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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古朝鮮[王儉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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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문헌기록

2.1. 《구삼국사》(舊三國史)

2.2. 《삼국사기》(三國史記)

2.3. 《삼국유사》(三國遺事)

2.4. 《제왕운기》(帝王韻紀)

2.5. <조연수(趙延壽) 묘지명>

2.6. 《설암잡저》(雪巖雜著) <묘향산지>(妙香山誌)

2.7. 《응제시주》(應濟詩註)

2.8.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9.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2.10. 《금오신화》(金鰲新話)

2.11. 《청학집》(靑鶴集)

2.12. 오계일지집(梧溪日誌集)

3. 구전문학

3.1. 향산제

3.2. 환인, 환웅과 연결이 없는 단군 신화

3.3. 구빈마을 전설

3.4. 구미호 관련 전설

4. 관련 유적

4.1. 구월산(九月山) 삼성사(三聖祠)

4.2. 마니산(摩利山) 참성단(塹星壇)

4.3. 전등산(傳燈山) 삼랑성(三郞城)

5. 신화소

5.1. 환인

5.2. 박달나무(檀樹)

6. 단군신화의 지리

2.2.삼국사기》(三國史記)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 夲校勘 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21년(247) 봄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다.

2.3.삼국유사》(三國遺事)

古朝鮮【王儉朝鮮】

고조선【왕검조선】

魏書云 "乃徃二千載 有壇君王倹, 立都阿斯逹【経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州地或 云 在開城東 今白岳宮是.】開國號朝鮮 與髙同時."

《위서》(魏書)에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서, 아사달(阿斯逹)[원주1]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불렀으니 고(高: 요 임금)[6]와 같은 때였다."라고 하였다.[7]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庻子桓雄 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徃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옛날에 환인(桓因)[원주2][9]의 서자[10] 환웅(桓雄)이 있어서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웅은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太伯山頂)[원주3]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그곳을 신시(神市)라 부르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부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니 무릇 인간의 360여 일들을 주관하여 세상에 있으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霊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軰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 而婚之孕 生子號曰 壇君王倹.

이때 한 범과 한 곰이 있어서 같은 굴에 살았는데, 항상 신웅(神雄)[12]에게 기도하기를 변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때 신이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13] 20매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이 받아서 이를 먹고 삼칠일(三七日: 21일) 동안 삼갔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범은 삼가지 못해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함께 혼인을 맺지 못하므로 매양 단수(壇樹) 아래에서 아이 가지기를 바라며 빌었다. 웅이 이에 가화(假化)하고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배니 아들을 낳으므로 단군왕검이라 불렀다.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 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旀逹.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 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당고(唐高) 즉위 50년 경인(庚寅)[원주4][15]평양성(平壤城)[원주5]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 칭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또는 궁홀산(弓忽山)[원주6]이나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림이 1,500년이었다. 주(周) 호왕(虎王: 주무왕)[18] 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阿斯達)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기이> 제1 -고조선(왕검 조선)-

壇君記云 '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 有産子名曰 夫婁.' 今拠此記 則解慕漱私河伯之女 而後産朱蒙 壇君記云 '産子名曰 夫婁.', 夫婁與朱蒙 異母兄弟也.

《단군기》(檀君記)에는 '군(君;단군)이 서하(西河) 하백(河伯)의 딸과 더불어 혼인하니,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고 하였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19]에 따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의 딸과 사통해서 뒤에 주몽(朱蒙)이 났다고 하고, 《단군기》에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고 하니,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이다.

《삼국유사》 <기이> 제1 -고구려-

2.4.제왕운기》(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1287년.

初誰開國啓風雲 /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시작했나?

釋帝之孫名檀君 / 제석(帝釋)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

本紀曰 "上帝桓因有庶子曰 雄. 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 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 云云.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婚 而生男 名檀君. 據朝鮮之域爲王, 故 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爲神, 不死故也."

본기(本紀)》에는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어 웅(雄)이라 하였다. 운운. 이르길 '삼위태백(三危太白)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습니다.'라 하므로,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鬼)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太白山頂)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다. 이를 단웅천왕(檀雄天王)라고 부른다. 운운. 손녀에게 약을 마시게 하여 사람의 몸으로 만들고, 단수신(檀樹神)과 더불어 혼인시켜서 남자를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朝鮮)의 영역에 웅거하여 왕이 되었으니, 고로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濊)와 맥(貊) 모두가 단군의 후손이다. 다스린 것이 1,038년이고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들어가 신(神)이 되니, 죽지 않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竝與帝高興戊辰 / 고(高: 요임금)와 함께 나란히 무진(戊辰)에 흥하여,

經虞歷夏居中宸 / 우(虞: 순임금)를 지나 하(夏)를 거쳐 대궐에 살다가

於殷虎丁八乙未 / 은(殷) 호정(虎丁: 무정) 8년 을미(乙未)[20]

