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20- 겁탈하려다 봉변을 당하다 (毆打家長)

어느 마을에 한 선비가 제법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 선비 집 이웃에는 포수가 살고 있었는데,

포수 아내가 매우 참하고 고운지라

선비가 늘 마음에 두고 한번 접근하여

정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선비가 포수 아내를 대할 때마다 항상 눈길을 주곤 하니,

포수 아내도 눈치를 채고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다.

이에 포수 역시 선비의 행동을 살펴보아,

그 음흉한 마음을 알고는 좀처럼 집을 비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는 포수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근래 사냥갈 생각을 않는고?"

"아, 선비어른! 사냥을 가려면 여비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을 마련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못 간답니다."

포수는 선비가 자신을 사냥하러 보내 놓고 자기 아내에게 접근하려는 그 음흉한 심보를 알고 있어,

슬쩍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여비가 없어 못 간다는 말에 선비는 다시 물었다.

"이 사람아! 한번 사냥에 경비는 얼마나 드는고?"

"예, 선비어른. 경비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하지만 아무리 적게 든다고 해도 10냥은 있어야 한답니다."

"10냥이나 든다고?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든단 말이지?"

"예, 사냥을 가게 되면 여러 날 먹고 지내야 하는 경비도 물론 많이 들지만,

산신제(山神祭)도 정성껏 지내야 하거든요."

"그러면 말일세. 내 그 돈 10냥을 줄 테니,

사냥을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짐승을 잡아 오게나.

그래서 그 짐승들을 나하고 반반씩 나누도록 하세. 그러면 되겠지."

선비는 이와 같이 말하면서 돈 10냥을 포수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이에 포수는 선비의 마음을 알기에, 그 돈 10냥을 받아가지고

아내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선비가 당신에게 마음이 있어, 날더러 사냥을 가라고 돈 10냥을 주었소.

내 짐짓 사냥하러 가는 것처럼 떠날 테니, 당신은 여차여차하면서 유혹하기 바라오."

이렇게 아내와 약속한 포수는 사냥 도구를 갖추고

선비에게 가서 떠난다는 작별 인사를 했다.

"선비어른! 소인이 오늘 사냥 길에 오릅니다.

소인이 떠나고 나면 아내 혼자 집에 있으니 수시로 돌봐 주소서."

"이 사람,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고 잘 다녀오게나."

이렇게 포수가 인사를 하고 떠나니,

 

그 날 저녁 선비는 긴 담뱃대를 물고 어슬렁어슬렁 포수 집에 나타났다.

"오늘 남편도 사냥하러 떠났으니, 독수공방에 적적할 것 같아 내 이렇게 찾아왔다네.

혼자 외롭지 아니한가?"

"예, 선비어른! 선비어른 같은 분이 옆에 있어 주신다면 적적하지 않고

너무나 좋을 것 같습니다. 어서 방으로 올라오십시오."

포수 아내는 선비에게 아양을 떠는 척하며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부드러운 말로 잘 응대해 주니,

선비는 슬그머니 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이에 포수 아내도 적당히 응해 주자,

선비는 이 여인이 정말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곧 선비가 끌어안고 옷을 벗기려 하자,

포수 아내는 좋아하는 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비어른, 저기 있는 탈을 얼굴에 쓰지 않으시면

소인은 옷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저 탈을 얼굴에 써보시겠습니까?"

"탈이라니? 그 탈이 어떤 것인데, 왜 쓰라고 하는고?"

곧 포수 아내는 일어나서 시렁 위에 얹혀 있는 탈을 내려 선비에게 보여 주었다.

탈을 살펴본 선비가 이것을 쓰면 무엇이 좋으냐고 묻자, 포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비어른, 소인의 남편이 소인과 잠자리를 할 때면 늘 이 탈을 쓴답니다.

그리되면 정감이 두 배로 높아지고 너무나 좋거든요. 그래서 쓰시라는 겁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내 안 쓸 수가 없구먼.

어떻게 쓰는 것인지 자네가 한번 내 얼굴에 씌워 봐주게."

선비는 이와 같이 말하면서 얼굴을 내밀었다.

곧 포수 아내는 선비의 얼굴에 탈을 대고, 거기 달린 끈으로

풀어지지 않게 머리 뒤쪽에서 단단히 동여맸다.

그런 다음 포수 아내는 선비의 옷을 벗기는 척하고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뒤 뜰에서 마치 우뢰가 치듯 큰 고함 소리가 들리는데,

"어떤 놈이 남의 집에 침입하여 내 아내를 겁탈하려 하느냐?

이런 놈은 당장 잡아 죽여야 한다. 어디 보자!

어떤 놈이냐?" 하면서 막대기로 벽과 창틀을 두드리며

앞으로 돌아와, 방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이 때 선비는 얼굴의 탈을 벗으려 했지만, 워낙 단단히 묶여 있어 벗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탈을 쓴 채 피해 달아나 얼른 자기 집으로 들어가니,

포수는 따라오면서 일부러 큰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도적놈이 선비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동네 사람들!

도적놈이 선비 집으로 들어갔으니 속히 나와 잡으시오!" 하면서

선비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르르 달려왔다.

선비 집 식구들도 도적이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와서는,

몽둥이를 들고 사방을 찾아 헤맸다.

이 때 선비는 뜰 옆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마침내 사람들이 발견하고는 덤벼들어 마구 때렸다.

 

선비는 몽둥이로 얻어맞고 발로 채이면서,

"나요, 나. 나란 말이요! 때리지 마시오. 나요, 나라고!"

하며 소리쳤지만, 그 소리만으로는 분간하지 못하고

식구들까지 합세하여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그 사이 탈을 묶은 끈이 떨어져 벗겨지면서 선비의 얼굴이 드러나자,

집안사람들이 놀라 부축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동네사람들도 선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쑥덕거리면서 모두 물러갔다.

이후로 선비는 부끄러워 문밖출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포수에게 준 돈도 감히 돌려 달라고 하지 못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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