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중/ T. S. Eliot의 `황무지` 번역 답글 02

3. 현대성(modernity, modernism, modernist movements)   - 수평적 삶에서 수직적으로(from surface to deep)인간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현재, 최 현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적 의미에서 말하는 '현대성'의 의미는 년대적(chronological)이 아니라 질적(qualitative)인 특징을 일컫는 말이다. 계몽주의시대 이래 理性이 주도하는 합리주의와 기계론적 세계관이 도전에 직면하면서 개인은 과거의 전통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길을 고뇌하게 된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19세기 말과 이십세기 초 문학, 예술, 건축, 사상 등에서 나타난 이 과거의 전통과 '다른' 차별적 행보를 모던이즘 또는 모더니스트 운동이라고 일컫는다. (모던이즘에 대한 최근의 해석은 변하고 있다.  대체로 이십세기 중엽이후 여러 문화와 학술 분야에서 '포스트모던이즘'이라는 용어를 흔히 쓰지만 질적으로 같은 경향을 세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평가들도 있다. Postmodernism 역시 계몽주의와 연결된 현대의 과학적 객관주의와 진보의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다시 Nietzsche의 사유로 돌아 가보자. 그는 소크라테스의 理性主義, 신화적 상징으로 바꿔 말하면, 아폴론적 '지배'에서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디오니소스적 情意를 회복시켜 기존의 가치에 대한 물음과 창조적 열정으로 표피적 현상에 묻혀버린 개인의 역량을 되살리려 하였다.(나는 이 주장을 물론 디오니소스적 열정을 위해 아폴론적 이성을 '격하시키는' 의미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균형의 문제로 본다. 차가운 이성에 의해 열정이 억압된, 틀 속에 갇힌 인간성 그 전체성의 건강한 발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理性의 경시는 그 자신의 철학과 주장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single'이 아니라 'plural' perspective를 제시하고 있다.)       모던이즘은 과거의 수평적 삶 - 외부세계와의 표면적 관계가 지배적인 일상(surface coherency and harmony)-에서 자의식이 이끄는 자신의 내면세계로 관심의 중심이 수직적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만큼 관심을 가지고 이웃과 지속적 유대를 유지하며 살던 전통적 생활에서 자신의 삶에만 골몰하게 되는 변화를 겪었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삶도 사유도 그들이 공통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the Absolute)를 잃고 서로 소원해지고 단절되었다.  지배적 가치에 의해 통일된 공동체에서 유리되어 개인화되고 내면화된 사유는 현실세계 속에서도 구체화되어 여러 분야에서 특징을 드러내었다. 특히 문학과 예술분야에서의 모던이즘은 흔히 논리적이고, 일관되고, 숭고하고, 優美로운 것의 자리에 모순되고, 분철되고, 하잘 것 없고, 추한 것으로 대체시켰다. 또 한 사람의 話者(speaker)에 의한 일관된 시각 대신에 다수의 화자를 통한 다양하고 때론 서로 모순되는 견해들이 제시된다. 이러한 변화의 밑바닥에는 세상은 더 이상 소수의 주역 또는 영웅들이 이끄는 것이 아니며 개명된 수많은 개인들이 문화와 문명의 전개의 참여자로 등장했다는 현실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모던이즘은 형식에 대한 실험, 그리고 작품의 과정과 사용된 소재에 관심을 기울인다. 내면화된 사유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소재는 소재자체의 특성이 살려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원형이 해체되고 형질변경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들의 표현기술(presentation techniques) 또는 형식미가 예술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사유와 행위에 나타난 작가정신 뒤에는 自意識이 있고 현상의 해석이 있다. 작가들은 그들의 해석에 동원하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재발명' 또는 'bending of the language situated on needs' 하려고 한다.  이렇게 개인화되고 내면화된 작업은 공공의 언어(public language)에서 사적인 언어(individualized, personalized language)로 바뀌게 되며 따라서 그런 언어의 해독과 同質感은 그 언어의 사용자(insider)가 되지 않고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한 어렵게 된다. 여기서 언어란 'verbal' 이외에, 음악, 미술, 건축, 무용 등 예술언어를 포함하여 광의로 해석함이 합당하겠다. 또한 verbal 언어라 하더라도 작가가 구사하는 사유화된 언어표현은 denotation, connotation, implication, symbol, image등의 다면적 시각에서 서로 상이한 이해 또는 해석을 끌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Eliot의 '황무지'로 돌아 가보자.이 詩가 처음 발표됐을 때, 냉소적인 혹평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Critical receptionThe poem's initial reception was mixed; though many hailed its portrayal' of universal despair and ingenious technique, others, such as F. L. Lucas, detested the poem from the first, while Charles Powell commented 'so much waste paper'.[21]Horror author H. P. Lovecraft, who despised Eliot, called the poem 'a practically meaningless collection of phrases, learned allusions, quotations, slang, and scraps in general' and wrote a scathing parody called 'Waste Paper: A Poem Of Profound Insignificance'.Critic Harold Bloom has observed that the forerunners for The Waste Land are Alfred Lord Tennyson's Maud: A Monodrama and particularly Walt Whitman's elegy,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The major images of Eliot's poem are found in Whitman's ode: the lilacs that begin Eliot's poem, the 'unreal city,' the duplication of the self, the 'dear brother,' the 'murmur of maternal lamentation,' the image of faces peering at us, and the hermit thrush's song.One evening Eliot read from the poem to the Royal Family during WWII. Years later, the Queen Mother recalled the evening:We had this rather lugubrious man in a suit, and he read a poem... I think it was called The Desert. And first the girls [Elizabeth and Margaret] got the giggles and then I did and then even the King.(이상 Wikipedia에서 발췌) ]이 詩를 혹평한 당대의 비평가들은 근본적으로 견해와 태도, 정서적 취향이 달랐을 수도 있고 그들이 적용한 언어의 의미가 서로 다른 경우일 수도 있다. 언어 그 자체가 불가해하다기 보다는 사용된 언어의 의미(또는 감각)가 서로 다르므로 적절한 평가를 받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면화되고 사유화된 경험과 언어가 서서히 공공의 언어로 전환되고 해석됨으로써 전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초기 반응에서 몰이해로 인한 냉대와 혹평을 극복하고 서서히 진가를 인정받은 경우가 특히 예술분야에서는 흔한 일이여서 이와 같은 추론의 근거를 제공한다.우선 냉소적인 비판은 '황무지'가 당대의 초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무시하고 싶고 못마땅한 현실(자질구레하고 하찮은 일상등)에 대한 혐오감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 그러나Eliot의 시야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조감으로 온갖 잡동사니와 위선의 집합으로서의 현실세계를, 그리고 단편적일(fragmented) 수밖에 없는 인간의 경험과 사유를 꼴라주(collage) 작업을 한다. 그의 자의식은 여러 speaker의 모습으로 神話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멸의 생각들을 들춰내며 時空을 이동한다.  그 궤적이 이십세기의 초상화로 제시된 이 서사시이다.개인적 결혼생활의 파경과 신경 쇠약, 불만등의 자전적 요소는 세계대전 후의 참담한 사회상과 결합되어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스위스 로잔에서 요양 중에 이 시를 썼다. 발표된 지 8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는 'a quintessential cornerstone in modernist thought'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영문학사에서는 a Great English Poem of  'profound insignificance'가 되었다.성영중 [서울사대부고 19회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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