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朴趾源), 열하일기(熱河日記) - 금료소초(金蓼小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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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금료소초(金蓼小抄) 박지원(朴趾源, 1737∼1805)
금료소초(金蓼小抄)
1. 금료소초서(金蓼小抄序)
2. 금료소초(金蓼小抄)
금료소초서(金蓼小抄序)
우리나라 의학(醫學) 지식은 그다지 넓지 못하고 약 재료도 그다지 많지 못하므로, 모두 중국의 약재를 수입해다 쓰면서도, 항시 그것이 진품이 아닌 것을 걱정하였다. 이와 같은 넓지 못한 의학 지식을 가지고, 또 진품이 아닌 약재를 쓰고 있으니, 병은 으레 낫지 않는 것이다. 내가 열하에 있을 때에 대리시경(大理寺卿) 윤가전(尹嘉銓)에게,
“요즘 의서(醫書)들 중에, 새로운 경험방(經驗方)으로 사서 갈 만한 책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윤경(尹卿)은,
“근세의 일본(日本) 판각 《소아경험방(小兒經驗方)》이 가장 좋은 책인데, 이 책은 서남 해양 중에 있는 하란원(荷蘭院)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서양의 《수로방(收露方)》이란 책이 극히 정미로우나, 시험해 보니 그다지 효력이 없었는데, 이는 대체로 사방의 기후와 풍토가 다르고, 옛날과 지금 사람들의 기품과 성질이 다른 까닭입니다. 방문만 따라서 약을 준다는 것은, 조괄(趙括)의 병법(兵法) 이야기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정속금릉쇄사(正續金陵瑣事)》에는 역시 근세의 경험들을 많이 수록하였고, 또 《요주만록(蓼洲漫錄)》이란 책이 있고, 또 《초비초목주(苕翡草木注)》ㆍ《귤옹초사략(橘翁草史略)》ㆍ《한계태교(寒溪胎敎)》ㆍ《영추외경(靈樞外經)》ㆍ《금석동이고(金石同異考)》ㆍ《기백후청(岐伯侯鯖)》ㆍ《의학감주(醫學紺珠)》ㆍ《백화정영(百華精英)》ㆍ《소아진치방(小兒診治方)》 등은 모두 근세의 저명한 학자들이 지은 책이어서, 북경 책사에서는 무엇이나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연경으로 돌아와 하란(荷蘭)의 《소아방(小兒方)》과 서양의 《수로방》을 구해 보았으나 모두 얻지 못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책들도 더러는 광동(廣東) 지방 각본(刻本)들이라 말했으나, 책사들에서도 모두 그 명목조차 몰랐다. 우연히 《향조필기(香祖筆記 청의 왕사진(王士稹) 저)》를 들추다가 그 중에서 《금릉쇄사(金陵瑣事)》와 《요주만록》의 기록을 발견했으나, 그 원서(元書)는 모두가 의학 관계의 내용은 아니었고, 《이상(貽上 왕사진 저)》의 기록은 전부가 경험에 관계되는 기록이었으므로, 나는 수십 종의 법을 따서 베끼고, 이 밖의 잡지와 필기 중에 실린 옛날 방문과 잡록들을 아울러 초록하여, 〈금료소초〉라 이름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산중에는 의서도 없고 약제도 없으므로, 가다가 이질이나 학질에 걸리면 무엇이든 가늠으로 대중하여 치료를 하는데, 때로는 맞히는 것도 있기에 역시 아래에 붙여 산골 속에서 쓰는 경험방을 삼으려 한다. 연암(燕巖)은 쓰다.
[주C-001]금료소초서(金蓼小抄序)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서는 ‘주설루본’을 좇아 추록하였다.
[주D-001]하란원(荷蘭院) : 화란(和蘭)의 교회(敎會).
[주D-002]조괄(趙括) : 전국 때에 조(趙)의 장수의 이름. 그는 그의 아버지 조사(趙奢)의 병법(兵法)을 잘 외기는 하나, 이용 변통할 줄은 몰랐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금료소초(金蓼小抄)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 저자 미상)》에 이르기를,
“산길을 가다가 길을 잃을 염려가 있을 때는, 향충(向蟲) 한 마리를 잡아 손에 쥐고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
하였다.
