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열하일기

박지원(朴趾源), 열하일기(熱河日記) - 환희기(幻戲記)

은인자중 2023. 7. 1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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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환희기(幻戲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熱河日記) - 환희기(幻戲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환희기(幻戲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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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환희기(幻戲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환희기(幻戲記)

1. 환희기서(幻戲記序)

2. 환희기(幻戲記)

3. 환희기후지(幻戲記後識)

 

 

 

환희기서(幻戲記序)

아침에 광피사표패루(光被四表牌樓)를 지나는데 패루 아래 만인이 거리에 둘러서서 웃음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웬 사람이 싸우다가 졸지에 죽어서 길에 가로 넘어진 것을 보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걸음을 재촉해서 지나노라니, 종자(從者)가 뒤에서 갑자기 쫓아오면서 부르기를, 괴이한 구경거리가 있다고 한다. 나는 멀리서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종자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하늘 위에 가서 복숭아를 훔치려다가 지키는 자에게 얻어맞고서 땅에 툭 떨어졌답니다.”

한다. 나는 해괴스럽다고 꾸짖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왔더니, 그 이튿날 또 그곳을 가는데 대체로 천하의 기이한 재주와 음란한 장난과 잡스러운 연극 패들이, 모두 천추절에 열하로 가려고 기다리면서 날마다 패루에 나와 백 가지 노름을 연습하고 있었다. 비로소 어제 종자가 본 것이 곧 요술(妖術)의 한 가지인 것을 알았다. 대개 상세(上世)로부터 이런 데 능한 자가 있어 소귀(小鬼)를 부려 사람의 눈을 속였으므로 이것을 요술이라 한다. ()의 시절에 유루(劉累 술사의 이름)는 용을 길들여 공갑(孔甲 하의 임금)을 섬겼고, 주 목왕(周穆王) 때에 언사(偃師 술사의 이름)란 자가 있었고, 묵적(墨翟)은 군자인데 능히 목연(木鳶)을 날렸으며, 후세에도 좌자(左慈)비장방(費長房 동한(東漢) 때의 요술사)의 무리는 이런 술법을 가지고 사람을 놀렸고, ()()의 오괴(迂怪)스러운 선비들은 신선 이야기로써 당시 임금들을 의혹시켰으니 이것은 모두 요술이다. 당시에 능히 이것을 깨닫지 못한 자는 그 술법이 서역(西域)에서 나왔으므로, 구라마십(鳩羅摩什)과 불도징(佛圖澄), 달마(達摩) 같은 자들이 더욱 요술을 잘할 줄 알았을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이런 술법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는 스스로 왕법(王法) 밖에 두어서 이를 주절(誅絶)시키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답하기를, “이는 중국 땅이 커서 한없이 넓으며 끝이 없어 이런 것도 같이 길러내므로 정치에 병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만일 천자가 좀스러워서 이런 것을 자로 계교하고 깊게 추궁한다면, 도리어 깊숙한 곳에 잘 보이지 않게 살다가 때로 나와서 세상을 흐려 놓을 것이니, 천하의 근심이 클 것 이므로 날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장난삼아 구경하게 하면 비록 부인이나 어린이라도 이것을 묘술로 알게 되어, 족히 마음을 놀래고 눈을 현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임금된 자로서 세상을 어거하는 방법이 아니겠소.”

하고는, 드디어 그 구경한 바 여러 가지 요술 스무 가지를 기록하여 장차 우리나라의 이 노름을 못 본 자에게 보이고자 한다.

 

 

[C-001]환희기서(幻戲記序)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아 추록하였다.

[D-001]언사(偃師) : 산 사람과 다름없는 인형을 만들었다.

[D-002]묵적(墨翟) : 전국 때 공자와 병칭하던 학자로서 겸애설(兼愛說)을 주창한 철인.

[D-003]구라마십(鳩羅摩什) : 구마라십(鳩摩羅什)의 오기(誤記). 서역 귀자(龜玆)의 명승.

[D-004]불도징(佛圖澄) : () 때 천축(天竺)의 명승. 어떤 본에는 불국증(佛國證)으로 되었으나 잘못되었다.

[D-005]달마(達摩) : 양 무제(梁武帝) 때 인도로부터 들어온 명승. 선종(禪宗)의 시조.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환희기(幻戲記)

 

 

요술쟁이가 대야에 손을 씻고 수건으로 정하게 닦은 뒤에 얼굴을 정제하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손바닥을 치고 이리저리 뒤집어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 뒤에, 왼손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은 환약을 만지고 이나 벼룩을 잡듯이 마주 비비니, 갑자기 가느다란 물건이 생겨 겨우 좁쌀낱만 했다. 연거푸 이것을 비비니 점점 커져서 녹두알만 해지고 차차 앵두알만 하다가 다시 빈랑(檳榔)만 하더니 차츰 달걀만 해졌다. 두 손바닥으로 재빨리 비벼 굴리니 둥근 것이 더 커져서 노랗고 흰 것이 거위알만 해졌다. 조금 있더니 이번에는 차차로 커지지 않고 별안간 수박만 하게 된다. 요술쟁이는 두 무릎을 꿇고 가슴을 벌리고 더 빨리 비벼 장고를 끌어안은 듯 팔뚝이 아플 만하여 그치더니, 이내 탁자 위에 놓는데 그 몸뚱이는 둥글고 빛은 샛노랗고, 크기는 동이만 한 것이 다섯 말 들이는 되어 보이며, 무게는 들 수가 없고 단단하여 깨뜨릴 수가 없어 돌도 아니요 쇠도 아니며, 나무도 아니요 가죽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둥근 것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냄새도 없고 향기도 없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만치 제공(帝工) 같았다. 요술쟁이는 천천히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다시 그 물건을 만지는데, 부드럽게 굴리고 가만히 쓰다듬으니 물건은 부드러워지고, 손을 슬며시 대니 가볍기가 물거품 같아 점점 줄어들고 사라져서, 잠깐 사이에 다시 손바닥 속으로 들어가는데 다시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비비다가 한 번 튀기니 즉시 사라져 버린다.

