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혜화상탑비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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藍浦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葆光塔碑銘

無染和尙碑銘 竝序奉敎撰下同

 

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 서문)

 

신라국(新羅國) 고(故) 양조국사(兩朝國師) 고교시대낭혜화상(故敎諡大朗慧和尙) 백월보광탑비명(白月葆光塔碑銘) 및 서문(序文)회남(淮南)에서 본국으로 들어와 (天子의) 국신(國信)과 조서(詔書) 등을 바친 사인(使人)이며 동면도통순관(東面都統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使), 내공봉(內供奉)을 지냈으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들어 지음.

 

帝唐

[呂氏春秋云 帝者 天下之所適 王者 天下之所往 卽僖宗皇帝也]

당(唐)나라가

 

揃亂以武功

[揃 音前 滅也 左傳云 揃賊而後朝食 言乾符戊戍濮賊王仙芝作亂

黃巢應之 高騈李克用等滅之]

무공(武功)으로 (黃巢의) 난을 평정하고

 

易元以文德之年

[景文王女子眞聖王 諱曼之二年 戊申]

연호를 ‘문덕(文德)’으로 고친 해(888년)

 

暢月

[暢月 卽十一月 禮月令曰仲冬 命之曰 暢月言萬物皆充於內 註 暢 充也]

月缺之七日

11월 17일

 

日蘸咸池時

[蘸 古潛字 咸 日入處也]

해가 질 무렵,

 

海東兩朝

[景文王 獻康王]

신라(新羅 : 海東)의 두 임금에 걸쳐서

 

國師禪和尙

[此 云親敎]

국사(國師)를 지내셨던 선승(禪僧) (朗慧)화상(和尙)께서

 

盥浴已 趺坐示滅

[年譜云 大師滅度 卽唐僖宗 文德元年 當新羅景文王女子眞聖王 諱曼之二年 戊申十一 月十七日也 自十六日爲月缺之日 卽月缺之七日當爲二十一日 而此云十七日不可詳也]

목욕을 마치신 후

가부좌를 하신 채 돌아가셨다.

 

國中人如喪左右目

矧門下諸弟子乎

나라 안의 사람들이 슬퍼함이

마치 두 눈을 잃을 정도로 심하였는데

하물며 그 문하의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嗚呼 應東身者八十九春

[師生於貞元十七年辛巳十二月二十八日午時 卽新羅哀莊王二年

自德宗辛巳 至僖宗戊申 年八十九年也 出家於憲宗元和八年 卽新羅宣德王五年 年十二也

文宗太和元年丁未三月十五日於京都慧善寺惠照太師處 受具足戒 年二十四也 二十四 當改以二十七 以此計之 則報年八十八也 又大師沒年 卽唐僖宗文德元年 故服戒者當六二年也]

아아! 이 땅에 태어나신 지 89년이 되었고,

[승복을 입으신 지는 65년이 되었다. ]

 

去世三日

倚繩座儼然 面如生

돌아가신지 3일이 지나도

자리에 단정히 앉은 그대로였고,

얼굴 모습도 살아 계신 것 같았다.

 

門人詢乂等 號奉遺體

문인(門人)인 순예(詢乂) 등이

소리내어 울며 유체(遺體)를 받들어

 

假肂

[肂 音異 殯坎也 釋名假葬于道側曰肂 禮喪大記曰 士殯見袵塗上

註 掘肂以容棺 肂猶坎也 棺在肂中 不沒其蓋云云也]

禪室中

선실(禪室)에 임시로 모셔 두었다.

 

[眞聖主 文考女康王妹]

聞之震悼

使駛 [馬行疾也 卽驛使也]

弔以書

임금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크게 슬퍼하시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글월로 조문(弔問)하시고,

 

賻以穀 所以資淨供 而贍玄福

곡식으로 부의(賻儀)하여 (葬禮의) 공양(供養)에 보탬으로써

죽은 분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하셨다.

 

越二年

이로부터 2년이 지나서

 

攻[治也]石封層冡[塔也]

聲聞王京 [慶州也]

돌을 다듬어 여러 층 되는 (스님의) 부도(浮圖)를 만들었는데

이 말이 서울[경주]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菩薩戒弟子

武州 [今之光州]

都督蘇判

[新羅官儀云 級爵 波珍飧三級爵 遏粲四級爵 蘇判五級爵也]

보살계(菩薩戒)를 받은, (스님의) 제자이면서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소판(蘇判)인 (金)일(鎰)과

 

執事侍郎 [卽今參議] 寬柔

집사시랑(執事侍郞)인 (金)관유(寬柔),

 

浿江 [平壤大同江也] 都護 咸雄

패강진도호(浿江鎭都護)인 (金)함웅(咸雄),

 

全州別駕

[漢制 別駕從事吏一人 刺史行部 別乘一乘傳車 故衛曰別駕 亦判官也]

英雄 皆王孫也

[此四人皆金姓]

전주별가(全州別駕)인 (金)영웅(英雄) 등은 모두 왕족으로

 

維城輔君德

[左傳曰 懷德維寧 宗子維城 君修德而固宗子 何城如之此 師曠對晉侯之言

詩云 介人維藩 大師維垣 大邦維屛 大宗維翰 懷德維寧 宗子維城 無俾懷城 無獨斯畏也 宗子同姓也]

임금님의 덕을 훌륭히 보필하면서

 

險道

[卽惡道也 以受戒 力免三途也]

賴師恩

[智度論云 諸險道中戒爲橋梁 案 四人依師受戒故云 賴師恩而度險道也]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스님의 은혜를 입곤하여서

 

何必出家 然後入室

[升堂入室之義也 雖未僧而可以爲朗慧弟子]

하필이면 출가한

연후라야 제자가 되겠는가?

[비록 출가(出家)는 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제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遂與門人昭玄

[卽昭玄精署 住持律法之司也]

그러므로 마침내 (스님의) 문인(門人)인 소현대덕(昭玄大德),

 

大德釋通賢 四天王寺 [在慶州狼山南麓] 上座

[五分律云 上更無人名上座 毗尼毌論云 從無夏至九夏是下座 自十夏至十九夏是中座 自二十夏至四十夏是上座 五十夏已上 一切沙門之所尊敬故名耆宿也]

釋愼符 議曰

석통현(釋通賢), 사천왕사(四天王寺) 상좌(上座) 인

석신부(釋愼符) 등과 함께 의논하기를,

 

師云亡 君爲慟

“스님이 돌아가셔서 임금께서도 슬퍼하셨는데

 

奈何吾儕忍灰心木舌

[韻府羣玉云 鐸大鈴也 軍法司馬執 鐸金口木舌 文事振木鐸 武事振金鐸

案 灰心 莊子云 心如死灰 言不起心也 木舌 羣玉云 金口木舌

雖未見制度 以木爲舌則其無屈申作用可知 抑取此義而引用耶

蓋木字猶木强木訥之類 應取剛不柔之義 言不開口也]

어찌 우리들은 풀이 죽은 채 아무 말 없이

 

缺緣飾在三之義乎

[君師父三也 禮記曰 生三事一 國語 欒子曰 人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 ○ 崔鴻後秦錄姚泓曰 在三之義 不可不重]

스승에 대한 의리를 빠뜨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迺白黑相應

請贈諡曁 銘垥

그리하여 승(僧)·속(俗)이 함께

(대사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과 탑의 명(銘)을 지어줄 것을 (왕에게) 청하였다.

 

敎曰可

이에 왕께서는 옳다고 여기시고,

 

旋命王孫夏官

[說文天官今吏部 地官今戶部 春官今禮部 夏官今兵部 秋官今刑部 冬官今工部

若以次言 則吏部立於東班之首 兵部立於西班之首 先東後西 爲第二也]

二卿

[第二卿 卽兵部之二卿 如今參判爲判書之亞卿故也]

禹珪 [姓 金也]

곧 왕족인 병부시랑(兵部侍郞 : 夏官二卿)인 (金)우규(禹珪)를 시켜

 

召桂苑 [翰林苑也] 行人

[行人 周禮 大行人小行人 卽今通事舍人]

侍御史崔致遠

중국에서 사신으로 온 시어사(侍御使) 최치원(崔致遠)을 부르셨다.

 

至蓬萊宮

[眞聖王所居宮]

(최치원이) 왕궁에 이르러

 

因得並 [並與傍通] 琪樹 [宮廷列植之華樹]

上瑤墀

跽俟命珠箔外

사람을 따라 계단을 오른 뒤,

주렴(珠簾) 밖에 꿇어 앉아 명령을 기다렸다.

 

上曰

故聖住大師

眞一佛出世

[事文云 唐太宗撥亂 行仁德 一佛出世也]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신 성주대사(聖住大師)는

참으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 것과 같은 분이셨다.

 

昔文考 [景文王也]

康王 [獻康王也]

咸師事 福國家爲日久

전에 나의 부왕(父王 : 景文王)과 헌강왕(憲(獻)康王)

모두 스승으로 섬기셔서,

오랫동안 나라에 이로움을 주셨다.

 

余始克纘承

願繼餘 [當改以余字] 先志

나도 왕이 되어서는

선왕들의 뜻을 이으려 하였으나,

 

而天不憖遺

[憖 音銀 强也 詩小雅 天不憖遺一老 俾守我王 註 憖者 心不欲 自能强之 辭倦而勉强也 言皇天不自强留一人 而輔天子也]

하늘은 (그런 분을) 남겨주지 않았다.

 

益用悼厥心

이에 나의 마음이 더욱 애달프다.

 

余以有大行者 授大名

생각컨대 큰 일을 한 사람에게는 큰 이름을 주어야 하므로

 

故追諡曰大朗慧

塔曰白月葆光

[莊子齊物論曰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 此之謂葆光]

시호를 ‘대낭혜(大朗慧)’,

탑의 이름을 ‘백월보광(白月葆光)’이라고 하노라.

 

嘗西宦 絲染錦歸

[孤雲傳云 巫峽重峯之年 銀河列宿之歲 錦還東國 言巫峽有十二峯

比十二入 銀河有二十八宿 比二十八還 中孚子謂予曰 茶山翁云

年歲二字相換 則腰簾末簾 始合 如此覺非 當代無雙 贊之不已]

그대는 일찍이 중국에 가서 벼슬하고

이제 출세하여 고국에 돌아왔다.

 

顧文考選國子 命學之

[選入國學以受學]

전에 나의 부왕께서 (그대를) 국자(國子)로 뽑아 공부하게 하였고,

 

康王視國士 禮待之

헌강왕(憲(獻)康王)께서는 (그대를) 국사(國士)로써 대우하였으니,

 

若 [汝也] 宜銘國師以報之

[報先王待汝不德也]

그대는 마땅히 국사(國師)의 명(銘)을 지어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謝曰

(치원은) 사양하여 말하기를,

 

主臣

 [主擊臣伏 惶恐之貌 見史記註]

“소신은 황공하옵게도

 

殿下恕粟饒浮秕

念桂飽餘馨

[粟桂二句皆孤雲自謙辭也]

전하께서 저의 글이 벼에 알맹이는 없으면서 쭉정이만 많고,

계수나무에 향기만 있듯 실속이 없음을 용서하시고,

 

俾報德以文 固多天幸

글을 지어 은혜에 보답하라 하시니

진실로 뜻밖의 행운이옵니다.

 

第大師 於有爲澆世 演無爲秘宗

다만 대사(大師)께서는

유위(有爲)의 세상에서

무위(無爲)의 신비한 가르침을 널리 펴셨는데,

 

小臣以有限麽才 [麽 卽幺麽 細小也]

紀無限景行 [景 大也]

소신(小臣)의 한계가 있는 하찮은 재주로써

그 끝없이 큰 행실을 기록하려 한다면

 

弱轅載重

短綆汲深

[莊子云 褚小者 不可以懷大 綆短者 不可以汲深 褚者布袋 言小不任大]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긷고자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其或石有異言

[左傳 昭公八年 石言于晉魏楡

晉侯問於師曠曰 石何故言 石不能言 或憑焉 不然 民聽濫也

抑臣又聞之 曰 作事不時 怨讟動于民 則非言之物言 而今宮室崇侈

民力彫盡 怨讟並作 莫保其性 石言不亦宜乎]

행여 돌이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거나,

 

龜無善顧

[世說云 孔愉嘗至吳興縣餘干亭 見人籠龜於道 愉求買 放之於溪中 龜行至水

反顧愉 及封此亭侯 而鑄印 龜首回顧 三鑄不正 有似昔龜之顧

靈德之感如此 愉悟 乃取而佩焉]

거북이 돌아보는 신조(神助)가 없으면

 

決叵使山輝川媚

[陸機文賦云 石蘊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也]

결코 산과 시내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反贏得林慙澗愧

[北山移文云 林慚無盡 澗愧不歇 註云 非林澗之愧 是乃周彦倫之愧也]

오히려 숲과 골짜기의 물에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請筆路斯避

부디 글짓는 것을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上曰 好讓也 蓋吾國風 善則善已

임금께서는

“사양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매우 좋은 것이다.

 

然苟不能是 [碑也]

惡用黃金牓爲

[古制 龍榜 飾以金 虎榜銀 先生以文登第 故曰金榜]

그러나 정말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면

(중국의 과거에) 급제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爾勉之

[縱欲辭避 不可得也]

그대는 힘써 행하라”라고 말씀하면서

 

遽出書一編 大如椽者

俾中涓[官名宦官]

授受 乃門弟子所獻狀也

크기가 방망이만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어

내시로 하여금 전해주었는데

곧 (대사의) 문하 제자들이 올린 (대사의) 행장(行狀)이었다.

 

復惟之 西學也 彼此俱爲之

[入中國受學謂西學 不必指佛法也 心口 亦不必配禪敎]

다시 생각해 보건데 중국에 유학한 것은

대사와 내가 같이 한 것인데,

 

而爲師者何人 爲役者

[爲師執筆者 卽孤雲自身也]

何人

스승이 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그를 위하여 일을 해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豈心學者高 口學者勞耶

故古之君子愼所學

어찌하여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높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여야 하는가.

그래서 옛날의 군자들이 배우는 것을 삼가했던 것인가.

 

抑心學者立德 口學者立言

[任安書 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

그러나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덕을 세우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말을 다듬으니,

 

則彼德也 或憑言而可稱

是言也 或倚德而不朽

그 덕은 말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그 내용을 제대로 전할 수 있고,

이 말은 덕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오래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可稱 則心能遠示乎來者

(덕의) 내용을 제대로 전하게 되면

마음을 멀리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보일 수 있고,

 

不朽 則口亦無慙乎昔人

[立德者 太史公與任安書云

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 案 昔人者 非謂國師也 通指聖賢以下著書之人

廣載任安書中 古人著書 不過傳其不朽也 今吾著

亦得傳其不朽也 推此 則無愧昔人也]

(말이) 오래 전해지게 되면

문장도 또한 옛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爲可爲於可爲之時 復焉敢膠讓乎篆刻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감히 실속 없는 글이라고 굳이 사양할 수 있겠는가.

 

始繹 [繹 音亦 繙閱尋究 又尋度也]

如椽狀則見

비로소 방망이 같은 행장을 펼쳐보니,

 

大師西遊東返之歲年

대사께서 중국에 유학하고 신라에 돌아온 연대와,

 

稟戒悟禪之因緣

계(戒)를 받고 선(禪)을 깨치신 인연,

 

公卿守宰之歸仰

像殿 [法堂] 影堂[祖堂]之開創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실,

법당과 조사당의 개창 등은

 

故翰林郎金立之所撰 聖住寺碑 叙之詳矣

죽은 한림랑(翰林郞) 김입지(金立之)가 지은 성주사비(聖住寺碑)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爲佛爲孫之德化

부처의 제자로서 불법을 널리 전한 행적과

 

爲君爲師之聲價

임금의 스승으로서 행한 업적,

 

鎭俗降魔 [有賊亂 師能降之也] 之威力

세속을 진정시키고, 악마들을 항복시킨 위력,

 

鵬顯

[莊子云 北溟有魚 其名曰鯤 化而爲鵬 齊諧志曰 鵬之徙南溟水擊三千里

搏扶搖 而上九萬里云云 比大師求法中國]

세상에서 활동할 때는 붕(鵬)처럼 지내고,

 

鶴歸

[杜詩註云 遼東人丁令威仙去後千載 化爲鶴 止華表柱上 人欲射之 以喙畫地云

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載今始歸 白骨如山陵谷變 何不學仙塚累累 比大師歸東土]

之動息

은거하여서는 학(鶴)처럼 지낸 일 등은

 

贈太傅獻康大王親製深妙寺 [在今尙州] 碑

錄之備矣

태부(太傅)에 추증되신 헌강왕께서 직접 지으신 심묘사비(深妙寺碑)에

갖추어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顧腐儒 [自謙之辭] 之今作也

그러므로 지금 내가 글을 지음에 있어서는

 

止宜標我師就般涅槃之期

[音義具云 般利涅槃那 謂般利 善也 究竟也 涅 出離也

槃那 煩惱結 言諸煩惱絶 普究竟出離]

다만 대사께서 열반에 드신 때와

 

與吾君崇窣堵婆

[窣堵婆西域記云 浮圖 又云偸婆 又曰私偸簸 皆訛也 此翻方墳 亦翻圓墳

亦翻高顯 義翻靈廟 劉熙釋名云 廟者貌也 先祖形貌奉安故也]

之號而已

우리 임금께서 탑의 이름을 높이신 것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口將手議 役將自適其適

[莊子云 是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也]

입과 손이 일을 의논하여 나의 생각하는 바대로 일을 진행하려 하는데

 

這有上足苾蒭

[五義見法數 苾芻曰香草 有五種味 故諭比丘 亦具此德也

一體性柔輭 二傳法度人 三德行遠聞 四能斷煩惱 五不背佛日也]

그때에 (대사의) 수제자(首弟子) 비구(比丘)가

 

來趣虀臼

[蔡邕 題曹娥碑曰 黃絹幼婦外孫虀臼 乃絶妙好辭

而楊修見知 曹操行三十里方知 ]

와서 글을 재촉하였다.

 

語及斯意 [指就般涅槃 與崇窣覩婆二意]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러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자,

 

則曰 立之 [指故翰林郎金立之]

碑立之久矣

尙闕數十年遺美

그는 말하기를,

“(金)립지(立之)의 비는 세운지 오래 되어서

그 후 수십 년의 아름다운 행적이 빠져있고,

 

太傅王神筆所紀 蓋顯示殊遇云爾

태부왕께서 신필로 지으신 글은

단지 특별한 대우가 있음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吾子口嚼古賢書 面飮今君命

그대는 옛 선인의 글을 읽고,

직접 임금의 명령을 받았으며,

 

耳飫國師行 目醉門生狀

대사의 행적에 대하여 실컷 듣고,

문하 제자들이 올린 행장을 자세히 보았으니

 

宜廣記

[上二碑未盡之 言廣記]

而備言之

마땅히 두루 기억하여

빠뜨리지 말고 이야기하여

 

殆貽厥可畏 [論語 子曰 後生可畏]

俾原始要終

[原 察也 要 求也 易云 原始要終 故知生死之說]

후대의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이 일의 시초와 끝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脫 [脫 音太 若也]西笑者

[說文云 關東人聞長安樂 則西向而笑 古詩云 還如瞽老望長安 長安在西向東笑

西笑 往中原也]

만일 중국에 가는 사람이 있어서,

 

或袖之 脫西人

[西人 中原人也]

笑則幸甚

품에 넣어 가지고 가서

중국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면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吾敢求益

내가 어찌 (내용에) 덧붙임이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子無憚煩 狂奴餘態

[侯霸傳云 嚴光與侯霸書曰 懷仁輔德天子悅 阿諛順旨腰領絶 霸奏之

光武譏曰 狂奴舊態 竟不回 註云 狂奴 子陵少時字也]

그대는 귀찮음을 꺼리어

재주를 숨기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다.

 

率爾應曰

급히 대답하기를,

 

僕編苫者 師買菜乎

[傳又云 侯霸遣侯子道 奉書徵光 光曰 君房素癡 今小差否 天子三徵

我不見 況大臣乎 光口授使臣書 霸嫌其太小 光曰 買菜乎求益也

註云 編苫者 常比前欲其短也 買菜者 常求益其小分 編苫 孤雲欲略述之比也

買菜上足求廣述之比也 諸本或作彩 非是]

“나는 초가지붕을 매듯 (간략히) 하려 하였는데,

스님은 나에게 채소를 팔 듯 자세히 하길 바라시는군요”라고 하였다.

 

遂絆猿心强搖ꟙ翰 [筆也]

憶得西漢書留侯傳 尻 [尾也] 云

드디어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억지로 붓을 움직이려 하니

『한서(漢書)』유후전(留侯傳) 끝 부분에서,

 

良所與上從容言天下事 甚衆

非天下所以存亡 故不著

“(張)량(良)이 임금과 더불어 조용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 매우 많지만

천하의 존망(存亡)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므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則大師時順

[莊子云 適來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註云 夫子 有道者之尊稱也 言天地之間有道之士

其來 適然而來 其去 適然而去言時順間卽生死間]

間事蹟

그러므로 대사가 살아 계실 때의 일들이

 

犖犖者

[犖 音洛 史天官書此 其犖犖者 大者 註云 事之明也 又超絶]

星繁

뛰어난 것이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非所以警後學 亦不書

뒤의 학자들에 가르침이 되는 것이 아니면

또한 적지 않으려고 한다.

 

自許窺一斑於班史然

[黃帝始立史官 蒼頡沮誦居其職 爰及漢世 馬遷班彪班固

皆得其職之正 故后之作者 皆祖二班之史 然皆窺一班 未得全豹

玉篇云 管中窺約 只見一斑云云 出字彙也]

스스로 반고(班固)의 『한서』를 조금이라도 보았다고 자부하면서

 

於是乎 管述曰

이에 글을 적으니 다음과 같다.

 

光盛且實 而有暉八紘

[四方四維也 淮南子曰 九州之外有八寅 八寅之外有八紘

東方之紘曰桑野 南方之紘曰反戶 西方之紘曰沃野

北方之紘曰委羽 東北方之紘曰黃土 東南方之紘曰衆安 西南方之紘曰火正

西北方之紘曰沙所也 紘 音橫 卽網之有綱也]

之質者

빛이 왕성하고 충실하여 온 누리를 비출 자질을 갖춘 것으로는

 

莫均乎曉日

태양에 비길 것이 없고,

 

氣和且融 而有孚萬物之功者

莫溥乎春風

기(氣)가 온화하고 두루 통하여서 만물을 기를 능력을 갖춘 것으로는

봄바람만한 것이 없다.

 

惟俊風 [東風也] 與旭日 [日初出貌]

俱東方自出也

이 큰 바람과 태양은

모두 동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則天鍾 [聚也 注也]

斯二餘慶[春風與曉日也]

그러므로 하늘이

이 두 가지의 자질을 모으고,

 

嶽降于一靈性

[詩云 崧高維岳 駿極于天 維岳降神 生甫及申

註 崧岳 山之尊者 駿 大也 甫 甫侯 申 申伯]

산악이 신령한 정기를 내려서

 

俾挺生君子國

特立梵王家者

我大師其人也

군자의 나라에 태어나

사찰에 우뚝 서게 하였으니

우리 대사가 바로 그 분이다.

 

法號無染 於圓覺祖師

[唐代宗追諡達摩曰圓覺 塔曰空觀]

爲十世孫

[達摩 慧可 僧燦 道信 弘忍 惠能 南岳 馬祖 麻谷 無染]

(대사의) 법호(法號)는 무염(無染)으로

달마대사의 10대 법손(法孫)이 된다.

