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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唐代) 애정 傳奇 소설 <이와전(李娃傳)> 원본-번역본

◈ 당대(唐代) 애정 傳奇 소설 <이와전(李娃傳)> 원본-번역본 줄거리 - 형양공(滎陽公)은 나이 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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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 백행간

이효식, 이와전과 곽소옥전 비교연구

 

재자가인(才子佳人) 유형 전기소설의 연애 분류표

전기 작품 남주인공의 신분 여주인공의 신분 첫 만남에서의 감정 교류 연애의 결과
곽소옥전 진사 기녀 perfect 죽음(새드엔딩)
이와전 수재(秀才)시험 응시자 기녀 perfect 결합(해피엔딩)
앵앵전 급제 못한 사인(士人) 규수 so so 이별(새드엔딩)
장한가전 황제 후비 perfect 죽음, 내세를 기약함
유씨전 벼슬 없는 시인 perfect 결합(해피엔딩)

 

<참고문헌>

* 전인초 <당대소설연구>

* 오태석 <북송문화의 혼종성과 이학문예심미> (<중국어문학지>34집, 2010.12.p59-102)

* 김학주 <중국문학사>

* 정범진 <당대소설연구>

* 최진아 <환상, 욕망, 이데올로기 - 당대 애정류 전기 연구>

* 김현룡, 김종군 <한국문학과 관련 있는 중국 전기 소설선>

* 중국문학닷컴(www.wenxue.co.kr)

 

2. 이와전(李娃傳) - 백행간(白行簡)

2-1. 이와전(李娃傳)의 전체적 내용

주인공이 과거시험을 치르러 가는 도중, 기생 이왜에게 빠져 가진 돈을 몽땅 털리고 사경에 이르지만 그녀를 끝까지 쫓아다닌 끝에 인연을 맺고 그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과거에도 합격, 출세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2-2. <李娃傳>의 원문과 해석

 

<李娃傳>

汧国夫人李娃,长安之倡女也。节行瑰奇,有足称者。

견국부인 이와는 ﹐원래 장안의 창기였다。그러나 그녀의 절행이 남달리 기특하였기에﹐족히 칭찬할 만하였다。

 

故监察御史白行简为传述。天宝中,有常州刺史荥阳公者,略其名氏,不书,时望甚崇,家徒甚殷。

감찰어사를 지낸 적이 있는 작가 백행간이 이렇게 그녀를 찬미하여 기술하였다。

당 현종 천보년간(唐 玄宗 天寶中)﹐형주자사에 형양공(常州刺史滎陽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이 책에서는 명예를 위하여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벼슬아치로﹐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知命之年,有一子,始弱冠矣,隽朗有词藻,迥然不群,深为时辈推伏。其父爱而器之,曰:"此吾家千里驹也。

형양공이 지명(知命) 즉 나이 오십이 되던 해﹐아들이 하나 있었는데﹐이제 약관(弱冠, 20세)을 막 넘었다﹐

낭랑한 목소리로 사(詞藻)를 읊으면﹐ 동년배들 중에 당연 발군이었다﹐ 가히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친 형양공은 늘상 자랑삼아 말하였다. “이 아이야말로 가문을 빛낼 천리마이다。”

 

"应乡赋秀才举,将行,乃盛其服玩车马之饰,计其京师薪储之费。

谓之曰:"吾观尔之才,当一战而霸。今备二载之用,且丰尔之给,将为其志也

향시에서 으뜸으로 뽑힌 공자는﹐길을 나섰다﹐복식과 일용의 기물들로 장식한 마차를 화려하게 꾸몄다﹐곁에서 시종과 많은 여비를 주었다。

출발에 앞서 아들에게 타이르길, “내가 보건데 너의 재능이면 초장에 급제할 것이다。허나 넉넉하니 2년간의 비용을 마련해 줄 것이니﹐여유를 가지고 마냥 뜻을 펴고, 장원 급제를 기해라。”

 

生亦自负视上第如指掌。自毗陵发,月余抵长安,居于布政里。

尝游东市还,自平康东门入,将访友于西南。至鸣珂曲,见一宅,门庭不甚广,而室宇严邃,阖一扉。

공자역시 장원급제를 당연시하여 여반장인양 생각하였다. 비릉(毗陵)을 출발한지, 한 달이 지나서 장안에 도착하였다﹐ 거처를 포정리(布政裡)에 정하였다。

어느날 유람을 나섰다가 장안성의 동쪽으로 돌아나가다가﹐서남에 사는 친구를 방문하고 평강리의 동문을 들어서서는 명가곡(鳴珂曲)으로 길을 지날 때였다。

골목길을 지나 집이 한채 보이는데﹐무심코 문틈으로 살피자니 그리 크지는 않지만﹐정갈하고 아담한 집이었다。

 

有娃方凭一双鬟青衣立,妖姿要妙,绝代未有。生忽见之,不觉停骖久之,徘徊不能去。乃诈坠鞭于地,候其従者,敕取之,累眄于娃,娃回眸凝睇,情甚相慕,竟不敢措辞而去。生自尔意若有失,乃密徵其友游长安之熟者以讯之。

공자가 우연히 문이 열린 틈으로 보니 기생 이와가 머리카락을 두갈레로 땋아 올린 채 청의를 입고 서있었다。

더욱 자세히 보기위해﹐타고 있던 말을 뒷걸음질 시켰지만﹐서성 거리기만 할 뿐 갈 생각을 않고 배회하였다。

그러다가 고의로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리고는﹐말잡이 종자로 하여금 ﹐채찍을 집어 올리게 하였다﹐ 피도 안 가리는 듯이 노골적으로 낭자의 모색을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여자의 모습을 살피니, 그 맑고 초롱초롱한 눈초리에 얼을 빼앗기고﹐그자리에서 정을 깊어지고 사뭇 사모하게되었다﹐이제는 더 이상 갈뜻이 없게 되었다。

친구집에 당도한 공자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물었다﹐장안의 태생으로 풍류를 즐기는 친구는 선뜻 대구를 하였다。

 

友曰:"此狭邪女李氏宅也。

"曰:"娃可求乎?"

