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朴趾源), 열하일기(熱河日記) - 산장잡기(山莊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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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산장잡기(山莊雜記)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산장잡기(山莊雜記)
1.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2. 야출고북구기후지(夜出古北口記後識)
3.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4. 만국진공기(萬國進貢記)
5. 만국진공기후지(萬國進貢記後識)
6. 상기(象記)
7. 승귀선인행우기(乘龜仙人行雨記)
8. 만년춘등기(萬年春燈記)
9. 매화포기(梅花砲記)
10. 납취조기(蠟嘴鳥記)
11. 희본명목기(戲本名目記)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연경(燕京)으로부터 열하에 이르는 데는 창평(昌平)으로 돌면 서북쪽으로는 거용관(居庸關)으로 나오게 되고, 밀운(密雲)을 거치면 동북으로 고북구(古北口)로 나오게 된다. 고북구로부터 장성(長城)으로 돌아 동으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기까지는 7백 리요, 서쪽으로 거용관에 이르기는 2백 80리로서 거용관과 산해관의 중간에 있어 장성의 험요(險要)로서는 고북구 만한 곳이 없다. 몽고가 출입하는 데는 항상 그 인후가 되는데 겹으로 된 관문을 만들어 그 요새를 누르고 있다. 나벽(羅壁)의 지유(識遺)에 말하기를,
“연경 북쪽 8백 리 밖에는 거용관이 있고, 관의 동쪽 2백 리 밖에는 호북구(虎北口)가 있는데, 호북구가 곧 고북구이다.”
하였다. 당(唐)의 시초부터 이름을 고북구라 해서 중원 사람들은 장성 밖을 모두 구외(口外)라고 부르는데, 구외는 모두 당의 시절 해왕(奚王 오랑캐의 추장)의 근거지로 되어 있었다. 《금사(金史)》를 상고해 보면,
“그 나라 말로 유알령(留斡嶺)이 곧 고북구이다.”
했으니, 대개 장성을 둘러서 구(口)라고 일컫는 데가 백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산을 의지해서 성을 쌓았는데, 끊어진 구렁과 깊은 시내는 입을 벌린 듯이 구멍이 뚫린 듯이 흐르는 물이 부딪쳐 뚫어지면 성을 쌓을 수 없어 정장(亭鄣)을 만들었다. 황명(皇明) 홍무(洪武) 시절에 수어(守禦) 천호(千戶)를 두어 오중관(五重關)을 지키게 했다. 나는 무령산(霧靈山)을 돌아 배로 광형하(廣硎河)를 건너 밤중에 고북구를 빠져 나가는데, 때는 밤이 이미 삼경(三更)이 되었다. 중관(重關)을 나와서 말을 장성 아래 세우고 그 높이를 헤아려 보니 10여 길이나 되었다. 필연(筆硯)을 끄집어내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을 어루만지면서 글을 쓰되,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朴趾源)이 이곳을 지나다.”
하고는, 이내 크게 웃으면서,
“나는 서생(書生)으로서 머리가 희어서야 한 번 장성 밖을 나가는구나.”
했다.
옛적에 몽 장군(蒙將軍 몽염(蒙恬))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임조(臨洮)로부터 일어나서 요동에 이르기까지 성을 만여 리나 쌓는데, 그 중에는 지맥(地脈)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하였으니, 이제 그가 보니 그가 산을 헤치고 골짜기를 메운 것이 사실이었다. 슬프다. 여기는 옛날부터 백 번이나 싸운 전쟁터이다.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이 유수광(劉守光)을 잡자 별장(別將) 유광준(劉光濬)은 고북구에서 이겼고, 거란의 태종(太宗)이 산 남쪽을 취할 적에 먼저 고북구로 내려 왔다는 데가 곧 이곳이요, 여진(女眞)이 요(遼)를 멸망시킬 때 희윤(希尹 여진의 장수)이 요의 군사를 크게 파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요, 또 연경을 취할 때 포현(蒲莧 여진의 장수)이 송의 군사를 패한 곳도 여기요, 원 문종(元文宗)이 즉위하자 당기세(唐其勢 여진의 장수)가 군사를 여기에 주둔했고, 산돈(撒敦 여진의 장수)이 상도(上都) 군사를 추격한 것도 여기였다. 독견첩목아(禿堅帖木兒)가 쳐들어 올 때 원의 태자는 이 관으로 도망하여 흥송(興松)으로 달아났고, 명의 가정(嘉靖) 연간에는 암답(俺答 미상)이 경사(京師)를 침범할 때도 그 출입이 모두 이 관을 경유했다. 그 성 아래는 모두 날고 뛰고 치고 베던 싸움터로서 지금은 사해가 군사를 쓰지 않지만 오히려 사방에 산이 둘러 싸이고 만학(萬壑)이 음삼(陰森)하였다. 때마침 달이 상현(上弦)이라 고개에 걸려 떨어지려 하는데, 그 빛이 싸늘하기가 갈아 세운 칼날 같았다. 조금 있다가 달이 더욱 고개 너머로 기울어지자 오히려 뾰족한 두 끝을 드러내어 졸지에 불빛처럼 붉게 변하면서 횃불 두 개가 산 위에 나오는 것 같았다. 북두(北斗)는 반 남아 관 안에 꽂혀졌는데, 벌레 소리는 사방에서 일어나고 긴 바람은 숙연(肅然)한데, 숲과 골짜기가 함께 운다. 그 짐승 같은 언덕과 귀신 같은 바위들은 창을 세우고 방패를 벌여 놓은 것 같고, 큰 물이 산 틈에서 쏟아져 흐르는 소리는 마치 군사가 싸우는 소리나 말이 뛰고 북을 치는 소리와 같다. 하늘 밖에 학이 우는 소리가 대여섯 번 들리는데, 맑고 긴 것이 피리소리 같아 혹은 이것을 거위소리라 했다.
