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열하일기

박지원(朴趾源), 열하일기(熱河日記) - 피서록(避暑錄) [2번]

은인자중 2023. 7. 14. 00:34

 

https://blog.naver.com/karamos/222585014576

 

열하일기(熱河日記) - 피서록(避暑錄) [2번]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熱河日記) - 피서록(避暑錄) [2번]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

blog.naver.com

 

열하일기(熱河日記) - 피서록(避暑錄) [2]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熱河日記)

 

[1]

피서록(避暑錄)

1. 피서록서(避暑錄序)

2. 피서록(避暑錄)

 

[2]

3. 주곤전소지(朱昆田小識)

 

 

 

주곤전소지(朱昆田小識)

주곤전(朱昆田)은 상고해 말하건대, 고려의 세자는 곧 충선왕(忠宣王) ()이다. 그는 일찍이 만권당(萬卷堂)을 수도에다 지은 자이고, 정가신은 동국(東國)에 있을 때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을 지었으며, 민지는 세대녹년절요(世代錄年節要고려사에는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로 나옴)를 증수(增修)하였고,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 42권을 지었다 하나, 아깝게도 그 책들을 얻어 볼 수가 없었다.

내 일찍이 자씨묘지명(姊氏墓誌銘) 수씨이공인묘지명(嫂氏李恭人墓誌銘)을 지어서 중국 사람에게 부탁하여 해내(海內)의 아름다운 글씨를 받으려 하였다. 호부 주사(戶部主事) 서대용(徐大榕 진 때의 문학가. 자는 효목(孝穆))은 호주(湖州) 사람으로 애초부터 서로 알지 못하는 처지였으나 시를 부쳐 왔다.

 

바다 밖에 경을 전한 이름 높은 그 부자 / 海外傳經名父子

문을 닫고 진종일을 산중에 살고 있네 / 閉門終日在山中

평생에 부끄런 일 서릉 글씨 못 따르니 / 平生遠媿徐陵筆

붉은 산호 저 필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오 / 不羨珊瑚作架紅

그 둘째이다.

 

지석 글씨 이 두 편을 뒷날에 연마하여 / 二銘他日爲工書

천애에 부쳐 드려 어김이 없으리라 / 遠寄天涯定不虗

들 따오기 집 닭이니 웃지나 마옵소서 / 野家雞休竊笑

부재한 저 젊은이도 상여(() 때의 문학가. 사마상여(司馬相如))에 질 바 없다오 / 不才年少亦相如

하고는, 또 자주(自注)를 하였으되,

 

이때 행기(行期)가 벌써 바빴으므로 소해(小楷)를 짓지 못하고, 잠깐 표제(表弟)를 시켜 쓰고 그 초본(草本)은 아직 머물러 두었으니, 다시 써서 부쳐 드릴 생각입니다. 이를 연암(燕巖) 족하(足下)께 드리오니, 한 번 웃고 받으시옵소서. 양호(陽湖)척암(惕葊) 서대용(徐大榕)은 초하옵니다.”

하였다. 그 글씨를 본즉, 역시 아름다운 글씨였고 두 명()은 전당(錢唐) 양정계(楊廷桂)가 쓴 것인데, 양정계는 곧 서대용의 표제(表弟)이다.

오조(吳照)는 강서(江西) 사람이다. 그의 자는 조남(照南)이요, 호는 백암(白菴)이다. 그가 석호(石湖)에 놀 때 지은 시가 모두 아름다웠다.

그 첫째이다.

 

울창한 동산 내 사라져 새벽 햇빛 누르고녀 / 茂苑煙鎖曉日黃

두어 소리 노를 저어 횡당(산서성에 있는 명승지)으로 가자스라 / 數聲柔櫓出橫塘

푸른 뫼 둘러 있어 면면이 그림이라 / 靑山面面開圖障

한 탑이 솟았으니 이곳이 상방이요 / 一塔凌空見上方

그 둘째이다.