 

俗姓金氏 以武烈大王

[武烈者 新羅第二九太宗武烈王 名春秋 卽第二十五眞智王龍春之子]

爲八代祖

속성(俗姓)은 김씨(金氏)로 태종무열왕이 8대조이시다.

 

大父 [祖父也] 周川

品眞骨 位韓粲

高曾出入皆將相 [出將入相]

戶知之

할아버지는 주천(周川)으로 골품(骨品)은 진골이고 한찬(韓粲)을 지냈으며,

고조부와 증조부는 모두 조정에서는 재상,

나가서는 장수를 지내 집집에 널리 알려졌다.

 

父範淸 族降眞骨一等曰得難

[國有五品 曰聖而 曰眞骨 曰得難 言貴姓之難得

文賦云 或求易而得難 從言六頭品數多爲貴猶一命至九 其四五品不足者]

아버지는 범청(範淸)으로

골품이 진골에서 한 등급 떨어져서 득난(得難)이 되었다.

[나라에 5품이 있는데 성이(聖而), 진골(眞骨), 득난(得難) 등이다. (得難은) 귀성(貴姓)을 얻기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문부(文賦)』에서 ‘혹 구하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을 따서, 6두품의 수가 많지만 귀성이 되기는 제일 낮은 관등[一命]에서 가장 높은 관등[九命]에 이르는 것과 같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4, 5품은 말할 필요도 없다.]

 

晩節追蹤趙文業

[莊子云 趙文王喜劍 見憲章公謀反而被誅

卽落髮入道 勑加任 號骨品大德 任漢川僧統]

만년(晩年)에는 무술을 좋아하였다.

 

母華氏魂交

[莊子曰 其寐也魂交 其寤也形魂交 言夜則神集於其心也

形開 言晝則四體動用也]

어머니 화씨(華氏)가 꿈을 꾸었는데

 

覩脩 [長也] 臂天垂授 [蓮也]花

因有娠

긴 팔을 가진 천인(天人)이 연꽃을 내려주는 것을 보고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幾踰時 [三月] 申夢胡道人自稱法藏

[彌陀佛 因地時 號也]

얼마 후에는 다시 꿈속에

서역의 도인(道人)이 나타나서 스스로 법장(法藏)이라고 하면서

 

授十護 [十戒] 充胎敎

10계(戒)를 주면서 그것으로 태교(胎敎)를 하게 하였다.

 

過期 [懷十三月 生也] 而誕大師

[唐德宗貞元十七年辛巳歲十二月二八日午時生 哀莊王二年也]

마침내 1년이 지나서 (대사가) 태어났다.

 

阿孩 [方言謂兒 與華无異] 時

대사는 아해(阿孩)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니 중국말과 다르지 않다] 

 

行坐必合掌趺對

걷거나 앉을 때 반드시 합장을 하고 가부좌를 하였으며,

 

至與羣兒戲 畫墁

[孟子云 毁瓦畫墁 其志將以求食 註 墁 牆壁之飾也]

聚沙

여러 아이들과 놀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로 무엇을 만들 때에는

 

必模樣像塔

[畫墁 爲佛像 聚沙 作佛塔也]

반드시 불상이나 탑을 본떴다.

 

而不忍一日違膝下[父母膝下]

하루도 부모님의 곁을 떠나지 않다가

 

九歲始鼓篋

[學記云 入學鼓篋 遜其志也 註 入學時 大胥之官擊鼓以召學士

學士至則發篋 以出其書籍等物 警之以鼓舞聲 使之遜順其心 進其業也]

아홉 살 때에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目所覽 口必誦

人稱曰海東神童

눈으로 본 것은 반드시 입으로 암송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해동의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跨一星終

[左傳 魯侯曰 十二年是爲一終 一星終也 歲星十二年一周天 歲星 東方木星也

○ 大師十二歲出家 卽唐憲宗元和八年 宣德王五年也]

열두 살을 넘기고 나서(13세)는

 

有隘九流

[漢書云 九流 有儒家流 道家流 陰陽流 法家流 名家流

墨家流 縱橫家流 雜家流 農家流]

意入道

여러 학문을 비루하게 여기고

불도(佛道)에 들어가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先白母

母念已前夢 泣曰䚷 [方言許諾]

먼저 어머니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이전의 꿈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예[우리말로 허락이다]”라고 하였다.

 

後謁父

父悔已晩悟 喜曰善

뒤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자신이 늦게서야 깨달은 것을 후회하였으므로

기뻐하며 “잘하였다”고 하였다.

 

遂零 [髮也] 染 [衣也] 雪山五色石寺

[卽雪岳南麓 襄陽五色洞 洞多五色石 而寺則昔有今無]

이에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口精嘗藥 [善解經義] 力銳補天

[女媧氏 鍊五色石 補天比大師架空說法之意]

입으로는 경전을 부지런히 읽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힘을 다하였다.

 

有法性禪師 [此亦國師]

이 절에 법성선사(法性禪師)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嘗扣騣 [騣 音宗] 伽門

[騣伽門 小乘法也 性於中夏黃屋山 學看心法]

于中夏者

일찍이 중국에 가서

능가선(楞伽禪)을 배운 분이었다.

 

大師師事數年 撢

[撢 與探同 周禮 撢人掌誦王志 道國政事 以巡天下之邦國而道之]

대사는 이분에게 수년간 배웠는데

 

索無孑 [小也] 遺 [餘也] 性

[性 乃獻康太子所重 卽閔哀大王父 大阿飧金忠公之號也]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이었으므로

 

歎曰 迅足駸駸

[駸駸者 詩云 載驟駸駸 駸 馬疾行也]

後發前至 吾於子驗之

법성선사가 말하기를,

“빠른 발로 달린다면

뒤에 출발하여도 먼저 도착한다는 것을

나는 너에게서 직접 보았다.

 

吾悏矣 [悏 音怯 心悵也應昭曰志滿]

無餘勇可賈 [賈 音枯 以利爲業者也] 於子矣

나는 아는 것이 적어서

그대에게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

 

如子者宜西也

너와 같은 사람은 중국에 유학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大師曰唯 大師曰唯

[唯 應對之辭 尊對曰唯 野對曰阿]

이에 대사는 “알았습니다” 하였다.

 

夜繩而爲實蛇

[是偏計之情執 指小乘法 執有之言也]

밤중의 새끼줄은 뱀으로 속기 쉽고,

 

空縷難分

[羅什法師傳云 什之師 盤頭達多 與什共論大小乘優劣

達多謂什曰 汝所謂大乘者 豈非空裏之縷耶

古有至愚者 詣織師家 求布之至細者 織師以上品細妙之縷

示之 愚人猶以爲麤 織師不分指空曰 此縷如何

愚人曰 何以無見 織師曰 極細 故無見 若見則是麤 非細云云

愚人大喜 汝大乘 類是云也]

허공의 베올은 분간하기 어렵다.

 

魚非緣木可求

[魚 比道也 孟子曰 以若所爲 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물고기는 나무에 올라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兎非守株可待

[言得道忘言也 韓子五 曰 宋有田父 見兎觸田中株而死

捨耕守株 冀其復得 兎未得而身爲宋國笑]

토끼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킨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故師所敎己所悟 互有所長

그러므로 스승이 가르친 것과 내가 깨달은 것에는

서로 나은 것이 있을 수 있다.

 

苟珠火 [比理] 斯來

則蚌燧 [比言] 可棄

[珠在蚌中 火藏燧中 若得珠火 蚌燧可棄也]

진주를 얻고, 불을 피웠으면

조개와 부싯돌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凡志於道者 何常師之有

도(道)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어찌 꼭 정해진 스승이 있겠는가.

 

尋移去 問驃訶健拏 [華嚴] 于浮石山釋燈大德

곧 그곳을 떠나

부석산(浮石山)의 석징대덕(釋澄大德)에게 화엄(華嚴)을 배웠는데,

 

日敵三十夫

藍茜沮本色

[淮南子 靑出於藍而靑於藍 絳生於茜而絳於茜 喩弟子過於師也]

하루에 서른 사람 몫의 공부를 하니

푸른 색과 붉은 색이 남초(藍草)와 천초(茜草)의 원래 색을 무색케 하는 것 같았다.

 

顧坳盃之譬

[莊子云 覆盃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盃焉則膠 水淺而舟大也 坳 音凹 地凹下不平 向中原之意故]

대사는 조그만 구멍에 담긴 물에서는

잔이 뜰 수 없듯이,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자신의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음을 생각하고서)

 

曰 東面 [本國] 而望 不見西牆 [中原]

“동쪽을 바라보기만 하다가는 서쪽의 담(중국)은 보지 못할 것이다.

 

彼岸不遙 何必懷土

깨달음의 세계가 멀지 않을 터인데

어찌 살던 곳만 고집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遽出山並 [並 音方 倚也] 海

覗 [覗 窺也] 西泛之緣

선뚯 산에서 나와 바다로 나아가

중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엿보았다.

 

會國使歸瑞節

[卽王誕辰 使發行於冬初 ○ 案 瑞 信玉 節 符節也 言國使授王信節

歸覲天子也]

象魏 [天子之闕 謂之象魏 象 治象也 魏者 狀魏然高大 令民觀之 故亦謂之觀

周禮月令之吉 太宰懸治象之法于象魏 使萬民觀治 魯人因謂敎令之書 爲象魏]

때마침 나라의 사신이 天子가 하사한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천자에 조회할 일이 있었으므로

 

下仛 [托同]足而西

그 배에 의지하여 중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及大洋中 風濤欻顚怒

巨艑壞人 不可復振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져서

큰 배가 깨어지니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大師與心友道亮

[道亮雖未知爲何人 其爲大師同心之友 卽無疑 乃實者其人而非俗說所云]

대사는 벗 도량(道亮)과 함께

 

跨隻板姿業風

[眞諦三藏云 泛泊西歸 業風賦命 飄還廣州]

한장 널판지에 걸터앉아 바람에 맡긴 채 떠다니게 되었다.

 

通星 [晝夜通也] 半月餘

飄至劍山島

[卽黑山島 島形甚惡 故謂劍山

艤舡 風作必破 故毁置磯上 發行時 更造]  

밤낮없이 반달 가량을 떠다닌 후에

검산도(劒山島 : 黑山島)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行之碕 [碕 音奇 曲岸頭也] 上

悵然甚久曰

무릎 걸음으로 물가에 도착하여

한참이나 실의에 잠겨있다가 말하기를,

 

魚腹中

[屈原漁父辭云 葬於魚腹之中 韓詩曰 顚況在須臾 魚腹甘所葬]

幸得脫身 [涉海 免死]

“물고기 배 속에서도 간신히 몸을 건졌으니

 

龍頷 [入唐 得道也] 下

庶幾攙 [攙 音殘 說文 刺也 又音攙 扶也]

手 [庶幾得大寶意]

용의 턱밑에도 손을 넣어

(바라는 구슬을) 아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我心匪石 其退轉乎

[詩云 我心非席不可卷 我心非石不可轉也]

나의 마음은 구르는 돌이 아니니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洎長慶 [穆宗年號] 初

장경(長慶 : 821~824) 초에

 

朝正使

[春秋傳 甯武子曰 諸侯朝於王而受正朔]

王子昕

[金昕 字泰 金陽之從父兄 武烈王之九世孫也

幼而聰悟 好學問 長慶二年 憲德王將遣使如唐 遂令昕充其任焉]

조정사(朝正使)로 가게된 왕자 흔(昕)이

 

艤舟唐恩浦 [南陽郡]

請寓載 許焉

당은포(唐恩浦)에 배를 대었기에

태워줄 것을 부탁하니 그러라고 하였다.

 

旣達之罘 [之罘 山名] 山麓

마침내 지부산(之罘山) 기슭에 도착해서는

 

顧先難後易

전에는 어려웠던 일이 이제 쉽게 됨을 생각하고서

 

土揖

 [周禮秋官司儀 王南面 見諸侯 土揖庶姓 時揖異姓

天揖同姓 註 土揖 推手少下也 時揖 平揖手也 天揖 推手少擧也]

海若 [海神] 曰

해약(海若 : 바다의 신)에게 공손히 절하고서

 

珍重鯨波 好戰風魔

“큰 파도를 자제하고,

바람의 마군과 잘 싸우셨습니다”고 하였다.

 

行至大興城南山至相寺

遇說雜花者 猶在浮石時

(스승을 찾아) 다니다가

대흥성(大興城) 남산(南山)의 지상사(至相寺)에 이르러서는

화엄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석사에서 배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有一䃜 [䃜 音曳 美石黑色]

顔耆年

言提之

[詩云 非面命之 言提其耳] 曰

그때 한 얼굴이 검은 노인이 말을 걸고서

 

遠欲取諸物

[易云 近取諸身遠取諸物]

孰與認而 [汝也] 佛 [心佛也]

“멀리 자신 밖의 사물에서 (道를) 구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

 

大師舌底大悟

自是 置翰墨

遊歷佛光寺 問道如滿[法師]

대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닫고서

이때부터 경전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불광사(佛光寺)에서

여만(如滿)에게 도(道)를 물었다.

 

滿佩江西[馬祖] 印[馬祖門人]

爲香山[樂天軒號] 白尙書樂天 空門友者[如滿門人]

여만은 강서마조(江西馬祖)에게서 심인(心印)을 얻었고,

향산(香山)의 백상서(白尙書) 악천(樂天)과는

불법을 같이 이야기하는 벗이었지만

 

而應對 有慙色曰

(대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매우 부끄러워 하면서

 

吾閱人多矣 罕有如是新羅子

他日中國失禪 將問之東夷耶

“내가 여러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이 신라사람 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다.

후일에 중국에서 선(禪)이 사라진다면

곧 동이(東夷)에 가서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去謁麻谷寶徹和尙

服勤[服役勤行] 無所擇

人所難己必易

그곳을 떠나 마곡(麻谷) 보철화상(寶徹和尙)을 찾아가 모시면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남이 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쉽게 해냈다.

 

衆目曰 禪門庾異行

[南史云 南齊庾黔婁 爲孱陵令 到縣 未幾 父易在家遘疾 黔婁忽心驚

擧體流汗 卽日 棄官歸家 家人驚其忽忽至 時易疾才三日醫云

欲知差劇 但嘗糞甘苦 易泄痢 黔婁輒嘗之 味轉甘滑 心逾憂苦

每夕 焚香稽顙北辰 願以身代 親疾卽愈也]

이에 여러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선문(禪門)에 있어서 유검루(庾黔婁)와 같은 남다른 행실을 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徹公賢苦節 嘗一日告之曰

보철화상은 대사의 노력을 현명히 여기고서

하루는 불러서 말하기를,

 

昔吾師馬和尙訣我曰

[訣 死時遺言也]

“전에 나의 스승인 마화상(馬和尙 : 馬祖道一)께서

나와 헤어질 때에 말씀하시길,

 

春蘤[蘤 音委 花榮也] 繁

秋實寡[蓋喩道高孫少也]

‘봄에 꽃이 많으면 가을에 열매가 적은 법이다.

 

攀道樹者 所悲吒

[吒 音且 去聲 說文云 噴也 歎也]

보리수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슬프게 여긴다.

 

今授若[汝也]印

異日徒中有奇功可封者

封之 無使刓[剸也 卽削去廉隅也]

지금 너에게 심인(心印)을 전하니

후일에 제자 가운데 재주가 뛰어나서 북돋아 줄만한 사람이 있으면

북돋아 주어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고

 

復云 東流之說

[東流之說者 傳燈錄曰般若多羅告達摩曰

待吾滅後六十七載 當往震旦 設大法藥 植接愼勿速行 襄於日下也]

다시 말씀하시기를,

‘불법이 동쪽으로 전해간다는 말은

 

蓋出鉤讖

[鉤 古駈切 音苟 古兵有鉤有鑲 皆劍屬

引來曰鉤 推去曰鑲 蓋引當來說故謂之鉤讖也]

거의 예언에서 나온 말이니

 

則彼日出處 善男子根殆熟矣

[檀經云 六祖讖云 吾去七十年 有二菩薩 一在家梵日

二出家無染 從東方來 同時建立吾宗 締搆伽藍 昌隆法嗣云]

해뜨는 곳(동쪽)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바탕이 거의 완숙해졌을 것이다.

 

若若得東人可目語者[以心傳心]

畎導之

[畎 音圈 上聲 田中溝 周禮 匠人爲溝洫

廣尺深尺謂之畎 倍畎爲遂 倍遂曰溝 倍溝曰洫 倍洫曰澮

書禹貢 濬畎澮距川 六畎爲一畝 又山谷通水處曰畎 蓋言引水也]

만일 네가 동쪽 사람으로서

눈으로 말할 만한 사람을 얻어 잘 이끌어

 

俾惠水丕冒[丕 大也 冒 吐也 言普沾也]

於海昇隅 爲德非淺

지혜의 물이 바다 바깥(중국 바깥)에 까지 덮도록 한다면,

그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고 하셨다.

 

師言在耳 吾喜若徠[徠 來同]

스승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네가 왔으니 기쁘구나.

 

今授印[傳心]焉

俾冠[元也]禪侯于東土

往欽哉

이제 심인(心印)을 전하여

동방에서 선종의 으뜸가는 사람이 되게 하니

가서 삼가 실행하거라.

 

則我當年作江西大兒

後世爲海東大父

[大兒大父 皆指徹公也 大父 祖父也]

其無慙先師矣乎

(그렇게 한다면) 나는 지금은 강서(江西) 마조(馬祖)의 수제자이고,

후세엔 해동(海東) 선문(禪門)의 할아버지가 될 터이니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구나”고 하였다.

 

居無何 師化去

墨巾離首[在喪中故]

그곳에 머무른 지 얼마 안 되어

보철화상이 세상을 떠나

묵건(墨巾)을 머리에 쓰고

 

乃曰 筏[筏 師也]旣捨矣

舟[舟 子也]何繫焉

이내 말하기를,

“큰 배가 이미 떠나버렸는데

작은 배가 어디에 묶여 있을 것인가”라 하고

 

自爾 浪遊飄飄然

勢不而遏 志不可奪

이때부터 각지를 유랑하였는데 바람처럼 하여

그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뜻을 빼앗을 수 없었다.

 

於是 渡汾水登崞[崞 音郭 山名 在雁門]山

跡之古必尋 僧之眞必詣

이에 분수(汾水)를 건너고 곽산(崞山)을 오르기까지

오래된 (불교의) 자취는 반드시 찾아가고,

참된 승려는 반드시 만나 보았다.

 

凡所止舍 遠人煙

大要 在安其危甘其苦

머무르는 곳은 인가를 멀리하였으니

그것은 위태로운 것을 편안히 여기고

고생을 달게 여기며,

 

役四體爲奴虜 奉一心爲君主

[貨殖傳云 齊俗 賤奴虜 曹邴氏獨任使之

○ 案 此文奴虜引用 與史意小異 其爲賤之之意 則一也]

몸 놀림[노동]은 종처럼 했으나

마음 받들기는 임금처럼 했다.

 

其三十餘年行事也 如是

(중국에서의) 30여 년간의 행적은 이와 같았다.

 

會昌[武宗年號]五年

來歸 帝命也

[年譜云 武宗乙丑 仍戒賢 毁寺沙汰 勑外國僧 各還本藩

潭州觀察使令鄕僧可觀 道均 宗徹等十三人 與二 航及食牒 送至海州連水縣

便値本國內回易使張春 繫纜於武州錦城郡 將弟子體順 神靜 元暢

談洪 法焰 朗然等遊踐也 武州 一云武珍州 今光州也 錦城 今之羅州也]

회창(會昌) 5년(845)에 귀국하였는데 이것은 황제가 (외국 승려들을 귀국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國人相慶曰

連城璧復還

[趙惠王得卞和氏璧 秦昭王願以十五城易之

王無償 相如完璧還趙 是謂連城寶也]

나라 사람들이 서로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여러 성(城)과 바꿀 수 있는 귀한 보배가 다시 돌아왔으니

 

天實爲之[天子護送之也]

地有幸也[新羅國地 有慶幸也]

이것은 하늘이 해주신 일로

땅에는 복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自是 請益者

所至稻麻矣

이때부터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마치 벼와 삼같이 빽빽하였다.

 

入王城[慶州] 省母社 大歡喜曰

서울에 들어와 어머니를 찾아뵈니 (어머니는) 크게 즐거워하면서,

 

顧吾疇昔夢 乃非優曇

[音儀云 具云 優曇鉢羅 此云瑞應 般泥涅經 閻浮提內 有尊樹王 名優曇鉢羅

有實無花 優曇鉢羅樹 若生金華者 世乃有佛云云 然則佛出世

乃此樹發花 故希有也]

之一顯耶

“돌이켜 보니 전에 내가 꾼 꿈이

우담화가 한 번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

 

願度來世

吾不復撓倚門之念也

[史記 王孫賈事閔王 王出走賈失之光 其母曰 汝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

汝暮出而不歸 則吾倚閭而望 今王出 汝不知處 尙何歸 賈卒誅淖齒

立齊王也]

바라건대 내세를 제도하라.

나는 다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已矣 迺北行

擬目選終焉之所 이에 곧 북쪽으로 나아가서

종신토록 몸 붙일 곳을 찾아다녔다.

 

會 王子昕 懸車

[謂致仕也 金昕 以大將軍 領軍十萬

禦淸海兵於大丘 敗績 不復仕宦 入小白山 葛衣蔬食 與浮屠遊]

그때 마침 왕자 흔(昕)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爲山中宰相

[山中宰相者 陶弘景入茅山

自稱華陽隱君 梁武帝時 有大事 無不咨訪 時人號山中宰相也]

산중(山中)의 재상(宰相)으로 불렸는데

 

邂逅適願[逅 音侯 不期而適相値 詩唐風 今夕何夕 見此邂逅]

우연히 바라는 바가 합치되었다.

 

謂曰 師與吾俱祖龍樹

[新羅太宗名 大師 八世孫 昕 九世孫也]

乙粲[武烈王卽位之前 司是職也]

(昕이) 말하기를,

“스님과 나는 함께 용수(龍樹) 을찬(乙粲)을 조상으로 하고 있으니,

 

則師內外爲龍樹令孫

[內 太宗龍樹之孫 菩薩龍樹之孫]

스님은 안팎으로 모두 용수(龍樹)의 자손입니다.

 

眞瞠若不可及

[莊子云 顔淵問於仲尼曰 夫子步亦步 夫子趨亦趨 夫子馳亦馳

夫子奔逸絶塵 而回瞠若於後矣 註瞠直視貌 不及之意也]者

참으로 놀라와 감히 미칠 바가 못됩니다.

 

而滄海外 躡瀟湘故事

[唐樹惲詩云 洞庭有歸客 瀟湘逢故人 謂唐恩浦相遇之事也]

그러나 바다 밖에서 함께 했던 일이 있으니

 

則親舊緣固不淺

옛적의 인연이 결코 얕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有一寺在熊川州[今公州] 坤隅

[西南間藍浦 聖住山聖住寺]

지금 웅천주(熊川州) 서남쪽 모퉁이에 절이 하나 있는데

 

是吾祖臨海公受封之所

[公始祖金紫光祿大夫仁問公 太宗第二子 字仁壽 以屠穢貊功

太宗元子文武王 封之於熊川]

이것은 나의 조상인 임해공(臨海公) 께서 봉토로 받은 곳입니다.