[주C-001]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 ‘다백운루본(多白雲樓本)’에는 도고북구하기(渡古北口河記)로 되어 있다.
[주D-001]나벽(羅壁) : 송의 학자. 자는 자창(子蒼).
[주D-002]정장(亭鄣) : 요새(要塞)같이 만들어 사람의 출입을 검열하는 곳.
[주D-003]유수광(劉守光) : 후량(後梁)의 장수로서 뒤에 연(燕)의 황제라 자칭하였다.
[주D-004]독견첩목아(禿堅帖木兒) : 몽고 사람. 원실(元室)의 지예(支裔).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야출고북구기후지(夜出古北口記後識)
우리나라 선비들은 생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강역(疆域)을 떠나지 못했으나, 근세의 선배로서 오직 김가재(金稼齋)와 내 친구 홍담헌(洪湛軒)이 중원의 한 모퉁이를 밟았다. 전국(戰國) 시대 일곱 나라에서 연(燕)이 그 중의 하나인데 우공(禹貢)의 구주(九州 《서경(書經)》의 편명)에는 기(冀)가 이 하나이다. 천하로써 본다면 가위 한 구석의 땅이지만 원과 명을 거쳐 지금의 청에 이르기까지 통일한 천자들의 도읍터로 되어 옛날의 장안(長安)이나 낙양(洛陽)과 같다. 소자유(蘇子由)는 중국 선비지만 경사(京師)에 이르러 천자의 궁궐이 웅장함과 창름(倉廩)ㆍ부고(府庫)와 성지(城池)ㆍ원유(苑囿)가 크고 넓은 것을 우러러 보고 나서 천하의 크고 화려한 것을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거늘, 하물며 우리 동방 사람으로서야 한번 그 크고 화려한 것을 보았다면 그 다행으로 여김이 어떠했으리요. 지금 내가 이 걸음을 더욱 다행으로 생각한 것은 장성을 나와서 막북(漠北)에 이른 것은 선배들이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깊은 밤에 노정(路程)을 따라 소경같이 행하고 꿈속같이 지나다 보니 그 산천의 형승(形勝)과 관방(關防)의 웅장하고 기이한 것을 두루 보지 못했다. 때는 가을 달이 비끼어 비치고, 관내(關內)의 양쪽 언덕은 벼랑으로 깎아 섰는데, 길이 그 가운데로 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담(膽)이 작고 겁이 많아서 혹 낮에도 빈 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조그만 등불을 만나더라도 미상불 머리털이 움직이고 혈맥이 뛰는 터인데, 금년 내 나이 44세건만 그 무서움을 타는 성질이 어릴 때나 같다. 이제 밤중에 홀로 만리장성 밑에 섰는데, 달은 떨어지고 하수(河水)는 울며, 바람은 처량하고 반딧불이 날아서 만나는 모든 경개가 놀랍고 두려우며 기이하고 이상하였건만 홀연히 두려운 마음은 없어지고 기흥(奇興)이 발발(勃勃)하여 공산(公山)의 초병(草兵)이나 북평(北平)의 호석(虎石)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하니, 이는 더욱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이다. 한스러운 바는, 붓이 가늘고 먹이 말라 글자를 서까래만큼 크게 쓰지 못하고, 또 장성의 고사(故事)를 시로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에 동리에서 다투어 병술로 위로하며, 또 열하의 행정(行程)을 물을 때에는, 이 기록을 내 보여서 머리를 모아 한 번 읽고 책상을 치면서 기이하다고 떠들어 보리라.
[주C-001]야출고북구기후지(夜出古北口記後識)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이에서는 ‘주설루본’에 의하여 추록하였다.
[주D-001]김가재(金稼齋) : 조선 문학가 김창업(金昌業). 가재는 그의 별호인 노가재(老稼齋)의 준말.
[주D-002]소자유(蘇子由) : 송의 문학가 소철(蘇轍). 자유는 그의 자.
[주D-003]초병(草兵) : 팔공산(八公山)에 서 있는 풀까지도 군사로 보였다는 부견(符堅)의 고사.
