__kfBBA

https://www.youtube.com/watch?v=B02lFTW7Yco

 

나옹선사 - 청산은 나를 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VDjXZxL1G1M

 

 

혜근(惠勤: 1320년 2월 24일(음력 1월 15일)~1376년 6월 2일(음력 5월 15일))은 고려승려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8%9C%EA%B7%BC

나옹집[ ]

신활자본. 1권 1책. 본집 중 시자() 각련()이 기록한 나옹화상어록() 등은 이미 고려 말기에 초간()한 바 있으나, 이를 보충하여 1940년 강원 월정사()에서 간행하였다.

내용은 상기 어록 외에 각굉()이 지은 나옹화상 행장(), 각뢰()가 저자의 가()와 송()을 기록한 나옹화상가송 ·행장 ·보제존자삼종가(), 그 밖에 권상로()가 저자에 대한 여러 사실()을 모은 부록 등으로 되어 있다. 이색() ·백문보()의 어록에 대한 서문과 이달충()의 발문()이 있다.

 나옹집 [懶翁集] (두산백과)

 

나옹화상어록(나옹화상가송)[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441&cid=40942&categoryId=33382

목판본. 2권 2책. 보물 제697호.

나옹의 글에 대한 자료를 직계 제자인 각련() · 각뢰()가 수집하고 혼수()가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제1권은 그의 행장()과 법어() · 탑명() 등을 수록한 《나옹화상어록》이며, 제2권은 가() · 송() · () · 찬() 등의 시가()를 모아 엮은 《나옹화상가송》이다. 이 판본은 1363년(공민왕 12)에 간행된 구본을 나옹의 제자인 각정() ·각연() 등이 교수()하여 중간한 것이다.
나옹화상어록(나옹화상가송) [懶翁和尙語錄·懶翁和尙歌頌] (두산백과) 

 

선어록/나옹록 2010.07.08 19:57 http://ntwo.tistory.com/880

 

   현릉(玄陵:공민왕)의 스승 보제존자는 서천 지공(指空)스님과 절강(江)서쪽의 평산(平山)스님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종풍(宗風)을 크게 펼쳤다. 그러므로 스님의 한 두마디 말이나 짤막한 글귀라도 세상에서 소중히 여길 만하기에 어록을 펴내는 것이다.
   스승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느냐 행해지지 않느냐는 오로지 뒷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뒷사람들이 스승의 도를 알려면 그 분의 어록을 통하지 않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제자들로서는 어록 출판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변변찮은 재주에 왕명을 받들어 명(銘)을 짓고 또 그 어록을 추천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나의 행인가 불행인가는 뒷사람이나 알 것이다.
   스님의 제자 각우(覺) ·각연(覺然) ·각변(覺卞)등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게 서문을 청하므로 여기에 간단히 쓰는 바이다.
   창룡(蒼龍) 기미년(1379) 8월 16일에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 씀.[이색은 려말 삼은의 한 분]
        

서 (序)


   행촌공(杏村空:李 . 고려말의 문신, 문하시중)이 나옹스님에 관한 기록을 내게 보이면서, 나옹스님은 연도(燕都)에 가서 유학하고 또 강남(江南)으로 들어가 지공(指空)스님과 평산(平山)스님을 찾아뵙고 공부하고는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받는 등, 오랫동안 불법에 힘써 왔다고 하였다.
   원제(元帝)는 더욱 칭찬하고 격려하며 광제선사(廣濟禪寺)에 머물게 하고, 금란가사(金聆袈裟)와 불자를 내려 그의 법을 크게 드날렸으며, 또 평소에도 스님의 게송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산수(山水)속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왕이 스님의 이름을 듣고 사자를 보내 와주십사 하여 만나보고는 공경하여 신광사(神光寺)에 머무시게 하였다. 나는 가서 뵈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하루는 스님의 문도가 스님의 어록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그때 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오. 나는 유학 (儒學) 하는 사람이라 불교를 모르는데 어찌 서문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 증자고(曾子固)는 "글로써 불교를 도우면 반드시 비방이 따른다. 그러나 아는 사이에는 거절할 수가 없다" 하였다.
   지금 스님의 어록을 보니 거기에 `부처란 한 줄기 풀이니, 풀이 바로 장육신(丈六身:佛身)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면 부처님 은혜를 갚기에 족하다.
  
