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당집 권1은 한시 작품집이고

 권2  書의 첫 작품으로 <上完山盧府尹書>이 실려 있다.

서산대사 휴정의 자서전적 편지글인 이 서한은 

《동사열전》30. 청허존자에서는 물론 월사 이정귀와 계곡 장유의 휴정존자의 비명병서에서도 그대로 또는 발췌하여 인용되고 있다.

국문 번역본을 발췌해 본다.

[  ] 속에 생애를 요약함. 또는 연령을 표기한 것은 운영자가 전후 문맥으로 추정한 나이다.

 

休靜,淸虛堂集 제2권, 書.

상완산노부윤서(上完山盧府尹書).

-완산 노부윤에게 올리는 글

 

우러러 사모하옵던 차에 마침 주신 편지를 받고 물으신 뜻을 다 잘 알았습니다.

소자의 선조의 행적과 소자의 젊은 때의 행적과 집을 떠난 인연과 운수(雲水)의 행적을 하나하나 숨기지 말라 하시고 자세한 일까지 거듭거듭 물어주시니 어찌 잠자코 있겠습니까? 이제 간략히 삼몽록(三夢錄:삼대의 기록)을 올리오니 잘 살피소서.

그 기록에 소자의 아버지의 시조는 본이 완산최씨이옵고, 어머니 시조의 본은 한남김씨이옵니다.

[중략]

소자 불행하여 나이 겨우 아홉 살에 갑자기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도 한 봄을 지나 아버지마저 이어 돌아가시니 백년의 생계가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아 천지가 망극하여 여막에 엎드려 슬퍼하고 또 슬퍼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분이 옛집터에 두어칸 서당을 마련하고 5-6명 또래를 모아 공부하게 하다.]

이로부터 삼년 동안 스승을 가리어 공부하고,한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더욱 분발하였으니 그때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마침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서 호남의 원으로 가시게 되어 곧 동학 몇 사람과 함께 스승을 따라갔습니다. 스승은 부임한 지 몇 달만에 갑자기 불천(不天)의 근심을 만나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반 년간 두류산을 유람하다.]

하루는 한 노숙이 나를 찾아와,

“그대를 보니 기골이 맑고 빼어나 결코 보통사람이 아니다. 듯을 심공급제(心空及第)에 돌리고 세상의 명리를 좇는 뜻을 아주 끊어라. 서생의 업이란 아무리 온종일을 애쓴다 해도 백년 동안의 소득은 다만 하나의 빈 이름뿐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하였습니다.

저는 “어던 것을 심공급제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노숙은 한참 동안 눈을 껌벅이다가, “아는가?” 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말하기 어려우니라.” 하며,

전등록, 염송,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법화경, 유마경, 반야경 등 수십 권의 경론을 내보이면서,

“자세히 읽고 깊이 생각하면 점차 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이내 영관대사에게 저를 부탁했습니다.

대사는 저를 한 번 보시고 기특히 여겼습니다.

저는 이로부터 3년을 공부하되 하루도 부지런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말하고 받아들이며 묻고 판단하는 것이 한결같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여러 동학들은 각기 서울로 돌아가고 저만 홀로 선방에 머물면서 앉아서 여러 경전을 더듬었으나 더욱 이름과 상에 얽매여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답답함만 더하였습니다.

[18세]

그러던 하룻밤,

갑자기 문자를 떠난 오묘한 이치를 얻고,

 

 

忽聞杜宇啼牕外 홀문두우제창외

滿眼春山畵故鄕 만안춘산화고향

갑자기 창 밖에서 우는 두견의 소리 들으니

눈에 가득찬 봄 산은 고향의 그림일세

라고 읊었습니다.

 

또 하루는,

 

汲水歸來忽四首 급수귀래홀사수

靑山無數白雲衆 청산무수백운중

물길어 돌아오다 문득 고개 돌리니

푸른 산은 무수히 흰 구름 속에 있네.

라고 읊었습니다.

 

[두류 5년- 23세]

[암자 3년- 26세]

[27세]

하루는 용성의 벗을 찾아 성촌을 지나다가 한낮의 닭소리를 듣고 두 게송을 희롱으로 읊었습니다. 즉,

 

머리는 희었어도 마음은 희지 않다고

옛 사람은 일찍이 말했네.

이제 한 닭소리 들으니

장부의 해야 할 일이 끝났네.

髮白非心白  발백비심백

古人曾漏洩  고인증누설

今聽一聲鷄  금청일성계

丈夫能事畢  장부능사필

-[過鳳城聞午鷄]

 

홀연히 불교의 근원을 깨닫고 보니

화두마다 다만 이것뿐이로다.

만천금의 대장경이

원래 하나의 빈 종이였었네.

忽得自家底  홀득자가저

頭頭只此爾  두두지차이

萬千金寶藏  만천금보장

元是一空紙  원시일공지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내 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오년(1546,26세) 가을, 문득 여러 곳으로 유행할 뜻이 생겨

표주박 하나와 한 줄의 누더기로 멀리 관동의 오대산에 들어가 반년을 지내고,

또 풍악산에 들어가 미륵봉을 찾고,

구연동에서 한 여름과 향로봉에서 한 여름을 머물렀으며,

성불, 영은, 영대의 여러암자에서 각각 한 여름을 결제했습니다.

또 함일각으로 옮겨 한 가을을 지냈습니다.

그동안 굶주리기도 하고 혹은 추운 일도 많았으나 7-8년을 깨닫지 못하고

꿈속에서 지냈으니 그때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성조에서 양조를 부활하므로 외인의 청을 억지로 좇아 한 여름을 대선이란 이름을 얻었고, 두 여름 동안 주지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석 달 동안 전법사란 이름을 얻었으며, 석 달 동안 교판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삼년 동안 선판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혹 괴롭기도 하고 영화롭기도 한 일이 많았으나 역시 5-6년을 깨닫지 못하고 꿈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나이는 서른일곱 살이었습니다.

하루는 문득 처음 발심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곧 인수를 버리고 한 가지 청려장을 짚고 금강산의 천석 사이로 들어가 반 년을 지냈습니다.

또 두류산으로 가서 내은적암에서 삼년을 지냈으며,

이내 황령을 지나 능인암, 칠불암 등 여러 암자에서 다시 삼년을 지냈습니다.

또 관동으로 나아가 태백산, 오대산, 풍악산의 세 산을 다시 밟은 뒤에

멀리 관서를 향했습니다.

그곳 묘향산의 보현사 관음전과 내원암, 영운, 백운, 심경, 금선, 법왕 등의 여러 대와 그리고 망망한 천지와 허다한 산수를 떠돌아다닌 한 몸은 기러기의 털과 같고 바람과 구름이 일정한 곳이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소자의 행적도 또한 이뿐이옵니다.

[중략]

아, 이 하나의 붓으로 지난 자취를 늘어놓은 것도 하나의 꿈입니다.

삼가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연령을 추정해 보면 이 글에서는 43세까지의 자신의 삶의 궤적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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