[휘(諱)는 인문(仁問)이고, 당나라가 예맥(濊貊 : 실은 高句麗를 말함)을 정벌할 때에 공이 있어서 임해공(臨海公)으로 봉해졌다]

 

間 刦 [音盡 與燼同 爲餘]

流災[災 與灾同 天火也]

金田[須達長者 以金布地 而買祗陀太子園 以施佛故]

半灰

그 사이 커다란 불이 일어나 사찰이 반쯤은 재가 되어버렸으니,

 

匪慈哲 孰能興滅繼絶

[論語云 武王興滅國 繼絶世 天下之民歸心焉]

자비롭고 현명하신 분이 아니라면

누가 이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可强爲朽夫住持乎

부디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하여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大師答曰 有緣則住

대사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있다면 머물러야겠지요”라고 하였다.

 

大中[唐宣宗年號]初

始就居 且肹飾

[肹 音詰 郊祀歌 門不肹飾 師古曰

肹 振也 言皆振整而飾之也]

대중(大中 : 847~859) 초에

그곳으로 가서 머물기 시작하면서 말끔히 단장하였던 바,

 

俄而 道大行 寺大成

얼마 되지 않아 도(道)가 크게 행하여지고 절은 크게 번성하였다.

 

繇是 四遠問津輩

視千里猶跬步

[司馬法 一擧足曰跬 跬 三尺 兩擧足曰步 步 六尺也]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먼 곳에서부터 도(道)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천리 먼 길을 반걸음처럼 가깝게 여기고 찾아오니

 

其[麗+攴] 不憶

리[麗+攴]

 [音里 數也 書傳云 其 不億 不啻億之意也]

그 수가 이루 셀 수 없었다.

 

寔繁有徒

[詩云 無念爾祖 寔繁有徒]

大師猶鍾待扣

[有大扣則大鳴 小扣則小鳴 比問答之大小也]

이처럼 무리가 많아졌지만

대사는 종이 늘 쳐주기를 기다리고

 

鏡忘罷

[罷 與疲同 ○ 世說云 車徹若問於謝 因曰 不問則德音有遺 多問則重勞二謝

表喬曰 必無此嫌何嘗見明鏡疲於屢照]

거울이 얼굴을 비춤에 피곤해 하지 않듯,

 

至者 靡不以慧炤導其目

法喜[禪悅食也]娛其腹

온 사람은 모두 지혜의 횃불로 그 눈을 이끌어 주고,

불법의 즐거움으로 배를 채워주어

 

誘憧憧[往來不絶之貌]之躅

變蚩蚩[詩云 氓之蚩蚩 註云 蚩蚩無知貌]

之俗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이끌어 주고

무지(無知)한 습속을 변화시켰다.

 

文聖大王[名慶膺 神武王太子]

聆其運爲

莫非裨[裨 補]王化

문성대왕(文聖大王)께서는

대사가 행하는 일이

왕도(王道)를 행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甚㤎[㤎 音哥 法也 楷也]之

飛手敎 優勞

매우 기특하게 여기셔서

급히 어찰을 보내어 위로하였으며,

 

且多[重多]大師答山相之四言

[子昕爲山中宰相 故云山相也 有緣則住 是四言也]

또한 대사가 산중(山中) 재상(宰相)에게 대답한

네 마디 말[有緣則住]을 중하게 여기셔서

 

易寺牓[舊名烏合寺]爲聖住

仍編錄大興輪寺

[輿輪 國之願堂 編名記錄於興輪寺

故一例崇奉之意 或大興輪寺奴婢田畓屬於聖住寺故也]

사찰의 이름을 성주(聖住)로 바꾸고

대흥륜사(大興輪寺)에 편입시키도록 하셨다.

 

大師酬使者曰

대사가 왕의 사자(使者)에게 대답하기를,

 

寺以聖住爲名

招提[寺也]固所爲榮 至寵

“사찰의 이름을 성주(聖住)로 지어주신 것만 하여도

절로서는 영광스럽고 지극한 총애가 될 것입니다.

 

庸僧 濫吹高籍

[高籍 手敎也 或云寺籍也]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중이

외람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寔避風斯媲

[媲 音比 配也 莊子 海鳥避風止於魯郊 魯侯御以觴之于廟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 憂悲不敢食飮 三日而死 是不以鳥養鳥 今王之寵師 亦猶是也]

이것은 바다새가 바람을 피해오자

뭍의 새가 봉황으로 오해한 것과 비슷한 것으로

 

而隱霧可慙矣

[列女傳云 陶答子 名譽不興 家産三倍 其妻諫曰 南山有玄豹

霧雨七日 不下食 將欲澤其毛衣而成文章也 故隱而避害 汎豕貪啗無厭

故因以見俎 今子無隱霧之操 有凡豕之欲 妾懼之 未幾被誅]

흐린 날에는 숲에 숨어서

자신의 무늬를 윤택하게 한다는 표범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時憲安大王

[卽文聖之弟 神武王之次子 名誼靖]

그때 (즉위 전의) 헌안대왕(憲安大王)께서는

 

與檀勢

[唐梵雙擧 檀 此云惠施 卽惠施越苦海也]

사찰의 시주(施主)인

 

季舒發韓

[職號 文聖十九年侍中金陽卒 追贈舒發韓 陪葬太宗陵 姓金 又名魏昕]

魏昕 爲南北相

[各居其官 猶左右相]

계서발한(季舒發韓)인 위흔(魏昕)과 더불어 남북(南北) 재상(宰相)[각기 자신의 관사에 있어 좌상(左相), 우상(右相)과 비슷하였다] 이었는데,

 

遙展攝齊

[齊 音咨 裳下縫也 師弟子攝師之齊]

禮[弟子禮也]

멀리서 제자의 예를 행하며

 

贄[贄 音至 執也]以茗馞

[馞 音孛 搏雅云 香也 茗茶也]

향과 차를 예물로 보내어

 

使無虛月

[左傳 府无虛月 註 晉之府庫 无月不受 魯之貢賦使 使介也]

한달도 그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至使名[師名聲也] 

[雨아래僉]霑[與霑同 小雨沾微也] 東國

이렇게 (大師의) 명성이 온 나라에 가득하여

 

士流不識大師門 爲一世羞

선비들은 대사의 선문(禪門)을 모르는 것을

일세의 수치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得禮足者[頂禮師足]

退必唶[唶音借嘆聲]曰

그리고 대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물러나와서 반드시 감탄하면서

 

面謁百倍乎耳聞 口未出而心已入

“직접 뵈니 귀로 듣던 것보다 백배나 낫다.

입으로 말씀하지 않아도 벌써 마음에 와 있었다”고 말하곤 하였다.

 

抑有猴虎[猴虎 奸人]而冠者

그래서 원숭이나 호랑이가 관(冠)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사람들도

 

亦熄其趮[趮 音  說文 疾也]

곧 그 조급함을 떨치고,

 

혁[言+革] [혁 音革 更也]

其虣

[虣音暴虐也猛也 周禮大司徒 以刑敎中則 民不虣]

사나운 마음을 고쳐서

 

而億 [  競同] 犇馳善道

착한 길로 다투어 달려 나갔다.

 

曁憲安王嗣位 賜書乞言

[乞言者 遣敎昌法師 書 言弟子德薄 恭膺大統 禪師神惠特深

見聞高遠 請出一栦 敎我不及 大師答曰 殿下已知爲君難也]

헌안왕께서 즉위하심에 이르러

대사에게 글을 보내어 도움이 될 말을 청하였는데,

 

大師答曰

周禮對魯公之語 有旨哉

著在禮經 請銘座側

[魯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又定公問 一言而可以興邦有諸 對曰 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爲君難 爲臣不易 如知爲君之難也 不幾乎一言而興邦乎

曰 一言而喪邦有諸 對曰 言不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予無樂乎爲君

惟其言而莫予違也 如其善而莫之違也 不亦善乎 如其不善而莫之違也

不期一言而喪邦乎云云也]

대사는 대답하기를

“주풍(周豊)이 노공(魯公)에게 대답한 말이 뜻이 깊습니다.

예경(禮經)에 적혀있으니 자리 옆에 새겨 두십시오”라고 하였다.

 

逮贈太師先大王

[景文王 姓金 名膺廉 僖康王孫 阿飡殷明子也 憲安無子 故冊命立婿云]

卽位

태사(太師)를 추증받으신 선대왕(先大王 : 景文王)께서 즉위하셔서도

 

欽重如先朝志 而日加厚焉  

(대사를) 공경하고 존중하심이 선조(先朝 : 憲安王) 때와 같아서

대우해 주는 것이 나날이 두터워졌다.

 

㝡[최  凡同]所施爲 必馳問然後擧

일을 시행할 때에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어 물어본 후에 거행하였다.

 

咸通[唐懿宗年號也]十二年秋

함통(咸通) 12년(871) 가을에

 

飛鵠頭書

[韻府羣玉云 鵠頭蚊脚 以招隱士 註 二者 皆漢詔板]

以傳[傳 驛遞也] 召曰

(왕께서는) 대사에게 교서(敎書)를 급히 보내고

사람을 시켜 부르면서 말하기를,

 

山林何親 城邑何疎

“산림(山林)을 어째서 가까이 하시면서

도성(都城)은 멀리하십니까?”라고 하였다.

 

大師謂生徒曰 遽命伯宗

[左傳 梁山崩 晉侯以傳召伯宗 伯宗避重 註 言適有重載之車在途

故避之使退也 載重人曰 待我不如捷之速也

問其所居 曰 絳人也 問其絳事焉 曰 梁山崩 將召伯宗謀之

問將若之何 曰 山有朽壤而崩 可若何 國主山川 故山崩川渴

君爲不擧絳縵徹樂出次祝幣史辭以禮 急其如此而已 雖伯宗若之何

伯宗請見之 其人不可 遂以告景公 從其言 縵 無紋車也 出次 出外寢也

祝幣 以幣祝天也 史辭者 深責罪]

대사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진후(晉侯)가 백종(伯宗)을 부르듯하니

 

深慙遠公[潤載云 晉安帝還次潯陽 詔遠見于行在 輔國何无忌勸遠一出

遠固辭以疾 帝三詔 問勞 勑九江太守 歲時 送米資奉 卜居三十年 影不出山 迹不入俗]

(산문에서 밖에 나오지 않았던) 혜원공(慧遠公)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然道之將行也 時乎不可失

하지만 앞으로 도(道)를 행해지게 하려면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念付囑

[佛臨涅槃 以佛法流通 付囑國王大臣也]

故吾其往矣

부처께서 (불법이 전해지도록) 부촉(付囑)하신 바를 생각하니

내가 가야 되겠다”라고 말하고

 

欻爾 至轂下[輦轂之下 卽都城也]

及見

즉시 서울에 도착하여 왕을 뵈었다.

 

先大王[景文王]冕服 拜爲師

선대왕께서는 면복(冕服) 차림으로 절을 하여 스승(王師)으로 삼았고,

 

君夫人世子曁太弟[追封尊諡惠成大王] 相國

왕비와 세자, 그리고 왕의 동생이신 상국(相國) [돌아가신 후에 왕으로 높이고 시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고 하였다]과

 

羣公子公孫 環仰如一

여러 왕자, 왕손들이 빙 둘러싸고 한결같이 우러렀는데

 

一如古伽藍[此云衆園]繢[繢 音會 會五彩以畫也]壁面

寫出西方諸國長[諸國之君長]侍勃陁[勃陁亦云佛陁梵音小異]樣式

마치 옛날 가람의 벽 그림에

서역의 여러 왕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였다.

 

上曰

弟子不佞[佞 才也 魯語 夷吾 不佞也]

小好屬文[屬文 作文也]

임금께서 말씀하시길,

“제자가 말 재주는 없습니다만,

글 짓는 것은 조금 좋아합니다.

 

嘗覽劉勰

[勰 昔叶 並同 南史 劉勰梁武帝

時人雅爲昭明太子所重

著文心雕龍五十卷 家貧不婚娶 依沙門僧裕 遂博通經論

區別部類 撰五十序 定林寺藏經 卽其詮次也 中書令沈約絶重其文

常置几案間 京都下寺塔及名僧碑碣 皆出其手也 累官通事舍人

表求出家 先燔鬚自誓 帝嘉之 賜法號惠雲云]

文心

전에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본 적이 있는데

 

有語云

滯有守無 徒銳偏解

거기에

“유(有)에만 얽매이거나, 무(無)만을 고집하면

편벽된 이해에 나아갈 뿐이다.

 

欲詣眞源 其般若之絶境

반야(般若)의 절대적인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는데

 

則境之絶者 或可聞乎

“참된 근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절대적인 경지가 무엇인지 가르침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大師對曰

대사가 대답하기를,

 

境旣絶矣 理亦無矣

斯印也 黙行爾 “경지가 이미 절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설명할) 이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으로 전하는 것(心印)이니

말없이 행해질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上曰 寡人固請少進

[ 莊子云 老聃呼子貢曰 小子少進]

임금께서 “과인은 조금 더 배우기를 청합니다”고 하자

 

爰命徒中錚錚者

[光武謂樊崇曰 卽鐵中錚錚也]

更手撞擊

[人師曰 撞擊 隨旬而答 如鍾撞擊故也 見字彙]

대사는 제자 중의 뛰어난 자에게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하게 하여

 

舂容盡聲

[禮記云 儒有夙夜講學以待問 善待問者 如撞鍾 叩之以小者

則小鳴 叩之以大者 則大鳴 待其從容然後 盡其聲 疏曰

從 讀爲舂 舂者謂擊也 以爲聲之形容 言鍾之爲體 必待其擊 每一

舂而爲一容然後 盡其聲 善答者 亦待其一問然後 一答 乃盡說義理也]

차근차근 속속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어

 

剖滯袪煩

若商 之劃[劃 音畫 割也]陰靄然

막힌 것을 해결하고 번거로운 것을 떨쳐 버리기를

마치 가을바람이 어두침침한 노을을 밀어내듯 하였다.

 

於是 上大喜

懊[懊 音奧 悔恨]

見大師晩曰

이에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셔서

대사를 늦게 만나본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말씀하시길,

 

恭己南面[論語云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而已]

司南[司 主守也 南 任也 見字彙]

南宗

“성인께서 자연스럽게 바른 길(南宗)을 가리켜 주셨는데,

 

舜何人哉 余何人也

[孟子曰 舜何人也 余何人也 有意者亦若是云云]

순(舜)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라고 어찌 못하겠는가”라고 하였다.

 

旣出 卿相延迓

[迓 音牙 迎也]

왕궁에서 나오자 재상들이 다투어 마중하니

 

與謀不暇 士庶趨承 欲去不能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일반 백성들이 뒤쫓으며 따르니

떠나고자 하여도 그럴 수 없었다.

 

自是 國人皆認衣珠

[法華中 有人衣內 係珠 喩事不煩引]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귀한 보배(佛性)가 있음을 깨달아

 

鄰叟罷窺廡玉焉

[尹文子云 魏叟得徑尺玉 鄰人曰 此至怪石也 抱置廡下夜間視之

光照一室 益大駭 反棄野 鄰人獻之魏王 玉工曰 此無價

以當之五都之城 僅可一觀 王賜獻玉者千金 長食上大夫之祿也]

이웃집의 보석을 탐내지 않게 되었다.

 

俄苦樊笯[樊笯 養鳥之具 比王宮] 中

卽亡去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새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활을 괴롭게 여겨서

(서울을) 떠나고자 하였다.

 

上知不可强 迺降芝檢

[瑞命記云 王者德仁則芝艸生 故王之手書 謂芝檢]

임금께서는 억지로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

곧 교서(敎書)를 내려서

 

以尙州深妙寺不遠京 請禪那別館

상주(尙州)의 심묘사(深妙寺)가 서울로부터 멀지 않으니

선종의 별관으로 삼아 머무르라고 하셨다.

 

辭不獲 往居之

대사는 거역할 수 없어 그곳에 가서 머물렀는데,

 

一日必葺[葺 音緝 茨也 修補]

儼若化城

[法華經云 有導師 將導衆人 欲過險道 所將衆人 中路懈退

導師多設諸方便於險道中 過三百由旬 化作一城 告衆人言 汝等勿怖

莫得退還 今此大城 可於中止 隨意所作 若入是城 快得安穩

是時 疲極之衆 心大歡喜 嘆未曾有 爾時 導師知此人衆無復疲倦

卽滅化城 語衆人言 寶所在近 向者 大城 我所化作 爲止息耳]

잠시 머물지라도 반드시 수리하였으니

곧 엄연한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乾符[僖宗年號]三年[僖宗丙申]春

건부(乾符) 3년 (876) 봄에

 

先大王[景文王]不預[預 安也]

선대왕(先大王)께서 병환이 나셨는데

 

命近侍曰

亟[急也]迎我大醫王來

근시(近侍)에게

“빨리 우리 대의왕(大醫王)을 모셔오라”고 명하셨다.

 

使至 大師曰

사자가 오자 대사께서는 말했다.

 

山僧足及王門 一之謂甚

“산승(山僧)의 발이 왕궁에 이르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심하다고 할 것이므로

 

知我者 謂聖住爲無住

不知我者 謂無染爲有染乎

나를 아는 사람은

‘성주(聖住)가 머무르는 곳이 없게 되었다 [無住]’고 말할 것이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염(無染)이 물이 들었다 [有染]’고 말할 것이다.

 

然顧與吾君 有香火因緣

[郭氏子儀與吐蕃 結香火之約云 言焚香告天而結兄弟也]

하지만 우리 임금과 서로 맹세한 것을 생각하여 볼 때,

 

忉利之行

[此云三十三天 帝王之死云 昇天寶天 故取其義也]

有期矣

盍就一訣

임금께서 도리천에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찌 가서 작별인사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復步至王居 設藥言 施箴戒

[箴 與鍼同 又箴規箴戒]

다시 왕궁으로 가서 약이 되는 말씀을 하여 주고,

잠계(箴戒)를 베푸시니

 

覺中愈 擧國異之

(왕께서) 깨닫는 가운데 병이 조금 나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旣踰月 獻康大王居翼室

[捨正殿而居翼室 以居憂故翼室 左右廊]

한 달이 지나서 (경문왕이 돌아가시고)

헌강대왕께서 거상(居喪)을 하게 되었다.

 

泣命王孫勛榮 諭旨曰

(왕께서는) 울면서 왕족인 훈영(勛榮)을 통하여 뜻을 전하였으니

 

孤幼遭閔凶[父喪] 未能知政

“내가 어려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정사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致君奉佛

誧[誧 音普 大 相助也 又音怖 謀]

濟海人[多人也 或云 海東人]

임금을 인도하고 부처를 받들어

사해(四海)의 사람을 널리 구제하는 것은

 

與獨善其身 不同言也

자기 한 몸만을 착하게 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일입니다.

 

幸大師無遠適 所居唯所擇

원컨데 대사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시고

(서울에서) 머무를 곳을 고르십시오”라고 하였다.

 

對曰古之師則六籍

[六籍者 六經也 詩書易周禮春秋禮記]存

(대사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스승의 가르침은 6경(經)에 기록되어 있고,

 

今之輔則三卿

[三卿者 儀禮疏云 司徒司馬司空也]在

지금 보필할 사람은 3경(卿)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老山僧何爲者

늙은 산승(山僧)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坐蝗 桂玉哉

[蝗 音黃 蟲也 似蚱蜢而大 頷下有子 翅傍有竅 可以縷貫 羣飛食苗

○   音妬 陸龜蒙 化篇橘之  大如小指 一日視之不食

明日往見 蝗化爲蝴蝶 ○ 戰國策云 蘇秦入楚 三日乃得見平王 談卒辭而行

王曰 寡人聞先生若聞古人 今先生乃不遠千里而臨寡人

曾不肯留 願聞其說 對曰 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謁者難得見如見鬼

王難見如天帝 今令臣食玉炊桂 因鬼見帝 臣可住此 王曰 先生就舍 寡人聞命矣 卽其義]

단지 누리[蝗]처럼 앉아서

땔나무와 곡식을 축낼 뿐입니다.

 

就有三言 庸[用也]可留獻曰能官人

[左傳云 襄公十五年 楚能官人 楚康王能爲官擇人也]

단지 세 마디 말로 남겨드릴 만한 말씀이 있으니

‘관리를 잘 등용하라 [能官人]’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翌日挈山裝鳥逝

다음날 산의 무리를 이끌고 새처럼 떠나고 말았는데,

 

自爾 騎置

[置 音智 驛傳曰置 漢烏孫傳 有便宜 因騎置以聞 師古曰 卽今之顓馬也]

傳訊 影綴巖溪

이때부터 역마(驛馬)들이 왕명을 전하려고

산중에 그림자를 이었다.

 

遽人[驛傳急卒]知往抵聖住

卽皆雀躍

[莊子云 鴻蒙方將撫髀 雀躍而遊 註 雀躍 勇躍自樂之貌]

역졸(驛卒)들은 가야할 곳이 성주사인 것을 알면

곧 모두 뛸듯이 기뻐하며

 

叢[聚也]手易轡

慮滯王程[行限] 猶尺寸地

손을 모아 말고삐를 고쳐잡고

왕명이 한걸음이라도 늦을까 걱정하였다.

 

由是 騎常侍

[如司馬門校尉卽今之宣傳官]

倫伍

[倫 輩也 伍 迎也 今之卒也]

이 때문에 왕명을 전하는 근시(近侍)들은

 

得急宣[宣 敎旨也]

爲輕擧

급히 전할 말이 있어도 쉽게 행해질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乾符帝[僖宗]錫命之歲

[天子以冊封太傅爲獻康王也]

건부제(乾符帝)가 헌강대왕의 즉위를 인정한 해(878년)에

 

令國內舌杪 有可道者

貢興利除害策

[使國內識者有所懷者建議]

(임금께서는) 나라 안의 진언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가져오고 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계책을 올리게 하였는데

 

別用蠻牋

[中國人自高句麗以來 吾邦産紙謂蠻牋]

書言

특별히 우리나라의 종이를 사용하여 말을 적게 하였다.

 

荷天寵有所由

천자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因垂益國之問

나라에 이익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大師引出何尙之

[劉宋南朝侍中]

獻替宋文帝心聲

[孟子曰 言者 心之聲也]

爲對[尙之對文帝事 見于通載八卷]

대사는 하상지(何尙之)가

송(宋) 문제(文帝)에게 바친 말로써 대답하였다.

 

太傅[獻康]王覽

謂介弟

[左傳云 伯州ꝃ曰 王子圍寡君之貴介弟 註 介大也] 曰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동생인 예부령(禮部令 : 南宮相)에게 말씀하시길

 

三畏

[論語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言]

比三歸

[歸佛 歸法 歸僧]

“삼외(三畏)는 불교의 삼귀의(三歸依)에 비교될 수 있고,

 

五常均五戒

오상(五常)은 불교의 오계(五戒)와 비슷하다.

 

能踐王道 是符佛心

왕도(王道)를 잘 실천하는 것이

부처의 마음에 부합되는 것이다.

 

大師之言至矣哉

吾與汝宜惓惓

[惓 音權 謹也 又愁切也]

대사의 말이 옳은 것이다. 너와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中和西狩之年

[僖宗辛丑壬寅 黃巢及秦宋權稱讚號 避黃巢亂 入西蜀 故云西狩]

건부제(乾符帝)가 (黃巢의 亂을 피하여) 서쪽으로 피난한

중화(中和) 원년 (881쪽) 가을에

 

上謂侍人曰

임금께서 시인(侍人)에게

 

國有大寶珠

畢世 [ 櫝同]而藏之 其可耶

“나라에 커다란 보배 구슬이 있는데

평생토록 궤에 감추어 두는 것이 잘한 일인가 ?”하고 묻자

 

曰 不可

不若時一出

俾醒萬戶眼 醉四鄰心

“아닙니다.

