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상절 제2 "가비라국 정반왕의 맏아드님은 석가여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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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책의 내용은 석가족의 연출(緣出)로부터 석가모니의 전세 이야기, 그리고 현세에서의 석가모니의 탄생, 성장, 출가, 성불, 멸도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사후의 경률(經律)의 결집(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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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sejongkorea.org/front/booklist.do?bkCode=P13_SS

 

세종한글고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만든 세종한글고전 사이트로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정속언해, 경민편, 여사서언해, 여소학언해, 효경언해, 여훈언해, 향약제생집성방, 오륜행실도, 동국신속삼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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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책이 언제 간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서(序)』가 세종 29년(1447)으로 되어 있고, 또 9권의 표지의 기록으로 세종 29년(1447)에서 세종 31년(1449)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보상절』이 발견된 것은 현재 마지막 권이 24권으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상의 것밖에는 발견된 것이 없으므로, 그 초간과 복간은 물론 문헌의 내용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서 당시 쓰던 국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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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한글고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만든 세종한글고전 사이트로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정속언해, 경민편, 여사서언해, 여소학언해, 효경언해, 여훈언해, 향약제생집성방, 오륜행실도, 동국신속삼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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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석보상절 제6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역주 석보상절 제9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역주 석보상절 제11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역주 석보상절 제13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역주 석보상절 제19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역주 석보상절 제20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해제
역주 석보상절 제21 역자소개 국역위원 간행사 범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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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이다. 불교서적중에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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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4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초간본 6권복간본 2권만 남아있다. 이 책의 편찬 동기와 목적, 편자 등에 대해서는 『월인석보(月印釋譜)』 1권에 실려 있는 '석보상절 서문'과 '어제월인석보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두개의 서문의 내용에 의하면, 《석보상절》은 1446년에 서거한 소헌왕후(昭憲王后, 조선 세종대왕의 정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만든 이다.[1]

수양대군이 신미(信眉)와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서 남제(南齊)의 승우(僧祐)가 편찬한 『석가보(釋迦譜)』와 당(唐)의 도선(道詵)이 편찬한 『석가씨보(釋迦氏譜)』를 참조하여 한글로 번역했다고 한다.[1] 그러나 다른 언해 자료와는 달리, 원문인 한문이 기재되어 있지 않는 점, 한글 문장이 다른 언해 자료와 다르게 한문을 직역한 문체가 아닌 점 등을 감안하여 석보상절의 문체는 다른 언해 자료와 비교해서 더 자연스러운 문체에 가까웠다고 추측된다.

<석가보>와 <석가씨보> 이외에 약사유리광여래 본원 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권9에서), 지장보살 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권11에서),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권11에서), 묘법 연화경(妙法蓮華經, 권13~21에서) 등을 참고하였다.[2]

간행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월인석보에 실린 '석보상절 서문'이 세종 29년(1447)에 쓰여진 것으로 되어 있고, 또 9권의 표지의 기록으로 볼때 세종 29년(1447)에서 세종 31년(1449)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발견된 책중에 마지막 권이 24권으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현재 8권만 남아있다. 문헌의 내용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특히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서 당시 쓰던 국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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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와 훈민정음의 상생 관계 - 불교평론

1. 우리에게 《월인석보》란?우리 고전에 대하여 우리는 이름이나 제목, 지은이만 알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국민 착각의 책이 많다. 조선시대 걸작인 《월인석보》 또한 그렇다. 1459년 세조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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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인석보》 권 1의 구성과 신미의 등장

1) 훈민정음 언해
2) 팔상도
3) 서문(석보상절 서+월인석보 서)
4) 패기
5) 월인천강지곡
6) 석보상절

1) 《월인석보》 간행 동기

소헌왕후는 세종의 부인이자 수양대군(세조)의 어머니인데, 1446년 3월 훈민정음 반포 6개월 전에 승하하였다. 소헌왕후의 죽음에 대하여 두 부자는 극락왕생 발원을 위한 노래와 산문을 지었던 것이다. 반포 후 10개월 후인 1447년 7월 25일의 일이다. 소헌왕후의 승하가 결국 훈민정음의 보급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단 10개월 만에 《석보상절》 산문 24권의 대작과 《월인천강지곡》 운문 600수의 장편 대서사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월인석보》 서문에 등장하는 신미를 비롯한 11인의 자문단이 활약한 집단지성의 협업을 엿볼 수 있는 단서라 하겠다.

