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13화 - 의원 무당 맹인 시험하기 (試醫巫盲)
옛날에 한 재상이
짖궂은 장난을 좋아했다.
하루는 심심하기에
의원과 무당과 맹인이
얼마나 영이(靈異)한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커다란 밤 한 톨을 입에 넣고
뺨이 불룩하게 부어 오른 척하며,
세 사람을 차례로 불렀다.
먼저 의원을 불러
그 볼을 보이면서 물었다.
"내 자고 나니
볼이 이렇게 부어올라
아파서 견딜 수가 없소이다.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
처방해 주시오."
이러면서 아픈 시늉을 해보였다.
이에 의원이
부어 오른 곳을 유심히 살피더니,
만져 보려고
손을 가까이 대는 것이었다.
재상은 곧 몸을 뒤로 빼면서
지독하게 아프니 만지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약방문(藥方文)을 내놓았는데,
약이 워낙 독해
부어 오른 곳에 붙여 두면
피부가 상하면서
속에 있는 나쁜 물질이 흘러나와
낫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재상은 그 약을 붙이겠다고 하면서
의원을 돌려보내고,
이어 무당을 불렀다.
그리고는 역시 아침에 일어나니
볼이 이렇게 부어올랐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자,
무당은 자기의 신을 불러
물어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서쪽에서 온 나무가
재앙을 일으켰으니,
굿을 해서
그 나무를 제거해야만
병이 낫게 됩니다."
이에 재상이 생각해 보자,
입안에 있는 밤톨은
한자로 '율(栗)' 이니
'서녘 서(西)' 밑에
'나무 목(木)' 을 붙인 글자이므로,
'서쪽에서 온 나무' 란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끝으로 맹인을 불러
점(占)을 쳐보라고 하니,
맹인이 괘를 뽑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율독(栗毒)이
입에 들어가서
생긴 병입니다.
1)율독(栗毒) - 밤의 독소.
당연히 경을 읽어야만 낫게 됩니다."
"허면 네가 경을 읽어
이것을 낫게 해줄 수 있느냐?"
"물론이지요,
어찌 소인이
대감을 기망하겠나이까?"
"좋다, 그렇다면 네가 경을 읽어
어디 한번 낫게 해 보아라."
재상의 요청에
맹인은 경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북을 치면서
큰소리로 경을 읽던
맹인은 일어서더니,
대청마루 바닥을
두 발로 힘껏 굴리면서,
"급급 여율령(急急 如栗令),
입에 든 밤톨을 깨무시오!"
라고 소리쳤다.
이어서 재상의 얼굴을 잡고
턱을 힘껏 쳐올려
이로 깨물게 하니,
재상은 아파 견딜 수가 없어
밤톨을 내뱉아 버리고 말았다.
맹인을 돌려보낸 뒤
재상은 세 사람의 대답이
모두 엇비슷하여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면서
크게 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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