[주D-004]호석(虎石) : 한(漢)의 이광(李廣)이 우북평(右北平)의 바위를 범으로 보고서 활을 쏘았다는 고사.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하수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나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서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흘연(屹然)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蛟螭)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산중의 내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거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노한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급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文武)가 겸한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로운 탓이요, 거문고가 궁(宮)과 우(羽)에 맞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슬픈 탓이요, 종이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의심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ㆍ황화(黃花)ㆍ진천(鎭川) 등 모든 물과 합쳐 밀운성 밑을 거쳐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하류(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 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리 밖에서 폭우(暴雨)가 온 것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 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黙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 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에 밟혀서 뒷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 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 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禹)는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으로 떠받치니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의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크거나 작거나가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만국진공기(萬國進貢記)
건륭(乾隆) 45년 경자에는 황제의 수(壽)가 일흔인데 남방으로부터 바로 북으로 열하까지 돌아 왔다. 가을 8월 13일은 곧 황제의 천추절(千秋節)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신을 불러 행재소(行在所)까지 와서 뜰에 참여하여 하례하도록 했다. 나는 사신을 따라 북으로 장성을 빠져 주야로 달렸다. 길에서 보니 사방으로부터 공헌(貢獻)하는 수레가 만 대는 될 것 같고, 또 사람은 지고, 약대에는 싣고, 가마에 태우고 가는데, 형세가 풍우와 같았으며 들것에 메고 가는 것은 물건 중에서 더욱 정하고 다치기 쉬운 것들이라 하였다. 수레마다 말이나 노새를 예닐곱 마리씩 끌리고, 가마는 혹 노새 네 마리에 끌려 위에는 누른빛 작은 깃발에 진공(進貢)이란 글자를 써서 꽂았다. 진공물들은 모두 거죽은 붉은 빛 탄자와 여러 빛 모직 옷감과 대 삿자리나 등자리로 쌌는데, 모두 옥으로 만든 기물(器物)들이라 한다. 수레 하나가 길에 넘어져 바야흐로 고쳐 싣는데, 거죽을 싼 등자리가 조금 떨어진 틈으로 보니, 궤짝은 누른 칠을 하여 작은 정자 한 칸만 했다. 가운데는 자유리 보일좌(紫琉璃普一座)라고 썼는데, 보(普) 자 아래와 일(一) 자 위에는 글자가 두서너 자 있어 보였으나 자리 끝이 덮여져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유리 그릇의 크기가 이만큼 할 적에는 다른 여러 수레에 실은 짐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날이 이미 황혼이 되니 더욱 수레들이 길을 다투어 재촉해 달리는데, 횃불이 마주 비치고 방울 소리가 땅을 흔들며 채찍 소리가 벌판을 울리는 가운데 범과 표범을 우리에 집어 넣은 것이 10여 수레나 되는데, 우리에는 모두 창문이 있고 범 한 마리를 넣을 만큼 만들었다. 범들은 모두 쇠사슬로 목을 매어 눈은 누르고 독스러웠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몸뚱이는 늑대같이 나지막하고 텁수룩한 털과 꼬리는 삽살개 같았다. 이 밖에 곰과 여우와 사슴 등속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사슴 중에도 붉은 굴레를 씌워 말 몰듯 몰고 가는 것은 길들인 사슴이다. 악라사(鄂羅斯)라는 개는 높이가 거의 말만 하고, 온 몸의 뼈는 가늘고 털이 짧고 날씬한 것이 우뚝 서니 여윈 정강이는 학같이 보이고, 꼬리는 뱀같이 놀며, 허리와 배는 가느다랗고, 귀로부터 주둥이까지는 한 자나 되는데 이것이 모두 입이었다. 능히 범이나 표범도 죽인다고 한다. 훨씬 큰 닭이 있는데, 모양은 약대와 같고 높이는 서너너댓 자나 되고 발은 약대 발같이 되어 날개를 치면서 하루 3백 리는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름을 타계(駝雞)라 한다. 낮에 본 것은 모두 이런 종류로서 상하가 길 가기에 바빠서 무심코 지나가다가 날이 저물자, 마침 하인들 중에 표범 우는 것을 들은 자가 있어 드디어 부사(副使)와 서장관(書狀官)과 함께 범 실은 수레를 가 보고서야 비로소 하루에 수없는 수레를 지나 보낸 것이 비단 옥기(玉器)나 보물뿐이 아니라, 역시 사해 만국의 기금(奇禽)과 괴수(怪獸)도 많았던 것을 알았다. 연극 구경을 할 때에 지극히 작은 말 두 마리가 산호수(珊瑚樹)를 싣고 전각 속으로부터 똑똑히 나왔다. 말의 크기는 겨우 두 자에 몸빛은 황백색(黃白色)인데, 갈기머리는 땅에 솔솔 끌리고 울음을 울고 뛰고 달리는 것이 준마(駿馬)의 체통을 갖추었다. 산호수의 가지는 엉성한 것이 말보다 컸다. 아침에 행재소 문 밖으로부터 혼자 걸어서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보니, 부인 하나가 태평차(太平車)를 타고 가는데 얼굴에는 분을 희게 바르고 수놓은 비단 옷을 입었으며, 차 옆에는 한 사람이 맨발로 채찍질을 하면서 차를 모는데 몹시 빨리 갔다. 머리털은 짧아 어깨를 덮었고, 머리털 끝은 모두 말려 들어 양털처럼 되었는데, 금고리로 이마를 둘렀다. 얼굴은 붉고 살찌고 눈은 고양이처럼 둥근데, 수레를 따르면서 구경하는 자들이 복잡하고, 검은 먼지가 날려서 하늘을 덮었다. 처음에는 차를 모는 자의 모양이 이상하므로 미처 차 속에 있는 부인을 살펴 보지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는 부인이 아니라 사람 형상을 한 짐승 종류였다. 털손은 원숭이처럼 생겼고, 가진 물건은 접는 부채 같은데, 잠깐 보건대 얼굴은 아주 예쁜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니 노구(老嫗)와 같고 요괴스럽고 사납게 생겼으며 키는 겨우 두 자 남짓한데, 수레의 휘장을 걷어 올려서 좌우를 돌아보는 눈이 잠자리 눈같이 보였다. 대체로 이것은 남방에서 나는 것으로 능히 사람의 뜻을 안다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이것은 산도(山都 원숭이의 일종)이다.”
라고 한다.
