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목) 여기 워디래유?

창덕궁 비원요. 후원으로 부르기도 하죠.

단풍이 아지매들인가, 아지매들이 단풍인가? 구분이 잘 안 되네요.

산스크리어로 '아지미'는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데,

단풍으로 요리하면 어떤 맛일까요?

물론 고궁의 정취까지 더해진, 국화 향기 그윽한 가을맛이겠지요?

 

고갯마루길에서 옥류천으로 내려가면,

옥류천 소요암에는 인조가 쓴 '玉流川' (옥류천)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이 쓴 오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

 

옥류천 폭포 삼백척

저 멀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네

돌아보니 흰 무지개 일고

골짜기마다 천둥소리 가득차네

실제 폭포 높이는 일 미터 정도이고  물줄기는 어린애 오줌줄기 정도지만.

[출처] 창덕궁 둘러 보기-1 (숙종이 쓴 옥류천 시)|작성자 심목

 

 

왕이야 뻥튀기해도 누가 시비를 걸 수 있나요. 뒤지고 싶어 환장했다면 모를까?물론 이백의 칠언절구〈망여산폭포()〉의 ", "을 흉내냈지만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나마 '河'를 빼느라고 오언시로 쓴 것이 천만다행.

그곳에는 왕이 농사짓는 것을 재현한 너댓걸음이면 끝나는 논빼미도 마련했습니다.

농사 시범 보이다가 왕이 과로하면 불충의 죄를 물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참고]

이백 -〈망여산폭포()〉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주빛 안개가 피어나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긴 강이 걸려 있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
하늘 높이 솟구쳤다 직하강하는 폭포 높이 삼천 척이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
 

이 시구는 이백의 또 다른 시 〈추포가(秋浦歌)〉의 한 구절인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과
더불어 중국 시인들이 흔히 사용한 과장법의 전형적인 예로 꼽힌다.

[출처]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작성자 한심이

* 여산(廬山) 삼첩천(三疊泉)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총길이가 155m라네요.

 

*추포가(秋浦歌) - 이백(李白)- 추포에서 *추포는 안휘성 남부, 양쯔 강(扬子江)의 남쪽에 있는 도시.



白髮三千丈 

(백발삼천장)  백발이 삼천 길이니

緣愁似箇長

(연수사개장) 시름 때문에 이처럼 자랐도다.

不知明鏡裏)

(부지명경리)   알 수 없구나. 밝은 거울 속의 저 몰골은

何處得秋霜

(하처득추상) 어디서 가을 서리를 저다지도 맞았는고?

http://blog.daum.net/wondong7125/2642

 

낙선재는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김기동 선생님의 고소설 과제로, 한지에 쓴 붓글씨 원본 국문소설도 읽었던 곳이었지요. 한문표기가 지식인 선비들을 위한 것이라면 언문본 소설은 궁녀들의 심심풀이 땅콩이었지요. 궁녀 출신의 할머니께서 자모가 불분명하게 흘려쓴 글씨를 해독해 주셔서 문맥을 잡을 수 있었지요, 나이든 편입생 여학생들은 고소설 과제는 뒷전이고, 창경원의 원숭이 똥구녕 구경하러 가기에 바빴지요.

건데, 남의 나라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지네 국화인 벚꽃으로 뒤덮어 버린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갈리는 일이지요. 게다가 우리나라 통치자들도 밤벚꽃놀이까지 벌였으니 개판인 세상이었습니다. 꽃이야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언제나 세상물정 모르고 소명감도 역사의식도 없는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통치자들 때문이지요. 실상 그 책임의 절반 이상은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지네들이 뽑아 놓고 지도자들만 바가지로 욕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잖아요.

1983년 창경궁복원계획에 따라 동물원은 과천으로 이사가고, 벚꽃나무들은 여의도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에 이식했어요. 여의도와 대공원의 고목이 된 벚꽃나무는 창경궁에서 옮겨심은 것들이랍니다.

아래에 소개한 묘족은 한국인과 뿌리가 같은 동이족입니다. 목조가옥만 다를 뿐 농촌 풍경도 한국과 흡사하네요. 처마 끝에는 옥수수도 매달고, 베도 짜네요. 서역에서 신라에 베를 사러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오던 실크로드 시절이 그립습니다. 자동차 등 기존의 수출 상품들이 적자를 낸다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단풍구경 흥취를 위해 <경복궁타령>부터 듣지요.