때때로 꺼내어서 많은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고

사방 이웃 나라의 마음을 쏠리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曰 我有末尼[此云如意珠也] 上珍

匿曜在嵩巖山[聖住寺]

이에 임금께서

“나에게 마니(摩尼)의 귀한 구슬이 있는데

숭엄산(崇嚴山)에서 빛을 감추고 있다.

 

脫[脫 音太 若也]

闢秘藏

宜照透三千界

만약 그 감춘 것을 열기만 한다면

삼천세계를 환히 비출 수 있으니

 

何十二乘

[魏文侯曰 寡人有徑寸之珠 照車前後各十二杵]

之足道哉

수레 열둘을 비춘다는 구슬이야 비교가 되겠는가?

 

我文考[景文]懇迎 嘗再顯矣

나의 부왕께서 간절히 맞이하셨을 때,

두 번이나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昔酇侯譏漢王拜大將

如召小兒

옛날에 소하(蕭何)는 한 고조가 한신(韓信)을 대장(大將)으로 임명하면서

아이 부르듯 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 하면서

 

不能致商山四老人此以

상산(商山)의 네 노인을 부를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今聞天子蒙塵

[左傳云 天子奔走 謂之蒙塵 詳如西狩註]

지금 천자께서 피난하셨다는 말을 들었으니

 

趣令奔問官守

[天子侍從羣臣 不能直斥天子 故云官守]

달려가서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인데,

 

勤王加厚

歸佛居先

천자를 위로함에는 부처에게 의지함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將邀大師 必叶外議

이제 대사를 맞아들임에 있어서는

반드시 세상의 평판에 따를 것이다.

 

吾豈敢倚其一 慢其二哉

[孟子曰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 案 倚其一 指居君位也 慢其二 指師齒德也]

내가 어찌 감히 왕이라고 하여

나이 많고 덕이 높으신 분에게 무례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며

 

乃重其使

卑其辭 徵之

관직이 높은 사람을 사자(使者)로 보내고

말을 겸손하게 하여 부르셨다.

 

大師云

孤雲出岫

寧有心哉

[雲無心而出岫之意也]

이에 대사는

“외로운 구름이 산에서 나오는 것이

어찌 다른 마음이 있어서이겠는가.

 

有緣乎大王之風

無固 [易曰 無固無必]

乃上士之道

遂來見

대왕의 정치에 인연이 있으니

고집함이 없는 것이 뛰어난 선비[上士]의 도리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드디어 와서 왕을 뵈었다.

 

見如先朝禮

임금께서 대사를 인견함은 선조(先朝 : 景文王) 때의 예절과 같았는데

 

禮之加

焯[焯 與灼同也 說文 明也]

然可屈指者

예에 덧붙여진 것으로서 분명히 손꼽을 만한 것으로는,

 

面供饌 一也

임금께서 직접 음식을 봉양한 것이 첫째이고,

 

手傳香 二也

三禮者三 三也

[致敬三拜凡三次]

손으로 향을 전하신 것이 둘째이며,

몸·입·뜻의 삼업(三業)으로 세 번이나 경의를 표하신 것이 셋째이며,

 

秉鵲尾爐

[說文云 香爐有長柄者也 東坡詩註曰

費崇先 尤信佛 以鵲尾香爐 置膝前]

작미로(鵲尾爐)를 잡고

 

締[結也] 生生世世緣 四也

영생의 인연을 맺은 것이 넷째이며,

 

 

加法稱[法號] 曰廣宗 五也

법칭(法稱)에 ‘광종(廣宗)’을 더하여 준 것이 다섯째이며,

 

翌日命振鷺

[詩云 振鷺于飛 註云 振 羣飛貌

蓋少昊以鳥紀官之時 以鵷鷺爲三公 故今之朝士謂鵷鷺之班]

다음날 어진 이들에게

 

趨鳳樹

[鳳非梧桐不栖 非琅玕不食 鳳樹指大師留宿之所]

대사가 머무는 절에 나아가

 

雁列賀 六也

기러기처럼 열을 지어 인사드리도록 한 것이 여섯째이며,

 

敎國中

나라 안의

 

磋磨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 註云 切磋治骨角 琢磨治玉石也]

六義者

[風雅頌比賦興 詩序云 風者 民俗歌謠之詩 賦者敷陳其事而直言之也

比者 以彼物比此物也 興者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事也

雅者 正樂之歌 頌者 容也 美盛德之形容也]

시(詩)를 짓는 사람들에게

 

賦送歸之什[詩歌]

대사를 송별하는 시(詩)들을 짓게 하여서

 

在家弟子王孫蘇判嶷榮 首唱

재가제자(在家弟子)인 왕족 소판(蘇判) 억영(嶷榮)이

가장 먼저 시(詩)를 지으니

 

斂成軸[卷軸]

그것을 거두어서 두루마리로 만들고,

 

侍讀[春坊官名]

翰林才子朴邕爲引

[文體源流云 序者 叙其事也 始於卜子夏詩序

引者 引其事也 始於班固典引 引與序一也而但變名爾也]

시독(侍讀)이며 한림관(翰林官)인 박옹(朴邕)이 거기에 인(引)을 붙여서

 

而贈行七也

떠날 때에 준 것이 일곱째이며,

 

申[重也]命掌次

[掌次 掌設幕之官 禮記 掌次 註云 修正處所卽今之帷帳次知官也]

張淨室

행차를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정결한 방을 준비하도록 거듭 명하여

 

要叙別 八也

그곳에서 작별하신 것이 여덟째이다.

 

臨告別 求妙訣

고별에 임하여 임금께서 신묘한 비결(秘訣)을 구하시니,

 

乃眴

[眴與瞬同 以目使人也]

從者 擧眞要

이에 제자들에게 눈짓하여 진요(眞要)를 들려주라고 하였다.

 

有若 詢乂 圓藏 虛源 玄影 四禪中 得淸淨者

순예(詢乂), 원장(圓藏), 허원(虛源), 현영(玄影)과 같은 이는

사선(四禪)을 행하여 청정(淸淨)을 얻은 사람들로서,

 

緖抽

[詩蓼莪章云 緖抽作杼抽 杼 持緯者也 抽 受經者也

又杼 音處 機上行緯具梭也 抽 引也 言梭持緯絲 出無於經間而受絲也]

其慧

지혜의 실을 뽑아

 

表纖其旨

깊은 뜻을 짜냈는데,

 

注意無怠 沃心有餘

[書云 啓乃心沃朕心]

뜻을 기울여 소홀함이 없었고,

임금의 마음을 계발(啓發)함에 여유가 있었다.

 

上甚悅 拜[拱手而拜]曰

임금께서 매우 즐거워하여

두 손을 마주잡고 경의를 표하며 말씀하기를,

 

昔文考爲捨瑟之賢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子曰 盍各言爾志 三子各言其志後 子曰 點爾何如 鼓瑟希 鏗爾捨瑟而作

對曰 異乎三子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暮春者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夫子歎曰吾與點也]

“전에 저의 부왕(父王)께서는 증점(曾點)과 같은 현인이셨는데,

 

今寡人忝避席之子

[孝經 子曰 先王有至德要道 以順天下民用和睦 上下無怨 爾知乎

曾子避席曰 參不敏何足知之云 曾晳 曾子父名 俱爲孔子弟子也]

지금 저는 증삼(曾參)과 같은 아들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繼體

[紹父之體]

得崆峒之請

[莊子 黃帝聞廣成子在崆峒山 往問至道之精

成子曰 自而 治天下 雲氣不待族而雨

草木不待黃而落 日月之光益以荒矣 奚足以語至道 帝退三月

往問治身 成子曰 至道之精 無視無聽 無撓爾精 乃可長生云]

그러나 임금의 자리를 이어서

덕이 있는 사람에게 지극한 도리를 얻고,

 

服膺

[中庸云 回之爲人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弗失之 註 拳拳

奉持貌 服猶着也 膺  也 奉持而着之心 之間 言能守也]

그것을 받들어 간직함으로써

 

開混沌之源

[莊子云 南海帝爲儵 北海帝爲忽 中央帝爲渾沌 儵與忽時與遇於渾沌之地

渾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渾沌德曰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此獨無有 當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註 儵 音叔

儵忽取其神速爲名 混沌以和合爲貌 元氣未分前也 渾沌死 言不順自然

强開耳目也 渾沌並上聲]

뒤엉켜진 근본을 열게 되었습니다.

 

則彼渭濱老翁[姜太公]

眞釣名者

그러니 저 위수(渭水)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姜太公)은

사실은 명예를 낚으려는 자였으며,

 

圯上孺子

[圯 音夷 楚人謂橋爲圯 卽下邳圯上 漢書云 張良遊下邳 遇父孺子可敎

出一編書曰 讀此爲王者師 遂去不復見 旦日視其書 乃太公兵法也]

흙다리 위의 장량(張良)도

 

蓋履迹焉

그런 전철을 밟았다고 할 것입니다.

 

雖爲王者師

徒弄三寸舌也

曷若吾師語

密傳一片心乎

비록 왕자(王者)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여도

단지 세 치의 혀를 놀린 것에 불과하니

어찌 나의 스승께서

은밀한 말로써 마음을 전한 것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奉以周旋 不敢失墜

받들어 실천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太傅王

雅[本也]

善華言[中華之言 卽漢文也]

金玉其音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아름다운 말과 시문(詩文)을 잘하셔서

 

不患衆咻聒

[孟子 衆楚人咻而聒之 咻 讙 聒 亂也]

여러 사람이 떠드는 것도 관계없이

 

而能出口 成儷語

[四六騈儷之文]

如宿構云

입을 여시면 짝이 맞는 말을 만드셨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하여 둔 것 같았다.

 

大師旣退

且往應王孫蘇判鎰

대사께서 왕궁을 물러나온 후에

다시 왕손인 소판(蘇判) 일(鎰)의 청함을 받아들였다.

 

共言數返 卽歎曰

같이 여러 차례 이야기를 주고 받고선

(대사께서) 감탄하여 말씀하시길,

 

昔人主有有遠體

而無遠神[神知]者

“옛날의 임금들은 장수하는 분은 있어도

생각이 깊지 못하였는데

 

而吾君備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그 둘을 겸비하셨고,

 

人臣有有公才

而無公望者

而吾子全

신하들은 재상이 될만한 재주는 있어도

그러한 덕망이 없었는데

그대는 두루 갖추었습니다.

 

國其庶乎

[近於治也 孟子云 齊其庶乎]

그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宜好德自愛

及歸謝絶

마땅히 덕을 좋아하십시오.”라고 하고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산으로 돌아가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方是 遣輶軒

[輕車 或輕擧使臣]

이에 임금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標放生場

[立四方禁標 使獵士不入其中 故謂之放生]

則鳥獸悅

방생장(放生場)의 경계를 표시하니

새와 짐승이 즐거워하였고,

 

紐[紐 音丑 說文 系也]

銀鉤[筆也]

扎[寫也] 聖住寺題

뛰어난 글씨로 ‘성주사(聖住寺)’의 제액(題額)을 써주시니

 

則龍蛇活[筆形也]

마치 용과 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盛事畢矣[崇佛至也]

昌期忽兮 [獻康王昇遐也]

좋은 일도 끝이 있고

한창 때도 끝나는 법이다.

 

定康大王[獻康之弟]莅阼

兩朝[景文王獻康王]寵遇

帥[帥 音卒 從也]

而行之

정강대왕(定康大王)께서 즉위하셔서는

(景文王과 憲(獻)康王) 양조(兩朝)에서 은혜를 베푼 것을 본받아 행하고자 하여

 

使緇素 重使迎之

辭以老且病

승려와 속인으로 거듭 사신을 보내어 맞아 오게 하였으나

(대사는) 늙고 병들었다고 사양하였다.

 

太尉大王

[卽位之初 帝命賜太尉 封新羅王]

태위대왕(太尉大王 : 眞聖王)께서는

 

流恩表海 仰德高山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온 나라를 덮었고

덕있는 사람을 존경하기를 높은 산을 바라보듯 하였다.

 

嗣位九旬 馳訊十返

즉위하신 지 9개월만에

안부를 묻는 사자가 10번이나 다녀갔다.

 

俄聞[音期 通也]腰之苦

遽命國醫往爲之[治也]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의(國醫)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至則請苦狀

大師微破顔曰

老病耳 無煩治

(國醫가) 도착하여 아픈 정도를 물으니

대사는 살짝 웃으며

“노병(老病)일 뿐이니 번거롭게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糜飧二時 必聞鍾後進

(國醫가) 미음을 하루에 두 번 들이되

반드시 (朝夕공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후에 올리도록 하였다.

 

其徒憂食力虧 陽戒掌枹者

[今之鍾頭也 枹 音桴 擊鍾槌也]

그러나 제자들은 대사께서 식력(食力)을 잃게 될까 걱정하여

몰래 종 치는 사람에게

 

陽密擊

거짓으로 (여러 번) 치도록 부탁하였다.

 

乃目牖而命撤

하지만 대사께서는 직접 창 밖을 내다보시고

그 거짓을 알고 그만두게 하셨다.

 

將化往 命旁侍 警遺訓于介衆

[左傳 晉士景伯問于介衆 註 介 大也]曰

돌아가실 즈음에

옆의 시중드는 사람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유훈(遺訓)을 남기셨다.

 

已過中壽

[上壽百 中壽八十 下壽六十]

難逃大期[死也]

“내 나이 이미 80[中壽]을 넘었으니,

죽음[大期]을 피하기 어렵다.

 

我儂[儂 音農 謂我爲儂]

遠遊

爾曹好住

나는 멀리 떠날 것이니

너희들은 잘 지내도록 하라.

 

講若畫一 守而勿失

공부하기를 한결같이 하며,

(수행의 태도를) 지키고 잃지 말라.

 

古之吏[蕭何曹參]尙如是

今之禪宜勉旃

[旃 與之同也]

옛 관리들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지금 선(禪)을 닦는 사람들이야 힘써 노력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告決裁[裁 纔同]罷

유언을 겨우 마치고

 

慹然

[莊子云 老聃新沐 方將被髮而乾 慹然似非人間 註 慹 音執

凝定貌 又不動貌]

而化

꼼작 않고 열반하셨다.

 

大師性恭謹 語不傷和氣

대사는 성품이 공손하고 삼가,

말이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았다.

 

禮所云

『예기(禮記)』에 이른바

 

中退然

[禮記云 中退然 註云 中 身也 退 謙也 性恭之順 如身之不勝諸衣也]

言吶吶然

[吶 音嬾 言難也 吶吶者 聲低而語緩也 如不出諸口也]者乎

“몸은 겸손하고,

말은 잘 못하는 듯이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黌[黌 音橫 學舍] 侶[學侶]

학승(學僧)들을

 

必目以禪師

반드시 ‘선사(禪師)’라고 불렀으며,

 

接賓客 未嘗殊敬乎尊卑

손님을 접대할 때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다르다고 해서 대우를 다르게 하지 않았다.

 

故滿室慈悲 烝[衆也]徒悅隨

그러므로 방에 가득한 자비에

제자들이 즐거워하며 따랐다.

 

五日爲期 俾來求者質疑

5일을 기한으로 하여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는 의심나는 것을 묻게 하였다.

 

諭生徒則曰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心雖是身主 身要作心師

患不爾思 道豈遠而[汝也]

“마음이 비록 몸의 주인이지만,

몸은 마땅히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음이 걱정이지,

도(道)가 너희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設是田舍兒[農夫]

能擺脫塵萳

비록 (배우지 못한) 시골뜨기라고 할지라도

속세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我馳則心馳矣 道師敎父 寧有種乎

내가 달리면 반드시 나아가게 될 것이니,

부처와 스승이라고 해서 어찌 별다른 종자를 가지고 있겠는가?”

 

又曰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彼所啜 不濟我渴

彼所噉 不救我餒[餒 音內 飢也]

盍努力自飮且食

“저 사람이 마신 것이 나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저 사람이 먹은 것이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니,

노력하여 스스로 마시고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或謂敎[敎宗]禪[禪宗]爲無同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이 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吾未見其宗[不同之宗]

나는 그 다르다는 종지(宗旨)를 보지 못하였다.

 

語本夥頤

[陳涉世家云 楚人謂多爲夥 服虔曰 頤者助聲之詞]

非吾所知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이고,

나는 알지 못하는 바이다.

 

大較[較音角 大略]

대개

 

同弗與[許也]

나와 같은 것을 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고,

 

異弗非

[禮記儒行篇註 與其所可與 不必同乎己也 非其所可非 不必異乎己也

同於己者 或鄕愿 公而不與 異於己者 或行怪惡而不非]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르지는 않은 것이다.

 

晏坐息機

斯近縷褐被者歟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생활하며,

교사(巧詐)한 마음을 버리는 것,

이것이 수도하는 사람의 행동에 가까울 것이다.

 

其言顯而順

其旨奧而信

(부처의) 그 말은 분명하니 그대로 따르고,

(부처의) 그 뜻은 오묘하니 그대로 믿으라.

 

故能使尋相爲無相

道者勤而行之

[道經云 上士聞道 勤而行之]

그러므로 심상을 무상이 되게 하고

도(道)를 부지런히 행할 뿐

 

不見有岐中之歧

[楊子 有亡羊 岐中多歧 故不知所之 喩大道本一而人各異說]

샛길 속의 샛길은 보지 말아라.”

 

始壯及衰 自貶爲基

食不異糧 衣必均服

(대사는) 젊어서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낮추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먹는 것을 남과 다르게 하지 않았고,

입는 것은 늘 같은 옷이었다.

 

凡所營葺 役先衆人

건물을 짓고 수리할 때에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일하고

 

每言祖師嘗踏泥

[佛造祗垣精舍 舍秋爲匠 迦葉踏泥]

吾豈蹔安栖

늘 “가섭조사(迦葉祖師)께서도 진흙을 이기신 적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잠깐이라도 편히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至摙[摙 音連 運也 負擔]水負薪

或躬親 且曰

때로는 물을 길어 나르고, 땔나무를 나르는 일까지도

몸소 하시면서

 

山爲我爲塵[言名山由我居而汚也]

我安得安身

“산이 나 때문에 더럽혀졌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하였다.

 

其克己勵物 皆是類

자기의 몸을 다스리고 일에 힘쓰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大師少讀儒家書

餘味在脣吻 故酬對多韻語

대사께서는 어려서 유가(儒家)의 경전을 읽었고,

그 공부한 것이 여전히 입에 남아 있었으므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에는 위와 같이 운(韻)을 맞춰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門弟子名可名者 厪二千人

문하(門下)의 제자로서 이름을 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2천여 명이 되고,

 

索居[獨居貌]而稱坐道場者

曰僧亮 曰普愼 曰詢乂 曰心光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사찰을 주재하는 이는

승량(僧亮), 보신(普愼), 순예(詢乂), 심광(心光) 등이다.

 

諸孫詵詵[詵 音侁 衆也]

厥衆濟濟[盛貌]

그리고 문하의 손자에 해당하는 자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무리가 번성하니

 

實可謂馬祖毓 [毓 古育字 長也]

龍子[指大師也]

東海掩西河焉

실로 마조도일이 용의 새끼를 길렀고,

동해(東海 : 新羅)가 서하(西河 : 중국)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論曰

논(論)하여 말한다.

 

麟史[春秋]不云乎

公侯之子孫必復其始

『춘추(春秋)』에 말하지 않았던가.

훌륭한 집안[公侯]의 자손은 반드시 그 조상을 본받는다고.

 

則昔武烈大王[太宗金春秋也]爲乙粲時

옛날 무열대왕께서 을찬(乙粲)으로서

 

爲屠獩貊乞師計

將眞德女君命

예맥[실은 백제와 고구려]을 무찌를 군사를 빌기 위하여

진덕여왕(眞德女王)의 명을 받들고

 

階覲昭陵皇帝[唐太宗]

面陳願奉正朔[年號]易服章

소릉황제(昭陵皇帝)를 알현했을 때,

직접 황제에게 중국의 역법(曆法)을 시행하고

의복제도를 중국식으로 바꾸기를 청하였었다.

 

天子嘉許 庭賜華裝[中華之服裝也]

授位特進

이에 황제가 허락하고

중국 의복을 하사하고,

특진(特進)의 관작(官爵)을 내려주셨다.

 

一日召諸藩王子宴

大置酒 堆寶貨

俾恣滿所欲

하루는 (황제께서) 여러 나라의 왕자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는데,

술을 크게 베풀고 온갖 보화를 쌓아놓고

마음대로 가지라고 하셨다.

 

王乃杯觴則禮以防亂

繪綵則智以獲多臮[洎同]

대왕께서는 술 드시는 것은

예의를 지켜 어지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화려한 비단은 지혜를 써서 많이 얻으셨다.

 

辭出

文皇[唐太病也]目送而

歎曰 國器

하직인사를 드릴 때,

황제께서는 멀리 갈 때까지 바라보며

“나라의 인재로다”라고 감탄하셨고,

 

及其行也

以御製幷書溫陽晉祠二碑

曁御撰晉書一部

[太宗卽位之初 魏王泰請撰晉書]賚之[賚音賴 賜也]

중국을 떠나올 때에

황제께서 직접 짓고 쓴 온탕(溫湯)과 진사(晉祠)의 두 비문(碑文)과

직접 편찬하신 『진서(晉書)』 한 질을 내려 주셨다.

 

時蓬閣[校書館]寫是書 裁竟二本

上一錫儲君[太宗太子]

一爲我賜[武烈大王]

당시 비서감(秘書監 : 蓬閣)에서 이 책을 베껴 두 질을 올렸는데

한 질은 황태자에게 주시고,

다른 한 질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다.

 

復命華資官[接伴使]

祖道

[黃帝子纍祖 好遠遊死於道 後人爲行神 註云 纍祖死於道 故云祖道

遠行者祭之 以保行程 祖 祭道神也]

靑門[長安城東門卽灞城門]

또한 높고 귀한 관리들에게

장안성(長安城) 동문(東門) 밖에 나아가 전송하라고 명하셨으니,

 

則寵之優 禮之厚

設聾盲乎智者 亦足駭耳目

이러한 각별한 은총과 두터운 예우에는

지혜에는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보고 들어서 놀라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自茲 吾土一於魯

[子曰 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미개에서 문명국으로 되었는데,

 

八世之後

大師西學而東化

그로부터 8세손(世孫)인 대사께서는

중국에 유학하여 배운 것으로 우리나라를 교화시켜서

 

加一變至於道 則莫之與京

[左傳懿氏 辭云 五世其昌 幷于正卿 八世之后

莫之與京 註 卿 音羌 京 大也]

이상적인 나라로 변화시키셨으니 (그 공은) 비할 데 없이 크다.

 

捨我謂誰 偉矣哉

이런 분이 아니라면

누구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先祖[武烈大王]

平二敵國

[高句麗百濟也]

선조(先祖)는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俾人變外飾[易服章]

大師降六魔賊

俾人修內德

문명에 접하게 하여주셨고,

(後孫인) 대사께서는 불법을 방해하는 악한 것을 물리쳐서

마음의 덕을 닦게 해주셨다.