(1) 세종 어제 훈민정음‐훈민정음 보급의 중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훈민정음에는 세종 28년(1446)에 나온 초간본인 원본으로 한문으로 쓴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있고, 이를 한글로 풀이한 《훈민정음 언해본》이 있다. 

언해본은 《월인석보》(1459) 제1권에 실린 것으로 책 이름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 訓民正音)’이라고 하였으며,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언해본 훈민정음(諺解本 訓民正音)》은 ‘어지(御旨) · 음가(音價) · 운용(運用) · 성음절(聲音節) · 방점(傍點)’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례본 훈민정음(解例本 訓民正音)》은 국보 70호로 정인지 · 신숙주 · 최항 · 박팽년 · 성삼문 · 이개 · 이선로 · 강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내용은 ‘예의(例義, 본문) ·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 정인지(鄭麟趾) 서문’의 순서로 짜여 있다. 특히 해례는 ‘제자해(制字解) · 초성해(初聲解) · 중성해(中聲解) · 종성해(終聲解) · 합자해(合字解) · 용자례(用字例)’를 망라한 것이다.

(2) 팔상도

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석보상절 서〉

〈석보상절 서문〉은 특히 〈세종어제 훈민정음 서문〉과 형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발원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훈민정음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 문자인 한자로 우리의 의사 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를 위하여 새 문자 훈민정음 28글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쓰기 쉽게 하고자 하노라.

〈석보상절 서문〉의 내용을 요약한다.

부처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무량공덕을 중생들은 아무리 찬탄해도 모자라는 바이다. 세상의 부처의 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부처의 활동하시던 때부터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과정을 아는 이가 드물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팔상도 이해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즈음에 소헌왕후 극락왕생을 위하여 여러 경전에서 가려 뽑아 책 한 권을 만들어 석보상절이라 하였다. 또 차례에 맞춰 팔상도를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니 사람들이 쉽게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기를 바라노라.

내용은 양자 모두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깨쳐 일상생활이 편리해지고 불교의 도리를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3. 《월인석보》와 간경도감에 등장하는 신미의 활약

간경도감은 《월인석보》(1459)가 지어진 지 2년 후인 1461년에 설치된다. 제일 먼저 《능엄경언해》(10권)가 1462년 간행된 것을 비롯하여 1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대표적인 훈민정음 불경들과 신미의 본격적인 역할이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먼저 《월인석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전하는 1권부터 25권의 시험본 《월인석보》 간행을 통해 훈민정음 불경 간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뒤 그 추진력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했을 것이다.

가령 ‘월인+석보’의 두 책의 합편은 ‘게송+법문’이라는 불교 경전의 형식을 갖추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자세한 세주는 조선시대 언어를 망라한 ‘훈민정음 사전’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간경도감에서는 본격적인 조선대장경의 시대를 열고 경전을 언해할 때마다 10단계의 번역 과정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을 소급해보면 첫 조선대장경의 시작인 《월인석보》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 《월인석보》는 그러므로 본격적인 간경도감 출발의 시금석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1) 간경도감 《능엄경언해》로 본 훈민정음 보급의 증거

우리는 《훈민정음 언해》가 《월인석보》 권 1 서두에 실려 ‘책 속의 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학습하고 《월인석보》를 텍스트로 본격적인 훈민정음을 보급하려는 의도라고 보았다.

한편 《훈민정음 해례본》의 형식 또한 일반적인 불경 형식처럼 ‘산문+게송’으로 원리를 설명하고 요약한 시로 구성되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불교 경전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라 하였다.

그러나 《월인석보》의 형식은 ‘게송+산문’의 순서로 불교 경전과 순서가 반대인데, 이것은 아버지 세종의 노래를 앞세우고 아들인 세조 자신을 뒤로하는 겸양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월인석보 서문〉 속 자문단에 신미를 비롯한 10인 전문가 그룹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훈민정음에 대한 이해 정도가 아니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불교 지식에 통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곧 훈민정음 창제에 어떤 기록도 없는 신미 등 자문단이 갑자기 훈민정음으로 《월인석보》를 지으면서 12부에 해당하는 불교 경전을 다 섭렵하고도 의문이 남을 때 최종적으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였다는 내용이 서문에 분명히 쓰여 있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월인석보》 간행 2년 후 설치되는 간경도감에서 신미는 세조가 경전에 구결을 달면 그것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증의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한계희와 김수온이 번역하면 그것이 정확한지 검수하는 역할을 한다. 자문단 중 한 사람인 신미의 동생 김수온이 훈민정음으로 쓰는 일을 맡는 것이다. 훈민정음에 대하여 막힘없이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신미와 김수온 형제의 존재는 간경도감의 역할에서부터 역추적해야 훈민정음 창제 관련 사실에 이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2. 《월인석보》 권 1의 구성과 신미의 등장

