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10화 - 은혜를 베풀어 화를 면하다 (尺布獲生)
시골에서 큰길가에 주점을 열어 놓고,
오가는 손님에게 술과 음식을 팔면서
밤이면 숙소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주인은
본래 도둑질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주점을 열어 놓고는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의 보따리가
크고 값진 물건이 든 것으로 보이면,
근처 산속에 거처하는 도적의 무리에게
살짝 연락하여 훔쳐가게 한 뒤,
나중에 그 값을 따져 분배하는 짓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져,
주인 아내 외에는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게다가 이 주인은 아내에게 일만 시키고
가정 생활에는 관심이 없어 돈도 주지 않으니,
아내는 어린 자식을 제대로 거두지 못해
가슴 아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손님이 많은 돈을 지닌 채
3,4바리의 베를 싣고
이 주점에 들어와 유숙하게 되었다.
이 손님이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마침 주점 안주인이 울고 있는
두어 살 된 아이를 안고 달래는데,
때는 엄동설한인데도 아이의 발이 맨발인 채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를 본 손님은 식사를 마친 뒤,
자신의 짐을 풀어
몇 자의 베를 내주면서 말했다.
"이 베로 아이의 버선을 기워 신기도록 하시오.
내 차마 그 아이의 맨발이 터져
피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없구려."
이에 안주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는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니 바깥주인이 슬그머니 집을 나갔다.
곧 오늘 들어온 손님이
짐도 많고 돈도 많아 보이자,
산속의 도적들에게 알리려 간 것이었다.
이 때 안주인이 살그머니 손님에게 와서 말했다.
"내 남편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근처 산속에 숨어 사는 도적 두목의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내 남편이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적과 내통하여 이러저러한 일을 일삼고 있으니,
오늘밤 손님께서는 반드시
짐을 빼앗기고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단단히 단속하여 대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손님은 크게 놀라면서
안주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떠나더라도 잡힐 것은 뻔한 일,
어찌하면 좋겠소?
무슨 방도가 없겠소이까?"
이에 안주인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혹시 손님 수중에
관아에서 도장을 찍어 준 문서 같은 것이 없으신지요?
그런 게 있다면 속일 수가 있습니다."
이 때 마침 길손은
이웃 고을에서 연락 문서에 도장을 찍어
다른 데로 전해 달라던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문서를 내보이자,
안주인은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이 문서 끝에 방금 전 일러 준 내 남편의 이름과
도적 두목의 이름을 적어 넣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막 일을 총괄하는 일꾼에게 보여 주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적힌 이름만 보고 수배문서인 줄 알아
그들에게 연락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오늘밤은 도적들
이 겁을 내고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손님은 그 종이에
두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은 뒤
주막을 총괄하는 일꾼을 불렀다.
그리고는 문서를 들어 두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며
자세히 보라고 하면서 물었다.
"이웃 고을에서
이 두 사람을 보게 되면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혹시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네가 알고 있느냐?"
그러자 일꾼은 모른다고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달려가 주인에게 알리니,
주인은 다시 도적 두목에게 전해 멀리 달아나서
이 날 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안주인 덕에
손님은 무사히 화를 면하고 목숨을 건졌다.
이 손님은 한때의 측은한 마음을 발휘하여,
몇 자의 베를 아끼지 아니하고 베풀었으니
화를 면한 것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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