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희화사에서 전무후무한 걸작으로 꼽히는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 자화상. 녹우당 소장.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B%91%90%EC%84%9C

 

윤두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별칭 호(號)는 공재(恭齋), 호재 출생 1668년 6월 28일 조선 한성부 사망 1715년 12월 21일(1715-12-21)(향년 47세) 조선 전라도 해남 연동 직업 문인, 화가 국적 조선 분야 서화 부모 윤이석(부), 청송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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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증손이며, 윤이후의 넷째아들이다 숙종 때(26세) 진사에 급제하였다. 당쟁이 심하던 시기였기에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1]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는데, 특히 인물·동식물 등의 그림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단의 선구자로 지목받으며,[1]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겸재 정선(謙齋 鄭歚)과 함께 조선의 ‘3재(三齋)’라 불린다. 작품으로 〈노승도〉, 〈산수도〉, 자화상 등이 있다. 서화뿐만 아니라 유학천문지리수학병법 등 각 방면에 능통한 실학적인 태도는 가풍으로 전해졌다.[1]

윤선도의 증손으로  정약용(丁若鏞, 1762년 ~ 1836년)은 외증손자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20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5/05/10356/

 

이성계 송시열 윤두서 등 5명 초상화만 국보가 된 사연

[초상화읽기 -15] 마치 거울을 통해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강한 신념이 느껴지는 꽉 다문 입술,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사실적인 안면 묘사가 압권인 공재 윤두서(1668~1715)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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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현미경과 적외선, X선 촬영 및 형광분석법 등으로 조사해 보니 초상화는 원래 완성작이었으며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퇴화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생략된 것으로 여겨왔던 귀는 희미하지만 붉은 선으로 표현됐고 옷깃과 옷주름도 분명히 존재했다. 정밀하게 채색까지 된 사실도 밝혀졌다. 다만 무슨 이유로 선과 채색이 지워졌는지, 어떻게 얼굴만 보존될 수 있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AdvFF5wRM&t=516s 

 

 

https://www.youtube.com/watch?v=CwD-jY4fTDw 

 

 

 

 

https://www.youtube.com/watch?v=biR6RONxK_g 

 

https://www.youtube.com/watch?v=UgOwP1PVx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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