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222586630789

 

열하일기(熱河日記) - 옥갑야화(玉匣夜話)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熱河日記) - 옥갑야화(玉匣夜話)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옥갑야화(玉...

blog.naver.com

 

열하일기(熱河日記) - 옥갑야화(玉匣夜話)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옥갑야화(玉匣夜話)

1. 옥갑야화(玉匣夜話)

2. 허생전(許生傳)

3. 허생후지(許生後識)

4. 허생후지(許生後識)

5. 차수평어(次修評語)

 

 

 

옥갑야화(玉匣夜話)

옥갑(玉匣)에 돌아와서 모든 비장들과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밤들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연경은 옛날에는 풍속이 순후하여 역관배가 말하면 비록 만 금이라도 무난히 빌려주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모두 사기로써 능사를 삼으니 이는 실로 잘못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서른 해 전에 한 역관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연경에 들어갔다가 돌아올 제 그 단골 주인을 보고서 울었다. 주인은 괴이하게 여겨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강을 건널 때에 가만히 남의 은()을 가지고 왔더니 일이 발각되자 제 것까지 모두 관()에 몰수되었습니다. 이제 빈 손으로 돌아가려니 무엇으로도 생활할 수 없겠기에 차라리 이곳에서 죽고자 합니다.”

하고는 곧 칼을 빼어 자살하려 하였다. 주인이 놀라서 급히 그를 껴안고 칼을 빼앗으면서,

 

몰수된 은이 얼마나 되는지요.”

하였더니, 그는,

 

삼천 냥입니다.”

하였다. 주인은,

 

사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음이 걱정이지, 은이 없기로 무엇이 근심이요. 이제 이곳에서 죽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당신의 처자에게 어떻게 하려는 거요. 이제 내가 당신에게 만 금을 빌려 드릴 테니 다섯 해 동안을 늘이면 아마 만 금은 남겠지요. 그때 가서 본전으로 나에게 갚아 주시오.”

하고는, 그를 돌보면서 위안하였다. 그는 이미 만 금을 얻자, 곧 물건을 많이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 당시에는 그 일을 아는 이가 없었으므로 모두들 그의 재능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과연 다섯 해 만에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곧 역원(譯院)의 명부에서 자기의 이름을 깎아버리고는 다시 연경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친구 하나가 연경에 들어가기에, 그는,

 

연경 저자에서 만일 아무 단골 주인을 만나면 그는 응당 나의 안부를 물을 테니 자네는 그의 온 집안이 몹쓸 유행병을 만나서 죽었다고만 전해 주게.”

하고, 가만히 부탁의 말을 던졌다. 그 친구는 이 말이 너무나 허황함으로 곤란한 빛을 보였다. 그는,

 

만일 그렇게만 하고 돌아온다면 마땅히 자네에게 돈 일백 냥을 바치겠네.”

하고, 단단히 부탁하였다. 그 친구가 연경에 들어서자 그 단골 주인을 만났다. 주인이 역관의 안부를 묻기에, 그 친구의 부탁한 바와 같이 답하였더니, 주인은 곧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한바탕 슬피 울면서,

 

아아, 하느님이시여. 무슨 일로 이다지 좋은 사람의 집에 이렇듯 참혹한 재앙을 내리셨나요.”

하고는, 곧 백 냥을 그에게 주면서,

 

그이가 처자와 함께 죽었다니 주장할 이도 없을 테니, 당신이 고국에 돌아가시는 그 날로 나를 위하여 오십 냥으로 제물을 갖추고, 또 나머지 오십 냥으로 재()를 벌여서 그의 명복(冥福)을 빌어 주시오.”

하였다. 그 친구는 몹시 아연했으나 벌써 거짓말을 하였는지라, 하는 수 없이 백 냥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 역관의 온 집안은 벌써 역질을 만나서 몰사하였다. 그는 크게 놀라는 한편 두렵기도 하여 그 일백 냥으로 그 단골 주인을 위하여 재를 드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 연행(燕行)을 폐기하고는, 말하기를,

 

내 무슨 낯으로 그 단골 주인을 만나겠어.”

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지사(李知事) ()는 근세에 이름 있는 통역관이었으나 평소에 입에는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40여 년을 연경에 드나들었으되 그 손에는 일찍이 은을 잡아본 적이 없었으며, 근실한 군자(君子)의 풍도를 지녔다.”

한다.

어떤 이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성군(唐城君)홍순언(洪純彦)은 명() 만력(萬曆) 때의 이름난 통역관으로서 명경(明京)에 들어가 어떤 기생 집에 놀러 갔었다. 기생의 얼굴에 따라서 놀이채의 등급을 매겼는데, 천 금이나 되는 비싼 돈을 요구하는 자가 있었다. ()은 곧 천 금으로써 하룻밤 놀기를 청하였다. 그 여인은 나이 바야흐로 16세요, 절색을 지녔다. 여인은 홍과 마주 앉아서 울면서 하는 말이, ‘제가 애초 이다지 많은 돈을 요청한 것은 실로 이 세상에는 모두들 인색한 사나이가 많으므로 천 금을 버릴 자 없으리라 생각하고서 당분간의 모욕을 면하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루 이틀을 지나면서 관 주인을 속이는 한편, 이 세상에 어떤 의기를 지닌 남자가 있어서 저의 잡힌 몸을 속()하여 사랑해 주기를 희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창관(娼館)에 들어온 지 닷새가 지났으나 감히 천 금을 갖고 오는 이가 없었더니, 이제 다행히 이 세상의 의기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은 외국 사람인 만큼 법적으로 보아서 저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시기에는 어렵사옵고, 이 몸은 한번 더럽힌다면 다시 씻기는 어려운 일이겠습니다.’ 한다. 홍은 그를 몹시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창관에 들어온 경로를 물었더니, 여인은 답하기를, ‘저는 남경(南京) 호부 시랑(戶部侍郞) 아무개의 딸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장물(贓物)에 얽매였으므로 이를 갚기 위하여 스스로 기생 집에 몸을 팔아서 아버지의 죽음을 속하고자 하옵니다.’ 한다. 홍은 크게 놀라면서 말하기를, ‘나는 실로 이런 줄은 몰랐소이다. 이제 내가 당신의 몸을 속해 줄 테니 그 액수(額數)는 얼마나 되는지요.’ 했다. 여인은 말하기를, ‘이천 냥이랍니다.’ 하였다. 홍은 곧 그 액수대로 그에게 치르고는 작별하기로 하였다. 여인은 곧 홍을 은부(恩父)라 일컬으면서 수없이 절하고는 서로 헤어졌다. 그 뒤에 홍은 이에 대하여 괘념(掛念)하지 않았다. 그 뒤에 또 중국을 들어갔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모두들 홍순언이 들어오나요.’ 하고 묻기에, 홍은 다만 괴이하게 여겼을 뿐이었더니, 연경에 이르자, 길 왼편에 공장(供帳)을 성대하게 베풀고 홍을 맞이하면서, ‘병부(兵部) 석 노야(石老爺)께서 환영하옵니다.’ 하고는 곧 석씨(石氏)의 사저로 인도한다. 석 상서(石尙書)가 맞이하여 절하며, ‘은장(恩丈)이시옵니까. 공의 따님이 아버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답니다.’ 하고는 곧 손을 이끌고 내실로 들었다. 그의 부인이 화려한 화장으로 마루 밑에서 절한다. 홍은 송구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석 상서는 웃으면서, ‘장인(丈人)께서 벌써 따님을 잊으셨나요.’ 한다. 홍은 그제야 비로소 그 부인이 곧 지난날 기생 집에서 구출했던 여인인 줄을 깨달았다. 그는 창관에서 나오게 되자 곧 석성(石星)의 계실(繼室)이 되었던 바, 전보다 귀하게 되었으나 그는 오히려 손수 비단을 짜면서 군데군데 보은(報恩) 두 글자를 무늬로 수놓았다. 홍이 고국으로 돌아올 때에 그는 보은단(報恩緞) 외에도 각종 비단과 금은 등을 이루 헤아리지 못할 만큼 행장 속에 넣어 주었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성이 병부에 있으면서 출병(出兵)을 힘써 주장하였으니, 이는 석성이 애초부터 조선 사람을 의롭게 여겼던 까닭이다.”