对曰:"李氏颇赡,前与通之者,多贵戚豪族,所得甚广,非累百万,不能动其志也。"

친구왈 ﹕“장안에서도 유명한 상화방 기생 이씨댁이라네。”

공자 왈 ﹕“그 집에 절색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상대하여 말하길 ﹕“이씨는 자못 넉넉하기에﹐ 장안에서도 최고의 권문세도가나﹐돈 많은 호족 거상들만﹐ 드나들 수 있다네﹐만량 안쪽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일세。”

 

生曰:"苟患其不谐,虽百万,何惜!"

他日,乃洁其衣服,盛宾従而往。扣其门,俄有侍儿启扃。

生曰:"此谁之第耶?"

侍儿不答,驰走大呼曰:"前时遗策郎也。"

공자 왈 ﹕“돈 걱정일랑 말게﹐ 비록 백만뿐임에﹐ 애석하다네﹗”

다음날﹐ 공자는 깨끗한 의복으로 성장하고는﹐ 이씨네 집으로 갔다。 대문을 두드리니﹐ 빗장문이 열리면서 가랑머리 몸종이 나왔다。

공자 왈 ﹕“동생은 누구지﹖” 몸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후다닥 뜨락으로 뛰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

“일전에 일부러 말채찍을 떨어뜨렸던 공자님이 오셨어요。”

 

娃大悦曰:"尔姑止之,吾当整妆易服而出。"

生闻之,私喜。乃引至萧墙间,见一姥垂白上偻,即娃母也。生跪拜前致词曰:"闻兹地有隙院,愿税以居,信乎?"

그러자 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다 떨지 말고﹐곧 성장을 갖추고 나갈것이다。”

공자 듣고나서﹐기뻐하였다。얼마 안 되어 담장 사이로﹐머리가 희고 허리가 휜 노파가 보였다﹐바로 이와의 기생어멈이었다。

좌정한 공자는 의젓한 자세로 치사(致詞)하며 말하길 ﹕“실은 댁의 사랑채가 비었다기에 당분간 빌려 썼으면 하고 여쭈어 보고자 찾아왔소이다﹐괜찮겠소﹖”

 

姥曰:"惧其浅陋湫隘,不足以辱长者所处,安敢言直耶?"

延生于迟宾之馆,馆宇甚丽。

与生偶坐,因曰:"某有女娇小,技艺薄劣,欣见宾客,愿将见之。"

어멈 왈 ﹕“협소하고 누추하여﹐공자께서 머물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어멈은 공자를 빈관에 인도하였다﹐빈관은 심히 수려하였다。

공자 좌정하니﹐어멈은 다시 말하길 ﹕“이와는 그다지 이쁘지도 않고﹐기예(技藝) 또한 천박하지만﹐손님께서 부디 기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乃命娃出,明眸皓腕,举步艳冶。生遂惊起,莫敢仰视。与之拜毕,

叙寒燠,触类妍媚,目所未睹。复坐,烹茶斟酒,器用甚洁。

久之日暮,鼓声四动。姥访其居远近。

이와를 부르니 이와가 나타났다﹐맑은 눈동자와 흰팔뚝에﹐사뿐사뿐 걷는 모습에서 염기가 넘쳤다。공자는 이 모습에 취하여 넋을 잃어 버리고는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그와 함께 이와는 업드려 수인사를 하였다﹐

차례로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지는 등﹐아름다운 눈섶을 더듬고﹐눈으로 아직 볼뿐이었다。 다시 앉아서﹐차를 끓이고 술을 따르는데 그릇이 심히 깨끗하였다。

어느덧 해는 지고﹐사방에서는 북소리가 들렸다。어멈은 짐짓 집이 먼 곳에 있음을 걱정하는 시늉을 하였다。

 

生绐之曰:"在延平门外数里。冀其远而见留也。"

姥曰:"鼓已发矣,当速归,无犯禁。"

生曰:"幸接欢笑,不知日之云夕。道里辽阔,城内又无亲戚,将若之何?"

공자는 능청스레 ﹕“연평문(延平門) 밖 수리쯤에 있지요。” 원컨데 너무 멀기에 이곳에서 유하여야 겠소."

어멈 왈 ﹕“고(鼓)는 이미 울렸지요﹐속히 돌아가야﹐죄를 짓지 않지요。”

공자 왈 ﹕“흥겹게 노느라 저무는 줄 몰랐소。늦게 돌아가 봐야﹐반겨줄 사람도 없는﹐나그네 신세이니﹐허락해 주실는지요﹖”

 

娃曰:"不见责僻陋,方将居之,宿何害焉。"

生数目姥,姥曰:"唯唯。"

生乃召其家僮,持双缣,请以备一宵之馔。

이와 말하길 ﹕“여부가 있겠습니까﹐하도 지체가 높으신 분이시라﹐감히 권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공자는 수차례 어멈을 바라다 보았다﹐

어멈이 말하길 ﹕“물론이지요。”

시동에 일러﹐두 겹의 합사비단을 지닌﹐조촐한 주안상을 청하였다。

 

娃笑而止之曰:"宾主之仪,且不然也。今夕之费,愿以贫窭之家,随其粗粝以进之。其余以俟他辰。"

固辞,终不许。

俄徙坐西堂,帷幙帘榻,焕然夺目;妆奁衾枕。亦皆侈丽。乃张烛进馔,品味甚盛。

이와는 웃으면 말하였다 ﹕

“손님의 예로써﹐따르리니。오늘의 비용은﹐원컨데 본의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약소하나 오늘의 숙식비로 거두어주십시요。후일에 다시 사례를 하겠소。”

