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書經

서경, 周書. 필명편(畢命篇) 1)필공은 얼굴빛을 바로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다

은인자중 2021. 2. 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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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08)주서(周書)(105)필명편(畢命篇)(1) 필공은 얼굴빛을 바로 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다.

             <서경(書經)>(208) 주서(周書)(105)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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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편 필명편(畢命篇)(1)

   이글은 강왕(康王)이 필공(畢公)에게 성주(成周) 곧 낙읍(洛邑)을 잘 다스려 줄 것을 당부한 내용인데 이

   를 사관에게 명하여 작성한 조서(詔書)이다. 이 조서에서 강왕은 필공에게 군진(君陳)의 뒤를 이어서 성

   주(成周)를 다스리면서,무엇보다도 선인과 악인을 잘 분별하여 적절히 조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주서

   (周書)의 대부분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모든 정치와 덕행의 기준은, 역시 문왕과 무왕의 업적을 삼고 있

   다. 이 필명편은 <금문상서>에는 실려 있지 않다.

 

[1] 필공은 얼굴빛을 바로 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다. 

 

   惟十有二年六月庚午朏(유십유이년륙월경오굴)  

   강왕 12년 6월 초사흘 경오일(庚午日) 밤에 초승달이 떴다.

   越三日壬申(월삼일임신)

   3일이 지난 후인 임신일(壬申日) 아침에,

   王朝步自宗周(왕조보자종주) 至于豐(지우풍)

   왕은 종주(宗周)인 호경에서 걸어서, 풍땅에 이르렀다.

   以成周之衆(이성주지중) 命畢公(명필공) 

   이로써 성주의 백성들에 대하여, 필공에게 명하여, 

   保釐東郊(보리동교)

   동쪽 교외를 보호하고 잘 다스려 편안케 하라고 하셨다.

 

   王若曰(왕약왈)

   왕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嗚呼(오호) 父師(보사)

   "아아, 보사(父師)여!

   惟文王武王(유문왕무왕) 敷大德于天下(부대덕우천하)

   문왕과 무왕께서는, 천하에 큰 덕을 펴시어,

   用克受殷命(용극수은명) 

   은나라의 대명을 이어 받았다.

   惟周公左右先王(유주공좌우선왕) 

   또한 주공께서는 선왕(先王)의 좌우에서 보좌하시어,

   綏定厥家(수정궐가) 毖殷頑民(비은완민)

   나라를 편안히 안정시키고, 은나라의 어리석은 백성들을 달래어,

   遷于洛邑(천우낙읍) 密邇王室(밀이왕실)

   낙읍으로 옮겨 놓고, 왕실과 매우 가깝게 하시니,

   式化厥訓(식화궐훈) 

   그의 교훈을 본받아 교화되었소.

   旣歷三紀(기력삼기) 世變風移(세변풍이)

   이미 삼기(三紀)인 36년이 지나, 세상도 변하고 풍속도 바뀌어,

   四方無虞(사방무우) 予一人以寧(여일인이녕)

   온 세상에 근심 없으니, 나 한 사람도 편안하오.

   道有升降(도유승강) 

   도(道)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있고,

   政由俗革(정유속혁) 

   정사(政事)는 풍속에 의해 개혁되는 것이오.

   不臧厥臧(부장궐장) 民罔攸勸(민망유권)

   그의 착함을 착하게 하지 못하면, 백성들을 권할 바가 없게 될 것이오.

   惟公懋德(유공무덕) 克勤小物(극근소물)

   공께서는 오직 덕에 힘써, 조그만 사물에도 부지런하며,

   弼亮四世(필량사세) 

   사대(四代)에 걸쳐 왕실을 보필하고, 

   正色率下(정색솔하)

   얼굴빛을 바로 하여 아랫 사람을 거느리니,

   罔不祗師言(망부지사언)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嘉績多于先王(가적다우선왕) 

   그 아름다운 공적이 선왕보다 많으니,

   予小子(여소자) 垂拱仰成(수공앙성)

   나 어린 이 사람도, 팔짱을 끼고 앙망(仰望)할 것이오"  

 

   *강왕(康王)은 아버지인 성왕(成王) 못지 않게 덕(德)이 뛰어나서, 주(周)나라 전체를 통하여서도 가장

    평화로웠던 시대가 바로 이들 두임금이 재위하던 때로 알려져 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때에는

    40여 년간 형벌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에서 강왕(강왕)은 직접 도보로 걸어서 호경에서 풍(豐)땅

    에 도착하여 필공(畢公)에게 백성들을 보호하고 편안히 다스리도록 훈시를 내렸다. 주공(周公)이 성왕

    을 도와서 나라를 안정시킨 것처럼 필공도 그를 본받아 사방에 아무런 걱정이 없게하여 줄것을 당부를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