요술쟁이는 사람을 시켜 종이 몇 권을 길게 찢어서 큰 통에 있는 물 속에 집어 넣고 손으로 그 종이를 빨래하듯 저으니, 종이는 풀어지고 흐트러져서 흙을 물 속에 넣은 것과 같았다. 여러 사람들을 두루 불러 통 속에 있는 종이가 물과 섞인 것을 보이니 가위 한심한 일이다. 이때 요술쟁이는 손뼉을 치고 한 번 웃더니 두 소매를 걷고 두 손으로 통에 있는 종이를 건져 내는데, 마치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하니, 종이는 서로 이어져 나오는데 처음에 길게 찢을 때와 같고 이은 흔적이 없었다. 어느 사람이 풀로 발랐는지 띠와 같이 수백 발이나 되는 것을 땅바닥에 풀어놓아 바람에 펄럭거렸다. 다시 통 속을 보니 맑고 깨끗하여 찌꺼기 하나 없이 새로 길은 물과 같았다.

요술쟁이는 기둥을 등지고 서서 사람을 시켜 손을 뒤로 젖혀 붙이고 두 엄지손가락을 묶으라 했다. 기둥은 두 팔 사이에 있고 두 엄지손가락은 검푸르게 되어 아픔을 참지 못하니,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금 있더니 요술쟁이는 기둥에서 떨어져 서는데 손은 가슴 앞에 있고 묶은 데는 전이나 다름없이 아직 풀리지 못했다. 손가락의 피는 한 곳으로 모여서 빛은 더욱 검붉어 몹시 아픈 것을 견디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이에 노끈을 풀어주니 혈기가 점점 통하고 노끈 자리는 오히려 붉었다. 우리 일행인 역부(驛夫)가 눈을 모아 자세히 보다가 심중으로 노하여, 얼굴빛을 변해 의분을 내고는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내어 큰 목소리로 요술쟁이를 불러 먼저 돈을 주고는,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기를 요구했다. 요술쟁이는 원망하는 듯이,

 

내가 너를 속이지도 않았는데 너는 나를 못 믿으니 네가 맘대로 나를 묶어 보려무나.”

한다. 역부는 분기를 내어 먼저 노끈은 던져버리고 자기가 가진 채찍을 끌러 입에 물어 축인 다음 요술쟁이를 붙들어 등에 기둥을 지우고 뒷 손을 젖혀서 묶는데 먼젓번보다 훨씬 세게 묶었다. 요술쟁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치는데 뼛속까지 아파서 콩알만 한 눈물이 떨어진다. 역부가 크게 웃으니 구경꾼들이 더욱 많아졌는데, 벗는 것을 볼 사이도 없이 요술쟁이는 벌써 기둥을 떠나 서 있고 묶은 데는 아직도 풀어지지 않았다. 이런 신통한 것을 세 번이나 보였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술쟁이는 둥근 수정 구슬 두 개를 탁자 위에 놓았는데 구슬을 계란보다 조금 작았다. 한 개를 입을 벌리고 집어 넣으니 목구멍은 좁고 구슬은 커서 삼키지 못하고 구슬을 토해 내어 도로 탁자 위에 놓았다. 다시 광주리 속에서 계란 두 개를 내어 눈을 부릅뜨고 목을 늘이고서 알 하나를 삼키는데, 마치 닭이 지렁이를 삼키는 것 같고 뱀이 두꺼비 알을 삼키는 것 같아 목 속에 걸려서 거죽으로 혹이 달린 것 같았다. 다시 알 하나를 삼키니 과연 인후를 틀어막아 재채기하고 구역질하며, 목에 핏대가 서자 요술쟁이는 후회하고 살고 싶지 않은 듯이 대 젓가락으로 목구멍을 쑤시니 젓가락이 꺾어져 땅에 떨어진다. 이제 어쩔 수가 없어 입을 벌리고 사람들에게 보이는데 목구멍 속에는 조금 흰 것이 드러난다. 가슴을 치고 목을 두드리며, 답답하고 쩔쩔매는 꼴을 보고 사람들은,

 

조그만 재주를 경솔히 자랑하다가 아아, 이제는 죽는구나.”

하였다. 요술쟁이는 가만히 귀가 가려운 듯이 듣더니 귀를 기울이고 긁는 것이 무슨 의심이 있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귓구멍을 후벼 흰 물건을 끄집어 내니 과연 계란이었다. 이때에 요술쟁이는 오른손으로 계란을 쥐고 여러 사람 앞에 두루 보이더니, 왼쪽 눈에 넣었다가 오른편 귀에서 뽑아내고 오른편 눈에 넣었다가 왼편 귀에서 뽑아내며, 콧구멍에 넣었다가 뒤통수로 뽑아내는데 목에는 아직도 계란 한 개가 남아 있었다.