《유환기문(遊宦紀聞 송(宋) 장세남(張世男) 저)》에는 신경(腎經)이 허하여 허리가 아픈 병을 치료하는 데 정사수(程沙隨)의 방문을 기재하였으되,
“두충(杜沖 한약재의 일종)을 술에 담갔다가 불에 구워 말린 뒤에, 빻아서 가루를 만들 때 재를 없게 하여 술에 타서 마신다.”
하였고 또,
“날것이나 찬 것을 먹고서 앙가슴이 아픈 데는, 진수유(陳茱萸 한약재의 일종) 5ㆍ60개를 물 한 잔에 달여, 찌꺼기를 버리고 평위산(平胃散 한약정) 3돈쭝을 넣어서 다시 달여 먹는다.”
하였고, 또,
“사수(沙隨)가 항시 임질(淋疾)을 앓았는데, 날마다 백동과(白東苽 한약재의 일종) 큰 것 세 개씩을 먹고 나았다.”
하였다.
강린기(江隣幾 미상)의 《잡지(雜志)》와 《후청록(侯鯖錄 송 조영치(趙令畤) 저)》 중에 모두 적혀 있기를,
“옛 약방문에 쓰인 한 냥쭝은 지금의 석 냥쭝이 된다. 이는 수(隋) 때에 이르러서 석 냥을 합쳐서 한 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풍창소독(楓窓小牘 일명씨(逸名氏) 저)》에, 동파(東坡)의 《일첩록(一帖錄)》 중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이끌었다.
“발병에는 위령선(葳靈仙 한약재의 일종)과 우슬(牛膝 한약재의 일종) 두 가지를 가루로 만들어 꿀에 버무려서 환을 만들어 공복에 먹으면 신효를 보게 된다.”
수종(水腫)을 다스리는 데는, 논에서 나는 우렁이와 큰 마늘과 차전초(車前草 한약재의 일종)를 한데 갈아, 큼직한 지짐떡만큼씩 고약으로 만들어 배꼽 위에 붙여 두면, 물이 대소변에 따라 나오고 곧 병이 낫는다.
해소를 낫게 하는 경험방으로서는, 향연(香櫞)의 씨를 발라내고 엷게 썰어 가늘게 조각을 내어서 청주(淸酒)와 함께 연하게 간 뒤에 사기 탕관에 넣고는, 저녁 때부터 새벽 오경(五更)까지 흠뻑 익혀 가지고, 다시 꿀에 타서 잘 버무려 두고는, 자다가 일어나서 숟가락으로 떠 먹으면, 매우 효험이 있는 것이다. 또 남쪽으로 뻗은 부드러운 뽕나무 가지 한 묶음을 한 마디씩 잘게 잘라 가마에 넣고, 물 다섯 보시기를 부은 뒤에 한 보시기나 되도록 달여서 목이 마를 때마다 마실 것이다.
송 효종(宋孝宗 조신(趙昚))은 게를 많이 먹고 이질을 앓았다. 때마침 엄방어(嚴防禦)란 자가 있어서, 새로 캔 연뿌리를 잘게 갈아서 더운 술에 섞어 썼더니, 과연 나았다.
붉은 막이 덮인 눈병을 다스리는 데는, 흰 소라[白螺] 한 마리를 까서, 황련(黃連 한약재의 일종) 가루에 버무려서 하룻밤 이슬을 맞혔다가 새벽에 보면, 소라의 살은 녹아서 물이 된다. 이 물을 눈에 떨어뜨리면 붉은 막이 저절로 사라진다.
고기 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는 개의 침을 먹고, 곡식 가시랭이가 목에 걸렸을 때는 거위의 침을 넘기면 즉차할 것이다.
무릇 물에 빠진 사람이나 쇠부스러기를 먹었을 때는 오리 피를 먹으면 곧 낫는다.