 

조수미 - 민요 "경복궁타령, 울산아가씨" 조수미 - 민요 "경복궁타령, 울산아가씨"

https://www.youtube.com/watch?v=9x7KMo3jLF0

 

동이족인 묘족의 들노래[農歌]

https://www.youtube.com/watch?v=MwZ4RZG7kg4

 

- 천하 제일의 묘족

https://www.youtube.com/watch?v=MfFDy128rEA

*은관 장식 세공 직업까지 있으니 중국 56개 소수민족중 하나인 묘족은 동이족이 확실합나디. 상투 위 갓쓰고, 머리 땋아 비녀 꽂고. 한국인들도 머리 장식에 온갖 공력을 들였었지요. 농촌 풍경, 소싸움은 물론 베틀에서 베짜기도 한국 그대로네요.

내가 코찔찔이 시절, 우리집에서도 저런 베짜기를 했걸랑요. 발로 날줄을 교차시켜가면서 북 속에 감긴 씨실을 손으로 날실 사이를 좌우로 이동해가면서 짜나가는 베짜는 작업이었으니 얼마나 속터지는 지루한 일이었겠어요? 그러나 어머님과 누님들께서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베짜기에 공력을 다했지요. 상주의 누에고치는 알아 주잖아요. 그러니까 히말라야산맥, 천산산맥을 넘어 신라에 윤기나는 명주를 사러왔던 거지요. 인도에서 오는 해상 수로도 있었지만. 김수로왕의 부인 아유타국의 허황후 집안도 권력투쟁에 밀려 중국 사천성 안악으로 피신했다가 실크로드 뱃길로 가야국에 와서는 아들 둘은 자기 성씨를 사용하게 하고 쌍어문 석탑이 있는 곳에, 수로왕릉과는 별도의 봉분도 만들었했잖아요.

 

[아래 글 참조]

바다에서 허황후 오시다/ 가락국기  (0) 2008.08.28

 

허황옥의 가계가 출발한 곳은 인도 아유타국이었으나 그들 집단은 중국 四川省 安岳의 옛 지명인 普州로 망명 이주하였다.蜀地인 사천성에서도 雙魚를 모시는 신앙집단이 살았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브라만(司祭) 출신 여인인 허황옥은 이 곳에서 출생하여 성장하던 중 A.D.47년에 일어난 반란을 계기로 그 곳을 떠나 이듬해 가락국에 도착하였다.
 대부분의 許巫師는 武昌지방에 새로 신전을 짓고 살았다. 후한 때 촉지방에서 일어난 두 번째 반란은 101년에 있었는데 이 때의 주동자는 許聖이었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7999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첨언하면, 뽕나무를 먹여 기른 누에의 집인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는 날이면 아이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번데기 얻어 먹는 재미로 신나했습니다. 오늘날의 자동명주베틀이 나온건 1960년대 이후였습니다. 현재, 고향 마을인 상주 함창 교촌에서는 향교로 가는 도로 오른편에 특산품인 명주 짜는 기계를 여러 대 들여놓고 명주 짜는 시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관광객들이 한산한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기사 어딜 가나 시골에는 어른들만 사실 뿐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일하러 갔잖아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춤과 노래와 전래의 농사일로 인생을 즐기는 묘족들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아래는 목화면으로 짜는 무명 베짜기지만 재래식 베틀과 날실의 북실 놀림은 동일합니다.

세상에나! 날실 한 올 엮느라 저러고 있으니 옷감의 소중함을 알겠지요. 그러니 구멍난 옷을 기워입을 수밖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sIsqd8fOoAo

목화의 베짜기(길쌈공정)

목화를 따서 잘 말린 다음 먼저 씨아에 넣어 돌리면서 씨를 빼낸다. 씨를 뺀 목화는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수수깡 등을 말대로 삼아 손으로 밀어 20∼30cm 길이의 고치를 말아 다발로 묶고, 고치솜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뽑은 실은 베틀에 올려 베를 짜기 전에 엉키지 않도록 된 풀을 벳날에다 먹이는 베매기를 한다.
이 날[縱絲]을 베 한 폭에 들어가는 올의 수대로 도투마리(날을 감아 베틀 앞다리 너머의 채머리 위에 얹는 틀)에 감아 베틀에 걸어놓고, 한 손으로는 바디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북을 들어 발을 당겼다 폈다 하면서 베를 짠다. 여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바디와 북으로, 바디는 살의 틈마다 날을 꿰어서 베의 날을 고르며 북의 통로를 만들어주고, 씨[橫絲]를 쳐서 짜게 한다. 북은 씨실의 꾸리를 넣고 북바늘로 고정시켜 날의 틈으로 왔다갔다 하게 하여 씨를 풀어 베를 짜게 한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4&docId=36421543&qb=7JSoIOuCoCDrsqDsp5zquL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

 

창덕궁 비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MIRYQiaZfg

 

 

 

 

 

 

 

위의 향나무는 수령 750년으로 추정된다고 해설문에 적혔다.

우리도 750살이 되면 저 꼬라지 된다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농담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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