요술쟁이는 흰 흙 한 덩이로 땅에 큰 동그라미를 그어 여러 사람들을 동그라미 밖에 둘러앉게 했다. 요술쟁이는 이때 모자를 벗고 옷을 끄르고 시퍼렇게 간 칼을 내어 땅 위에 꽂아 놓고 다시 댓가지로 목을 쑤셔 계란을 깨뜨리려 했다. 땅을 버티고 서서 한 번 토해도 알은 종내 나오지 않아 이에 그 칼을 빼어 좌에서 우로 휘두르고 우에서 좌로 휘두르다가, 공중을 쳐다보고 한 번 던져 이것을 손바닥으로 받더니, 또 한 번 높이 던지고는 하늘을 향하여 입을 벌리니 칼 끝이 바로 떨어져 입 속에 꽂힌다. 이때에 여러 사람들은 얼굴빛을 변하여 모두 벌떡 일어나고 깜짝 놀라 말이 없는데, 요술쟁이는 고개를 젖히고 두 팔을 늘이고 뻣뻣이 한참 선 채,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참 있다가 칼을 삼키는데, 병을 기울여 무엇을 마시듯 목과 배가 서로 마주 응하는 것이 성난 두꺼비 배처럼 불룩거렸다. 칼고리가 이에 걸려 칼자루만 넘어가지 않고 남아 있다. 요술쟁이는 네 발로 기듯이 칼자루를 땅에 쿡쿡 다져 이와 고리가 맞부딪쳐 딱딱 소리가 났다. 또 다시 일어나서 주먹으로 칼자루 머리를 치고서 한 손으로 배를 만지고 한 손으로는 칼자루를 잡고 내두르니, 배 속에서 칼이 오르내리는 것이 살가죽 밑에서 붓으로 종이에 줄을 긋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은 가슴이 섬뜩하여 똑바로 보지 못하고 어린애들은 무서워서 울면서 안 보려고 엎어지고 기어서 달아났다. 이때에 요술쟁이는 손뼉을 치고 사방을 돌아보고 늠름하게 바로 서서 이내 천천히 칼을 뽑아 두 손으로 받들어 들며, 여러 사람들의 바로 눈 앞에 두루 보이면서 인사를 하는데, 칼 끝에 붙은 핏방울에는 아직도 더운 기운이 무럭무럭 났다.

요술쟁이는 종이를 나비 날개처럼 수십 장을 오리고 손바닥 속에서 비벼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고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한 어린이에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라 하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니, 그 어린이는 발을 구르면서 울었다. 요술쟁이는 웃으면서 손을 떼니 어린이는 울다가 토()하고 또 울다가는 토하는데, 청개구리를 연달아 수십 마리를 토하여 모두 땅바닥에서 뛰놀곤 하였다.

요술쟁이는 탁자 위를 정하게 닦더니 붉은 탄자 보자기를 툭툭 털어 탁자 위에 펴놓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손뼉을 쳐서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보였다. 요술쟁이는 천천히 탁자 앞으로 와서 한 손으로 보자기 복판을 누르고 한 손으로는 보자기 귀퉁이를 집어 올려 젖히니, 붉은 새 한 마리가 한 번 울면서 남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또 한 번 손을 동쪽으로 쳐드니 푸른 새가 동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손을 보자기 밑에 집어 넣어 가만히 참새 한 마리를 집어내는데 빛은 희고 입부리는 붉었다. 두 발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다가 요술쟁이의 수염을 움켜잡았다. 요술쟁이가 수염을 쓰다듬으니 새는 다시 요술쟁이의 왼쪽 눈을 쪼았다. 요술쟁이는 새를 버리고 눈을 문지르니 새는 서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요술쟁이는 분해서 한숨을 쉬면서 다시 가만히 손을 넣어 검정 참새 한 마리를 잡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다가, 잘못해 놓쳐서 참새가 땅에 떨어져 돌아서 탁자 밑으로 들어가니, 어린이들이 서로 참새를 붙잡으려고 하자 새는 일어나 북쪽을 향하여 날아갔다. 요술쟁이는 분이 나서 보자기를 집어 치우니, 수없는 집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치면서 나와 빙빙 돌다가 지붕 처마 위에 모여 앉았다.

요술쟁이는 작은 주석병을 가지고 오른손으로 물 한 대접을 떠서 병 주둥이에 철철 넘도록 붓더니, 대접을 탁자 위에 놓고 대젓가락을 가지고 병 밑을 찌르니, 물이 병 밑으로 방울져 흐르는데 조금 있다가 낙숫물처럼 줄줄 흘렀다. 요술쟁이는 고개를 젖히고 병 밑을 입으로 부니 새던 물이 뚝 그쳤다. 요술쟁이는 공중을 향해서 옆으로 흘겨보면서 입 속으로 주문(呪文)을 외니, 물은 병 주둥이로부터 몇 자 높이나 솟아 땅바닥에 가득히 쏟아졌다. 요술쟁이는 소리를 지르면서 솟아오르는 물 중간을 움켜 잡으니, 물은 중간이 끊어지면서 꾸부러져 병 속으로 들어갔다. 요술쟁이는 다시 대접을 가져다가 물을 도로 따르니, 병에 든 물의 분량은 처음과 같고 땅바닥에 물이 흐른 자국은 몇 동이나 쏟은 것 같았다.