어떤 이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 사람 장사치들과 친하고도 단골 주인인 정세태(鄭世泰)는 연경에서의 갑부(甲富)였다. 그러던 것이 세태가 죽자, 그 집은 곧 일패도지(一敗塗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다만 손자 하나가 있었는데, 뭇 사내 중에 절색(絶色)이었으나 어려서 극장(劇場)에 몸을 팔았다. 세태가 살아 있을 적에 회계(會計)를 보던 임가(林哥)는 이때에 와서 이름난 부자가 되었는데, 극장에서 어떤 미남자가 연극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퍽 애처롭게 생각하던 차에 그가 정씨(鄭氏)의 손자인 줄을 알고는 서로 껴안고 울었다. 곧 천 금으로 그를 속()해 집에 데리고 돌아와 집 사람들에게 타이르기를, ‘너희들은 잘 대우하렷다. 이 이는 우리 집 옛 주인이니 결코 배우의 몸이라 해서 천시하지 말라.’ 하고는 그가 자라난 뒤에 그 재산의 절반을 나눠서 살림을 시켰다. 그는 몸이 살찌고 살결이 몹시 희며, 또한 얼굴이 아름답고도 화려하였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이 다만 연() 날리기로써 성 안을 노닐 따름이었었다.”

옛날 이곳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는 봇짐을 끌러 검사하지 않고, 곧 연경에서 싸보낸 그대로 갖고 와서는 장부와 대조해 보아도 조금도 그릇됨이 없었다. 어느 때인지 흰 털감투로써 겉을 싼 것이 있었는데 돌아와서 끌러 본즉 모두 흰 모자였다. 그러나 저쪽에서 고의로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저곳에서 검사해 보지 못했던 것을 스스로 후회하였더니, 정축년(1517)에 두 번이나 국상(國喪)을 당하자 도리어 배나 되는 값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역시 그네들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전조(前兆)인 것이다. 근년에 이르러서는 화물을 반드시 스스로 단속하고, 단골집 주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한다.

어떤 이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변승업(卞承業)이 중한 병에 걸리자 곧 변돈 놀이의 총계를 알고자 하여 모든 과계(夥計) 장부(帳簿)를 모아 놓고 통계를 내어본즉, ()이 모두 50여 만 냥이나 적립되었다. 그의 아들이 청하기를, ‘이를 흩는다면 거두기도 귀찮을 뿐더러 시일을 오래 끌면 소모되고 말 테니 그만 여수(與受)를 끊는 것이 옳겠습니다.’ 했을 때 승업은 크게 분개하면서, ‘이는 곧 서울 안 만호(萬戶)의 명맥(命脈)이니 어째서 하루아침에 끊어버릴 수 있겠느냐.’ 하고는, 곧 빨리 돌려 보내게 하였다. 승업이 이미 나이 늙으매 그의 자손들에게 경계하기를, ‘내 일찍이 공경(公卿)들을 섬겨본 적이 많은데 그들 중에 나라의 권세를 잡고서 자기의 사사 이익을 꾀하는 이 치고 그 권세가 삼 대를 뻗는 이가 없더란 말이야. 그리고 온 나라 사람 중에서 재물을 늘리는 이들이 으레 우리 집 거래를 표준 삼아서 오르내리는 것도 역시 국론(國論)인 만큼, 이를 흩어 버리지 않는다면 장차 재앙이 미칠거야.’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 자손이 번창하면서 모두들 가난한 것은, 승업이 만년에 재산을 많이 흩어버린 까닭이다.”

나도 역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일찍이 윤영(尹映)이란 이에게 변승업의 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부는 애초부터 유래가 있어서 승업의 조부 에는 돈이 몇 만 냥에 지나지 않았더니, 일찍이 허씨(許氏) ()을 지닌 선비의 은 십만 냥을 얻어서 드디어 일국의 으뜸이 되었던 것이 승업에게 이르러서 조금 쇠퇴된 셈이다. 그가 처음 재산을 일으킬 때에 역시 운명이 있는 듯싶었다. 허생(許生)의 일로 보아서 이상스러우니, 허생은 끝내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를 아는 이가 없었다 한다. 이제 윤영의 이야기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D-001]국상(國喪)을 당하자 : 2월에는 정성 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의 국상이 있었고, 3월에는 인원 왕후(仁元王后) 김씨(金氏)의 국상이 있었다.

