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watch?v=3aezQlUvizU
모란이 피기까지는
ㅡ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https://www.youtube.com/watch?v=uBNYvmpRCMI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86163
'독을 차고' 김영랑 시인의 항일과 아들이 밝힌 비화
[독립운동가와 해외 후손을 찾아서③] 김영랑과 그의 셋째 아들 김현철
www.ohmynews.com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ㅡ 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1930. 3.)
* 영랑시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ㅡ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K1pHk6hjcSE
https://www.youtube.com/watch?v=Zx4I_q9zOSM
독(毒)을 차고
ㅡ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얼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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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월) 찾았더니 모란꽃은 꽃대만 남고, 작약은 아직 남아 있더이다.
장미원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왕년의 화려했던 모습은 물건너 간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u5INUVZ-tk








https://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17/04/26/2017042612855.html
헷갈리지 마세요! ‘모란’, ‘작약’ 차이점
헷갈리지 마세요! ‘모란’, ‘작약’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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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은 ‘목단(牧丹)’, ‘화왕(花王)’, ‘부귀화(富貴花)’ 등 다양한 이름이 있으며, 작약과 비슷한 나무라는 뜻으로 ‘목작약(木芍藥)’이라고도 한다. 작약은 크고 탐스러운 꽃이 함지박처럼 넉넉하다고 해 ‘함박꽃’이라고도 부른다.
모란과 작약은 모두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식물이지만, 모란은 낙엽관목, 작약은 다년생 풀이다. 나무인 모란은 나뭇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지만, 풀인 작약은 땅속에서 붉은 싹을 틔운다. 나무인 모란과 달리 작약은 알뿌리 한 포기에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곧게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겨울이 되면 나무인 모란은 잎이 떨어진 가지가 남아있지만, 풀인 작약은 뿌리만 남고 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모란은 보통 2~3m 정도까지 자라며, 작약의 키는 60cm 정도다.
*그런데 서울대공원의 경우는 키 높이의 차이는 없었다. 어제 기준으로 꽃받침을 드러낸 눔은 모란, 꽃을 달고 있는 눔은 작약이었다. 나무인가 풀인가가 구분의 기준이 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q8f1er7Ns
https://www.youtube.com/watch?v=NJYhbS1_YBg
https://www.youtube.com/watch?v=BKcOu9YM9A0
[윤동주]
https://www.youtube.com/watch?v=xKj-gaQmYp0
https://www.youtube.com/watch?v=Hd31IuOOIAA
위 동영상 화면 위의 YouTube에서 보기를 클릭하면 화면이 열립니다.
https://kydong77.tistory.com/21324
박아지 여사(정병욱 母), 광양의 윤동주 유고 31편, 연세대 이관
서시 ㅡ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kydong77.tistory.com
무서운 시간
ㅡ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224
https://www.youtube.com/watch?v=jFPQRDPKmu8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hjang3&logNo=140035953382
◈ 설총의 花王戒(화왕계)-원문-해석
◈ 花王戒(화왕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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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王誡(화왕계)-薛聰(설총)
花王誡(화왕계)-薛聰(설총) 화왕계(花王誡) 神文大王以仲夏之月(신문대왕이중하지월) : 신문대왕이 한여름에 處高明之室(처고명지실) : 높고 밝은 방에 있으면서 顧謂聰曰(고위총왈) : 설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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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王誡(화왕계)
ㅡ 설총(薛聰, 658년? ~ ?)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神文大王以仲夏之月
(신문대왕이중하지월) : 신문대왕이 한여름에
處高明之室
(처고명지실) : 높고 밝은 방에 있으면서
顧謂聰曰
(고위총왈) : 설총을 돌아보아 말하기를
今日宿雨初歇
(금일숙우초헐) : “오늘은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개고
薰風微凉
(훈풍미량) : 더운 바람이 조금 시원하니
雖有珍饌哀音
(수유진찬애음) : 비록 맛있는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다할지라도
不如高談善謔
(부여고담선학) : 고상한 이야기와 재미있는 우스개로
以舒伊鬱
(이서이울) :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하리라.
吾子必有異聞
(오자필유이문) : 그대는 반드시 색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盍爲我陳之
(합위아진지) : 어찌 나를 위하여 들려주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聰曰
(총왈) : 설총이 말하기를
唯臣聞昔花王之始來也
(유신문석화왕지시래야) : “그렇습니다, 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이 처음 왔을 때
植之以香園
(식지이향원) : 향기로운 꽃동산에 이를 심고
護之以翠幕
(호지이취막) :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當三春而發艶
(당삼춘이발염) : 봄날이 되어 요염하게 피어나
凌百花而獨出
(릉백화이독출) :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於是自邇及遐
(어시자이급하) :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艶艶之靈
(염염지령) : 요염한 넋
夭夭之英
(요요지영) : 어여쁜 꽃들이
無不奔走上謁
(무불분주상알) : 빠짐없이 달려와서 뵈었는데
唯恐不及
(유공불급) : 오직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忽有一佳人
(홀유일가인) : 홀연히 한 미인이
朱顔玉齒
(주안옥치) :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鮮粧靚服
(선장정복) :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伶俜而來
(령빙이래) : 간들간들 걸어 와서
綽約而前曰
(작약이전왈) :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妾履雪白之沙汀
(첩리설백지사정) : “첩은 눈 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對鏡淸之海
(대경청지해) : 거울 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 보며
而沐春雨以去垢
(이목춘우이거구) :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快淸風而自適
(쾌청풍이자적) :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其名曰薔薇
(기명왈장미) :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聞王之令德
(문왕지령덕) :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期薦枕於香帷
(기천침어향유) :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王其容我乎
(왕기용아호) :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又有一丈夫
(우유일장부) : 또 한 장부가
布衣韋帶
(포의위대) :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戴白持杖
(대백지장) :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龍鍾而步
(용종이보) : 힘없는 걸음으로
傴僂而來曰
(구루이래왈) : 구부정하게 걸어와서 말했습니다.