요술쟁이는 금고리 두 개를 내어 탁자 위에 놓더니 여러 사람들을 두루 불러서 이 고리를 보였다. 크기는 두 뼘이나 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둥글둥글 한 것이 천작(天作)으로 되었다. 요술쟁이는 이때 두 손을 쫙 벌리고 각각 고리 하나씩을 쥐고는 내둘러 춤을 추면서 공중을 향하여 고리를 던졌다가 고리로 고리를 받으니, 두 고리는 서로 이어져서 이어진 고리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는데, 끊어진 데도 없고 틈자리도 없으니 누가 이을 때를 보았으랴. 요술쟁이는 이때 두 손을 쫙 벌리고 두 손으로 고리 하나씩을 잡고 한 번 떼었다 한 번 붙였다 하고, 한 번 이었다 한 번 끊었다 하며, 끊고 잇고 떼고 붙이곤 했다.

요술쟁이는 수놓은 모직물 보자기를 탁자 위에 펴놓고 보자기 한 구석을 약간 들어 주먹만한 자줏빛 돌 한 개를 집어내어, 칼 끝으로 조금 찌르고 돌 밑에 잔을 바치니 소주가 조금씩 흘러 내렸다. 잔이 차면 그치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내어 술을 사 먹는다. 사괴공(史蒯公)을 청하면 돌에서 사괴공이 흘러나오고, 불수로(佛手露)를 청하면 돌에서 불수로가 흘러나오며, 장원홍(壯元紅)을 청하면 장원홍이 흘러나온다. 사괴공불수로장원홍은 모두 술의 이름이다. 한 가지만 능한 것이 아니라 청하는 대로 문득 응하여 한 줄기 매운 향기는 위()에 들어가면 볼이 붉어진다. 연거푸 수십 배를 쏟더니 홀연히 돌 있는 곳을 잃어버렸다. 요술쟁이는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으며, 멀리 백운(白雲)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돌이 하늘 위로 올라갔소이다.”

하였다.

요술쟁이는 손을 보자기 밑에 넣어 빈과(蘋果) 빈과는 곧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사과(沙果), 중국의 이른바 사과는 곧 우리나라의 임금(林檎 능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없었는데, 동평위(東平尉) 정공(鄭公) 재륜(載崙)이 사신으로 갔을 때에, 가지에 접을 붙여 동쪽으로 돌아온 뒤로 우리나라에 비로소 많이 퍼졌으며, 그 이름이 잘못 전한 것이라고 한다. 세 개를 끄집어냈다. 가지가 연하고 잎이 붙은 것을 한 개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에게 사라고 청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머리를 흔들고 즐겨 사지 않으면서,

 

네가 전일에 항상 말똥으로 사람을 희롱한단 말을 들었거든.”

한다. 요술쟁이는 웃으면서 이것을 변명하지 않는데 여러 사람들은 다투어 사서 먹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비로소 사자고 청하니 요술쟁이는 처음에는 아끼는 듯하다가, 얼마 뒤에 한 개를 집어 주니 우리나라 사람이 한 입 베어 먹고는 바로 토하는데, 말똥이 한 입 가득 차서 온 저자 사람이 모두 웃었다.

요술쟁이는 바늘 한 줌을 입에 넣고 삼켰는데 근지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말하는 것이나, 웃는 것이 평상과 다름없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천천히 일어나서 배를 문지르고 붉은 실을 비벼서 귓구멍에 넣고 한참 동안 섰더니, 재채기를 몇 번 하고는 코를 쥐어 콧물을 내고 수건을 내어 코를 씻고 나서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코털을 뽑는 것 같더니, 얼마 만에 붉은 실이 콧구멍에서 조금 보였다. 요술쟁이는 손톱으로 그 실 끝을 집어 당기니 실이 한 자 넘게 나오면서 갑자기 바늘 한 개가 콧구멍에서 누워 나오는데 실에 꿰어져 있었다. 가느다랗게 질질 끌려 빠지는 실은 자꾸 길어져서 백 개 천 개 바늘이 실 한 끝에 꿰어졌고, 혹은 밥알이 바늘 끝에 붙어 있었다.

요술쟁이는 흰 빛 대접 하나를 내어 여러 사람들에게 엎어 보이더니 땅바닥에 놓았는데 아무 물건도 없었다. 요술쟁이는 사방을 돌아보면서 손뼉을 쳐 보이고는 접시 한 개를 가져다가 대접을 덮고 사방을 향하여 노래처럼 부르더니, 얼마 있다가 열어 보니 은 다섯 쪽이 있는데 모양은 흰 마름처럼 생겼다. 요술쟁이는 사방을 돌아보고 손뼉을 쳐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는 다시 접시로 대접을 덮고서 공중을 향하여 옆으로 흘겨보고 진언(眞言)을 외는 소리가 욕하는 것 같더니, 얼마 있다가 열어 보니 은()은 돈으로 화하여 그 수효는 역시 다섯 개였다.

