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성수시화>에 이어 허균이 25세 때에 지은 시화집 <학산초담>을 109조로 나누어 싣는다.

그 내용을 <성수시화>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도 여러 편이지만 그대로 두었다.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 원본에는 없던 것을 번역서에는 부록으로 실었다.

<학산초담>의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국역성소부부고3,민족문화추진회,1967/1989. 고전국역총서228.

허균의 시화[학산초담 성수시화],허경진역, 민음사,1982.

[학산초담 발문]

내가 어려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여러 형님들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차마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았기 때문에 게을러 빠져서 독서에 힘쓰지 않았다,

차츰 자라서는 남들이 과거하는 것을 보고 좋게 여겨 덩달아 해 보았으나,

글치레나 하는 것이 장부의 할 짓은 아니었다.

이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났으니, 세상에 나갈 뜻은 이미 사그라졌다.

10년 글읽기로 작정했으나, 아, 그 또한 늦었도다.

《학산초담(鶴山樵談)》 1부(部)를 짓는다.

명 신종(明神宗) 21년 계사년(1593, 선조26) 양월(陽月) 연등(燃燈)한 뒤 사흘 만에

교산자(蛟山子)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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