[주C-001]만국진공기(萬國進貢記) : ‘다백운루본’에는 진공만차기(進貢萬車記)로 되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만국진공기후지(萬國進貢記後識)
내가 몽고 사람 박명(博明)에게 이것이 무슨 짐승이냐고 물었더니 박명은 말하기를,
“옛날에 장군 풍공(豐公) 승액(昇額)을 따라서 옥문관(玉門關)을 나서서 돈황(燉煌)으로부터 4천 리를 떨어진 골짜기에 가서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장막 속에 두었던 목갑(木匣)과 가죽 상자가 없어졌습니다. 당시 같이 간 막려(幕侶)들이 차차 알아보니 잃은 것이 분명했답니다. 군중에서 말이 있기를, ‘이것은 야파(野婆)가 절도해 간 것이라 하므로 군사를 내어 야파를 포위했더니 모두 나무를 타는데, 나는 원숭이처럼 빨랐다.’고 합니다. 야파는 형세가 궁하매 슬피 울면서 즐겨 붙들리지 않고 모두 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죽으니 이래서 잃었던 물건을 모두 찾았는데, 상자나 목갑은 잠가 놓은 그대로 있었고 잠근 것을 열고 보니 속에 기물들도 역시 버리고 다친 것이 없었답니다. 상자 속에는 붉은 분과 목걸이와 머리꽂이 패물들을 많이 넣어 두었고, 아름다운 거울도 있었으며 또 침선(針線)과 가위와 자까지 있었는데, 야파는 대개 짐승으로서 여자를 본떠 치장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은 것이라 합니다.”
한다. 유황포(兪黃圃 유세기(兪世琦). 황포는 호)가 나에게 막북(漠北)의 기이한 구경을 묻기에 나는 타계(駝雞)를 말했더니, 황포는 하례해 말하기를,
“이것은 먼 서쪽 지방에 사는 기이한 새로서 중국 사람들도 말만 들었을 뿐 그 형상을 보지 못했는데, 공(公)은 외국 사람으로서 능히 보았습니다.”
한다. 산도(山都)를 말했으나 이것은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열하로부터 돌아올 때에 청하(淸河)에 이르러 거리에서 난장이 하나를 보았는데, 키는 겨우 두 자 남짓하고 배는 크기가 북만 하여 불쑥 내밀어서 그림에 있는 포대화상(布袋和尙) 같고, 입과 눈이 모두 낮게 붙었고 팔뚝과 다리도 없이 손과 발이 몸뚱이에 그대로 달렸고 담배를 물고 뽐내면서 걷는데, 손을 펴서 흔들면서 춤을 추었다. 사람을 보면 문득 크게 웃고 홀로 머리를 깎지 않고 뒤통수에 상투를 했으며 선도건(仙桃巾)을 걸쳤다. 무명 도포에 소매가 넓고 배를 통째 들어 내놓고 모양이 옹종한 것이 말로 그 형용이 기괴함을 다할 수 없으니 조물주(造物主)는 가위 장난을 퍽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가 이것을 황포에게 이야기했더니, 황포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그의 이름은 천생이물인(天生異物人)으로서 자라의 놀음을 하는 것인데, 지금 거리에서는 이런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다. 나의 평생에 괴이한 구경은 열하에 있을 때만 한 것이 없었으나 그 이름조차 모르는 것이 많고, 문자로써는 능히 형용할 수 없어서 모두 빼놓고 기록하지 못하니 가히 한스러운 일이다. 평계(平溪 연암서당(燕巖書堂) 앞 시내 이름)의 비 내리는 집에서 연암은 쓰다.
[주C-001]만국진공기후지(萬國進貢記後識)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이에서는 ‘주설루본’에 의하여 추록하였다.
[주D-001]승액(昇額) : 만주 사람. 풍신액(豐申額)인 듯하나 미상.
[주D-002]포대화상(布袋和尙) : 불교에서 말하는 일곱 복신(福神) 중의 하나.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상기(象記)
만일 괴상스럽고 잡스럽고 우습고 기이하며 거룩한 것을 구경하려면 먼저 선무문(宣武門) 안에 있는 상방(象房)에 가 봐야 할 것이다. 내가 북경에서 코끼리를 본 것이 열여섯 마리인데, 모두 쇠사슬로 발을 묶어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코끼리 두 마리를 열하 행궁(行宮) 서쪽에서 보았던 바 온 몸을 꿈틀거리면서 걸어 가는 것이 풍우(風雨)가 움직이는 듯 몹시 거창스러웠다. 내가 언젠가 동해(東海)에 나갔을 때 파도 위에 말처럼 우뚝우뚝 선 것이 수없이 많으며 집채같이 큰 것이 물고기인지 짐승인지 해돋기를 기다려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해가 돋기도 전에 그것들은 바닷속으로 숨어 버렸었다. 이번에 코끼리를 십보 밖에서 보았는데 그때 동해에서 보았던 것과 방불할 만큼 크게 생겼다.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약대 무릎에, 범의 발톱에, 털은 짧고 잿빛이며 성질은 어질게 보이고,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장(丈) 남짓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 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 넣는다. 때로는 코를 입부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다시 코 있는 데를 따로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코 생긴 모양이 이럴 줄이야 누가 뜻했으랴. 혹은 코끼리 다리가 다섯이라고도 하고, 혹은 눈이 쥐눈 같다고 하는 것은 대개 코끼리를 볼 때는 코와 어금니 사이를 주목하는 까닭이니, 그 몸뚱이를 통틀어서 제일 작은 놈을 집어가지고 보면 이렇게 엉뚱한 추측이 생길 만하다. 