 

故得千乘主 兩朝[景文獻康]拜起

四方民萬里奔趨

그러므로 두 임금께서는 스승으로 모셨고,

사방의 백성은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모여들었는데,

 

動必頤使之

[賈誼曰 頤指如意 言易使也]

靜無腹非者

(대사가) 원하는 대로 따르면서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庸詎非應半千

[ꝙ池筆硯云 古讖云 黃河水一千年一淸 聖人出 五百年一淸 賢人出]

그러니 5백년 마다 현인(賢人)이 나타난다는 말대로

 

而顯大千

[金剛經云 三千 大千世界所有珍財以用普施 註云

三千 大千中千小千]者歟

성인이 이 세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復其始之說

[指上麟史引文也]

亦何慊乎

[慊 音歉 恨也 意不滿也]

‘(훌륭한 집의 자손은 반드시) 조상을 본받는다’는 말에

어찌 부족함이 있는가.

 

彼文成侯[張良諡號]

爲師漢祖

전에 장량(張良)은 한(漢) 고조(高祖)의 스승이 되었으면서,

 

大誇封萬戶位列侯

爲韓相子孫之極 則궁[[人+曲]

[[人+曲]  音穹 小貌]

만호(萬戶)에 봉(封)해지고 제후가 된 것을 크게 자랑하여

한(韓)나라 정승의 자손으로서 지극히 명예로운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비루한 일이다.

 

假學仙

有終始果能白日上昇去

於中止得 爲鶴背上一幻軀爾

[言子房托仙之非]

비록 신선술(神仙術)을 공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태양 위로 날아 갈 수 있겠는가.

중간에 그쳐서

학(鶴) 위에 한 몸을 얹고 다니는 데에 머무를 뿐일 것이다.

 

又焉珿

[珿音促 齊等]

我大師拔俗於始

그러니 어찌 우리 대사가 세속의 무리 가운데 뛰어나서,

 

濟衆於中 潔己於終矣乎

여러 중생을 구제하고,

스스로를 깨끗이 하는 것으로 시종일관 한 것에 견줄 수 있겠는가.

 

美盛德之形容

古尙乎頌 頌偈類也

[詩大序所謂美盛德之形容 以其成功

告于神明者也 蓋頌與容 古字通用 故序以此言之也]

뛰어난 덕의 모습을 칭송하는 데에는

옛날부터 송(頌)을 사용하였으니,

(불교의) 게송(偈頌)도 비슷한 것이다.

 

扣寂

[扣寂 遠公註 扣虛課寂]

爲銘 其詞曰

침묵을 깨고서

명(銘)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可道爲常道

[道德經云 道可道 非常道註 道本無名 若道可爲者

乃有爲之事 非常道也 可道 如禮不虛道之道 常者 恒久不變之謂]

如穿草上露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늘 몸에 지니는 것은

풀 위의 이슬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고,

 

卽佛爲眞佛

[卽馬祖說法意云 卽心卽佛爲眞佛]

불법에 나아가 참된 부처가 되는 것은

 

如攬水中月

물 속의 달을 잡는 것과 같다.

 

道常得佛眞 海東金上人

그런데 도를 늘 몸에 지니고 참된 부처가 된 사람은

해동(海東)의 김상인(金上人)이다.

 

本枝根聖骨

瑞蓮資報身[脩臂授蓮]

五百年[應應半千句也]擇地[雞林]

十三歲離塵[出家]

본래 성골(聖骨)의 자손이고,

상서로운 연꽃을 인연으로 하여 태어났네.

오백 년만에 땅을 골라 태어나서,

열세 살에 속세를 벗어났네.

 

雜花引鵬路[授華嚴于浮石]

窾木[窾木 舟也 窾音款 空也] 浮鯨津

화엄이 불법에의 길을 열어주었고,

배를 타고 求法에 나섰네. (하나)

 

觀光[悟道]堯日下[中原]

巨筏悉能捨

[指徹公化去後浪游]

중원에서 두루 공부하고서,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음을 깨쳤네.

 

先達[高僧]皆歎云

苦行無及者

선진(先進)들이 모두 감탄하네,

수행에 따를 자 없다고.

 

沙之復汰之

東流是天假

[沙之云云 唐武宗會昌年中

仍戒賢僧 沙汰佛法 勑外國僧各還本國云云 故天假]

중국에서 불교가 도태되어

귀국한 것은 하늘이 기회를 주신 것이네.

 

心珠瑩麻谷

目鏡燭桃野

[商受本記 東海桃索山有太桃樹

根盤五千里 東西南北 枝長各三千里 是以東土謂之桃野]

깨우침의 구슬이 마곡(麻谷)에서 빛나고,

거울 같은 눈이 우리나라를 비추었네. (둘)

 

旣得鳳來儀

衆翼爭追隨[班史云 昭帝時 鳳集魯郡 羣鳥從之]

試覰龍變化[比大師也]

凡情那測知

이미 봉황의 훌륭한 모습,

뭇 새가 다투어 따르네.

한번 용의 변화하는 재주를 보라.

보통 생각으론 헤아리지 못하리.

 

仁方[東土]示方便

聖住强住持

松門遍掛錫

巖徑難容錐

온나라에 능력을 보이고서

성주사(聖住寺)에 힘써 머무르셨네.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님에

바위 사이 길 다니지 않음이 없었네. (셋)

 

我非待三顧

[昭烈三顧諸葛亮於草堂之中]

임금의 총애를 바라지 않았고,

 

我非迎七步

[通載云 北齊文宣王謁僧稠 稠不坐不迎 其徒有勸迎者 稠曰

昔賓頭廬尊者 迎阿育王 起行七步 致王七年失國 貧道雖寡德 冀王獲福耳]

임금의 뜻에 영합하지도 않았네.

 

時行則且行

爲緣付囑故

二王[景文王獻康王]拜下風

一國滋甘露

때가 이르면 나아갔으니

그것은 옛 인연과 불법을 전하라는 부처의 부촉을 위해.

두 왕이 존경하니

온 나라가 부처의 가르침에 젖었네.

 

鶴出洞天秋[出山]

雲歸海山暮[入山]

용이 나오면 골짜기가 가을빛,

구름이 돌아가면 바다와 산이 저녁. (넷)

 

來貴乎葉龍

[說苑云 哀公不禮子張 子張去曰 君好士如葉公 葉公子高好龍

天龍降之 窺頭於牖 施尾於堂 葉公失魂 五色無主 此非好龍 好似龍非龍也]

세상에 나오면 섭룡(葉龍)보다 귀하였고,

 

去高乎冥鴻

[冥 空 色斯之鴻 上句喩入王宮 此句喩還山]

세상을 벗어나면 기러기보다 더 높이 날았네.

 

渡水陿巢父

[高士傳云 許由字武仲 聞堯以天下讓焉 遁於潁水之陽 箕山之下

堯又召爲九州之長 由不欲聞之 洗耳潁濱 巢父牽犢欲飮之 見由洗耳曰

汚吾犢口 遂牽犢上流 今師則入京 故反陿巢父]

물을 건너 나옴은 소부(蘇父)를 비루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入欲超朗公

[通載云 釋僧朗風度凝遠 飮啗不常 每在京洛 循乞飮饍 未嘗入山

今師則還山曰超也]

산에서 수도할 땐 승량(僧朗)보다 열심이었네.

 

一從歸島外[自中原返東國]

三返遊壺中

[列仙傳云 費長房爲汝南市掾 見一老翁賣藥掛一壺於肆頭

市罷 入壺中 唯長房覩之 因再拜奉洒脯 翁乃與俱入別有世界 壺中比王宮也]

한 번 귀국한 뒤로

세 번 궁중에 갔네.

 

羣迷漫臧否

至極何異同

어리석은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하지만,

지극한 이치엔 다름이 없네. (다섯)

 

是道澹無味 然須强飮食

他酌不吾醉 他飧不吾飽

이 도(道)는 담백하여 맛이 없지만,

힘써서 마시고 먹어야 하네.

남이 마신 술 내가 취하지 않고,

남이 먹은 밥 내가 부르지 않네.

 

誡衆黜心何 糠名復粃利

勸俗飾身何 甲仁復冑義

[禮記云 載仁而行 抱義而處 又云儒有忠信 以爲甲冑]

대중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지라 했나,

명예는 겨처럼 부귀는 쭉정이처럼.

세속의 몸가짐은 무엇을 권했나,

인(仁)을 갑옷으로 의(義)를 투구로. (여섯)

 

汲引無棄遺 其實天人師

昔在世間時 擧國成琉璃

이끌어 지도함에 빠뜨림 없어,

실로 인류의 스승이시다.

전에 살아계심엔

온나라가 유리(琉璃)같더니,

 

自寂滅歸後 觸地生蒺藜

[西域記云 玄奘法師到摩竭國菩提樹下 金剛座上 蒺藜匝生]

돌아가심에

온통 가시밭이네.

 

泥洹一何早

[通載 老子至流沙嘆曰 吾生一何晩 泥洹一何早 不見釋迦文 中心空懊惱]

今古所共悲

열반은 왜 이리 빠른지,

전과 지금 다 같이 슬프네. (일곱)

 

甃石[建塔也 甃 音秋 井甃 又結砌也]

復刊石[竪碑也]

藏形且顯跡

탑(塔)을 만들고 비(碑)를 새겨서

형체는 감추고 자취는 드러낸다.

 

鵠塔點靑山 龜碑撑翠壁

是豈向來心 徒勞文字覛[覛音麥相視貌]

사리탑은 푸른 산에 자리하고,

거북이 업은 비석은 푸른 절벽에 버티고 섰네.

이것이 어찌 여태까지의 마음이 되리오마는,

다만 문자로라도 살펴서

 

欲使後知今 猶如今示昔

뒤에 오는 사람이 오늘을 알게 함이니,

지금에 옛일이 드러남과 같은 것. (여덟)

 

君恩千載深 師化萬代欽

임금의 은혜, 천년을 흐르고,

대사의 교화는 만대(萬代)에 존경되리라.

 

誰持有柯斧

[中庸云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而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君子以人治人 其人改之則止]

누가 자루 없는 도끼로 인재를 키우고,

 

誰倚無絃琴

[比師無生說法也 晉陶潛得素琴一張 不設絃而撫之曰

但得琴中趣 何勞琴上聲]

누가 줄 없는 거문고로 가르침을 이을까.

 

禪境雖沒守

客塵寧許侵

선경(禪境)을 비록 지키지 못한다 해도

번뇌야 어찌 들어오리오?

 

雞峯待彌勒[付法藏傳云 迦葉結集付法已 持應器與僧伽梨

入雞足山 三峯合爲一 乃至彌勒出世後 出定而奉獻也

末會後與大衆登山 彈指則方出世也]

계족산(鷄足山) 아래서 미륵을 기다림이니,

 

將在東雞林

어서 동쪽 계림(鷄林)에 나타나소서.

 

종제(從弟)인 조청대부(朝請大夫), 전(前) 수집사시랑(守執事侍郞)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인연(崔仁滾)이 왕명을 받들어 씀.

[출전:『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없어진 종전 블로그애서

이 블로글로 옮겨온 최치원의 사산비명을 적시해 본다.

제목을 클릭하면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2010/09/23 최치원의 사산비명
  2. 2010/09/23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명/ 사산비명
  3. 2010/09/26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사산비명
  4. 2010/10/02 경주 초월산 숭복사 비명 /사산비명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사산비명(四山碑銘)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하동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 비명

(河東智異山雙谿寺眞鑑禪師大空塔碑銘)

http://kydong77.tistory.com/3576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사산비명

http://blog.naver.com/gamrae007/100087501517 유당 신라국 고 강주 지리산 쌍계사 교시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大空靈塔碑 전서국 도통순관 시어사 내봉공 사 자금어대 신 최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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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경 고휘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비명

(聞慶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

http://kydong77.tistory.com/3597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명/ 사산비명

[주]최치원 선생의 문장이 명문이라 하나 한문은 읽을 수 없고. 한글 번역을 보아도 많은 불교 용어에다 작가의 문장 핵심이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에 본인은 문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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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W8bmk0l9pU 

 

 

3)경주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

(慶州初月山大崇福寺碑銘)

http://kydong77.tistory.com/3550

 

경주 초월산 숭복사 비명 /사산비명

숭복사비 받침석 쌍귀부[경주박물관] [숭복사지 사진] http://blog.daum.net/chgon/7717725 http://blog.daum.net/vmffktlqh/15855050 [소재지]숭복사비 崇福寺碑: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경주초월산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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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포[보령] 성주사 대낭혜화상 백월보광탑 비명

(藍浦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http://kydong77.tistory.com/8796

 

보령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명 및 서문/사산비명

랑혜화상탑비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번역문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藍浦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葆光塔碑銘 無染和尙碑銘 竝序奉敎撰下同 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낭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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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19525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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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황소서 [ 檄黃巢書 ]

고병이 황소에게 보내는 격서를 최치원이 쓴 것. 875년 당에서 옥선지(王仙芝), 황소(黃巢) 등의 반란이 있었다.
이들은 회남(淮南), 제주(諸州), 절동(浙東)을 침입 공략하여 879년에 장안을 함락시켰다. 당나라 조정에서는 사천절도사 고병을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榮兵馬都統)으로 임명하여 반적을 토벌하게 하였고, 최치원은 이해 고병의 서기가 되어 이후 4년 간 종사하게 되었다. 황소는 제제(齊帝)를 참호하였다. 光明2년(881)7월 8일 고병은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격문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곧 <격황소서>최치원이 서기의 소임으로서 대필한 것이다. ≪계원필경집≫ 권11에 수록되어 전한다.
황소가 이 격문을 보다가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드러내 놓고 죽이려고 생각할 뿐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살그머니 죽이자고 의논했다(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抑亦地中之鬼 已議陰誅).’라 한 귀절에 이르러 자기도 모르게 놀라 마루 밑으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최치원의 이름이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한다. 병려 문체이며, 글의 서두에 ‘도(道)’와 ‘권(權)’이라는 행사운영(行事運營)의 일반적 원리를 전제로 하여 황소의 처지를 자성케 함으로써 항복을 설득한 글이다. 격서로서의 기백과 논리, 수사적 무게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

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고전번역서]동문선 제11책

http://www.minchu.or.kr/itkc/post/PostServiceDetail.jsp?menuId=M0448&clonId=POST0001&p_order=TITLE&nPage=3&postUuid=uui-7665b68e-7f60-46de-96d9-cc4a

 

廣明二年七月八日。諸道都統檢校太尉某告黃巢。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아모(我某)는 황소(黃巢)에게 고한다.

[주C-001]황소(黃巢) : 당(唐) 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켜서 도성(都城)을 점령한 도적이다. 고병(高騈)이 도통사(都統使)로서 토벌하는데 최치원이 고병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대신하여 격문(檄文)을 지어서 황소에게 보내었다.

 

夫守正修常曰道。

臨危制變曰權。

대범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智者成之於順時。

愚者敗之於逆理。

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리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然則雖百年繫命。生死難期。

而萬事主心。是非可辨。

비록 백 년(百年)의 생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萬事)는 마음이 주장된 것이매,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今我以王師則

有征無戰。

軍政則先惠後誅。

이제 내가 왕사(王師)를 거느려

정벌(征伐)이 있으나 싸움은 없는 것이요,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다.

 

將期尅復上京。

固且敷陳大信。

앞으로 상경(上京)을 회복하고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하매

 

敬承嘉論。用戢奸謀。

공경하게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且汝素是遐甿。驟爲勍冦。

偶因乘勢。輒敢亂常。

또는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강상(綱常)을 어지럽게 하였다.

 

遂乃包藏禍心。竊弄神器。

侵凌城闕。穢黷宮闈。

드디어 불칙한 마음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노려보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다.

 

旣當罪極滔天。

必見敗深塗地。

이미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로 되었으니,

반드시 크게 패하여 망할 것이다.

 

噫。唐虞已降。苗扈弗賓。

아, 요순(堯舜)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묘(苗)나 호(扈)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無良無賴之徒。不義不忠之輩。

尒曹所作。何代而無。

양심 없는 무리와 불의불충(不義不忠)한 무리인

너희들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

[주D-001]묘(苗) …… 과 호(扈) : 순(舜)에게 복종하지 않아서 토벌을 당한 나라요,

호(扈)는 하(夏) 나라에 복종하지 않아서 토벌을 당한 나라다.

 

遠則有劉曜,王敦覬覦晉室。

近則有祿山,朱泚吠噪皇家。

먼 옛적에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이

진(晉) 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녹산(祿山)과 주자(朱泚)가

황가(皇家 당 나라)를 향하여 개짖듯하였다.

[주D-002]유요(劉曜) …… 와 왕돈(王敦) : 흉노(匈奴)의 후예로서 서진(西晉)에 반란을 일으켰고 왕돈은 동진(東晉) 때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자이다.

 

彼皆或手握強兵。

或身居重任。

그것들은 모두 손에 강성한 병권도 잡았고,

또는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었었다.

 

叱吒則雷奔電走。

喧呼則霧塞煙橫。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달리듯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나 연기처럼 깜깜하게 막히게 된다.

 

然猶蹔逞姧圖。終殲醜類。

그러나 오히려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에는 더러운 종자들이 섬멸되었다.

 

日輸闊輾。豈縱妖氛。

天網高懸。必除兇族。

햇빛이 활짝 펴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없애고 마는 것이다.

 

況汝出自閭閻之末。

起於壟畝之間。

以焚劫爲良謀。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以殺傷爲急務。有大愆可以擢髮。無小善可以贖身。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은 없었으니,

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兼恐地中之鬼 已議陰誅。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가만히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주D-003]귀신 …… 의론하리라 : 황소가 격문을 보다가 이 귀절에 이르러 놀래 앉았던 걸상에서 떨어졌다 한다.

 

縱饒假氣遊魂。

早合亡神奪魄。

비록 잠깐 동안 숨이 붙어 있으나,

벌써 정신이 죽었고, 넋이 빠졌으리라.

 

凡爲人事。莫若自知。

吾不妄言。汝須審聽。

대범 사람의 일이란 것은 제가 저를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比者我國家德深含垢。

恩重棄瑕。

授尒節旄。寄爾方鎭。

요즈음 우리 국가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혜가 중하여 결점을 따지지 아니하여

너에게 장령(將領)으로 임명하고

너에게 지방 병권(兵權)을 주었거늘

 

尒猶自懷鴆毒。不斂梟聲。

動則齧人。行唯吠主。

너는 오히려 짐새[鴆]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 보고 짖듯하여

 

乃至身負玄化。兵纏紫微。

公侯則奔竄危途。警蹕則巡遊遠地。

필경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公侯)들은 위태로운 길로 달아나고

임금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不能早歸德義。但養頑兇。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완악하고 흉악한 짓만 늘어간다.

 

斯則聖上於汝有赦罪之恩。

汝則於國有辜恩之罪。

이에 임금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있었는데,

너는 국가에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다.

 

必當死亡無日。

何不畏懼于天。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

 

况周鼎非發問之端。

漢宮豈偸安之所。

하물며 주(周) 나라 솥[鼎]은 물어볼 것이 아니요.

한(漢) 나라 궁궐이 어찌 너 같은 자가 머물 곳이랴.

[주D-004]주(周) 나라 …… 물어볼 : 우(禹)가 구정(九鼎)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여 오는데 제왕(帝王)이 그것을 지녀 수도(首都)에 두어 왔다. 주(周) 나라가 쇠약한 말기에 강성한 제후(諸侯)인 초왕(楚王)이 사람을 보내어 구정이 가벼운가를 물었다. 그것을 곧 제가 천자(天子)가 되어 구정을 옮겨가겠다는 뜻이었다.

 

不知爾意。終欲奚爲。

너의 생각은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汝不聽乎。道德經云。

天地尙不能久。而况於人。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 하였고

[천지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又不聽乎。春秋傳曰。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天之假助不善。非祚之也。

厚其凶惡而降之罰。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으니,

 

今汝藏姦匿暴。惡積禍盈。

危以自安。迷而不復。

이제 너는 간사한 것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앙화[禍]가 가득하였는데도

위험한 것으로 스스로 편케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니,

 

所謂鷰巢幕上。

謾恣騫飛。

魚戲鼎中。則看燋爛。

옛말에 이른바 제비가 막(幕) 위에다 집을 지어 놓고

불이 막을 태우는데도 방자히 날아드는 거나

물고기가 솥[鼎] 속에서 너울거린들

바로 삶아 데인 꼴을 보는 격이다.

 

我緝煕雄略。糺合諸軍。

猛將雲飛。勇夫雨集。

나는 웅장한 군략(軍略)을 가지고

여러 군대를 모았으니,

날랜 장수는 구름 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모여 들어

 

高旌大旆。圍將楚塞之風。

戰艦樓船。塞斷吳江之浪。

높고 큰 깃발은

초새(楚塞)의 바람을 에워싸고

군함은

오강(吳江)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陶太尉銳於破敵。

楊司空嚴可稱神。

진(晉) 나라 도 태위(陶太尉)는 적을 부수는데 날래었고,

수(隋) 나라 양소(楊素)는 엄숙함이 신(神)이라 일컬었다.

 

旁眺八維。橫行萬里。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리(萬里)에 횡행(橫行)하였다.

[주D-005]도 태위(陶太尉) : 도간(陶侃)인데, 두수(杜弢) 소준(蘇峻) 등 반역자를 평정한 명장(名將)이다.

[주D-006]양소(楊素) : 진(陳)을 칠 때에 배를 타고 양자강으로 내려가는데 위의가 엄숙하니 사람들이 보고 강신(江神)과 같다 하였다.

 

旣謂廣張烈火。爇彼鴻毛。

何殊高擧泰山。壓其雀卵。

맹렬한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고

태산(泰山)을 높이 들어

참새알을 눌러 깨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卽日金神御節。水伯迎師。

서늘한 바람 이는 가을에 강에

물귀신이 우리 군사를 맞이한다.

 

商風助肅煞之威。

晨露滌昏煩之氣。

서풍이 불어 숙살(肅殺)하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이슬은 답답한 기운을 상쾌하게 하여 준다.

 

波濤旣息。道路卽通。

當解纜於石頭。

孫權後殿。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통하였으니,

석두성(石頭城)에서 뱃줄을 풀매

손권(孫權)이 뒤에서 호위하고

 

佇落帆於峴首。

杜預前驅。

현산(峴山)에 돛을 내리매

두예(杜預)가 앞장선다.

[주D-007]손권(孫權) : 삼국 때에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석두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주D-008]두예(杜預) : 진(晉) 나라 장수 두예(杜預)가 오(吳) 나라와 대치(對峙)하여 현산(峴山)에 있었다.

 

收復京都。尅期旬朔。

경도(京都)를 수복하는 것이

열흘이나 한 달 동안이면 기필할 수 있을 것이다.

 

但以好生惡殺。上帝深仁。

屈法申恩。大朝令典。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상제(上帝)의 깊으신 인자(仁慈)함이요

법을 굴하여 은혜를 펴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다.

 

討官賊者。不懷私忿。

諭迷途者。固在直言。

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忿)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하여 주어야 한다.

 

飛吾折簡之詞。解爾倒懸之急。

나의 한 장 편지로써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한 것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汝其無成膠柱。且學見機。

善自爲謀。過而能改。

고집을 하지 말고

일의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잘하여

허물을 짓다가도 고치라.

 

若願分茅裂土。開國承家。

免身首之橫分。得功名之卓立。

만일 땅을 떼어 봉해 줌을 원한다면,

나라를 세우고 집을 계승하여

몸과 머리가 두 동강으로 되는 것을 면하며,

공명(功名)의 높음을 얻을 것이다.

