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14- 영험 있는 소경의 점괘 (神卜奇驗)

옛날에 한 선비가 나이 서른이 넘어 아들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길렀다.

이 아이가 예닐곱 살이 되니 미모가 출중하여 보는 사람들 모두 칭찬이 자자했다.

하루는 맹인 점장이가 왔기에아이의 장래 화복을 물으니,

맹인은 점을 쳐보고서 크게 걱정했다.

"이 아이는 15세가 넘으면 크게 귀한 몸이 되는데,

그 안에 장가를 들어 횡사(橫死)할 액운이 있으니 조심해야 되겠소."

이 말을 들은 선비는 크게 놀라 맹인에게 매달렸다.

"아니 크게 귀한 몸이 된다면서 횡사를 한다니 무슨 괘가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 횡액을 면할 수 있겠는지요?"

"어디 한번 봅시다. 그렇지, 액을 면할 수가 있겠군요.

천기(天機)를 누설해서는 안 되지만 선비의 처지가 몹시 딱하고,

훌륭한 인물이 될 아이인데 또한 가엾은 일이니 내 방법을 알려 드리리다.

이 아이가 장가를 가게 되면, 비록 사흘 동안이라도 신부와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조석(朝夕)의 식사를 비롯한 어떤 음식도 처가의 것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처갓집을 들랑날랑 왕래만 한다면 자연히 재앙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맹인은 이렇게 일러 주고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을 주면서,

단단히 봉해 절대로 열어 보지 말고 간직했다가

아주 위급한 일에 처했을 때 보라 하고는 떠나갔다.

세월이 흘러 이 아이가 15세에 이르니, 얼굴이 관옥 같고 출중하여

모두들 흠모하는 당당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이에 한 중매가 화서 권귀가(權貴家)인 어떤 재상의 딸과 혼인할 것을 권하여 정혼을 하게 되었다.

혼인하는 날, 신랑이 대례를 치른 후 신부 집에서 차려 주는 오찬이며 석반에 손도 대지 않고

한 잔의 물도 마시지 않으니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 첫날밤에도 신부와 자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니 처부모는 크게 의심하고 화를 냈으며,

일가 친척들도 모두 그럴 수 있느냐고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신부가 있는 처가를 들락거리며 세월을 보낸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 이 무렵 어느 날 밤, 신부가 칼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채 숨져 있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에 신부 집에서는 온 집안이 통곡했고, 죽인 사람을 알지 못하니,

자연히 왔다갔다 왕래만 하는 신랑을 의심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신랑이 혼례 이후로 처가 음식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더니,

이런 변란을 일으킨 것으로 단정짓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랑을 관가에 고발하니,

형조에서 이 문제를 심리하기에 이르렀다.

형조판서가 신랑을 잡아들여  꿇여 놓고 문초하기를,

"신랑은 처가에서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신부가 칼에 맞아 죽은 사실이 그 행동과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으니

숨김없이 이실 직고할지어다." 

라고 추상 같은 호령으로 엄하게 추궁하는 것이었다.

이에 신랑은 처가에서 숙식을 하지 않은 것은 부친께서 시키신 바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며,

신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더 이상 실토할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

이에 형조판서는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형벌 기구를 갖추어 엄하게 형문하려고 했다.

그러자 신랑은 매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득 위급할 때 보라고 했던 그 맹인의 그림이 생각나자 종이를 거내 들고 외쳤다.

"형판대감께서는 이 종이를 보시고 처분을 내리소서."

이에 형조판서는 그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펼쳐 보니,

노란 종이에 개 세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형조판서가 그 그림을 보고 반나절이나 생각한 끝에,

무릎을 탁 치면서 군졸을 불러 이렇게 지시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신부 집으로 가서, 집안사람과 모든 아랫사람이며 종들 중에

'황삼술(黃三戌)'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으면 찾아서 데려오너라."

명령을 받은 군졸들이 신부 집으로 달려가서 집안사람 이름을 일일이 조사하니,

과연 그 집안 일을 주선하는 겸인 중에 황삼술이란 자가 있어 데리고 왔다.

그러자 형조판서는 황삼술을 꿇여 놓고 엄하게 문초했다.

"듣거라! 네 죄는 네가 응당 잘 알 것이니라.

내 다 알고 있으니 일일이 자백하여,

여기 신랑으로 하여금 무고하게 재액을 끼침이 없도록 할지니라.

조금이라도 숨기는 일이 있다가는 형문을 당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이에 황삼술은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이실 직고하는 것이었다.

"황삼술 아뢰옵니다. 소인이 죽을 죄를 짓고,

어찌 명철하신 형판대감 앞에서 숨김이 있겠나이까?

소인이 오랫동안 그 댁 처자와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던 중에

마침 혼인이 성사되니,

우리 두 사람은 신랑을 죽이고 먼 곳으로 도망쳐

숨어 살기로 굳게 언약을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혼례 후 신랑이 처가에서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니

죽일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그러던 차에 신부 또한 지난날 서로 접했던 일은 후회막급이니 없었던 일로 하고,

이제 혼인을 했으니, 이후로는 결코 몸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면서

소인과 접하기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고로 소인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그만 칼로 찔러 죽였사옵니다.

하늘이 벌을 내리시어 형판대감 같은 명철하신 판관을 만나게 하셨으니,

더 이상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사옵니다."


이렇게 순순히 자백하니,

형조판서는 황삼술을 매로 쳐서 죽이라고 명하고 신랑은 위로하여 풀어 주었다.


앞서 노란 종이에 그린 개 세 마리에 대해 형조판서는 종이가 노란색이니 황씨(黃氏)이고,

'술(戌)'은 개를 뜻하니, '황삼술' 이란 사실을 추리해 알아낸 것이었다.

그러니 맹인의 귀신 같은 점괘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신점(神占)이었고,

형조판서의 추리력 또한 뛰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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