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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52)하서(夏書)(22)윤정편(胤征篇)(3) 나는 오늘 그대들과 명을 받들겠노라!

             <서경(書經)>(52) 하서(夏書)(22)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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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오늘 그대들과 명을 받들겠노라!  

 

   今予以爾有衆(금여이이유중)

   "오늘 나는 그대들과 함께 명을 받들어,

   奉將天罰(봉장천벌)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고자 한다.

   爾衆士同力王室(이중사동력왕실)

   그대들은 이미왕실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尙弼予(상필여) 欽承天子威命(흠승천자위명)

   바라건대 나를 보필하여, 삼가 천자의 위명을 받들도록 하라.

   火炎崐岡(화염곤강)

   곤산(崐山)의 산등성이에서 불이 타오르면,

   玉石俱焚(옥석구분)

   옥과 돌을 구분치 말고 모조리 태우게 마련이며,

   天吏逸德(천사일덕)

   나라의 관리가 덕을 잃게 되면,

   烈于猛火(열우맹화)

   맹렬한 불길보다 더 사납게 마련이다.

   殲厥渠魁(섬궐거괴)

   그들의 괴수는 섬멸을 할 것이지만,

   脅從罔治(협종망치)

   협박에 따른 자들은 다스리지 않겠다.

   舊染汙俗(구염우속) 咸與惟新(함여유신)

   예전에 물든 더러운 습속은, 모두 새로워 지도록 하겠다.

   嗚呼(오호) 威克厥愛(위극궐애) 允濟(윤제)

   오호! 위엄이 사사로운 정을 극복하면, 진실로 다스려 질 것이다!

   愛克厥威(애극궐위) 允罔功(윤망공)

   정이 위엄을 누르게 되면, 진실로 공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其爾衆士(기이중사) 懋戒哉(무계재)

   그대들 모든 군사들은, 노력하고 경계할 지어다!"    

 

    *윤후는 끝으로 그 군사들을 격려하고, 징벌할 우두머리인 희씨와 화씨만을 처벌할 것이며, 어쩔 수 없

     이 그들에게 협박으로 복종한 자들은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일

     을 그르치지 말고 공을 세우도록 당부를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서(夏書)를 고찰해 보았는데,

     오자지가와 윤정은 <위고문상서>에만 실려 있는 것이어서인지 역사적으로는 수긍이 가지않는 부분이

     더러 있다. 중국 상고사(上古史)를 더듬어 보면, 태강(太康)이 예(羿)에게 곤욕을 당하고 죽었으며, 그

     의 동생인 중강(仲康)이 왕위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짐심(斟鄩)의 땅에서 기거 해야 하였으며,

     모든 정사는 예(羿)에 의해서 다루어 졌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 윤정편(胤征篇)은 후세에 추

     서(追書)한 자가, 역사에 어두웠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따라서 중강왕(仲康王) 때에 진실로 이와 같은

     윤후지정(胤侯之政)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완전히 예(羿)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일지도 모르

     는 일이다. 여하간 상서(商書)로 넘어가기전에 하왕조의 변혁을 요약하여 간추려 보고자 한다. 태강의

     뒤를 이은 중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상(相)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다시 예의 핍박에 못이겨 지

     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邱縣)인 상구(商邱)로 쫓겨 나고 만다. 이어 예(羿)는 왕위를 찬탈 하여

     스스로 제(帝)라 칭하였다. 예(羿)의 세력은 태강의 치세 말기에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중강때

     에 이르러 하(夏)의 왕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미게되고,기탄없는 전제정치(專制政治)를 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상(相)에 이르러 예(羿)는 하(夏)의 임금을 그 도읍지에 남겨 두고 싶지 않았으므로, 결국 상

     (相)을 상구(商邱)로 축출하고 수년간 숨겨오던 야망을 이루게 되었으며, 하왕조는 거의멸망하기에 이

     르렀다. 그러나 예는 왕위를 찬탈한 후에 활을 잘쏘는 자기의 실력만 믿고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마냥

     떠돌아 다니며 사냥을 일삼다가 그의부하인 한착(寒浞)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이어 한착(寒浞)이

     왕이라고 일컬었으나, 역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때 상(相)은 한착(寒浞)이 예를 죽이는 기회를 틈

     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수광현(壽光縣) 동북쪽인 짐관(斟灌)으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하북성(河

     北省)에 있는 제구(帝邱)로 거처를 옮겼으나,예(羿)에게서 받았던것보다 더한 한착(寒浞)의 핍박을 받

     았다.짐관과 짐심의 제후는 모두 하왕족(夏王族)과 같은 성씨를가진 사람이었다.이때 상(相)의 비(妃)