[D-002]승업의 …… 드디어 : 옥갑야화(玉匣夜話)로 되어 있는 여러 본에는 이 부분이 누락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옥류산관본(玉溜山館本)’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허생전(許生傳)

 

 

허생(許生)은 묵적골에 살고 있었다. 줄곧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터 위에 해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고, 사립문이 그 나무를 향하여 열려 있으며, 초옥 두어 칸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러나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였고, 그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셈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몹시 주려서 훌쩍훌쩍 울며 하는 말이,

 

당신은 한 평생에 과거(科擧)도 보지 않사오니 이럴진대 글은 읽어서 무엇하시려오.’

하였다. 허생은,

 

난 아직 글 읽기에 세련되지 못한가 보오.’

하고 껄껄대곤 했다. 아내는,

 

그러면 공장이 노릇도 못하신단 말예요.’

하였다. 허생은,

 

공장이 일이란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니, 아내는,

 

그럼, 장사치 노릇이라도 하셔야죠.’

한다. 허생은,

 

장사치 노릇인들 밑천이 없고서야 어떻게 할 수 있겠소.’

하였다. 그제야 아내는 곧,

 

당신은 밤낮으로 글 읽었다는 것이 겨우 어찌할 수 있겠소 하는 것만 배웠소그려. 그래 공장이 노릇도 하기 싫고, 장사치 노릇도 하기 싫다면, 도둑질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소.’

하고는 몹시 흥분하는 어조로 대꾸했다. 이에 허생은 할 수 없이 책장을 덮어 치우고 일어서면서,

 

아아, 애석하구나. 내 애초 글을 읽을 제 십 년을 채우렸더니 이제 겨우 7년밖에 되지 않는군.’

하고는, 곧 문밖을 나섰으나, 한 사람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는 곧장 종로 네거리에 가서 저자 사람들에게 만나는 대로,

 

여보시오, 서울 안에서 누가 제일 부자요.’

하고 물었다. 때마침 변씨(卞氏 변승업(卞承業)의 조부)를 일러주는 이가 있었다. 허생은 드디어 그 집을 찾았다. 허생이 변씨를 보고서 길게 읍()하며,

 

내 집이 가난해서 무엇을 조금 시험해 볼 일이 있어 그대에게 만 금(萬金)을 빌리러 왔소.’

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는, 곧 만 금을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어디론지 가 버렸다. 변씨의 자제(子弟)와 빈객(賓客)들은 허생의 꼴을 본즉, 한 비렁뱅이였다. 허리에 실띠를 둘렀으나 술이 다 뽑혀 버렸고, 가죽신을 뀄으나 뒷굽이 자빠졌으며, 다 망그러진 갓에다 검은 그을음이 흐르는 도포(道袍)를 걸쳐 입었는데, 코에서는 맑은 물이 훌쩍훌쩍 내리곤 한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모두들 크게 놀라며,

 

아버지, 그 손님을 잘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변씨는,

 

몰랐지.’

그러시다면 어찌 잠깐 사이에 이 귀중한 만 금을 평소에 면식도 없는 자에게 헛되이 던져 주시면서 그의 성명도 묻지 않음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했다. 변씨는,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엔 반드시 의지(意志)를 과장하여 신의(信義)를 나타내는 법이다. 그러고 얼굴빛은 부끄럽고도 비겁하며, 말은 거듭함이 일쑤이니라. 그런데, 이 손님은 옷과 신이 비록 떨어졌으나 말이 간단하고 눈 가짐이 오만하고 얼굴엔 부끄런 빛이 없음으로 보아서 그는 물질(物質)을 기다리기 전에 벌써 스스로 만족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 그의 시도하려는 방법도 적지 않거니와, 나 역시 그에게 시도함이 없지 않는 거다. 그리고 주질 않는다면 모르려니와 기왕 만 금을 줄 바에야 성명은 물어서 무엇하겠느냐.’

하였다.

이에 허생은 이미 만 금을 얻어 갖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언뜻 생각하기를,

 

저 안성(安城)은 기()()의 접경이요, 삼남(三南)의 어귀렷다.’

하고는,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그리하여 대추감자석류유자 등의 과실을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허생이 과실을 도고(都庫)하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지 얼마 아니 되어서 앞서 허생에게 값을 배로 받은 장사들이 도리어 십 배를 치렀다. 허생은,

 

어허, 겨우 만 금으로 온 나라의 경제(經濟)를 기울였으니 이 나라의 얕고 깊음을 짐작할 수 있구나.’

하고는, 곧 칼호미명주솜 등을 사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들어가서 말총을 모두 거두면서,

 

몇 해만 있으면 온 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싸지 못할 거야.’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망건(網巾) 값이 과연 십 배나 올랐다. 허생은 늙은 뱃사공에게,

 

영감, 혹시 해외(海外)에 사람 살 만한 빈 섬이 있는 것을 보았나.’

하고 물었더니, 사공은,

 

있습디다그려. 제 일찍이 바람에 휩쓸려서 줄곧 서쪽으로 간 지 사흘 낮밤 만에 어떤 빈 섬에 닿았습니다그려. 그곳은 아마 사문(沙門)장기(長崎) 사이에 있는 듯싶은데, 모든 꽃과 잎이 저절로 피며, 온갖 과실과 오이가 저절로 성숙되고, 사슴이 떼를 이루었으며, 노니는 고기들은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더이다.’

한다. 허생은 크게 기뻤다.

 

자네 만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다면 부귀(富貴)를 함께 누릴 걸세.’

했다. 사공은 그의 말을 좇았다. 이에 곧 바람 편을 타고 동남 쪽으로 그 섬에 들어갔다. 허생이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땅이 천 리가 채 못 되니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나 토지가 기름지고 샘물이 달콤하니 다만 이곳에 부가옹(富家翁)의 노릇쯤은 하겠구나.’

하고,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사공은,

 

섬이 터엉 비고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으니 뉘와 함께 사신단 말씀이시오.’

했다. 허생은,

 

()만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찾아드는 거야. 나는 오히려 내 덕 없음이 걱정이지 사람 없음이 무슨 걱정이 될 건고.’

했다. 이때 마침 변산(邊山)에 도적 수천 명이 떼를 지어 있었다. ()()에서 군졸을 징발하여 뒤를 쫓아 잡으려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뭇 도적 역시 잠시도 밖으로 나와서 노략질을 하지 못하여 바야흐로 주리고 곤한 판이었다. 허생이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서 그의 괴수(魁帥)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희들 천 명이 합쳐 돈 천 냥을 훔쳐서 서로 나누어 갖게 되면 각기 얼마나 되겠는고.’

하고 물었다. 그는,

 

하나 몫이 한 냥밖에 더 되나유.’