그러자 이와는 고사하며﹐끝내 불허하였다。

갑자기 서당(西堂)으로 자리를 옮겨앉으니﹐휘장이 방안의 가구나 기물에 둘러쌓인 것이﹐눈부시도록 화려하였다 ﹔윗목에는 금수비단 금침이 포근하게 깔렸고 촛대아래 차려진 주안상은 풍성하였다。

 

彻馔,姥起。生娃谈话方切,诙谐调笑,无所不至。

生曰:"前偶过卿门,遇卿适在屏间。厥后心常勤念,虽寝与食,未尝或舍。"

娃答曰:"我心亦如之。"

찬을 차리고 어멈을 일어섰다。

공자와 이와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방긋웃는 미소,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공자 왈 ﹕“지난번 대문 앞에서 힐끔 본 연후에 나는 오매불망 낭자를 그리워하여﹐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였다오。”

이와 답하여 말하길 ﹕“나의 마음도 오직 공자님 생각과 같았습니다。”

 

生曰:"今之来,非直求居而已,愿偿平生之志。但未知命也若何。"

言未终,姥至,询其故,具以告。姥笑曰:

공자 왈 ﹕“오늘이 왔으니﹐직접 거처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평생의 뜻을 이루게 되었다오。단지 명을 알지 못하고 어찌하랴。

 말을 마치기도 전에﹐어멈이 과일을 가지고 이르더니﹐수다를 떨었다 ﹕

 

"男女之际,大欲存焉。情苟相得,虽父母之命,不能制也。女子固陋,曷足以荐君子之枕席!

"生遂下阶,拜而谢之曰:"愿以己为厮养。"

姥遂目之为郎,饮酣而散。

“남녀의 인연이 맺어짐은﹐모두가 하늘의 뜻이지요。정분이 서로 이어지면﹐부모도 말리지 못하는 법이지요。미욱한 딸년이나마 내치지 않으시고﹐침석 수발 들 게 해 주시니 송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공자는 계단아래까지 따라가﹐절을 하며 사례하며 말한다 ﹕

“변변치 못한 사위놈이 장모에게 술 한잔 올릴테니 받으시오。”

기생어멈은 공자를 보면서﹐술을 들이키고는 사라져갔다。

 

及旦,尽徙其囊橐,

因家于李之第。自是生屏迹戢身,不复与亲知相闻,日会倡优侪类,狎戏游宴。囊中尽空,乃鬻骏乘及其家童。

岁余,资财仆马荡然。迩来姥意渐怠,娃情弥笃。

그렇게 새해가 지나자﹐어느덧 공자의 염낭이 바닥이 났다。

이와의 집으로 짐을 옮기게하고 공자는 붙박이로 이와의 치마 폭에 묻혀 지냈다﹐스스로 친지에 대한 소식도 막은 셈이었다﹐나날이 사랑채에 술친구들을 불러 기생들과 짝을 맞추어 주연을 베풀고 질탕하게 마시고 놀았다。그렇게 지나니 염낭이 바닥이 날수밖에 없었다﹐공자는 말과 마차를 처분하고 마침내는 노복들마저 팔아 썼다。

일년이 지나서는 팔 것조차 없어져﹐그만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날이 갈수록 기생어멈의 눈초리는 차가워지고 말씨는 거칠어졌다﹐이와의 정만이 오래도록 도타왔다。

 

他日,娃谓生曰:"与郎相知一年,尚无孕嗣。常闻竹林神者,报应如响,将致荐酹求之,可乎?"

生不知其计,大喜。

어느날﹐이와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

“공자님과 함께 지낸지 벌써 한 해가 넘었거늘 아직도 회태할 기미가 없으니 신령님께 빌어요。죽림신(竹林神)이 영험하다니﹐함께 치성함이 어떠할까요﹖”

 

공자는 그말을 듣고 까닭을 알지도 못하면서﹐크게 기뻐할 뿐이었다。

乃质衣于肆,以备牢醴,与娃同谒祠宇而祷祝焉,信宿而返。

策驴而后,至里北门,娃谓生曰:

"此东转小曲中,某之姨宅也,将憩而觐之,可乎?"

生如其言,前行不逾百步,果见一车门。窥其际,甚弘敞。其青衣自车后止之曰

즉시 옷가지를 저당잡히고는﹐절에 바칠 공물을 마련하여﹐이와와 함께 사당으로 홀가분하게 나섰다﹐치성을 밤새올리고는 돌아왔다。

치성을 드리고 내려오는 길에﹐북문에 이르렀을 때에﹐이와가 공자에게 말하길 ﹕

“동쪽으로 한 마장 못미쳐 이모가 살고 있어요﹐오래 뵈옵지 못하였으니 잠깐 인사라도 들리고 올게요﹐괜찮겠지요﹖” 공자가 승낙하자﹐수백보 가지 않아 수레에 달린 문으로 보니 제법 번 듯한 별장채의 개와집이 나타났다。

 

:"至矣。" 生下,

이와가 말하길 ﹕“다왔어요。” ﹐공자는 수레에서 내렸다.

适有一人出访曰:"谁?"

曰:"李娃也。"乃入告。

俄有一妪至,年可四十余,与生相迎曰

:"吾甥来否?"娃下车,

한 사람이 나와서 어찌 왔느냐고 묻는다 ﹕“누구신지﹖” ﹕

“이와입니다。” 그러자 안으로 고하였다。

그러자 40세쯤되는 곱상하게 생긴 부인이 갈지자 걸음으로 걸어 나오며 활짝 웃는 낯으로 맞이했다 ﹕

“사위는 오지 않고﹖” 이와는 수레에서 내렸다.