 

작은 물결 바람 불어 가는 비늘 체질하네 / 水縐微波漾細鱗

떼를 지은 해오라기 호숫가에 서 있고나 / 沙鷗白鷺立湖濱

치이자는 어디 있노 옛 풍류를 상상하니 / 風流想像鴟夷子

이 땅에 고사 남아 미인(서시(西施))을 실었다네 / 此地曾經載美人

그 셋째이다.

 

능가산 그 기슭에 그 절이 능가사라 / 楞伽山下楞伽寺

산 어구에 물 둘리어 한 굽이가 비꼈고나 / 水繞山門一曲斜

새벽 종 치고라도 까치는 날지 않고 / 敲罷曉鍾鴉未散

빈 낭각 고요한데 오동꽃만 떨어지네 / 空廊人靜落桐花

그 넷째이다.

 

어린 벼싹 짤막짤막 이랑마다 푸르를 제 / 短短秧針綠滿疇

물구름 아득하여 서늘한 가을 흡사코나 / 水雲渺渺似涼秋

이 사이 기쁨이란 농사가 제일이라 / 此間最是爲農樂

맨 종아리 계집아이 소 치기도 잘도 하이 / 赤脚吳娃解飯牛

그 다섯째이다.

 

마름잎 물에 떠서 들 오리를 덮는고나 / 菱葉浮波覆野鳧

아름다운 그 경개는 망천도가 분명코나 / 分明佳景輞川圖

비낀 다리 푸른 버들 몇 그루나 서 있던고 / 斜橋幾樹靑靑柳

옛 시인 범석호를 못내 그려 하노라 / 憶煞詩人范石湖

그 여섯째이다.

 

호수 밖엔 뫼가 있고 뫼 아래엔 밭이 있네 / 湖外有山山下田

비 내리나 내 끼이나 호수 빛은 다 좋을사 / 湖光宜雨亦宜煙

다른 날 이곳에다 내 집을 옮긴다면 / 他年我若移家住

밭 일이 곧 끝나자 배 저어 설렁이리 / 耕罷西疇便刺船

()의 나이는 바야흐로 30여 세였고, 거인(擧人)이라 한다.

 

 

[C-001]주곤전소지(朱昆田小識) : 여러 본에 모두 이 소제가 없이 별주(別注)로 되었으나, 여기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았다. 주곤전은 주이준(朱彝尊)의 아들인데, 자는 서준(西峻) 또는 문앙(文盎).

[D-001]들 따오기 : 유익(庾翼)의 고사. 여기에서는 서대용이 스스로를 들 따오기에 비하였다.

[D-002]망천도(輞川圖) : 당의 시인 왕유(王維)가 있던 산서성의 명소 망천의 그림.

[D-003]범석호(范石湖) : 송의 문학가 범성대(范成大). 석호는 호.

[D-004]() …… 한다 : “오조는 강서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수택본에서는 누락되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열하일기(熱河日記)

 

피서록(避暑錄)

 

피서록보(避暑錄補)

1. 피서록보(避暑錄補)

 

 

 

피서록보(避暑錄補)

 

 

조선시선(朝鮮詩選) 중에 이달(李達) 보허사(步虛詞)를 실었다.

 

세 뿔이 높이 솟고 빨강 비단 날린다 / 三角嵯峨拂柴稍

머리카락 흩어진 채 가는 허리 드리웠다 / 散垂餘髮過纖腰

서왕모(중국 고대의 선녀(仙女))와 잔치 열어 언뜻 끝내고선 / 須臾宴罷西王母

한가락 난새 피리 벽도화로 향하누나 / 一曲鸞笙向碧桃

그 주()에 이르기를,

 

삼한(三韓)의 부인은 머리칼을 틀어서 수식(首飾)을 만들었고, 처녀는 말아서 뒤에다 드리웠는데, 모두 아계(鴉髻)를 짓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으므로 남은 머리칼이 가는 허리에 드리워져 있다.”