대체로 코끼리는 눈이 몹시 가늘어서 간사한 사람이 아양을 부리는 눈 같으나 그의 어진 성품은 역시 이 눈에 있는 것이다. 강희 시대에 남해자(南海子)에 사나운 범 두 마리가 있었는데, 길을 들일 수 없어서 황제가 노하여 범을 코끼리 우리로 몰아 넣게 했더니, 코끼리가 몹시 겁을 내어 코를 한 번 휘두르자 범 두 마리가 제 자리에서 넘어져 죽었다고 한다. 코끼리가 범을 죽이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범의 냄새를 싫어하여 코를 휘두른 것이 잘못 부딪쳤던 것이다. 아아, 세간 사물(事物) 중에 털끝같이 작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찌 다 명령해서 냈을까보냐. 하늘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성질로 말한다면 건(乾)이요, 주재(主宰)하는 이는 상제(上帝)요, 행동하는 것은 신(神)이라 하여 그 이름이 여러 가지요, 또 일컫는 명색이 너무 친밀하다. 허물이 없이 말하자면 이(理)와 기(氣)로서 화로와 풀무로 삼고, 생장과 품부를 조물(造物)이라 하여 하늘을 마치 재주 있는 공장이에 비유하여 망치ㆍ도끼ㆍ끌ㆍ칼 같은 것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하늘이 초매(草昧)를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초매란 것은 그 빛이 검고 그 형태는 안개가 낀 듯하여 마치 동이 틀 무렵 같아서 사람이나 물건을 똑바로 분간할 수 없다 하니, 나는 알지 못하겠다. 하늘이 캄캄하고 안개 낀 듯 자욱한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무엇일까. 맷돌에 밀을 갈 때에 작고 크거나 가늘고 굵거나 할 것 없이 뒤섞여 바닥에 쏟아지는 것이니 무릇 맷돌의 작용이란 도는 것 뿐인데, 가루가 가늘고 굵은 데야 무슨 마음을 먹었겠는가. 그런데 설자(說者)들은 말하기를,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를 주지 않았다.”
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데 무슨 결함이라도 있는 듯이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이다. 감히 묻노니,
“이를 준 자는 누구일 것인가.”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주었지요.”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하늘이 이를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이것으로 먹이를 씹으라고 주었지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이를 가지고 물건을 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면, 사람들은,
“이는 하늘이 낸 이치랍니다. 금수는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그 입을 땅에 구부려 먹을 것을 찾게 된 것이요, 그러므로 학의 정강이가 높고 보니, 부득이 목이 길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래도 입이 땅에 닿지 않을까 하여 입부리를 길게 해준 것이요, 만일 닭의 다리가 학과 같았다면 할 수 없이 마당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오.”
하고 말하리라.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말하는 이치란 것은 소ㆍ말ㆍ닭ㆍ개 같은 것에나 맞는 이치다. 하늘이 이를 준 것이 반드시 구부려서 무엇을 씹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면 코끼리에게는 쓸데없는 어금니를 주어서 입을 땅에 닿으려고 하면 이가 먼저 땅에 걸리니 물건을 씹는 데도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가.”
혹은 말하기를,
“그것은 코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리라. 그러나 나는 다시,
“긴 어금니를 주고서 코를 빙자하려면 차라리 어금니를 없애고 코를 짧게 한 것만 못할 것이 아닌가.”
했더니, 이때에야 말하는 자는 자기의 주장을 우겨대지 못하고 수그러졌다. 이는 언제나 생각이 미친다는 것이 소ㆍ말ㆍ닭ㆍ개뿐이요, 용ㆍ봉ㆍ거북ㆍ기린 같은 짐승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코끼리는 범을 만나면 코로 때려 눕히니, 그 코는 천하에 상대가 없으나 쥐를 만나면 코를 가지고도 쓸모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고 멍하니 섰다니, 이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하면 아까 말한 소위 하늘이 낸 이치에 맞다고는 못할 것이다. 대체로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천하 사물이 코끼리보다도 만 배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역경》을 지을 때 코끼리 상(象) 자를 따서 지은 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C-001]상기(象記) : ‘박영철본’에는 이 편이 희본명목기(戲本名目記) 밑에 있었으나, 이제 ‘수택본’을 따라 여기에 옮겼다.
[주D-001]남해자(南海子) : 북경 숭문문(崇文門) 남쪽에 있는 동산.
[주D-002]초매(草昧) : 천지가 개벽되면서 만물이 혼돈한 현상.