 

妪逆访之曰:"何久踈绝?" 相视而笑。

娃引生拜之,既见,遂偕入西戟门偏院。

부인은 다시 말하길 ﹕“아직도 머리카락을 자르니﹖” 그러며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이와는 공자를 이끌어 절하게 한 후﹐존귀한 문을 지나 정자로 손님을 모셨다。

 

中有山亭,竹树葱蒨,池榭幽绝。

生谓娃曰:"此姨之私第耶?"笑而不答,以他语对。

俄献茶果,甚珍奇。

食顷,有一人控大宛,汗流驰至曰:

"姥遇暴疾颇甚,殆不识人,宜速归。

"娃谓姨曰:"方寸乱矣,某骑而前去,当令返乘,便与郎偕来。"

정자에 이르니﹐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나 우거졌다。

공자가 이와에게 물었다 ﹕“몇째 이모님이지﹖” 이와는 웃기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곧 진귀한 다과가 올랐다。

한식경쯤 지났을까﹐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장한이 뛰어들어 오면서 말하였다 ﹕

“이와 아씨﹐큰 변이 났습니다﹐어머님이 졸중풍으로 쓰러져 위독하십니다﹐속히 귀하하시랍니다。”

이와가 말하길 ﹕“한시가 급하니﹐제가 먼저 큰 말을 타고 돌아가 어머님의 용태를 살피고 곧 기별을 올릴 테니 뒤처져 행리 챙겨 돌아오세요。”

 

生拟随之,其姨与侍儿偶语,以手挥之,令生止于户外,

曰:"姥且殁矣,当与某议丧事,以济其急,奈何遽相随而去?"

乃止,共计其凶仪斋祭之用。

공자는 황급히 뒤를 따르려하자﹐이모와 시녀가 점잖하게 만류하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

“급할 때일수록 침착하게 거동하셔야지요﹐아마 언니는 가망이 없을 겁니다﹐그러니 저하고 장사 절차를 대강대강 의논하고﹐기별이 오면 함께 가서 뒤치닥거리를 하십시다。”

그 자리에서 눌러 앉아서 장례비용을 위시하여﹐초종부터 졸곡까지의 절차를 논의하고 지필묵으로 적기까지 했다。

 

日晚,乘不至。

姨言曰:"无复命何也?郎骤往觇之,某当继至。"

生遂往,至旧宅,门扃钥甚密,以泥缄之。

그러는 동안 해는 지고﹐사위는 어두워졌다。

이모가 걱정스레 말하길 ﹕“왜 기별이 없을까요﹖필경 언니가 운명을 했으므로 손이 모자라 기별도 못하고 허둥대고들 있을 겁니다﹐그러니 공자께서는 수레를 몰고 즉시 돌아가 이와를 돕고 또 어린 가솔들을 지휘하세요。”

공자는 이모님이 시키는 대로 즉시 나귀가 끄는 수레를 몰고 옛저택에 이르렀다﹐

문 앞에 달려가 보니 대문이 투박한 진흙으로 봉함되어 있었다。

 

生大骇,诘其邻人。

邻人曰:"李本税此而居,约已周矣。第主自收,姥徙居而且再宿矣。"

徵徙何处,曰:"不详其所。"

生将驰赴宣阳,以诘其姨,日已晚矣,计程不能达。

공자는 크게 놀라서 이웃집 사람에게 힐문하였다。

이웃집사람이 말하길 ﹕

“이 집은 이씨가 세들어 살던 집이었으므로 기한이 차서 이사를 갔음으로 원주인이 와서 대문을 봉인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이사을 갔는지 묻자 ﹕“모릅니다。”

공자는 즉시 발길을 돌렸다﹐밤이 깊었으므로 이모님에게 힐문할 수도 없었다。

 

乃弛其装服,质馔而食,赁榻而寝,生恚怒方甚,自昏达旦,目不交睫。质明,乃策蹇而去。

게다가 사람도 나귀도﹐지칠대로 지치고 배가 고팠다﹐어디 잘 곳도 없고﹐공자는 분통이 터지고 울화가 치밀어 음식이 목에 걸리고 가슴이 쓰렸다﹐어둠이 지나고 새벽이 오기까지﹐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메마른 눈을 부릅뜬채로 밤을 꼬박 새웠다﹐날이 밝자마자 이모집으로 달려갔다。

 

既至,连扣其扉,食顷无人应。生大呼数四,有宦者徐出。生遽访之:"姨氏在乎?"

曰:"无之。"

生曰:"昨暮在此,何故匿之?"

访其谁氏之第,曰:

"此崔尚书宅。昨者有一人税此院,云迟中表之远至者,未暮去矣。"

이모집에 이르러﹐대문을 한식경이나 두드렸지만﹐응답이 없었다。그때 군사 네 명이 달려오더니 수하를 하였다 ﹕

“이모님 안계시오﹖”

“그런 사람없다。”

공자 말하길 ﹕“어제 저녁에 이곳에 있었는데 어찌 없다 하시오﹖”

군졸이 말하길 ﹕

“이곳은 최상서의 별장이니라。어제는 빌려주었을 뿐이다﹐별당채를 빌려쓰고 어제 돌아갔느니라。”

 

生惶惑发狂,罔知所措,因返访布政旧邸。邸主哀而进膳。

生怨懑,绝食三日,遘疾甚笃,旬余愈甚。邸主惧其不起,徙之于凶肆之中。

그제서야 사정을 안 공자는 발광을 하고﹐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포정사의 옛저택으로 돌아갔다。

전후 사정을 들은 주인은 동정하여 머물도록 하였다。

원한이 사뭇친 공자는﹐사흘이나 음식을 먹지 않더니﹐냉방에 쓰러지고 혼절하고 말았다。

주인은 마침내 그를 거적에 말아 어둠을 타고 아무도 모르게 상두도가 근처에 내다버렸다。

 