僕在京城之外
(복재경성지외) : “저는 서울 성밖의
居大道之旁
(居大道之旁 ) : 한길 가에 살고 있습니다.
下臨蒼茫之野景
(하임창망지야경) :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上倚嵯峨之山色
(상의차아지산색) : 위로는 우뚝 솟은 산의 빛에 의지하고 있는데
其名曰白頭翁
(기명왈백두옹) : 이름은 ‘할미꽃’이라고 합니다.
竊謂
(절위) : 가만히 생각건대
左右供給雖足膏粱以充腸
(좌우공급수족고량이충장) :비록 좌우의 공급이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茶酒以淸神
(다주이청신) :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할지라도
巾衍儲藏
(건연저장) : 상자 속에 가득 감추어두어도
須有良藥以補氣
(수유양약이보기) : 반드시 좋은 약이 있어서 기운을 돋우고
惡石以蠲毒
(오석이견독) : 극약으로 병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故曰
(고왈) : 그러므로
雖有絲麻
(수유사마) : 비록 생사와 삼베가 있다 해도
無棄菅蒯
(무기관괴) : 왕골과 띠풀을 버리지 않아서
凡百君子
(범백군자) : 모든 군자들은
無不代匱
(무부대궤) : 결핍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오니
不識王亦有意乎
(부식왕역유의호) :왕께서도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니
或曰
(혹왈) : 어떤 이가 말하기를,
二者之來
(이자지래) : “두 명이 왔는데
何取何捨
(하취하사) :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 하니
花王曰
(화왕왈) : 화왕이
丈夫之言
(장부지언) : “장부의 말도
亦有道理
(역유도리) : 또한 일리가 있지만
而佳人難得
(이가인난득) : 어여쁜 여자는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將如之何
(장여지하) :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丈夫進而言曰
(장부진이언왈) : 장부가 나아가서 말하기를
吾謂王聰明識理義
(오위왕총명식리의) :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사리를 잘 알 줄 알고
故來焉耳
(고래언이) : 그래서 왔을 뿐인데
今則非也
(금칙비야) :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군요.
凡爲君者
(범위군자) : 무릇 임금이 된 사람치고
鮮不親近邪侫
(선부친근사녕) : 간사한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疏遠正直
(소원정직) :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적습니다.
是以孟軻不遇以終身
(시이맹가부우이종신) : 이 때문에 맹가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으며
馮唐郞潛而皓首
(풍당랑잠이호수) : 풍당은 낭서(郎署)에 잠기어 흰 머리가 되었습니다.
自古如此
(자고여차) : 옛날부터 이러하였거늘
吾其柰何
(오기내하) : ‘저인들 그것을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니
花王曰
(화왕왈) : 화왕이
吾過矣吾過矣
(오과의오과의) : ‘내가 잘못했노라, 내가 잘못했노라.’라고 했습니다.”
於是王愁然作色曰
(어시왕수연작색왈) : 이에 왕이 서운한 듯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하기를
子之寓言誠有深志
(자지우언성유심지) :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 있도다.
請書之以謂王者之戒
(청서지이위왕자지계) : 기록해두어 왕의 경계로 삼게 하라.” 하고
遂擢聰以高秩
(수탁총이고질) : 마침내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A4%EC%B4%9D
설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직책}}} 이름 별명 자는 총지, 호는 빙월당, 소성거사, 작호는 홍유후 신상정보 출생일 658년?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시 사망일 미상 국적 신라 학력 한림 부모
ko.wikipedia.org
아버지는 승려 원효대사로 본명은 설사(薛思)였으며, 어머니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이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널리 경사(經史)에 통했으며, 유학과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초기에 사문(沙門)에 들어가 불교 서적을 탐독했으나 뒤에 환속하여, 유교(儒敎)로 개종하였다. 신라 신문왕 때에 국학(國學)이 개설되고 다섯가지 경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자, 그는 국학에 들어가 유학을 공부했다. 746년(경덕왕 5년) 무렵에 그는 박사로서 강수와 함께 구경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설총은 한자의 음과 뜻을 조합하여 신라의 한국어
를 표현한 첫 문자 체계 이두와
구결
문자를 규정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그때까지 존재하던 향찰을 집대성하였으며,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개발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연구를 쉽게 그리고 빨리 발전시키는 데에 공이 컸다.[1] 강수와 함께 9경을 처음으로 구결(口訣)로 강론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성덕왕
때 홍유후(弘儒侯)에 피봉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화왕계〉라고도 불리는 〈계화왕〉(戒花王) 1편이 전한다. 이것은 한문으로 된 단편으로 꽃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당시 왕의 어질지 못함을 풍자한 글이다. 그는 신문왕에게 계화왕을 지어 올려, 신문왕에게 비행을 경계하고, 스스로 자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 한림과 같은 직에 있었을 것이며, 신문왕 때 국학을 설립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성덕왕 18년인 719년에는 나마의 관등으로서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기(甘山寺阿彌陀如來造像記)를 저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