갑자기 귀머거리가 된 자는, 전갈[蝎] 온 마리를 독을 없애고 가루로 장만하여 술에 타서 귓구멍에 방울로 떨어뜨리면, 소리가 들리며 낫는다.
구기자(枸杞子)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시력을 더 좋게 할 수 있다.
쇠 연장에 베었거나 다쳤을 때는, 외톨이 밤을 말려 갈아서 가루를 내어 붙이면 곧 낫는다.
후비유아(喉痺乳蛾 편도선 염증)에는 두꺼비 껍질과 봉미초(鳳尾草 한약재)를 잘게 갈아서 상매육(霜梅肉 한약재)과 함께 술에 삶아 각각 조금씩 섞어서는, 다시 갈아 가지고 가는 베로 짜서 즙을 내어 거위깃으로 찍어 환부에 바르면, 담(痰)을 토하고 곧 멍울이 사라진다.
악창이나 나쁜 종기가 처음 돋을 때, 당귀(當歸 한약재의 일종)ㆍ황벽피(黃檗皮 한약재의 일종)ㆍ강활(羌活 한약재의 일종)을 가늘게 가루로 내어 노사등(鷺鷥藤 한약재의 일종)을 날것 채로 찧어서 즙을 내어 섞어서 종기 자리의 네 변두리에 붙이면, 자연히 독기를 빨아 내거나 한데로 모여 작게 돋치게 되어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종기머리, 곧 테두리 자체에 붙여서는 아니 된다.
필기(筆記) 중에 이르기를,
“송(宋) 때 경산(徑山)에 살고 있던 중이 동산에 들어갔다가 뱀에게 발을 물렸을 때, 마침 손으로 왔던 어떤 중이 이를 치료하는데, 먼저 맑은 물을 길어 씻고, 또 계속 물 몇 섬이 들도록 바꾸어 씻어서 곪아 썩은 살을 다 없애 버리고, 상처에 흰 힘줄이 보일 때 부드러운 명주에다가 약 가루를 묻혀 상처 속에 집어 넣으니, 더러운 진물이 샘솟듯 솟아났다. 그 이튿날 맑게 씻고는 처음 모양으로 약을 발라 두니, 한 달 만에 독은 다 뽑아지고 살갗은 예전과 다름 없게 되었다. 그 약방문인즉, 향백지(香白芷 한약재의 일종)를 가루로 만들어 오리주둥이ㆍ담반(膽礬 한약재의 일종)ㆍ사향(麝香)을 각기 조금씩 넣었다. 이는 《담수(談藪 저자 미상)》에 실려 있다.”
여자들이 경도로 인하여 출혈이 심할 때는 당귀(當歸) 한 냥쭝과 형개(荊芥 한약재의 일종) 한 냥쭝을 술 한 종지와 물 한 종지에 달여 마시면 곧 그친다.
무주(撫州)에 살고 있던 상인이 이질을 만나 매우 위급하자, 태학생(太學生) 예모(倪某)가 당귀 가루를 아위(阿魏 한약재의 일종)로써 환을 지어 끓인 물에 세 번 복용시켜 곧 낫게 하였다.
또 이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황화(黃花 한약재의 일종)와 지정(地丁 한약재의 일종)을 찧어 거기에서 난 즙을 술 한 잔 분량에다 벌꿀을 조금 타서 먹으면 신효를 본다.
습담(濕痰)으로 종기가 나서 걸을 수 없을 때는, 도꼬마리ㆍ목홍화(木紅花)ㆍ나복영(蘿葍英)ㆍ백금봉화(白金鳳花)ㆍ수룡골(水龍骨)ㆍ화초(花椒)ㆍ괴조(槐條)ㆍ창출(蒼朮)ㆍ금은화(金銀花)ㆍ감초(甘草) 등 열 가지를 달여 환부에 김을 쐬도록 하고, 물이 조금 따뜻한 때를 기다려 곧 씻는다.
소장(小腸)의 산기(疝氣)에는, 오약(烏藥 한약재의 일종) 6돈쭝과 천문동(天門冬 한약재의 일종) 5돈쭝을 맹물에 끓여 먹으면 신효가 난다.
