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15화 - 데운 술이면 좋았겠구나 (煖酒快歟)
어느 한 겨울이었다.
연일 날씨가 추워서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바람에
사람들은 배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얼음 위를 걸어다니다 보니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하루는 짓궂은 행동을 잘하는
친구 두 사람이
마침 볼일이 있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항아리를 짊어지고
조심조심 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자 친구 하나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여보! 지고 가는 그 항아리 속에는
뭐가 들었소?"
"아, 나는 주점을 하는 사람인데
날씨가 추워 길이 얼어붙으니
아무도 소주를 갖다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사서
짊어지고 가는 길이라오."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다 보니,
추운 날씨에 배도 출출하니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이에 그들은 서로 돌아보고 상의를 한 뒤,
주점 주인에게 이런 제의를 했다.
"이보시오, 우리가 지금 소주 생각이 간절한데
그것 좀 우리에게 한 잔씩 주구려.
값은 계산해 드리리다."
"뭐라고요?
아무리 술 생각이 나기로서니
이 얼음 위에서 어찌 항아리를 열며,
술잔 또한 없는데
어찌 마시겠단 말이요?"
"아, 그건 염려마시구려.
소주 항아리에 입을 갖다 대고
받아 마신 다음,
우리가 그 양을 생각해서
값은 후하게 쳐드리리다."
"아니, 이보시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구려.
항아리에 입을 대고 마신 뒤
돈을 주겠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러면서 주점 주인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별 수 없이
조심조심 그 뒤를 따라갔다.
이렇게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주점 주인이
발을 헛디디면서 미끄러져
얼음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소주 항아리도
자연히 얼음 위로 나동그라지면서
큰소리를 내고 깨져 버렸다.
곧 항아리 속의 소주가 얼음 위로 쏟아졌고,
깨진 항아리 조각 속에
소주가 조금씩 담긴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엎드려
그 항아리 조각에 담긴
소주를 핥아먹었다.
그들은 주점 주인의 불행을
오히려 행운으로 여기면서
한동안 이리저리 다니며
소주를 핥아먹은 뒤,
잔뜩 화가 나 있는
주점 주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진작 우리에게
서너 잔이라도 팔았더라면,
돌아갈 노자라도 건졌을 게 아니오.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이게 뭐란 말이요.
속담에, 한번 배를 채우는 것도
재수(財數)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은데,
단지 좀 차가운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이에 주점 주인은 눈을 흘기면서
잔뜩 볼멘소리로 말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이요?
내가 따뜻하게 데운 소주를 멘 채
넘어졌더라면
당신네들 기분이 꽤나 좋을 뻔했구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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