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18화 - 어리석은 형이 오래도록 곡을 하다 (愚兄久哭)

 

한 고을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너무 어리석고

사리분별이 어두웠으며

아우는 영리하고 명석했다.

 

마침 지난해에

부친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고

늘 부친 묘소에 가서

절을 하며 애통해 하는데,

계절은 어언간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형제가 묘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 동안에

아우는 산소 앞에서 절을 올리고

슬프게 곡을 했지만,

형은 산소 주위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꺾거나

날짐승을 쫓으며 장난만 칠 뿐,

부친의 산소에는 절도 하지 않고

슬프게 곡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의 형에 대해 잘 아는지라,

이를 보고도 특별히 뭐라고 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혼자만 애석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니,

묘소 근처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졌다.

 

이에 성묘를 하러 온 형은 너무 좋아,

산을 오르내리면서

꽃도 꺾고 나비도 잡아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어언 여름도 깊어

초록이 무성해진 어느 날이었다.

어쩐 일인지

형이 선친의 묘소 앞에 와서

절을 하고 슬피 곡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우는 제사를 지내고

묘소에 차려 놓았던 제물(祭物)도

모두 거두었는데,

그때까지도

형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우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형님이 그 동안 부친이 돌아가셨는데도

잘 모르고 슬퍼하지 않더니,

이제 그런 행동을 뉘우치고

진정으로 돌아가신 부친을

추모하는 마음이 생겼나 보다.

역시 세월이란 사람에게

지각이 들게 하는 모양이구나.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이렇게 혼자 생각한 아우는

돌아갈 준비를 모두 마치자,

곡을 하고 있는

형을 붙잡아 흔들며 말했다.

 

"형님, 그 동안에 못 다한 애도를

오늘 다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해도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가야 할 길 또한 머니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아우가 이와 같이 말리니,

 

형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저 느티나무 잎이 저렇게 많이 나오도록

금년에는 아직 떡 한번 못 먹었으니,

내 어찌 슬프고 눈물이 나지 않겠느냐?"

 

형의 이 말에

아우는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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