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갑신(甲申) & 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도강록(渡江錄) 6월 24일 신미(辛未)에 시작하여 7월 9일 을유(乙酉)에 그쳤다. 압록강(鴨綠江)으로부터 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이 걸렸다.

[참고]

요동벌 새벽길(遼野曉行)’

-박지원


遼野何時盡, 요동벌은 언제 끝날까?

一旬不見山. 열흘을 가도 산을 못 보네.

曉星飛馬首, 말 머리에 샛별이 날리고

朝日出田間. 밭두렁에서 아침 해가 돋는다.

개었다.
정사와 한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서,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10리 남짓 가서 산모롱이 하나를 접어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국궁(鞠躬)하고 말 앞으로 달려 나와서 땅에 엎드려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보입니다.” 한다.


태복은 정 진사의 마두다. 아직 산모롱이에 가려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빨리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모롱이를 벗어나자, 안광(眼光)이 어른거리고 갑자기 한 덩이 흑구(黑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내 오늘에 처음으로, 인생(人生)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한 곳이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 하였다.

정 진사가,

“이렇게 천지간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울고 싶다니, 웬 말씀이오.”

하고 묻는다.

나는,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천고의 영웅(英雄)이 잘 울었고, 미인(美人)은 눈물 많다지. 그러나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기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金)ㆍ석(石)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음은 듣지 못하였소.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중에서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는 것이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 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오.

지극한 정(情)이 우러나오는 곳에,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는다면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인생의 보통 감정은 오히려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이로 인하여 상고를 당했을 때 억지로 ‘애고’, ‘어이’ 따위의 소리를 부르짖지. 그러나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온 지극하고도 참된 소리란 참고 눌러서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오.

그러므로, 저 가생(賈生)은 일찍이 그 울 곳을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해서 별안간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 마디 길게 울부짖었으니, 이 어찌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해괴히 여기지 않으리오.” 한즉,


정은, “이제 이 울음 터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의당 당신과 함께 한 번 슬피 울어야 할 것이나, 우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느 것에 해당될까요.” 한다.


[주D-001]칠정(七情) : 《예기(禮記)》에서 말한, 사람이 가진 일곱 가지의 감정. 곧 희(喜)ㆍ노(怒)ㆍ애(哀)ㆍ구(懼)ㆍ애(愛)ㆍ오(惡)ㆍ욕(欲)을 말한다.
[주D-002]
가생(賈生) :
한(漢)의 신진 문학가. 이름은 의(誼)인데, 나이가 젊었으므로 가생으로 불리었다. 그는 이론이 날카로웠으므로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쫓겨났으나, 오히려 문제(文帝)에게 치안책(治安策)이라는 정견을 올려서, 시사(時事)의 통곡(痛哭)ㆍ유체(流涕)ㆍ장태식(長太息)할 만함을 진술하였다.
[주D-003]
선실(宣室) :
한의 미앙궁(未央宮) 전전(前殿)의 정실(正室). 문제가 이곳에서 가의에게 귀신(鬼神)에 대한 이론을 물었다.


나는, “저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오. 그가 처음 날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가. 그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에는 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기쁘지 않을 리 없지. 이러한 기쁨이 늙도록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리 없으며 의당 즐겁고 웃어야 할 정만 있어야 하련만, 도리어 분한(忿恨)이 가슴에 사무친 것같이 자주 울부짖기만 하니, 이는 곧 인생이란 신성(神聖)한 이나 어리석은 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한결같이 마침내는 죽어야만 하고 또 그 사이에는 모든 근심 걱정을 골고루 겪어야 하기에, 이 아기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저절로 울음보를 터뜨려서 스스로를 조상함인가.


그러나 갓난아기의 본정이란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거요. 무릇 그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나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을 펴고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할 것이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우리는 의당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저 비로봉(毗盧峯) 산마루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長淵 황해도의 고을) 바닷가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1천 2백 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곳이 아교풀[膠]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가는 비구름만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소.”

하였다.
한낮은 몹시 무더웠다. 말을 달려 고려총(高麗叢)ㆍ아미장(阿彌庄)을 지나서 길을 나누어 갔다. 나는 조 주부 달동과 변군ㆍ내원ㆍ정 진사와 하인 이학령(李鶴齡)과 더불어 구요양(舊遼陽)에 들어갔다. 구요양은 봉황성보다도 10배나 더 번화하고 호화스러웠다. 따로 요동기(遼東記)를 썼다.


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관제묘를 나와 5마장도 채 못 가서 하얀 빛깔의 탑(塔)이 보인다. 이 탑은 8각 13층에 높이는 70길[仞]이라 한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당(唐)의 울지경덕(蔚遲敬德)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러 왔을 때에 쌓은 것이다.”

한다. 혹은 이르기를,

“선인(仙人) 정령위(丁令威)가 학을 타고 요동으로 돌아와 본즉, 성곽과 인민이 이미 바뀌었으므로 슬피 울며 노래 부르니, 이것이 곧 그가 머물렀던 화표주(華表柱)다.”

한다.


[주C-001]요동백탑기(遼東白塔記) : 어떤 본에는 관제묘기(關帝廟記) 위에 있었으나, 그릇되었으므로 여기로 옮겼다.
[주D-001]
울지경덕(蔚遲敬德) :
당의 명장. 태종을 따라 여러 군데에 원정하였다.
[주D-002]
정령위(丁令威) :
한의 선인.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의하면, 그가 신선이 되어 천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하였다.
[주D-003]
화표주(華表柱) :
큰 길거리나 고을 앞과 같은 곳에 세우는 촛대.


그러나 이는 그릇된 말이다. 요양성 밖에 있으니 성에서 10리도 못 되는 곳이고, 또 그리 높고 크지도 않다. 그저 백탑이라 함은 우리나라 조례(皁隷)들이 아무렇게나 부르기 쉽게 지은 이름이다.
요동은 왼편에 창해(滄海)를 끼고 앞으로는 벌판이 열려서 아무런 거칠 것 없이 천 리가 아득하게 틔었는데, 이제 백탑이 그 벌판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탑 꼭대기에는 구리북 세 개가 놓였고, 층마다 처마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는데, 그 크기가 물들통만 하고, 바람이 일 때마다 풍경이 울어서 그 소리가 멀리 요동벌에 울린다.
탑 아래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만주 사람으로, 약을 사러 영고탑(寧古塔)에 가는 길이다. 땅에 글자를 써서 문답을 하는데, 한 사람이
고본(古本) 《상서(尙書)》가 있나를 묻고, 또 한 사람은,

“안부자(顏夫子 공자의 제자인 안회(顏回), 부자는 존칭)가 지은 책과 자하(子夏 공자 제자, 성명은 복상(卜商), 자하는 자)가 지은 악경(樂經)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이는 모두 내가 처음 듣는 것이므로 없다고만 답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아직 청년인데, 처음으로 이곳을 지나며 이 탑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길이 바빠서 그의 이름을 묻지는 못했으나 수재(秀才)인 듯싶다.


[주D-004]고본(古本)……묻고 :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고본 상서가 있었다 하므로, 그들이 물은 것이다.

[참고]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2]

“천이백리 요동벌 마주하니 한바탕 울고 싶어라”

http://www2.donga.com/docs/magazine/shin/2007/05/03/200705030500003/200705030500003_2.html







'한문학 > 연암 박지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외 춘추론 -홍대용  (0) 2008.09.08
열하일기에 대하여  (0) 2008.09.08
일야구도하기  (0) 2008.09.07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0) 2008.09.07
연암 박지원, 맏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  (0) 2008.09.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