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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오늘 그대들과 명을 받들겠노라!
今予以爾有衆(금여이이유중)
"오늘 나는 그대들과 함께 명을 받들어,
奉將天罰(봉장천벌)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고자 한다.
爾衆士同力王室(이중사동력왕실)
그대들은 이미왕실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尙弼予(상필여) 欽承天子威命(흠승천자위명)
바라건대 나를 보필하여, 삼가 천자의 위명을 받들도록 하라.
火炎崐岡(화염곤강)
곤산(崐山)의 산등성이에서 불이 타오르면,
玉石俱焚(옥석구분)
옥과 돌을 구분치 말고 모조리 태우게 마련이며,
天吏逸德(천사일덕)
나라의 관리가 덕을 잃게 되면,
烈于猛火(열우맹화)
맹렬한 불길보다 더 사납게 마련이다.
殲厥渠魁(섬궐거괴)
그들의 괴수는 섬멸을 할 것이지만,
脅從罔治(협종망치)
협박에 따른 자들은 다스리지 않겠다.
舊染汙俗(구염우속) 咸與惟新(함여유신)
예전에 물든 더러운 습속은, 모두 새로워 지도록 하겠다.
嗚呼(오호) 威克厥愛(위극궐애) 允濟(윤제)
오호! 위엄이 사사로운 정을 극복하면, 진실로 다스려 질 것이다!
愛克厥威(애극궐위) 允罔功(윤망공)
정이 위엄을 누르게 되면, 진실로 공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其爾衆士(기이중사) 懋戒哉(무계재)
그대들 모든 군사들은, 노력하고 경계할 지어다!"
*윤후는 끝으로 그 군사들을 격려하고, 징벌할 우두머리인 희씨와 화씨만을 처벌할 것이며, 어쩔 수 없
이 그들에게 협박으로 복종한 자들은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일
을 그르치지 말고 공을 세우도록 당부를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서(夏書)를 고찰해 보았는데,
오자지가와 윤정은 <위고문상서>에만 실려 있는 것이어서인지 역사적으로는 수긍이 가지않는 부분이
더러 있다. 중국 상고사(上古史)를 더듬어 보면, 태강(太康)이 예(羿)에게 곤욕을 당하고 죽었으며, 그
의 동생인 중강(仲康)이 왕위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짐심(斟鄩)의 땅에서 기거 해야 하였으며,
모든 정사는 예(羿)에 의해서 다루어 졌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 윤정편(胤征篇)은 후세에 추
서(追書)한 자가, 역사에 어두웠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따라서 중강왕(仲康王) 때에 진실로 이와 같은
윤후지정(胤侯之政)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완전히 예(羿)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일지도 모르
는 일이다. 여하간 상서(商書)로 넘어가기전에 하왕조의 변혁을 요약하여 간추려 보고자 한다. 태강의
뒤를 이은 중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상(相)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다시 예의 핍박에 못이겨 지
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邱縣)인 상구(商邱)로 쫓겨 나고 만다. 이어 예(羿)는 왕위를 찬탈 하여
스스로 제(帝)라 칭하였다. 예(羿)의 세력은 태강의 치세 말기에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중강때
에 이르러 하(夏)의 왕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미게되고,기탄없는 전제정치(專制政治)를 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상(相)에 이르러 예(羿)는 하(夏)의 임금을 그 도읍지에 남겨 두고 싶지 않았으므로, 결국 상
(相)을 상구(商邱)로 축출하고 수년간 숨겨오던 야망을 이루게 되었으며, 하왕조는 거의멸망하기에 이
르렀다. 그러나 예는 왕위를 찬탈한 후에 활을 잘쏘는 자기의 실력만 믿고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마냥
떠돌아 다니며 사냥을 일삼다가 그의부하인 한착(寒浞)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이어 한착(寒浞)이
왕이라고 일컬었으나, 역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때 상(相)은 한착(寒浞)이 예를 죽이는 기회를 틈
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수광현(壽光縣) 동북쪽인 짐관(斟灌)으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하북성(河
北省)에 있는 제구(帝邱)로 거처를 옮겼으나,예(羿)에게서 받았던것보다 더한 한착(寒浞)의 핍박을 받
았다.짐관과 짐심의 제후는 모두 하왕족(夏王族)과 같은 성씨를가진 사람이었다.이때 상(相)의 비(妃)
였던 유민씨(有緡氏)는 임신중이었는데, 상(相)이 모해(謀害)를 당하여 죽게되자, 지금의 산동성(山東
省) 제령현(濟寧縣)인 유잉(有仍) 땅으로 피신하여, 중흥(中興)의 군주로 칭송받는 소강(少康)을 낳게
된 것이다. 소강은 철이 들자 유잉땅에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우성현(虞城縣)인 유우(有虞) 땅으로
달려가 그지방 제후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차차 그 일대에 덕을 펴면서 왕업을 되찾고자 노력한 결과
백성들의 신망이 다시 하(夏)의 소강(少康)에게로 되돌아 왔다. 그리하여 소강은 한착(寒浞)을 처형하
고 우(禹)의도읍지이던 안읍(安邑)으로돌아와 다시 하왕조를 이룩하고 호(號)를 중흥(中興)이라고 하
였다. 하왕조는 상(相)의 죽음으로 부터 수 십년, 예의 난으로부터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세워 졌는데,
이는 하왕조의 일대 변고일뿐만 아니라, 중화 민족이 나라를 되찾은 최초의 일이었다. 후에 소강은 현
명한 정사를 베풀어 많은업적을 남겼다. 따라서 하왕조도 다시 대대로 이어져 약 300년간 영화를 누리
게 되는데, 걸왕(桀王) 때에 이르러 포학무도한 걸왕의 정치에 반발하여 천하의 민심은 상(商)의 탕왕
(湯王)에게로 옮겨지고 하왕조는 붕괴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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