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의 漢詩
浮碧樓에서
浮碧樓用李寒林韻(부벽루용이한림운)
三國去如鴻
삼국거여홍, 삼국시대의 역사는 기러기처럼 자취 없고
麒麟秋草沒
기린추초몰, 기린의 전설은 가을 풀에 묻혔구나
長江萬古流
장강만고류, 긴 강물은 먼 옛날부터 도도히 흐르는데
一片孤舟月
일편고주월, 저 달은 한 조각 외로운 조각배인가
이태백의 운을 따 부벽루를 읊은 시다. 이한림은 이태백을 관직으로 부르는 말이다.
기러기는 소동파의 다음 시에서 유래한다.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사람의 한평생을 무엇이라 견줄까?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눈밭에 기러기 앉았다 간 거라네.
泥上偶然留指爪
니상우연유지조, 어쩌다 눈 위에 발자국 남겠지만
鴻飛那復計東西
홍비나부계동서, 어디로 날아갔나, 어찌 다시 알겠는가?
기러기를 통해 과거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것,
인간사 역시 허무한 것이란 말을 사명당은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기린은 상상의 동물로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영물(靈物)이다.
둘째구는 세상을 구원할 미륵보살 또는 메시아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도히 흐르는 대동강 물결과 같은 역사의 흐름과 시간의 연속성을 생각하며 고구려를 회고하고 있다.
달과 조각배와 자신을 하나로 묶은 시적 감각이 당시풍(唐詩風)이다.
1592년 임진년에 왜가 쳐들어 왔다.
본래 살생을 금하는 불교이지만 사명당은 백성들이 죽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사직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도와 승군을 조직하고 곧바로 지휘권을 서산대사로부터 물려받았다. 선교합일(禪敎合一)의 보살행(菩薩行)에서 불유통합(佛儒通合)의 대도행(大道行)으로 사명당은 시대의 부름에 응하게 된다.
壬辰十月(임진시월)
十月湘南渡義兵
시월상남도의병, 시월에 의병들이 남쪽으로 건너가니
角聲旗影動江城
각성기영동강성, 나팔소리와 깃발이 강성을 뒤흔든다
匣中寶劍中宵吼
갑중보검중소후, 칼집 속 내 보검이 한밤중에 외치누나
願斬妖邪報聖明,
원참요사보성명, 사악한 요귀들을 베어 임금님 뜻에 보답하리
過咸陽(과함양, 함양을 지나며)
眼中如昨舊山河
안중여작구산하, 옛 산하가 내 보기엔 어제와 같은데
蔓草寒煙不見家
만초한연불견가, 우거진 풀 시린 안개에 집은 보이지 않고
立馬早霜城下路
입마조상성하로, 서리 내린 초저녁 성 밑에 말을 세우니
凍雲枯木有啼鴉
동운고목유제아, 얼어붙은 구름 아래 고목에는 까마귀 울음소리
過邙山(과망산, 북망산을 지나며)
太華山前多少塚
태화산전다소총, 태화산 앞쪽의 수많은 저 무덤들은
洛陽城裏古今人
낙양성리고금인, 낙양성에 대대로 살아오던 인물들일세
可憐不學長生術
가련불학장생술, 가여워라, 불노장생 배우지 못 하고서
杳杳空成松下塵,
묘묘공성송하진, 한갓되이 소나무 아래 티끌이 되었구나
謹奉洛中諸大宰乞渡海詩(근봉락중제대재걸도해시)
일본에 가며 재상들에게 시를 부탁함
年來做錯笑餘生
년래주착소여생, 요 몇 년 동안 주착부린 일이 남은 평생 웃음거립니다
數月荷衣滯洛城,
수월하의체낙성, 서너 달 동안 장삼 자락으로 한양에 머물고 있소이다
愁病平分送春恨
수병평분송춘한, 시름과 병이 반인 채 한스럽게 봄이 지나갑니다
歌吟半惱憶山情
가음반뇌억산정, 산 속 생활을 그리며 읊조리니 나머지 반도 괴로움이지요
浮杯謾道堪乘海
부배만도감승해, 잔 띄워 바다를 건너겠다고 큰소리 치고 보니
飛錫初羞誤說兵
비석초수오설병, 지팡이 날리며 병법에 대해 잘못 말한 것 부끄럽소
爲國重輕諸老在
위국중경제노재, 나라의 모든 일이 여러 노 재상들에게 달렸으니
願承珠唾賁東行
원승주타분동행, 주옥같은 시를 주시어 동쪽 길을 밝혀주소서
전쟁은 끝났으나 나랏일은 또 하나의 전쟁과 같았다. 명나라 군사들을 돌려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백성들은 차라리 내버려두면 자신이 추스르고 일어설 것이지만 양반의 횡포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로부터는 보호해줘야 했다. 왜와의 전후문제도 처리해야 했다.