하였으니, 이 책은 명의 유격장군(遊擊將軍) 남방위(藍芳威), ()는 만리(萬里)가 만력(萬曆) 임진년(1652)에 우리나라를 구원하러 왔을 때 엮은 것이라 한다. 청장(靑莊 이덕무(李德懋))이 이르기를,

 

이 책은 곧 오명제(吳明濟) 자어(子魚)가 동에 왔을 때 뽑은 것이니 어떤 경로를 밟아서 남()의 것으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잘못된 곳이 많아서 아름다운 책[]은 못 될 것이다.”

하였다. 마고(麻姑 중국 고대의 선녀)의 소상 정수리에, 머리칼을 뭉쳐서 상투를 만들고 남은 털은 흩어 드리웠다는 것은, 곧 보허사(步虛詞 중국 시인이 지은 보허사)에 있는 말이니 어찌 반드시 유독 우리나라 부인만을 가리킨 것이리요. 남이 우리나라 계집아이들의 머리 땋은 것을 보고, 자기의 생각대로 이 시를 풀이한 것이었다.

만력(萬曆) 병오년(1606)에 허균(許筠)이 신라와 고려 이래의 시가(詩歌)를 뽑아서 4권을 만들어 주 태사(朱太史) 지번(之蕃)에게 보였더니, ()가 하룻밤 사이에 모두 열람을 마치고, 그 이튿날 허균에게 말하기를,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호)의 시는 약()하고, 이인로(李仁老)와 홍간(洪侃)의 것이 가장 아름답다.”

하였다. 옛 역사를 상고하건대, 고려 이인로의 호는 쌍명재(雙明齋)인데, 일찍이 원()에 사신으로 가서 원조(元朝) 관문(館門)의 춘첩(春帖)을 지어 중국에 이름을 드날렸으니, ()의 학사(學士)가 우리나라 사신을 만나면 그 시를 외어서 들려 주는 자가 있었다.

 

푸른 눈썹 아리따이 버들인 양 드리웠고 / 翠眉嬌展街頭柳

흰눈 펄펄 나부끼니 고개 위 매화 향기롭네 / 白雪香飄嶺上梅

천리라 우리 가원 의구한줄 믿어져라 / 千里家園知好在

봄바람이 남 먼저 알아 해동으로 오는구나 / 春風先自海東來

홍간의 호는 홍애(洪崖)였는데 그의 조조마상시(早朝馬上詩)는 다음과 같았다.

 

붉고 푸른 공중이요 시냇물은 흐르누나 / 紫翠橫空澗水流

풍연이 천리 아득 창주와 비슷하여라 / 風煙千里似滄洲

돌다리 서녘 기슭 남대로 예는 길에 / 石橋西畔南臺路

홀 괴고 뫼를 보니 한 해 가을 또 왔구려 / 拄笏看山又一秋

공자(孔子)는 일찍이 말씀하기를,

 

나의 도()가 행하지 못할진대 뗏목 타고 바다로 뜨겠다.(논어 공야장에 나오는 말)”

하였고, 또 이르기를,

 

구이(九夷)의 나라에 살고 싶어라. 군자(君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논어 자한에 나오는 말)”

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선비가 걸핏하면 이 말씀을 끌어 들여 구실(口實) 삼아 말하기를,

 

공자께서 환란의 시대에 태어나셔서 위태롭고 어지러움을 싫어하여 도가 이미 행하지 못할 것을 알고 곧 동쪽으로 올 것을 생각하여 감탄의 말씀을 나타낸 거야.”

하였다. 김우문(金宇文 () 학자) 허중(虛中 김우문의 호) 기유세서회(己酉歲書懷)에 이르기를,

 

총총히 나라를 떠난 지 문득 한 해를 격했구려 / 去國悤悤遂隔年

공사에 유익이 없이 두 일이 다 아득하고녀 / 公私無益兩茫然

당시에 의논한 일 굳지가 못할시고 / 當時論議不能固

오늘의 궁한 시름 어여쁠사 그 무언가 / 今日窮愁何足憐

살거나 죽거나 인연이 정해 있고 / 生死已從前世定

옳거나 그르거나는 뒷사람에 맡기리라 / 是非留與後人傳

외로울사 이내 몸이 상수로 들지 못할진대 / 孤臣不爲沈湘恨

삼한의 별유천을 창연히 바라려네 / 悵望三韓別有天

라 하였으니, 그가 출처(出處)의 즈음에 걱정이 많았던 것이었으므로 은근히 시가(詩歌) 중에 뜻을 붙였으니, 대체로 신세(身世)가 곤궁해서 문득 동으로 오기를 생각하여, 적이 스스로 공자가 살고 싶었던 뜻에 의거하려 한 것이었다.

