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blog.paran.com/mingkee015/32884898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6.25 전쟁은 400만여명의 인명피해와 1.000만여명의 이산가족 수많은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전쟁고아들이 생겨나고 국토의 80%이상의 국토가 파괴되고, 우리
민족사의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읍니다. 공산세력의 세계 적화 의도를 저지하고
자유를 수호하기위해 헌신한 국내,외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아
울러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를 후세에 올바로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읍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한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습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38도선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시작으로 휴전문제가 언급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비로소 휴전협정이 서명 됨으로써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은 막을 내린 것입니다.





      ☆ 6.25전쟁 상세보기 ☆

      배경과 과정전쟁일지휴전협정유엔참전국
      상황별
      일자별
      체결배경
      과정
      정전협정 본문
      참전국 기념비
      유엔기념공원

      아버지 업고 피난

      미국 국립문서보관서(National Archieves)에서
      한국전쟁 관련 흑백사진 47점이 발굴됐다.
      연합뉴스가 발굴,공개한 사진에는 난리통에 어렵게 살았던
      한국인들과 머나먼 이국의 전쟁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1·4후퇴 직후인 1951년 1월14일 한 피난민이 연로한 아버지를 업고 한강을 ! 건너고 있다.


      80일 동안 포로로 잡혀있다 구출된 미군병사들이 1951년 3월21일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했던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1950년 12월19일 대구역 앞에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안타깝다.


      연합뉴스 /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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