绵缀移时,合肆之人,共伤叹而互饲之。

后稍愈,杖而能起。

由是凶肆日假之,令执繐帷,获其直以自给。

비단으로 덮고 편하게 지내던 공자는﹐처참히 버림받고 도움을 바라는 처지에 빠졌다。

후에 절명직전에﹐상두꾼에게 발견되어 일어날 수 있었다。

백정들끼리의 인정을 뜨겁다﹐처참히 버림받은 공자를 친동기처럼 보살펴 주어 스스로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累月,渐复壮,每听其哀歌,自叹不及逝者,辄呜咽流涕,不能自止。归则效之。生聪敏者也,无何,曲尽其妙,虽长安无有伦比。初,二肆之佣凶器者,互争胜负。其东肆车舆皆奇丽,殆不敌。唯哀挽劣焉。其东肆长知生妙绝,乃醵钱二万索顾焉。

달이 흘러﹐점차 공자는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매일같이 슬픈 만가를 들었다﹐자신의 운명은 한탄하는 소리였다。공자도 만장을 들고 북망산으로 행하는 상여 뒤를 따라다니면서 애절한 상여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며 덩달아 눈물을 쏟았다。본래 총명하고 다정다감한 공자는 어느덧 만가의 가락을 익히고 누구보다도 원통하고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심정을 알기에 오장 육뷰에 사무친 원한과 슬픔을 만가에 실어 애절하게 토해냈다﹐이에 듣는 사람들의 가슴은 물론 뼈 속까지 처절하게 스며들었다。장안에는 옛부터 동쪽과 서쪽 두 패의 상두도가가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이들은 매년 가을에 막대한 판돈을 놓고서 상례의식에 대한 승부를 가렸다。공자가 속한 동쪽 패거리는 눌리고 꿀리었다。이로 말미암아 손해를 늘 감수하여야 하였다。동전패거리의 패두는 공자의 만가가 절묘함을 알고는﹐이만전을 주면서 출전을 독려하였다。

 

其党耆旧,共较其所能者,阴教生新声,而相赞和。累旬,人莫知之。其二肆长相谓曰:

"我欲各阅所佣之器于天门街,以较优劣。不胜者,罚直五万,以备酒馔之用,可乎?"

二肆许诺,乃邀立符契,署以保证,然后阅之。

士女大和会,聚至数万。

작년에 우승한 서두패는﹐자신만만하여 말하길 ﹕

“우리패에 비하면 동전패는 열세이다。이번에도 진다면 벌로써 잔치에 쓸 오만량을 내겠다﹐ 어떠냐﹖”

동전패두는 승낙하였다﹐ 계를 결성하고 보증을 세워진 연후에 대결이 벌어졌다。

선비와 여인이 화합하여 수만의 관중이 모였들었다。

 

于是里胥告于贼曹,贼曹闻于京尹。四方之士,尽赴趋焉,巷无居人。

自旦阅之,及亭午,历举辇舆威仪之具,西肆皆不胜,师有惭色。乃置层榻于南隅,有长髯者,拥铎而进,翊卫数人,于是奋髯扬眉,扼腕顿颡而登,乃歌《白马》之词。恃其夙胜,顾眄左右,旁若无人。齐声赞扬之,自以为独步一时,不可得而屈也。有顷,东肆长于北隅上设连榻,有乌巾少年,左右五六人,秉翣而至,即生也。

서전패에는 경창대회에서 우승한 능숙한 창쟁이﹐상두꾼을 내세웠다。긴수염에 기우가 헌항한 사람이﹐ 선뜻 나서며 만가를 불렀다﹐《백마 白馬》라는 사였다。이곳저곳의 청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다。그는 창을 마치자 의기양양하여 거드름을 피우며 단에서 내려왔다。때가 이르자﹐ 동전패에서도﹐오건을 쓴 소년이 나섰다﹐ 좌우 5, 6인을 거느리고﹐ 그가 바로 공자였다。

整衣服,俯仰甚徐,申喉发调,容若不胜。乃歌《薤露》之章,举声清越,响振林木。曲度未终,闻者?#91;欷掩泣。西肆长为众所诮,益惭耻,密置所输之直于前,乃潜遁焉。四座愕眙,莫之测也。先是天子方下诏,俾外方之牧,岁一至阙下,谓之入计。时也,适遇生之父在京师,与同列者易服章,窃往观焉。

의복을 단정이 차려입고﹐ 낮은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하였다。《해로가 薤露歌》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낭랑한 목소리가 수풀사이로 울려 퍼졌다。흡사 그 창소리는 영겁의 나락에서 원귀들이 읍소하는 듯﹐차츰 모여든 모든 사람들의 폐부 속 깊이 스며들더니 마침내는 오장육부를 후벼파기 시작하였다。그가 뽑는 만가는 사람의 창소리가 아니라 귀신의 곡성이었다。서전패두는 관중의 반응을 보더니﹐자기네가 패한 것을 알고는 창피함을 느끼고는﹐내기에 걸었던 막대한 판돈을 고스란히 빼앗긴 채로 말없이 패거리를 이끌고 도망을 치듯 철수하였다。이에 동전패는 만가의 경창대회 뿐만아니라 그해의 경연대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막대한 판돈을 땄다。그 때에﹐청중속에 공자의 아버지도 경사에 있었다。

有小竖,即生乳母婿也,见生之举措辞气,将认之而未敢,乃泫然流涕。生父惊而诘之,因告曰:"歌者之貌,酷似郎之亡子。"父曰:"吾子以多财为盗所害,奚至是耶?"言讫,亦泣。及归,竖间驰往,访于同党曰:"向歌者谁,若斯之妙欤?"皆曰:"某氏之子。"徵其名,且易之矣,竖凛然大惊。徐往,迫而察之。生见竖,色动回翔,将匿于众中。竖遂持其袂曰:"岂非某乎?"相持而泣,遂载以归。

