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56화 - 소금장수가 아내를 훔치다 (鹽商盜妻)
어느 산골에 선비 한 사람이
작은 초가집을 짓고
부부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해가 져서
땅거미가 질 무렵
소금장수가 와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이에 선비는 난처해하면서,
"보다시피 집이 작아 방이 좁은데다
아래위채가 붙어 있으며,
우리 부부만 단둘이 살고 있어
외인을 재울 수가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다.
그러자 소금장수는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나도 역시 가난하지만
양반집 자손이랍니다.
소금을 팔아 생계를 이어 보려고
이렇게 다니다가
산속에서 날이 저물었으니
어디로 가서 자겠습니까?
이렇게 박절하게 거절하시면
다니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갈 신세인데,
너무 냉정한 처사가 아니옵니까?
하룻밤만 재워 주십시오."
이와 같이 딱한 사정을 호소하니,
선비는 차마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사랑방에서
자기와 함께 자기로 하고 허락했다.
소금장수를
사랑방에 들여보내 놓고,
선비는 아내와 함께
안방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내가 요사이
갑자기 송편이 먹고 싶으니
오늘밤 송편 좀 만들어 나와
함께 먹는 것이 어떻겠소?"
"아니 참, 당신도.
사랑방에 소금장수 손님이
함께 잘 터인데,
어찌 우리 둘만 조용히
송편을 먹을 수가 있단 말이요?
정말 당신도 딱하시구려.
먹고 싶어도 오늘은 참아야 합니다."
이 말에 선비는 좋은 계획이 있다면서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잘 들어 봐요.
내 좋은 수가 있으니,
오늘밤 긴 끈으로
내 음낭을 묶어서,
그 다른 쪽 끝을
사랑방 들창 밖으로
늘어뜨려 놓겠소.
그럼 당신이 송편을 빚어
다 쪘거든,
가만히 들창 밖으로 와서
그 끈을 잡아당겨 흔들구려.
그러면 내가 알고
소금장수 몰래 나와서
함께 송편을 먹는 거요.
어떻소, 참 좋은 계책 아니요?"
그러자 아내는 좋다고 응낙했다.
본래 선비의 집은
워낙 좁고 창문도 하나뿐이라,
소금장수는
이들 내외가 약속하는 소리를
사랑방에서 모두 엿들었다.
이윽고 선비가
사랑방으로 나와 불을 끄면서
소금장수에게 먼저 자라고 권했다.
그래서 자리에 누워 자는 척하자,
선비가 눕더니
끈으로 자신의 음낭을 묶은 다음,
한쪽 끝을 들창문 밖으로
내놓는 것이었다.
이에 소금장수는 모른 체 하고
가만히 살피니,
어느새 선비가 잠들어
코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이 요란했다.
'옳거니, 이 사람 피곤해서
곯아떨어졌구먼.'
소금장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선비를 흔들어 보니,
잠이 깊이 들어 깨지 않았다.
그러자 곧 선비의 음낭에 묶인
끈을 풀어 자기의 음낭에 매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참이 지나니
창문 밖에서 끈을 잡아 흔들기에
소금장수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안방 앞에 이르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사랑방 창문에 불빛이 비치면
소금장수가 깰지도 모르니
꺼버리는 게 좋겠구려.
어서 불을 꺼도록 해요."
"그렇지만 여보,
불을 끄고
어떻게 떡을 먹으려고요?"
"여보, 괜찮아요.
어두워도 손과 입이 있잖소.
더듬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
어서 불을 꺼요."
이 말에 선비의 아내는 웃으면서
호롱불을 불어 끄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금장수는
방안으로 들어가,
선비의 아내와 함께
송편을 더듬어가며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는 선비 아내의
옷을 벗기고 누워서
온갖 재주를 부리며
힘차게 잠자리를 해주니,
매우 흡족해 했다.
이러고 소금장수는
슬그머니 일어나
사랑방으로 돌아왔다.
그 때까지도 선비는
세상 모르고 자는지라
소금장수는 선비를 깨워,
"주인장, 재워 주어서 고맙소이다.
새벽닭이 울었으니
이제 떠나겠습니다.
다음에 또 지나칠 때
들리겠으니 잘 계시오."
라고 말하고는
짐을 챙겨 떠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일어난 선비가
생각해 보니,
아내가 송편이 다 되면
깨우겠다 해놓고
새벽닭이 울도록
깨우지 않은 것이 하도 이상했다.
그래서 문득
자신의 음낭을 묶었던 끈을 떠올리며
그곳을 만져 보자,
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선비는
큰소리로 아내를 불러
깨우고는 소리쳤다.
"아니, 여보! 내가 어젯밤
송편이 익거든 깨우라고 했거늘,
끝내 아무 소식도 없으니
무슨 까닭이요?"
이 말에 잠을 깬 아내는
눈을 부비면서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좀전에 배불리 송편을 먹고
나와 잠자리까지 잘해 놓고는,
이제 와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요?"
"그, 그 무슨 말이요?
내가 배부르게 송편을 먹었다니?"
선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아내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조금 전에 끈을 잡아당겨
흔든 이야기며
불을 끄고 함께
송편을 먹은 이야기,
게다가 특별했던 잠자리 이야기까지
모두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선비는
크게 당황하면서 물러나 앉더니,
"그, 그 놈의 소금장수로구나!
원수 같은 소금장수가
내 집의 아내와
송편을 모두 먹고 갔어.
이렇게 원통하고 분할 수가."
라고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비로소 깨닫고
쳐다보며 말했다.
"음, 그래 내 어째
괴이하다 생각했었지.
잠자리를 할 때
그렇게도 재주를 부리며
힘차게 잘하기에
이상하다 했더니,
그게 당신 것이 아니고
소금장수의 것이었구려."
아내가 이러고 깔깔 웃으니
선비는 화를 내면서 나가 버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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