   나도 스님에 대해 말한다.
   나기 전의 면목을 이미 보았다면 한결같이 향상(向上)해 갈 것이지 무엇하러 오늘날 사람들에게 글을 보이는가. 기어코 한 덩이 화기(和氣)를 얻고자 하는가.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도 이로써 은혜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은 지난날 지공스님과 평산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지공스님과 평산스님도 각각 글을 써서 법을 보였다.
   소암 우공 (邵艤虞公) 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地天一醇融    
  閑身盡日同
  往來何所缺
  三十六春宮

   천지가 하나로 순수히 융합하니
  한가한 몸이 온종일 한결같다
  왔다 갔다 하다가 어디서 머물까
  서른 여섯의 봄 궁전이다.
    

   대개 이치에는 상(象)이 있고 상에는 수(數)가 있는데, 36은 바로 천지의 수다. 천지가 합하고 만물이 자라는 것이 다 봄바람의 화기에 있듯이, 이른바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것도 다 이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옹스님의 한마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지공스님이나 평산스님의 전하지 않은 이치를 전해 받아 자기의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정(至正)23년(1363)  가을 7월 어느날, 충겸찬화공신 중대광문하찬성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치사 직산담암 백문보 화보 (忠謙贊化功臣重大翠門下贊成事 進賢大提學 知春秋事致仕 稷山淡艤 白文寶 和譜) 는 삼가 서한다.
   
  
   탑명 (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 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 中文忠報節同德 贊化空臣 重 大匡韓山君
   藝文官大提學知春秋官事*成均大司成知書硏事 臣 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병단전액
   輸忠贊化空臣 翠紛大夫 政堂文學藝文官大提學 上護軍提點書雲觀事 臣權仲和 奉敎書幷丹傳額

   현릉(玄陵) 20년(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납자들을 많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功夫選)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臼] 을 모두 부수고 범성(凡聖)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機] 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幻庵混修) 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三句) 와 3관(三關)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檜岩寺)로 돌아가셨다.
  
   신해년(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工部尙書 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封)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松廣寺)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三山兩水)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臺評)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瘻興)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神勒寺) 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辰時)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며, 신령한 광채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繹達如)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그것이 여룡(瘻龍) 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頂骨舍利)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장을 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禪覺)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에게는 단전액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諱)는 혜근(惠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향년(享年) 57세, 법랍(法瀘)은 38세이며,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牙) 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로서 선관령(膳官令)을 지냈고, 어머니 정(鄭) 씨는 영산군(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功德山)에 들어가 요연(了然)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至正)  갑신년(1344)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1348) 3월에 연도(燕都)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천(西天)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平山) 스님을 찾아뵈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 "내 검(劍)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켰다. 평산스님은 설암(雪艤)스님이 전한 급암(及艤)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1351) 봄에 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1352)에 복룡산(伏龍山)으로 가서 천암(千巖)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入室)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梵書)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燕代)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大都)의 광제사(廣濟寺) 에 머물렀고, 丙申년(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사 야선첩목아(院使 也先帖木兒)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授記)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1360)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方節)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滿繡袈裟) 와 수정불자(水精拂子)를 내리셨다. 공주(公主)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神光寺)에 계시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이 서울 근방(京幾)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命)이 있으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신(土地神)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지 않았다.
  
   계묘년(1363) 에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 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宿願)을 이룬 뒤에는, 용문(龍門) ·원적(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1366)에는 금강산에 들어갔고, 정미년(1367) 가을에는 청평사(淸平寺)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猊¿岩)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治命: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1369)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1370) 봄에는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靈骨)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工夫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江月軒)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나, 제영(題詠)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權道)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이색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 이색[ ] 호는 목은(). 포은()정몽주(鄭夢周), 야은()길재(吉再)와 함께 삼은()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이곡()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隼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진실로 선을 깨친 이시며〔禪覺]
    기린의 뿔이로다  * '코뿔소의 외뿔'의 표현인 듯. 기린은 두 뿔이니까.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人天)의 눈이로다. *人天 - 인간세계와 천상세계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참고] 만해 한룡운 선생의 제자이신 춘성[] 스님은 사리 같은 나의 자취를 남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상은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니까요. 부처님의 다비식에서 여러 나라의 왕들이 나눠 가져간 것은 덜 태운 부처님의 뼈조각이엇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리탑이 생겼고, 불상이 조성된 것은 서력 기원 이후입니다.

於是世尊即說偈言。

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常者皆盡  高者必墮   合會有離  生者有死

  항상할 것 같아도 모두 다 없어지고  

   높은 데 있는 것도 반드시 떨어지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죽느니라.