요술쟁이는 은행 한 소반을 땅 위에 놓고 큰 항아리로 이것을 덮고 공중을 향하여 주문을 외우다가 한참 만에 열어보니, 은행은 보이지 않고 모두 산사(山査 한약재의 일종)가 되었다. 다시 그 항아리로 덮고 공중을 향하여 주문을 외우다가 한참 만에 열어 보니, 산사는 보이지 않고 모두 두구(荳蔲 한약재의 일종)가 되었다. 다시 항아리를 덮고 공중을 향하여 주문을 외우다가 한참 만에 열고 보니, 두구는 보이지 않고 모두 붉은 오얏이 되었다. 다시 항아리를 덮고 공중을 향하여 주문을 외우다가 한참 만에 열고 보니 붉은 오얏은 보이지 않고 모두 염주(念珠)가 되었다. 전단(栴檀)으로 여러 개의 포대(布袋) 목상(木像)을 조각하였는데 하나하나가 웃음을 머금고 낱낱이 뚱뚱하여 한 줄에 1 8개를 꿴 것이, 처음도 끝도 없이 가지런했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요술쟁이는 사방을 돌아보면서 손뼉을 쳐 여러 사람들을 두루 불러 용한 술법을 자랑했다. 다시 그 항아리를 덮어서 땅 위에 엎었다가 뒤집어 놓으니, 항아리는 밑으로 가고 소반은 위에 있게 되었다. 옆눈으로 보면서 화가 난 듯이 소리를 치고 한참 만에 열어 보니, 염주는 하나도 없고 맑은 물이 철철 넘치며, 한 쌍의 금붕어가 항아리 속에서 활발히 노는데 물을 먹고 진흙을 토하고 한 번 뛰고 한 번 헤엄치곤 했다.

요술쟁이는 한 자 넓이나 되는 꽃 자기 쟁반 다섯 개를 탁자 위에 놓고 다시 가는 댓개비 수십 개를 탁자 아래 놓았는데, 댓개비의 대소와 장단은 화살과 비슷하고 모두 끝을 뾰죽하게 깎았다. 댓개비 한 개를 가지고 그 끝에 쟁반을 얹고 대를 돌리니, 쟁반은 기울지도 않고 삐뚤어지지도 않으며, 도는데 조금 느리게 돌면 다시 손으로 쳐서 빨리 돌게 한다. 쟁반은 빨리 도는 바람에 미처 떨어질 사이도 없었다. 쟁반이 조금 기울 때는 다시 댓가지로 질러 올리면 쟁반이 한 자 넘어 높이 솟았다가 똑바로 댓개비에 그대로 내려 앉아 팽팽 돌았다. 요술쟁이는 이것을 오른쪽 신 속에 꽂아 놓으니 쟁반은 저절로 돌고 있었다. 다시 한 개비로 쟁반을 처음처럼 돌리다가 왼편 신 속에 꽂고 또 한 개비로 돌리다가 오른편 옷깃에 꽂고 다른 한 개비는 왼편 옷깃에 꽂으며, 또 다른 한 개비는 끝에 쟁반을 얹어 흔들고 치밀고 핑핑 돌리니 손으로 칠 때마다 쟁쟁 소리가 났다. 이때 요술쟁이는 댓개비에 댓개비를 잇달아 꽂는데 쟁반은 무겁고 댓개비는 길어지니 댓가지 중동이 절로 구부러지는데, 쟁반은 떨어져 부서질 생각도 않고 돌리기를 그치지 않는다. 댓개비 10여 개를 이은즉 높이가 지붕 위에까지 올라갔다. 요술쟁이는 이었던 댓개비를 천천히 하나씩 빼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 탁자 위에 도로 놓았다. 이때 요술쟁이는 입에 댓개비 하나를 담뱃대처럼 물고 입에 문 댓개비 끝에 높은 댓개비를 세우며, 두 팔을 늘어뜨리고 뻣뻣이 한참 동안 서니 이때 구경꾼들은 뼈가 자릿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이는 쟁반을 아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상 목격하기가 너무 위험해서였다. 별안간 바람이 일어 댓개비는 과연 중동이 부러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 소리를 치자, 요술쟁이는 역시 재빨리 쫓아가 쟁반을 슬며시 받아서, 다시 공중으로 높이 1백 척이나 되게 던져 놓고 사방 구경꾼을 돌아보면서 편안한 듯 쟁반을 받는데, 자랑하는 빛도 없고 뽐내는 기색도 없이 옆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했다.

요술쟁이는 벼알 네댓 말을 앞에 놓고 두 손으로 다투듯이 움켜쥐고 짐승 고기처럼 잠깐 사이에 다 먹어 버리니 땅바닥은 핥은 듯했다. 이때 요술쟁이는 땅바닥을 버티고 겨를 토하는데, 침이 뭉쳐서 덩어리가 되어 나왔다. 겨가 다 나오더니 계속해서 연기가 입술과 이 사이에 어리어 손으로 수염을 씻고 물을 찾아 양치질을 해도 연기는 끝내 그치지 않았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가슴을 치고 입술을 쥐어 뜯으며 연거푸 물을 몇 그릇 마셨으나, 연기의 형세는 더욱 심하여 입을 벌리고 한 번 토하니 붉은 불이 입에 찼다. 젓가락으로 집어내니 반은 숯이요 반은 타고 있었다.

요술쟁이는 금호로병(金葫蘆甁)을 탁자 위에 놓고 또 녹동(綠銅) 화병을 내놓는데 공작의 깃이 꽂혀 있더니, 조금 있다 보니 금호로병이 간 곳이 없다. 요술쟁이는 구경꾼들 중의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노야(老爺)가 감추었어.”

하니, 그 사람은 노하여 얼굴빛이 변해 가지고,

 

어찌 이렇게 무례하단 말야.”

했다. 요술쟁이는 웃으면서,

 

노야께서는 정말 거짓말을 하십니다. 호로병은 노야의 주머니 속에 있습니다.”

하니, 그 사람은 크게 노하여 입 속으로 욕을 하면서 옷을 한 번 털어 보이니, 홀연 품속에서 땡그랑 소리가 나면서 호로병이 떨어졌다. 온 저자가 일제히 웃으니 그 사람은 묵묵히 있다가 딴 사람 등 뒤에 가서 섰다.