[주D-003]《역경》 …… 것이다 : 《역경》에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가 육십사괘를 낳는다는 사물 변화의 이치를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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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귀선인행우기(乘龜仙人行雨記)
14일에 피서산장(避暑山莊)에 들어가서 바라다 보니 황제는 누런 휘장을 늘인 전각 속에 깊이 들어 앉았다. 뜰 밑 반열에는 사람도 드문데, 홀로 노인 하나가 상투에 선도건(仙桃巾)을 걸고 누른 장삼에 검고 모난 직령을 달아 입었는데, 모두 검은 선을 둘렀고, 허리에는 붉은 비단 띠를 띠며, 붉은 신을 신고, 반백(半白) 수염이 가슴을 지났으며, 지팡이 끝에는 금호로(金葫蘆)와 비단 축(軸)이 달렸고, 오른손에는 파초선(芭蕉扇)을 쥐고, 큰 거북 위에 서서 두루 뜰을 도는데, 거북은 머리를 위로 젖히고 무지개처럼 물을 뿜는다. 거북은 검푸른 빛에 크기가 맷방석만 하고 처음에는 가는 비를 뿜어 전각의 처마와 기와를 적시고 물방울이 튀어서 안개처럼 자욱하다. 혹은 화분을 향하여 뿜기도 하고 혹은 가산(假山)을 향해서 뿌리기도 한다. 조금 있더니 비가 더욱 커져서 처마 물은 폭우처럼 쏟아져 햇빛이 비낀 전각 모퉁이는 수정 주렴을 드리운 듯하고, 전각 위의 누른 기와는 흘러내릴 듯이 물이 많다. 동산의 동쪽 나무 잎은 더욱 밝고 화려하며 물은 한 뜰에 가득하여 흡족하게 축인 뒤에 오른쪽 장막 속으로 들어갔다. 황문(黃門) 수십 명이 각각 대비를 들고 마당에 물을 쓰는데, 거북의 배에 비록 물을 백 섬이나 간직하더라도 이같이 뿌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사람이 입은 옷은 적시지 않았으니, 그 비를 오도록 하는 공로가 가위 귀신이라 하겠다. 만일 사해에 비를 바라는 것이 이렇게 한 뜰을 적시는 것에 그친다면 역시 일은 다 되었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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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춘등기(萬年春燈記)
황제가 동산 동쪽에 있는 별전(別殿)으로 옮겨 거둥하는데, 1천 관리들이 피서산장을 나와서 모두 말을 타고 궁장(宮墻)을 따라 5리나 가서 원문(苑門)으로 들어갔다. 좌우에는 부도(浮圖)가 있어 높이 예닐곱 길이요, 불당과 패루(牌樓)가 몇 리를 뻗쳤으며 전각 앞에는 누른 장막이 하늘에 연했는데, 장막 앞에는 모두 흰 천막을 침침하게 둘러쳤고, 천백 개의 채색 등불이 걸려 있다. 앞에는 붉은 빛 궐문이 세 곳이나 섰는데, 높이가 모두 팔구 길은 되었다. 풍악을 아뢰고 잡희(雜戲)를 시작하자 해는 이미 저물었는데, 누른 빛 큰 궤짝을 붉은 궐문에 다니 갑자기 궤 밑으로부터 크기가 북만 한 등불 하나가 떨어지자 등불은 노끈에 이어져서 그 끝에서는 저절로 불이 붙어 탄다. 노끈을 따라 타 올라가서 궤짝 밑에 닿으니 궤짝 밑으로부터 또 한 개 둥근 등불이 매달리고 노끈에 붙은 불은 그 등불을 태워 땅에 떨어뜨린다. 궤짝 속으로부터 또 쇠로 만든 채롱 주렴이 드리워지는데 주렴 면에는 모두 전자(篆字)로 수(壽)ㆍ복(福) 글자를 썼고, 불은 글자에 붙어 새파란 불에 한동안 타다가 수ㆍ복 자 불은 스스로 꺼져 땅에 떨어진다. 또 궤짝 속으로부터 연주등(聯珠燈) 백여 줄이 드리우는데, 한 줄에 4ㆍ50등씩 되었고 등불 속은 차례대로 저절로 타면서 일시에 환하게 밝았다. 또 1천여 명의 미모의 남자들이 있어 수염은 없고 비단 도포에 수놓은 비단 모자를 쓰고 각각 정(丁) 자 지팡이 양쪽 끝에 모두 조그만 붉은 등불을 달고, 나갔다 물러섰다 하여 군진(軍陣) 모양을 하더니 졸지에 삼좌(三座) 오산(鼇山)으로 변했다가 졸지에 변해서 누각(樓閣)이 되고, 졸지에 네모진 진형(陣形)으로 변한다. 이미 황혼이 되자 등불 빛은 더욱 밝아지더니 갑자기 만년춘(萬年春)이란 석 자로 변했다가 또 갑자기 천하태평(天下太平)의 네 글자로 변하고 졸지에 변하여 두 마리 용이 되었는데, 비늘과 뿔과 발톱과 꼬리가 공중에서 꿈틀거린다. 경각(頃刻) 사이에 변환하고 이합(離合)하되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글자 획이 완연(宛然)한데, 다만 수천 명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것은 잠시 동안의 놀음이지만 그 기율(紀律)의 엄한 것이 이와 같은데, 더욱이 이 법으로 군진에 임한다면 천하에 누가 감히 다칠 것이랴. 그러나 덕에 있는 것이요, 법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놀음으로 천하에 뵈일 것이랴.
[주D-001]오산(鼇山) : 자라 등 위에 썼다는 삼신산(三神山)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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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포기(梅花砲記)
날이 이미 황혼이 되자 만포(萬砲)가 동산 안에서 나오는데,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매화꽃이 사방으로 흩어져 마치 숯불을 부채질하면 불꽃이 튀어 흐르는 것 같았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웃음을 짓는 듯 바람을 맞이하여 춤을 추는 듯도 하려니와 마치 노포(魯褒)의 돈이 이지러진 듯 토끼 주둥이가 살아나지 못한 채(이지러진 달을 말함) 이어져서, 온갖 화병(花甁)을 진열하고는 여사(女士)가 그 품위의 상하를 평정하는데, 화방(花房)에 드리운 술이 분명하고 봉오리에 찍힌 검은 점이 가느다란 듯이 된 것들이 모두 불꽃으로 화하여 난다. 조수(鳥獸)와 충어(蟲魚)의 족속이 날아가고 뛰놀고 하는 것이 모두 정상(情狀)을 갖추었는데, 새는 혹 날개를 벌리기도 하고, 입부리로 깃을 문지르기도 하며, 혹 발톱으로 눈깔을 비집기도 하고 혹 벌과 나비를 쫓기도 하여 혹 꽃과 과실을 쪼아 먹기도 한다. 짐승은 모두 뛰놀고 버티며 입을 벌리고 꼬리를 펴서 천태와 만상이 모두 꽃불로 펄펄 날아 가서 반공에 이르러서는 시름시름 꺼지곤 한다. 대포 소리는 더욱 커지고, 불빛은 더욱 밝아지면서 1백 신선과 1만 부처가 날아 올라가 혹은 뗏목을 타고, 혹은 연잎 배를 타며, 혹은 고래와 학을 타고, 혹은 호로병(葫蘆甁)을 들고, 혹은 보검(寶劍)을 차며, 혹은 석장(錫杖)을 짚고, 혹은 맨발로 갈대를 밟기도 하며, 혹은 손으로 범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허공에 떠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는데, 눈으로 다 볼 새가 없이 번득번득 눈이 어른거렸다.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매화포(梅花砲)가 좌우로 벌여 있는 것은 그 통이 혹은 크고, 혹은 작아서 긴 놈은 서너 길이 되고, 짧은 놈은 서너 자가 되어 우리나라 삼혈총(三穴銃)같이 만들었고, 불꽃이 반공에서 가로 퍼지는 것이 우리나라 신기전(神機箭)과 같데그려.”