소변이 잘 통하지 않을 때는, 망초(芒硝 한약재의 일종) 한 돈쭝을 보드랍게 잘라 용안육(龍眼肉 한약재의 일종)으로 싸서 잘 씹어 넘기면 당장에 효력을 본다.
혹을 다스리는 방법은, 댓가지를 써서 혹 위쪽의 살 껍질을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긁어 헤치고는, 구리에 푸른 녹을 헤친 곳에 넣고 고약으로 붙여 둔다.
절골을 잇는 방법으로는, 기왓장을 불에 달구고 잘 말린 자라 반 냥쭝을, 뜨거운 대로 물에 적시어 자연동(自然銅)ㆍ유향(乳香)ㆍ몰약(沒藥)ㆍ채과자인(菜瓜子仁) 등을 각기 등분해서 가늘게 가루를 내어 한 푼 반 쭝씩 술에 타 먹되, 상체가 상했을 때는 밥을 먹은 뒤에 먹고, 하체가 상했을 때는 식전에 먹는다.
온역(瘟疫)으로 머리와 얼굴이 부었을 때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금은화(金銀花) 두 냥쭝을 걸게 달여 한 잔 마시면 곧 사라진다.
바늘이 뱃속에 들어갔을 때는, 참나무 숯가루 서 돈쭝을 우물물에 타서 먹어도 좋고, 또 자석(磁石)을 항문에 대 두면 끌어당겨 나온다.
형개(荊芥) 이삭을 가루로 만들어 3돈쭝을 술에 타서 먹으면, 중풍증이 당장에 낫는다.
주마감(走馬疳)을 다스리는 데는, 또 장이나 소금에 절이지 않은 홍합(紅蛤)보다 조금 작은, 와룡자(瓦壟子 홍합과 비슷함)를 불에 태워 남은 재 덩이를 찬 땅에 두고 잔으로 덮어 씌워 다 식기를 기다렸다가 끄집어내어,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 환부에 발라 스며들도록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말 발굽을 태운 재에 소금을 조금 뿌려 환부에 바르기도 한다.
천연두가 내뿜다가 검게 잦아들 때에, 침향(沈香)ㆍ유향(乳香)ㆍ단향(檀香 향의 일종) 등을, 다소를 불구하고 화롯불에 태우고, 아이를 안아 그 연기 위에 쬐면 즉시 내뿜는다.
악창을 다스리는 데는, 동과(冬瓜) 한 개를 복판을 쪼개어, 먼저 한 쪽을 헌 데에 엎어 붙인다. 동과가 더워지면 더운 데는 베어 버리고, 다시 가져다 붙여, 열이 식어지면 그만둔다. 또 다른 방문으로는, 마늘을 찧어서 떡처럼 만들어 헌 데에 얹고 불을 당겨 뜬다. 뜨면 아프지 않기도 하고, 또는 아프기도 한데, 아픈 데는 뜨고 아프지 않으면 그만둔다.
어린애들의 귀 뒤에 나는 부스럼을 신감(腎疳)이라 하는데, 지골피(地骨皮 한약재)만을 가루로 내어 굵은 놈은 뜨거운 물에 타서 씻고, 가는 놈은 참기름에 섞어 문지른다.
광동(廣東)ㆍ광서(廣西) 지방과 운남(雲南)ㆍ귀주(貴州) 등지에는 벌레 독이 많은데, 음식을 먹은 뒤 당귀를 씹으면 곧 독이 풀린다.
엽포주(葉蒲州 미상)의 〈남암전(南巖傳)〉 중에, 칼에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방문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단옷날 벤 부추를 찧어 즙을 낸 뒤, 거기다가 석회를 섞고, 다시 찧어 익혀서 떡을 만들어 상처에 붙이면, 피는 곧 멈추고, 뼈까지 상했더라도 아물게 되어 신효를 볼 것이다.”
의이(薏苡 율무)의 일명은 간주(簳珠)라고도 한다.