한다. 허생은 또,

 

그럼 너희들의 아내는.’

하자, 뭇 도적은,

 

없어유.’

한다.

 

그럼 너희들의 밭은 있겠지.’

했더니, 이때에 뭇 도적은 웃으며,

 

밭 있구, 아내 있다면야 어찌 이다지 괴롭게 도둑질을 일삼겠수.’

한다. 허생은,

 

정말 그렇다면 아내를 얻고 집을 세우고, 소를 사서 농사지어 살면, 도둑놈이란 더러운 이름도 없을뿐더러 살림살이엔 부부(夫婦)의 낙()이 있을 것이며, 아무리 나와서 쏘다닌다 하더라도 체포당할 걱정이 없고, 길이 잘 입고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했다. 뭇 도적은,

 

그야 정말 소원이겠지만 다만 돈이 없을 뿐이어유.’

한다. 허생은 껄걸 웃으며,

 

너희들이 도둑질 한다면서 돈이 그렇게 그립다면 내 너희들을 위해서 마련해 줄 수 있으니 내일 저 바닷가를 건너다 보면 붉은 깃발이 바람결에 펄펄 날리는 게 모두 돈 실은 배일 거야. 너희들 멋대로 가져 가려무나.’

했다. 허생은 이렇게 뭇 도적에게 약속하고는, 어디론지 가버렸다. 뭇 도적은 모두 그를 미친놈으로 알고 웃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그들은 시험삼아 바닷가에 이르렀다. 허생은 벌써 삼십만 냥을 싣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나란히 절하며,

 

이제부턴 오직 장군님 명령대로 따르겠소이다.’

한다. 허생은,

 

이것을 힘껏 지고 가는 게 어때.’

했다. 이에 뭇 도적이 다투어 돈을 져보려 했으나 백 냥을 채우지 못했다. 허생은,

 

너희들 힘이 겨우 백 냥도 들지 못하면서 무슨 도둑질인들 변변히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너희들이 비록 평민(平民)이 되고 싶다 하더라도 이름이 도적의 명부(名簿)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지 않나. 그러니 내 이곳에서 너희들 돌아오길 기다릴 테니 각기 백 냥씩을 갖고 가서 하나의 몫에 계집 한 사람과 소 한 필씩을 데리고 오렷다.’

했다. 뭇 도적은,

 

예이.’

하고, 모두들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허생은 스스로 이천 명이 일 년 동안을 먹을 식량을 장만하고 기다렸다. 뭇 도적은 과연 기일이 되자 다 돌아오되 뒤떨어진 자 없었다. 이에 모두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이렇게 도적떼를 데리고 사라지니 온 나라 안이 잠잠하였다. 이에 나무를 베어 집을 세우고, 대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질(地質)이 온전하매 온갖 곡식이 잘 자라서 묵정밭은 갈지 않고 김매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씩이나 달렸다. 삼년 먹을 식량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에 가서 팔았다. 장기도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로서 호수(戶數) 31만이나 되는데, 바야흐로 큰 흉년이 들었는지라 드디어 다 풀어 먹이고는 은() 백만 냥을 거두었다. 허생은 탄식했다.

 

이제야 내 조금 시험해 보았구나.’

하고는, 곧 남녀 2천 명을 모두 불러 놓고,

 

내 처음 너희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하게 한 연후에 따로이 문자(文字)를 만들며 옷갓을 지으려 하였는데 땅이 작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련다. 너희들은 어린애가 나서 숟가락을 잡을 만하거든 오른손으로 쥐기를 가르치고 하루를 일찍 났어도 먼저 먹게 사양하렷다.’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며,

 

가지 않으면 곧 오는 이도 없겠지.’

하고, 또 돈 50만 냥을 바닷속에 던지며,

 

바다가 마를 때면 이를 얻을 자 있겠지. 백만 냥이면 이 나라엔 용납할 곳이 없으리니 하물며 이런 작은 섬일까보냐.’

하고, 또 그 중에 글을 아는 자를 불러내어 배에 태우고,

 

이 섬나라에 화근(禍根)을 뽑아 버려야지.’

하고는, 함께 떠나왔다.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마저 없는 자에게 돈을 나눠 주고도 오히려 10만 냥이 남았기에,

 

이것으로 변씨에게 빌린 것을 갚아야지.’

하고는, 곧 변씨를 찾아 보고서,

 

그대, 날 기억하겠소.’

하고 물었다. 변씨는 놀란 어조로,

 

자네, 얼굴빛이 조금도 전보다 낫지 않으니 만 냥을 잃어버린 모양이지.’

한다. 허생은 깔깔 웃으며,

 

재물로써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그대들이나 할 일이지. 만 냥이 아무리 중한들 어찌 도()를 살찌게 한단 말야.’

하고는, 곧 돈 10만 냥을 변씨에게 주며,

 

내가 한때의 주림을 참지 못해서 글 읽기를 끝내지 못했으니, 그대의 만냥을 부끄러워할 뿐이로세.’

했다. 변씨는 크게 놀라서 일어나 절하며 사양하고는 십분의 일의 이문(利文)만을 받으려 했다. 허생은 그제야 크게 노하여,

 

그대는 어찌 날 장사치로 대우한단 말인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린다. 변씨는 하는 수 없어 가만히 그 뒤를 따라 밟았다. 그는 남산 밑으로 향하더니 한 오막살이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침 늙은 할미가 우물 곁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변씨는,

 

저 오막살이는 뉘 집인고.’

하고 물었다. 할미는,

 

허 생원(許生員) 댁이랍니다. 그분이 가난하되 글 읽기를 좋아하더니 어느 날 아침 집을 떠나고는 안 돌아온 지 벌써 다섯 해나 된답니다. 그리고 다만 아내가 홀로 남아서 그가 집 떠나던 날에 제사를 드린답니다.’

한다. 변씨는 그제야 그의 성()이 허()인 줄을 알고 탄식하고 돌아왔다. 그 이튿날 자기의 은()을 다 가지고 가서 그에게 바쳤다. 허생은,

 

내 일찍이 부()하려 했다면 100만 냥을 버리고 10만을 취하겠는가. 나는 이제부터 그대를 믿어 밥을 먹겠으니 그대가 자주 와서 나를 돌봐주게그려. 다만 식구를 헤아려 식량을 대며 몸을 재어서 베를 마련해 준다면 일생에 그것으로 만족할지니 무슨 까닭에 재물로써 나의 마음을 괴롭히겠나.’