入阿斯達山爲神 /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네.[21]

亨國一千二十八

/ 나라를 향유함이 1,028년인데

無奈變化傳桓因

/ 어쩔 수 없이 변화하여 환인(桓因)에 전했으나

却後一百六十四

/ 도리어 164년이 지난 뒤에

仁人聊復開君臣

/ 어지신 분(기자)[22]이 군신(君臣)을 다시 열었도다.[23]

《제왕운기》 하권

《제왕운기》의 기록은 대체로 《삼국유사》와 비슷하지만 다소의 차이가 있다. 우선 환웅의 이름을 단웅으로도 기록하고 있으며, 호랑이와 곰의 설화는 없고, 단웅의 손녀[24]가 약을 먹어 사람으로 변한 뒤 단수신[25]과 소통하여 낳은 것이 단군으로 되어 있다. 이는 천손이 모계로 이어진 특이한 사례이다.

또한 뒤이어 부여비류국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 놓았다.

(전략)신(臣)이 일찍이 상국(上國)에 사자로 갔을 때 요하 가에 있는 노변(路邊)에 무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부여 부마(駙馬)대왕의 무덤이다'라고 하였다. 또 가탐(賈耽)[26]은 "큰 평원의 남쪽의 압록(鴨綠)은 모두가 부여의 옛 땅이니 북부여란 것은 마땅히 요하 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 개국(開國)은 대개 후조선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동명 본기》에서 적기를, "비류왕 송양이 일러 말하길 '나는 선인의 후예로 대대로 왕이 되었다. 금일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용이 되는 게 어떠하겠는가?'라고 한 것은 이 또한 단군의 후손이 아니겠는가?"(比流王松壤謂曰 予以仙人之後 累世爲王 今君造國日淺. 爲我附庸可乎 則此亦疑檀君之後也)라고 하였다.

《제왕운기》문화콘텐츠닷컴 사이트, 김경수 역 .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 天王。 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 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濊與貊, 皆檀君之理。

2.9.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濊)와 (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 中 《단군고기

4. 관련 유적

4.1. 구월산(九月山) 삼성사(三聖祠)

4.2. 마니산(摩利山) 참성단(塹星壇)

4.3. 전등산(傳燈山) 삼랑성(三郞城)

5. 신화소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古記)》의 단군 신화를 어느 정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 환인서자: 여기서 서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자, 서자 개념이 아니라 고대 문헌 기록에는 "아들","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 등의 의미로 고대 사서에 사용한 예가 있다.
  • 환웅: 천손강림의 모티브를 반영하고 있다. 반고 신화를 비롯하여 중국에서는 땅에서 신이 등장하지만 단군 신화에서는 천상의 환웅이 땅으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고대 한국과 중국의 계통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천손 강림 신화는 한민족 뿐 아니라 주로 동북아시아 유목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신화 유형이며 고대 한반도인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건국 신화까지 이어진다.
  • 삼위 태백: '3개의 봉우리가 있는 태백산'이라는 해석도 있고, '삼위산과 태백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오늘날의 평안북도요동 반도 사이에 있는 으로 추측.
  • 천부인 세 개: 천부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는 정권을 상징하는 (비파형) 동검, 제사를 상징하는 거울, 풍요를 상징하는 방울 등으로 추정한다. 최남선이 일본 신화의 삼신기(세가지의 신기)와 엮기 위해 만든 가설이다.
  • 태백산: 일연은 묘향산으로 비정했는데, 이는 대동강을 대동맥으로 삼는 평양 중심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고조선이 요동에서 출범했으며 단군 신화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입장에서는 요동 ~ 압록강 일대의 여타 산을 지목한다.하지만 현대 한국인의 일반적 인식에서는 보통 백두산으로 비정된다.
  • 신단수(단수): 이그드라실과 같은, '하늘과 땅을 잇는' 나무의 모티프를 상징한다. 일연은 '제단 단(壇)'을 사용했으나, 후대의 기록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을 사용하여 해석이 나뉜다.
  • 풍백, 운사, 우사: 각각 바람, 구름, 비를 상징하며, 농경 사회의 관념을 반영한다. 참고로 한국 고유의 신 명칭이 아니라 일연 대에 중국의 신 이름을 끌어온 것으로, 후대에 윤색되거나 단순히 그 뜻을 표현하기 위해 한자어가 선택된 것이다.
  • 범 한마리: 환웅 집단과 교화를 이루지 못한 집단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쪽에서 거주하는 토착민일 가능성이 높다. 호랑이를 숭상하는 기록이 있어 '동예'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현재도 한반도 동쪽 러시아 극동지역 연해주에는 호랑이를 숭배하는 소수민족 우데게이족[34]아무르강 근처에는 곰을 숭배하는 소수민족 니브흐족이 살고있어 그 흔적이 유지되고 있다.
  • 곰 한 마리: 곰을 숭상하는 집단으로 비정되며, 만주와 한반도 북쪽에서 거주하는 토착민일 가능성이 높다. 이주민에 순응한 집단으로 상정된다. 함경도 지방 전설에 나오는 토착 민족인 마고할미 세력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민족 기원설 중 가장 유력한 남북 이중 형성설[35]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
  • 단군 왕검: 이주민인 환웅 집단과 '곰을 숭상하는 집단' 부족이 결합한 결과물로 비정되며, 환웅 집단에서 추대된 통치자. '단군'을 제사와 관련된 권위로, '왕검'을 정치 지도자로 추정하여 제정일치 사회라고 보는 해석이 주류이다.
  • 당고(중국 임금)가 즉위한 지 50년: 당시 중국의 달력으로 계산하면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의 청동기 문명과 중국 청동기 문명의 발흥 사이에는 천 년 이상 차이가 있으므로, 후대에 한국사와 중국사의 연대를 맞추기 위해 끌어올린 연대라고 추정한다.
  • 평양성: 지금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고려의 서경(지금의 평양)이 단군신화의 평양과 동일한 곳이라고 해서 그렇다. 하지만 고조선 건국시의 최초 중심지는 요서나 요동으로 추정되므로 평양성이 지금의 북한의 평양일 가능성은 없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단군신화도 평양중심설화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또는 이 평양성이 지금의 평양은 맞고, 단군신화가 평양 지역의 어떤 집단에 대한 신화였던 것이 고조선 건국신화로 덮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단군조선은 부정된다.
  • 백악산 아사달: 충청북도 괴산에 있는 백악산이 아니라 요동 근처의 어느 산이다.[36]
  • 1500년 동안 다스렸다: 당연히 실제 통치자의 수명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통치자의 위대함을 주장하기 위한 후대의 윤색이다. 관련 기록들을 볼 때 신선 사상이 융화된 것으로 보인다. 또는 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기자: 현재 기원전 4세기경부터 존재했음이 확인되는 기자조선 전승을 반영한 것이나, 한국 학계에서는 고고학적 문제점 등을 이유로 수용하고 있지 않다.
  • 장당경: 황해도 유주에 관련 전승이 남아 있다. 개마고원이라는 설도 있다.
  • 산신이 되었다: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5.1. 환인[편집]