《계신잡지(癸辛雜志)》에 이르기를,
“목이 메었을 때는 장대산(帳帶散 한약재의 일종)을 쓰되, 다만 백반(白礬 한약재의 일종) 한 가지만을 쓰면 낫지 않기도 한다. 남포(南浦) 땅에 늙은 의원이 있어 가르치기를, 오리주둥이와 담반(膽礬)을 부드럽게 갈아 아주 독한 초에 섞어서 마시라고 한다. 어떤 관가의 늙은 호위병의 아내가 이 병을 앓아 이 방문으로 약을 썼더니, 약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뻑뻑한 담을 두어 되나 토하고는 당장에 효험을 보았다.”
하였고, 또,
“눈에 티가 끼었을 때는, 곰의 쓸개를 정한 물에 조금 풀어 타서 눈꼽 먼지와 눈알을 죄다 씻고, 빙뇌(氷腦) 한두 쪽을 쓰되, 근지러울 때는 생강가루를 조금 넣어, 때때로 은 젓가락으로 찍어 눈에 떨어뜨리면 신효를 본다. 눈이 충혈되었을 때도 역시 쓸 수 있다.”
하였다. 또 〈민소기(閩小記 저자 미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연와(燕窩)에는 검은 것, 흰 것, 붉은 것 등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붉은 것은 제일 구하기가 어렵고, 흰 것은 능히 담(痰)을 고칠 수 있고, 붉은 것은 어린애들의 홍역에 좋은 것이다.”
당 태종(唐太宗)이 이질을 앓는데, 여러 의원들이 약을 써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금오(金吾 벼슬 이름) 장사(長史) 장보장(張寶藏)이 방문을 올렸는데, 그에 의하여 필발(蓽茇 한약재)을 젖에 달여 먹였더니 당장에 나았다.
주공근(周公謹)이 괄창(括蒼)에서 나는 진피(陳皮 한약재)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두창(痘瘡)을 치료하는 데 쓴다 하였는데, 환자의 빛이 새까매지고, 뒤틀어지고, 입술이 얼음장처럼 찰 때, 개파리 일곱 마리를 찧어, 거르지 않은 술에 타서 조금씩 먹이면, 얼마 못 되어 붉은 윤기가 전과 같이 돌게 된다. 겨울철에 개파리는 개의 귓속에 있다.”
하였다.
천연두 독 때문에 밖으로는 죄어들고 안으로는 막히고 할 때는, 뱀 허물 한 벌을 정하게 씻어 불에 쬐어 말리고는, 다시 천화분(天花粉 한약재)을 같은 분량으로 부드럽게 가루로 만들어, 양(羊)의 간을 따서 속을 쪼개고 약 가루를 집어넣은 뒤, 세 껍질로 동여매고는 뜨물에 삶아 익혀서 썰어 먹으면 열흘이 못 가서 곧 낫는다.
졸지에 더위를 먹어 숨이 막혔을 때는, 큰 마늘 한 줌과 길바닥의 볕에 쬔 뜨거운 흙을 섞어 갈아서 이긴 뒤, 다시 새로 길어 온 물을 부어 걸러서 찌꺼기를 버리고 마시면 낫는다. 이 말은 《피서록(避暑錄)》 중에 실려 있다.
단풍나무 버섯을 먹으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도은거(陶隱居)의 본초주(本草注)에 보면,
“땅을 파고 냉수를 부어 휘둘러서 흐리도록 만들었다가, 조금 뒤에 이 물을 떠 마신다. 이것을 지장(地醬)이라 부르며, 여러 가지 버섯독을 낫게 할 수 있다.”
하였다.