중국 사람이 나에게 선비화(仙飛花)란 어떤 것인가를 물었으나, 나는 그 나무는 다른 종류가 없을뿐더러 일이 영괴(靈怪)에 가까웠으므로 대답하지 않았다. 퇴계 선생(退溪先生)께서 읊은 선비화수(仙飛花樹)에 이르기를,

 

옥인 양 높이 솟아 절 문을 비겼으니 / 擢玉亭亭倚寺門

석장이 화한 뿌리라고 중은 말을 하는고야 / 僧言錫杖化靈根

그 가지 머리에는 조계수 있었으니 / 枝頭自有曹溪水

천지간 우로 은택 빌리지 않으리라 / 不借乾坤雨露恩

라 하였으니, 이 나무는 순흥(順興)부석사(浮石寺 영주군(榮州郡)에 있다)에 있는데, 이는 곧 신라 시대의 옛 절이다. 신라 때 중 의상(義湘)이 장차 서역(西域)으로 들어갈 제 석장을 그가 살고 있던 집 문앞 처마 밑에 꽂으면서 이르기를,

 

내가 떠난 뒤 이 지팡이에 반드시 가지와 잎이 돋을 것이요, 또 이 나무가 마르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음을 알지어다.”

라 하였다. 의상이 떠난 뒤, 절 중이 그가 거처하던 방에다 소상을 모셨더니, 그 지팡이는 창 앞에서 곧 가지와 잎이 돋았는데 비록 일월의 광명은 쪼였으나 우로(雨露)의 은택은 입지 않았다. 길이는 겨우 처마에 닿을 만큼 한 길 남짓하여 1천 년 동안 한결같았다.

광해군(光海君) 때 경상 감사(慶尙監司)정조(鄭造)가 이 절에 이르러 이 나무를 보고 요수(妖樹)라 하여 톱으로 베어 버리게 하였다. 절 중이 죽음으로써 다투었으나, 정조는 이르기를,

 

선인(仙人)이 짚었던 지팡이를 나도 짚고 싶다.”

하고는 마침내 끊어 갖고 가 버렸다. 그 나무에서는 곧 두 줄기가 뻗어나서 전날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계해년(1623) 반정(反正 인조 반정) 때에 정조는 대역(大逆)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그 나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길이 푸르르고 또 잎이 피었다 떨어졌다 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선비화라 불렀으나, 역시 꽃 피는 것은 보질 못하였다. 박홍준(朴弘儁)은 내 일가 사람인데, 그가 어릴 때 이 절에서 놀다가 장난으로 그 한 줄기를 끊었으나 나무는 다시금 줄기가 솟아 전과 다름없더니, 홍준은 수십 년 전에 곤장에 맞아 죽었다. 우연히 이에 기록하여 부박한 청년들에게 경계하기로 한다.

선조(宣祖) 신묘년(1591) 간에 성주(星州)쌍계사(雙溪寺) 중이 종이 한 쪽을 바위 틈에서 발견하였는데 절구(絶句) 열 마디가 씌어 있었다. 그 첫째 마디에 이르기를,

 

동쪽이라 이 나라에 화개동이 예 있으니 / 東國花開洞

술항아린 양 그 가운데 별세계가 있더구나 / 壺中別有天

선인이 예 있으니 옥베개를 베인 채 / 仙人堆玉枕

그 신세 어떻던고 천년이 잠깐이라 / 身世倏千年

하였는데, 그 글씨의 획이 깨끗하였으며 세속에서 전하는 고운의 필적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의 사람들이 고려의 일을 읊은 시 중에는 아름다운 글귀가 많았다. 이 승지(李承旨) ()의 자는 치미(致美)인데,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읊은 평주중화관후초정(平州中和館後艸亭)에 이르기를,