 

無取信於面友。可傳榮於耳孫。

此非兒女子所知。實乃大丈夫之事。

겉으로 한 도당(徒黨)의 말을 믿지 말고

영화로움을 후손에까지 전할 것이다.

이는 아녀자(兒女子)의 알 바가 아니라,

실로 대장부의 일인 것이다.

 

早須相報。無用見疑。

일찍이 회보(回報)하여

의심둘 것 없나니라.

 

我命戴皇天。信資白水。

必須言發響應。不可恩多怨深。

나의 명령은 천자를 머리에 이고 있고,

믿음은 강물에 맹세하여

반드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하는 것이요,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或若狂走所牽。酣眠未寤。

猶將拒轍。固欲守株。

만일 미쳐 덤비는 도당에 견제(牽制)되어

취한 잠이 깨지 못하고

여전히 당랑(螳螂)이 수레바퀴에 항거하기를

고집한다면,

 

則乃批熊拉豹之師。一麾撲滅。

烏合鴟張之衆。四散分飛。

그제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번 휘둘러 없애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소리개 같이 덤비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다.

 

身爲齊斧之膏。骨作戎車之粉。

妻兒被戮。宗族見誅。

몸은 도끼에 기름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융거(戎車 군용차(軍用車)) 밑에 가루가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도 베임을 당할 것이다.

 

想當燃腹之時。必恐噬臍不及。

생각하건대, 동탁(董卓)의 배를 불로 태울 때에

반드시 후회하여도 때는 늦으리라.

 

尒須酌量進退。分別否臧。

너는 모름지기 진퇴(進退)를 참작하고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분별하라.

 

與其叛而滅亡。曷若順而榮貴。

배반하여 멸망되기보다

어찌 귀순하여 영화롭게 됨과 같으랴.

 

但所望者。必能致之。

다만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

 

勉尋壯士之規。立期豹變。

無執愚夫之慮。坐守狐疑。

장사(壯士)의 하는 짓을 택하여

갑자기 변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라.

 

某告。

모는 고한다.

 

 

 

 

숭복사비 받침석 쌍귀부[경주박물관]

[숭복사지 사진]

http://blog.daum.net/chgon/7717725

http://blog.daum.net/vmffktlqh/15855050

[소재지]숭복사비 崇福寺碑: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경주초월산숭복사비

경주 初月山 崇福寺碑

경주초월산 대숭복사 비명 및 서

 

臣聞。

王者之基 祖德而峻孫謀也。

신은 듣자오니,

“왕자(王者)의 기틀은

선조의 덕으로 후손의 도모함을 높이는 것이라.” 하니

 

政以仁爲本。禮以孝爲先。

[仁孝爲一編大旨。]

정치는 인으로써 근본을 삼고

예법은 효도로써 으뜸을 삼는 것이다.

 

仁以推濟衆之誠。孝以擧尊親之典。

그 인으로는 대중을 구제하는 정성을 다하고

효도로는 어버이 높이는 법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莫不體無偏於夏範。[無偏無儻。王道蕩蕩。]

遵不匱於周詩。

[孝子不匱。永錫爾類。]

하범(夏範)에서 그 치우침이 없는 것을 본받지 않음이 없고

『시경(詩經)』에서 효자는 다함이 없다는 것을 따라야 하나니

 

聿修芟秕稗之譏。

[芟。刈也。秕。不成粟也。稗。似稻而實細也。比政事不明。]

스스로 닦아서 잘 익지 못하였다는 기롱(譏弄)을 없애며

 

克祀潔蘋蘩之薦。

[采蘩註。南國被文王之化。諸侯大夫能盡誠敬。以奉祭祀。]

제사함에는 마름따위의 제수 올림을 쳥결히 하여

 

俾惠渥均濡於庶彙。德馨高達於穹旻。

윤택한 지혜로 백성들을 고루 적셔주고

덕의 향기가 높은 하늘에까지 멀리 사무치게 하였다.

 

勞心而扇暍

[音謁。暑病。武王自孟津還于周。見暍人。左擁而右扇。]

그러나 마음을 수고롭게 하면서 더위 먹은 사람에게 부채질하

 

泣辜。[夏禹出見罪人。下車問而泣之。]

豈若拯羣品於大迷之域。

죄인을 보고 우는 것이

어찌 뭇 중생을 크게 미혹한 데서 건져주는 것만 하겠으며

 

竭力而配天饗帝。

[周頌。思文后稷。克配彼天。盖尊之也。]

豈若奉尊靈於常樂之鄕。

힘을 다하여 하늘에 짝하고 상제께 제사함이

어찌 높으신 혼령을 항상 즐거운 곳에 받드는 것만 하겠습니까.

 

是知敦睦九親。[堯典曰。九族旣睦。]

實惟紹隆三寶。[佛法僧。]

구친(九親) 에게 잘 화목함이

진실로 삼보를 받들고 높이는데 있음을 알게 한다.

 

矧乃玉毫光所燭照。金口偈所流傳。

靡私於西土生靈。爰及於東方世界。

[佛說法華時。放眉間瑞光。照東方萬八千里云。]

하물며 백호광명이 비추는 것과

불경의 게송이 흘러 전하는 것이 [金口는 부처님의 입]

인도의 중생에만 한하지 않고서

동방 세계에 미쳐 왔으니

 

則我太平勝地也。

性玆柔順。[東方配五常則仁。故柔順。]

氣合發生。[東方始生萬物]

곧 우리의 태평 승지는

성품이 넉넉해서 유순하고

기백(氣魄)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에 합하였다.

 

山林多靜默之徒。以仁會友。

산림에는 참선하는 무리가 많아서

같은 무리들이 모여들고

 

江海協朝宗之勢。從善如流。

강과 바다는 조종(朝宗)의 기세에 협력하고

선을 따르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故激揚君子之風。薰漬梵王之道。

그러므로 군자의 풍도를 드높이고

석가의 도를 훈습(薰習)하니

 

猶若泥從璽。

[天子之璽。以紫泥封之。]

金在鎔。

[董仲舒曰。上之和下。下之從上。猶金之在鎔。此二句。明從善如流。]

마치 진흙인 인주(印朱)가 옥새를 따르고

쇠가 용광로에 있는 것과 같이

 

而得君臣鏡志於三歸。

士庶翹誠於六度。

[鏡。照也。翹。秀起貌。]

임금님과 신하는 뜻을 삼귀에 비추고

사류(士類)와 서민들은 육바라밀에 정성을 다함을 얻었다.

 

至乃國城無惜。能令塔廟相望。

나아가서는 국성까지도 아낌이 없어서

능히 탑묘를 많이 세우셨나니.

 

雖在贍部洲海邊。寧慚都史多[卽兜率]天上。

비록 남섬부주의 바닷가에 있으나

어찌 도솔타 천상에 부끄러우리요.

 

衆妙之妙。何名可名。

여러 가지 미묘함의 미묘함을 무슨 이름으로 다 말하겠는가?

 

金城之离。[金城。新羅都城名。]

日觀之麓。[日觀者。泰山東南峯名。而今新羅東。亦有之。]

금성의 남쪽 일관의 산기슭에는

 

有伽藍號嵩福者。

절이 있는데 숭복이라 이름하였다.

 

乃先朝[景文王] 嗣位之初載。

奉爲烈祖元聖大王[冊號敬信。卽景文王之九世祖。]

園陵追福之所修建也。

이는 옛 임금께서 왕위를 계승하시던 첫해에

열조 원성대왕의 원능을 받들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粤若稽古寺之濫觴。

[詩云。三江浩浩。其源濫觴。註。濫。泛也。觴。杯也。謂岷山初出之源。但可泛一杯而已。故言凡事之始曰濫觴。]

이에 옛 절의 유래를 상고하며

 

審新刹之覆簣。

[孟子云。爲山九仞。功虧一簣。若盡一簣則是覆也。故言凡事之終云覆簣。]

새 절의 만들어짐을 살펴 보건대

 

則昔波珍飧 職名金元良者。

昭文王后 [元聖大王之母] 之元舅。

肅貞王后 [元聖大王之后] 之外祖也。

곧 옛적 파진손인 김원량은

소문왕후의 원구며

숙정왕후의 외조부였습니다.

 

身雖貴公子。心實眞古人。

몸은 비록 귀공자였으나

마음은 진실로 참 옛사람인지라

 

始則謝安縱賞於東山。儼作歌堂舞館。

처음엔 사안이 동산에서 마음껏 즐기듯이

노래하는 집과 춤추는 관을 의젓하게 세우더니

 

終乃慧遠 同期於西境。

捨爲像殿經臺。

[晉謝安携妓遊東山三十年。後與慧遠法師共對遺民雷次宗,周續之,宗炳等百二十人。結白蓮社。發願往生西方。]

종말엔 혜원이 서경에 뜻을 두듯이

그를 버리고 불전과 경대을 만드니

 

當年之鳳管鵾絃。

[崑山之竹。作管吹之。有龍鳳之音。以鵾之筋。作琴瑟之絃。用鐵撥彈。則其響如雷。]

此日之金鍾玉磬。

그 당시의 봉관 곤현이었던 것이

이 날에 금종과 옥경이였습니다.

 

隨時變改。出世因緣。

寺之所枕倚也。

때를 따라 변하여 고쳐진 것은

출세의 인연이며

절이 생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巖有鵠狀。仍爲戶榜鵠寺。

바위에 따오기 모양이 있거늘

그로 인하여 현판을 만들어

 

能使鴦廬 長價。

[䲶鴦必具雌雄。故東西翼廊謂鴦廬。]

永令鵝殿增輝。

[養鵝園林。則蛇遠去。如佛之所住。百害盡袪。故法堂謂之鵝殿。]

앙려로 하여금 길이 값지게 하고

안전으로 하여금 더욱 빛나게 하였으니

 

則彼波羅越之標形。

[西域達親國。有過去加葉佛伽藍。窮大石山作之。凡五層。最下層。作象形五百間石室。第二層。獅子形四百間。第三層。馬形三百間。第四層。牛形二百間。第五層。鴿形一百間。囱牖通明。室中朗然。是名波羅越寺也。]

곧 저 바라월의 표형과

 

崛恡遮之紀號。詎若飛千里以取譬。

[古詩。黃鶴飛千里。]

굴린차의 기호라도

어찌 천리에 나는 것으로 견주어 말하며

 

變雙林而刱題者哉。

[梁武帝時。傳大士於松山頂古寺。有雙擣樹。故改名雙林而居之。]

쌍림의 변한 것으로 표제함과 같으리까!

 

但玆地也。成卑鷲頭。

[梵語枯標陀羅。乃唐言鷲峯也。佛於此說法。]

다만 이 땅은 위력이 축두보다 낮으나

 

德峻龍耳。

[郭璞錦囊經云。葬龍耳。則三年內。白衣天子到門。]

與晝金界。[金沙寶界]

덕은 용이보다 높으며

금계를 마련할 만하고

 

宜開玉田。[王者之葬。用玉匣。]

옥전이 세워질 만합니다.

 

洎貞元 [唐德宗年號] 戊寅年 [元聖大王十四年] 冬。

遺敎窀穸之事。因山是命。

[綱目註。帝王之葬。因其山川。而不復起墳。]

정원 무인년 겨울을 당하여

능 모시는 일을 칙명하시니

산으로 인하여 이에 명령하셨으나

 

擇地尤難。乃指淨居[寺。]

將安秘殿 [王陵。]

땅을 선택하기가 더욱 어렵기에

이에 절에다

비전을 봉안하려 하였습니다.

 

時獻疑者有言。

昔游氏之廟。

[鄭公欲毀游氏之廟。以廣園囿。子產曰。子游之善。不能保五畝之宅耶。公乃止。○子游是言偃之字。而曰游氏者未詳。]

그 때에 의아하는 이가 있어서 말하되

“옛적에 유씨의 사당과

 

孔子之宅。

[魯恭王欲壞孔子舊宅。以廣其居。聞有金石絲竹之音。乃不壞。]

皆不忍終毀。

공자의 집도

모두 차마 무너뜨리지 아니했기에

 

人到于今稱之。則欲請奪金地。

無乃負須達多大捨之心乎。

[須達多。指給孤獨。作祇垣精舍者。比金元良也。]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를 칭송하거늘

지금 금지를 뺏으려고 하니

수달다의 크게 희사하는 마음을 저버림이 아니겠느냐.

 

冥裝者。地所祐 天所隧。

[地則增其厚。天則減其虛。]

咎不相補矣。

이 절터에 장사지내는 것은

땅은 돕겠지만 하늘은 허물하는 바이니

서로 보완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而莅政者譏曰。

정사에 임하는 자가 기롱해서 말하기를,

 

梵廟也者。所居必化。

無往不諧。

“절이란 거주하면 반드시 교화하여

어디에 가도 화합하지 않음이 없으니

 

故能轉禍基爲福場。百億劫濟其危俗。

그러므로 능히 재앙의 터를 변화시켜 복된 장소로 만들어서

백억 겁 동안 그 험난한 세속을 제도하는 것이오.

 

靈[隧也]者。頫硂坤脈。

[頫音府。低頭也。硂同銓。坤脈。五行之氣運於地中。猶人之血脈運於皮膚之中。]

영이란 아래로는 땅의 맥을 짚어보고

 

仰揆乾心。

[二十八宿。與列星羅于乾心。各有主張分地。]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맞추어

 

必在苞 [抱同]四象于九原。

[四象。老少陰陽。九原。葬處也。]

千萬代保其餘慶。

반드시 사상을 장지(葬地)에 포괄하여

천만대 동안 그 끼친 복[음덕(陰德)]을 보전하는 것이다.

 

則也法無住相 [佛法。]

禮有盛期 [葬禮。]

易地而居。順天之理。

법은 머무르는 모양이 없고

장례예는 이루는 시기가 있나니

땅을 바꾸어 거주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함이라.

 

但得靑烏善視。

[郭璞之師靑烏先生。善陰陽地理。著錦囊經。]

豈令白馬悲嘶。

[梁高傳云。昔外國王。盡毀諸寺。惟招提一寺未及毀。夜有白馬繞塔悲嘶。王乃停毀。改招提爲白馬寺。]

다만 청오 같은 풍수가를 만나 잘 보도록 할지니

어찌 사찰을 헐어 백마로 하여금 슬피 울게 하리오?

 

且驗是仁祠 [寺也。]本隸 [付屬] 戚里。[金元良也。]

또 살펴 보건대 이 인사는 본래 척리에 예속 되었나니

 

誠宜去卑就峻。[應上威卑德峻。]

진실로 낮음을 버리고 높은데에 나아가며

 

捨舊 [寺也] 謀新 [陵也。]

使幽庭據海域之雄。[陵也]

淨刹擅雲泉之㜫 [寺也。]

옛절을 버리고 새로운 왕능을 꾀하여

왕릉은 전국의 웅장한 데에 의거하게 하고

청정한 사찰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한즉

 

則我王室之福山高峙。

彼候門之德海安流。

[周禮。師候穰。註。候者。候迎。吉祥。佛之所居。亦候迎吉祥。故曰候門。]

우리 왕실의 복산이 높아질 것이며

불문(佛門)의 덕의 바다가 잘 흐를 것이라” 하였으니

 

斯可謂知無不爲。各得其所。

이야말로 “알면 못하는 것이 없고

각기 제 자리를 얻게 함이라” 하겠습니다.

 

豈與夫鄭子產之小惠。

魯恭王之中轍。同日而是非哉。

어찌 정나라 자산이 자유(子遊)의 묘를 헐지 않은 조그만 은혜와

노나라 공자의 집을 헐려다 그만둔 것은

같은 날 시비하겠습니까?

 

宜聞龜筮協從。可見龍神歡喜。

으레 거북과 시초에 물어서 맞아 따르게 되면

용신팔부(龍神八部}의 기뻐함도 보게 되리라 하여

 

遂遷精舍。爰創玄宮。

兩役庀徒。[庀音披。具也治也。]

百工蕆事。[蕆音闡。備也。]

이에 정사를 옮기고

현궁을 창건하니

두 일이 진행되고

여러 기술진이 일을 추진하였다.

 

其改創紺宇。則有緣之衆。

相率而來。

그 절을 옮겨 세울 적엔

인연 있는 사부대중이 서로 모여와서

 

張袂不風。植錐無地。

옷소매를 펼쳐 놓아도 바람이 일지 않고

송곳 꽃을 땅이 없을 정도로서

 

霧市奔趨於五里。

[後漢。張楷能作五里霧。學術者塡門。人謂霧市。]

오가는 사람들이 오리에 뻗쳤으며

 

雪山和會於一時。

[西域記。伊爛那城長者之子二百億。性情仁善。投雪山學佛。凡有所須。自其居家。至于雪山。隣里奴僕。交路替傳。曾不踰時。其和會可知。]

설산이 한 때에 모여 이루어졌습니다.

 

至於撤瓦抽椽。奉經戴像。

迭相授受。競以誠成。

그 기와를 걷고 서까래를 빼내며

경전을 받들고 불상을 모심에

번갈아 소로 주고 받들며

다투어 정성을 다하여 이루었나니

 

役夫之跬步不移。釋子之宴居已就。[寺役畢。]

인부들의 분주하던 발걸음도 쉬게 되고

스님들의 요사채가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其成九原。則雖云王土。

且非公田。於是括以邇封。

[括。量也。封。墳也。邇封。封之近地。]

그 구원을 성취함엔

비록 왕의 국토라고 하나

공전이 아니기에

그 봉분에 가까운 땅을 검토해 보고

 

求之善價。益丘隴餘二百結。

[丘隴。田畓結卜數。]

酧稻穀合二千苫。[猶石也]

값이 높은 땅을 구하여

구농 이백여 결을 더하고

곡식 이천 석을 주며

 

旋命所司 [司治葬者]

與王官之邑。 [之葬地也。]

또 유사와 왕도의 군읍에 명령하여

 

共芟榛徑。分蒔松埏。

함께 가시덤불의 길을 닦고

아울러 묘역에 소나무를 심었다.

 

故得蕭蕭多悲風。激舞鳳歌鸞之思。

[言宮人歌舞。以思先王。]

그러므로 씁쓸히 슬픈 바람이 불 때는

춤추는 봉황과 노래하는 난조의 생각*을 자아내고

[先王의 덕을 사모하는 생각]

 

鬱鬱見白日。

助盤龍踞虎之威。

[言陵之形勢也。漢書。諸葛亮至石頭城。嘆曰。鍾山虎踞。石頭龍盤。眞帝王之宅。]

울울창창한 곳에서 해를 보니

서린 용과 걸터앉은 범의 위세를 더했다.

 

且觀其地。壤異瑕丘。

[檀弓。公叔文子昇於瑕丘。嘆曰。吾將死。葬于斯。]

境連暘谷。[日出處。]

또 그 땅을 보건대 땅은 하구와 다르나

경계는 양곡에 연했습니다.

 

祇樹之餘香未泯。[曾是寺址穀林之佳氣增濃。]

穀林。[堯葬處。] 之佳氣 增濃

기수의 남은 행기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곡림의 아름다운 기운이 더욱 무르녹으며

 

繡峯則四遠相朝。[峯如錦繡]

練浦則一條在望。[浦似亘練]

비단 같은 봉우리는 먼 사방에서 서로 조회하고

마전한 베와 같은 개는 한 가닥이 눈앞에 있었나니

 

實謂橋山孕秀。[黃帝壽百一十歲。昇龍上天。葬弓劒於橋山。]

畢陌標奇。[畢陌。文王葬地。]

실로 교산의 빼어남을 품고

필맥의 기이함을 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而使金枝 [本孫] 益茂於鷄林。

금의 가지[왕손]로 하여금

계림에서 더 무성하게 하고

 

玉派 [外孫]

增深於鰈水者矣。

[爾雅。東方有比目魚。其名曰鰈。○葬事畢]

옥의 줄기[외손]이

우리나라에]에 부리를 더욱 깊게 함이다.

 

初寺宇之徙也。

雖同聳出。[言寶塔多也。見法華經。]

未若化城哉

처음 절이 옮김에

비록 보탑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으나

절 같지는 않았다.

 

得剗荊棘而認岡巒。

가시덤불을 깎아내고

산의 언덕이 드러나게 되었다.

 

雜茅茨而避風雨。

띠집과 섞인 채로 바람과 비를 피하면서

 

僅踰六紀。

[十二年爲一紀。取歲星一周天。]

驟歷九朝。

[元聖,照聖,哀莊,憲德,德興,僖康,神武,文聖,憲安。]

而屢値顚覆。

겨우 칠십팔년을 넘고

어언 아홉 조정을 지나

문득 전복 당했으되

 

未遑嵩飾。

미처 보수할 여가가 없었는데

 

三利之勝緣 有待。

[憲安王無子。欲擇膺廉爲壻。膺廉聞長女醜而少女有姿色。欲娶少女。範喬曰。娶長女有三利。一。王無子。以壻爲太子。二。少女自然相從。三。終得大位。是爲景文王。]

세 가지 이로운 좋은 조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千齡之寶運無虧。

천년전 보배로운 국운이 이지러지지 않았다.

 

伏惟先大王

 [景文王也。僖康王之曾孫。]

虹渚騰輝。

[虹。水名。顓頊母曰女節。見有星流華渚。感而生顓頊。]

엎드려 생각하건대 선대왕께서는

불가에서 무지개가 비추는 상서로움이 있어

 

鰲岑降跡。[慶州有鰲山。]

始馳名於玉鹿。

[敎授官也。南唐建學舍於玉鹿洞。以李道爲洞主。掌敎授。]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나시어

이름을 한림원에 날리시고

 

別振風流。

따로 풍류를 떨쳤다.

 

俄綰職於金貂。

[侍中冠名。漢官儀。貂蟬註。金取堅。蟬取高居飮潔。貂取內勁悍外溫潤。]

조금 있다가 금초의 직을 받아

 

栖鳳沼而沃心。

[周靈王太子晉。吹鳳簫求凰。與秦穆公之女季嘯。俱爲神仙而去。後人稱太子所居室曰鳳閣。所遊池曰鳳沼。]

우리나라의 풍속을 말끔히 쇄신하니

 

肅淸海俗。據龍田而種德。

[易乾卦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言其德已著。如舜遇釐降。卽其時也。先王之爲憲安婿亦類此。]

신하로 있으면서 덕을 심었고

태자로 있으면서 마음을 윤택하게 하엿다.

 

發言則仁者安人。謀政乃導之以道。

말을 내면 어진 이로 사람을 편안케 함이오

정사를 꾀함엔 이에 도로써 인도하였다.

 

八柄之重權咸擧。

[周禮。太宰以八柄紹王。御羣臣。註。一。有德則爵。二。有功則祿。三。言語合道則賜予。四。有善行則置于位。五。有大勳則使子孫享養。六。有大罪則殺而奪符。七。有罪則廢而放之。八。有過失則譴責。]

여덟 가지 권세의 무거운 권한을 모두 쥐고

 

四維之墜緖 斯張。

[四維。天之東西南北。人之仁義禮智。]

인륜의 떨어진 도리를 이에 회복시키니

 

歷試諸難。利有攸往。

모든 난관을 다 겪었지만

가는 곳마다 이롭게 하였다.