《향조필기(香祖筆記)》 에 이르기를,
“황생(黃生) 아무개는 여주(廬州) 사람으로, 우리 고을로 유람와서 단방(單方)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모두 효험이 있었다. 그 중에서 세 가지만을 적으면, 속결되는 병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깍지 벗긴 대비마(大萆麻 한약재) 1백 50낱과 괴화나무 일곱 치[寸]를 향유(香油) 반 근에 넣어, 사흘 밤낮을 결어 두었다가 타도록 볶은 뒤, 찌꺼기를 버리고 비단(飛丹 한약재) 넉 냥쭝을 넣어 고약을 만들어서 우물 속에 사흘 동안을 담가 두었다가 밤에 끄집어내어, 먼저 피초(皮硝 한약재) 녹인 물로 환부를 씻고 이 고약을 붙인다. 치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대변을 본 뒤 감초(甘草) 끓인 물을 뒷물로 하고, 오배자(五棓子 한약재)와 여지초(荔枝草 한약재) 두 가지를 사기 남비에 달인 물로 씻는다. 여지초의 다른 이름은 나하마초(癩蝦蟆草)로서 사철, 언제나 있는데 면은 푸르고 안쪽은 희며, 얽은 구멍이 더덕더덕 있으면서 괴상한 냄새를 피우는 것이 곧 이 풀이다. 또 혈붕(血崩)증에는, 저종초(豬鬃草 한약재) 넉 냥쭝을 동변(童便)과 청주(淸酒) 각 한 종지씩에 섞어 넣어 한 종지가 되도록 달여서 따뜻하게 먹는다. 저종초는 사초(莎草)와 같고 잎은 둥글다. 정하게 잘 씻어서 쓸 것이다.”
하였다.
왕개보(王介甫)는 언제나 편두통을 앓기에, 신종(神宗)이 궁중에서 쓰는 방문을 하사하였는데, 새 나복(蘿葍)의 즙을 내어 생룡뢰(生龍腦 한약재)를 조금 넣고 골고루 잘 섞은 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약 방울을 콧구멍에 떨어뜨린다. 왼쪽 머리가 아플 때는 오른편 콧구멍에 넣고, 오른쪽 머리가 아플 때는 왼편에 넣는다.
원앙초(鴛鴦草)는 덩굴로 자라나서 누른 꽃과 흰 꽃이 마주 쌍으로 핀다. 이 약은 옹저(癰疽 등창과 같은 종기) 같은 독종을 치료하는 데 더욱 신기하다. 먹기도 하고 붙이기도 다 할 수 있다. 심존중(沈存中) 양방(良方 소심양방(蘇沈良方)의 약칭)에 실린 금은화(金銀花)가 곧 그것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노옹수(老翁鬚)라고도 하는데, 본초주(本草注)에는 그를 인동(忍冬)이라 하였고, 《군방보(群芳譜 명(明) 왕상진(王象晉) 저)》에는 노사등(鷺鷥藤)이라 하였으며, 또 금차골(金骨)이라고도 하였다.
사재항(謝在杭 미상)의 《문해피사(文海披沙)》 중에 이르기를,
“슬가(蝨瘕 이에 물려서 헌데가 된 것)은 황룡연수(黃龍沿水 미상)로 다스리고, 응성충(應聲蟲) 병은 뇌환(雷丸 한약종)과 쪽으로 다스리고, 식폐계충(食肺系蟲 폐를 먹는 벌레)은 달조(獺爪 수달의 발톱)로 다스리고, 격식충(膈食蟲 명치를 먹는 벌레)은 남즙(藍汁)으로 다스리고, 얼굴에 돋은 창은 패모(貝母 한약재)로 다스린다.”
하였다.
무창(武昌)소남문(小南門)의 헌화사(獻花寺)에 있는 늙은 중 자구(自究)란 자는, 음식으로 목이 막히는 병에 걸려 죽으면서 그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내가 불행히 이 병에 걸려 죽기는 하나, 가슴속에는 필시 무슨 물건이 있기 때문일 터이니, 죽은 뒤에 가슴을 갈라 보고 입관(入棺)을 해 달라.”
하였다. 그 제자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 비녀처럼 생긴 뼈 한 개를 끄집어내었다. 이 뼈를 불경 공부하는 책상 위에 두었는데, 오랜 뒷날에 군사를 거느리고 가던 어떤 장교가 이 방을 빌려 썼다. 어느 날, 부하들이 거위를 잡을 때 쉽사리 다 죽이질 못하여 이 뼈로 찔러 죽이자, 거위 피가 뼈에 묻은 즉시 뼈는 당장에 사라져 없어졌다. 뒷날, 그 제자가 역시 목 메는 병이 들었을 때, 전일 일이 생각나서 거위 피로 나을 수 있을 것을 깨닫고, 이를 여러 차례 먹었더니 드디어 나았다. 이내 이 방문을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려서, 누구나 다 낫게 되었다.