     였던 유민씨(有緡氏)는 임신중이었는데, 상(相)이 모해(謀害)를 당하여 죽게되자, 지금의 산동성(山東

     省) 제령현(濟寧縣)인 유잉(有仍) 땅으로 피신하여, 중흥(中興)의 군주로 칭송받는 소강(少康)을 낳게

     된 것이다. 소강은 철이 들자 유잉땅에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우성현(虞城縣)인 유우(有虞) 땅으로

     달려가 그지방 제후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차차 그 일대에 덕을 펴면서 왕업을 되찾고자 노력한 결과

     백성들의 신망이 다시 하(夏)의 소강(少康)에게로 되돌아 왔다. 그리하여 소강은 한착(寒浞)을 처형하

     고 우(禹)의도읍지이던 안읍(安邑)으로돌아와 다시 하왕조를 이룩하고 호(號)를 중흥(中興)이라고 하

     였다. 하왕조는 상(相)의 죽음으로 부터 수 십년, 예의 난으로부터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세워 졌는데,

     이는 하왕조의 일대 변고일뿐만 아니라, 중화 민족이 나라를 되찾은 최초의 일이었다. 후에 소강은 현

     명한 정사를 베풀어 많은업적을 남겼다. 따라서 하왕조도 다시 대대로 이어져 약 300년간 영화를 누리

     게 되는데, 걸왕(桀王) 때에 이르러 포학무도한 걸왕의 정치에 반발하여 천하의 민심은 상(商)의 탕왕

     (湯王)에게로 옮겨지고 하왕조는 붕괴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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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51)하서(夏書)(21)윤정편(胤征篇)(2) 윤후가 희씨와 화씨의 죄상을 폭로하다.

             <서경(書經)>(51) 하서(夏書)(21)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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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윤후가 희씨와 화씨의 죄상을 폭로하다.  

 

   惟時羲和(유시희화) 顚覆厥德(전복궐덕)

   "희씨와 화씨는, 그들의 덕을 뒤엎듯 저버리고,

   沈亂于酒(침란우주)

   술에 빠져서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畔官離次(반관리차)

   관직을 돌보지 않고 자리에서 이탈하여,

   俶擾天紀(숙요천기)

   처음으로 하늘의 법을 문란하게 하였다.

   遐棄厥司(하기궐사)

   그들은 그들의 맡은 바 일을 멀리 저버렸기 때문에,

   乃季秋月朔(내계추월삭)

   그래서 9월 초하루에,

   辰弗集于房(진불집우방)

   해와 달이 방(房)이란 성좌가 있는 곳에 모이지 않았다.

   瞽奏鼓(고주고) 嗇夫馳(색부치) 庶人走(서인주)

   눈먼 악관(樂官)은 북을 치고, 하급 관리는 달리며, 백성들은 뛰었으나,

   羲和尸厥官(희화시궐관)

   희씨와 화씨는 헛되이 관직만 차지하고 있을 뿐,

   罔聞知(망문지)

   이를 듣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昏迷于天象(혼미우천상) 以干先王之誅(이간선왕지주)

   천상(天象)이 혼미하여, 선대의 임금께 대하여 큰 죄를 범하였다.

   政典曰(정전왈)

   정전(政典)에서도 말하기를,

   先時者(선시자) 殺無赦(살무사)

   ‘때에 앞서 일한 자도, 죽여서 용서치 말 것이며,

   不及時者(불급시자) 殺無赦(살무사)

   때에 늦은 자도, 죽여서 용서치 말라’고 하였다"    

 

    *이절에서는 윤후(胤侯)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죄상을 폭로하고있다. 희씨와 화씨는 중요한 직

     책에 있는 사람들 이면서도 술로 나날을 보내면서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천상(天象)을 관장

     하는 직책에 있는 희씨와 화씨는, 하늘에 일식현상이 일어 났는데도 모르고 있었으니, 이는 사형에 처

     해 마땅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 이 대목의 요지인 것이다.

 

 

제4편 윤정(胤征)(1)

   이 편에서는 태강(太康)이 쫓겨나고 중강(仲康)이 왕위를 잇게 되었는데, 이때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라는 제후가 있었으나, 정사를 올바로 하지 못하여  관하(官下)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 지고 있었다. 윤후

   (胤侯)가 왕명을 받고서 출정(出征)하기전에 휘하의 장병들 앞에서 선서(宣誓)를 하여 전쟁을 하는 취지

   를 말한것이 바로 이 <윤정(胤征)>이라는 한편이다. 정(征)이란 곧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문책을 하여

   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한편 역시 <위고문상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후세의 사람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윤후(胤侯)가 희화(羲和)씨를 징벌하는 이유를 밝히다.   

 

   羲和湎淫(희화면음) 廢時亂日(폐시란일)

   희씨와 화씨가 음일에 빠져, 때 없이 날마다 어지럽게 행동하니, 

   胤往征之(윤왕정지) 作胤征(작윤정)

   윤후(胤侯)가 이를 정벌하러 가면서, 이에 윤정(胤征)을 지었다.