하고, 사양한다. 변씨는 백방(百方)으로 허생을 달래었으나 끝내 막무가내였다. 변씨는 이로부터 허생의 의식이 결핍되었을 것을 짐작되는 대로 반드시 손수 날라다 대어 주면, 허생은 역시 흔연(欣然)히 받되 혹시나 분량이 초과되면 곧 기뻐하지 않는 어조로,

 

그대가 어째서 내게 재앙을 끼쳐 주려 하누.’

했다. 그러나 술병을 차고 가면 더욱 기뻐하여 서로 권커니 마시거니 하여 취하고야 말았다. 그럭저럭 몇 해를 지나고 본즉 피차에 정이 날마다 두터워졌다. 어느 날 조용히,

 

다섯 해 동안에 어떻게 백만 금을 벌었습죠.’

하고 물었다. 허생은,

 

이건 가장 알기 쉬운 일일세. 우리 조선(朝鮮)은 배가 외국과 통하지 못하고, 수레가 국내(國內)에 두루 다니지 못하는 까닭으로, 백물(百物)이 이 안에서 생산되어 곧 이 안에서 소비되곤 하지 않나. 대체로 천 냥이란 적은 재물이어서 물건을 마음껏 다 살 수는 없겠지만, 이를 열로 쪼갠다면 백 냥짜리가 열이 될지니 이를 가지면 아무래도 열 가지 물건이야 살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물건의 무게가 가벼우면 돌려 빼기 쉬운 까닭으로 한 가지 물건이 비록 밑졌다 하더라도 아홉 가지 물건에 이문이 남는 법이니 이는 보통 이문을 내는 길이요, 저 작은 장사치들이 장사하는 방법이지. 그리고 대체로 만 금만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건은 다 살 수 있으므로 수레에 실린 것이면 수레를 모조리 도매할 것이며, 배에 담긴 것이라면 배를 온통 살 수 있겠고, 한 고을에 가득 찬 것이라면 온 고을을 통틀어서 살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마치 그물에 코가 있어서 물건을 모조리 훑어들임과 같지 않겠나. 그리하여 뭍의 산물(産物)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든지, 물에서 나온 고기들의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든지, 의약(醫藥)의 재료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그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면, 그 한 가지의 물건은 한 곳에 갇히매 모든 장사치의 손 속이 다 마르는 법이니, 이는 백성을 못살게 하는 방법이야. 뒷세상에 나랏일을 맡은 이들이 행여 나의 이 방법을 쓰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말 걸세.’

한다. 변씨는,

 

애당초 당신은 무엇으로써 내가 만 금을 내어 줄 것을 예측하고 찾아와 빌리기로 했던 거요.’

했다. 허생은,

 

이는 반드시 자네만이 내게 줄 것이 아닐세. 만 금을 지닌 자 치고는 주지 않을 자 없겠지. 내 재주가 족히 백만 금을 벌 수는 있겠으나 다만 운명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만큼 내 어찌 예측할 수 있었겠나. 그러므로 나를 능히 쓰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는 반드시 부()에서 더 큰 부를 누릴 테니 이는 곧 하늘이 명하는 바라, 그가 어찌 아니 줄 수 있겠나. 이미 만 금을 얻은 뒤엔 그의 복을 빙자(憑藉)해서 행한 까닭에 움직이면 문득 성공하는 것이니, 만일 내가 사사로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패(成敗)는 역시 알 수 없었겠지.’

한다. 변씨는,

 

지금 사대부(士大夫)들이 앞날 남한(南漢)에서의 치욕을 씻고자 하는데, 이야말로 슬기 있는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슬기를 펼 때인 만큼 당신과 같은 재주로 어찌 괴롭게 어둠에 잠겨서 이 세상을 마치려 하시오.’

했다. 허생은,

 

어허, 예로부터 어둠에 잠긴 자가 얼마나 많았던고. 저 조성기(趙聖期)졸수재(拙修齋) 는 적국(敵國)의 사신(使臣)으로 보낼 만하건마는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유형원(柳馨遠)반계거사(磻溪居士) 은 넉넉히 군량을 나를 만하였으나 저 해곡(海曲)에서 바장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랏일을 보살피는 자들을 가히 알 것이 아니겠는가. 나로 말한다면 장사를 잘하는 자인 만큼 내 돈이 넉넉히 아홉 나라 임금의 머리를 살 수 없음은 아니로되 아까 저 바닷속에 그걸 던지고 온 것은 아무런 쓸 곳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네.’

한다. 변씨는 곧 후유 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 가 버렸다.

변씨는 애초부터 정승(政丞)이완(李浣)과 친했다. 이공(李公)은 때마침 어영 대장(御營大將)에 취임되었다. 그는 일찍이 변씨와 이야기하다가,

 

지금 저 위항(委巷)과 여염(閭閻) 사이에 혹시 기이한 재주가 있어서 커다란 일을 같이 할 만한 자가 있더냐.’

했다. 변씨는 그제야 허생을 소개했다. 이공은 깜짝 놀라며,

 

기특하이,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은 무어라 하던고.’

한다. 변씨는

 

소인이 그와 상종한 지 삼년이나 되었습니다만, 아직껏 그 이름은 몰랐소이다.’

했다. 이공은 또,

 

그 이가 곧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함께 그를 찾아가 보세.’

하고는, 밤들어 이공은 수행 자들을 다 물리치고 변씨만을 데리고 걸어서 허생의 집을 찾았다. 변씨는 이공을 말려 그 문밖에 세워 놓고 혼자서 먼저 들어가 허생을 보고 이공이 찾아온 사연을 갖추어 말했다. 허생은 들은 체 만 체 그저 하는 말이,

 

자네가 차고 온 술병이나 빨리 풀게.’

한다. 그리하여 서로 더불어 즐겁게 마셨다. 변씨는 이공이 오랫동안 바깥에 있음을 딱하게 여겨서 자주 말을 하였으나 허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덧 밤은 이미 깊었다. 허생은 그제야,

 

손님 좀 불러 볼까.’

한다. 이공이 들어왔다. 허생은 굳이 앉아서 일어서지 않았다. 이공은 몸둘 곳이 없을 만큼 불안했다. 황급히 국가에서 어진 이를 구하는 뜻을 진술했다. 허생은 손을 저으며,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몹시 지루하이. 도대체 지금 너의 벼슬은 무에라지.’

한다. 이공은,

 

대장(大將)이랍니다.’