요술쟁이는 탁자 위를 깨끗이 닦고 도서(圖書)를 진열하고 조그만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흰 유리 접시에 복숭아 세 개를 담아 두었는데 복숭아는 모두 큰 대접만 했다. 탁자 앞에 바둑판과 검고 흰 바둑알을 담은 통을 놓고 초석을 단정하게 깔아놓았다. 잠깐 휘장으로 탁자를 가렸다가 조금 후에 걷으니, 구슬 관에 연잎 옷을 입은 자도 있고, 신선의 옷과 신 차림을 한 자도 있으며,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고 맨발로 있는 자도 있고, 혹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기도 하며, 혹은 지팡이를 짚은 채 옆에 서 있기도 하고, 혹은 턱을 고이고 앉아서 조는 자도 있어 모두가 수염이 아름답고 얼굴들이 고기(古奇)했다. 접시에 있던 복숭아 세 개가 갑자기 가지가 돋고 잎이 붙고 가지 끝에 꽃이 피니, 구슬관을 쓴 자가 복숭아 한 개를 따서 서로 베어 먹고, 그 씨를 땅에 심고 나서 또 다른 복숭아 한 개를 절반도 못 먹었는데 땅에 심은 복숭아나무는 벌써 몇 자를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바둑 두던 자들이 갑자기 머리가 반백(斑白)이 되더니 이윽고 하얗게 세어 버렸다.

요술쟁이는 큰 유리 거울을 탁자 위에 놓고 시렁을 만들어 세웠다. 이때 요술쟁이는 여러 사람들을 두루 불러서 거울을 열어 구경시키는데, 여러 층 누각과 몇 겹 전각이 아름다운 단청을 곱게 했는데, 관원 한 사람이 손에 파리채를 잡고 난간을 따라 서서히 걸어갔다. 아름다운 계집들이 서넛씩 짝을 지어 보검을 가지고 혹은 금병을 받들고, 혹은 봉생(鳳笙)을 불고 혹은 비단 공도 차며, 구름 같은 머리와 아름다운 귀고리가 묘하고 곱기 비할 바 없었다. 방 안에는 백 가지 물건과 수없는 보물들이 참으로 세상에서 부귀가 지극한 사람 같았다. 이때 여러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구경하기에 바빠서 이것이 거울인 줄도 잊어버리고 바로 뚫고 들어가려 했다. 이때에 요술쟁이는 구경꾼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즉시 거울 문을 닫아 더 오래 보지 못하도록 했다. 요술쟁이는 한가로이 걸어서 사방을 향하여 무슨 노래를 부르다가 또 거울 문을 열어 여러 사람을 불러 와 보라고 했다. 전각은 적막하고 누사(樓榭)는 황량한데 일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름다운 계집들은 어디로 가고 한 사람이 침상 위에서 옆으로 누워 자는데, 옆에는 아무 물건도 없고 손으로 귀를 받치고 이마 밑으로 김 같은 것이 연기처럼 떠오르는데, 처음은 가늘고 끝은 둥그렇게 늘어진 젖통 같았다. 종규(鐘馗)가 누이를 시집보내고 올빼미가 장가를 드는데, 버들 귀신이 앞을 서고 박쥐가 기를 들고 이마에서 나오는 김을 타고 올라가서 안개 속에서 논다. 잠자던 자는 기지개를 켜면서 깨려다가 또 잠이 드는데, 갑자기 두 다리가 두 수레바퀴로 바뀌면서 바퀴살이 아직 덜 되었는데, 이때에 구경꾼들은 징그러워 하지 않는 자 없어 거울을 가리고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세계의 몽환(夢幻)이 본래 이와 같아서 오히려 거울 속의 염량(炎凉) 변천도 현저히 달랐다. 일체 인간의 가지가지 일들이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 부자가 오늘은 가난하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것이 꿈속에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슬쩍 죽었다가 바야흐로 살고,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으며, 무엇이 참이요 무엇이 거짓인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착한 마음을 지닌 착한 사내와 보살(菩薩)의 형제들에게 말하노니, 헛 세상에 꿈 같은 몸과 거품 같은 금과 번개 같은 비단으로 큰 인연을 맺어서, 기운에 따라 잠시 머무를 뿐이니 원컨대, 이 거울을 표준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며, 있는 돈을 흩어서 이 가난한 자를 구제할지어다.

요술쟁이는 큰 동이 하나를 탁자 위에 놓고 수건으로 정하게 닦고 붉은 옷감으로 위를 덮으며, 장차 무슨 요술을 하려고 주선할 즈음에 품속에서 접시 하나가 쨍그렁하고 땅에 떨어지면서 붉은 대추가 흩어지니,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웃고 요술쟁이도 역시 웃었다. 그릇과 도구를 주워 담아 이내 놀음을 파하니, 이것은 재주가 없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날이 저물어 바로 파하려 했으므로 일부러 파탄(破綻)을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본래 이것이 거짓인 것을 보여 준 것이다.

 

 

[D-001]제공(帝工) : 눈도 코도 없이 누른 주머니처럼 생긴 귀신 새 이름. 산해경(山海經)에 나온다.

[D-002]전단(栴檀) : 남양 지방에서 나는 명향(名香).

[D-003]포대(布袋) : 불경에서 이르는 칠복신(七福神)의 하나로서 미륵보살이라고도 하는 중.