   惟仲康肇位四海(유중강조위사해)

   중강(仲康)이 왕위에 올라 사해를 통치하기 시작하자,

   胤侯命掌六師(윤후명장육사)

   윤후(胤侯)에게 명하여 육사(六師)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羲和廢厥職(희화폐궐직)

   당시에 희씨와 화씨가 직책을 저버리고,

   酒荒于厥邑(주황우궐읍)

   그들의 고장에서 술에 빠져 지내자,

   胤后承王命徂征(윤후승왕명조정)

   윤후는 왕명을 받들어 출정하게 되었다.

   告于衆曰(고우중왈)

   윤후가 무리들에게 고하여 말했다.

   嗟予有衆(차여유중) 聖有謨訓(성유모훈)

   "오, 나의 군사들이여! 성왕(聖王)께서 교훈을 남기셨으니,

   明徵定保(명징정보)

   밝게 증험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키고 보존하리라,

   先王克謹天戒(선왕극근천계)

   선대의 왕들은 하늘의 경계하심에 공손하시고,

   臣人克有常憲(신인극유상헌)

   신하들은 평소의 상법(常法)을 잘 지켰다.

   百官修輔(백관수보)

   백관들은 맡은 바를 정하여 그들의 왕을 보필하였으니,

   厥后惟明明(궐후유명명)

   그래서 온 천하가 밝고도 환하였다.

   每歲孟春(매세맹춘)

   매년 맹춘(孟春)이 되면,

   遒人以木鐸徇于路(주인이목탁순우로)

   주인(遒人)은 나무추가 달린 큰 방울을 흔들면서 거리를 돌며 알리기를,

   官師相規(관사상규)

   ‘관리는 서로 가르치고 바로 잡아주며,

   工執藝事以諫(공집예사이간)

   공인(工人)과 모든 기예(技藝)에 종사하면서 잘못을 충고하고,

   其或不恭(기혹불공)

   그중에 혹자가 있어 받들지 않으면,

   邦有常刑(방유상형)

   나라에 일정한 법이 있어서 벌을 내리게 되리라’고 하였다"     

 

    *천상(天象)을 관찰하고 일년의 네계절을 살펴 백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술에 빠져 직무에 게을리 하게 되자, 중강(仲康)의 명령으로 윤후(胤侯)가 그들을 문책하게 된 동기를

     윤후의 입을 빌어서 설명한 대목이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遒人)이란 전령관(傳令官), 곧 임금의 명을

     전달하는 관리를 말한다. 그리고 목탁(木鐸)은 주인(遒人)이 명령을 전달할 때에, 흔들며 다녔던 방울

     인데, 목탁(木鐸)과 금탁(金鐸)의 두 종류가 있었다. 농담이지만 얼마 전만 하여도 두부장사의 전용물

     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 대목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나라에 국법이 있는데, 이에 따라서,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는 희씨와 화씨를 치게 되었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이는 곧 그당시에 대의명분(大

     意名分)인 여론이 얼마나 중요하였던 것인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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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48)하서(夏書)(18)오자지가편(五子之歌篇)(3) 둘째와 셋째가 노래하여 한탄하였다.

             <서경(書經)>(48) 하서(夏書)(18)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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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둘째와 셋째가 노래하여 한탄하였다.

  

   其二曰(기이왈)

   그들 중의 둘째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訓有之內(훈유지내)

   "조부께서 훈계하시기를,

   作色荒(작색황)

   안으로 색(色)에 미혹이 되거나,

   外作禽荒(외작금황)

   밖으로 사냥에 빠지거나,

   甘酒嗜音(감주기음)

   술을 달게 여기거나 음률을 즐기거나,

   峻宇彫牆(준우조장)

   집을 높이고 담에 무뉘를 새기는 일들 가운데,

   有一于此(유일우차)

   한 가지만 이라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면,

   未或不亡(미혹불망)

   망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고 하였다.

 

   其三曰(기삼왈)

   이들 중의 셋째가 노래하기를,

   惟彼陶唐(유피도당) 有此冀方(유차기방)

   "저 도당(陶唐)의 요임금 때부터, 기주(冀州) 지방을 다스렸건만,

   今失厥道(금실궐도) 亂其紀綱(난기기망)

   오늘 그 왕덕(王德)을 잃어,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 졌으니,

   乃厎滅亡(내지멸망)

   끝내 멸망에 이르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이 절에서는 둘째와 셋째가 노래를 불렀는데,

     둘째는 망하지 않을 수 없는 원인들을 들어서 한탄하였고, 

     셋째는 올바른 도(道)가 어지러운 까닭이 형의 부덕함에 있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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