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훈민정음 악장

黃守身,진금강경심경전(進金剛經心經箋)&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

은인자중 2022. 9. 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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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강경심경전 - 나무위키

간경도감의 도제조인 추충좌익공신ㆍ대광보국숭록대부ㆍ의정부 우의정인 남원부원군, 신(臣) 황수신등이 삼가 번역된 금강경(金剛經) 1권과 반야심경(般若心經) 1권을 새 조판(雕板)으로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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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進金剛經心經箋. 조선 세조 10년인 1464년에 도제조(都提調) 황수신이 간경도감에서 편찬한 금강경반야심경 진전문(進箋文). 현재 경기도 동두천시의 자재암(自在庵)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1464년 4월 7일에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간경도감 도제조(刊經都監 都提調)였던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 황수신이 효령대군, 한계희와 함께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진전문(進箋文)이다.

140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불교 문화와 인쇄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3. 외부 링크

4. 서문

刊經都監 都提調인 推忠佐翼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右議政인 南原府院君, 臣 黃守身等이 謹將新雕로 印飜譯金剛經一卷과 心經一卷하고 糚潢하여 投進하오며, 臣 守身等이 誠惶誠恐하여 頓首頓首하며 上言하옵니다.

竊以컨대, 道가 冒十方이니 佛乘이 所以最上이고, 德이 洽四國이니 王者가 所以宅中이옵니다. 蓋欲推無外之仁이면 必先藉不壞之法이온데, 有聖薄伽梵께서 演大修多羅하오니, 妙喩金剛하시어 號稱般若이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도(道)가 시방(十方)을 덮어 가리는 것은 일불승(一佛乘)이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고, 은덕이 사방의 나라에 두루 미치는 것은 전하께서 궁중에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대체로 벗어남이 없는 인(仁)을 펴려고 하면, 반드시 무너짐이 없는 법에 의지해야만 하온데, 성스러운 세존께서 미묘하게 금강(金剛)에 비유하신 반야(般若)라고 불리는 위대한 경전이 있사옵니다.

入城乞食하시고 將發意於圓成하신데, 著地袒肩하고, 乃翹誠於護念한데, 杜色想之六入하시고 斷種現之二疑하시니, 旣執謝而情亡이면, 斯에 空澄而智現이옵니다. 文은 成三十二品이고 理는 攝八萬餘門이오니, 實如來의 誠諦之言은 皆諸佛의 正徧之旨이옵니다.

세존께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고서 원성실성법(圓成實性法)에서 뜻을 일으키려고 하시는데, 수보리(須菩提)존자가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며, 다만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호념하십니다’에서 성심(誠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물질과 인식작용의 토대인 육입(六入)을 근절하시고, 종자(種子)와 현행(現行), 두 의혹을 단절하셨습니다. 이미 집착이 사라지고 망정이 없어지면 공(空)이 맑아서 지혜가 나타나옵니다. 금강경 내용은 32품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치는 팔만여 학설을 거두고 있사옵니다. 실로 여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은 모두 모든 부처님의 바르고 두루 미치는 종지(宗旨)이옵니다.

欽崇至道하고 允屬熙朝인데, 矧翻宣之盛功이겠사옵니까. 待聖明이면 而必擧이옵니다. 

지극한 도(道)는 흠모하여 숭상하고, 태평성세에는 진실로 가까운데, 하물며 경전을 번역해서 널리 알리는 성대한 공덕이겠사옵니까. 임금의 밝은 지혜를 기다린다면 반드시 거행될 것이옵니다.

恭惟하옵건대, 主上이신 承天軆道 烈文英武이신 殿下께서는 夙資德本하시고 洞達眞乘하시어 等福慧於世雄이시고 配聖哲於大梵이시며, 十善을 施物하시고 則之懿가 多하시니, 能彰天縱之才이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주상(主上)이신 승천체도 열문영무(承天體道 烈文英武)전하께옵서는 일찍이 덕의 근본에 이바지하셨고, 실교(實敎)에도 통달하셨사옵니다. 그래서 복덕과 지혜는 세상의 영웅들과 동등하시고, 사리에 밝으심은 대범천왕(大梵天王)과 대등하시옵니다. 십선(十善)을 만물에 베푸시고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행실이 많으시옵니다. 전하께옵서는 하늘이 주신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사옵니다.

翼覺悟於羣迷하시어 用發揮於祕義하시고 特垂口訣하시어 責委翻筵하신데, 要因口어서 以曉心하시어 遂轉華하여 以爲諺하셨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바라시어 비밀한 뜻에 대해서 표현하시고, 특별히 구결(口訣)까지 내려 주시어 역경의 자리를 책임지우며 맡기셨사옵니다. 이것은 구어(口語)를 통해서 마음을 깨닫게 하고자 하셔서 결국은 한문경전을 우리의 한글경전으로 바꾸신 것이옵니다.