[D-004]종규(鍾馗) : ()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귀신의 이름. 무과(武科)에 응시하여 불합격한 귀신이라 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환희기후지(幻戲記後識)

 

 

이날 홍려시 소경(鴻臚寺少卿) 조광련(趙光連)과 의자를 나란히 하고 요술을 구경했는데, 나는 조경(趙卿)에게 말하기를,

 

눈으로 시비를 분별 못하고 참과 거짓을 살피지 못한다면, 비록 눈이 없다고 한대도 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요술쟁이에게 속는 것은 눈이 일찍이 헛되게 보여 그런 것이 아니라 눈으로써 밝게 본다는 것이 도리어 탈입니다.”

하였더니, 조경은,

 

비록 요술을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 소경에게는 눈속임을 할 수 없을 것이니 눈이란 과연 떳떳한 것일까요.”

한다. 나는,

 

저의 나라에 서화담 선생(徐花潭先生)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이 길에서 우는 자를 만나 네 어찌 우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내가 세 살에 소경이 되어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전일에는 걸음을 걸을 때는 발을 의지해서 보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을 의지해서 보고 성음(聲音)을 들어 누구인지 분별하니 귀를 의지해서 보고, 냄새를 맡아 무슨 물건인지 살피니 코를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딴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나는 손과 발과 코와 귀가 모두 눈 아닌 것이 없습니다. 또한 하필이면 수족과 귀와 코뿐이겠습니까. 해가 이르고 늦은 것을 낮에 피로한 것으로 보고, 물건의 형용과 빛깔을 밤에 꿈으로 봅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고 일찍이 의심과 혼란이 없었는데, 이제 길을 걸어오다가 홀연히 두 눈이 맑아지고 동자가 스스르 열려 천지가 넓고 크며, 산천이 요란하게 엉켰고, 만물이 눈을 가리고 모든 의심이 가슴을 막아서, 수족과 귀와 코는 착각을 일으키고 전도(顚倒)되어서 모두 떳떳한 것을 잃고 보니, 묘연(渺然)히 우리 집조차 잊어버려서 돌아갈 수가 없으므로 웁니다.’ 하더랍니다. 화담 선생은 말하기를, ‘네가 네 길잡이에게 물어보면 길잡이가 응당 스스로 알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그는 말하기를, ‘내 눈이 이미 밝았으니 길잡이에게 물으면 무엇하겠습니까.’ 하니 선생은 말하기를, ‘도로 네 눈을 감으면 너가 서 있는 곳이 곧 네 집일 것이다.’ 했으니, 이로써 논한다면, 눈이란 그 밝은 것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오늘 요술을 구경하는 데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을 해서 속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는 자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했더니 조경은,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비연(飛燕 () 조 황후(趙皇后)의 별호)은 너무 파리하고 옥환(玉環 () 양태진(楊太眞)의 별호)은 너무 살쪘다고 하는데, 무릇 너무라고 하는 말은 지나치게 심하다는 말로서 이미 그 살찌고 파리한 것을 의논하면서 경솔히 심하다는 말을 더 붙였은즉, 이것은 이미 절세(絶世)의 가인(佳人)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두 임금(한 성제(漢成帝)당 현종(唐玄宗))의 눈은 살찌고 파리한 데 홀렸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광명한 눈과 진정한 소견이 없어진 지 오랩니다. 태백(太伯)이 몸에 먹으로 문양을 그리고 약을 캔 것은 효도로써 요술을 부린 것이요, 예양(豫讓)이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먹은 것은 의리로써 요술을 부린 것이요, 기신(紀信 한 고조(漢高祖) 때의 장수)의 누렁 뚜껑에 털로 왼편을 꾸민 수레는 충성으로써 요술을 부린 것이요, 패공(沛公 () 고조가 천자가 되기 전의 봉호)의 요술은 깃발로 부렸고(기신에게 주어 투항을 가장하게 함을 말함), 장량(張良)의 요술은 돌로 부렸으며, 전단(田單 전국 때 제()의 장수)은 소로써, 초평(初平 미상)은 약으로써, 조고(趙高 ()의 승상)는 사슴으로써, 황패(黃覇 한 선제(漢宣帝) 때의 승상)는 참새로써, 맹상군(孟甞君)은 닭으로써 요술을 부렸고, 치우(蚩尤 황제(黃帝) 때 제후의 하나)의 요술은 동두(銅頭)와 철액(鐵額)으로 부렸으며 (머리는 구리 이마는 쇠), 제갈량(諸葛亮)의 요술은 목우유마(木牛流馬)로 부렸고, 왕망(王莽)의 금등(金縢)에서 명을 청한 것은 요술이 되다가 만 것이요, 조조(曹操)가 동작대(銅雀臺)에서 향을 나눈 것은 요술의 파탄이요, 안녹산(安祿山)의 적심(赤心) 과 노기(盧杞 당 덕종(唐德宗) 때의 간신)의 남면(藍面 얼굴이 귀신의 얼굴처럼 생김)은 모두 요술의 졸한 것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부인들이 더욱 요술을 잘 부려 포사(褒姒 () 유왕(幽王)의 애희)의 봉화(烽火)와 여희(驪姬 () 헌공(獻公)의 애희)의 벌이 그러한 것이었으나, 성인(聖人)이 신성한 도로써 교화를 베푸는 데도 역시 그런 것이 있으니, 나는 비록 뜰에 난 풀이 아첨쟁이를 가리키고 소악(韶樂)을 듣고 봉황이 날아왔다(()의 고사)는 것은 감히 의심 못한다 하더라도 황룡(黃龍)이 배를 등에 졌다(()의 고사)는 것과 붉은 까마귀가 집에 들어왔다는 것은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신성(神聖)한 자나 우범(愚凡)한 자는 누구나 한 가지 알지 못할 일이 있는데, 혹은 헌데 딱지를 즐기는 자가 있고, 혹은 노새 울음소리를 즐기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비록 요술이라 해도 가할 것이요, 비록 천성이라 해도 또한 가할 것입니다. 요술의 술법은 비록 천변만화를 하더라도 족히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에 가히 두려워할 만한 요술이 있으니, 그것은 크게 간사한 자가 충성스러운 체하는 것과 향원(鄕愿)이면서도 덕행이 있는 체하는 것일 겁니다.”