 

등꽃이 깔린 땅에 향내는 아직 남고 / 藤花滿地香仍在

솔 그림자 높이 솟아 차가움이 흩어졌구나 / 松影拂雲寒不收

노는 손님 이를까보아 산새는 두려워하는 듯이 / 山鳥似嫌遊客到

한 소리 울음 울어 작은 정자 고요를 깨치누나 / 一聲啼破小亭幽

라 하였고, 왕 도운(王都運) ()의 자는 원로(元老)이니, 계주(薊州 중국 직예성(直隸省)에 있는 주명(州名)) 옥전(玉田 현명(縣名))에 살던 사람이다. 그의 송장중모사삼한(送張仲謀使三韓)에 이르기를,

 

바다에 비친 깃발들은 낙랑으로 나가누나 / 照海旌出樂浪

집에 들고 성묘하니 이 길이 빛나누나 / 過家上塚路生光

압록강 복사 잎은 건널목에 맞이하고 / 鴨江桃葉朝迎渡

파령에 송화 따서 밤 들어 차 달이네 / 嶺松花夜煮湯

조서를 삼가 지님 지초인 양 수결 놓고 / 恩詔肅持芝檢重

취한 채찍 낮게 드리우니 옥 칼집이 길디기오 / 醉鞭低裊玉鞘長

길가 백성 웃으면서 천차 길을 가리키되 / 遺民笑指天車道

남양의 성 다른 임금 흡사히도 같을세라 / 酷似南陽異姓王

라 하였다. 그의 자주(自注)를 상고하여 보면,

 

고려에서는 중국 사절(使節)을 가리켜 모두들 천차(天車) 아무 벼슬이다 하였으니, 이 일이 염자수(閻子秀) 압강일기(鴨江日記)에 실려 있었다.”

라 하였고, 장한(張翰)의 자는 임경(林卿)이니 수용(秀容 미상)에 살던 사람이다.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읊은 과평주관(過平州館)에 이르기를,

 

어저께 용천관(의주관(義州館))이 벌써 보니 기이하여 / 昨日龍泉已自奇

한 봉우리 푸른 빛이 처마 눌러 나직해라 / 一峯寒翠壓簷低

두 가지 겸하였음이 평주관만 못하더군 / 兼幷未似平州館

지붕 위엔 층 봉우리 집 아래엔 시냇물을 / 屋上層巒屋下溪

라 하였고, 금교역(金郊驛)에 이르기를,

 

산관이 소연하여 이다지 맑았으니 / 山館蕭然爾許淸

이경 머리 위에 가을 기운 깨달았네 / 二更枕簟覺秋生

서녘 창 시 읊을 곳이 더욱 아름다웁구려 / 西窓大好吟詩處

솔 소리 듣고 나서 또 들으리 빗소리를 / 聽了松聲又雨聲

라 하였고, 채송년(蔡松年)의 자는 백견(伯堅)이니, 고려관중(高麗館中)에 이르기를,

 

참조개 높은 풍미 아침 해장 도와주고 / 蛤蜊風味解朝酲

솔 위에 구름 어리어 비가 개지 않는구나 / 松頂雲癡雨不晴

고요한 층층 처마 사람 소리 끊어지고 / 消消重簷斷人語

푸른 항아리 봄 죽순에 술을 함께 기울이네 / 碧壺春筍更同傾

늦바람 높은 나무 흉금이 맑디맑고 / 晩風高樹一襟淸

사람과 푸른 항아리 서로 비춰 밝았고나 / 人與縹甆相照明

사녀(()의 여류 문학가)의 가는 읊음 깊은 운치 있으니 / 謝女微吟有深致

해산과 별과 달이 모두들 정에 걸리누나 / 海山星月摠關情

라고 하였고, 이휼(李遹)의 자는 평보(平甫)이니, 그의 사고려(使高麗)에 이르기를,

 

