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80586

 

경기전(慶基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조선시대에는 국조인 태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진전을 서울에는 문소전(文昭殿) 한 곳, 외방에는 전주의 경기전, 영흥의 준원전,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등 다섯 곳에 두고 유지하였다. 조선 왕실의 관향인 전주에 있던 태조의 영전에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442년(세종 24)의 일이다. 이듬해에는 새로 태조의 어진을 경기전에 봉안하였고 제위전을 두어 제사의 비용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

 

제1장

한문

海東六龍飛 莫非天所扶 古聖同符

해동육룡비 막비천소부 고성동부

중세국어

海東 六龍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ᄒᆞ〮시니〮

현대어

해동(우리나라)의 여섯 마리 용이 나시어(=왕이 되시어)

(하는) 일마다 하늘의 복이니 옛 성인들과 같으니(이다)

* 목조는  전주 출신,  익조, 도조, 환조, 이성계는 함흥태생이니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509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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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033

 

태조(太祖)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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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1392∼1398.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성계(李成桂)이다. 처음 자는 중결(仲潔)이다. 호는 송헌(松軒) · 송헌거사(松軒居士)이다. 등극 후에 이름을 이단(李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화령부(和寧府: 영흥)에서 태어났다.

이자춘(李子春)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다.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다.

그의 선조 이안사(李安社)가 원나라의 지배 아래 여진인이 살고 있던 남경(南京: 간도지방)에 들어가 원나라의 지방관이 된 뒤부터 차차 그 지방에서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李行里), 손자 이춘(李椿)이 대대로 두만강 또는 덕원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원나라에 벼슬했다.

이자춘도 원나라의 총관부(摠管府)가 있던 쌍성(雙城)의 천호로 있었다. 이자춘은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쌍성총관부 공격 때 내응해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고려의 벼슬을 받았다. 이자춘은 1361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되어 동북면(東北面) 지방의 실력자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wVLMz-Xfdw

 

 

이안사: 송도> 전주> 이자춘 삼척으로 이주> 이성계는 홍건적과 원나라 자적장을 물리침> 원나라 공격을 지시한 최영과 공민왕을 거역하고 왕위를 차지함> 조선 건국

해동6룡은 목조 익조 도조 환조 4祖에 세종의 조부 태조와 父 태종을 말함.

https://www.youtube.com/watch?v=gLlSjLuLhD8

 

https://namu.wiki/w/%EC%9C%84%ED%99%94%EB%8F%84%20%ED%9A%8C%EA%B5%B0

 

위화도 회군 - 나무위키

이 무렵 명나라와 고려의 관계는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었으나, 공민왕 말기로 갈수록 점점 틈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제32대 우왕 시기에 정점을 찍었는데, 명나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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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명나라 공격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최영은 그 이후부터는 요동 공격을 주장하는 세력의 핵심이 되어, 인척 관계를 맺은 우왕과 더불어 요동 원정을 논의했다. 우왕은 요동 공격에 대한 자문을 최영에게 구했고, 최영은 이에 대해 찬성했다. 즉 요동 공격이라는 정책의 핵심은 바로 최영이었다.

이 때문에 요동 공격을 반대하는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 이자송(李子松)이 직접 최영의 집에 찾아가 요동 공격을 만류했지만, 이미 결심을 내린 최영은 이자송을 곤장으로 두들겨 패서 유배를 보낸 다음에 곧 죽여버렸다. 

사냥을 핑계로 이동하며 요동 공격 준비에 착수하던 우왕은 지금의 황해북도 봉산군인 봉주(鳳州)에 도착했을 무렵 최영과 이성계를 불러 요동 정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우왕은 기본적으로 모든 일을 최영하고만 단 둘이서 논의하곤 했었으나, 이번 요동 정벌은 예외적으로 처음, 이성계에게도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워낙에 중대한 사안인만큼 이성계가 고려 말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고, 임견미 등을 소탕하는데 최영과 더불어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우왕이 이성계에게도 동의를 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양을 치는데 힘을 써주라는 우왕의 말을 들은 이성계는 여기서 우왕에게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에서 유명한 <사불가론>(四不可論)이다.
(중략)
"만일 명나라 영토를 침범함으로써 천자로부터 벌을 받는다면 즉각 나라와 백성들에게 참화가 닥칠 것이다. 내가 이치를 들어서 회군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으나 주상께서는 잘 살피지 않으시고 최영 또한 노쇠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그대들과 함께 직접 주상을 뵙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자세히 아뢰고 측근의 악인들을 제거해 백성들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고려사》 우왕 14년 5월

이에 장수들이 동의함으로써, 원정군의 회군이 결정되었다.

일단 회군이 결정되자, 원정군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진군을 개시했다. 군대가 1일 30리를 간다해도 12km인데, 당시 원정군의 회군 루트에는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등이 있어 도하 작전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더욱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정군의 총 숫자는 50,000명으로, 빠르게 움직이기에는 숫자가 많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정군은 400km를 10일만에 주파하는 괴력을 보였다. 내키지 않은 채로 북상하던 원정군이 서경에서 위화도까지 가는데 20일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회군 당시에는 두 배 먼 거리를 오히려 절반의 시일만에 남하했던 것이다.