했다. 허생은,

 

그렇다면 네 딴엔 나라의 믿음직한 신하로고. 내 곧 와룡선생(卧龍先生)과 같은 이를 천거할 테니 네가 임금께 여쭈어서 그의 초려(草廬)를 삼고(三顧)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이건 어렵사오니, 그 다음의 것을 얻어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나는 아직껏 제이의(第二義 첫째가 아니고 다음 것)란 배우질 못했거든.’

한다. 이공은 굳이 물었다. 허생은,

 

()의 장병(將兵)은 자기네들이 일찍이 조선에 묵은 은의(恩義)가 있다 하여 그의 자손들이 많이 동으로 오지 않았나.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떠돌이 생활에 고독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니, 네 능히 조정에 말씀드려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골고루 시집보내고, 김류(金瑬)와 장유(張維) 따위들의 집을 징발해서 살림살이를 차려 줄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그것도 어렵소이다.’

했다. 허생은,

 

이것두 어렵구 저것두 못한다 하니 그러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가장 쉬운 일 하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듣고자 원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대체로 대의(大義)를 온 천하에 외치고자 한다면, 첫째 천하의 호걸을 먼저 사귀어 맺어야 할 것이요,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間諜)을 쓰지 않고서는 이룩하지 못하는 법이야. 이제 만주(滿洲 ())가 갑자기 천하를 맡아서 제 아직 중국 사람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판 아닌가. 그럴 즈음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솔선적(率先的)으로 항복하였은즉 저편에서는 가장 우리를 믿어 줄 만한 사정이 아닌가. 이제 곧 그들에게 청하기를, 우리 자제들을 귀국에 보내어 학문도 배우려니와 벼슬도 하여 옛날 당()()의 고사(故事)를 본받고, 나아가 장사치들의 출입까지도 금하지 말아 달라 하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친절을 달콤하게 여겨서 환영할 테니 그제야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知識層)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세민(細民)들은 멀리 강남(江南)에 장사로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虛實)을 엿보며, 그들의 호걸(豪傑)을 체결(締結)하고선 그제야 천하의 일을 꾀함직 하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러고는 임금을 세우되 주씨(朱氏)를 물색(物色)해도 나서지 않는다면 천하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려 사람을 하늘에 추천한다면, 우리나라는 잘되면 대국(大國)의 스승 노릇을 할 것이요, 그렇지 못할지라도 백구(伯舅)의 나라는 무난할 게 아냐.’

한다. 이공은 무연(憮然),

 

요즘 사대부(士大夫)들은 모두들 삼가 예법(禮法)을 지키는 판이어서 누가 과감하게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겠습니까.’

했다. 허생은 목소리를 높여,

 

이놈, 소위 사대부란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의 땅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고 뽐내니 어찌 앙큼하지 않느냐. 바지나 저고리를 온통 희게만 하니 이는 실로 상인(喪人)의 차림이요, 머리털을 한 데 묶어서 송곳같이 찌는 것은 곧 남만(南蠻)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니, 무엇이 예법(禮法)이니 아니니 하고 뽐낼 게 있으랴. 옛날 번오기(樊於期)는 사사로운 원망을 갚기 위하여 머리 잘리기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자기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고 호복(胡服)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거늘, 이제 너희들은 대명(大明)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 오히려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끼며, 또 앞으로 장차 말달리기칼치기창찌르기활 튀기기돌팔매 던지기 등에 종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고서 제 딴은 이게 예법이라 한단 말이냐. 내가 평생 처음으로 세 가지의 꾀를 가르쳤으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하지 못하면서 네 딴에 신임받는 신하라 하니, 소위 신임 받는 신하가 겨우 이렇단 말이냐. 이런 놈은 베어 버려야 하겠군.’

하고는,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공은 깜짝 놀라 일어나 뒷들창을 뛰어나와 달음박질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으나 허생은 벌써 집을 비우고 어디론지 떠나버렸다.”

 

 

[D-001]허생(許生) : 여러 본에는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서는 옥류산관본을 따라서 추록하였다.

[D-002]은행나무 : 흔히들 살구나무로 해석하나 잘못된 것이다.

[D-003]도고(都庫) : 물건을 도거리로 혼자 맡아서 파는 일.

[D-004]해곡(海曲) : 여기서는 전라도 부안(扶安)을 가리킨 말.

[D-005]이완(李浣) : 조선 효종(孝宗) 때 무신. 자는 징지(澄之).

[D-006]어영대장(御營大將) : 어영청(御營廳)의 주장(主將). 종이품(從二品).

[D-007]와룡선생(卧龍先生) :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호.

[D-008]김류(金瑬)와 장유(張維) : 이 둘은 모두 조선 인조(仁祖)의 소위 반정공신(反正功臣). 김류의 자는 관옥(冠玉)이요, 장유의 자는 지국(持國). ‘수택본서울대학본대만영인본(臺灣影印本)’에는 이귀(李貴)김류(金瑬)로 되었고, ‘계서본(溪西本)’자연경실본(自然經實本)’박영철본광문회본(光文會本)’김택영본(金澤榮本)’김택영중편본(金澤榮重編本)’주설루본국립도서관본에는 훈척(勳戚) 권귀(權貴)로 되었으나, 여기에서는 일재본옥류산관본(玉溜山館本)’녹천산관본(綠天山館本)’에 의하였다.

[D-009]빈공과(賓貢科) : ()으로부터 이미 빈공과를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유학생을 받았다.

[D-010]주씨(朱氏) : ()의 황족(皇族).

[D-011]백구(伯舅) : 제후 중에 가장 큰 나라. 또는 황제의 맏외숙의 나라.

[D-012]() : ()와 같은 뜻으로 썼다.

[D-013]옛날 …… 않았고 : 번오기(樊於期)는 전국 시대 때 진()의 장수 이름. 일찍이 망명하여 연()에 갔다가 형가(荊軻)에게 제 머리를 주어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사기(史記) 형가전(荊軻傳)에 나온다.

[D-014]무령왕 …… 않았거늘 : 무령은 전국 때 조()의 임금 조옹(趙雍). 무령은 시호. 사기 조세가(趙世家)에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허생후지(許生後識)

 

 

혹자는 이르기를,

그이는 황명(皇明)의 유민(遺民)이야.”

한다. 숭정(崇禎) 갑진년(甲辰年) 뒤로 명의 사람들이 많이들 동으로 나와 살았으니 허생도 혹시 그런 분이라면 그 성은 반드시 허씨가 아니리라 생각된다. 세속에서 전하는 말이 있으니 다음과 같았다.

