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12- 수달 가죽 팔기 (獺耳還賣)

어느 시골에 한 양반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는데,

우연히 골짜기 계곡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양반은 이 가죽이

비싼 값에 팔린다는

말을 들었기에,

가죽을 벗겨 잘 말려서는

팔기 위해 소문을 냈다.

그러자 한 상인이 와서

사겠다고 하면서 값을 물으니

양반은,

"이 수달 가죽은 매우 값진 것이니

백 냥은 내야 팝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상인은 입을 딱 벌리고

더 이상 묻지도 않은 채 가버렸다.

그 뒤에도 몇 사람이 찾아와

사겠다고 흥정을 했으나,

양반은 백 냥이 아니고서는

팔지 않겠다고 하여

번번이 포기하고 욕을 하면서

그냥 돌아갔다.

 

얼마 후 시장에서

수달 가죽 이야기가 나오니,

이 양반에게서

값을 물어 보고 간 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말을 하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이라고 비웃었다.

이 때 한 상인이 이런 제의를 했다.

"그 양반이 뭘 모르는 것 같으니,

골탕 한번 먹이는 것이 어떻겠소.

내 묘한 꾀가 하나 떠올랐답니다."

이에 모두 좋다고 찬성하니,

그 상인은 구체적인

계책을 이야기해 주면서

서로 말을 맞추기로 약속했다.

먼저 한 상인이

그 양반을 찾아가서,

좋은 수달 가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면서

한번 보자고 했다.

그래서 양반이

수달 가죽을 들고 나오니

상인은 이모저모 살피면서 칭찬했다.

"정말 신기하구려!

이렇게 좋은 가죽은 처음 보는데요.

진정 훌륭한 보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데 값은 얼마입니까?"

"아, 꼭 사시겠다면

2백냥에 팔지요."

양반은 상인의 칭찬에

마음이 들떠 값을 두 배로 불렀다.

그러자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의했다.

"그렇게 받아야지요.

그런데 내 지금 돈을

50냥밖에 가져오지 않았으니,

귀 하나를 떼어 50냥에 파십시오.

너무 귀한 가죽이라

그것만이라도 사가려고 그럽니다."

이에 가만히 생각하니

귀 하나에 50냥이면

전체를 떼어서 팔 경우

엄청난 돈이 되어,

수달 가죽 하나로

부자가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양반은 쾌히 승낙하고

귀를 떼어 팔았다.

며칠이 지나서 다른 상인이 왔다.

이번에도 역시

좋은 수달 가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면서

한번 보기를 청했다.

곧 양반은 한쪽 귀가 없는

수달 가죽을 들고 나와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죽을 살펴본 상인은

눈살을 지푸리면서 말했다.

"애석합니다.

이렇게 좋은

수달 가죽은 처음 보는데,

귀가 하나 없으니

쓸모가 있어야지요.

정말 아깝구려."

하면서 값도 물어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에 양반은

귀를 떼어 판 것을 후회하면서

화가 나 진정을 못하고 있는데,

마침 귀를 사가지고 간 그 상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양반은 그 상인을 불러

크게 꾸짖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를 속여

내 수달 가죽의 귀를 하나 사갔으니,

양반을 속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시오?

그 귀를 물러주지 않으면

큰 벌을 받을 것이요."

이 말을 들은 상인은

짐짓 황송해 하면서

귀를 도로 내주니,

양반은 받은 돈 50냥을 돌려주었다.

이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또 다른 상인이 찾아와

수달 가죽을 사겠다고 했다.

이에 양반은 의기양양하게

귀를 실로 꿰매 붙인

수달 가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가죽을 이리저리 살피던

상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수달 가죽은

어느 한 부분도 잘린 것은

도로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 가죽은 한 푼을 주고도

살 수가 없군요.

전혀 가치 없는 물건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깝습니다."

이러면서 수달 가죽을

건네주며 떠나가니,

이 말을 들은 양반은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 가죽을

상자 속에 넣어 두고

한 여름을 지내고 나자,

가죽에 곰팡이가 피어

털이 모두 빠지고

영영 못 쓰게 되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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