      <법구비유경> 제1 무상품 中에서

    공(空)인가 색(色)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隼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에 있다. 고려의 폐왕(廢王)인 우왕  정사년 (1377)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隷書題額字)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로 음기(陰記)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8117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나옹(翁)三歌

완주가() 

완주가 -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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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가()고루가 -마른 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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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납가() 백납가   남루한 납의(衲衣: 승려가 입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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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가() 

완주가 -염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11920&cid=41773&categoryId=44404

신령한 이 구슬은 지극히 영롱하여, 본체는 하사(河沙)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도다.
사람마다 부대 속에 당당히 있어, 언제나 희롱하여 희롱이 끝이 없다.
마니(摩尼)라고도 하고 영주(靈珠)라고도 하니, 이름과 모양은 많으나 본체는 다르지 않네.
두루 평등한 세계에서 분명하게, 마치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도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그것이나, 목마름과 배고픔을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네.
아침에는 죽 먹고 재(齋)할 때는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기에 여념이 없네.
어긋남도 그것이요 바름도 그것이매, 미타(彌陀)를 염불하는 수고가 없네.
혹 집착하기는 하나 집착 없으매, 세상에서 자유로워 그는 곧 보살(菩薩)일러라.
이 마음 구슬은 붙잡기 어려워, 분명하고 영롱하나 얻기 어렵네.
형상이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오고가도 자취 없어 헤아리기 어려워라.
쫓아가도 못 따르다가 갑자기 스스로 와, 서천(西天)에 잠시 갔다가 순식간에 돌아오네.
놓으면 허공도 그 옷 안에 들고, 거두면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구나.
불가사의한 그 몸이 굳고 단단하거니, 모니(牟尼)는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도다.
그 작용은 끝이 없고 또 다함이 없으매, 세상 사람들 망녕되이 스스로 잊고 있네.
정령(正令)의 행이여, 누가 그 앞에 서랴. 부처도 악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네.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은 없고, 피는 강가에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눈도 보지 않고 귀도 듣지 않나니, 보도 듣도 않음이 참 보고 들음이네.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이 있어,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이라고도 하나, 심성은 원래 반연(絆緣)의 그림자다.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제 몸의 영광(靈光)은 언제나 빛나리라.
도(道)라고도 하고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나, 선(禪)이나 도(道)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다.
사고(師姑)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걷는 수고 하지 않고 저 곳에 도착하리.
부처도 없고 악마도 없나니, 악마도 부처도 뿌리가 없는 눈[眼:안] 속의 꽃이니라.
언제나 날로 쓰면서 마침내 무사하매,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죽음도 없고 남[生]도 없고, 항상 비로사나(毘盧舍那) 정수리를 밟고 다니네.
거두거나 놓거나 때를 따르매, 마음대로 작용하여 골격이 밝네.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면서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네.
힘을 다해 그를 좇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 없도다.
아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고, 一, 二, 三, 四, 五, 六, 七이로다.
세어 보고 뒤쳐 보아도 끝이 없나니,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이네.

[네이버 지식백과] 완주가(翫珠歌)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인문과교양)

 