함께 대동한 사람들중엔 어린 공자를 젖먹여 키운 젖어미의 남편도 집사로 같이 있었다﹐한눈에 공자를 알아본 늙은 집사는 상전의 기색을 살피며 어렵사리 입을 열고 들릴까말까한 겁먹은 목소리로 아뢰었다。﹕“창을 부르는 사람은 흡사 도련님과 닮았사옵니다。” 공자의 부친 형양공은 대노하여 힐문하였다 ﹕“무슨 소리냐﹐그놈은 강도를 만나서 죽었다 두 번 다시 요망한 말을 하면 네놈을 참하리라﹖” 형양공은 노발대발하고 말머리를 돌렸으나 가슴 속으로는 피눈물을 쏟고 있었다。돌아갈 때에﹐같은 무리중에 누군가 물었다 ﹕“창을 한 자가 누구인가 어찌 그토록 묘한고﹖” ﹕“모씨의 아들이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게 놀라운 솜씨라네。

至其室,父责曰:"志行若此,污辱吾门,何施面目,复相见也?"乃徒行出,至曲江西杏园东,去其衣服。以马鞭鞭之数百。生不胜其苦而毙,父弃之而去。其师命相狎昵者,阴随之,归告同党,共加伤叹。令二人赍苇席瘗焉。至则心下微温,举之良久,气稍通。因共荷而归,以苇筒灌勺饮,经宿乃活。月余,手足不能自举,其楚挞之处皆溃烂,秽甚。同辈患之,一夕弃于道周。行路咸伤之,往往投其余食,得以充肠。

이러한 사실이 집에까지 알려지자 부친을 크게 화를 내며 ﹕“그 행동이 가문을 더럽혔으니 어찌 다시 보리요﹖” 형양공은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막대한 재산을 탕진하고 상두꾼으로 떨어진 백정놈을 도저히 자신의 아들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비정한 삶으니 논리에 얽매인 양반 형양공은 비장한 각오를하고﹐아들놈은 멍석에 말아 곡강(曲江) 후미진 곳으로(西杏園東)으로 옮겼다。그리고는 인정사정 안 두고 죽도록 수백대의 채찍질을 하였다。아버지에게 발각되어 끌려간 공자를 걱정한 상두꾼에게﹐아버지에게 버려진 공자는 생을 얻게 되었다。장례를 전업으로 하는 그들인지라 불쌍한 동료의 시신이나마 거두어 흙에 묻어주려고 했던 것이다。거적때기를 펴서 보니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 아직도 완전히 죽지 않았다。이에 다급히 응급조치를 써서 그를 명부에 넘기지 않고 다시 소생시킬 수 있었다﹐갈대통으로 물을 떠와 먹이고﹐상처를 치료하였다。서너달이 지났을까﹐수족을 겨우 들어 올릴 수 있게되었고﹐동료가 환자인지라﹐저녁마다 혹은 구걸하여 얻어 먹거나﹐왕왕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으며﹐창자를 채워나갔다。

十旬,方杖策而起。被布裘,裘有百结,褴褛如悬鹑。持一破瓯巡于闾里,以乞食为事。自秋徂冬,夜入于粪壤窟室,昼则周游廛肆。一旦大雪,生为冻馁所驱。冒雪而出,乞食之声甚苦,闻见者莫不凄恻。时雪方甚,人家外户多不发。至安邑东门,循里垣,北转第七八,有一门独启左扉,即娃之第也。生不知之,遂连声疾呼:"饥冻之甚。"音响凄切,所不忍听。娃自閤中闻之,谓侍儿曰:"此必生也,我辨其音矣。"连步而出。

열흘이 지나자﹐그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여기저기 터진곳을 겨우 기운 포대를 구하여 구걸에 나섰다。어느덧 계절은 겨울이 다가오고﹐밤이면 냄새나는 동굴로 들어오고﹐낮이면 걸식하였다。어느날 아침 큰 눈이 내렸다﹐공자는 언몸을 이끌고 동냥에 나섰다。마을에는 밤새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또 이른 새벽이라 집집마다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마을의 동문을 지나는데﹐오직 한 집의 대문이 반쯤 빠끔하니 열려 있었다﹐그는 너무나 반가워 다가가서 처연한 목소리로 구걸하였다 ﹕“적선하십시오﹐ 춥고 배고픕니다。” 그 목소리가 하도 처절하였는지﹐하늘이 공자를 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로 그집이 이와의 집이었다。이와가 규방에 있다가 듣고는 시녀에게 말하였다 ﹕“아니﹐공자가 분명하다﹐바로 공자의 목소리가 아니더냐。” 뛰쳐나갔다。

见生枯瘠疥疠,殆非人状。娃意感焉,乃谓曰:"岂非某郎也?"生愤懑绝倒,口不能言,颔颐而已。娃前抱其颈,以绣襦拥而归于西厢。失声长恸曰:"令子一朝及此,我之罪也。"

绝而复苏。姥大骇奔至,曰:"何也?"

