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강국 백제를 찾아서

동남 아시아·인도까지 활동 범위 넓혀 나가

소년한국일보 / 입력시간 : 2007-07-30 13:27

백제 땅 중심으로 바닷길 이어져 일찍부터 해외 교류… 왜국 등과 무역 통해 큰 이익
'백제 금동 대향로' 코끼리·악어 등장…겸익, 인도서 불교 공부… 경전 들여와


백제 금동 대향로에 새겨진 코끼리를 탄 사람.

■ 뛰어난 선박 제작 기술과 항해술 지녀

한반도 서남부의 긴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던 백제에는 좋은 항구들이 많았습니다. 바닷길이 백제 땅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어 백제인들은 일찍부터 대륙과 일본 열도로 진출하기가 쉬웠지요. 백제인들의 활동 범위는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답니다.

543년 백제 성왕은 왜국에 사신을 보내 부남국의 보물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부남국은 지금의 캄보디아로, 이는 당시 백제가 부남국과 교역을 했음을 알 수 있는 실마리지요. 성왕은 또 554년에는 신라와 전쟁을 하기 위해 왜국에 원군을 요청하면서 ‘답등’이란 것을 선물합니다.

이는 양털이 주성분인 페르시아 직물로, 북인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백제가 답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북인도와 직접 교역했거나, 적어도 활발한 무역을 통해 해외의 진귀한 물건들을 구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642년 백제 사신이 왜국과 교역을 하려는 곤륜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 넣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곤륜은 지금의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가 왜국과 단독으로 교역하려는 것을 백제가 가로막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시 왜국은 배 만드는 기술과 항해 기술이 부족해 백제에 의지해 외국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백제에는 방(舫)이라 불리는 큰 선박이 있었답니다. 왜국에서 ‘구다라선’이라고 불렀던 이 배는 크고 튼튼한 선박의 대명사였습니다. 선박 제작 기술과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백제는 동남아시아와의 무역을 통해 얻은 물건을 왜국 등지에 수출하면서 큰 이익을 얻었던 것이지요.

악어.

■ 백제인, 진취적이고 적극적…국제화된 나라

백제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인 ‘백제 금동 대향로’에는 짐을 갖고 코끼리에 올라 탄 사람과 악어가 보입니다. 코끼리와 악어는 동남아시아 혹은 인도에 백제인이 자주 왕래를 했기 때문에 예술 작품에도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제는 지금의 일본 남쪽 오키나와에 있었던 유구국과 필리핀,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인도 등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겸익 스님은 백제인의 활발한 해외 활동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는 512년경 백제를 떠나 양자강 남쪽의 양나라에 잠시 머물다가,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지역을 거쳐 인도까지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인도 중부의 절 상가나사에서 인도 말인 범어를 배우고 불교를 공부했지요. 14 년 후인 526년 나란타사의 배달다 삼장 법사와 함께 귀국했습니다.

이 때 백제의 임금이었던 성왕은 겸익을 흥륜사에 머물게 하고, 인도에서 가져온 아담장과 오부율문이란 경전을 번역하라고 명하였답니다. 이 작업에는 백제의 승려 28 명이 동원되어 모두 72 권이 번역됐지요. 인도에서 건너온 책이 직접 번역됨으로써 불교의 한 교파인 율종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우리 나라 경전은 대개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뒤 들어온 것이었지요. 겸익은 불교의 참 의미를 알기 위해 인도까지 여행했던 것입니다.

백제인들은 겸익 스님처럼 알고자 하는 것, 새롭고 진귀한 물건을 찾아 위험한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었답니다. 백제는 신라, 고구려, 왜, 중국 등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국제화된 나라이기도 하였지요. 바다를 향해 크게 열려 있었던 나라가 바로 백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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