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사(月沙) 이정구, 상촌(象村) 신흠, 계곡(谿谷) 장유, 택당(澤堂) 이식.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월사(月沙) 이정구, 상촌(象村) 신흠, 계곡(谿谷) 장유, 택당(澤堂) 이식.
조선 중기 한문학 문장에 뛰어난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신흠(申欽) 등 4인에 대한 지칭.
일명 이들의 호를 취하여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칭하기도 한다.
16세기말부터 17세기초, 즉 선조(宣祖)에서 인조(仁祖)에 이르기까지 문풍이 크게 일어나서 학자와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들 사대가는 특히 한문학 부문에 있어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정구의 문장은 꾸밈에 힘쓰지 않아서 자연스러우나, 법도가 해이해서 고아(古雅)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신흠의 문장은 화려한 데로 흘러 질실(質實)한 맛을 결했다고 한다.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중에서는 장유와 이식이 뛰어났다고 하며, 문장의 결구에 있어서는 이식이 더 낫다고 했다.
한편으로 장유는 천재(天才)가 능한 데 비하여 이식은 인공(人工)이 장했다고 한다. 이식의 문장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정통적인 고문(古文)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한문 사대가의 문학관은 이정구․신흠․장유의 문예 지향적 문학관과 이식의 주자학적 도덕주의 문학관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정구․신흠․장유의 경우 문학의 독자적인 가치를 강조하였고 문학의 본원적인 면모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식은 화국보세(華國輔世)로서의 공리적인 측면에서만 문학의 가치를 인정하였고, 문학의 본원적인 면모를 규범화된 덕목들로 통제시켰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첫째 당송 팔가의 고문을 모범으로 삼아 고문을 쓰려고 노력한 점,
둘째 주자학적(朱子學的)인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셋째 화려한 가문의 출신이며 관료로서 출세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들은 중세적인 관료 문학을 대표하는 이들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했던 조선조 인조(仁祖) 연간이 주자주의를 표방했던 서인정권(西人政權)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정구․신흠․장유 등의 문학이론의 심층에 주자주의적인 것에서 일탈하고자 한 요소가 보인다는 점은 문예미를 존중하는 우리 근대문학의 싹이 임진왜란 이후에 이미 배태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崔雄)
한문사대가 [漢文四大家]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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