娃曰:"某郎。"

姥遽曰:"当逐之,奈何令至此。"

娃敛容却睇曰:"不然,此良家子也,当昔驱高车,持金装,至某之室,不逾期而荡尽。且互设诡计,舍而逐之,殆非人行。令其失志,不得齿于人伦。

공자를 바라보니 뼈만 앙상하게 말라 고목가지와 같았다﹐애절한 동정심과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에 가슴이 매여지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고는 ﹕“여보﹐당신﹖” 그녀가 이와임을 안 공자는 그간에 쌓였던 불만과 노여움이 일시에 폭발하고 가슴에 사무쳤던 증오와 포한이 툭 터진 강물처럼 왈칵 넘쳤다。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험악하게 부릅뜬 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사시나무 떨 듯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자리에 혼절하듯이 쓰러지고 말았다。이와는 급히 그를 서상에 눕히고는 실성한 듯 말하였다

﹕“애당초 이지경이 된 것은 우리 때문입니다﹐나의 죄이지요。”

다시 깨어났다。기생어멈이 이르자 말한다 ﹕

“어찌 하려고 ﹖”

이와 말하길 ﹕“ 내낭군이에요。”

어멈 왈 ﹕“그러니 당연히 쫒아내야지﹐이제와서 어찌하여하느냐。”

이와 얼굴색을 바꾸며 말한다 ﹕“그럴 수 없어요﹐이사람은 좋은 집의 아드님이에요﹐당연히 좋은 수레를 타고﹐비단옷을 입고﹐양처를 얻어 일가를 이루었을 양반인데 가산을 탕진하게 된 것은 우리 때문이지요。그를 속여 재산을 빼앗고﹐집에서 내쫒으며﹐사람으로선 하지 않아야할 일을 저질렀어요。도련님이 그 때문에 뜻을 잃어 버리고﹐인륜을 저 버리게 되었지요。

父子之道,天性也。使其情绝,杀而弃之,又困踬若此。天下之人,尽知为某也。生亲戚满朝,一旦当权者熟察其本末,祸将及矣。况欺天负人,鬼神不佑,无自贻其殃也。某为姥子,迨今有二十岁矣。计其赀,不啻直千金。今姥年六十余,愿计二十年衣食之用以赎身,当与此子别卜所诣。所诣非遥,晨昏得以温凊,某愿足矣。"姥度其志不可夺,因许之。给姥之余,有百金。北隅四五家,税一隙院。乃与生沐浴,易其衣服,为汤粥通其肠,次以酥乳润其脏。

부자간의 천성도 끊어 버리고﹐급기야 부친으로부터 버림을 받기까지 하였어요﹐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시니﹐이제부터는 제가 속죄를 하여야지요。안 그러면 천벌을 받습니다﹐어머님도 더 이상 하늘에 죄를 짓지 마세요﹐앞으로 더 하늘을 기만하고 사람을 배반하면 저승의 아귀들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제가 평생 모은 재물을 어머님에게 드릴 터이니 집을 나가게 해주세요﹐이제부터는 공자님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는 뜻에서﹐공자님의 뒤를 돌봐드리겠습니다。”

기생어멈의 딸로서 있은지 이제 이십여년이었다。계산을 해보니 천금을 모았다。금년으로 어멈의 나이는 육십여세라﹐가만히 따져보니 이십년간 쓸 재물인지라﹐당연히 허락하였다。얼마후에 이와는 기생생활을 청산하였다。어멈을 주고 남은 돈을 세어보니﹐백금이 남아있었다。

자그마한 집 한채를 장만하여 공자의 뒤를 보살폈다。공자를 씻기고﹐의복도 갖추어 입게하였다﹐그리고 정성껏 치료하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케하였다。

旬余,方荐水陆之馔。头巾履袜,皆取珍异者衣之。未数月,肌肤稍腴。卒岁,平愈如初。异时,娃谓生曰:"体已康矣,志已壮矣。渊思寂虑,默想曩昔之艺业,可温习乎?"生思之曰:"十得二三耳。"娃命车出游,生骑而従。至旗亭南偏门鬻坟典之肆,令生拣而市之,计费百金,尽载以归。因令生斥弃百虑以志学,俾夜作昼,孜孜矻矻。娃常偶坐,宵分乃寐。

여러 해가 지나고﹐옛날의 귀공자의 준수한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정결하고 조용한 서재를 꾸며 많은 서적을 구입하여 오직 공부에만 전념케 하였다﹐수개월이 지나자 마침내 3년만에 장원급제의 영광을 따내게 되었다。이와는 공자에게 말하였다 ﹕

“이것으로 만족하시면 안 됩니다﹐앞으로 일년후에 있는 전시에 장원을 하시고 직접 천자로부터 높은 벼슬을 내려 받으셔야 하십니다。그래야 아버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리고 가문의 영예도 되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伺其疲倦,即谕之缀诗赋。二岁而业大就,海内文籍,莫不该览。生谓娃曰:"可策名试艺矣。"娃曰:"未也,且令精熟,以俟百战。"更一年,曰:"可行矣。"于是遂一上登甲科,声振礼闱。虽前辈见其文,罔不敛衽敬羡,愿友之而不可得。娃曰:"未也。今秀士苟获擢一科第,则自谓可以取中朝之显职,擅天下之美名。子行秽迹鄙,不侔于他士。当砻淬利器,以求再捷,方可以连衡多士,争霸群英。"生由是益自勤苦,声价弥甚。其年遇大比,诏徵四方之隽。生应直言极谏策科,名第一,授成都府参军。

이튿날부터 공자는 다시 글공부에 정진했고 마침내 이듬해 봄에는 전시 갑과에서 또 다시 장원으로 올랐다。이에 천자가 친히 어사화를 관모에 달아주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다。그리고 얼마 후에는 성도부의 참군으로 제수되었다。

三事以降,皆其友也。将之官,娃谓生曰:"今之复子本躯,某不相负也。愿以残年,归养小姥。君当结媛鼎族,以奉蒸尝。中外婚媾,无自黩也。勉思自爱,某従此去矣。"生泣曰:"子若弃我,当自刭以就死。"娃固辞不従,生勤请弥恳。娃曰:"送子涉江,至于剑门,当令我回。"生许诺。月余,至剑门。未及发而除书至,生父由常州诏入,拜成都尹,兼剑南采访使。浃辰,父到。生因投刺,谒于邮亭。父不敢认,见其祖父官讳,方大惊,命登阶,抚背恸哭移时。

