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59화 - 정조를 지킨 여인이 회초리를 맞다 (反撻女貞)

 

옛날 서울에 사는 한 선비가 남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러 날을 주점에서 자면서 길을 가는데,

하루는 날이 저물었는데도 주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시골 마을의 한 집으로 들어가 하룻밤 유숙을 청하니,

젊은 여인이 나오면서 남편이 출타하고 혼자 있어

손님을 재울 수 없는 형편이라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선비가 두 번 세 번을 간청을 하니, 여인은 난처해하면서도

마침내 한 방을 내주면서 허락했다.

 

선비가 방으로 들어가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주인 여자의 아름답고 현숙해 보이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돌진해 들어가서는

여인을 끌어안고 옷을 벗기려 하니,

여인은 몸을 빼고 앉아 꾸짖는 것이었다.

"점잖은 선비가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부인, 내 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는

사모하는 마음이 끓어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룻밤 기쁨을 함께 하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선비는 들으십시오. 잠잘 곳이 없다고 재삼 간청하기에

가엾게 여겨 묵어갈 수 있게 허락했는데,

그것이 또한 하나의 후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부당한 행동을 하시니,

이 어찌 배은이 심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선비의 의관을 보아 하니

독서를 많이 한 분으로 생각되는데,

예의 도덕을 공부한 사람이

어찌 이런 짐승 같은 행동을 하려 하시는지요?"

 

여인의 추상같은 질책에 선비는 말문이 막히고 부끄러워

몸을 움츠리며 물러나 앉았다.

 

이 때 여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선비의 행동은 반드시 벌을 받아 마땅하니 회초리를 맞아야 합니다.

여기 바지를 걷어 종아리를 내놓고 서시기 바랍니다."

 

여인은 회초리를 준비하여, 선비에게 종아리를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선비가 종아리를 걷자 여인은 세 대를 쳤다.

 

이에 선비는 부끄러워하면서 자던 방으로 건너와,

여인의 정절에 감복했다.

 

날이 밝았다.

여인은 남편이 들어오자 지난 밤의 일을 숨김없이 고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여인의 남편이 화를 내고 달려들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아내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집에 여자가 혼자 있으니,

선비가 욕망이 동해 일시적으로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어찌 미천한 여자가 양반 선비에게 모욕을 주었단 말이오?

이는 매우 무례한 행동이니 마땅히 그 벌을 받아야 하오.

어서 일어나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 맞을 준비를 하시오."

 

이러면서 남편은 아내를 세워 놓고 회초리 열 대를 치니,

여인의 종아리에서 피가 흘려 내렸다.

 

그런데도 여인은 전혀 화내는 기색 없이

남편의 말에 공손히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내에게 회초리를 때리고 난 남편은

다시 선비가 있는 방으로 와서,

어젯밤 아내의 무례한 행동을 사죄드린다고 하면서

엎드려 잘못을 비니,

선비는 무안하여 급히 그 집에서 나왔다.

 

여행을 계속하던 선비는 어느 날 날이 저물어 한 주점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거처할 방을 정하고 쉬는데, 주점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안주인이 설거지를 마치니 남편이 말했다.

"건넛마을 초상집에 가서 밤을 새고 올 테니,

손님 잘 대접하고 문단속 잘 하기 바라오."

 

이렇게 일러 놓고 나가니,

그 때부터 안주인은 세수를 하고 얼굴을 꾸미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니 안주인은 술상을 차려 선비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먼 길을 다니시느라 적적하실 듯하여 위로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마침 남편은 초상집에서 밤을 새고 올 것이기에,

술이나 한잔 권해 드리면서 회포나 풀어 볼까 하옵니다."

여인은 온갖 교태를 부리고 술을 권하면서

매우 음탕한 몸짓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를 본 선비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전날 여인은 정조를 지켜 나에게 회초리를 쳤는데,

남편으로부터 칭찬은커녕 도리어 매를 맞아 피를 흘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여인은 자진하여 남자에게 접근해 음탕한 행동을 하려고 하니, 

참으로 하늘과 땅 사이란 말이 맞도다.

내 전날 정절을 지킨 그 여인에게 받은 교훈을 잊는다면,

그야말로 아녀자보다 못한 사람이지.'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심을 다진 선비는 여인을 앉혀 놓고 이렇게 꾸짖었다.

"여자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음행을 저지르는 것은

인륜에 벗어나는 행동이니, 속히 술상을 들고 나가시오."

 

이에 여인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곧바로 나가지 않고 앉아 있으니,

선비는 지난날 시골 여인에게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결코 여인의 음행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여인은 선비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서,

또한 여자를 모르는 남자를 어디다 쓰겠느냐고 비웃으면서

방을 급히 나가는 것이었다.

 

선비가 아침에 눈을 뜨니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에 급히 나가보니 남자 주인이

몸통에서 분리된 사람의 머리통 둘을 양손에 들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선비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남자 주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들어 보십시오. 소인의 아내는 행실이 음탕하여,

여러 남자들을 불러들여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현장을 잡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는데,

어젯밤 선비님이 들어오니 

소인 아내의 눈길이 매우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을 핑계로 집을 피해 나가

주위에서 숨어 살피니,

소인의 아내가 술상을 들고 선비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통간하는 현장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선비님의 그 높으신 인격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에 선비가 민망해하니, 남자 주인은 절을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소인의 아내가 선비님 방에서 나와 무엇을 했는지 모르시지요?"

 

"마을의 못된 소년을 불러들여 같이 자면서 희희락락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소인이 현장을 덮쳐 두 알몸의 목을 단칼에 베었답니다.

지금 이들 음탕한 남녀를 이 집과 함께 불태워 없애 버리려니

선비님은 속히 피하소서."

 

선비가 급히 행장을 수습해 밖으로 나오자,

남자 주인은 들고 있던 머리통 둘을 방안으로 던지고는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는 불타는 주막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내 전날 그 시골 부인에게서 회초리를 맞지 않았더라면,

오늘 저 불 속에서 재가 될 뻔했구나."

하면서 선비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그곳을 떠났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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