한다. 나는,

 

호광(胡廣 동한 말 여섯 임금을 역사한 신하) 같은 삼공(三公)은 중용(中庸)으로 요술을 하고 풍도(馮道)와 같이 오대(五代)를 정승 살이한 것은 명철(明哲)한 것으로 요술을 부렸으니, 웃음 속에 칼이 있는 것이 입 속으로 칼을 삼키는 것보다 더 혹독하지 않을까요.”

하고는 서로 크게 웃으면서 일어났다.

 

 

[C-001]환희기후지(幻戲記後識)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아서 추록하였다.

[D-001]홍려시 소경(鴻臚寺少卿) : 홍려시는 손님을 접대하는 관청. 소경은 차관(次官).

[D-002]서화담 선생(徐花潭先生) : 조선 명종(明宗) 때의 학자 서경덕(徐敬德). 자는 가구(可久). 물질불변론(物質不變論)을 주장하였다.

[D-003]태백(太伯) …… 것이요 : ()의 태백이 그 아버지의 뜻을 살펴서 왕위를 아우에게 양보하고 머리를 깎고 몸에 무늬를 그려 형만(荊蠻)으로 피신하였음을 말한다.

[D-004]예양(豫讓) …… 것이요 : 전국 때 사람. 그의 임금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거짓 벙어리가 되어서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려 하였음을 말한다.

[D-005]기신(紀信) …… 수레는 : 한 고조가 항적(項籍)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평복으로 도망치게 하고, 기신이 대신하여 누른빛 휘장을 씌운 천자가 타는 수레를 타고 항적의 진중에 들어가 항복을 가장했다가 잡혀 죽었음을 말한다.

[D-006]장량(張良) …… 부렸으며 : 장량이 황석공(黃石公)이라는 이인으로부터 병서(兵書)를 얻었는데, 황석공은 장량에게 말하기를, “이 뒤에 나를 찾으려거든 이 산 밑에 누른 돌이 곧 나다.”라고 한 고사.

[D-007]전단(田單) …… 소로써 : 전단이 오채 용문(龍文)을 입힌 소의 뿔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몰아넣어 승전하였다.

[D-008]조고(趙高) …… 사슴으로써 : 조고가 권세를 독차지하여 반대자를 없애기 위한 시험으로, 사슴을 이세(二世) 호해(胡亥)에게 바치면서 말이라고 해도 아무도 반박하는 자 없었음을 말한다.

[D-009]맹상군(孟甞君) …… 부렸고 : 맹상군이 진()에서 구금당하여 도망치는데, 함곡관(函谷關)에 닿았으나, 닭이 울기 전에는 문을 열지 못하므로 그 부하로 있는 자가 닭울음을 잘하여 관문을 열게 하였음을 말한다.

[D-010]제갈량(諸葛亮) …… 부렸고 :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발명하여 산악 지대에 군량을 수송하였음을 말한다.

[D-011]왕망(王莽) …… 것이요 : 왕망이, 주공(周公)이 금등에 글을 넣었던 옛 일을 본떠서 자기에게 황제의 위()를 전하라는 금등 문건을 꾸며서 나라를 빼앗았음을 말한다.

[D-012]조조(曹操) …… 것은 : 조조가 위공(魏公)으로 있을 때 동작대를 짓고 죽을 때에 궁녀(宮女)들에게 향()을 나누어 주며, 사후라도 동작대에 와서 자기에게 제사하라 하였음을 말한다.

[D-013]안녹산(安祿山)의 적심(赤心) : 안녹산이 특히 배가 부르매 당 현종이 농으로 뱃속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언제나 붉은 정성이 들어 있다 하였음을 말한다.

[D-014]포사(褒姒)의 봉화(烽火) : 포사의 성질이 잘 웃지를 않아 유왕은 포사를 웃기기 위하여 일없이 봉화를 들어, 제후들이 속아 군사를 몰고 모여들었다가 헛걸음함을 보고 비로소 웃었다.

[D-015]여희(驪姬)의 벌 : 태자 신생(申生)을 미워하여 신생이 벌을 자기의 속옷에 일부러 집어 넣었다고 모함하여 신생을 죽게한 것을 말한다.

[D-016]뜰에 난 풀 : ()의 대궐 뜰에 났던 풀로 아첨하는 신하를 가리킨 지영초(指佞草).

[D-017]붉은 ……  : 주 무왕(周武王)이 제후들과 동맹하고자 가는 길에 강을 건너니 붉은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한다.

[D-018]향원(鄕愿) : 시골 사람으로 아무런 특색이 없이 겸손하고 삼가는 체하는 사람. 논어에 나오는 말.

[D-019]풍도(馮道) : 오대가 혼란할 때 요령 있게 벼슬자리를 지켜 오대 사성(四姓)을 역사한 사람.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