벼슬길에 오르기 바로 전남 밤이었다。이와가 새삼스럽게 단정한 몸차림을 하고 다가와 무릎을 맞대고 고즈넉이 앉으며 신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

“그 간﹐저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셨고 또 욕도 크게 보셨습니다。그러나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이제는 그간의 오욕을 씻고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하셨습니다﹐따라서 소첩은 다소나마 죄책을 면한 듯합니다。이에 천출인 소첩은 그만 공자님 곁에서 물러나 다시 늙은 양모를 돌볼까 합니다﹐양모의 봉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공자님께서는 명문 대가의 영광된 가문을 이으시고 출세하시어 천하에 명성을 높이 떨치실 존귀하신 몸이십니다。그러므로 문벌 있고 지체 높은 양가의 규수를 맞이하시고﹐후사를 두시고 또 조상의 제사를 떳떳하게 모셔야 할 것입니다。모든 면에서 소첩은 감당할 수가 없사오니 물러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공자는 눈물로 만류하며 말하기를 ﹕“어찌 그리 박정한 말을 하오﹐내가 어찌 당신과 떨어질 수가 있으며 더욱이 다른 여인을 맞이할 수가 있겠오﹐내가 당신 아닌 그 누구를 의지하고 살 수가 있겠오。”

이와가 고사하며 따르지 않자﹐공자는 이와를 부둥켜안고 애처롭게 애결했다。이와 말하길 ﹕

“보내는 이는 강을 건넜으며﹐검문까지만 배행하겠습니다﹐당연히 돌아갈 수는 없다오。”

그제야 공자를 허락하였다。달포가 지나자 그들은 장강의 상류 검문(劍門)에 이르렀다。이튿날 공자가 관아에 이르러 공문통첩을 받아 보았다﹐바로 공자의 친아버지 형양공이 성도의 지사겸 검남채방사(劍南採訪使)로 발령받고 수일후에 당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부친이 도래하였다。아들내외가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떨군채로 조심스럽게 문안 정자에 들어섰다。부친은 아들을 덥석 품에 안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형양공은 아들의 손을 잡아 끌 듯이 대청으로 올라와 좌정하고 이번에는 이와를 향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건네었다。

曰:"吾与尔父子如初。"因诘其由,具陈其本末。大奇之,诘娃安在。曰:"送某至此,当令复还。"父曰:"不可。"翌日,命驾与生先之成都,留娃于剑门,筑别馆以处之。明日,命媒氏通二姓之好,备六礼以迎之,遂如秦晋之偶。娃既备礼,岁时伏腊,妇道甚修,治家严整,极为亲所眷尚。后数岁,生父母偕殁,持孝甚至。有灵芝产于倚庐,一穗三秀,本道上闻。又有白燕数十,巢其层甍。天子异之,宠锡加等。终制,累迁清显之任。

﹕“아가야 이렇게 처음으로 만나게되었구나。그간의 어려움을 잘 참고 슬기롭게 처신하였도다 。그것으로 너는 자랑스런 현부의 도리를 다했느니라 。 따라서 너를 자부로 맞이할 것이니라 。”

대청 한구석에 몸을 움추리고 엉거주춤 서 있던 이와가 고개를 조아린 채로 들릴까 말까 하는 낮을 목소리로 아뢰었다 。

“죄 많고 미천한 쇤네는 이만 하직하고 공자님 곁에서 물러남이 마땅하온 줄 아옵니다。”

부친이 말하기를 ﹕“아니다。그런 겸사는 거두어라﹐참으로 너의 공이 크다﹐ 이 아비가 제대로 훈도하지 못했던 대 아들을 네가 거두어 대성케 했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베필이 아니더냐﹐ 내가 이미 작정하고 또 안배해온 바가 있다﹐가까운 시일에 육례를 갖추어 혼례를 치루게 하마 。”

이와는﹐비록 미천한 기생 출신이었으나 총명하고 의리를 잘 지키고 또 내조의 공을 세웠다﹐이에 형양공은 지체 높은 권문세가의 며느리로 흠잡을 데가 없다고 인정했던 것이다。그후 이와는﹐시부모를 극진하게 효도했고 때맞추어 선조의 제사를 모시고 또 일가친척을 화목케 했다﹐그리고 이듬해에는 첫아들을 출산하고 뒤이어 옥동자 셋을 줄줄이 낳아 손이 적었던 형양공의 집안을 번성케 하였다。

十年间,至数郡。娃封汧国夫人,有四子,皆为大官,其卑者犹为太原尹。弟兄姻媾皆甲门,内外隆盛,莫之与京。嗟乎,倡荡之姬,节行如是,虽古先烈女,不能逾也。焉得不为之叹息哉!予伯祖尝牧晋州,转户部,为水陆运使,三任皆与生为代,故谙详其事。贞元中,予与陇西公佐,话妇人操烈之品格,因遂述汧国之事。公佐拊掌竦听,命予为传。乃握管濡翰,疏而存之。

时乙亥岁秋八月,太原白行简云。

수년 후 형양공과 대부인이 천수를 다 누리고 서거하지 공자와 이와는 여막에서 삼년의 거상을 지켰다﹐하도 그들의 효성이 지극했으므로 여막 곁에 영지가 돋아났고 한 줄기의 꽃이 피어나기도 하였다。그들의 효성이 주문(奏聞)되자 조정에서 공자의 관작을 높였다﹐또 이와에게는 견국부인에 칭호를 내렸다。그들의 네명의 아들들도 장성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왕족들과 인척이 되어 일가가 더없이 번성하였다。

을해년 가을 팔월(時乙亥歲秋八月)﹐태원(太原)의 백행간(白行簡雲)이 이를 기록한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84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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