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임보

- 문정희의 '치마' 를 읽다가-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출처: 월간「우리詩」2009 6월> 

 

林步 본명은 강홍기(姜洪基).

1940년 6월 19일 전남 순천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충북대 국문과 교수이다. 필명 림보는 랭보의 음차다.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Jean-Nicolas-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

『현대문학』에 「자화상」(1959)과 「야사(野舍)에서」(1962)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우이동』(1987), 『은수달 사냥』(1989), 『날아가는 은빛 연못』(1994),

『겨울, 하늘소의 춤』(1997) 등을 간행한 바 있다.

임보는 자연 및 계절의 변화에서 경쾌한 이미지를 포착하여 서경과 서정을 관조와

형식미의 격조를 살려 표현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에 관하여」(1997), 「단형시 고(短形詩 考)-‘사단시(四短詩)’

장르설정을 위한 시론」(2000) 등 현대시의 율격 및 네 마디의 구조를 갖추고 8음보

전후의 길이를 가진 4행 단시 형식에 대해 주목하는 평론을 발표한 바 있다

 

치마 

    ㅡ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우리 詩》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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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졸업.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우리는 왜 흐르는가』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대』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사랑아』

『나는 문이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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