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태민안을 비는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의 기록도 함께 싣는다.

*외뿔고래의 뿔.

신문왕 때 "움직이는 섬 위의 한 그루 대나무"를 베었던 바로 그 외뿔고래의 뿔도

피리를 만들 수가 있는 속이 빈 뿔이다.

     태평소-이남선

 

2013 경주세계피리축제 만파식적

http://www.youtube.com/watch?v=EnvZFvheCNI&feature=youtube_gdata_player

몽골의 피리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thGzPQfz7Zg

 

萬波息笛 만파식적

-삼국유사 권2

第三十一<神文大王>, 諱<政明>, <金>氏, <開耀>元年辛巳七月七日卽位,

제 31대 신문대왕의 이름은 정명이고 성은 김씨이다. 개요 원년 신사(681) 7월7일 왕위에 올랐다.

爲聖考<文武大王>創<感恩寺>於東海邊.(寺中記云, <文武王>欲鎭<倭>兵, 故始創此寺, 未畢而崩, 爲海龍. 其子<神文>立, <開耀>二年畢排. 金堂砌下東向開一穴, 乃龍之入寺旋繞之備. 蓋遺詔之藏骨處, 名<大王岩>, 寺名<感恩寺>, 後見龍現形處, 名<利見臺>.)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하여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 - 경북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에 사지가 있다.- 를 세웠는데 (절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하여 이 절을 처음 지었으나, 역사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바다의 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오른 개요 2년(682)에 역사를 마치고 금당 뜰 아래 동쪽을 향해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는데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으로 유골을 간직한 곳은 대왕암이라고 하고 절 이름은 감은사라고 하였는데 후에 용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

明年壬午五月朔(一本云, <天授>元年, 誤矣), 海官波珍喰<朴夙淸>奏曰:

「東海中有小山, 浮來向<感恩寺>隨波往來.」

이듬해인 임오 5월 초하루(다른 책에는 천수 원년이라 했으나 잘못이다.)에

해관(海官)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었다.

"동해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바다에 떠서 감은사를 향하여 왔다갔다 합니다."

王異之, 命日官<金春質>(一作<春日>)占之,

왕이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여 일관 김춘질(또는 춘일이라고 한다)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曰: 「聖考今爲海龍, 鎭護<三韓>. 抑又<金>公<庾信>乃三十三天之一子, 今降爲大臣, 二聖同德, 欲出守城之寶. 若陛下行幸海邊, 必得無價大寶.」

일관이 말하기를,

"대왕의 아버지께서 지금 해룡이 되어서 삼한을 진호(鎭護)하시고 또한 김유신공도

삼십 삼천의 한 아들이 되어 지금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동덕(同德)하여 성을 지키는 보물을 내려 주려 하니 만약 폐하께서 바닷가로 나가시게 되면 반드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王喜, 以其月七日, 駕幸<利見臺>, 望其山, 遣使審之, 山勢如龜頭, 上有一竿竹, 晝爲二, 夜合一.(一云, 山亦晝夜開合如竹.) 使來奏之, 王御<感恩寺>宿,

왕은 기뻐하여 그 달 7일에 이견대로 가서 그 산을 바라보고 사자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산세는 거북의 머리 형상이었다. 그 윗켠에 한간(一竿)의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합해져서 하나가 되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대나무와 같이 낮에는 벌어지고 밤에는 합해졌다고 한다.) 사자가 돌아와서 아뢰니 왕은 감은사에 나아가 머물렀다.

明日午時, 竹合爲一, 天地震動, 風雨晦暗七日, 至其月十六日風霽波平.

王泛海入其山, 有龍奉黑玉帶來獻,

다음날 오시에 대나무가 합하여져서 하나가 되니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가 일어나며 7일동안이나 계속 캄캄하였다. 그 달 16일이 되어서야 바람이 자고 파도는 평온하여졌다.

왕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그 산으로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받들어서 왕에게 바치었다.

迎接共坐,

問曰: 「此山與竹, 或判或合, 如何?」

자리를 같이하여 왕이 물었다.

"이 산에 있는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혹은 합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무슨 까닭인가?"

龍曰: 「比如一手拍之無聲, 二手拍則有聲. 此竹之爲物, 合之然後有聲, 聖王以聲理天下之瑞也. 王取此竹, 作笛吹之, 天下和平.

今王考爲海中大龍, <庾信>復爲天神, 二聖同心, 出此無價大寶, 令我獻之.」

용이 대답했다.

"비유를 하자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것은 합해진 연후라야만 소리가 나게 되므로 성왕께서 는 소리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는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취하여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입니다.

지금 왕의 아버님[문무왕]께서는 바다 속의 용이 되셨고 유신공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을 저에게 주어 저로 하여금 왕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

王驚喜, 以五色錦彩金玉酬賽之. 勅使斫竹出海時, 山與龍忽隱不現.

왕은 놀랍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5색 비단과 금, 옥을 용에게 주고 사자를 보내어 그 대나무를 베게 한 다음 바다에서 나오니 산과 용은 홀연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王宿<感恩寺>, 十七日, 到<祗林寺>西溪邊, 留駕晝饍.

왕은 감은사에 유숙하고 17일에 지림사의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어가를 멈추고 점심을 드셨다.

太子<理恭>(卽<孝昭大王>)守闕, 聞此事, 走馬來賀, 徐察奏曰:

「此玉帶諸窠皆眞龍也.」

태자 이공(즉 효소대왕)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내려와서 경하하며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의 모든 눈금이 진짜 용입니다."

王曰: 「汝何知之?」

왕이 물었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太子曰: 「摘一窠沈水示之.」

태자가 아뢰었다.

"눈금 하나를 떼어서 물에 넣어 보이겠습니다."

乃摘左邊第二窠沈溪, 卽成龍上天,

其地成淵, 因號<龍淵>.

이리하여 왼편의 둘째 눈금을 떼어 물에 넣으니 바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은 곧 못이 되니 이러한 이유로 하여 용연이라고 불렀다.

駕還, 以其竹作笛, 藏於<月城><天尊庫>.

왕이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서 월성의 천존고에 보관하여 두었다.

吹此笛則兵退病愈, 旱雨雨晴, 風定波平, 號<萬波息笛>, 稱爲國寶.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올때는 맑아지고,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하였다.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至<孝昭大王>代, <天授>四年癸巳, 因<失禮郞>生還之異, 更封號曰<萬萬波波息笛>, 詳見彼傳.

효소대왕 때에 이르러 천수 4년 계사(693)에 부례랑(夫禮郞)이 살아서 돌아온 기이한 연유로 하여 다시 봉하여 말하기를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하였다. 자세한 것은 그의 전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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