《월인석보》 권 1의 구성을 알면 《월인석보》 전체의 틀을 알 수가 있다. 곧 다음과 같은 차례로 시작해 현재 전하는 25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1) 훈민정음 언해
2) 팔상도
3) 서문(석보상절 서+월인석보 서)
4) 패기
5) 월인천강지곡
6) 석보상절

1) 《월인석보》 간행 동기


《월인석보》 권 1의 목차 중 1)~4)는 권 1에만 들어 있는 구성이다. 이후 현전하는 25권까지 20권의 책은 5)~6)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순서에 앞서 이 책 탄생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헌왕후(1395~1446)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월인석보》의 패기에는 ‘세종어제 월인천강지곡 소헌왕후 동증정각(世宗御製 月印千江之曲 昭憲王后 同證正覺)’이라고 하여 ‘세종이 친히 월인천강지곡을 짓고 소헌왕후 함께 정각을 증득하기’를 바라는 발원문의 성격이 강한 내용이 등장한다.

소헌왕후는 세종의 부인이자 수양대군(세조)의 어머니인데, 1446년 3월 훈민정음 반포 6개월 전에 승하하였다. 소헌왕후의 죽음에 대하여 두 부자는 극락왕생 발원을 위한 노래와 산문을 지었던 것이다. 반포 후 10개월 후인 1447년 7월 25일의 일이다. 소헌왕후의 승하가 결국 훈민정음의 보급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단 10개월 만에 《석보상절》 산문 24권의 대작과 《월인천강지곡》 운문 600수의 장편 대서사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월인석보》 서문에 등장하는 신미를 비롯한 11인의 자문단이 활약한 집단지성의 협업을 엿볼 수 있는 단서라 하겠다.

(1) 세종 어제 훈민정음‐훈민정음 보급의 중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훈민정음에는 세종 28년(1446)에 나온 초간본인 원본으로 한문으로 쓴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있고, 이를 한글로 풀이한 《훈민정음 언해본》이 있다. 

언해본은 《월인석보》(1459) 제1권에 실린 것으로 책 이름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 訓民正音)’이라고 하였으며,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언해본 훈민정음(諺解本 訓民正音)》은 ‘어지(御旨) · 음가(音價) · 운용(運用) · 성음절(聲音節) · 방점(傍點)’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례본 훈민정음(解例本 訓民正音)》은 국보 70호로 정인지 · 신숙주 · 최항 · 박팽년 · 성삼문 · 이개 · 이선로 · 강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내용은 ‘예의(例義, 본문) ·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 정인지(鄭麟趾) 서문’의 순서로 짜여 있다. 특히 해례는 ‘제자해(制字解) · 초성해(初聲解) · 중성해(中聲解) · 종성해(終聲解) · 합자해(合字解) · 용자례(用字例)’를 망라한 것이다.

( ←중략→)

(4) 〈(세조) 어제 월인석보 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수양대군에서 왕이 된 세조 〈월인석보 서문〉은 그야말로 조선 훈민정음의 명문장이요 백미라 할 만하다. 〈석보상절 서문〉이 초등학생 정도의 쉬운 문장이라면 〈월인석보 서문〉은 대학원 이상의 지식을 요하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먼저 불교의 진리를 깊이 있게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우리를 제도할 부처를 찬탄한다.

둘째 소헌왕후의 극락왕생 발원과 아버지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이 합해지게 된 연유,

셋째 의경 세자의 요절로 인한 불교귀의,

넷째 《월인석보》 편찬을 위한 팔만대장경과 인도 글자로 된 불교 경전 섭렵, 그리고 신미를 비롯한 11명의 자문단이 등장한다.

다섯 번째 모든 중생과 만조백관의 보리피안 곧 깨닫기를 발원한다.

 

[참고]

https://blog.daum.net/zayion/877

 

중세국어 원문자료 모음

중세국어 원문자료를 여기저기서 모아 왔습니다. 혹시 자료 찾으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을까 하여 올립니다. hunmin.hwp 경민편언해.hwp 권념요록.hwp 금강경언해(건).hwp 남명집(상).hwp 능엄경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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