 

旋屬憂侵杞國。

[李白詩。杞國無事憂天傾。此言王之昇遐。取天傾意。]

位曠搖山。

[古文。邦國曠位。山岳搖動。亦言王之昇遐。]

곧바로 임금의 승하함을 만나니

왕위가 비어 산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雖非逐鹿之原。

亦有集烏之苑。

[詩云。瞻烏爰止。于誰之屋。言未知寶位將止于誰也。]

비록 사슴을 쫒아 잡는 언덕[왕위를 쟁탈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역시 까마귀가 모이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임금의 지위가 누구에게 갈 지 알지 못했다.]

 

然以賢以順。且長且仁。

爲民所推。捨我奚適。

그러나 어질며 유순함으로 하였고

덕과 인으로 하셨기에

백성의 추대하는 바가 되었나니

우리를 버리고 어데로 가시겠습니까?

 

乃安身代邸。

[漢文帝以代王至長安。受皇帝位於代邸。]

注意慈門。[佛門也]

이에 몸을 대저에 두시고

뜻을 불문에 기우리시며

 

慮致祖羞。

[移寺而安陵。若不嵩飾其寺。則是爲祖先奉佛之羞。]

선조에게 부끄러움이 될까 하여

 

願興佛事。

불사 일으키기를 발원하시고

 

因請芬皇寺僧嵩唱。

以修奉梵居之旨白于佛。

[芬皇寺。在今慶州邑北。]

분황사의 중 숭창을 청하여

절을 중수하여 받들 뜻으로써 부처님께 고하고

 

復遣金純行。以隆宣祖業之誠告于廟。

다시 김순행을 보내어

선조의 업적을 높이고 펼 정성으로써 사당에 고하셨으니

 

詩所謂愷悌君子。求福不回。

시전에서 이른바,

“훌륭한 군자는 복을 구함이 삿되지 아니하다. ”한 것이오

 

書所謂上帝時歆。下民祗協。

서전에서 말한바,

“상제께서 이에 흠향하시매 아랫 백성이 공경하며 복종하였다.”는 것이였습니다.

 

故能至誠冥應。善欲克從。

그러므로 능히 지극한 정성이면 귀신도 감응되며

잘하려는 욕심은 모두 성취하였다.

 

卿士大夫 與守同心龜協。

赫赫東國而君臨之。

공경과 사대부가 占과 합치되니

동국을 빛내어 군림하셨습니다.

 

爰遣陪臣。[諸侯之臣。於天子爲陪臣。]

告終稱嗣。[憲安王薨。景文王嗣位。]

이에 대신을 보내어

헌안왕의 떠나심과 그 왕위 계승함을 아뢰었더니

 

遂於咸通六年。[唐懿宗年號。]

드디어 함통 육년에

 

天子使攝御史中丞胡歸厚。

以我鄕人前進士裵匡。

腰魚 [金魚袋] 頂豸 [音池。一名神羊。似鹿而一角。生于北荒。楚文王好服豸冠。漢爲法冠。御史冠之。堯時。有一雙獬豸立於階下。善者入則引之。不肖者入則觸之。死葬殿左。朱草生長一丈。小人入則指之。]

爲輔行 [副使。]

천자께서 어사 증승 호귀후와

우리 고을 사람 전 진사이었던 배광으로 하여금

허리에 금어를 차고 머리에 해태관을 씌어

부사를 삼아

 

與王人田獻銛[音暹。利也。]

來錫命曰。

왕인 전헌섬와 함께 와서 칙명을 전하여 말하기를,

 

自光膺嗣續。

克奉聲猷。俾彰善繼之名。

빛나는 왕위를 승인 전달함에

천자의 명을 받들어서 잘 계승하였다.

 

允協至公之擧。

[非王子弟。而以仁善承位。故曰至公。]

지극히 공정한 추천에 미더운 경의를 표했다.

 

是用命爾爲新羅國王。

이에 당신을 임명하여 신라의 왕을 삼는다.”고 하였다.

 

仍授檢校太尉兼持節充寧海軍使。

이에 검교태위겸지절통영해군사를 제수하였다.

 

向非變齊標秀。至魯騰芳芬。

전일에 제나라가 변하여 빼어나게 표수하고

노나라에 이르러 향기를 드날리게 한 것이 아니면

 

則何以致飛鳳筆而寵外諸侯。

降龍旌而假大司馬之如是矣。

[筆柄雕鳳。旌上畫龍。]

어찌 봉의 붓을 날려 먼 제후를 총애하며

용의 기장목을 내려 대사마와 같은 것을 주겠는가?

 

亦旣榮沾聖澤。

必將親拜靈丘。[先王陵。]

또한 이미 영광스럽게도 천자의 은택을 입었으니

반드시 몸소 선왕의 능에 참배하여야 한다.

 

肆以備千乘之行。

奚翅耗十家之產。

[漢文帝曰。百金。中人十家之產。]

그러므로 왕릉을 옮길 만반의 준비는 하였지만

어찌 많은 경비를 소모하겠는가

 

遂命大弟相國。

致齊淸廟。代謁玄扃 [陵也。]

드디어 태제 상국을 명하여

청묘에 제사 드리고

릉에 대신 뵙게 하셨나니

 

懿乎 鷄樹 [鷄林] 揚蕤

[音惟。草木華垂貌。又孫氏瑞應曰。王者禮備至。則葳蕤生于殿前。]

아름답도다!

왕의 가계가 무성하니

 

鴒原挺茂。

[詩。常棣註。鶺鴒行。則首尾相接。喩兄弟急難相救。]

형제는 뛰어났도다.

 

歲久而永懷耕象。

[陸龜蒙曰。世謂舜田于歷山。象爲耕。鳥爲耘。吾觀象行。必端而必深。法其端深曰象耕。鳥之啄食。務疾而畏奪。法其疾畏。故曰鳥耘。非眞象鳥耕耘。]

해가 오랠수록

길이 밭가는 코끼리의 단정한 행위를 사모하게 하고

 

時和而罷問喘牛。[漢相丙吉事。]

시절이 평화로우니 소가 피곤하여 헐떡이는 것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藻野耨川。

[文選云。靚粧藻野。袨服耨川。或曰 當作耨野藻川 言耘耨於野 采藻于川]

들판을 수놓고 시내를 채색하였으니

 

東者如雲

보는 자가 구름처럼 많았다.

 

乃有鮐背之叟

[鮐音台 鮐背 老人氣衰 皮膚消瘠 背若鮐魚 故曰鮐背 釋名 九十曰背鮐 見字彙]

鵠眉之僧

[眉之皓白 如鵠眉之白也]

이에 복어 등인 늙은이와

따오기 눈썹인 중이 있어

 

[抃音便 拊手也 列子老幼喜躍抃舞]

手相慶

大相賀曰

손벽을 치며 서로 경사로 여기고 크게

기뻐하며 치하하면서 말하였습니다.

 

貴介弟

[左傳 伯州ꝃ曰 王子圍寡君之貴介弟介 大也]

之是行也

“귀하신 개제의 행차여

 

聖帝[懿宗皇帝]之恩光著矣

[著者八域皆聞故也]

吾君之孝理成焉

[理 道也 孝理成者 榮鬱光先故]

성스러운 임금님의 은덕이 현저하시며

우리 임금님의 효심이 이룩되었도다” 라고 하였다.

 

禮義鄕風 綽[綽音作 寬貌]

有餘裕[裕 寬意也]

예의와 향풍이 풍요하게 여유가 있었으며

 

遂使海波晏[晏 安也 柔和貌也]

塞塵淸[干戈息靜 王克寧海軍使重任故]

드디어 물결이 고요하고

변방의 풍진이 맑아지며

 

天吏均

 [受命于天 謂之官吏 淮南子曰 四時者 天之吏也 吏卽四時也 言四時順行 天無烈風淫雨]

천리가 고르고

 

地財羨[羨音衍 餘也]

지재가 불어나게 되어

 

則乃踵[繼也]修蓮宇[寺也]

威護柏城[陵也]

이에 연우을 잇달아 중수하고

능을 잘 보호하시게 되었도다.

 

今也其時 捨之何俟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니

이 때를 버리고 어느 때를 기다리리오.

 

於是孝誠旁達

思夢相符

[晝思夜夢相符]

이에 효성이 크게 사무치고

생각과 꿈이 서로 부합하여

 

乃見[現也]聖祖大王[元聖王]

撫而告曰

성조의 대왕을 뵙게 되었나니

대왕께서 어루만지시며 이르시되,

 

余而[而 汝也]祖也

“나는 너의 할아버지다.

 

而[而 汝也]欲建佛像 飾護予陵域

네가 불상을 세우며 나의 능역을 꾸며 보호하려고 하니

 

小心翼翼

[詩云 維此文王 小心翼翼翼翼 恭愼貌]

조심하여

 

經始勿亟

[詩云 經始勿亟 庶民子來 註 經度也 亟 急也 言臺之經度始役 王言勿急 而庶民子來而作也]

일 함에 빨리 하려 말라.

 

佛之德予之力 庇爾躬

부처님의 덕과 나의 힘이 너를 도와 주리라.

 

允執厥中 天祿永終

[論語云 堯曰 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厥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舜亦以命禹 書云 舜命禹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云云 至永終 參看銘中德符命禹以上註]

진실로 그 중용을 잡아서

천록을 길이 마치라” 하셨습니다.

 

旣而韻耿銅壺[漏壺也]

形開玉枕

[莊子 其寢也魂交 其覺也形開]

이미 정신이 동호에 반짝이고

몸이 옥침에서 열리어서는

 

不占十煇

[春官掌十煇之法 以觀妖祥 煇謂日傍之光 一曰侵 陰陽相侵 赤雲爲陽 黑雲爲陰 二曰象 如赤鳥 三曰鐫 日旁雲氣刺日 四曰監 赤雲在日傍 如冠珥 五曰闇 日月食也 六曰瞢 日月無光 雲氣貫日而遏 八曰叙 雲氣次序如山 九曰躋 升虹也 十曰想 雜氣形象]

십훈에 점쳐보지 않아도

 

若佩九齡

[禮記云 文王謂武王曰 汝何夢矣 夢帝與我九齡 西方有九國 君王其終撫 文王曰 我百 爾九十 吾與爾三焉 文王九十七終 武王九十三終]

구령을 얻음과 같았습니다.

 

遽命有司 虔修法會

華嚴大德釋決言 承旨 於當寺

문득 유사에게 명령하여

정성스레 법회를 베풀게 하시니

화엄대덕인 중 결언이 당사에서 교지를 받들어

 

講經五日

所以申孝思而薦冥福也

경을 오일 동안 강설하였으니

그 효도의 생각을 펴고 명복을 비는 바이었습니다.

 

仍下敎曰

不愛其親 經所戒也[卽孝經也]

無念爾祖 詩寧忘乎

[詩云 無念爾祖 寔繁有徒]

인하여 교지를 나리시되

그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것을 경에서 경계하는 바며

너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랴 하는 시를 어이 잊으랴.

 

睠言在藩

[小雅云 睠言顧之 註 睠 反顧也]

有欲修寺

근념함이 울타리에 있었고

절을 수리하고자 하였는지라

 

魂交[在夢時]致感

㾕慄[㾕音甚 感寒體戰也 慄 悚縮也]

衿靈[心神也]

혼이 사귀어 감응이 이루어짐에

송구함이 가슴과 마음에 가득 찬지라.

 

旣愧三年不蜚

[楚莊王三年不政 伍擧曰 有鳥在阜 三年不飛不鳴 是何鳥也 曰 飛將衡天 鳴將驚人也]

이미 삼년 날지 않음엔 부끄러우나

 

深思一日必葺

[葺音緝 茨也 又修補也]

百尹[尹 治也 猶言百官]

御史 謂利害何

하루에 반드시 수리하기를 벌써 깊이 생각했도다.

백윤과 어사들은 이해가 어떻다고 하느냐.

 

雖保無賣兒貼婦之譏

[宋明帝 以湘東舊宅爲寺 謂何尙之曰 此是朕之大功德 散騎常侍虞愿對曰 此是賣兒貼婦之錢 佛若有知 必當悲愍 何功德之有 註 貼 以物爲質 言徭役繁重 民不能供 故或賣兒質婦 以當役錢]

비록 아이를 팔고 부인을 잡힌 비방이 없음은 보장하나

 

或慮有鬼怨人勞之說

[秦築長城 鞭撻民丁 役使鬼神 民作魚游河曲 鬼有怨恨之聲也]

혹 귀신의 원망과 사람의 수고롭다는 말이 있을까 두렵나니

 

獻可替否 爾無忽諸

[替 廢也 否 非也 忽輕也 諸 語辭]

타당하면 실행하고 부당하면 폐지하여

부디 소홀이 하지 말라.

 

宗臣繼宗勛榮以下

協議上言曰

종신 계종과 훈영이하에서

이를 발표하여 협의하고 말을 올리되,

 

妙願感神 慈靈現夢

미묘하신 소원이 신명에게 감응되고

인자하신 신령이 꿈에 나타나심은

 

誠因君志先定

果見衆議僉同

진실로 임금님의 뜻이 이미 정해지심이어늘

과연 뭇 공론이 모두 일치되었아오니

 

是寺也成 九族多慶

이절이 이룩되면

구족이 경사가 많을 것이옵니다.

 

幸値農隙 請興杍工

[杍音子 治木器 又木工也]

다행이 농사철이 아닌 때를 당하여

목공들을 불러 드릴쎄

 

爰用擇人龍

[馬岌謂宋纖曰 人中之龍]

於建禮仙門

[摩詰詩 建禮高秋夜 註 建禮 門名 蓋禮曹門也]

이에 인룡을

건례선문에서 뽑고

 

擧僧象於昭玄精署[僧之持律院也]

乃命宗室三良

승상을 소현정서에서 천거하되

종실의 셋 어진 이에게 명령하였으니

 

曰端元 毓榮 裕榮 與釋門二傑

曰賢諒 神解

말하자면 단원.민영.유영이명 석문의 두 호걸에게 맡겼으니

말하자면 현량과 신해였다.

 

及贊導僧崇唱等 督其事

그리고 그 일을 돕는 중 숭창들이

그 일을 맏았습니다.

 

且國君爲檀越

[梵云檀 此云施 越是唐語 言行施越苦海]

또 나라임금님께서 단월이 되시고

 

邦彦[爾雅云 美士爲彦]

爲司存 [存 在也 司而在者 卽有司也]

나라 선비가 유사가 되었으니

 

力旣有餘 心能匪懈

힘도 남음이 있고 마음도 부지런했습니다.

 

將俾小加大 豈宜新間舊

장차 작은 것을 크게 만들려 함에

어찌 새것에다 옛것을 섞이는 것이 좋으리오마는

 

然恐沮檀溪宿願

[梁武帝 伐竹木 沈檀溪 積茅如岡阜 立願云 事若成 則當以此材 建立伽藍 竟得如意]

단계의 옛 소원을 저바릴까 두렵고

 

不瑕[與無乃同]傷 

내원의 옛 공적을 손상하지 않으려 하여

 

苑前功

[西域 有中虛 樹 女子從中而出 王取而爲后 建寺於其地 號苑]

選掇故材

就遷高 

[掇音徹 入聲 拾也 採也  音陟 基址]

옛 재목을 골라 추리고

높은 터에 나아가 옮긴 것입니다.

 

於是占星揆日

[詩云 定之方中 作之楚宮 揆之以日 作之楚室 註云 是占星之意也]

이에 점치고 택일하며

 

廣拓[拓音尺 開也]宏規

큰 규범을 널리 들어

 

合土範金

[造作器用 見禮運]

爭呈妙技

[呈 視也 露也 技 材也]

흙을 조화하고 금을 지어붓으며

미묘한 솜씨를 다투어 보인지라

 

雪梯

[雪 當作雲 公輸般爲楚 造雲梯攻宋 墨子拒之 出墨子]

구름 사다리엔

 

而倕材架險

[倕 黃帝時巧匠名]

수인 재목으로 험한 데에 얹어 놓았고

 

霜塗

[霜 白也塗土也]

서리 바름엔

 

而堊

[古之土工 堊 白土也]

黏香

[黏 着也 言以香和土而塗之]

노의 백토에 향을 이겨 넣으며

 

斸巖麓

[斸音燭 斬也 麓 山足]

而培垣[培 加土也]

바위 산발을 깎아

담을 돋우고

 

壓溪流而敞戶[敞 高曠也]

시내 흐름을 메워

창호를 높게 하며

 

易荒階以釦砌

[釦音口 金飾也 言砌石之隙 以鉛錫而鑄飾]

變卑廡以琱廊[琱 雕飾也]

황무한 섬돌을 금테로 장식한 섬돌로 바꾸고

낮은 행랑을 옥으로 조각한 행랑으로 만들었습니다.

 

複殿[上下皆殿]龍盤

겹겹인 전당엔 용이 서렸는데

 

中以盧舍那[毗盧舍那佛之略稱 實無異於釋迦牟尼]

爲主

복판에 비로자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層樓鳳跱

[跱與峙同 屹立貌 樓若鳳之屹立]

上以修多羅

[修多羅 梵語經典之意] 爲名

층층인 누각엔 봉황이 우뚝 섰는데

위에 수다라로써 이름하였다.

 

高設鯨桴

[張衡東京賦 撥鯨魚鏗牢鍾 註 海岸有獸 名蒲牢 其聲如鍾 性畏鯨 見鯨輒吼 故鑄鍾 以蒲牢爲首 桴則像鯨而擊之]

고래등 같은 집 마룻대를 높여 베풀고

 

對標鸞檻[畫鸞於檻]

난조 같은 난간을 마주 올렸다.

 

綺井

[綺井者 卽藻井也 畫芰荷水草以覆之 所以避火 乃井上板子]

기정엔

 

華攢[攢 族聚也]而鞢

[鞢音狎 鞢音燮 花相次比貌 何平叔景福宮賦云 紅葩 鞢]

繡栭

[栭 樑上柱 又說文 屋枒上樑也 卽樑上短柱 承屋脊者]

꽃을 모아 포개어 수놓았고

 

枝擁[擁 衛也 羣從也]

而杈枒

[杈枒音叉耶 杈木交枝 枒木無枝 言栭梠相接 齒牙相入]

주두는 서로 끼어 두 가지로 가새목 지은지라

 

聳翼如飛 回眸必眩

날개를 솟구쳐 날아갈 듯 하니

보는 이마다 눈이 아찔하겠도다.

 

其以增崇而改作者 有若睟容[佛也]別室

[景堂 別於正殿與僧寮也]

그밖에 더 높이고 고쳐 지은 것은 부처님 모신 법당과

 

圓頂[僧也]蓮房

[蓮之爲物 一房百子 故喩僧之一舍羣居]

스님들이 거처할 연방이며

 

揣食臑堂

[揣 度也 量也 臑 朱子曰 音耎 熟也 卽食堂也]

공양하는 식당과

 

晨炊屋

[廣也 卽今香積殿]

음식 만드는 공수간이었습니다.

 

加以雕礱罄虰

[礱音弄 磨也 罄音敬 盡也]

더욱 공교로은 솜씨를 다하여 아로새기고 다듬었으며

 

彩雘[雘音 廓 丹中之善者 多出衡山]窮精

정력을 기우려 채색하고 단청하였으니

 

巖洞共淸 烟霞相煥

암굴과 골짜기도 따라 맑으며

연기와 놀이 서로 찬란하도다.

 

玉刹

[法堂上左右白竿]

掛蓬溟之月

兩朶霜蓮

옥의 찰간에 봉명의 달이 걸렸으니

두 송이 서리 같은 연꽃이며

 

金鈴激松澗之風 四時天樂

금방울에 소나무 간수의 바람에 울리니

사시장철 하늘의 풍류로다.

 

就觀勝槩 傑出遐陬

또 절승한 경치를 보건대

이 먼 모퉁이에서 걸출하였나니

 

左峯巒則雞足挐雲

[三峯特秀 如雞足之倒立 挐 牽引也]

왼쪽의 산봉우리는 닭발이 구름을 찌를 듯 하고

 

右原隰則龍鱗

[隰音濕 阪下隰也 公羊傳云 上平曰原 下平曰隰 遠視隰 則如龍鱗之閃日] 閃日[文選云 龍鱗閃日 又云 疆域綺錯 原隰龍鱗云云]

오른쪽의 언덕은 용 비늘이 햇빛에 번쩍이도다.

 

前臨則

앞에 임하면

 

[字書云 山色靑黑者 謂之黛]

列鯷嶠[鯷音地 又言弟 魚名 頭大尾小也 言山形上大下小 如鯷魚形也 有云 鯷魚膓大着地 而背靑黑色 山形如之也 嶠 山也]

메기 산이 검게 벌려 있고

 

師睇 [睇音弟 目小視也]

則鉤連鳳岡[傍有飛鳳山故]

뒤로 돌아보면

봉 묏부리가 갈구리처럼 연해 있도다.

 

故得遠而望也 峭而奇

迫而察也 爽而麗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높고 기이하며

가까이서 보면 상쾌하고 수려하니

 

則可謂樂浪

[本是四郡之一 慶州亦嘗稱樂浪]

仙境

가히 낙랑의 선경이라 할만하며

 

眞是樂邦 初月

참으로 낙방의 초월이었습니다.

 

名山 便爲初地

[十地中初地也 地有生成 住持四義]

명산이 문득 복된 땅으로 되었음이며

 

善建而事能周匝

[匝 周也 遍也 ○ 寺與陵俱修也]

잘 건립하여 일이 두루 이룬 것이오

 

勤修而福不虛捐

必謂大庇仁方

上資寶壽

부지런히 닦았음에 복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반드시 인방을 크게 덮으며 위로 보수를 돕는다 하겠도다.

 

罩[罩音朝 壓也]三千界[言統合三千世界]爲四境

삼천 세계를 망라하여 넷 경계를 삼으며

 

籌五百歲爲一春

[人間五百歲 四天王一晝夜 卽上資寶壽者 卽彼天壽也]

오백 세로 한 봄을 삼을 것이온데

 

豈期獵豹樊岑

[山名 似是樊山 而未可詳之]

어이 기약하리? 번산에서 표범을 사냥하고는

 

方歡竪尾

[叢譜符命篇云 孫權獵豹樊岑 有老嫗問曰 今日獵何獸 曰得一豹也嫗曰 何不竪尾 因忽不見 因立神嫗廟 註云 竪尾者 何不立太子乎]

바야흐로 꼬리 세운 것을 기뻐하시다가

 

跨龍荊岫[荊山]

형산에서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遽泣墮鬚

[黃帝鑄鼎於荊山下湖水上 鼎成 龍至 帝及羣臣宮女七十二人 乘龍上天 百姓攀龍鬚 鬚絶 帝墮弓 百姓抱弓號泣 喩景文王昇遐 ○ 輦佛旣勤 豈期至此乎]

문득 떨어진 수염을 잡고 울 줄이야.

 

獻康大王[景文王太子]德峻妙齡

神淸遠體

헌강 대왕은 젊은 나이에 덕이 높으셨고

건강한 몸에 정신이 맑으시니

 

仰痛於寢門問竪

 [文王爲世子時 王季有疾 則雞初鳴 就寢門 問候於宦竪]

우러러 침문에서 환관에게 부왕의 안부를 묻는 것을 슬퍼하시고

 

俯遵於翼室宅宗

[宅 居 宗 主 蓋帝王居喪 則不居正殿 徙居翼室 爲居憂之宗主也]

 

머리 숙여 익실에서 거상(居喪)하는 것을 지켰다.