12. 결과와 영향

이성계는 잠시 동안 허수아비 왕으로 어린 창왕(제33대)을 앉혔다가 공양왕(제34대)으로 갈아치운 뒤, 결국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렇게 역성혁명이 성공해 5백 년 고려 왕조가 멸망했고, 새로운 5백 년 왕조인 조선이 건국되었다.

이성계 이전에도 무신들이 고려의 권력을 쥐고 뒤흔든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성계는 이전까지의 무신들과는 다르게 명망과 신흥 유신들의 지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모두 결합한 초유의 군벌이었다. 그 후 위화도 회군에서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조민수의 도전과 정몽주(鄭夢周)의 마지막 저항이 있었으나 자신의 실력 뿐만 아니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대부들(정도전조준남은 등)의 지지를 얻은 이성계는 이 모든 도전을 이겨내면서 새로운 왕조를 개국하기에 필요한 명분과 입지를 충분히 갖추었다.

또한, 명나라가 흥하고 북원이 망해가는 역사적인 전환기에서 나올 뻔한 고려의 마지막 북진 정책인 제2차 요동정벌이 엮여 있어, 한국사 전체를 놓고 봐도 가장 극적인 사건이자 흥미진진한 논쟁 거리(만약 요동 정벌을 그대로 강행했다면?)로 회자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동 정벌을 무산시키면서 권력을 차지하여 새 왕조를 창건한 이성계는 훗날 자신이 국왕으로 재위했던 때에 다시 요동 정벌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반란으로 권력을 잃고 말았다. 한국사에서 요동 정벌은 '독이 든 성배'였던 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hmaxRu072M

 

태조 어진전

https://www.youtube.com/watch?v=w78YLAry9zA

 

 

https://www.youtube.com/watch?v=ClgLFjQ9ngo

 

 

https://www.youtube.com/watch?v=zHYuy8lprHI

 

 

전주 풍패지관(全州 豊沛之館)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C%A3%BC_%ED%92%8D%ED%8C%A8%EC%A7%80%EA%B4%80

 

전주 풍패지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주 풍패지관(全州 豊沛之館)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 전주부성을 창건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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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패지관(全州 豊沛之館)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풍패(豊沛) 또는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말은 새로운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유방이 고향인 지금의 강소성 패군 풍현에서 기병(起兵)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제위(帝位)에 오르자 고향 사람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해 준 일이 있다. 그 뒤부터 제왕의 고향은 모두 풍패라고 대칭(代稱)한다.

이성계의 실제 출생지는 함경도 영흥이지만,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이자 전주 이씨의 관향(貫鄕)으로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라도 전주(全州)를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 하였다. 한 고조 유방이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향인 패군(沛郡) 풍현(豊縣) 즉 풍패(豊沛)에 들러 승리를 기념하며 고향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듯, 이성계는 왜구를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향인 전주(全州)에 들러 황산대첩의 대승을 기념하며 전주 이씨 종친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으며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포부를 드러냈다.

전주는 조선 왕조의 풍패지향이고 조선시대 전라도의 위상을 말해주는 전국8도중 가장크고 웅장했던 전라감영의 건물중 외국사신등의 귀빈들을 위한 객사에 중국사신이 적어놓은 풍패지관이란 현판이 아직도 남아있다.

 

대풍가(大風歌)

ㅡ 한고조(漢高祖) 유방

大風起兮雲飛揚
대풍기혜운비양, 큰 바람 일고 구름은 높게 날아가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가해내혜귀고향,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安得猛士兮守四方
안득맹사혜수사방,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소냐.

 

기원전 202년 2월 28일 ~ 기원전 195 6월 1일/ 재위  
혜제  /   후임섭정
황태자 유영(기원전 196년 ~ 기원전 195년) /  재위 
한왕 /   묘호
기원전 206년 3월 ~ 기원전 202년 2월 28일
이름
태조(太祖) / 시호  
고황제(高皇帝)
신상정보
 사천군 패현 풍읍 중양리/ 출생지 
전한 내사 장안현 장/락궁//
고황후

  사망지 下 위로 2행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D%95%9C_%EA%B3%A0%EC%A0%9C

 

전한 고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은 전한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로, 자는 계(季)이다. 패현(沛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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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은 전한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로, 는 (季)이다.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

여기 이르면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잡인'이란 일반 백성을 지칭한다.

 

 

[전주한옥마을 해설] 풍경만 감상하세요. 입맛은 각기 다르니까.

5만원 점집은 이렇게 운세를 보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UaxSGqCsanU

 

 

 

12월 1일

ㅡ홍윤숙(1925~ 2015)

한 시대 지나간 계절은
모두 안개와 바람
한 발의 총성처럼 사라져간
생애의 다리 건너
지금은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추억과 북풍으로 빗장 찌르고
안으로 못을 박는 결별의 시간
이따금 하늘엔
성자의 유언 같은 눈발 날리고
늦은 날 눈발 속을
걸어와 후득후득 문 두드리는
두드리며 사시나무 가지 끝에 바람 윙윙 우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혼 돌아오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myI847B6L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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