난산(難産)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행인(杏仁 살구씨) 한 알의 껍질을 벗겨서 한 쪽에는 날 일(日) 자를 쓰고 또 한 쪽에는 달 월(月) 자를 써서 꿀을 묻혀 붙이고, 볶은 꿀로 환을 만들어 백비탕이나 혹은 술을 마셔서 넘긴다. 이 방문은 어떤 방술(方術)하는 중이 전한 것이다.
손사막(孫思邈 당(唐)의 학자)의 《천금방(千金方 천금요방(千金要方)의 약칭)》에 이르기를,
“인삼탕(人蔘湯)은 반드시 흐르는 물을 써서 달일 것이요, 괸 물을 쓰면 효험이 없는 법이니, 이는 《인삼보(人蔘譜 저자 미상)》에 실려 있는 말이다.”
하였다.
《담포기(談圃記 저자 미상)》에 이르기를,
“증노공(曾魯公 미상)이 나이 70여 세에 이질에 걸렸는데, 고향 사람 진응지(陳應之)가 수매화(水梅花)를 납차(臘茶)에 복용하도록 하여 곧 나았다.”
하였으나, 수매화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첨사(僉事 벼슬 이름) 장탁(張鐸 송(宋)의 무관(武官))의 말에 의하면,
“비둘기를 기르면 어린애들의 감질(疳疾)을 다스린다. 비둘기를 많이 기르고, 매일 새벽마다 어린애들로 하여금 방문을 열고 비둘기를 날리게 하면, 비둘기의 기운이 낯에 부딪쳐서 감질이 없어진다.”
하였다.
《권유록(倦遊錄 저자 미상)》에 쓰여 있기를,
“신가헌(辛稼軒)이 산질(疝疾)에 걸렸을 때, 어떤 도인(道人)이 가르치기를, 율무알과 황토로 바른 동쪽 벽토를 한데 볶아서, 다시 물에 달여 고약을 만들어 자주 먹었더니 산질이 곧 사라졌고, 정사수(程沙隨)도 이 병에 걸리자, 가헌이 이 방문을 가르쳐 주어서 역시 나았다.”
하였다.
《문창잡록(文昌雜錄 송 요원영(廖元英) 저)》에 이르기를,
“정주 통판(鼎州通判) 유응신(柳應辰)이 생선 뼈에 걸린 병을 다스리는 방문을 전해 왔는데, 역수로 흐르는 물 반 잔을 떠다 놓고, 먼저 환자더러 병의 증세를 묻고 그로 하여금 그 기운을 빨아들인 다음에, 동쪽으로 향하여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 넉 자를 일곱 번 외고 공기를 들여마신 다음, 숨을 내쉬지 않은 채 물을 조금 마시면 즉시 낫는다.”
하였다.
수질(水疾 물에서 얻은 병)을 다스리는 법은, 배를 젓는 노(櫓)가 서로 마찰하는 데를 조금 긁고 또 배 밑에 묻은 때를 조금 긁어서 환약을 만든 다음, 소금물로써 세 알을 넘기면 신효가 난다.
붙임[附]
얼굴에 난 수지(水痣)는 속칭 무사마귀[武射莫爲]라 한다. 그를 다스리는 방법은, 가을의 바닷물로 씻으면 곧 없어진다. 나의 종제(從弟) 유원(綏源)이중(履仲)이 8ㆍ9세 때 얼굴에 무사마귀를 함빡 덮어 쓰다시피 하여서 백약이 무효였는데, 어가(魚哥) 성을 가진 늙은 의원이 있어 8ㆍ9월의 바닷물로 자주 씻으면 낫는다고 가르쳐 주어, 당장에 효험을 보았다.