환인(桓因), 환인(桓仁), 혹은 단인(檀因).

제석천, 혹은 상제(上帝)로 여겨진다. 제석천 또한 상제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제석천과 동일시 되는 환인을 상제로 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가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일단 제석천의 원래 이름인 인드라를 한역하여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라고도 하는데, '석가(釋迦)'는 '능(能)'이라는 의미[37], '제환(提桓)'은 '천(天)'의 뜻, '인다라(因陀羅)'는 '제(帝)'의 의미를 가진다. 이 '석가제환인다라'를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 하며, 이 중에서 '환인(桓因)'을 떼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 최초 기록자인 《삼국유사》의 책임자가 승려 일연이었기 때문에, 단군을 불교와 섞어버린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윤내현은 유학자였던 이승휴가 불교적 개념으로 《제왕운기》를 서술했을리 없고, 인용한 책도 《본기》로 《삼국유사》와 다르기 때문에 불교적 윤색론을 부정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석가 제환 인다라'에서 단어 첫 자 '제'가 아닌 중간자 '환'을 연결해서 환인이라는 이름을 지어냈다고 보는 것은 억지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 일연 스님은 '제석환인'이라 쓰지 않고, '환인이 있는데 제석이라고도 한다'고 분리해서 적었다.

'하늘님'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교적 의미를 덧붙혔을 것이라는 설이 있고, 빛, 태양 숭배 사상에서 '환한 님'이 음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환웅은 신라의 차차웅이라는 이름과 연계하여 하늘님보다는 낮은, 땅의 무당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5.2. 박달나무(檀樹)

박달나무는 흔히 못 보고 넘기기 쉬우며 그다지 눈길을 끌지 않지만 단군 신화에서 중요한 상징물이다.

환웅이 내려온 곳이 신성한 박달나무(神檀樹)이며, 단군이 태어난 곳은 박달나무 아래이다. 우리 나라에는 신목(神木)이나 목신(木神) 신앙이 널리 퍼져 있는데, 신(神)이 나무에 내려오거나 나무에서 신인(神人)이 태어나는 것은 이러한 목신 신앙과 이어서 생각할 수 있다.

단군의 이름부터가, 단(檀)은 곧 '박달나무 단'이며 따라서 단군을 "박달나무의 임금"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시베리아와 몽골 등 동북아시아에서 많이 자라며 한민족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 유목 민족들도 신성시하는 나무이다.

다만 여러 문헌에서 박달나무 단 대신에 '제단 단(壇)'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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