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22- 백문선의 뒷 일 보기 (文先放糞)

 

백문선이 하루는 종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가 마려웠다.

그래서 어디 뒷일 볼 만한 데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니,

마침 거리 모퉁이에서 왕골자리를 팔고 있는 상인이 눈에 띄었다.

'옳거니, 저 자리 장수를 이용하면 일을 볼 수 있겠구먼.'

이렇게 생각한 백문선은 그 상인 앞으로 나아갔다.

"이보시오, 자리 폭이 좀 넓은 것도 있습니까?"

"아, 있지요. 여기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넓은 것을 고를 수 있답니다.

어디 하나 골라 보시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 자리를 둥글게 말아 세워서 그 안에 들어앉았을 때,

내 갓이 밖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라야 합니다.

그런 것이 있을까요?"

"물론 있지요. 내가 한번 둥글게 말아 세워볼 테니,

안에 들어가 앉아 보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들어갈 수 있지요?"

상인은 자리 하나를 둥글게 말아 세우면서,

그 안에 들어가 앉아 보라고 했다.

곧 백문선은 그 자리 안에 들어가 앉아 일을 보면서 상인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이 자리의 치수를 재서 방에 맞춰 봐야겠으니,

막대기 하나만 찾아다 주시오."

상인이 근처에 있는 나무 막대기 한 토막을 주워서 넣어 주자,

백문선은 얼른 일을 보고 그 막대기를 욕목(浴木)1)으로 삼아

밑을 닦은 뒤 일어서서 나왔다.

1)욕목(浴木) : 밑씻개.

옛날에는 뒤를 보고 난 후 밑을 닦을 종이가 없었으므로, 나무 막대기를 대고 돌리면서 닦았음.

이 막대기를 측목(厠木) 또는 욕목이라 하였음.

 

그리고는 조금 멀리 걸어 나와 상인에게 물었다.

"이봐요, 자리 주인! 이 지역은 중부자내(中部字內)입니까?

서부자내(西部字內)입니까?"2)

2)서울을 몇 개 지역으로 나누어 병영에서 경비를 맡았었는데, 그렇게 구분한 경비 구역을 '자내'라고 했음.

 

"이보시오, 손님! 자리를 사는데 '자내'는 왜 묻는 게요?'

상인은 엉뚱한 질문에 짜증스러워하면서 되묻는 것이었다.

이에 백문선은 의젓하게 말했다.

"아, 다름이 아니고 이렇게 불결해서야

어찌 왕골자리 장사를 하겠소?

속히 관할 병영의 관원을 불러다가, 

저 안에 있는 불결한 것을 치우도록 하시오.

나는 갑니다."

그리하여 둥글게 세워진 자리 안을 들여다보자

대변이 있기에 화를 내고 돌아보니,

백문선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상인은 속은 것이 분해 화를 참지 못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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