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근세 어떤 선비가 지리산(智異山)에 유람갔는데, 한 외진 숲에 이르니, 폭포는 이리저리 흐르고 푸른 대 우거진 가운데 한 띳집이 있는데,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섰다가, 선비를 보고는 몹시 반기며 손을 맞아 솔 아래 앉혀 놓고 막걸리에 나물국으로 대접하고는 말하기를,

“이 늙은 것이 평소에 머리 빗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꼭 천 번은 빗어내린다오.”

하면서 쪽지를 내어 놓는데, 그 속에 든 것이 바로 머리를 빗는다는 소두시(梳頭詩)였다.

木梳梳了竹梳梳 목소소료죽소소

梳却千廻蝨已除 소각천회슬이제

安得大梳長萬丈 안득대소장만장

盡梳黔首蝨無餘 진소검수슬무여

얼레빗으로 솰솰 가려 낸 다음 참빗으로 훑되

천 번이나 훑어내니 이는 벌써 없어졌네

어떻게 하면 만 길 되는 큰 빗 구하여

백성의 이 모조리 훑어 없앨꼬

선비가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 내려가 절하고 그 이름을 물으니 숨기고 알려 주지 않았다. 이튿날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두세 사람이 같이 다시 찾아가보니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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