조 판서(趙判書) 계원(啓遠)이 일찍이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어 순행차로 청송(靑松)에 이르렀을 때, 길 왼편에 웬 중 둘이 서로 마주 베고 누웠다. 앞선 마졸(馬卒)이 비켜달라 고함을 쳤으나 그들은 피하지를 않고, 채찍으로 갈겨도 일어나지 않기에 여럿이 붙들어 끌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 이르러 가마를 멈추고는,

 

어디에 살고 있는 중들이냐.’

하고 물었더니, 두 중은 일어나 앉아 한결 더 뻣뻣한 태도로 눈을 흘기고 한참 동안 있다가 하는 말이,

 

너는 헛된 소리를 치며 출세를 하여 감사의 자리를 얻은 자가 아니냐.’

한다. 조가 중들을 보니 한 명은 붉은 상판이 둥글고, 또 한 명은 검은 상판이 길었으며, 말하는 태가 자못 범상치 않았다. 가마에서 내려 그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중은,

 

따르는 자들을 물리치고 나를 따라 오려무나.’

한다. 조는 몇 리를 따라 가노라니 숨은 가빠지고 땀은 자꾸만 흘러 좀 쉬어서 가기를 청했더니 중은 화를 내어,

 

네가 평소에 여러 사람들과 있을 때는 언제나 큰소리를 하면서 몸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선봉(先鋒)을 맡아서 대명(大明)을 위하여 복수와 설치를 하겠다고 떠들더니, 이제 보아 몇 리의 걸음도 못 걸어서 한 자국에 열 번 헐떡이고, 다섯 자국에 세 번을 쉬려고 하니 이러고서 어찌 요()()의 벌판을 맘대로 달릴 수 있겠느냐.’

하고 꾸짖었다. 그리고 어떤 바위 밑까지 닿으니 나무에 기대어서 집을 만들고, 땔나무를 쌓고는 그 위에 가 눕는 것이었다. 조는 목이 몹시 말라 물을 청하였다. 중은,

 

에퀴이, 귀인이니 또 배도 고프겠지.’

하고는, 황정(黃精)으로 만든 떡을 먹이려고 솔잎 가루를 개천 물에 타서 주었다. 조는 이마를 찡그리며 마시지 못한다. 중은 또,

 

요동 벌은 물이 귀하므로 목이 마르면 말 오줌을 마시는 것이 일쑤렷다.’

하며, 크게 호통치고는, 두 중은 마주 부둥켜 안고 엉엉 울면서,

 

손 노야(孫老爺), 손 노야.’

하고 부르더니, 조에게,

 

오삼계(吳三桂)가 운남(雲南)에서 군사를 일으키어 강소(江蘇)와 절강(浙江) 지방이 소란한 것을 네가 아느냐.’

하고 묻는다. 조는,

 

들은 적이 없소이다.’

하였더니, 두 중은 탄식을 하면서,

 

네가 방백(方伯)의 몸으로서 천하에 이런 큰 일이 있건마는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는 함부로 큰소리만 쳐서 벼슬자리를 얻었을 뿐이로고.’

한다. 조는,

 

스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였더니, 중은,

 

물을 필요가 없어. 세상에는 역시 우리를 아는 이가 있을거야. 너는 여기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렷다. 내가 우리 선생님하고 꼭 같이 와서 너에게 이야기를 하련다.’

하고는, 일어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뒤에 해는 지고 오래 지나도 중은 돌아오지 않는다. 조는 밤 늦도록 중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나 밤은 깊어 푸나무에는 우수수 바람 소리가 나면서 범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는 기겁을 하고 거의 까무러쳤다. 조금 뒤에 여럿이 횃불을 켜들고 감사를 찾아왔다. 그리하여 조는 거기서 낭패를 당하고 골짜기 속을 빠져 나왔다. 이 일이 있은 지 오래 되어도 조는 언제고 마음이 불안하여 가슴속에는 한을 품게 되었다. 뒷날, 조는 이 일을 우암 송 선생(尤菴宋先生)에게 물었더니, 선생은,

 

이는 아마도 명()의 말년 총병관(總兵官) 같아 보이네.’

한다. 조는 또,

 

그는 언제나 저를 깔보고, 네니 또는 너니 하고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선생은,

 

그들이 스스로 우리나라 중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고, 땔나무를 쌓아둔 것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의미함일세.’

한다. 조는 또,

 

울 때면 반드시 손 노야를 찾으니 이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했더니, 선생은,

 

그는 아마 태학생(太學生) 손승종(孫承宗)을 가리킨 듯싶네. 승종이 일찍이 산해관(山海關)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만큼, 두 중은 아마 손()의 부하인 듯하네.’

하였다.”

 

 

[C-001]허생후지(許生後識) : 여러 본에 모두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아서 추록하였다.

[C-002] : 또 한 편이 발견되었으므로 구별하기 위해서 표시하였다.

[D-001]숭정(崇禎) 갑진년 : 1664. 실은 청 나라 강희 4년이었으나 조선에서는 오히려 명의 연호인 숭정을 썼다.

[D-002]계원(啓遠) : 조선 효종 때 관리. 자는 자장(子長).

[D-003]() : ‘박영철본에는 조공(趙公)으로 되었으나 김택영(金澤榮)이 추가한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수택본 주설루본을 좇았다. 이 후지(後識) 중 다음에 나오는 것도 이에 따랐다.

[D-004]황정(黃精) : 한약재의 일종. 도사(道士)들이 장생(長生)을 위하여 복용했다 한다.

[D-005]와신상담(臥薪嘗膽) : 전국 때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 나라가 망했음을 한하여 땔나무 위에 누워서 괴로움을 체험하여 광복을 맹세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허생후지(許生後識)

 

 

나의 나이가 20(1756) 되었을 때 봉원사(奉元寺)에서 글을 읽었는데, 어떤 손님 하나가 음식을 적게 먹으며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선인(仙人) 되는 법을 익혔다. 그는 정오가 되면 반드시 벽을 기대어 앉아서 약간 눈을 감은 채 용호교(龍虎交)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가 자못 늙었으므로 나는 존경하였다. 그는 가끔 나에게 허생의 이야기와 염시도(廉時道)배시황(裵是晃)완흥군부인(完興君夫人) 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잇달아 몇 만언(萬言)으로써 며칠 밤을 걸쳐 끊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거짓스럽고 기이하고 괴상하고 휼황하기 짝이 없는 것들로, 모두 들음직하였다. 그때 그는 스스로 성명을 소개하기를 윤영(尹映)이라 하였으니, 이는 곧 병자년(1756) 겨울이다. 그 뒤 계사년(1773) 봄에 서쪽으로 구경갔다가 비류강(沸流江)에서 배를 타고서 십이봉(十二峯) 밑까지 이르자, 조그마한 초암 하나가 있었다. 윤영이 홀로 중 한 사람과 이 초암에 붙여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듯이 기뻐하면서 서로 위안의 말을 나누었다. 대체로 열여덟 해를 지났지마는 그의 얼굴은 더 늙지 않았다. 나이 응당 팔십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걸음이 나는 듯하였다. 나는 그에게,

 

허생 이야기 말입니다. 그 중 한두 가지 모순(矛盾)되는 점이 있더군요.”