나라를 멀리 떠나 오천 리를 예 왔으나 / 去國五千里

오히려 말머리는 동으로 향하누나 / 馬頭猶向東

벼슬에 얽힌 정은 파초 덮은 사슴이요 / 宦情蕉葉鹿

속세에 관한 맛은 역귀 속의 벌레러라 /世味蓼心蟲

피로한 베개 위엔 삼경의 꿈이 오고 / 倦枕三更夢

먼길 손님 엷은 옷엔 팔월 바람 불었에라 / 征衫八月風

산천의 가을 빛이 눈앞에 가득하니 / 山川秋滿眼

돌아가자 외론 생각 기러기에 부치려오 / 歸思寄孤鴻

라 하였고, 위뇌계(魏雷溪) 도명(道明)의 자는 원도(元道)이니, 그의 고려관편량정시(高麗館偏涼亭詩)에 이르기를,

 

푸른 바다 반 굽이에 달팽이 뿔 그 나라요 / 碧海半灣蝸角國

봄바람 겨우 십 리 오리 머리 물결치네 / 春風十里鴨頭波

라 하였으니, 여기에서 이 나라가 극히 좁고도 작아서 족히 눈에 차지 못하다는 의미가 넘쳐 흘렀다. 평양연광정(練光亭) 주련(柱聯)에 써 있는,

긴 성 한 편에는 넘실대는 그 물이요 / 長城一面溶溶水

넓은 들 동쪽 머리엔 점점이 산이로다 / 大野東頭點點山

라 하였으나, 이는 애초부터 아름다운 글귀가 아니었으니, 만일 중국 사람으로 하여금 이곳에 올라와 보게 했다면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으리요.

 

 

[C-001]피서록보(避暑錄補) : 이하는 연암 수고(手藁) 삼한총서본(三韓叢書本) 중에서 뽑아 넣었다.

[D-001]이달(李達) : 조선 선조(宣祖) 때의 시인(詩人). 호는 손곡(蓀谷). 당시 삼당파(三唐派)의 대가.

[D-002]아계(鴉髻) : 여인의 수식이, 검기가 마치 까치의 날개와 같다 해서 이름을 얻었다.

[D-003]오명제(吳明濟) 자어(子魚) : ()의 장수로서 임진년에 우리나라에 왔다. 자어는 그의 자().

[D-004]춘첩(春帖) : 섣달 그믐날에 붉은 종이에 연어(聯語)를 써서 문 위에 붙이는 것.

[D-005]창주(滄洲) : ()의 주희(朱熹)가 은거(隱居)한 건양(建陽)에 창주정사(滄洲精舍)가 있었다.

[D-006]() : 관원이 임금의 말을 적기 위해서 상아로 만들어서 갖고 조반에 들어가는 것.

[D-007]구이(九夷) :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있는 여러 민족을 가리킨 것.

[D-008]상수(湘水) : ()의 충신 굴평(屈平)이 빠져 죽은 물 이름.

[D-009]출처(出處) : 벼슬함과 숨는 것의 그 즈음을 말함이다.

[D-010]조계수(曹溪水) : 물 이름. 원줄기는 광동성 곡강현 동남쪽인데 선종(禪宗)의 육조(六祖)인 혜능(慧能)이 거기에서 불법을 크게 일으켰다 함.

[D-011]파초 덮은 사슴이요 : 열자(列子), 어떤 초군이 사슴을 만나서 죽였으나 남이 알까봐 파초 잎으로 덮고는 몹시 기뻐하였으나 이는 진실이 아니고 한 꿈이었다.

[D-012]역귀 속의 벌레러라 : 역귀 속에 살고 있는 벌레는 해바라기로 옮길 줄을 알지 못하니, 역귀는 쓰고 해바라기는 달기 때문이다. 각기 편안한 곳에 있어야 함을 일렀다.

[D-013]긴 성 …… 산이로다 : 고려 때 시인 김황원(金黃元)의 시.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