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봄이 어이 까마득하리
http://kydong77.tistory.com/8661 참조
양주동, 增訂 古歌硏究,일조각,1968.3.15. 재판,pp.889-898.
(1965.3.15. 초판 발행)
목차를 참조하면
부록에
釋詞
評說
跋 3편이 실려 있다.
'跋'을 펼치면
<연구의 回憶>이란 제목이 나온다.
아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문의 일부다.
"간신히 일을 강행하여 드디어 千餘面의 큰 책을 完刊했음은 지금에 생각해도 다행한 일이다. 校了가 되자 나는 또 그「序」에 고심했다. 저간의 온갖 腐心과 胸中에 깊이 축적된 비분․感慨한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까? 때는 일제의 포학 最期라, 맘대로 쓸 자유는 애초에 없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을 苦吟한 끝에 겨우 一文을 草했다. 나로서는 실로 感懷깊은, 고심의「名文」이었다. 그 序끝에「庚辰小春」이란 年․月이 적혀 있다. 물론 그 완성된 때(1940년 12월)를 기념키 위함이나, 하필「庚辰」임은 그 당시 敵治연호를 굳이 피하려한 고심이요,「小春」은 음력「10월」의 뜻 외에 내딴에는 당시 이로써 우리 민족문화의「작은 봄」이 온 것, 곧 저 셸리의 시「西風賦」의 끝줄,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인들 어이 까마득하리?
의 뜻을 겸한 것이었다."
양 박사님은 <고가연구>의 강의를 이 책 발문에 나오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찬시 해설로 시작하셨는데 그 분을 만난 건 내 일생의 보람이었다.
첫째는 그의 천재성과의 만남이었고,
둘째는 고가연구에 나타난 방대한 자료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봄이 오면 바이런,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일)의 「西風賦」를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분 덕분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양 박사님 참고문헌으로 아래 책을 들었다.-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양주동, 박문서관, 1942)
- 『여요전주(麗謠箋注)』(양주동, 을유문화사, 1947)
- 『국학연구논고』(양주동, 을유문화사, 1962)
- 『증정고가연구(增訂古歌硏究)』(양주동, 일조각, 1965)
- 『국어연구의 발자취』 Ⅰ(김완진 外, 서울대학교출판부, 1985)
- 『양주동박사고희기념논문집』(무애선생고희기념논총간행회(无涯先生古稀紀念論叢刊行會)편, 탐구당, 1973)
[네이버 지식백과] 양주동 [梁柱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추가]
그 분의 박식과 명사들과의 폭넓은 교류에 대한 입담은 당시 동아방송 토크쑈에서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나의 지인들은 양박사님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었다.
양주동 박사의 <향가 연구의 回憶> 전문 읽기
http://blog.daum.net/newmountain/520
이 글에 대한 <우리회> 카톡 대화
[조병옥, 오후 5:43]
옛추억을 떠오르게하네.
[이명주, 오후6:24]
무애 선생님 참 오랜만에 뵙고 향가 연구에 얽힌 회고를 다시 접하니 감회가 참으로 깊네그려. 감히 근접하기 어려울 만큼 담대하고 무변하시던 그 열정과 천재적 풍모가 수십 년 전을 떠올리게 하네. 병옥이 결혼식 때 주례 끝나고 나서 예식장 계단 내려오실 때 부축해드렸던 기억 삼삼하네. 맥주광이셨는데...요 아래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돈암동 한옥 동네에 사셨고...
[오후 10:01]
결혼식 후 주례 답례로 맥주 박스 사들고 돈암동에 찾아 같던 철부지 시절이 떠오르네. 미당 선생님께 주례 부탁하러 갔다가 하필이면 내 결혼식 날이 미당 선생님의 시비가 고향에서 세워지는 행사가 있는 날인지라 미당 선생님께서 친히 무애 선생님에게 연락해 주셔서 허락받았던 제자 사랑의 두 큰 스승님들을 잊지 못하고 있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의 위상을 높여주신 무애 선생님이야말로 제자들에게 긍지를 심어주신 학계의 위인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문주반생기> 를 오랫만에 읽어 볼까 싶네.
[운영자12:03]
양박사님 사진 있으면 여기 좀 올려 주시게. 주례와 사진 찍잖아.
[운영자 12:31]
무애양주동저,<文酒半生記>-문학교단 사십년의 회억-,신태양사,1960년초판, 1962재판.
文酒半生記 302면. ‘문·학·교단 40년의 회고’의 부제가 있다. 1960년 신태양사(新太陽社)에서 발간하였다. 수록한 수필은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유년기’에 「문학소년 시절」·「소년숙장(熟長)」·「신문학에의 전신」·「금성(金星)시대」 등 18편, 제2부 ‘술’의 장에 「초음기(初飮記)」·「문(文)」·「주(酒)의 벗들」·「주연(酒緣)」·「학연(學緣)」·「종음기(縱飮記)」 등 19편, 제3부 ‘청춘백서’에 「나의 청춘」·「신혼기」·「정원초(情怨抄)성동의 아침」·「영동사(永導寺)의 좌담회」 등 19편, 제4부 ‘여정초’에 「여비도 없이」·「분실기」·「동해선에서」·「해어진 바지」 등 17편, 제5부 ‘학창기’에 「예과시대」·「대학시절」· 등 11편, 제6부 ‘교단 10년’에 「부임기」·「교단회고」·「연북록(硏北錄)」 등 10편, 모두 95편이 수록된 회고적 수필집이다.
『문주반생기』는 변영로의 『명정(酩酊) 40년』과 명정의 쌍벽을 이루고 있으나 「2. 술의 장」의 19편이 그 주가 되어 있다. ‘백주회(白酒會)·주우(酒友)·문우’ 등을 통해 특히 횡보(橫步: 염상섭)와의 주우를 재미있게 술회하고 있다.
“청자색 꽃병도 어느덧 깨어지고,『금성』도 폐간되고, 나는 그만 홀홀히 도동(渡東)하였다. 그 즈음 도향(稻香)나빈(羅彬: 나도향)과 사귀어 몇 번 몇 번 그와 조촐한 술자리를 같이 하였고, 횡보 염상섭(廉想涉)씨하고는 근 1년 동안 같은 방에 묵으면서 밤낮으로 술을 즐겼다. 뒤 이어 노산(鷺山)이은상(李殷相)과도 같은 방에서 몇 달을 곁들어 함께 지냈으나, 그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므로 다만 글의 벗이었을 뿐 술은 노상 상섭과 같이 하였다.”로 시작되는 ‘백주회’는 주류천하의 김삿갓의 멋을 지닌 문주의 여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주반생기 [文酒半生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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