내가 여남은 살 났을 때 얼굴에 함빡 쥐의 젖을 뒤집어 쓰게 되었는데, 눈시울과 귓가가 더욱 심했다. 더덕더덕 밥티가 붙은 것 같아서, 언제나 거울만 들여다보고 울면서 화를 냈지마는 백약이 무효였다. 때가 바로 봄 여름철이어서 가을철까지 바닷물을 기다릴 수 없어, 염정(鹽井)의 물거품을 물에 타서 몇 차례 씻고는 그대로 말렸더니, 아주 신효를 보았다. 나는 이 방법을 널리 전했더니, 효험을 아니 본 자가 없었다.
왕혹정(王鵠汀)의 종인 악가(鄂哥)는 나이 스물 한 살인데, 얼굴이 깨끗하게 생겼었다. 마침 이질에 걸려 많이 앓던 판이라, 혹정은 나에게 우리나라 태의(太醫)를 좀 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의사를 청할 필요가 없소. 촉촉한 땅을 파고 지렁이 수십 마리를 잡아 백비탕에 넣어 끓여 짜서는, 목이 마를 때 이 물을 많이 마시면 효험을 볼 것입니다.”
하였더니, 혹정이 당장에 시험하여 곧 나았다.
목생(穆生)이란 자가 마침 학질을 앓아서, 혹정은 나에게 인도하여 보이고 방문을 청한다. 나는 이슬에 생강즙을 타서 마실 것을 가르쳐 주었더니, 목은 사례를 하면서 가 버렸는데, 그 이튿날 회정(回程)했으므로 이것을 먹고 효험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이 생강즙은 학질 고치는 데 좋은 방문으로, 생강 한 뿌리를 즙을 내어 하룻밤을 한데 내어 두었다가, 해뜨기 전에 동향(東向)하고 앉아 마신다. 여러 번 시험했으나 다 나았다.
고북구(古北口)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목에 혹이 많이 달렸는데, 여자가 유달리 더하였다. 나는 혹정에게 한 방문을 가르쳐 주면서,
“혹이 만일 담핵(痰核)이라면, 끼니마다 밥을 먹을 때 먼저 한 술을 떠서 손바닥 위에 놓고 밥을 동글동글하게 비벼 쥐고 있다가, 밥을 마친 뒤에 소금을 밥에 조금 넣고 엄지손가락으로 섞어 개어서 상처에 오랫동안 붙이면 저절로 없어진답니다. 그리고 밥은 멥쌀로 지어서 쓴답니다.”
하였다.
해산을 빨리 시키는 데는, 피마자 한 알을 찧어 발바닥 한복판에 붙이면 순산을 한다. 순산한 뒤엔 곧 떼어 버려야 한다. 만일, 이를 잊어버리고 떼지 않으면 대하증(帶下症)이 생기기 쉽다.
양기를 돕는 데는, 가을 잠자리의 머리와 날개와 다리를 떼어 버리고, 곱게 갈아서 쌀뜨물에 반죽을 하여 환을 만들어 세 홉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한 되를 먹으면 늙은이가 젊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방문은, 기록하여 왕혹정에게 준 것들이다.
[주D-001]정사수(程沙隨) : 송의 장형(張逈). 사수는 호요, 자는 가구(可久).
[주D-002]《계신잡지(癸辛雜志)》 : 송 주밀(周密)의 저. 지(志)는 지(識)가 잘못된 것이다.
[주D-003]주공근(周公謹) : 이름은 주밀(周密). 공근(公謹)은 자.
[주D-004]괄창(括蒼) : 절강성에 있는 산명(山名).
[주D-005]도은거(陶隱居) : 이름은 도홍경(陶弘景). 은거는 그의 호 화양은거(華陽隱居).
[주D-006]혈붕(血崩) : 여자의 경도가 과다하게 계속하는 병.
[주D-007]심존중(沈存中) : 이름은 심괄(沈括). 존중은 자.
[주D-008]신가헌(辛稼軒) : 송의 학자 신기질(辛棄疾). 가헌은 호요, 자는 유안(幼安).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