고루가()고루가 -마른 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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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른 해골은 몇 천 생 동안, 축생(畜生)이나 인천(人天)으로 허덕였던가?
지금 진흙구덩이에 떨어졌거니,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
한량없는 겁(劫) 동안 성왕(性王)에 어두워, 육근(六根)은 바삐 청황(靑黃)에 달렸으리.
다만 탐애(貪愛)만을 친할 줄 알았거니,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했으랴.
이 마른 해골은 매우 어리석고 완악(頑惡)하여,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도다.
하루아침에 무·유가 공임을 꿰뚫어 보았더라면,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벗어난 몸은 차리.
당시에 가장 좋은 시절 등지고,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쫓아 날았으리.
권하노니 그대는 빨리 머리 돌려, 진공(眞空)을 굳게 밟고 바른 길로 돌아가라.
모였다가 흩어지고 떴다가 가라앉나니, 저승이나 이승이나 마음 편치 않으리.
다만 한 생각에 능히 빛을 돌이키면, 문득 생사를 벗어나 뼛속 깊이 들어가리.
머리에 뿔이 있거나 없거나, 삼도(三途)를 기어 다니면서 어찌 능히 깨달으리.
문득 선각자(先覺)들의 교훈에 의지하면, 여기서 비로소 그 잘못을 알리라.
혹은 어리석고 혹은 탐욕과 분노로, 곳곳에서 혼미(昏迷)하여 망진(妄塵)을 뒤집어쓰네.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남북에 흩어졌거니, 어디서 참사람을 볼지 몰라.
생전에도 그르치고 죽어서도 그르쳤거니,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그르치리.
만일 한 생각에 무생(無生)을 깨달으면, 그르침이란 원래 그르침이 아니네.
추한 데도 집착하고 고운 데도 집착하여, 집착하고 집착하여 깨닫지 못하였다.
단박 한 소리에 얼른 몸을 뒤쳤으면, 눈에 가득 허공이 모두 떨어졌으리라.
혹은 그르거나 혹은 옳거나, 시비의 구덩이에서 항상 기뻐하고 슬퍼하고,
죽은 뒤의 백골 무더기 깨닫지 못했거니,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自在)하지 못하도다.
이 마른 해골이여 한 번 깨달으면, 광겁(廣劫)의 그 무명(無明)도 단박에 재가 되리라.
이때부터는 항사(恒沙)의 모든 불조(佛祖)와 백천의 삼매(三昧)도 시기하지 않으리라.
시기하지 않거니 무슨 허물 있으랴,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이니라.
만일 반(盤)의 구슬처럼 잘 운용하면, 겁석(劫石)도 그저 잠깐 지나가리라.
법도 없고 부처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또 물건도 없거니.
이 경지에 이르면 그것은 무엇인가? 추울 때는 불을 향해 나무조각 태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루가(枯髏歌)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인문과교양)

 

백납가() 백납가   남루한 납의(衲衣: 승려가 입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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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백납이 내게 가장 알맞나니, 겨울 · 여름 입어도 언제나 편리하다.
누덕누덕 꿰매어 천만의 맺음이요, 겹겹이 기웠음에 먼저와 나중이 없다.
혹은 자리도 되고 혹은 옷도 되나니, 철과 때를 따라 쓰되 어기지 않네.
지금부터 상행(上行)에 만족할 줄 알거니와, 음광(飮光)에 끼친 자취 지금에 있다.
한 잔의 차와 일곱 근의 장삼을, 조로(趙老)는 부질없이 재삼 들기 수고했다.
비록 천만 가지의 현묘(玄妙)한 말이 있다 해도, 어찌 우리 백납 장삼만 하랴.
이 누더기 옷은 편리한 점이 매우 많으니, 입고 가고 입고 옴에 매우 편리하다.
취한 눈으로 꽃을 보고 누가 구태여 집착하랴, 깊이 도에 사는 이는 능히 스스로 지키도다.
이 누더기가 몇 춘추를 지난 줄을 아는가, 반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만 남았네.
서리치는 달밤 초암(草庵)에 앉았노라니, 안팎을 가리지 못하고 모두가 몽두(蒙頭)로다.
몸은 비록 가난해도 도는 다함이 없어, 천만가지 묘한 작용은 끝이 없어라.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 웃지 말라, 일찍 선지식 찾아 진풍(眞風)을 이어받았도다.
헤어진 옷 한 벌에 여읜 지팡이 하나, 천하를 횡행해도 걸릴 데 없네.
강호를 돌아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가, 원래대로 다만 배운 것은 빈궁뿐이로다.
이익도 이름도 구하지 않고 백납의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정(情)이 있으랴.
한 바리의 생애가 어디 가나 족하거니, 그저 이 한맛으로 여생을 보내리라.
생애가 족하거니 또 무엇을 구하랴, 우치(愚癡)한 이들 분외(分外)를 구하니 우스워라.
전생에 복락을 모아두지 못하고서, 천지를 원망하며 부질없이 허덕이네.
달도 해도 기억하지 않으면서 경전을 외기나 좌선(坐禪)1도 하지 않네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인 천치 바보여, 오직 백납 한 벌 백납으로 여생을 보내리라.

[네이버 지식백과] 백납가(百衲歌)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인문과교양)

 

 

 

 

회암사지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 -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번역보기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納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隼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澈 邈哉高風 終古不滅」 宣光七年六月 日」 [출전 : 『韓國金石全文』中世下篇 (1984)]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 

 

회암사 선각왕사 비문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澈 邈哉高風 終古不滅」 宣光七年六月 日」 [출전 : 『韓國金石全文』中世下篇 (1984)] 禪覺王師之碑 (題額) 고려국(高麗國) 왕사(王師) 대조계종사(大曹溪宗師) 선교도총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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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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