한다. 불이 다 꺼지기 전에 황제는 일어나 반선(班禪)을 돌아다 보고 잠깐 이야기를 하더니 가마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때는 바야흐로 어두웠는데, 앞에서 인도하는 등불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로 여든한 가지 놀음에 매화포로써 끝을 맺는 바 이것을 구구대경회(九九大慶會)라고 불렀다.
[주D-001]노포(魯褒) : 진(晉)의 학자. 자는 원도(元道). 전신론(錢神論)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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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취조기(蠟嘴鳥記)
납취조(蠟嘴鳥)는 비둘기보다는 작고, 메추리보다는 큰데, 회색빛에 푸른 날개요, 큰 입부리가 납초와 같으므로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또 오동조(梧桐鳥)라고도 하는데, 능히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 무릇 가르치고 시키면 소리를 응해 시행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길들여 거리에서 놀리는 자가 골패 서른두 개를 그릇 속에 담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섞어 놓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골패 한 개를 잡아서 무슨 골패인지 알고 난 연후에 그 골패를 새 놀리는 자에게 주면 새 놀리는 자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보인 뒤에 다시 그릇 속에 넣고 손으로 바삐 흩어지도록 섞은 다음 새를 불러 그 골패를 가져 오라고 하면, 새는 즉시로 그릇 속에 들어가 입부리로 그 골패 쪽을 물고 날아 나와 나무 가름대 위에 올라 앉는데, 그것을 취해 보면 과연 알아 두었던 그 골패 쪽이었다. 또 오색기(五色旗)를 세워놓고 새로 하여금 아무 빛 깃대를 뽑아 오라고 하면 역시 대답을 하고, 그 깃대를 뽑아 사람에게 준다. 종이로 만든 겹 처마의 누른 집을 실은 수레를 코끼리에게 메우고, 새로 하여금 수레를 몰라 하면 새는 머리를 수그리고 코끼리 배 밑으로 들어가 입부리로 코끼리 두 다리 틈을 물고 이것을 민다. 무릇 맷돌을 갈고 말타고 활쏘고 범춤ㆍ사자춤을 추어 사람의 지휘에 따르는데, 하나도 착오가 없었다. 또 종이로 구중(九重) 합문(闔門)이 있는 조그만 전각을 만들고 새로 하여금 전각 속에 들어가 무슨 물건을 가져 오라 하면, 새는 즉시 날아 들어가 호령에 따라 물고 나와서 탁자 위에 벌여 놓는다. 비록 언어는 앵무(鸚鵡)만은 못하나 그 교묘한 꾀는 오히려 나은 것 같았다. 얼마 동안 부리고 나니 새는 열을 이기지 못하여 입을 버리고 혀를 빼물고 털과 깃이 땀에 젖었다. 매양 한 번 놀릴 때마다 희롱으로 깨 한 알씩을 먹이는데, 새 놀리는 자는 매양 자기 입에서 꺼내 주는 것이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희본명목기(戲本名目記)
구여가송(九如歌頌)ㆍ광피사표(光被四表)ㆍ복록천장(福祿天長)ㆍ선자효령(仙子效靈)ㆍ해옥첨주(海屋添籌)ㆍ서정화무(瑞呈花舞)ㆍ만희천상(萬喜千祥)ㆍ산령응서(山靈應瑞)ㆍ나한도해(羅漢渡海)ㆍ권농관(勸農官)ㆍ담폭서향(薝蔔舒香)ㆍ헌야서(獻野瑞)ㆍ연지헌서(蓮池獻瑞)ㆍ수산공서(壽山拱瑞)ㆍ팔일무우정(八佾舞虞庭)ㆍ금전무선도(金殿舞仙桃)ㆍ황건유극(皇建有極)ㆍ오방정 