臣等이 猥以譾資로 仰承隆命하옵고 雕造旣訖이어서 模印就編하오니, 敎闡은 難思이옵니다. 將此緣之殊勝이 曆延無極이어서 祝洪業之綿長하옵니다. 

신(臣) 등이 외람되이 천박한 자질로 높으신 명(命)을 우러러 받드옵고, 조판(雕板)의 조성이 완료되어 활자(活字)를 인쇄하여 경전을 완성하오니, 불법의 천양(闡揚)은 헤아리기가 어렵사옵니다. 장차 이 수승한 인연이 책력(冊曆)처럼 끝없이 연장되어서 홍업(洪業)이 면면하기를 축원 드리옵니다.

臣守身等이 誠惶誠恐하고 無任激切屛營之至하며 前件인 金剛經一卷과 心經一卷에 謹隨箋하여 上進以聞하였사옵니다.

신(臣) 수신 등은 참으로 황공하오며, 대단히 불손하고 황당한 언사를 가누지 못하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경전인 금강경 1권과 심경 1권에 삼가 전문(箋文)을 덧붙여 올리며 아뢰었사옵니다.

天順八年 四月 初七日에 都提調인 推忠佐翼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右議政인 南原府院君, 臣 黃守身等이 謹上箋하옵니다.

천순(天順) 8년(1464년) 4월 초7일에 도제조인 추충좌익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남원부원군 신(臣) 황수신등이 삼가 전문(箋文)을 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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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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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諺解. 

조선 세조 10년(1464)에 효령대군과 한계희가 왕명을 받아 당나라의 승려 현장이 한문으로 옮긴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불경 언해서. 
보물 제771호, 1211호로 지정되었다.

2. 편찬 배경

조선의 7대 왕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불교를 선호했고 그 지식 또한 남달라, 이를 눈여겨본 세종의 곁에서 불서편찬과 불경간행을 도맡았다. [1] 1457년 묘법연화경을 간행하고 58년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꺼내 전국 사찰에 분장하였으며 59년에는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렇게 어느 정도 불경 간행의 업적을 쌓은 뒤 크게 마음을 먹고 유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461년 설치한 기구가 간경도감이다.

간경도감은 한자로 만들어져 있어 백성들이 그동안 마음 놓고 읽을 수 없던 불경들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간행하는 기관으로 서울의 본사(本司)를 중심으로 안동부, 개성부, 상주부, 진주부, 전주부, 남원부 등 전국에 설치하여 전 백성이 우리말로 불경을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고 성종이 즉위한 후 성리학적인 이유로 폐지될 때까지 11년간 존속하며 능엄경언해법화경언해선종영가집언해사법어언해원각경언해아미타경언해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목우자수심결언해,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언해 등 수많은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반야심경 또한 이 시기 언해본이 간경도감에서 만들어져 전국의 사찰과 민간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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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蜜多心經諺解) - sillokwiki

세조(世祖)와 효령대군(孝寧大君), 한계희(韓繼禧) 등이 참여하여 불경(佛經)인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을 언해한 책. 개설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密多心經諺解)』

dh.aks.ac.kr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XgsEmolEaa6qskW73BlCfdAjQhxGTv25aWR3b1Jsw1jIKL6ObHCZayEyauTmP5xW.cpawas_servlet_engine1?VdkVgwKey=12,12110000,31&pageNo=1_1_1_0 

 

보물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www.heritage.go.kr

개설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密多心經諺解)』는 세조 대에 한계희 등이 엮은 불경 언해서이다. 이 책은 흔히 『반야심경언해(般若心經諺解)』 또는 『심경언해(心經諺解)』라고 줄여서 부른다.

간경도감(刊經都監) 도제조(都提調)황수신(黃守身)의 『진금강경심경전(進金剛經心經箋)』과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한계희(韓繼禧)의 발문의 내용을 볼 때, 이 책은 세조가 손수 구결을 달고 효령대군과 한계희 등에게 명을 내려 언해하도록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당(唐)나라 현장(玄裝)이 649년 한역(漢譯)을 한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密多心經)』에 702년 법장(法藏)현수(賢首)가 약소(略疏)를 달아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를 편찬하였다. 이어 1044년 송(宋)나라의 중희(仲希)가 주해하여 『반야심경소현정기(般若心經疏顯正記)』를 만들었는데, 『반야바라밀다심언해』는 세조효령대군, 한계희 등이 참여하여 이 책을 언해한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신라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서도 통용되었다.(『세종실록』 13년 9월 2일) 비록 조선은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으나, 조선 초기에 불교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며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세조는 효령대군과 한계희 등을 동원하여 1464년(세조 10) 간경도감에서 『금강경언해(金剛經諺解)』와 함께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언해하게 하였다.

한편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권수 1행에 소자(小字)로 ‘반야심경소현정기(병서)(般若心經疏顯正記(幷序))’, 5행에 대자(大字)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병인)(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幷引))’이라 하였고, 14뒷면 8행에 대자로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 하였는데 다른 불경 언해의 통칭에 비추어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