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상)등성이를 경계로 양지와 음지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가랑잎 이불과 백설 눈밭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중)등성이 왼켠- 가랑잎 솜이불. (하)등성이 바른켠- 눈밭.


[주]중학동기 홈피에 김종렬님이 <호명산 시산제>란 글을 실어 답글로 올려본 글입니다.

오르리팀의 등산로는 호명산 제1코스 9.3Km 5시간 소요.

상천역(춘천행 청평 다음역)⇒호명호수⇒호명산 정상⇒장자터 고개⇒청평역

산행에 동참하셨던 분들 고맙습니다.

다리는 아팠지만, 또 막판에 길을 잃고 한 20분 헤매기는 했지만 유쾌, 상쾌, 통쾌한 하루였습니다. 시산제를 축하하는 서설(瑞雪)도 내렸잖아요?

동기님들 모두 무병장수, 만수무강, 만사형통하시기를 빌었으니, 세상사 좋은 일들만 있을 겁니다. 시산제 준비에 애쓰신 정인님외 여러분들과 제수와 돼지대가리 지고 고생하신 문흠님 대식님께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기년님 부인과 제주 창식님께두요.

종렬님의 산행기를 읽으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하루 종일 걸어서 지친 다리가 억울할 정도이다. 종렬님의 산행기마다 그렇듯이, 누가 ROTC 장교 출신 아니랄까 봐서 공간과 시간의 이동이 정확히 기록되었다. 마치 실험보고서를 읽고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메모하는 것도 못 보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정확히 암기할 수 있는지 그 비법을 배워야겠다.


정상이 632.4m인 호명산(虎鳴山)의 제1코스 등산로는 깔딱고개도 자주 고개를 내밀었지만 대체로 정상의 높이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의 등성이길은 흙길이어서 관절에 무리도 없었고 쉬엄쉬엄 근육을 풀어가면서 걷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산이름에는 범님을 들먹였으나 나는 퇴깽이 새끼 한 마리 만나지 못했다.


초입에서는 전나무숲도 만났으나 산등성이 등산로 주변은 온통 떡갈나무숲이어서 백설이 나비처럼 한잎 두잎 흩날리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과 초겨울 사이, 잎을 모두 떨군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매운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시기에 산에 오른 듯, 솜이불처럼 두껍게 산기슭을 덮은 가랑잎의 퇴적더미는 하루 종일 풍요로웠던 늦가을의 정취 그대로여서 가을날의 환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산등성이를 경계로 왼쪽은 잔설(殘雪)마저 녹은 가랑잎이 솜이불처럼 산자락을 덮었으나 등덩이 오른쪽엔 잔설이 남아 있기도 하고 때론 백설이 계곡을 통재로 덮어버려 세계의 명산 고봉에라도 오른 듯 더욱 이국적(異國的) 풍경이었다.


나는 지난 가을에 못 찍은 낙엽 사진을 벌충이라도 하는 양, 산기슭에 지천으로 덮인 갈잎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특히 산자락마다 솜이불처럼 푹신하게 깔린 가랑잎의 퇴적을 바라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1960년대 이후 연료로 연탄이 공급되면서 산은 수목으로 덮여 등산로가 아니면 산길마저 사라졌다. 형래님의 표현대로 어린 시절엔 저런 걸 대나무 갈퀴로 끌어다 아궁이에 쳐넣어 밥도 지어 먹고, 청솔가지를 끼워 넣어 군불을 지피기도 했었다.

갈잎’은 ‘가랑잎’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갈대의 잎인 ‘갈댓잎’이기도 하다. 소월시와 한정동님의 시에는 ‘갈잎’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한정동님의 <갈잎피리>는 가랑잎으로 생각되지만

---갈대잎은 날카롭기가 칼날이어서 입에 대고 불 수 없음---

소월시에서의 ‘갈잎’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갈댓잎’이다. 그런데 나는 떡갈나무의 가랑잎을 보면서 자꾸 소월의 ‘갈댓잎’ 노래까지 떠올렸다. 잎진 떡갈나무 사이로 청평호가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어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를 먼저 생각했고, ‘갈잎’이라는 발음의 동일성에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인 눈앞의 가랑잎을 재확인하며 <갈잎피리>를 연상한 셈이다.

랑그는 다르지만 빠롤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미지까지 서로 소통하나 보다.

박성룡님은 <풀잎>에서,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속에서는 푸른 휘파람소리가 나거든요.


라고 노래했는데, ‘갈잎’에서는 단어의 첫 음소가입술에서 조음(調)되는파열음이 아니어서 휘파람소리는 나지 않지만 바스락거리는 소리 말고도 어쩐지 맑고 청아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김소월(평안북도 구성 출생, 1902. 8. 6. -1934.12. 24.)의 <엄마야 누나야>는 국민동요이니 췌언(贅言)이 필요 없지만, 동요 <따오기>의 작시자이기도 한 한정동 [韓晶東, 1894.12.7 ~ 1976] 님의 <갈잎피리>는 그의 동시집 제목이기도하다.


동심으로 돌아가, 아래에 동요 두 작품을 소개한다.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아래 블로그의 여러 개 중에 정훈희 노래를 클릭하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hunbje?Redirect=Log&logNo=60022017389



갈잎피리

---한정동


혼자서 놀으려니 갑갑하여서

갈잎으로 피리를 불어보았소


뽀오얀 하늘에는 종달새들이

봄날이 좋아라고 노래불러요


내가 부는 피리는 갈잎의 피리

어디어디까지 들리일까요!


어머니 가신 나라 멀고 먼 나라

거기까지 들린다면 좋을 텐데요


[광고] 산행했던 분들 <동창앨범>에 자기 사진 있으면 퍼 가세요.

아래 주소창 하단의 동영상 3개에는 시산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http://www.munjung13.com/board/read.php?table=m13sarang&no=2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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