사명당은 산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으나 차마 선조의 청을 뿌리치지 못해 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왜와의 종전협상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나 마땅히 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성격이 급한 사명당이 자청하고 나섰다.
전쟁 중에도 적장에게 찾아가 협상을 벌였던 경험이 있는 그가 적임자였다.
바다 건너 왜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에게 용기와 지혜를 줄 수 있는 노 재상들의 조언을 구하는 시다.
일본 승 오초가 달마대사상을 그려와 찬을 부탁해 쓴 사명당 친필
在馬島客觀
재마도객관, 대마도 객관에서
病扃賓館痛生牙
병경빈관통생아, 병든 나그네 객관에서 생니가 아파오네
坐筭平生百不嘉
좌산평생백불가, 앉아서 한평생을 생각하니 좋았던 일 하나 없구나
髮作僧長在路
발작승장재로, 머리 깎고 중이 되어 노상 길 위에서 보냈으니
留鬚效世且無家
류수효세차무가, 수염 길러 세속을 배웠으나 집이 없다네
煙霞事業生難熟
연하사업생난숙,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일 아직 서툴고
存省工夫策未加
존성공부책미가, 깨달음에 이르는 공부에도 전념치 못했지
進退兩途俱錯了
진퇴양도구착료, 나아가고 물러서는 두 길 모두 그르쳤는데
白頭何事又乘槎
백두하사우승사, 머리 하얀 사람이 뭐 하러 배를 또 탔는가
이 시는 원제목이 길다.
위위보제생령승명도해시소기잡체시(爲圍普濟生靈承命渡海時所記雜體詩)란 큰제목 밑에
재마도객관좌차제이아무고산통복침신음(在馬島客官左車第二牙無故酸痛伏枕呻吟)이란 소제목이 붙어있다.
‘생령을 널리 구제하기 위하여 명을 받들고 바다를 건넜을 때 기록한 잡체시’,
‘대마도 객관에 있을 때 왼쪽 둘째 이빨이 까닭 없이 시리고 아파 베개에 엎드려 신음하다’란 제목이 매우 상세하다.
https://kydong77.tistory.com/4124
https://www.youtube.com/watch?v=PuCeebznTJI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C%A0%95_(%EC%8A%B9%EB%A0%A4)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청허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청허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왜군은 불교가 유교 국가 조선에서 억압을 받던 종교이기에 왜와 가깝다고 평가하고 불교 사찰들은 훼손시키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였으나, 승군이 의병으로 봉기한 시기부터 불교 사찰들을 훼손시키기 시작하였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왕의 퇴속(退俗) 권유를 거부하고, 영남에 내려가 팔공(八公)·용기(龍起)·금오(金烏) 등의 산성을 쌓고 양식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과 전마(戰馬)를 바치고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를 따라 울산왜성에 쳐들어갔으며, 이듬해 명나라 장수를 따라 순천왜성에 이르러 공을 세워 가선동지중추부사(架善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https://namu.wiki/w/%EC%9C%A0%EC%A0%95(%EC%A1%B0%EC%84%A0)
선조 25년(1592), 49세 나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 순안에 가서 휴정의 휘하에 활약해서 의승도대장이 되었다. 1593년 3월 선교양종판사에 제수되었고 1593년 8월 경상도 선종 총섭에 임명된 적이 있다. #
휴정이 늙어서 물러나자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가토 기요마사가 있는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이때 가토 기요마사와 나눈 문답은 두고두고 명언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진으로 몸소 찾아온 유정에게 가토가 "조선의 보배가 무엇이오?" 하고 묻자, 사명당은 "조선의 보배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일본 것이오." 하고 답했다. 가토가 의아하게 여겨 그 보배가 무엇인지 묻자, 사명당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하오." 하고 답했다. 조선에게 최악의 적장[14]인 가토의 목을 베어 바친다면 조선에서 높은 벼슬을 받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음을 뜻하는 것. 이 대답을 듣고 가토가 놀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