 

滕文公盡禮居憂

[滕文公爲世子 使然友問居憂之禮於孟子 極盡死葬之禮]

終能克己[克除私欲]

등문공의 예를 다하여 복 입음은

마침내 능히 자신을 극복하심이오,

 

楚莊王俟時修政

其實驚人

[楚阜之鳥 三年不飛不鳴 飛將衝天 鳴將驚人之語]

초장왕이 때를 기다려 정사를 다스림은

그 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矧復性襲華風 躬滋慧露[佛法也]

抗[擧也] 尊祖之義

激歸佛之誠

하물며 또 천성이 중국의 풍도를 답습하고

몸이 지혜의 감로[불교 교리]에 젖으시어

조상을 높이는 의리를 행하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정성을 격발(激發)시켰다.

 

中和[唐僖宗年號] 乙巳年秋 敎曰

중화 을사년 가을에 교지를 나리시되.

 

善繼其志 善述其事

永錫爾類 在我而已

그 뜻을 잘 계승하고

그 일을 잘 서술하며

길이 선왕의 유지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나에게 있을 뿐이다.

 

先朝所建鵠寺

宜易榜 爲大崇福寺

먼저 왕의 세웠던바 곡사는

마땅히 사액(寺額)을 바꾸어

대숭복으로 하라.

 

其持經開士

[蒙疏 大心始開]

그 경을 수지독송(手持讀誦)하는 보살과

 

提綱淨吏

[卽維那執綱紀者也]

사찰의 기강을 세우는 정리(淨吏)들이

 

南畝以資供施

一依奉恩故事

[武烈王爲眞智王追福所建]

남쪽에 있는 밭으로써 공양과 보시에 충당하게 하여

한결같이 봉은사의 고사에 의지하도록 하라.

 

其故波珍飧金元良所捨地利

輸轉非輕[納三寶爲寺]

宜委正法司

[紏正僧法之司]

그 옛날 파진손 김원량이 희사한 땅의 산물로 얻은 이익은

운반하는 것이 중요하니

마땅히 정법사에 위임하도록 하라

 

別選二宿德

編籍爲常住

薦祉于冥路

따로 두 숙덕을 선출하여

적에 편입하여 상주(常住)하게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빈다면

 

則有以見居上位[王位]者

無幽不察

윗 자리에 있는 내가

유명(幽明)까지 살피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니

 

結大緣者[金元良] 有感必通

큰 인연을 맺은 이로 감응이 있어

반드시 통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自是鳧鍾[考工記 黃帝命鳧氏造鍾]

吼泬寥[泬音穴 宋玉九辨 泬寥兮天高 註 泬 曠蕩也 寥 空也]

이로부터 종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고

 

龍鉢

[檀經云 曹溪寶林寺前潭中 有一龍常出沒 現形甚巨 師叱之曰爾不能現小身耶 龍乃小身躍出 師展鉢曰 爾入老僧鉢 龍乃入鉢 師至堂 爲龍說法 龍乃蛻去 故云龍鉢耶 又龍所獻鉢歟]

바루에는

 

飫香積

[維摩經云 淨名居士過上方四十二恒河沙世界 至香積世界 借一鉢飯 供養一萬文殊]

음식이 가득하도다.

 

唱導則六時玉振

[孟子註云 八音 金木土絲竹匏革石 擊金而始之 始條理也 後擊磬收之 終條理也 磬是玉也]

창도함에 육시로[하루 종일] 옥경(玉磬) 소리 떨치고

 

修持則萬劫[具云劫波 此云時分]

 珠聯[持戒之法 如聯珠而不絶]

수지함엔 만겁동안 구슬이 이어짐이라.

 

偉矣哉

得非尼父所謂無憂者其惟文王

父作之 子述之者耶[父王季 子武王]

위대하도다!

공자의 이른바 “근심이 없는 이는 그 오직 문왕이신저!

아비가 일으키니 아들이 서술한다.“는 것이 아닌가?

 

慶曆

[唐代無慶曆年號 或唐曆 亦似未瑩]

景午[僖宗光啓二年丙午 丙字 高宗諱 故改丙爲景]

年春

경력 병오년 봄에

 

顧謂下臣曰

돌아보며 하신에게 이르시되,

 

禮不云乎 銘者自名也

以稱其先祖之德 而明著之後世

예기에서 말하지 아니했더냐.

명(銘)이란 스스로 이름하는 것이니

그 선조의 덕을 칭송하여

후세에까지 밝게 나타내는 것이다.

 

此孝子孝孫之心也

이것이 효자 효손의 마음이다.” 라고 하였다.

 

先朝締構[刱寺]之初

發大誓願

선조가 절을 이룩할 처음에

큰 서원을 발하셨는데

 

金純行與若[汝也]父肩逸

嘗從事於斯矣

김순행이 그대의 아버지 견일과 함께

일찍이 이 일에 종사하였다.

 

銘一稱而上下皆得

[吾與汝俱得孝子之心也]

명이 한번 일컬어지면

위 아래가 모두 이름을 얻게 되니

 

爾宜譔銘

[譔 造也 又屬辭記事曰撰 銘名也 名記其功也]

그대는 마땅히 명을 지으라.” 하였다.

 

臣也浪跡星槎

[杜詩註云 漢張蹇乘槎 泝河源 至一處而見一丈夫牽牛一美女織錦

問曰 此何處也 女授一石曰 問于城都嚴君平 蹇還如言問之 君平曰 此是織女支機石 某年月日 客星犯牽牛 其時爾應到彼也 此喩入中國也]

신은 배를 타고 중국에 가서

 

偸香月桂

[東坡詩註云 月中有桂 高五百丈 衆仙於中傲戲 下有一人 常斫之 則吳剛也 言偸香者 孤雲卽入唐登甲科]

월계의 향기로움을 도둑질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虞丘永慟

[家語云 孔子至虞丘 聞子阜哭甚哀 問其故 對曰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遊宦列國 旣歸而親沒 故哭之云]

우구에서의 영원한 비통이오며

[부모가 돌아가실 때 임종을 못한 것이 영원한 슬픔이니]

 

季路徒榮

[家語云 子路少時 爲親負米 及親沒仕楚 歎曰 雖列鼎而食 累茵而坐 雖欲爲親負米 其可得乎 言孤雲親沒 徒榮也]

계로의 헛된 영화일 뿐이었다.

[비록 벼슬을 했다 하나 헛된 영화입니다.]

 

承命震驚 撫躬悲咽

[昔於乘桴之時 父有嚴訓 今於還錦之日 父不待養 季路子阜 實與我千古同情 況有君命 及於父事 心驚淚咽 無地措躬]

왕의 명령을 받자옵고 깜짝 놀라

몸을 어루만지면서 슬피 오열하였다.

 

竊思西宦日

嘗覽柳氏子珪[江南人] 錄東國事之筆

그윽히 생각해 보니 중국에 가서 벼슬할 적에

일찍이 유자규의 동국의 일을 기록한 글을 보니

 

所述政條 莫非王道

그 서술한 바가 바르고 조리가 있어

왕도 아님이 없었다.

 

今讀鄕史

完是聖祖大王[卽元聖王] 朝事蹟

지금에 향사를 읽어 보니

완연히 성조대왕[元聖王] 조정의 사적이었습니다.

 

抑又流聞

[流聞 傳聞也 禮王制 千里之外曰流 遠聞也]

漢使胡公歸厚之復命也

또 전해진 말을 듣자오니

한의 사신 호귀후가 복명하였는데

 

飽採風謠[指吾邦漢詩]

白時相曰

우리의 풍속과 가요를 넉넉히 채취하고서

당시의 그 승상에게 아뢰었다.

 

自愚已往 出山西者

[漢書云 山東出相 山西出將 故烈士武夫 多出涼州]

不宜使海東矣

“내가 갔다온 후로

산서에서 출생한 자는

마당히 해동에 사신을 보내지 마십시오.

 

何則 雞林多佳山水

東王詩以印之而爲贈

왜냐하면 계림에는 아름다운 산수가 많아서

동왕이 시를 지어 나에게 주었는데

 

賴愚嘗學爲綴韻語

强忍愧之

저는 일찍이 좀 배워서 운어를 엮을 줄 알아

억지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합하였습니다.

 

不爾爲 海外笑必矣

그렇게라도 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해외에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니

 

君子以爲知言

[東國之行王道 右文學 中國人習知之]

군자들은 이를 옳은 말이라 여겼다고 한다.

 

是惟烈祖以四術開基

[武烈大王金春秋統合三韓 以忠愛無私 用賢簡能 四術開基]

또 공손히 생각하옵건데

열조께서 사술로써 터전을 마련하시고

 

 

先王以六經

[詩 書 易 禮記 春秋周禮]

化俗

豈非貽厥之力[書 貽厥孫謀 貽 遣也]

먼저 임금님께서도 육경으로써 풍속을 교화하시니

어찌 그가 끼친 힘이 아니리오.

 

能得煥乎其文

則銘無愧辭

[世說云 貺邕曰 吾爲人作銘 常有慙容 惟爲郭有道碑銘 無愧耳]

능히 그 문채(文彩)를 환히 얻으니

명(銘)에 부끄러운 말이 없었고

 

筆有餘勇

[言若使我贊揚四術六經之化 則無愧於心 有勇於文]

붓을 잡아도 남은 용기가 있었다.

 

遂敢窺天[以管窺天]

드디어 감히 하늘을 엿보고

 

酌海[傾蠡酌海]

始緝[繼續]凡詞

바닷물을 잔질하는 심정으로

비로소 속된 말을 엮어본다.

 

誰知墜月摧峯

[獻康王薨 如月墜山崩]

俄興永恨

누가 알았으리오?

달이 떨어지고 산이 무너지매

이윽고 영원한 한이 일어나더니

 

旋遇定康大王

[景文之子 獻康之弟]

곧바로 정강대왕이 즉위하셨다.

 

功成遺礪

[遺 餘也 礪 石砥也 言前人礪砥 後人亦磨 以成其功 喩定康大王亦成獻康之餘業也]

남은 것을 이어서 공을 이루니

 

韻叶吹篪

[伯氏吹塤 仲氏吹篪 比兄弟皆得王位也]

형제가 화목하였다.

 

旣嗣守丕圖

[王業也 丕 大也]

이미 큰 왕업을 이어 왕위를 지켰으니

 

將繼成遺績

無安厥位

[書 伊訓文 其云 無輕民事 惟難 無安厥位 惟危也]

장차 남긴 일을 계승하여 이루시려고

그 지위에서 편안한 날이 없었다.

 

未喪其文[喪 終也]

而遠逐日弟兄

遽値西山之影

그 비문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멀리 해와 같은 형님을 좇다가

문득 형님의 죽음을 만났다.

 

高憑月妹姊

永流東海之光
[說文 東王以日爲兄弟 以月爲姊妹 又春秋感精符曰 人主 父天母地 兄日妹月也 今定康遠逐獻康兄之日 而共作西山之影 言其死也 死而無子 傳於眞聖妹 則是憑月流光也]

높이 달의 자매[진성여왕]에 의하여

길이 동해에 비추는 빛을 전하셨습니다.

 

伏惟大王殿下 [眞聖女主]

엎드려 생각하건대 진성여왕 전하는

 

瓊萼聯芳

[萼音諤 詩註云 華下有萼 萼下有跗 華萼相承覆 猶兄弟相順而榮顯意也 唐玄宗 兄弟五人 作華萼聯芳樓]

형제자매의 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璇源激爽[王者本系之譜 尊稱爲璇源也]

왕가의 계보가 심히 밝고 좋았으며

 

體英坤德

[相合無間曰體 草之秀者曰英 質英合坤之德]

纘懿天倫

[纘音鑽 繼也 懿 美也 言繼美之天倫]

빼어난 곤덕을 본받아

아름다운 천륜을 계승하셨다.

 

諒所謂懷神珠

[諒音亮 信也 卽八歲龍女懷方 成佛也]

진실로 이른바 신비로운 구슬을 품고

 

鍊彩石

[事文類抄云 昔 女媧鍊五色石 補蒼天缺 斷鰲足 以立四極 其後 工共氏

與顓頊爭爲帝 怒而觸不周山 天柱絶 地維斷 故天傾西北 日月星辰就焉 地不滿東南方 故百川歸焉]

채색돌을 연마하여

 

有虧皆補 無善不修

이지러짐이 잇으면 모두 보수하고

모든 선을 닦지 않음이 없었다.

 

故得寶雨金言

[寶雨經云 爾時 東方有一天子 名曰月光 乘五色雲來 詣佛所 退坐一面 佛告天子言 我涅槃後 最後時分 第五百年中 法欲滅時 汝於此瞻部洲東北方摩訶支那國位居阿鞞跋致 實是菩薩 故現女身爲自在主 經於多歲正法治化 養育衆生 建立塔寺 常修梵行 名曰日月爭光天子 爾時月光天子 從佛世尊聞受記已退坐一面 註云 摩訶 此云大 支那 此云東震阿 鞞跋致 此云不退轉]

그러므로 보우경(寶雨經)의 부처님 말씀으로

 

焯然授記

분명히 수기함과

 

大雲玉偈

[通載云 唐中宗文明元年甲申七月 沙門十輩詣闕 上大雲經 盛稱則天當卽宸極 則天大悅頒經于天下郡國 各建大雲寺 九月 則天革唐稱周則天皇帝 比眞聖女主也]

대운경의 옥게송이

完若合符

완연히 부합함을 얻게 된 것이다.

 

且以文考成佛宮

康王施僧供

已峻琉璃之界[寺也]

또 경문왕께서 절을 이룩하시고

헌강왕께서 스님들의 공양을 보살피시어

이미 유리의 세계[불교계]를 높이셨으나

 

未刊琬琰之詞

[曲禮 典瑞現圭 以治德結好 註 琬圭九寸 繅以象德 琬猶圜也 琰音鹽 說文云 璧上起美色 又圭之銳上者]

비석의 글을 새기지 못해서

 

申命瑣才

[瑣 玉屑 言才少也 申 重也 先王旣命今王重命之]

俾搖柔翰

[翰 筆也 柔 無力也 言不如長杠巨筆也]

거듭 재주없는 신에게

글을 짓도록 명하시니

 

臣雖池慚變墨

[羲之洗硯 池色變黑]

而筆忝夢椽

[忝辱也 王珣 字坦之夢 人與大筆如椽 人曰 當有大手筆 如言]

신은 비록 왕희지가 벼루를 씻어 못의 물이 먹물로 변하고

장순이 꿈에 서까래만한 붓을 받은 데 비하면 부끄러우나

 

竊比張融不恨無二王之法

[齊張融善草書 高帝曰 恨卿無二王書法 答曰 臣非恨無二王法 亦恨二王無臣法 二王 羲之獻之]

장융이 두 왕씨[왕희지, 王坦之]의 필법 없음을 한탄하지 아니함에

그윽히 비교될 것이며

 

庶幾曹操或解有八字之褒

[邯鄲淳撰曹娥碑云 孝順第一曹娥碑 蔡邕陰題云 黃絹幼婦外孫薤臼 曹操解]

거의 조조가 여덟 글자의 찬사를 풀이함에 가까울 것이다.

 

設使灰撲塡池

[漢武帝鑿昆明池 得灰 問東方朔 不知 藏之府庫後有西來胡僧曰

此乃天地撲滅時 劫灰也]

설령 재가 곤명지를 채우고

 

塵飛漲海

[列仙傳云 麻姑自言 見東海三爲桑田 向到蓬萊 水又淺於往者 豈將復還爲陵陸乎 王方平曰 聖人皆言 海中行復揚塵也]

 

먼지가 날아서 바다에 창일할지라도

 

本枝蔚矣

齊若木而長榮

[淮南子曰 灰野之山 有樹 名曰若木 日入處也]

본 가지[왕의 후예]는 울창할 것이라

약목과 가지런히 길이 번영할 것이며

 

豐石[豐厚也 石碑也] 巋然

[巋音奎 獨貌 莊子云 巋然有餘]

큰 돌이 높고 견고하여

 

對沃焦而卓立

[十住毘婆娑云南海有石 其名沃焦 萬流至此皆焦 故海水不增 取久遠之義]

남해의 옥초처럼 높이 서 있을 것입니다

 

齎誠拜手

[首至手而不至地也 出書註中]

抆涕[思先王之命 自然流涕] 援毫

정성을 가지런히 하여 합장하고

눈물을 씻으며 붓을 잡았다.

 

追蹤華[蹤迹之華麗也]

而獻銘曰

빛나는 발자취를 좇아

다음과 같이 명(銘)을 바친다.

 

迦衛慈王[具云迦維衛 此云赤澤也]

嵎夷太陽[嵎夷 曰出處]

가위라의 자비하신 왕은

우이의 거룩한 태양처럼

 

現于西土[西土 佛生處]

出自東方[東方 日出處]

서토에 나타나시어

동방에서 돋았구나.

 

無遠不照[日也]

有緣者昌[佛不度無緣衆生也]

먼 데를 비추지 않음 없고

인연 있는 데는 모두 빛나시니

 

功崇淨刹

福蔭冥藏[陵也]

공이 청정한 절에 높았으며

복이 명장에까지 덮었도다.

 

烈烈英祖[元聖王]

德符命禹[指大舜]

열열하신 영조께서는

덕이 명우에 부함 하신지라

 

納于大麓

[舜典云 納于大麓 烈風雷雨弗迷 註云史記曰 堯使舜入山林川澤 暴風雷雨 舜行不迷]

奄有下士[天下也]

큰 산에 들어가심 무난하시고

하토를 문득 두시어

 

保我子孫

爲民父母

우리의 자손을 보호하시며

백성의 부모 되옵시니

 

根深桃野[東方]

派遠桑浦[東海]

그 뿌리 도야에 깊었고

줄기는 멀리 상포에 뻗으셨습니다.

 

蜃紼龍輴

[蜃似蛇而大 蜃紼 謂其長如蜃也 輴 喪輿也 龍輴 謂喪輿之上刻畫爲龍也]

신불과 용순으로

 

山園保眞

[莊子云 已返其眞 而我猶爲人猗 案古人指死而無分別 謂之眞無分別 謂之眞無分別者 體魄是也]

산원에서 진체를 보호하시며

 

幽堂[墓也] 闢隧

[墓道也 上有負土成墳 傍掘地通道 以納棺也]

 

유당에 묘 길을 만드시고

 

聳塔遷鄰[移寺]

萬歲哀禮[陵也]

千生淨因[寺也]

용탑을 가까운 곳에 옮기시니

만세동안 애모하는 예도와

천생의 청정한 터전은

 

金田厚利[寺也]

玉葉長春[聖子神孫謂之玉葉]

금밭의 두터운 이익이며

옥 잎사귀의 영원한 봄이옵니다.

 

孝孫淵懿[淵 深 懿 美]

昭感天地

효손이 많고 아름다우시여

빛나게 천지를 감동하셨네

 

鳳翥龍躍

[說文云 飛擧也 言子孫如鳳飛龍躍也]

金圭合瑞

[此二句 言子孫英傑 世世顯榮金圭 諸侯所執之信 圭 上圓下方 瑞 信也 五等諸侯 各有所執 公執桓圭 侯執信圭 伯執躬圭 子執穀璧 男執蒲璧也 言以王之金圭 符合于天子之冒 周禮 天子執冒 以朝諸侯 冒 鎭圭也 以德覆冒天下]

봉이 날으고 용이 뜀이여

금규가 옥신부에 합했도다.

 

乞靈不昧

徼[徼音要 求也]福斯至

신령께 빌으심 흐리지 않아

복을 맞아들이매 이 이르렀나니

 

欲報之德[先祖之德]

克隆法事[造寺]

그 덕 갚으시려고 하여

법사를 높이 받드셨네.

 

妙選邦傑[俗三良 僧二傑]

嚴敦國工[工 匠也]

나라의 인걸을 잘 선출하시며

전국의 장인들을 불러 들이고

 

伺農之隙 成佛之宮

농사철 아닌 때를 틈타시어

부처님 궁전 이룩하시니

 

彩檻攢鳳 雕樑架虹

채색 난간엔 봉황이 모이고

아로새긴 들보엔 무지개 섰으며

 

繚[繚音了 纏也]墉[墉 垣也]雲矗

繢[繢音會 五彩以畫]壁霞融

두른 담엔 구름이 솟아 오르고

그림 벽에는 노을이 어리었도다.

 

盤基爽塏[爽 高明也 塏 高燥也]

觸境蕭灑

둘레의 터전은 양명하며 조강하고

보이는 풍경마다 소쇄하며

 

藍岫交聳 蘭泉[味甘香也]迸瀉

푸른 묏부리는 다투어 솟았고

향기로운 샘물은 솔솔 흐르도다.

 

花娓[美也]春巖 月高秋野

꽃이 아름답게 핀 봄산이며

달이 높이 뜬 가을밤이니

 

雖居海外 獨秀天下

비록 바다 밖에 있음이나

홀로 천하에서 아름답도다.

 

陳稱報德

[陳後主 爲高祖創報德寺]

隋號興國

[隋文帝創興國寺]

진에서는 보덕이라 칭하였고

수에서는 흥국이라 이름했으니

 

孰與家福 興之國力

어찌 집안의 복이라만 하랴

이 나라의 힘을 높이심이로다

 

堂聒妙音 廚豐淨食

법당엔 미묘한 소리 요란하고

주방엔 청정한 음식 풍족하니

 

嗣君[定康王]遺化

萬劫無極

임금님의 끼치신 덕화 이어받아

만겁동안 무궁하오리

 

於鑠媧后

[詩云 於鑠王師 註云 於 歎歎 鑠 盛也 媧后 眞聖女君]

情敦孝友

[孝於父母 友愛於兄弟也]

아! 빛나신 여와 임금님이시여

효도와 우애의 정 두터우시어

 

致媺雁行

[媺 與美同 雁飛有次第 故比兄弟也]

愼徽龍首

[愼 脩也 徽 美也 龍首 指陵上也]

안항의 아름다움 이루시고

용수(龍首)의 정성을 기우르셨네

 

詞恧腐毫

[恧音六 慚也 毫 筆 腐 謙辭]

문장 꾸밈은 썩은 붓임이 죄스러우며

 

書慚掣肘

[掣 引也 肘 臂節也 說苑云 魯使宓子賤爲單父宰 子賤恐魯君聽讒而不得便其政 請於魯君之近史善寫者 俱與之官 使之寫書 傍坐 掣其肘 書醜則怒 更欲善書 則又掣 書者歸告魯公 魯公不會其意 問于孔子 孔子曰 不齊 君子也 意者以此爲諫乎 公悟以從之 單父大治也 ○ 不齊 子賤之名也]

글씨 솜씨는 팔목 당김이 부끄럽습니다.

 

鰌壑雖渴

[鰌壑 鰌魚所在之壑 卽東海也 鰌音秋 長千餘丈 入穴則潮水退 出穴則潮水進]

고래 구렁은 비록 다할지라도

 

龜珉不朽

[珉 美石 卽龜上所竪之碑也 世傳言 龍生九子 不成龍而各有所好

一曰贔屭 形似龍而好負重 故碑下趺是也 二曰螭吻 形似獸 性好望 故今之屋上獸頭是也 三曰蒲牢 形似龍而好吼 今之鍾上紐是也 四曰狴犴 形似虎 有威力 故立于獄門是也 五曰饕餮 性好飮食 故立于鼎蓋是也 六曰。性好水。故立于橋頭是也。七曰睚䀝。性好殺。故立于刀環是也。八曰金猊。形似獅。性好烟。故立于香罏是也。九曰椒圖。形似螺蚌。性好閉。故立于門鋪首是也。

거북 옥돌은 썩지 않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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