하고 물었더니, 노인은 곧 풀이해 주는데 역력히 그저께 겪은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는 또,

 

자네, 지난날 창려(昌黎)의 글을 읽더니 의당.”

하고는, 또 뒤를 이어서,

 

자네, 일찍이 허생을 위해서 전()을 쓰려더니 이젠 글이 벌써 이룩되었겠지.”

하기에, 나는 아직 짓지 못했음을 사과하였다. 이야기 할 때 나는,

 

윤 노인(尹老人).”

하고 불렀더니, 노인은,

 

내 성은 신()이요, 윤이 아니거든. 자네 아마 잘못 안 것일세.”

한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의 이름을 물었더니 그는,

 

내 이름은 색()이라우.”

한다. 나는,

 

영감님의 옛 성명은 윤영이 아닙니까. 이제 갑자기 고쳐서 신색이라니 무슨 까닭이십니까.”

하고 따졌더니, 노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

 

자네가 잘못 알고서 남더러 성명을 고쳤다구.”

한다. 나는 다시 따지려 했으나 노인은 더욱 노하여 파란 눈동자가 번뜩일 뿐이다.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그 노인이 이상한 도술을 지닌 분임을 알았다. 그는 혹시 폐족(廢族)이나 또는 좌도(左道)이단(異端)으로서 남을 피하여 자취를 감추는 무리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문을 닫고 떠날 무렵에도 노인은,

 

허생의 아내 말씀이요, 참 가엾더군요. 그는 마침내 다시 주릴 거요.”

하면서, 혀를 찼다. 그리고 또 광주(廣州)신일사(神一寺)에 한 노인이 있어서 호를 삿갓 이생원이라 하는데 나이는 아흔 살이 넘었으나 힘은 범을 껴잡았으며, 바둑과 장기까지도 잘 두고 가끔 우리나라 옛 일을 이야기할 제 언론이 풍부하여 바람이 불어 오는 듯했다. 남들은 그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으나 그의 나이와 얼굴 생김을 듣고 보니 윤영(尹映)과 흡사하기에 내가 그를 한번 만나보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세상에는 물론 이름을 숨기고 깊이 몸을 간직하여 속세를 유희(遊戲)하는 자가 없지 않은즉 어찌 이 허생에게만 의심할까보냐. 평계(平谿) 국화 밑에서 조금 마신 뒤에 붓을 잡아 쓴다. 연암(燕巖)은 기록하다.

 

 

[C-001]허생후지(許生後識) : 여러 본에 모두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이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아 추록하였으며, 또 여러 본에는 모두 이 편이 없었고, 다만 일재본옥류산장본(玉溜山莊本)’녹천산장본(綠天山莊本)’을 좇아서 추록하였다.

[D-001]용호교(龍虎交)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물과 불의 교합 도인술(導引術)의 하나.

[D-002]염시도(廉時道) : 신광수(申光洙) 석북잡록(石北雜錄)과 이원명(李源命) 동야휘집(東野彙輯)에는 염시도(廉時度)로 되어 있고, 일명씨의 성수총화(醒睡叢話)에는 염희도(廉喜道)로 되어 있다.

[D-003]배시황(裵是晃) :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배시황(裵是熀)으로 되어 있고, 이규경(李圭景)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藁)에는 배시황(裵是愰)으로 되어 있다.

[D-004]완흥군부인(完興君夫人) : 완흥군은 인조(仁祖)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삼등의 하나인 이원영(李元榮)인 듯하다.

[D-005]비류강(沸流江) : 평안도 성천(成川)에 있는 물 이름.

[D-006]십이봉(十二峯) : 성천부 동북 30리에 있는 흘골산(紇骨山). 속칭 무산(巫山) 12봉이라 한다.

[D-007]창려(昌黎) : 한유(韓愈)의 봉호.

[D-008] : 원전(原典)에 한 글자가 탈락되었다.

[D-009]평계(平谿) : 연암서당(燕巖書堂) 앞에 있는 시내 이름,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차수평어(次修評語)

 

 

차수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는 대체로 규렴(虬髥)으로써 화식(貨殖), 합친 것이었으나 그 중에는 중봉(重峯)의 봉사(封事), 반계(磻溪)의 수록(隨錄), 성호(星湖)의 사설(僿說) 등에서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능히 말하였다. 문장이 더욱 소탕(疎宕)하고 비분(悲憤)하여 압수(鴨水) 이동에 있어서의 유수한 문자이다. 박제가(朴齊家)는 삼가 쓰다.”

 

[C-001]차수평어(次修評語) : 여러 본에는 모두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주설루본을 좇아 추록하였다. 차수(次修)는 박제가(朴齊家)의 자.

[D-001]규렴(虬髥)화식(貨殖) : () 두광정(杜光庭)이 지은 규렴객전(虬髥客傳)과 한()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화식열전(貨殖列傳).

[D-002]중봉(重峯) : 조선 선조(宣祖) 때 유학자 조헌(趙憲)의 호.

[D-003]봉사(封事) : 조헌이 중국에 갔다 돌아와서 임금에게 올린 글.

[D-004]반계(磻溪) : 조선 실학파(實學派) 학자 유형원(柳馨遠)의 호.

[D-005]수록(隨錄) : 유형원이 실학의 이론을 저술한 책.

[D-006]성호(星湖) : 조선 실학파 학자 이익(李瀷)의 호.

[D-007]사설(僿說) : 이익의 저서. 그의 제자 안정복(安鼎福)이 유선하여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을 만들었다.

[D-008]박제가(朴齊家)는 삼가 쓰다 : 어떤 본에는 이를 중존(仲存)의 평어라 하였으나 잘못되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