인수(五方呈仁壽)ㆍ함곡기우(函谷騎牛)ㆍ사림가락사(士林歌樂社)ㆍ팔순분의권(八旬焚義券)ㆍ이제공당(以躋公堂)ㆍ사해안란(四海安瀾)ㆍ삼황헌세(三皇獻歲)ㆍ진만년상(晉萬年觴)ㆍ학무정서(鶴舞呈瑞)ㆍ복조재중(復朝再中)ㆍ화봉삼축(華封三祝)ㆍ중역내조(重譯來朝)ㆍ성세숭유(盛歲崇儒)ㆍ가객소요(嘉客逍遙)ㆍ성수면장(聖壽綿長)ㆍ오악가상(五岳嘉祥)ㆍ길성첨요(吉星添耀)ㆍ후산공학(緱山控鶴)ㆍ명선동(命仙童)ㆍ수성기취(壽星旣醉)ㆍ낙도도(樂陶陶)ㆍ인봉정상(麟鳳呈祥)ㆍ활발발지(活潑潑地)ㆍ봉호근해(蓬壺近海)ㆍ복록병진(福祿幷臻)ㆍ보합대화(保合大和)ㆍ구순이취헌(九旬移翠巘)ㆍ여서구가(黎庶謳歌)ㆍ동자상요(童子祥謠)ㆍ도서성칙(圖書聖則)ㆍ여환전(如環轉)ㆍ광한법곡(廣寒法曲)ㆍ협화만방(協和萬邦)ㆍ수자개복(受玆介福)ㆍ신풍사선(神風四扇)ㆍ휴징첩무(休徵疊舞)ㆍ회섬궁(會蟾宮)ㆍ사화정서과(司花呈瑞菓)ㆍ칠요회(七曜會)ㆍ오운롱(五雲籠)ㆍ용각요첨(龍閣遙瞻)ㆍ응월령(應月令)ㆍ보감대광명(寶鑑大光明)ㆍ무사삼천(武士三千)ㆍ어가환음(漁家歡飮)ㆍ홍교현대해(虹橋現大海)ㆍ지용금련(池湧金蓮)ㆍ법륜유구(法輪悠久)ㆍ풍년천강(豐年天降)ㆍ백세상수(百歲上壽)ㆍ강설점년(降雪占年)ㆍ서지헌서(西池獻瑞)ㆍ옥녀헌분(玉女獻盆)ㆍ요지향세계(瑤池香世界)ㆍ황운부일(黃雲扶日)ㆍ흔상수(欣上壽)ㆍ조제경(朝帝京)ㆍ대명년(待明年)ㆍ도왕회(圖王會)ㆍ문상성문(文象成文)ㆍ태평유상(太平有象)ㆍ두신기취(杜神旣醉)ㆍ만수무강(萬壽無疆).
8월 13일은 곧 황제의 만수절(萬壽節)이다. 이때 전 3일 후 3일에도 한가지로 연극놀이를 했는데, 모든 관리들은 오경(五更)에 대궐로 들어가 황제에게 문후(問候)하고 묘시(卯時 오전 6시) 정각에 반열에 참여하여 연극을 구경하고 미시(未時 오후 2시) 정각에 파하고 나온다. 희본(戲本)은 모두 조신(朝臣)들이 황제에게 바친 시와 부(賦)와 가사(歌辭) 같은 것으로 연극을 만들어 하는 것이다. 따로 무대를 행궁(行宮) 동쪽 누각(樓閣)에 설치했는데, 처마 높이는 다섯 길이 넘는 기를 세울 만하고, 넓이는 수만 명이 들어설 만했다. 이 무대를 세웠다가 허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이 쉽게 된다. 무대의 좌우에는 나무로 가산(假山)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전각과 같고 이상한 나무 숲이 그 위에 얽혀 비단을 오려서 꽃을 만들고 술을 달아서 과실을 만들었다. 연극 한 막(幕)씩을 할 때마다 배우들이 무려 수백 명씩 나오는데, 모두 비단에 수놓은 옷을 입었고 연극이 바뀔 때마다 옷도 바꾸어 입는데, 모두 한족(漢族)들의 의관이다. 연극을 장치할 때는 잠시 비단 막으로 무대를 가리면 무대 위는 조용하여 인기척이 없고, 다만 신소리만 들리다가 조금 지나서 막이 열리면 무대에는 산이 생기고,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소나무가 서고 햇빛이 나는 듯이 되는데 이것은 소위 구여가송(九如歌頌)이다. 노래는 모두 우조(羽調)의 높은 음으로서 악률(樂律)이 높아 마치 하늘 위에서 나는 소리 같아 청탁(淸濁)과 서로 화(和)하는 음이 없었다. 악기는 모두 생황ㆍ저ㆍ피리ㆍ종ㆍ경쇠ㆍ거문고ㆍ비파 등의 소리로서 다만 북소리만 들리지 않고, 간간이 바다 소리가 들렸다. 삽시간에 산이 옮겨지고 바다가 없어지는데 한 가지도 복잡한 것이 없이 정연하였다. 황제와 요ㆍ순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본을 뜨지 않은 의관이 없이 제목에 따라 연극을 했다. 왕양명(王陽明)은 말하기를,
“소(韶)는 순의 한 편 연극이요, 무(武)는 무왕의 한 편 연극일진대 걸(桀)ㆍ주(紂)ㆍ유(幽)ㆍ여(厲) 같은 폭군들에게도 한 편씩의 희본이 있을 것이다.”
했는데, 오늘 노는 연극은 곧 오랑캐의 한 편 희본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이미 계찰(季札 오(吳)의 명신)과 같은 지식이 없으니, 그들의 도덕과 정치를 무엇이라 논할 수 없으나 대체로 음악의 성률이 높고 외로움이 극도에 달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귀지 못할 것이요, 노래가 맑으면서도 너무 격하면 아랫사람이 숨을 곳이 없을 것인즉, 중국에 전래하던 선왕(先王)의 음악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겠다.
[주D-001]왕양명(王陽明) : 명의 학자 왕수인(王守仁). 양명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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